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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1:21 메시야의 이해 본권 막 서론
1:1-17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본서는 유대인을 1차 독자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 성경에서 여러 모양으로 예언되어 왔던(창 3:15; 12:3; 17:19; 민 24:17; 시 45:6,7; 사 9:7 등) 다윗의 왕통을 이은 매시야(Messiah)이자 온 인류를 구원으로 이끌 만왕의 왕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기록되었다. 이에 메시야 되신 예수의 사역을 소개하기 전에 그의 탄생과 유년 시절을 1,2장에서 먼저 소개하고 있다 그중 본문은 예수가 구약 예언의 성취인 다윗의 후손임을 혈통적으로 밝히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기사를 서술하기 전에 먼저 그의 족보(族譜)를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마태의 족보는 아브라함에서부터 요셉까지 42세대로 나타난다. 반면에 예수님의 족보를 마태와는 다른 각도에서 기록하고 있는 누가의 족보(눅 3:23-38)는 55세대로 구성되었다. 마태와 누가의 예수 족보 기록의 차이와 특징에 대해서는 본 장 자료노트를 참조하라. 결국 두 족보 사이에는 13세대, 시간상으로 약 400년의 차이가 난다. 이는 마태가 유대인의 족보 기록 관습에 따라 많은 사람을 생략한 까닭이다. 유대인의 족보 기록 관습에 대해서는 대상 6장 자료노트, '히브리인들의 족보 기록 방법'을 참조하라. 하여간 마태 족보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는 족보를 14대씩 3기로 나누어 기록했다는 점이다. 즉 마태는 이스라엘 역사상의 전환기적 사건이나 인물을 중심으로 족보를 3기로 나누어 편집했는데, 이스라엘 역사상 제1기에 해당하는 아브라함에서부터 다윗까지는 축복과 약속, 그리고 인내의 시기라 할 수 있으며, 제 2기에 해당하는 다원에서부터 바벨론 포로생활까지는 약속의 성취의 시기, 그리고 제3기에 해당하는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부터 예수까지는 쇠퇴와 회복, 대망의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각 시기의 첫 이름과 마지막 이름은 그 시기를 열고 맺는 역할을 하는데 그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은 대망의 시기에 대한 성취의 기점이 된다 할 것이다. 결국 본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약속된 메시야임과 아울러 다윗 왕가의 후손으로서 혈통적 법적 정통성(正統性)을 지니신 분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한편 신약 성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에서 구약과 직접적으로 이어 지는 서두가 본문의 족보인데 이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이 상호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공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과 성취를 각기 다루고 있는데. 본문 이전의 구약성경은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소망과 믿음을 소개하고 있으며, 본문 이후의 신약 성경은 '이미 오신 메시야'로 인한 구원과 축복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신약 총론 특별자료, '신 ․ 구약의 연속성과 점진성'(漸進性)을 참조하라.
이외에 우리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 할 수 있다.
①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심에 있어서 각양 각층의 사람들을 다 사용하신다는 점이다. 본문의 족보 가운데 등장하는 사람들은 아브라함, 이삭, 룻, 다윗과 같은 신앙의 영웅들이 있는가 하면 라합이나 다말처럼 수치스러운 과거를 지닌 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헤스론, 람, 나손, 아킴같이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이 있는 반면에 아비야나 므낫세처럼 사악한 자들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심에 있어서 인간들의 실패나 범죄로 말미암아 제한 받으시지 않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기 위해 바로 그들을 사용하셨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비하고 주님의 뜻을 이 땅에서 실현시키기 위해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부르시고 계신다.
②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뿐만 아니라 남녀의 차별도 사라졌다는 점이다. 본문의 족보 속에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다섯 명의 여인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 다말과 밧세바는 간음한 여인이며, 라합과 룻은 이방 여인이다. 게다가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족보에 여자들의 이름이 오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본서 기자는 네 명의 여자의 이름을, 그것도 죄로 얼룩진 여자들의 이름과 이방 여인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결코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구원의 축복이 주어짐을 의미한다(롬 3:22,29; 10:11-13). 이에 대해서는 본장 자료노트를 보다 참조하라.
③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혈통은 불명예스러운 죄악으로 얼룩져 있다는 점이다. 이는 바로 이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죄인들의 혈통을 통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음을 보여 준다(롬 8:3).
