제 27장 천년삼존(千年三尊)의 유물(遺物)
뇌왕애(雷王崖).
그것은 대과벽의 서쪽에 자리하고 하나의 절벽이었다.
뇌왕애의 주위로는 천균평(千鈞坪)이라 하여 수많은 균열이 밑바닥도 보이지 않게 무수히
나 있었다. 흡사 거북등같이 갈라진 지표의 균열들은 각기 다른 형상으로 늘어서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뇌왕애(雷王崖)였다. 그 갈라진 모습이 흡사 벼락의 문양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삼경(三更),
깊은 밤이었다. 뇌왕애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쌓여 괴괴한 적막을 안고 있었다.
스으으……!
문득 환상인 듯 밤의 모랫바람을 타고 크고 작은 한쌍의 인영이 뇌왕애 앞에 내려섰다.
바로 마왕화 패옥사랑과 금붕공주 파사를 품에 안은 무영이었다.
"뇌룡벽정도의 표기대로라면 여기가 바로 천마성전(天魔聖殿)의 입구일 거예요!"
마왕화는 균열 안쪽을 들여다 보며 말했다. 그곳에는 지옥의 입구와 같은 시커먼 동공이 입
을 쩍 벌린 채 지하로 뚫려 있었다.
'이곳이 삼신문(三神門)중에서도 최강이라던 천마성전...!'
무영은 내심 엄청난 흥분과 격동을 느꼈다. 하지만,
"흐음! 좀 더 그럴 듯한 풍광을 기대했는데 실망스럽군!"
겉으로는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왕화는 그런 무영을 차가운 시선으로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본녀가 원하는 것은 십대겁황(十代劫皇)님의 신물인 지존마황번(至尊魔皇幡)뿐이에요! 그
외의 모든 것은 그대와 그대의 어린 암코양이에게 양도하겠어요!"
그 말에 무영은 히죽 웃었다.
"정말 고맙구료!"
"비꼬실 것 없어요. 이 안에 있는 금붕지존의 금붕성검(金鵬聖劍)이나 대혈종(大血宗)의 혈
왕극(血王戟)도 결코 지존마황번보다 못하지 않은 보물이니까요!"
마왕화는 싸늘한 음성으로 일축했다. 이어,
슥……
그녀는 먼저 교구를 돌려 뇌왕애 안으로 들어갔다.
걸음을 옮기며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천지쌍마가 추적자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반나절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그 전에 일을 끝
내야만 해요!"
"알아 모시겠소이다!"
무영은 눈을 찡긋하며 염려말라는 듯 대답했다. 곧 그들의 모습은 곧 뇌왕애의 균열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다.
0한데,
"……!"
"……!"
뇌왕애가 내려다 보이는 절애 위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이 인(二人)의 인물이 유령같이 어둠
속에 우뚝 선 채 뇌왕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금시천붕(大漠金鵬皇) 붕천리(崩天里).
천리신안(千里神眼).
바로 금붕십왕 중 이 인인 그들이었다.
천리신안이 두 눈에 신광을 번쩍이며 입을 열었다.
"틀림 없습니다. 그 자, 도수라는 자가 안고 있는 소녀는 파사 공주님이 분명합니다!"
그의 음성은 흥분으로 떨려 나오고 있었다.
"저들이 곧장 뇌왕애를 찾아낸 것을 보면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빨리 천존(天尊)
께 알려야 합니다!"
그는 금시천붕 붕천리를 바라보며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금시천붕은 히죽 웃었다.
"그래야 할 것 같군."
그의 어조는 기이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 순간,
쾅!
돌연 그는 손을 뻗어 벼락같이 천리신안의 등에 일장을 가격했다.
"헉!"
천리신안은 등판이 박살난 채 그대로 거꾸러졌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급습이었기에 천리신안은 피하고 어쩌고 할 생각조차 갖지 못했다.
"총호법! 당…… 당신이……!"
그는 핏물 속에 쓰러진 채 불신의 눈으로 금시천붕을 올려다 보았다. 그런 그의 두 눈에는
회의와 분노가 뒤엉켜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곧 그는 모든 상황을 비로소 짐작한 듯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그…그렇군! 파사공주를 유괴한 자가 바로 당신……!"
"흐흣! 아는 것이 너무 늦었다, 애송이!"
금시천붕은 음산한 괴소를 흘리며 득의의 빛을 지었다.
그와 함께,
퍼---- 억!
그는 무자비하게 천리신안의 가슴을 걷어찼다.
