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정태성 목사
<로마서 15장 6절>: 교회의 정체성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근본적인 변화를 받은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곧 신앙의 변화를 말합니다. 그 신앙의 변화란 율법을 지키는 신앙에서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의 신앙의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변화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복음을 믿는 신앙으로의 변화는 ‘존재의 변화’, 혹은 ‘정체성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변화를 겪은 인물들이 사도들입니다.
이 존재의 변화를 ‘자기 전체성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 자기 정체성은 철저하게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존재를 말합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근본적으로 변화를 받은 신앙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반드시 변화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만약 예수를 믿고, 그 예수의 복음을 믿는다고 한다면 그는 반드시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자기 변화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 세계의 신앙관은 율법을 벗어나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가진 존재성, 즉 정체성을 중심으로 신앙을 하는 새로운 형태로 신앙이 바뀌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지키는 것이 아닌 정체성으로부터 발현된 존재성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사도들이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명령하고 권면한 말씀들입니다. 이 말씀들은 구약의 율법과는 그 성격을 완전히 달리합니다.
사도들의 명령이나 권면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을 가진 자들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은혜의 산물입니다. 사도들의 명령이나 권면은 율법과 같이 대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존재성, 그 자체의 움직임입니다. ‘움직임’ 그 자체가 사도들의 명령과 권면을 지켜 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발생된 자기 정체성은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결국 예수 믿음이란 한낱 허상이고, 추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분명한 자기 정체성이 곧 신앙의 본질이고, 근본이며 그것이 믿음의 삶이고, 영생의 삶입니다. 그것을 분명하게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이러한 분명한 인식을 가졌다면, 그래서 그러한 자들이 모였다면 그 곳이 바로 두 세 사람이 모인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란, 개인의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개인 정체성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진 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실상 교회의 정체성은 개인의 정체성의 연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 사람의 개인과 교회는 동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 혹은 생활은 각 개인의 삶이 아니고, 생활이 아닌 교회의 지체로서의 삶이고,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아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흔한 오류들이 바로 이러한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에 대한 빈약한 인식입니다. 이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교회관’입니다. 교회를 단지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이는 곳으로 압니다. 이것 외에 이 사람들에게는 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그릇된 자세입니다. 말씀, 곧 복음을 듣는다는 것은 자기 정체성이 발현됨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의 증인됨으로 사는 것이고, 그 삶은 사도들의 명령이나 권면이 실행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개인이 살고 있고, 그 개인을 모여 교회로 이루어졌다면 그 교회 또한 집단적으로 그 삶을 확대해 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실제적으로 개인의 정체성들이 폭발하는 곳입니다. 각 개인의 존재성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정체성이 폭발하는 것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복음을 듣기 위해 모이는 단순한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란 예수께서 자기 피 값을 지불하고 산 자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핏 값이 나와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한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제 다시 ‘교회’로 모이실 때는 이 사실을 인지하고 오시기 바랍니다. 오시되, 복음을 듣기 위해서만 오시지 마십시오! 복음을 행하기 위해 오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복음을 듣기 위해서가 아닌, 오직 복음을 행하기 원하는 분들만 오시기 바랍니다.
교회? 예수의 핏 값이 나와야 하는 곳!
여러분들이 교회로 올 때 그것을 신중하게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왜? 교회를 가는가? 만약 여러분들이 복음을 듣기 위해서만이 아닌, 복음을 행하기 위해 오시겠다고 하면, 우리는 비로소 사도바울이 말하는 ‘한 마음과 한 입을 가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한 마음과 한 입을 가진 교회가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수단이 있는데 그 수단이 바로 ‘한 마음’과 ‘한 입’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사도바울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반드시 한 마음과 한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 한 마음과 한 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왜? 한 마음과 한 입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수단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음과 한 입은 우리의 마음과 입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 마음과 한 입은 우리의 마음이 아니라 그것은 ‘예수의 마음’과 ‘예수의 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마음과 한 입은 곧 ‘예수의 마음과 입’입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은 이렇듯 ‘예수의 마음’과 ‘예수의 입’입니다. 교회란 그 마음과 그 입을 가진 자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러니 예수의 마음과 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은 교회에 나올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 예수의 마음과 예수의 입을 가진 자들이 모이는 곳!
여러분들이 한 마음과 한 입을 가지고 있다면 다시 한 번 교회에 나오는 의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혹여 그것을 잘 몰라 판단하기 어렵다면 우리 ‘푸른내일교회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성도의 정체성과 성도의 삶, 곧 사도들의 권면들을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한 마음과 한 입으로 교회에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교회에 나오시는 분이 있다면 그 때부터 분명하게 한 마음과 한 입을 발산해야 할 것입니다. 그 분명한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모이는 곳이지 결코 복음을 듣기 위해서만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이 점을 잘 인식하시고 한 마음과 한 입으로 교회에서 만납시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