④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까지 죄인들이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이 세상이 죄악으로 물들어 있고, 인간의 역사란 바로 죄악의 역사임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이들 죄인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보여 준다 하겠다(롬 3:23).
1:1 아브라함과‥‥그리스도. - 본절은 마태복음의 서론 부분에 해당한다. 공관 복음의 각 서론 부분(마 11; 막 1:1; 눅 1:1-4)을 살펴보면 그 복음서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마가복음의 서론 부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의 유일신 개념 또는 메시야 사상을 접해보지 못한 헬라인들을 위해 신학적, 역사적 예비지식이 없이도 쉽게 그리스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즉 인간을 신의 아들로 표현하는 것이나 신을 인간적으로 묘사하는 것들은 다신 종교의 헬라 문화권에서는 보편적인 양식이었다. 다음으로 누가복음의 서론 부분은 역사적 측면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사도행전의 서론 부분(행 1:1,2)과 연결되어 있다. 반면 유대인 독자를 대상으로 기록한 마태복음은 유대적 배경을 전제로 하여 접근하고 있다. 우선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되는 하나님 백성의 범세계적 축복에 대한 언약의 성취자로 소개하고 있다. 창 12:3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한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의 자손(1-16절) 예수를 통해 완성되었음을 마태는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 바울은 '아브라함의 씨'(창 22:18)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고 있으며(갈 3:8'16)' 더 나아가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모든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에 참예하게 된다고 증거하고 있다(갈 3:9,14).
다윗의 자손. - '다윗의 자손'이라는 칭호는 마태복음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우선 구속사에 있어서 '메시야'(그리스도)의 개념이 정립되는 과정에 다윗의 언약(삼하 7:5-16)은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다윗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시며(시 89:29), 그 자손이 나라의 위(位)를 이을 것(삼하 7:12), 그리고 한 아기가 나서 다윗의 위에 앉아 공평과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사 9:6,7; 11:1)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 다윗 언약의 내용은 이스라엘 포로기와 그 후 예수 당시에 이르기까지 메시야 대망 사상의 핵심이 되어 왔다. 즉 이스라엘의 메시야는 다윗 가문의 출생이어야 하며, 다윗의 왕권을 회복할 능력이 있는 자이어야만 했다. 따라서 '다윗의 자손'은 메시야를 지칭하는 말로 고착되었다. 한편 당시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은 헤롯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는 이두메 출신으로 로마에 의하여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의 왕으로 임명된 자였다. 특히 헤롯은 이스라엘과는 뿌리 깊은 갈등과 대립 관계에 있는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이었다(창 25:22'23). 이러한 헤롯의 통치기간(B.C. 37-4) 동안 이스라엘은 이방인 왕에 의하여 다스려진다는 사실을 민족적 수치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마태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칭호를 예수께 사용하여 그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종이며 다윗 가문의 왕권을 소유한 약속된 메시야임을 증거하고 있다(마 9:27; 12:23; 15:22; 20:30,31; 21:9,5; 22:42,45).