순간,
"아---- 악!"
쐐---- 액!
천리신안은 처절한 비명과 함께 천야만야한 절벽 아래로 그대로 추락해 버렸다. 실로 눈 깜
짝할 사이에 벌어진 무서운 일이었다.
"후훗! 네놈의 눈이 너무 좋았던 것이 죄다!"
금시천붕, 그는 천리신안이 추락한 절애를 내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헌데 그 때였다.
"잘했다, 일호(一號)!"
한 줄기 음산한 일성이 금시천붕의 뒤에서 들렸다.
"……!"
부르르……
그 음성이 들린 순간 금시천붕의 전신에 경련이 스쳤다.
다음 순간, 그는 홱 돌아섰다. 그의 뒤에는 언제였는지 한 명의 혈포인이 유령같이 서 있었
다.
스으 스으!
그는 온몸이 흐릿한 핏빛 노을로 뒤덮인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인물이었다.
순간,
"혈왕 저하!"
쿵!
금시천붕은 황급히 그 자리에 오체복지했다.
-혈왕(血王)!
그렇다. 혈포인은 바로 당대의 혈왕인 나백(羅伯)이었다.
혈왕은 섬뜩한 핏빛 눈동자로 금시천붕을 주시했다.
"일호! 약간 차질이 있었으나 네 임무는 완벽히 수행되었다, 수고했다!"
"망극합니다, 저하!"
금시천붕은 황망히 고개를 숙이며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스으……
두 손을 뒷짐진 혈왕은 피안개가 일렁이는 듯한 공포스런 혈안으로 뇌왕애를 노려보았다.
그런 혈왕의 뒤,
"……!"
한 명의 유령 같은 인물이 우뚝 서 있었다.
그 자는 바로 살아남은 지옥사흉(地獄四凶) 중 둘째였다.
혈왕은 뒷짐을 진 채 음침한 음성으로 금시천붕에게 명했다.
"이제 가서 대막천존 붕극형을 이리로 유인해 와라!"
"예엣?"
금시천붕은 의아한 듯 고개를 들었다.
츠으……
혈왕의 눈가에 어린 피그림자가 더욱 짙어졌다. 그는 음산한 어조로 그러나 분명하게 못박
듯 말했다.
"나는 저 천마성전에서 천 년 전에 있었던 결전을 종결지을 작정이다!"
"……!"
"겁황(劫皇)의 후예 마왕화 패옥사랑과 금붕(金鵬) 후예 대막천존 붕극형을 저곳에 잠재우고
말 작정이다! 아울러 한 놈 좀도둑까지!"
"아!"
그제서야 금시천붕은 혈왕의 의도를 깨달은 듯 나직한 탄성을 발했다.
혈왕, 그의 입술을 비집고 지옥의 유부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음산하고 섬뜩한 괴소가 새어
나왔다.
"후훗! 하루가 가기 전에 우리 혈왕일맥의 독패천하에 가장 큰 방해자들 셋이 지하에 묻힐
것이다! 도수 무영…… 마왕화…… 대막천존이라는… 우하하하핫!"
우르르……!
그의 음산한 광소는 지옥의 저주와도 같이 대과벽의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뇌왕애(雷王崖)!
이곳은 천 년 전 천마(天魔)와 금붕(金鵬)과 혈왕이 충돌했던 전장(戰場)이었다.
* * *
깊은 어둠에 휩싸인 지하,
"흠 정말 으스스한 곳이데……?"
무영은 마황화를 뒤쫓아가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 인이 지나가는 양쪽 석벽에는 끔찍하게도 화석이 된 인간골격이 빽빽히 박혀 있지 않은
가!
그것은 모두 천 년 전의 시신들이었다.
그 시신들은 천마성전이 지하로 함몰될 때 같이 함몰되어 화석화 된 것이었다. 그러다 지표
가 균열되며 다시 드러난 것이었다.
,
"……!"
앞서 가던 마왕화의 교구가 벼락을 맞은 듯 세차게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는 전신이 뻣뻣하
게 굳어진 채 전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오?"
슥!
무영은 유령같이 몸을 움직여 마왕화의 앞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자기도 모르게 여인에 대
한 보호본능이 발동한 탓이었다.
"저…… 저기!"
마왕화는 질린 표정으로 전면을 가리켰다.
한데,
"이크……!"
무심코 앞을 쳐다보던 무영은 어깨를 움찔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지하공동이 움푹 파여져 있었다.
