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강호 3
이때였다. 창문을 통해 한 가닥 보이지 않는 기류가 흘러들어온
것은.
그러나 옥사향은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 기류는 색깔도
냄새도 없는 기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른바 강호의 잡류들인
하오문(下五門)에서 즐겨 쓰는 미혼향(迷魂香)의 일종이었다.
무색무미무취의 미혼향은 일단 한 모금만 마시게 되면 의식이 혼
미해져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게 된다. 물론 강호의 일에 대
해 일견식도 없는 옥사향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그녀는 웬지 졸음이 쏟아진다는 것을 은연중 느꼈으나 그 뿐이었
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걸려 들었다. 잠시 후 그녀는 연방 하품을 하면서 전
신에 무력감을 드는 것을 느끼며 스르르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흐흐흐......."
득의에 찬 웃음소리와 함께 창문이 열리며 한 인영이 들어온 것은
그 직후였다. 그는 바로 화화태세였다.
화화태세는 방 안에 들어서자 옆으로 쓰러진 채 잠이 든 옥사향의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이제까지 수많은 미녀를
범해 보았지만 아직 이런 미녀는 본 적이 없었다.
"흐흐....... 오늘밤 운이 좋았다. 뜻밖에 이런 봉황이 걸릴 줄이
야!"
그는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뿌듯해 옴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노련
한 색마였다.
결코 서두르려 하지 않았다. 더욱이 좀처럼 만나기 힘든 이런 최
상급의 미녀를 대해서는 더욱 그러했다. 그는 색(色)을 보다 완벽
하게 즐기는 방법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실상 화화태세는 이미 오순에 가까운 중노(中老)였다. 그러나 특
별한 음양비술을 알고 있어 겉으로 보기에는 이십대 청년으로 보
일만큼 젊어 보이는 위인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음양비술은 본래는 도교(道敎)에서 유래한 것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대법으로 발전시켜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흐흐흐! 이런 미인은 음기(陰氣)가 지순(至純)하고 맑아 나의 음
양도인술(陰陽導引術)을 전개함에 있어 그 효과가 탁월할 것이다.
그렇다면 쉽게 정복할 수야 없지.'
그는 품 속에서 하나의 약병을 꺼냈다. 그것은 웬만해서는 사용하
지 않는 희귀한 기약으로 그가 어렵게 묘강(苗疆) 지방에서 간신
히 극미량을 얻은 것이었다.
전갈과 지네, 그리고 일곱 가지의 진귀한 독충(毒蟲)들의 정액을
가루로 만든 것으로 강렬한 최음성을 발휘하는 춘약(春藥)의 일종
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춘약과는 성질이 틀렸다. 일단 복용하게
되면 해약이 없는 것이었다. 독성을 해소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오
직 음양화합을 하는 것 밖에 없었다.
또한 춘약 속에는 여인의 순음지기를 극한으로 발동시켜 엄청난
쾌락을 끌어낼 뿐만 아니라 젊음을 유지시키는 음양도인술의 효과
를 최대한으로 증진시키는 묘용이 있었다.
화화태세는 약병 속에서 하얀 가루약을 손바닥에 쏟은 후 조 심스
럽게 작은 대롱으로 빨아들인 후 의식을 잃고 있는 옥사향의 콧속
으로 훅, 불어 넣었다.
효능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의식을 잃고 있던 옥사향의 가슴이
들먹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봉긋한 앞가슴이 눈에
띄게 오르락내리락 거리더니 그녀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르
는 것이 아닌가?
독성이란 더 강한 독성을 만나게 되면 저절로 해소가 된다. 따라
서 그녀의 체내에 남아있던 미혼향의 독성은 그 순간 해소가 되었
다.
옥사향의 눈까풀이 가늘게 떨리는 듯 하더니 반짝하고 아름다운
눈이 떠졌다. 그런데 그녀의 눈은 열기로 인해 약간 충혈되어 있
었다.
옥사향은 눈을 뜬 순간 면전에 한 명의 낯선 청년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 질렀다.
"앗! 당신은......?"
문득 그녀는 전신에 알 수 없는 짜릿한 기운이 흐르는 것을 느끼
며 말끝을 흐렸다. 동시에 눈썹을 파르르 떨며 화화태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찌된 일일까? 그녀는 화화태세가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화화태세가 그녀를 향해 빙그레 웃어보이자 그녀
는 그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금치 못했다.