예수 그리스도. - '그리스도'(크리스토스)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메시야'(마쉬아흐)의 헬라어 번역이다. 구약 성경에서 메시야는 직무상의 칭호로서 왕' 선지자' 제사장들에게 사용되었으며, 드물게는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바사 왕 고레스에게도 사용되었다(시 105:15; 사 45:1). 특히 다윗의 후손에 관한 언약과 예언에서는 약속된 종말론적 통치를 실현할 구세주로서 이 호칭이 사용되었다(삼하 7:12-16; 시2:2; 105:15). 이 호칭의 의미는 신구약 중간기를 거치면서 더욱 발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왕권과 세상을 심판할 능력을 부여받아 이스라엘을 회복할 미래의 종말론적 구원자라는 특수한 칭호로 사용되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이 칭호의 의미가 메시야 대망 사상으로 강하게 부각되었다. 또한 이 시기의 이스라엘의 민족 저항 운동은 메시야적인 형태를 띤 인물들에 의하여 일어났는데, 사람들은 메시야를 자칭하는 자들의 직무를 세습적인 것으로 보았던 어떤 특정한 가문을 중심으로 하여 모여들었다. 따라서 이들의 저항 운동은 다분히 종교적 성격이 강했으며, 이들이 바라는 통치 사상은 예수가 보여준 고난 받는 메시야 상이 아니라 원수들에게 영원한 승리를 거두는 메시야였다. 막 서론 특별자료, '메시야의 이해'를 보다 참조하라. 그러나 마태는 직무상의 칭호인 '메시야'(그리스도)를 고유 명사인 '예수'와 결합시켜 사용함으로써 바로 그가 구약의 예언과 이스라엘의 대망을 성취할 약속된 인물임을 소개하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야가 출생하기로 약속된 다윗 가문의 왕권을 계승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임을 증거하고 있다. 마 3장 자료노트, '그리스도의 명칭에 대한 예언과 성취'를 보다 참조하라. 그 후로 '그리스도'는 예수의 별칭으로 고유 명사화되었으며 지금까지 그렇게 사용되고 있다. 사복음서 중에서 가장 나중에 기록된 요한복음(A.D. 85-90)에 그리스도가 빈번히 사용되고 있는 것은 이미 그 당시에 이 칭호가 예수를 지칭하는 고유 명사로 정착되었음을 의미한다(Drane).
세계라. - '세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비블로스 게네세오스'( )로서 '족보' 또는 '계보'를 의미한다. 결국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족보의 기록' 또는 탄생의 기록이며 더 나가서는 그의 역사의 기록이다. 사실 마태의 족보 기록 의도는 메시야로서 예수의 혈통적 정통성을 밝히고 그에 관한 역사적 기록을 삼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족보는 단순히 예수의 혈통적 정통성을 밝혀주고' 그의 역사적 기록의 서언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으로서의 인류의 시작을 보여 주기도 한다. 바울은 롬 5:14에서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라는 아담 예표(Adam Typology)을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인정되며(롬 4:14), 예수의 족보에 속하여 져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다고 말한다(마 6:9; 7:11; 롬 8:15-17). 이로 볼 때 본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사의 성취로 말미암아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하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의 시작을 선포하는 것이라 하겠다. 본권 신약총론 특별자료, '신 ․ 구약의 연속성과 점진성' 참조.
1: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 이삭을 낳을 당시 이미 사라는 폐경기의 여인이었으며 아브라함도 100세의 노쇠한 상태였다(창 17:17; 18:11). 이것은 곧 사람의 능력으로는 더 이상 자식을 생산할 수 없는 상태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자손의 축복에 대해서 양자나 첩을 통하여 얻으려 하였었다(창 15:2; 16:2).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약대로 사라를 잉태케 하셨다(창 21:1,2). 이 일은 하나님자신의 약속과 예언에 따른 신실성을 확증해 주는 사건으로(창 21:1,2 주석 참조)' 이와 비슷한 일이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도 나타났다(눅 1:18). 한편 아브라함에 대해서는 창 23장 연구 자료를 참조하라.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낳고. - 이 족보의 내용은 이스라엘 사회의 전통 양식에 있어서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사회에서의 장자 권한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모세의 율법에서 장자는 아비의 권위와 재산의 두 배를 상속받으며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된다(출 22:29-31; 신 21:16,17). 그러나 예수의 족보가 장자가 아닌 다른 아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는 것은 구속사의 성취를 위한 하나님 자신의 의지적 선택과 선하신 경륜이 있기 때문이다. 본절에서 마태가 유다와 그 형제를 언급한 것은 야곱의 열두 아들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공동체적 성격을 감안하였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예수께서 유다의 혈통에서 출생하신 것은 야곱의 예언의 성취인 것이다(창 49:8-12). 이 예언은 다윗 왕가의 출현으로 부분적인 성취가 이루어지지만 '실로', 즉 '자기의 분깃을 소유한 자'인 예수의 출생으로 완전한 성취를 보게 된 것이다.
낳고. - '~의 아버지라'고 번역되어지는 헬라어 '겐나오'( )는 반드시 직계 혈통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낳은 의미로 조상을 가리키는 단어다. 따라서 족보의 이름들 가운데 생략된 것들이 많은데 이를 단축시켜 '낳다'로 표현한 것이다.
