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서쪽 강점 공격
서쪽 강점 부근의 지형은 도로 위쪽인 북W고 도로보다 약 250m 가량 높은 산이 능선을
형성하여 우뚝 솟아있고, 도로 아래쪽인 남쪽은 깊은 계곡과 더불어 저지대가 멀리 넓게
펼쳐져 있었다. 서쪽강점 지역은 비가 내릴 때 도로 위쪽 상에서 내려오는 물이 도로 밑을
통해 도로 아래 계곡 쪽으로 흘러내려 갈 수 있도록 큰 암거(배수로)가 도로 밑에 매설
되어 있었는데,적은 분명히 이 암거를 중심으로 그 부근에 은거하고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총 한방 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전혀 동정이 없어 마치 적이 없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아 폭파된 지점이 분명히 적에 의해 점령 내지는 엄호되고
있을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제10중대 및 제11중대를 도로를 내려 볼수 있는
북쪽 고지에 배치되도록 하고 제10중대는 강점으로부터 서북쪽 산허리에 배치하여 양개
중대로 하여금 하향식 공격 작전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이 무렵 제1대대의 전황은 제1중대 기지 바로 위쪽에 위치한 638고지를 향해
공격할 때마다 적의 치열한 저항에 공격이 저지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공격부대의 진출이
저지되면 일시 후퇴 한 후 다시 맹렬한 포병에 의한 공격준비사격 및 팬텀기 편대에 의한
항공폭격을 실시한 후 다시 공격을 시도하는 것이 매일같이 반복되고 있었다.
또한 제2대대의 전황은 안케패스 남쪽으로 멀리 연해있는 여러 개의 작은 고지들을 따라
638고지를 향해 공격 중에 있었으나, 638고지 남쪽에서 적의 완강한 저항에 당면하여
공격이 저지된 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하에서 제3대대는 서쪽 강점에 대한 작전을 실시하게 되었으나,
적의 정확한 규모와 배치상황을 확실히 알지 못하였음으로 우선 안케패스 정상 부근의
임시 진지에서 대기중이던 제11중대로 하여금 19일 새벽 강점에 대해 탐색전인 공격을 실시
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제11중대는 다음날에 실시할 여명 공격을 위해 18일 밤
임시진지를 출발하여 은밀히 강점 부근으로 내려와 날이 밝기를 기다리다 날이 밝기 직전에
여명공격릉 개시하여 강점을 향해 더 한층 접근해 갔다.
그리고 얼마 가량 전진하였을 때 선두소대가 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거진 수풀
사이에서 적의 갑작스런 일제 사격을 받고 분대원 2명이 전사하였으며, 부상자도 몇 명이
발생하는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로서 개략적인 적 위치와 규모를 파악하게 되었으며
적의 사격규모로 보아 제11중대 공격방향에 배치된 적은 약 1개 소대 정도로 추측되었다.
선두 소대에서 갑작스런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자 중대도 일단 공격을 멈추고 사상자 수습을
하고 나서 차기 공격을 위해 북쪽 산의 5부 능선 부근까지 철수하였다.
이미 적은 사전에 유리한 지형 지물을 점령하여 교묘히 위장을 하고, 아군의 접근을
은밀히 지근거리까지 유인한 후에 기습적인 일제사격을 불과 몇 분 동안 가한 후,
침묵을 지키는 전법을 사용하였다. 특히 적 B-40 적탄통의 포탄이 아군 주변에서
폭발할 때에 발생하는 검광과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작렬음이 아군 병사에 적지 않은
심리적 영향을 주고 있었다.
따라서 적의 일제사격이 멈춘 후의 보고에 의하면, 주변에는 무성한 수풀뿐이며,
적의 위치는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후의 작전에서도 이런 보고는 자주 있었다.
그만큼 적의 사격 통제와 위장술은 훌륭하였으며, 아군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다. 따라서
나는 11중대가 공격하는 서북쪽에서의 공격방향이 수월치 않음을 판단하고,
제10중대로 하여금 동북쪽에서부터 강점을 향해 공격토록 하였다.
강점 부근의 지형은 애당초 도로공사를 할 때 산허리를 깎아 도로를 구축한 지역이어서
도로 북쪽면은 도로에 연해서 4-5m의 절벽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도로의 남쪽 역시
도로에 연하여 급경사가 형성되어 있는가 하면, 강점부근은 도로가 U자형으로 구부러져
돌아 나오는 지점인데다가 암거 위 아래로는 깊고 협소한 계곡이 형성되어 있었다.