이 괴이한 사태에 옥사향은 몹시 당황했다. 그녀로서는 꿈에도 상
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녀는 온몸이 근질거리며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끼며 얼굴을 더욱 붉혔다.
'내... 내가 왜 이러지? 아아, 더워!'
그녀는 숨이 가빠지면서 온몸이 화끈화끈해지는 것을 주체하지 못
했다. 그때 청년이 감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몸을 굽혔다.
'아, 안돼!'
그녀의 내부에서는 그런 소리가 들렸으나 그것은 극히 미약한 저
항일 뿐이었다. 또 다른 그녀의 본능은 사나이의 품에 안겨 온몸
을 남김없이 불태우고 싶다는 욕망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성(理性)과 감성(感性)이 격하게 그녀의 내부에서 충돌했다. 그
러나 승부는 너무나 뻔했다. 이성이 이기기에는 춘약의 성분이 너
무나 강했던 것이다.
청년의 손이 그녀의 갸름한 턱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순간 그 녀의
의지는 단숨에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학! 하고 허파가 경련하는 듯한 신음과 함께 그녀는 청년의 목을
세차게 두 팔로 껴안고 말았다. 활활 타오르는 듯한 열기가 그녀
의 육체를 달아 오르게 하고 있었다. 그녀는 도무지 욕망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제 그녀는 환상에 빠지고 있었다. 청년의 모습이
그녀가 그토록 사모하던 유천기의 준수한 모습으로 화하는 것이
아닌가?
"아아! 상공......."
그녀는 뜨거운 숨결을 몰아쉬면서 화화태세의 가슴에 온몸을 던졌
다. 화화태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
다.
그녀의 몸은 이미 펄펄 끓고 있었다. 만지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가슴은 고름을 끄르자마자 불쑥 튀어나왔다.
"흐흐흐흐......."
이쯤 되자 노련한 화화태세도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서
둘러 그녀의 옷을 벗겨 냈다.
입으로는 음양도인술의 구결을 외우면서 그의 손은 옥사향의 나삼
을 하나하나 벗겨 내갔다. 마침내 비단결같이 부드럽고 옥같이 투
명한 옥사향의 나신이 신비의 허물을 벗고 색마의 눈 앞에 아무런
저항감없이 드러났다.
여체의 신비는 벗기면 벗길 수록 더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옥사
향의 나신은 가히 마력을 수반하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은 작지도
크지도 않았다. 만지면 터질 듯 묻어날 듯 뽀얀 가슴은 분홍빛 돌
기를 중심으로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부드럽게 흘러내린 아랫배의 곡선을 따라
앙증스런 옹달샘 아래를 살풋이 가리고 있는 한 겹의 비단천 뿐이
었다.
"흠."
화화태세는 호흡이 급박해지는 것을 느끼며 일단 손을 뗀 후 자신
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욕망
을 억누르며 단전 아래의 뿌듯한 기운을 즐기며 비술을 펼칠 준비
를 했다.
그때였다. 그는 뒷덜미가 따끔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 감촉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가? 갑자기 고개가 움
직여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억! 이럴 수가?'
그는 전신에 식은 땀이 주르륵 흘렀다. 강호경험이 풍부한 그는
직감적으로 누군가 방해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는 목덜미가 마비된 것 외에는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는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다음 순간 그는 신형
을 전광석화처럼 날리고 있었다.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창문을 부수며 수평으로 날아갔
다. 그때 그는 보았다. 하나의 그림자가 지붕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것을!
그는 판단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 달아날 것인가, 아니면 상대방
과 싸울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찰라지간에 그는 후자를 택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과신했다. 뿐만 아니라 막 입 안에 넣으려 했
던 먹잇감(?)을 두고 달아나기에는 너무나 큰 미련이 남았던 것이
다.
그는 지붕 위로 날아 올라갔다. 그곳에는 한 명의 장발괴인이 우
뚝 서 있었다.
그는 바로 상심인이었다. 마침 옥사향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
다가 화화태세의 수작을 발견한 것이었다.
"웬 놈이냐?"
화화태세는 상심인을 보자 불쾌한 듯 외쳤다. 그러나 내심 그는
아차! 하고 후회했다. 막상 지붕 위로 올라선 후에도 목덜미의 마
비가 여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방의 입에서는 소름이 끼치도록 차가운 음성
이 흘러 나왔다.