1:3 유다는 다말에게서‥‥세라를 낳고. - 다말은 유다의 아들 엘의 아내로서 이방 여인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죽자 형사취수혼(兄死取據婚). 또는 계대 결혼(창 38장 자료노트, '계대 결혼의 풍습' 참조)을 통해 남편의 동생 오난으로부터 아들을 얻고자 하였다. 그러나 오난마저도 그의 악함을 인하여 죽고' 유다가 막내아들인 셀라로 하여금 이 의무를 수행치 못하게 하자 그녀는 시아버지인 유다를 속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창38장). 즉 유다의 두 아들 베레스와 세라는 근친상간의 열매였던 것이다.
다말. - 마태의 족보에는 마리아를 제외한 네 명의 여인이 등장하는데(다말, 라합, 룻, 밧세바) 이것은 부계 사회인 이스라엘의 족보 관습에서는 거의 드문 일이다. 더욱이 네 여인 모두가 사라나 리브가와 같은 믿음의 여인이 아닌 불륜을 범한 여인들이었다. 또한 밧세바를 제외한 세 여인은 이방 여인인데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계보에 속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마태는 밧세바 역시 헷사람인, 우리야의 아내,라 부름으로써 그녀를 이방 여인처럼 취급하였다(6절). 그렇다면 이같이 수치스럽고 예외적인 인물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삽입시킨 것은 마태의 어떠한 의도가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먼저 마태는 예수의 족보에 포함된 네 여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부터 늘 이방인을 염두에 두셨음을 보여 주려 하였다고 생각된다. 또한 선민으로서의 이스라엘의 특권은 그들의 혈통적 순수함과 도덕적 순결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적 은총에 연유한 것이며, 이스라엘의 역사가 순수하거나 순결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언약은 자신의 신실함에 의하여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어 왔음을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족보에 수록된 네 여인은 마리아의 출현을 한층 부드럽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생물학적으로는 전혀 관계없는 예수와 요셉의 계보를 마리아로 연결시키는 것은 그 전에 네 여인의 이름이 삽입되어 있기에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한편 칼빈(Calvin)은 3절에 관하여 언급하기를 '이것은 바울이 말하는 자기 비하(exinanito)의 시작이다'라고 하였다. 즉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은 자신의 족보를 깨끗하게 보존할 수 있었지만 죄인들을 구하시려 종의 형체를 취하심에는 불법과 불륜을 저지른 인간들을 자신의 조상으로 삼는 것조차 거절치 않으셨다는 것이다.
베레스. - '터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베레스에 대해서는 창 38:29,30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1:4 아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 아람은 마태의 족보와 누가의 족보에 나타나는 첫 번째 다른 이름이다. 구약성경의 족보에는 동일 인물이 두 가지 이상의 이름을 가진 경우가 종종 있지만(살몬→살마, 대상 2:11) 아람의 경우는 명백히 다른 인물이다. 특히 마태의 족보에는 헤스론과 아미나답 사이에 아람 한 사람만 있지만 네슬(Nestle) 성경 26판의 경우 누가복음에는 아드민과 아르니가 있다(한글 개역 성경에는 없음). 아미나답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민수기 1장 7절에는 그가 모세 시대의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베레스로부터 아미나답까지는 약 400년의 연대 차가 있는데(출 12:40) 그 기간에 4대만이 교체될 수는 없다. 따라서 마태의 족보에는 많은 이름들이 생략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5 라합에게서‥‥룻.- 라합은 여리고 성의 기생으로 누구보다도 더 가나안의 우상 종교, 성적 문화에 빠져있던 여인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선대하여 도와 준 행위로 말미암아 여리고 점령 시 그녀와 가족, 친척 모두가 구원을 얻었다(수 6:25). 라합에 대해서는 수 2장 연구 자료를 보다 참조하라. 한편 룻은 모압 족속의 여인으로 모압 족속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저주(신 23:3)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시어머니의 믿음을 좇아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얻었다. 룻에 대해서는 룻 1장 연구 자료를 보다 참조하라. 이 여인들의 등장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제공해 준다.
① 예수의 족보는 종족적 측면의 계통(系統)으로만 아니라, 구속사적 차원에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흘러온 거룩한 선(線)을 의미한다. 즉 인간의 오류와 가증스러운 죄악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구속사적 경륜을 위해 은혜롭게 사용하신 것이다.