특히 암거 아래쪽으로부터의 강점에 대한 공격은 생각할 수도 없는 지형으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강점에 대한 공격은 불가피하게 북쪽으로부터 하양식 공격을 하거나 아니면
19번 도로를 따라 동W고에서부터 공격하는 방법과 또 하나는 19번 도로를 따라
서쪽에서부터 내려오면서 공격하는 방법뿐이었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 때문에
제10중대로 하여금 동쪽에서 공격하도록 명하였다.
제10중대의 공격시는 1개소대로 하여금 동쪽에서부터 도로를 따라 강점으로 공격하고,
중대는 강점 동북쪽으로부터 강점을 압박하고 있었는데 도로를 따라 공격하는 소대가
도로와 연하여 있는 절벽과 도로아래로의 급경사로 인해 부득이 도로를 따라가며 공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도로를 따라 공격하다보니, 강점에 접근도 하기전에 원거리에서
적에게 완전 노출됨으로서 완강한 적의 집중 사격을 받게되어, 공격이 저기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방향의 공격도 매우 곤란함을 알게 되었다.
이때 중대는 도로를 따라 공격중인 소대를 엄호하거나, 아니면 동북쪽으로부터 병행공격을
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도로 자체가 4-5m의 절벽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도로 북쪽에
위치한 중대 쪽에서는 도로 및 강점 지역이 사각이 되므로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따라서 소대의 공격을 전혀 관측할 수 없었고, 동시에 소대의 공격을 엄호할 수도 없었다.
한편 중대는 동북쪽에서 강점을 향해 하향식 공격을 실시하면, 이 역시 엄폐 및 은폐된
적으로부터 맹렬한 사격을 받아 공격이 용이치 않았다.
즉 아군의 공격기동은 적에게 노출되는 반면 적의 위치는 그들의 교묘한 위장술로 인해
아군이 발견해 내기가 매우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아군의 공격방향이 변경될 때마다
적은 강점 주변에서 그들의 배치를 적절히 재조정하여 응전하고 있음이 분명하나, 우거진
수풀로 인하여 그 배치 상황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다시 말해서 강점 주변 도로가
단애로 형성되어 있음으로 인해서 제10중대 지역에서나 제11중대 지역에서나 다 같이
강점 주변이 관측이 안 되는데에 큰 애로 가 있었던 것이었다.
이에 따라 그 다음날이 20일에 포병의 공격준비 사격을 실시한 후, 제10중대 및
제11중대로 하여금 하향식 공격을 동시에 실시할 것을 결심하고, 연대에 포병의 공격준비
사격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638고지의 탈환작전이 치열하다보니, 포병의 화력은
오로지 638고지에 집중되었고, 강점에 대한 포병 지원사격은 전혀 승인되지 않았다.
결국 대대는 지리산 기지에 배치된 2문의 81mm 박격포와 백두산 기지에 배치된 4.2“ 중
박격포 2문으로 공격준비사격을 실시하였으나, 탄약의 제한으로 충분치 못한 사격을
실시한 후, 13:00시경 2개 중대로 하여금 동시 공격을 실시케 하였다.
이에 따라 제11중대는 제3소대를 강점 서쪽 도로 쪽으로 우회시켜 도로에 연해서
강점을 향해 내려가며 공격을 개시하였으며, 제10중대는 어제 시도하였던 도로를 연한
공격이 불가하기 때문에 산중턱에서 강점을 향해 하향식 공격을 실시하게 하였으나,
제10중대의 공격을 부진하였다. 반면 도로 쪽으로 우회한 제11중대 제3소대는 도로 바로
아래쪽으로 다라 강점으로 접근하고, 오로지 공터위로 돌격하여 강점으로 돌진하는
방법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 무렵 제11중대 제2소대도 강점 서 북방 산쪽에서 역시 강점 약 100m전방까지
전진하였으나, 노출지역으로 더 이상 전진이 곤란한 형편이었다. 이에 제11중대
제2소대로 하여금 엄호 사격을 실시케 하고, 제3소대가 돌격을 감행하도록 한 결과
제3소대의 일부병력이 동료들의 엄호사격하에 ‘돌격 앞으로’하는 함성과 함께 공터위로
올라가서 강점을 향해 용감히 돌진하여 갔다.
그러나 불과 몇 m 돌진하는 순간, 적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사격을 가해왔다.