그 지하공동 위, 허물어진 고대석전이 괴괴하게 서 있었다. 반쯤 허물어지고 제멋대로 부서
진 형태로……
하지만 비록 허물어진 석전이었지만 그 옛날의 화려하고 장엄한 위용은 잃지 않고 있었다.
<천마성전(天魔聖殿).>
허물어진 석전의 일각에 그와 같은 글시가 웅휘하게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천마성전!
그것은 바로 천마성전이었다.
삼신문 중 가장 신비하고 패도적인 전설을 지닌 겁황의 고향, 그것이 바로 이 인(二人)의 눈
앞에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영과 마왕화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천마성전의 웅자가 아니었다.
천마성전의 주위에는 무려 수만 구에 이르는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 그 옛날, 천 년 전 이곳
에서 있었던 끔찍한 전란을 보여 주는 듯한 수만 구의 시신들이었다.
그 시신들은 사막의 건조한 기후 때문에 그대로 목내이(木乃伊:미이라)가 되어 있었다. 금방
이라도 비명과 귀성을 토할 듯한 목내이의 산, 그것은 실로 공포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바로 그것이 무영과 마왕화를 놀라게 한 것이었다.
무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렸다.
"끔찍한 곳이군!"
스윽!
그는 파사를 꼬옥 끌어안은 채 시신 사이를 지나 천마성전으로 다가갔다.
"……!"
그러자 지금까지 앞장 섰던 마왕화는 질린 표정으로 주춤주춤 무영의 뒤를 따랐다.
시신들은 모두 세 부류였다.
한 부류는 청색전포를 걸친 인물들로서 그들의 숫자가 가장 많았다. 바로 대막금붕성의 금
붕전사들이었다.
천마성전의 천인마종들은 흑색전포를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혈왕문의 혈왕전사들은 검게 퇴색한 혈포 차림이었다.
"오!"
무영은 눈을 크게 뜨며 걸음을 멈추어 섰다.
무영이 멈춘 곳은 무너진 천마성전의 입구였다. 그곳에도 역시 수많은 시신들이 널려 있었
다.
한데 그 무수한 시신들 사이에는 세 가지 유달리 눈에 띄는 물건이 꽂혀 있지 않은가? 번
(幡), 극(戟), 검(劍)의 세 가지 물건이었다.
아수라군림도와 뇌룡등천도가 양면에 새겨진 일 장에 이르는 검은색 깃발,
찬란한 금광(金光)으로 뒤덮인 창연한 고검(古劍),
그리고 섬뜩한 핏빛 노을을 뿌리는 여섯 자 길이의 방천화극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는 그 옛날 이곳에서 충돌한 세 초인의 병기였다.
-지존마황번(至尊魔皇幡).
-금붕신검(金鵬神劍).
-혈왕극(血王戟).
이름하여 천년삼병(千年三兵)!
십대겁황, 금붕지존, 대혈종, 그들 삼파지존들이 경천동지할 격전을 벌일 때 사용했던 무적
신병(無敵神兵)들이었다.
그것들의 주인은 이미 사라졌다. 하지만 천년삼병은 무서운 예기를 흘리며 천 년을 서로 대
치하고 있었다.
스윽!
"……!"
문득 마왕화가 미끄러지듯 무영을 스쳐 지나가 천년삼병 중 지존마황번을 뽑아들었다.
순간,
웅웅웅----!
지존마황번의 검은 깃폭이 흔들리며 웅혼한 진동음이 일었다.
마왕화의 전신에 일순 벅찬 격동이 파문쳤다. 그녀의 두 눈은 감격과 희열로 젖어 흔들리고
있었다.
"아아 기뻐하소서, 겁황일맥의 열조(列祖)들이시여! 제자…… 패옥사랑이 이제 지존신병을
회수했나이다!"
그녀는 지존마황번을 허공으로 받쳐든 채 격동에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런 그녀의 네
개의 눈동자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르르……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소리없이 히죽거렸다.
'꽤나 감격적인 장면이군!'
이어 그는 눈을 돌려 나머지 두 병기를 향해 다가갔다.
금붕성검(金鵬聖劍)!
그것은 길이 넉 자, 검신의 폭이 다섯 치나 되는 고검이었다. 찬란한 금광이 흐르는 검신에
는 신비로운 금붕의 형상이 신기루같이 떠오르고 있었다.
금붕성검은 대막금붕성의 최강신병임과 동시에 지존신물이었다. 대막금붕성은 금붕성검을
잃어버려 천 년간 정식문호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혈왕극(血王戟)!