② 족보의 이방 여인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혈연적, 민족적 공동체보다는 신앙 공동체로서 더 큰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동일하게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었으며, 믿음의 행위로 이스라엘 중에 그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룻 1:16; 2:12; 4:12; 히 11:31; 약 2:25). 이스라엘이 신앙 공동체인 근거는 구약 성경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창 34:16,22; 수 9:23-27). 또한 히브리서 기자에게서 이 의미는 더욱 확대되어 나타나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믿음으로 묶여진 영적 이스라엘로 표현된다(히 12:18-29).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 다윗에서부터 비로소 예수의 족보의 왕통(王統)이 시작된다. 마태가 오직 다윗에게만 왕의 칭호를 사용한 이유를 몇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왕가로서의 시조가 다윗이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다윗에게만 왕의 칭호를 사용하였다. 두 번째로, 구약 성경에 왕적 메시야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모형이 바로 다윗이며' 또한 그만이 이에 관한 하나님의 언약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삼하 7:12-16; 시 22:1). 셋째로, 마태 당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다윗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그들의 민족적 자존심이었으며, 뿌리 깊은 종말론적 이상(理想)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윗 왕'이라는 호칭은 이스라엘의역사적 회상(回想)과 기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다윗에 대해서는 삼상 16장 연구 자료를 보다 참조하라.
다윗 왕은 우리아의 아내였던 아내에게서. - 마태는 밧세바를 이름 대신에 '우리야의 아내'라 기록함으로써 다윗의 치부(恥部)를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다윗의 간음 사건은 나단 선지자의 고발과 범죄의 결과로 그가 당하게 된 하나님의 심판을 볼 때 하나님 앞에서 지은 가장중대 한 범죄였음을 알 수 있다(삼하 12:7-23). 때문에 마태는 다윗의 종교적, 도덕적 범죄를 지적하기 위해 이와 같이 기록했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의 신실성은 파기되지 않았다. 한편 마태가 밧세바를 '우리야의 아내'라고 기록한 것은 그녀가 헷 사람 우리야(삼하 11:3; 23:39)와 결혼하였기 때문에 이방 여인으로 간주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아무튼 '맹세의 딸'이라는 의미의 이름인바 밧세바는 그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대상 3:5에는 밧수아' 즉 '번영의 딸'로 기록).
솔로몬. - 솔로몬은 장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았다. 솔로몬이 출생하였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통해 그에게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주셨다(삼하 12:25). '여디디야'(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의 어근 '야다드'( )는 '제비 뽑는다'(Cast lot)는 뜻이다(나 3:10). 즉 솔로몬은 태어나면서부터 다윗의 왕위를 이을 자로 택함을 입은 것이다. 사실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을 근거는 매우 희박했다. 당시 이스라엘에 왕위에 대한 계대 상속(繼代相續)의 전통이 세워지지 않았지만 다원의 10번째 아들(밧세바에게서는 4번째)로서 솔로몬이 왕위를 이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때문이라 아니할 수 없다(대상 3:1-9). 솔로몬에 대해서는 왕상 8장 자료노트를 보다 참조하라.
1:7 르호보암. - 르호보암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남 유다의 초대 왕이 되어 14년 동안 다스렸다. 그는 솔로몬 말기에 성행했던 우상 숭배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는데(왕상 14:23'24)' 그가 이처럼 신앙적으로 타락한 것은 암몬 여인이었던 그의 모친 나아마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왕상 14:21,31). 르호보암에 대해서는 왕상 14장 자료노트를 보다 참조하라.
아비야. - 아비야는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남 유다의 왕위에 올라 3년(B.C. 913-910)을 다스렸다. '아비야'( )는 '여호와는 아버지시다'라는 뜻으로, 그 이름과 같이 북이스라엘에게 외친 설교와 신앙의 행적이 크게 기록되어 있다(대하 13:4-21). 그러나 열왕기서에는 그의 행적이 악하게 평가되어 있으며(왕상 15:1-3), 그가 유다의 왕이 된 것은 단지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한 언약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왕상 15:4, 5).