"네가 살 길은 한 가지 밖에 없다. 그것은 너의 두 눈알을 뽑고,
더러운 한 쌍의 손목을 남기고 가는 것이다."
상심인의 음성에는 억양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으으....... 지독하게 차가운 놈이다!'
기가 꺾인다는 것은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다. 화화태세는 상대방
에게서 완전히 압도되는 자신을 느꼈다.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
졌고, 물러날 길은 없었다.
"흐흐흐! 꿈을 꾸고 있구나? 이 어르신 앞에서 허튼 소리를 하다 니......."
말을 하면서 그는 암중으로 준비했다. 그와 같은 인간은 틈만 나
면 암수를 쓴다. 그는 위기를 느끼자 선공(先攻)하는 것이 최선이
라는 것을 판단했다.
그는 슬며시 소매 속에 늘 감추어 두고 다니는 추혼독사(追魂毒
砂) 한 줌을 움켜쥐며 기회를 노렸다.
"이 어르신은 무명인은 상대하지 않는다. 이름을 밝혀라!"
상심인은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고 있었다. 그의 장발은 순백색이
어서 몹시 괴이한 느낌을 주었다. 장발 사이로 얄핏한 입술이 움
직였다.
"네게 비장의 수가 있다면 지금 당장 쓰는 것이 좋다. 아니면 영
원히 기회가 없을테니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화화태세는 전시에 소름이 쭉 끼치는 것을 느
꼈다.
'으으! 보통 놈이 아니다. 오늘은 길(吉)보다는 흉(凶)이 많을 것
같구나. 그렇다면.......'
그는 신형을 움직였다. 그 순간 그는 손에 움켜쥔 추혼독사를 뿌
려내고 있었다.
쏴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독모래가 허공을 뒤엎었다. 그것은 방원
삼 장을 뒤덮어 여간해서는 피하기가 어려웠다. 화화태세는 실로
교활하기 그지없는 작자였다. 그는 이미 상대가 고수라는 것을 판
단하고 독모래를 뿌린 순간 오 장 밖으로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그는 다른 것은 몰라도 경공(輕功)만은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독히도 운이 없었다. 그의 그런 행동은 다른 사람
에게라면 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방의 능력은 그의 상상
을 뛰어넘고 있었다.
"갈 때 가더라도 두 가지만은 두고 가라고 했다."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분명 상대방은 독모래 속에 갇혀 있어야 했
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그 음성은 그의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것이 아닌가?
'헉!'
화화태세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놀랬다. 그 순간 그의
입에서는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악!"
그는 분명히 보았다. 눈 앞이 무엇인가 어른거리는 순간 상대방이
앞을 가로막았으며 막 손을 뻗어 장력을 날리려는 순간 자신의 손
목이 불에 덴 듯 화끈해지는 것을.
그 순간 손목이 뎅겅뎅겅 잘려 허공에 춤을 추면서 우박과도 같은
피를 뿌렸다. 그것이 그가 최후로 본 풍경이었다. 손목이 잘려 피
비가 뿌려지는 순간 그는 눈 앞이 캄캄해진 것이었다.
그의 한 쌍의 눈알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안구(眼球) 째 뽑혀져
나간 것이었다.
그는 찰라지간에 두 손목과 눈을 잃고 중심을 상실한 채 허우적거
리다가 지붕으로부터 아래로 뚝 떨어지고 말았다.
사람은 생명에 대한 끈질긴 집착을 지니고 있는 법이다. 화화태세
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바닥에서 벌떡 일어선 뒤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앞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좌충우돌하면서 미친 듯이 달려가 잠시 후에는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다.
"......."
상심인은 지붕 위에 그대로 서 있었다. 달빛을 받은 그의 모습은
일견 괴기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 순간 허탈한 기
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붕 위에는 잘려진 한 쌍의 손이 떨어져 있었고, 발치에는 뽑혀
져 나온 두 개의 안구가 뒹굴고 있었다. 게다가 기와는 온통 선혈
로 물들어져 있었다.
"또... 사람을 상하게 했다."
상심인의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 나왔다. 문득 그는 신형을 날려
부서진 창문으로 날아 들어갔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다.
상심인은 화화태세를 놓아준 사실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었다. 그
것은 옥사향이 지독한 약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
다.
그가 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 옥사향은 이미 이성을 완전히 상실하
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옥체의 마지막 남은 헝겊마저 벗겨 버
린 채 온몸을 비틀며 신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종류의 춘약에는 해약이 따로 없었다. 다만 격발된 음기를
식혀주는 것만이 해독법이었다.