그것은 실로 엄청난 마기(魔氣)를 토해내고 있었다. 어지간한 무영조차 살갗이 갈라지는 듯
한 통증을 느낄 정도로 그 마기는 강렬했다.
무영은 혈왕극 앞에 선 채 내심 안도의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다행이다! 만일 이것이 혈왕의 손에 들어갔다면 그 자의 마력이 두 배는 강렬해졌을 것이
다!'
그것은 실로 생각만 해도 가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어 무영은 신중하게 손을 내
밀어 혈왕극을 잡아 뽑았다.
한데, 바로 그 때였다.
쾅!
돌연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 일격이 무영의 등판으로 작렬했다.
순간,
"크윽!"
쿵……! 쿵!
무영은 전신이 뽀개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과 함께 울컥 피를 토해냈다. 그와 함께 쓰러질
듯 몸을 휘청거리며 십여 보 앞으로 밀려났다.
한데 그의 등을 가격한 것은 놀랍게도 유리마수였다.
겁황의 지존팔마결 중 서열 칠 위의 파멸마강으로 발출된……
무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마왕…… 화!"
그는 쥐어짜듯 노성을 토하며 돌아섰다. 마왕화(魔王花) 패옥사랑을 향해서!
"쓰…… 쓰러지지 않다니……!"
마왕화는 석상처럼 굳어진 채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불신과 경악이 뒤얽
힌 그녀의 눈빛은 이해할 수 없는 빛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유리마수, 그녀는 비록 구성(九成)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부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한데,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그 유리마수를 맞은 무영은 다만 몸을 휘청했을 뿐 쓰러
지지 않은 것이었다.
무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마왕화를 향해 히죽 웃어보였다.
"미리 알려줄 걸 그랬군! 나는 쓰러지기에는 너무 단단한 놈이라고…… 게다가 한 가지 최
강의 호신지보가 나의 십대요혈을 지켜 주고 있다는 것을……!"
이어 그는 걸치고 있던 장포를 들어보였다. 그의 장포 속으로 검붉은 용(龍)의 비늘로 만든
혼신보갑이 보였다.
혈갑용린(血甲龍鱗)!
바로 그것이었다. 혈익응룡의 비늘로 만들어진 그것은 천지간에 가장 단단한 것이었다.
병채상아 혁련화령, 바로 그녀가 그것으로 보갑을 만들어 무영에게 준 것이었다.
무영을 마왕화의 유리마수에서 구한 것은 바로 혈갑용린이었다.
"천년삼병을 보니 욕심이 동했군, 마왕화!"
무영은 다시 한 번 히죽 웃었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두 눈에서는 무서운 신광이 작렬하고 있었다.
마왕화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어 그녀는 차갑고 날카로운 음성으로 외쳤다.
"문답무용(問答無用)! 쓰러져 주어야 겠다, 도수!"
쩌저적----! 위---- 이잉!
그녀는 일순 번개같이 반투명한 교수를 내쳤다.
그녀의 손끝에서 흡사 유리로 만든 칼 같은 강기의 날(刃)이 폭죽터지듯 일어 무영을 휩쓸
었다.
콰자작----!
그 기세는 실로 경천동지할 지경이었다.
유리강인(琉璃剛刃)!
그것들은 놀랍게도 무영의 혼원천강과 자전신공을 종이 베듯 무섭게 찢어내며 날아들었다.
아무리 무영이 혈갑용린으로 방호되었다고 하나 그것을 맞으면 결코 무사하지 못하리라.
무영은 위기감을 느꼈다. 다음 순간,
"마라…… 인!"
그의 입에서 한소리 쩌렁한 폭갈이 터져나왔다. 그는 파사를 안지 않은 오른손을 벼락같이
후려쳐냈다. 순간 그의 손끝은 핏빛강기의 검인이 되어 무려 십 장을 뻗쳐나갔다.
다음 순간,
콰---- 쾅!
짜자작----!
날카롭고 섬뜩한 파열음, 폭음에 이어 유리 깨지는 소리가 귀청을 찢어발겼다. 그와 함께,
"악!"
후드득!
처절한 외마디 비명이 터져나오며 장내를 흔들었다.
마왕화, 그녀의 가슴이 온통 피로 물든 채 십 장 저편으로 퉁겨졌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마라혈인(魔羅血印)!
지존팔마결 중 서열 오 위의 파괴공력, 모든 것을 부수는 겁황의 무적마공이 순간적으로 마
왕화의 호신지력을 바스러뜨린 것이었다.