아사. - 아사는 41년간(B.C. 910-869) 유다를 통치한 경건한 신앙의 소유자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우상을 제거하는 일에 착수했는데, 그의 개혁의 열심은 심지어 자신의 모친까지도 태후의 위(位)에서 폐할 정도였다(왕상 15:11-14). 아사에 대해서는 왕상 15장 자료노트를 보다 참조하라.
1:8 여호사밧. - 여호사밧은 유다를 25년간(B.C. 872-848) 통치하였는데 그 기간에 유다는 번창하였으며 북 이스라엘과 전쟁이 그치고 평화를 누렸다(왕상 22:44). 그는 경건한 인물로 그의 부왕이 미쳐 이루지 못한 종교 개혁을 계속 추진하였으며(왕상 22:46)' 레위사람들과 제사장' 방백들을 뽑아 각 성읍을 순회하며 율법책을 가르치게 하였다(대하 17:7-9). 그 밖에도 국고성을 쌓는 등의 국방을 든든히 하였다(대하 17:12). 그러나 그의 정책에 있어서 가장 큰 실수는 정치적 목적(대하 18:1 주석 참조)을 위해 아합과 결혼 동맹을 맺은 것이었다. 즉 여호사밧은 북 이스라엘 아합 왕의 딸 아달랴를 자부로 맞아들임으로써 남 유다에 북 이스라엘의 우상숭배가 도입되는 원인을 제공했고 그 아들 여호람은 종교적으로 크게 부패하여졌던 것이다(대하 21:6). 결국 이것은 후일 유다의 왕가에 큰 화근이 되었다(왕하 11:1 이하).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 요람은 여호람으로도 불렸으며(왕상 22:50) 부왕 여호사밧의 섭정 하에서 왕위에 올랐다(왕하 8:16)' 요람은 유다를 8년간(B.C. 848-841) 통치하였는데' 그 8년 동안의 행사는 유다에 있어서 실로 비극적인 일이었다. 그는 선왕들의 경건한 종교 정책보다는 오히려 북 이스라엘 아합 왕의 종교 정책을 그대로 모방하여 바알 종교를 일으켰다(대하 21:11).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아합의 딸 아달랴의 조종에 의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가 왕이 된 후에 먼저 저지른 비극은 자신의 형제들과 방백들을 무참히 살해 한 것이다(대하 21:4). 비슷하게 후일 그의 아내 아달랴는 왕의 씨를 진멸하려고 하였다(대하 22:10). 그의 악한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서 다원과의 언약을 기억하지 아니하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완전히 멸하셨을 것이다(대하 21:7). 요람과 웃시야 사이에는 아하시야와 요아스와 아마샤가 생략되었는데, 이는 족보의 14대를 맞추기 위해 마태가 고의적으로 생략하였기 때문이다.
1:9 웃시야. - '여호와는 나의 능력'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웃시야는 16세에 왕이 되어 유다를 52년(B.C. 791-739) 동안 통치하였으며(대하 26:3), 아사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었다. 그는 유다의 왕들 중에 가장 유능하고 강력한 왕으로 그의 통치하에서 유다는 가장 강한 국력과 영토를 소유했다. 그는 에돔과 암몬을 정복하여 조공을 받았으며, 애굽의 변방까지 영토를 넓혔고(대하 26:8), 군대를 재편성하여 주변 나라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대하 26:14,15). 그러나 말년에 그는 교만하여져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려다(대하 26:16-23)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문둥병에 걸려 은둔 생활을 하는 등 비참한 최후를 보내야만 했다. 웃시야에 대해서는 대하 26장 자료노트를 보다 참조하라.
요담. - 웃시야를 이어 왕위에 올라 16년(B.C. 747-731) 동안 통치한 인물이다. 대하 27:1 주석 참조.
아하스. - 아하스의 16년(B.C. 731-16) 통치기간에 유다는 이미 심히 약해진 나라가 되었다. 북에서는 다메섹과 북 이스라엘의 압력이 계속되었고 서와 남에서는 블레셋과 에돔이 괴롭혔다. 그때 아하스는 친 앗수르 정책을 폈지만 오히려 앗수르는 유다를 속국으로 만들어 괴롭게 하였다(대하 28:20,21). 한편 아하스 시대의 유다는 종교적으로 암흑과 같은 시기였다. 즉 아하스시대의 종교적 타락상은 심지어 어린 자녀를 불살라 제물로 바치는 몰록 종교를 따랐으며(대하 28:2-4) 앗수르의 우상 제단을 본떠다가 예루살렘에다 두고 제사 드리며 성전의 기명들을 뜯어내고 성전을 폐쇄하였던 것이다(대하 28:24). 아하스에 대해서는 대하 28장 자료노트를 보다 참조하라.