적은 최후저지사격의 일환으로 기관총을 위시해서 B-40 및 AK소총의 집중사격을 맹렬히
가해왔다. 이때 진두 지휘하던 분대장이 총상을 입고 그 자리에 쓰러졌으며,
적의 치열한 사격으로 인해 계속적인 돌진이 불가하게 되자, 기타 분대원은 다시 후사면으로
물러섰다. 부상당해 쓰러져 신음하는 분대장을 구출하려고 2, 3차례 시도하였으나,
그때마다 적의 맹렬한 사격이 가해져오는 바람에 도저히 분대장에 접근할 수가 없었으며,
드디어 소대장이 몸소 구출하러 접근하다 소대장(이상호 중위)마저 적탄에 맞아 쓰러졌다.
그 후 분대원의 비장한 노력으로 간신히 소대장을 구출해내는데 성공하였으나,
좀더 앞에 쓰러진 분대장을 구출하는데는 실패했다. 그러던 중 얼마 안 있어서 처음으로
적 82mm 박격포탄이 공터 및 제3소대 주변에 낙하하기 시작하였으며,
불행히도 부상당한 분대장은 동료들의 결사적인 구출 노력에도 보람없이 바로 동료들의
목전에서 적 박격포의 직격탄을 맞고 애석하게도 산화하고 말았다.
이때 대대 전술 지휘소가 위치한 지리산 기지에서도 적 박격포 발사음을 분명히
들을 수가 있었고 그 발사음은 지리산 기지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는 도로 남쪽 저지대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이 저지대는 적의 장악하에 있는 지역으로서 적의 박격포는 82mm 박격포 2문 정도로
판단되었으며, 이는 멀지도 않은 눈 아래 저지대이므로 정확한 위치를 찍을 수 있을 것
같은데도 그 저지대가 638 고지에 연하여 있는 긴 능선과 강점 북쪽에 동서로 연하여 있는
능선, 그리고 지리산 기지 등으로 에워 쌓여있는 넓은 분지로 되어 있어 박격포의
발사음이 주변 일대의 산으로 울려 퍼지는 관계로 아무리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보아도
포성만 울려 퍼지고 있을 뿐 적 포진지를 정확히 찍어낼 수가 없었다.
다만 막연하게 예상되는 적 박격포 진지에 지리산 기지의 박격포로 하여금 제압사격을
가하였으나 여전히 적 박격포 사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또한 우거진 수목으로 인해
적이 포탄을 발사할 때 생기는 포연도 전혀 목격되지 않아 적 박격포를 제압할 수가 없었다.
제11중대는 이러한 상황하에서 계속 공격은 아군의 희생자만 속출하게 될 것으로 판단
하고, 일시적인 철수를 요청하게 됨에 따라 이를 승인하였고 제11중대의 양개소대가
안전거리까지 철수하는 것을 확인하고, 대대 보유 81mm 및 4.2“ 박격포로 하여금
강점에 대해 집중 사격을 가하였다.
이와 같이 서쪽 강점 공격이 난관에 봉착하게 되다보니 예하 부대로부터 병사들의 사기와
관련하여 포병 지원사격을 강력히 호소하여 왔고, 대대는 연대에 강력히 요구하게 되었다.
연대에 계속적으로 포병 지원사격을 요청함에 따라 그 다음날 비로소 포병 지원사격이
승인되었으며, 이로서 서쪽 강점에 대한 포병의 지원사격을 처음으로 제공받게 되었다.
다음날 포병 사격지원을 위해 그 이전 강점 부근으로 압축 배치되었던 제10 및 제11중대를
아군포탄에 의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안전지대까지 철수시킨 다음 상당량의 공격 준비
사격을 실시하고나서 다시 양개 중대로 하여금 주간공격을 실시케 하였다.
이때는 충분한 포병 사격을 실시한 관계로 작전중인 병사들의 사기가 높아져 있었다.
제10 및 제11중대는 다시 강점을 향해 압박을 들어가기 시작하였으며,
점차 강점 가까이 접근해 가자 제11중대는 지역에 적 박격포탄이 낙하하기 시작하였고,
적은 역시 어제과 같이 도로 남쪽 저지대쪽에서 발사하고 있었다.
이때 지리산 기지의 대대 전술 지휘소 요원이 기지 위에 올라가 적 박격포 위치를
발견하려 예의주시 하였으나 아무도 정확한 위치를 알아 낼 수가 없었다.
따라서 개략적인 위치를 연대에 보고하고, 포병의 집중사격을 요청하여 상당량의 포탄을
퍼부었다. 그러나 적의 박격포는 포병사격 중에만 침묵을 지켰을 뿐 포병사격이 끝나면
또 다시 사격을 계속하였다.