억제할 수 없는 춘성에 의해 온몸이 불덩이가 된 채 나신을 비트
는 여인을 보며 상심인은 가슴이 답답해지고 있었다. 옥사향은 전
신의 혈관이 부풀어 올랐으며 뜻을 알 수 없는 신음을 연발하고
있었다.
"으음....... 제발......."
그녀는 촛점이 흐트러진 눈으로 상심인을 바라보며 애원하고 있었
다. 게다가 두 손으로 자신의 나신을 연신 애무해대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정말 고혹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항주 제일의 미인이자 천하의 귀공자들이 천만금을 싸들고 군침을
흘려대는 여인이 알몸으로 온몸을 비틀어대는 광경은 그야말로 대
단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상심인은 온통 괴로운 마음 뿐이었다. 그는 여인을 그대로
방치해 둔다면 어찌될 것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만일 그녀의 음
성을 풀어주지 않는다면 전신의 맥(脈)이 터져 비참한 죽음을 당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아아!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내심 탄식하던 그는 마침내 옥사향을 향해 다가갔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그가 다가가자 옥사향은 몸을 달팽
이처럼 움츠리며 두려움에 떨리는 음성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다... 다가오지 말아요. 다... 당신 무엇 하려는 거죠.......?"
옥사향은 경황 중에도 의식이 잠깐 돌아온 것 같았다. 그녀는 방
어의 자세를 취하면서 침상 위에서 몸을 잔뜩 옹송그렸다.
"안심하시오. 난 다만......."
상심인은 부드럽게 말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갑자기 옥사향
이 베개 밑에서 한 자루의 비수를 꺼내더니 자신의 하얀 목을 세
차게 찔러가는 것이 아닌가?
"앗!"
상심인은 경악성을 발햇다. 날이 파랗게 선 비수가 그대로 옥사향
의 목을 찔러갔다. 그러나 그보다 빠르게 그의 손이 움직였다.
땅!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비수가 날아갔다. 상심인의 지력
(指力)이 극적인 순간에 비수를 날려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옥사향의 사슴같이 가느다란 목에는 선혈이 뿜어지고 있었
다. 간발의 차이로 비수가 목을 찌른 것이었다.
"사향!"
상심인의 입에서 당황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모로 쓰러지는 옥사
향의 몸을 다급히 부둥켜 안고 있었다.
천행(天幸)이었다. 힘이 모자랐던 탓이었는지 목의 상처는 그다지
깊지 않아 다만 한 푼의 깊이로 상흔이 났을 뿐이었다.
"사향! 내가 잘못했소!"
상심인은 온통 후회로 가득찬 외침을 발하며 옥사향의 상처에 입
술을 가져갔다. 입을 댄 순간 그는 비릿한 선혈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랑하는 정인(情人)의 익숙한 향기였다. 상심인의 장발로
뒤덮인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번져 나왔다.
그는 오랫동안 옥사향의 목에서 입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상공....... 말해 주세요. 저의 천기(天麒)....... 그 분은 정말
돌아가셨나요......?"
상심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옥사향은 그의 가슴에 안긴 채 얼굴이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 었
다. 그것은 그녀의 인내력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었다.
"소저, 용서하시오. 그것은......."
상심인은 말을 멈추었다. 옥사향의 입에서 한 가닥 검은 피가 흘
러내렸기 때문이다. 그는 놀라 크게 부르짖었다.
"안돼......!"
상심인은 옥사향의 턱밑 천창혈(天窓穴)을 눌렀다. 막 혀를 깨물
던 옥사향은 턱이 마비되어 버리자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올
려다 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이 갑자기 크게 떠지고 있었다. 상심인이 얼굴을
뒤덮었던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기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기 때
문이다.
"바보같은 사향....... 내가 누구인지 보구려."
옥사향은 뭐라 말하려 했으나 말이 되어 나오지 못했다. 천창혈이
짚혀 입을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뭐라 표현할 길 없는 희열의 빛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금세 그렁한 눈물이 고였으며 눈물은 자줏빛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 내렸다.
상심인의 드러난 얼굴이야말로 그녀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정 인
유천기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상심인은 바로 몽매에도 잊지 못했
던 백화장의 소장주였던 것이다.
'당신이었군요.......'
긴장이 풀리자 그녀는 의식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끼며 시야가 뿌
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