마왕화는 불신과 경악의 눈으로 무영을 바라보았다.
"흐---- 윽! 천마절기를…… 알고 있었다니……!"
그녀는 핏물 속에 쓰러진 채 절망의 표정을 지었다. 점점 눈앞이 흐려지며 아득하게 정신이
멀어지는 듯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녀는 왼손에 쥔 하나의 깃발을 놓치지 않고 꼭 움켜쥐고 있었다.
지존마황번, 바로 그것이었다.
"크으 지…독히도 날카롭군, 유리마수!"
무영은 전신이 피에 흠뻑 젖은 채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그의 전신은 온통 피투성이로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거의 전 내공을 품 안의 파사를 지키는데 썼다. 그 때문에, 정작 그 자신은 수십 군데
를 유리강인에 베인 것이었다.
만일 혈갑용린이 몸을 방호해 주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 것인가? 그의 전신은 말할 것도
없이 갈가리 찢겨졌을 것이었다. 그만큼 유리마강은 무서운 것이었다.
무영은 쓰러져 있는 마왕화를 바라보며 씁쓸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쓰러지는 것은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잊었군, 마왕화!"
한데, 그의 중얼거림이 막 끝났을 때였다.
"후훗! 둘 다 쓰러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도수 무영!"
돌연 한 줄기 음산한 음성이 무영의 뒤에서 들려왔다.
순간, 무영의 안색이 홱 변했다.
'혈왕 나백!'
그는 목소리만으로도 나타난 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혈왕 나백, 바로 그가 나타난 것이었다.
"코가…… 매우 예민하군, 혈왕!"
무영은 히죽 웃으며 돌아섰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태연을 회복하고 있었다.
천마성전의 중앙,
스으…… 스으!
섬뜩한 피빛강기의 노을에 뒤덮인 채 혈왕이 우뚝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어느 새 혈왕극
이 들려진 채 사악한 마기를 뿌리고 있었다.
혈왕은 핏빛으로 번뜩이는 공포스러운 마안(魔眼)으로 무영을 노려보며 말했다.
"후훗! 천마성전까지 본좌를 안내해 준 대가로 곱게 죽여 주마!"
그의 음성에서 섬뜩한 죽음의 살기가 묻어나왔다.
하지만 무영은 태연했다. 그는 오히려 기이한 음성으로 반문했다.
"아직…… 누가 죽을지 모르는 일일 텐데?"
그는 품 속의 파사를 더욱 굳게 끌어안으며 혈왕을 직시했다.
혈왕의 눈가에 어린 핏빛이 섬뜩한 광망을 발산했다.
"네가 지존팔마결 중 두 가지를 익혔음을 안다. 후훗! 그래도 너는 아직 본좌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하물며……"
말 끝에 여운을 남기던 혈왕은 ,
위---- 잉!
수중의 혈왕극을 한 차례 흔들어 보였다.
순간, 실로 가공할 광경이 벌어졌다.
스스스스……!
아연하게도 백 장 저편의 석벽이 소리도 없이 모래처럼 부서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 하나만으로도 혈왕극의 위력이 얼마나 가공한 것인지를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혈왕은 어떠냐는 듯 득의의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리고 끊었던 말을 이었다.
"혈왕극은 본좌의 폭풍혈강(暴風血 )을 두 배로 증폭시켜 준다! 이런데도 네가 죽을 것을 믿
지 않느냐?"
무영은 그 말에 입술을 씰룩거리며 반문했다.
"삼무신의 후예로서 무기도 들지 않은 나를 그 무지막지한 혈왕극으로 칠 것이오?"
"크큿! 본좌에게 인정이나 도의를 따지지……"
음침한 혈왕의 말이 뚝 끊어졌다.
스---- 으---- 쾅!
예기치 않은 순간에 무영의 소매 속에서 빛살 같은 도기(刀氣)가 눈부시게 폭출되었기 때문
이다. 그것은 예리하고도 신랄하게 혈왕의 목을 찔러갔다.
한 순간,
파가가각----!
쇠가 갈리는 듯한 소름끼치는 금속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혈왕, 그의 목에서 섬뜩한 피가 튀는 것이 아닌가? 무영의 월영혈도는 정확히 혈왕의 목을
베었던 것이다.
하지만 월영혈도는 혈왕의 강력무비한 호신강벽에 부딪쳐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다. 쇠가
갈리는 소리는 바로 월영혈도가 혈왕의 호신강기를 가르고 들어간 소리였다.