그러한 중에서도 양개 중대는 계속 강점을 향해 압박해 들어갔으며,
제11중대는 공격지점까지 도달하여 제10중대와 병행 공격하기 위하여 제10중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제10중대의 기동이 완만하여 시간은 자꾸 흘러갔다.
추측컨대 제10중대는 대대에서 지정한 산중턱의 철수선에서 대기하지 않고 멀리 능선
윗부분까지 철수하여 있었던 것 같았다. 따라서 제10중대에게 신속한 기동을 독촉하였으나,
결국 4-50분이 경과한 후에야 공격대형이 갖추어졌으며, 공격 개시 얼마 후 요란스러운
총성과 함께 피아간 치열한 사격전이 전개 되었다.
공격전 상당량의 포사격을 실시하였는데도 적에게 피해를 주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제10중대장으로부터의 무전은 제11중대가 제10중대를 향해 사격을
가하고 있다고 다급하게 송신하여 왔으며, 제11중대의 사격을 중지시켜 달라면서
제10중대장의 정신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따라서 제11중대장을 긴급 호출하여 이 사실을 전달하니 그런 일이 없다는 보고였다.
제10중대 지역에서 B-40이 작렬한 것을 보아 적의 사격이 틀림없다하니까 적으로부터도
사격을 받았으나 제11중대도 제10중대쪽으로 사격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양개 중대의 배치 상황을 미루어보니 제11중대는 강점 가까이 서북쪽에 위치하고
제10중대는 강점 가까이 동북방향으로 제11중대보다는 높은 위치에 산개하고 있어
착각일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극한상황의 전투지역에서는 본의 아니게
의외의 장소에 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므로 제11중대로 하여금 일체의 사격을 하지 말고
대기하라고 지사하고 나서 제10중대에게만 재 사격을 실시토록 하여 사격을 재개하니
적도 응사 하였으며, 잠시 동안 사격전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제10중대 보고를 들으니 처음 보고와 같은 보고였다.
그래서 제11중대장에게 사격하지 말라 지시하였는데 사격하였는가 물으니
전혀 사격하지 않았다는 보고였다.
이와 같이 강점의 적은 암거를 중심으로 하여 암거 상하 내지는 동서로 아군 공격 방향에
적절하게 수시로 진지 변환하면서 지형의 특성을 기술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반면에
아군의 공격 방향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가 하면 도로변의 닫는 강점 점령에 지대한
장애물이 되고 있었다.
작전이 종료된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적은 도로 밑의 암거(배수로)를 아군 포사격시
대피호로 이용하고 있었으며 그 속에 들어가 있는 한 아무리 치열한 포사격을 실시할지라도
적에게는 전혀 피해를 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적은 암거 양단 출입구를 사낭(샌드백)으로 절반 정도 막아놓고
포사격이 가해지면 전원이 그 속으로 대피하고 있다가 포사격이 멈춰짐과 동시에 신속히
외부로 나와 아군 공격 방향에 따라 재배치한 후 기습 공격을 가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 암거는 체구가 외소한 월남인 정도는 400-500명 수용하고도 남을 정도로 대단히
큰 암거(배수로)였고 적은 이 암거를 통하여 도로 위 아래로 은밀히 이동하면서
진지 변환을 하며 저항했었다. 이상 기술한 바대로 이날 작전은 묘하게 전개되었으므로
공격을 중지하고 차후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병력을 약간 뒤로 철수시켰다.
이와 같이 강점 탈환 작전이 예상외로 지연되자 강점 주변 일대에 대해 화공을 실시하여
우거진 수목을 소각한 후 공격할 목적으로 강점 일대에 대해 항공력에 의한 네이팜탄 투하를
건의 하였으나 “화공은 월남 정부의 금지 사항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실시할 수 없다”는
통보여서 야간공격을 실시하기로 결심하였다.
야간 공격에 앞서 도로남쪽 저지대로부터 강점으로 투입되는 적의 증원병력을 저지하고
또한 강점의 적이 도주시 퇴로를 차단할 목적으로 대대 예비로 있던 제9중대를 강점쪽 계곡
부근으로 이동케 하여 강점에 대해 완전 포위 형식으로 배치케 하였으나 남쪽 저지대는
적 장악하에 있었으므로 자치 잘못하다가는 적에게 역포위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염려가
되기도 하였다.