1:10 히스기야. - 역대기의 기자는 그에 대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자라고 했다(대하 29:2). 또한 열왕기 기자는 히스기야를 평가하면서 그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한 자로 그의 전후(前後) 유다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왕하 18:5). 그는 29년(B.C. 715-687)의 통치기간 중에 왕위에 오르자마자 부왕 시대에 폐쇄되었던 성전을 다시 열어 정결케 하였으며(대하 29:3), 유월절을 회복하여 온 유다와 이스라엘까지도 함께 지키기를 청하였는데 이때에 온 이스라엘이 크게 기뻐하여 솔로몬 이후 그러한 일이 없었다고 역대기 기자는 기록하고 있다(대하 30:26). 특히 그는 자신의 중병으로 인하여 죽게 되었을 때 간절한 회개와 기도의 응답으로 생명을 15년이나 연장 받고 일영표가 10도 뒤로 물러나는 이적을 경험하였다(왕하 20:1-11). 히스기야에 대해서는 왕하 18장 자료노트를 보다 참조하라.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 므낫세와 아몬은 히스기야와는 달리 유다 왕국을 부패와 타락의 암흑시대로 몰고 간 불행한 지도자들이었다. 므낫세는 12세에 왕위에 올라 55년(B.C. 697-642) 동안 그 어느 왕들보다도 최장기간 유다를 다스렸는데 이 기간에 유다는 심히 부패하였다. 그는 우상과 함께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숭배했고(왕하 21:31 대하 33:3-5) 그 정책에 반대했던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왕하 21:6), 전설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도 그의 손에 죽었다고 한다. 그 징계로 므낫세는 앗수르에 잡혀가 포로생활을 하다가 조공을 바칠 것을 약속하고 풀려났다(대하 33:11). 앗수르의 '에살핫돈의 기록'과 '앗수르바니팔의 기록'에는 조공을 바친 므낫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Thompson, Pfeiffer). 므낫세에 대해서는 대하 33장 자료노트를 보다 참조하라. 한편 아몬은 2년(B.C. 642-640)간 유다를 통치했는데 그의 행적은 부왕 므낫세의 행위의 반복에 불과했다.
요시야. - 요시야는 8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며, 유다 왕국 최후의 개혁 왕으로 아사, 여호사밧, 히스기야와 함께 다윗과 비교되는 인물로 칭찬을 받은 경건한 왕이었다(왕하 22:2). 그는 최후로 유다의 종교 개혁을 추진하였는데, 이것은 무려 6년에 걸친 개혁 운동이었으며(대하 34:1-8), 성전수리 중에 발견된 율법책의 낭독을 통해 온 국민이 회개함으로써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대하 34:19-33). 그의 통치 31년(B.C. 640-609)은 유다의 마지막 평화시기였으며, 그 당시 주변 세력의 판도가 재정비되고 있었다. 그 동안 유다를 괴롭혀 오던 앗수르가 쇠퇴하여 멸망하였고(B.C. 612년) 신흥 바벨론이 강성하여지는 가운데 세력의 공백이 있었으며, 이때를 이용하여 유다는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요시야는 애굽과의 전투에서 사망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라 오히려 후일에 유다가 바벨론으로부터 당하게 되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려는 하나님의 배려였다(렘 22:10-18). 대하 35:24 주석 참조. 한편 요시야에 대해서는 왕하 23장 자료노트를 보다 참조하라.