무영은 지그시 입술을 물었다.
'빌어먹을! 너무 강하다!'
다음 순간,
스---- 팟!
그는 벼락같이 몸을 날려 천마성전 밖으로 날아나갔다.
'우선 피하고 보자! 파사를 지키면서 혈왕극에 맞선다는 것은 무리다!'
쐑----!
그는 순간적으로 무려 오륙십 장 밖으로 날아갔다.
하나 그 순간,
"가지 못한다! 교활한 놈!"
윙----!
혈왕이 분노이 폭갈을 터뜨리며 수중의 혈왕극을 벼락같이 떨쳐냈다. 그러자,
기---- 이잉!
슈하악----!
혈왕극의 끝에서 시뻘건 핏빛 낙뢰가 벼락치듯 작렬했다.
그리고 그것은 육십 장 밖으로 날아가고 있는 무영의 등에 사정없이 작렬했다.
한 순간,
콰---- 아앙!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가공할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그와 동시에,
"크---- 윽!"
무영의 입에서 고통에 극한 처참한 비명이 터졌다.
그리고, 무영의 몸은 그의 전면의 석벽과 함께 그대로 함몰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콰콰콰쾅----!
경천동지의 가공할 굉음과 함께 백여 장 높이의 석벽이 함몰되며 무영의 모습은 순간적으로
바윗더미에 파묻혀 버렸다.
그 광경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던 혈왕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바득! 너무 쉽게 죽였군. 차근차근 죽이는 건데…… 감히 나 혈왕의 몸에 상처를 내다니!"
그는 피가 흐르고 있는 목의 상처를 매만지며 분노에 치를 떨었다.
헌데 그 때였다.
"타인의 피는 아무렇지도 않고 네 한 방울의 피는 그렇게 중한가?"
돌연 싸늘하고도 장중한 음성이 혈왕의 배우에서 들려왔다.
순간, 혈왕은 흠칫하며 홱 돌아섰다.
'헉!'
쩌---- 엉!
그런 그의 눈에 한 명의 거인이 막 금붕신검을 뽑아드는 것이 보였다.
일 장이 가까운 거구에 작렬하는 듯 붉은 눈을 지닌 인물, 일신에 황금빛 곤룡포를 걸친 중
년인이었다.
그를 본 순간,
"대막천존 붕극형!"
혈왕의 입에서 무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대막천존(大漠天尊) 붕극형!
그가 바로 대막천존 붕극형이었다.
대막무림사상 최강이라는 십만 리 대막의 지배자!
그 장중한 기도와 압도적인 패기(覇氣)는 천마성전을 비좁아 보이게 만들었다.
혈왕은 입술을 씰룩이며 음침한 음성으로 말했다.
"빠르군! 내일 아침이나 되어야 도착할 줄 알았는데…!"
대막천존은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장중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본좌가 금붕의 후예임을 잊었군, 혈왕!"
말을 마침과 함께,
위---- 이이잉!
그는 서서히 수중의 금붕성검을 쳐들었다.
"옛부터… 금붕(金鵬)은 자신의 영토에 타인이 침범함을 용서치 않았지. 그것이 고금최강의
초인무벌이었던 천마성전이라 해도!"
대막천존은 웅후한 음성으로 강하게 잘라 말했다.
혈왕의 핏빛 눈가로 섬뜩한 광망이 번뜩였다.
"후훗! 혈왕후예 또한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 특히 너희 같은 변황의 오랑캐들과는……!"
"어디 보잘것 없는 오랑캐의 검을 받아 보게나 혈왕!"
말을 마침과 함께,
위---- 잉!
대막천존은 맹렬히 금붕성검을 쪼개냈다.
혈왕 역시 일성폭갈과 함게 대막천존에 맞섰다.
"오랏! 대막의 까마귀!"
콰---- 앙!
그는 수중의 혈왕극을 벼락같이 휘둘러 대막천존을 휩쓸어갔다.
대막금붕의 후예, 대막천존(大漠天尊)!
대혈종(大血宗)의 전인, 혈왕 나백(羅伯)!
더 이상 강할 수 없는 양인의 경천동지할 격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천 년 전 그 옛날같
이……
다만 겁황의 후예가 빠진 것이 그 때와 다를 뿐,
* * *
콰콰콰쾅----!
우르르……
엄청난 진동이 대과벽을 송두리째 허물어 버릴 듯 휩쓸고 있었다. 천야만야한 석벽들이 그
진동에 못이겨 종이쪽같이 찢기고 허물어지는 가공할 광경……
대자연의 신비라는 대과벽조차 두 명 초고수의 충돌에는 견디지 못하고 함몰하는가?