제9중대장 생각도 같은 생각이었음인지 도로 남쪽 전체에 대한 완전 포위는 곤란하다는
보고였고 제9중대는 도로 남쪽 적 접근로를 통제할 수 있는 지역에서 주야간 매복을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제9중대의 배치 지역에서 강점을 향해 57mm 무반동총을
사격하기 시작하였는데 제9중대장 보고에 의하면 “암거 아래쪽으로 암석 절벽이 보이는데
그 절벽 하단부에 적진지가 보인다”하여, 여러 발 계속 사격을 가하면서 명중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약 10여 발 사격을 가하고 있을 무렵 적 박격포가 또 다시 사격하기 시작
하였으며, 그 포탄은 57mm진지 부근에 낙하하기 시작하므로 아군의 57mm 사격은
계속할 수가 없어 사격을 중지하였다. 그 후 제9중대는 주야간 매복에 들어가 적 증원 및
퇴로 차단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강점 공격시 포사격 종료와 동시에 즉각 공격을 개시해야 목표 점령이 용이하겠으나,
안전지대까지 철수하였다가 다시 강점으로 접근하는 시간이 오래 소요됨으로서 적으로
하여금 재배치의 여유를 주는 결과가 되어 사실상 포사격의 효과를 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강점 지근거리에서 엄폐하여 대기하다 공격준비사격 직후 즉각 공격을 해야만
공격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헬기를 이용하여 이동식 벙커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반원형으로 된 두터운 철판으로 만들어진 암거 구축용 대형 칼바이트를, 제11중대 지역에
공수 하였다.
따라서 제11중대는 강점에서 멀리 철수하지 않고 강점 주변에서 칼바이트 속에 들어가
아군포 지원 사격에 대비하여 공격준비 사격이 끝나는데로 즉각 공격하여 목표를 조기
점령한다는 굳은 결의를 굳히고 칼바이트를 이용 임시 벙커 구축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11중대장으로부터 다급한 무전이 들려왔다. 아직 칼바이트 벙커 작업 중인데
왜 포사격을 실시하였느냐는 내용이었다. 고로 대대에서 포사격을 청한 일이 없다고
답변하고, 긴급히 연대에 포사격 실시 여부를 문의하니 포사격을 실시하지 않았다는
답변이었다. 제11중대 지역에 낙하하는 포탄의 위력이 박격포탄보다 훨씬 강한 포탄
이었으므로 적 122mm 로켓포 사격으로 판단되었으며 다행히 수발 낙하로 끝이 나서
아군의 피해는 없었다.
대대는 19번 도로 개통의 중대한 임무를 띠고 작전 중에 있으나,
예상외로 날짜가 하루 이틀 점점 지연되며 여러 차례의 주간 공격에도 성과가 없었음으로
22일 밤에는 야간 공격을 실시하여 기필코 강점을 탈취할 것을 결심하고 야간 공격 준비에
착수하였다. 이번 야간 공격에는 화염 방사기 및 최루성 가스도 사용할 것을 계획하고
연대에 화염 방사기의 지원을 요청하니 연대 화학지원소대로부터 2대의 화염 방사기가
사수와 함께 헬기에 의해 지리산 기지로 공수되어 왔다.
따라서 이를 제10중대에 배속지시하고 하사관 1명을 차출하여 제10중대 지역으로 투입
시켰으나, 얼마 후 보고에 의하면 화염 방사기의 압축 공기가 방출되어 사격할 수 없다는
보고를 접하고 이것이 웬일이냐 하고 연대에 항의하니 연대에서는 출발 전 세부 점검을
필하였으며 그때는 이상이 없었다는 회신이었다. 이는 틀림없이 헬기로 공수도중 화염
방사기 사수가 고의로 화염 방사기의 압축 공기를 방출 시켰을 것으로 단정하고
화염방사기 사수를 군법회의에 회부시킬 것을 건의하였다.
이 때문에 화염 방사기의 공격은 수포로 돌아갔다. 당시 각 중대에는 5갤런 휘발유통
크기만한 최루 가스 발사통을 2~3개 가량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제10중대에게
이 최루 가스를 발사하여 적들이 눈을 못 뜨고 당황할 때 즉각 공격 점령하도록 명령하였다.
※※※ 맹호 기갑연대 제3대대장의 증언기록은 여기에서 멈췄습니다.
///////////////////////////////////////////////////////////////////////////////////////
안케패스 작전중에 장렬하게 전사한 故 임동춘 대위의 유품 일기장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연약한 인간이다. 선을 행하고자 할 때 용기를 잃는 수가 있고,
옳지 않는 것을 보고도 뛰어 일어설 힘이 없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나에겐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신다. 나에게 착하고 바르게 살려는 뜻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내게 힘을 주시고 도와주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