그렇게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돌연,
"우우……!"
"카아앗! 분하지만… 다시 보자, 붕극형!"
콰콰쾅----!
쐐---- 액!
함몰되는 뇌왕애를 뚫고 두 개의 그림자가 동시에 치솟아 올랐다. 바로 대막천존과 혈왕이
었다.
먼저,
쐐---- 액!
혈왕이 삽시에 한 줄기 핏빛 선으로 화해 남동(南東)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결코… 그냥 보내지 않겠다, 혈왕! 금붕의 땅에 들어온 이상!"
스---- 슥!
사라지는 혈왕의 뒤로 대막천존이 선풍을 끌며 뒤따랐다.
그들이 사라진 직후,
"우우 감히…… 마황의 후예를 다치다니……!"
"바득! 이 빚은 잊지 않겠다! 대막천존, 혈왕!"
콰쾅----!
쐐---- 액!
뒤미처 두 개의 크고 작은 인영이 뇌왕애의 폐허에서 떠올라 남으로 사라졌다.
천살, 지사!
마황군도 마황백종의 이 인인 천지쌍마가 그들이었다.
천살의 손에는 죽은 듯 늘어진 마왕화가 안겨 있었다.
또한, 뒤따르는 지사는 지존마황번을 받쳐들고 있었다.
"잊지마라! 마황(魔皇)의 분노를……!"
한맺힌 외침과 함께,
위---- 익!
슥……
그들의 모습은 까마득히 뇌왕애에서 멀어져 갔다.
그들이 사라지고나자 대과벽은 다시 괴괴한 적막을 되찾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 * *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칠흑의 암흑 속,
"크으…… 괴롭군!"
뚜벅…… 뚜벅……!
고통스러운 신음성과 함께 둔중한 발자국 소리가 어둠을 뚫고 들려왔다.
깊은 어둠 속, 한 명의 인물이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무영이었다.
끔찍하게도 그의 전신은 온통 피투성이었다. 수혈이 짚인 파사는 무영의 팔 안에서 평온하
게 잠들어 있었다.
댒タ돛 고통스럽게 안면을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혈왕…… 정말 강하군! 미처 패천독강을 펼쳐 대항할 여유도 없이 나를 이 모양으로 만들
다니……!"
그는 치를 떨었다.
뚝뚝……!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바닥에는 선명한 핏자국이 찍히고 있었다. 그의 등 또한
온통 피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놀랍게도 등 부위의 혈갑용린이 갈가리 찢겨져 있지 않은가?
혈왕극에서 뻗친 폭풍혈강(暴風血 )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폭풍혈강은 무영의 모든 호신지력을 박살내고 그를 암흑의 지하공동 속으로 퉁겨 버린 것이
다.
지금, 무영이 걷고 있는 지하밀로가 그 암흑공동의 일각이었다. 뚫어진 석벽 뒤에는 놀랍게
도 또 다른 지하공동이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응……? 저것은 무엇인가?"
무영은 흠칫하며 암흑 속의 전면을 주시했다.
그의 전면,
스으…… 스으……
신비로운 광휘가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검푸른 빛과 찬란한 황금의 빛, 그리고 강렬한 핏빛이 뒤엉킨 신비로운 광휘였다.
무영은 그 신비로운 광휘를 바라보며 나직한 침음성을 발했다.
"흐음 무서운 마기와 패기가 뒤덮인 빛인데…… 무엇이 있기에 저런 빛을 발산한단 말인
가?"
그는 강한 의혹과 호기심을 느꼈다. 이어,
뚜벅……!
그는 핏자국을 남기는 걸음걸이로 그 신비로운 빛을 향해 다가갔다.
삼색(三色)의 신비로운 광휘가 흘러 나오는 곳, 무영이 다가간 그곳은 음산한 지하공동이었
다.
삼면의 석벽에는 세 구의 시신이 화석이 된 채 굳어져 있었다.
각기 다른 기도를 지닌 삼 인(三人), 그들은 모습과 특징이 각기 달랐다.
무섭도록 강렬한 패기를 흘리는 흑포인,
금잠천의라는 대막금붕성의 천년지보를 걸친 금포거인,
그리고 머리에 핏빛 보관(寶冠)을 쓴 음산한 인상의 혈포중년인이 그들이었다.
한데, 세 구의 화석 사이에 하나의 단주(丹珠)가 신비로운 삼색 광휘에 뒤덮인 채 놓여져 있
지 않은가?
흑청색, 금광(金光), 혈광(血光)!
바로 멀리까지 그 광휘를 뻗치던 신비로운 빛의 실체는 그것이었다.
삼 인의 화석인과 단주를 본 순간, 무영의 입에서는 부지불식간에 신음 같은 부르짖음이 터
져나왔다.
"이들은…… 천년삼존이다!"
그는 경이의 시선으로 삼 인의 화석인을 주시했다.
천년삼존(千年三尊)!
그렇다. 화석이 된 세 구의 시신들은 바로 천 년 전 천마성전에서 벌어진 삼파대회전(三派
大會戰)의 주역들이었다.
십대겁황(十大天魔)!
금붕지존(金鵬至尊)!
대혈종(大血宗)!
바로 그들이었다.
천마성전과 대막금붕성, 그리고 혈왕문의 천 년 전 지존들.
놀랍게도 그들 삼 인이 한 곳에 모여 죽어있는 것이었다.
무영의 시선이 삼색광휘에 두덮여 있는 단주(丹珠)로 향했다.
"그렇다면…… 저 단주는 천년삼존의 원양진기가 응결된 원정내단(元精內丹)!"
그는 경이와 흥분이 깃든 눈으로 그 단주를 주시했다.
원정내단(元精內丹)!
그것은 무영이 일전에 지옥애 아래에서 얻었던 팔황신마 환극의 원정내단과 같은 성질의 것
이었다.
천년삼존은 동귀어진하여 이곳 지하에 묻혔다.
그 후, 천 년의 세월이 지나며 그들이 평생 익혔던 내공들이 하나의 단주로 혼합하여 응결
된 것이었다.
팔황신마 환극, 그의 원정내단과 틀린 점은 무영의 눈 앞에 삼 인의 원정내단이 팔황신마의
그것보다 다섯 배 막강한 내력으로 응집되었다는 점이었다.
십대겁황의 천마뇌정천강(天魔雷霆天剛)!
금붕지존의 붕명호천신강(鵬鳴護天神剛)!
대혈종의 혈영마라참륙강(血影魔羅斬戮剛)!
더 이상 강할 수 없는 삼파최후의 신공정수가 바로 그 내단에 모두 응결되어 있는 것이었
다. 이는 도저히 그 가치와 값을 따질 수 없는 것이었다.
무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히죽 웃었다.
"후후! 고맙소, 세 분!"
이어, 그는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천년삼존의 원정내단을 집어들었다.
무영으로서는 천운을 만난 것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는 내심 희열과 흥분, 격동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혈왕이 혈왕극을 얻어 호랑이에 날개를 달린 격이 되어 걱정했는데…… 더 이상 강할 수
없는 병기를 주시다니……!"
그는 감격하여 삼 인의 시신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먼저 그의 눈길은 십대겁황에게 머물렀다.
"십대겁황! 그대에게는 천마성전을 다시 세워 그대들의 맥을 이어 주는 대가로 보답하겠소."
이어, 그는 금붕지존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에게도 역시 확신에 찬 음성으로 다짐했다.
"귀공에게는 귀공의 후예인 파사를 지켜 주는 것으로 대신하겠소! 나는 귀여운 파사 곁에
최후까지 남는 후견인이 되어 줄 것이오!"
비록 이미 죽은 시신이었으나 무영은 그들에게 엄숙하고 신성한 약속을 다짐하고 있는 것이
다.
마지막으로 무영의 눈길은 대혈종에게 돌려졌다.
그는 대혈종을 주시하며 나직한 기소를 발했다.
"그대의 손을 빌어…… 그대의 후손힌 혈왕 나백을 쓰러뜨릴 것이나…… 후훗! 감사하셔야
할 것이오! 귀 혈왕일맥(血王一脈)을 파멸로 몰고가는 패륜아를 그대를 대신하여 벌하는 것
이니……!"
이윽고, 무영은 품 속의 파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년삼존을 향해 진중한 음서을 말했다.
"나는 일개 도둑이나 진 빚은 결코 잊지 않소! 그것이 악연(惡緣)으로 인한 것이든…… 선연
(善緣)으로 인한 것이든……!"
음울한 지하의 깊은 어둠 속, 그 속에서 무영의 음성은 웅후하게 메아리치며 퍼져 나갔다.
"귀하들은…… 나 도수 무영을 통해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오! 아주…… 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