1:11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 유다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지 약 1500년 후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을 좇아 떠났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포로의 신분으로 조상의 땅을 밟은 것이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것은 3차에 걸쳐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B.C. 605년에 다니엘을 포함한 왕족과 귀족계급들이었으며(단 1:1-6), 두 번째는 B.C. 597년에 여호야긴을 포함한 방백' 군사' 기술자' 일반 백성들이며(왕하 24:14), 세 번째는 B.C. 586년 예루살렘의 함락과 함께 시드기야와 백성들이었다(왕하 25:6-12). 이에 대해서는 에스라 서론 특별자료, '바벨론 포수의 이해'를 보다 참조하라. 이 가운데 본절의 기사는 2,3차 바벨론 포로와 관계된 기사이다.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 - 요시야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대상 3:15), 이들 중 3명이 왕위에 올랐지만 모두 비참한 운명으로 최후를 마쳤다. 장자 요하난은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으로 보아 요절한 것으로 추측된다(대상 3:15 주석 참조). 여고냐는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아들인데' 요시야가 낳은 것으로 기록된 것은 그 사이의 이름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1:12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 대상 3:17에는 '사로잡혀 간 여고냐'로 기록되었다. 여고냐는 왕위에 오른지 불과 3개월 10일 만에 바벨론으로 잡혀갔다(왕하 24:6 주석 참조). 그러나 그에 대한 대우가 비교적 후한 편이어서 일평생 먹을 양식을 왕궁으로부터 공급받았다(왕하 25:27-30). 한편 예레미야의 기록에 의하면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렘 22:30). 또한 눅 3:27에는 스알디엘이 엘리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이로보아 스알디엘은 여고냐의 친 아들이 아니라 양자일 것이다.
스룹바벨. - 성경 여러 곳에서 스룹바벨이 스알디엘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지만(스 3:1; 학 1:1; 눅 3:27), 대상 3:19에는 여고냐의 또 다른 아들로 언급된(대상 3:18) 브다야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대상 3:17-24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스룹바벨은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수에서 처음으로 귀환할 때에 인솔했던 지도자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였다(스 1-6장 참조).
1:13-15 아비훗은‥‥야곱을 낳고. -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누가복음의 족보에 있는 이름들과도 전혀 다르며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다. 이점에 관하여는 몇 가지 견해가 있는데, 우선 마태의 족보와 누가의 족보의 다른 이름들은 동일 인물에 대한 다른 이름의 기록이라는 견해가 있고(Gundry)' 다르게는 마태의 족보는 요셉의 혈통 족보요 누가의 족보는 마리아의 혈통 족보라는 견해이다. 한편 본절의 족보에 관하여 여기에 기록된 이름들은 대상 6:3-14절에 나오는 제사장 가문의 족보를 마태의 관점에 따라 변형시켜 기록했다는 설도 있다. 즉 제사장 가문의 이 이름들은 마태가 의도했던 예수의 왕통으로서의 족보와는 상반되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이름들을 변형시켰다는 것인데 이것 역시 설득력이 없는 것은 포로 귀환 후부터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왕조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제정이 일치되어 제사장들과 율법 학자들이 정치적 역할까지도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예로서 에스라와 느혜미야가 있다. 따라서 굳이 마태가 제사장 직분을 감추려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한편 마태와 누가의 예수 족보 기록의 차이에 대해서는 본장 자료 노트를 참조하라.
1: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 누가의 족보에 요셉은 헬리의 아들로 되어 있다(눅 3:24).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견해들이 제시되어 왔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 견해이다. 즉 ① 요셉이 마리아의 아버지 헬리의 데릴사위가 되어 장인의 족보를 법적으로 계승했다는 것(Williams, Carr)과 ② 계대 결혼에 의하여 자식 없이 죽은 야곱의 혈통을 동생인 헬리가 이어서 요셉을 남았다는 견해이다(Eusebius). 이 가운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전자의 견해를 취한다. 즉 학자들은 마태가 주로 왕위 계승을 주로 한 법적인 측면을 강조한 반면, 누가는 혈통의 실제적인 측면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요셉과 예수 간에는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 그들은 단지 요셉이 마리아와 정혼함으로 호적상의 부자 관계가 될 뿐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분명 법적으로는 다원의 혈통을 이은 것이 확실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 면서 또한 그 관계를 뛰어 넘는 신비함을 발견하게 된다(마 22:41-46).
마리아에게서‥‥예수가 나시니라. - 마태가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명칭이 고유 명사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는 대등 관계가 제자들과 추종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져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여기서 마태는 계속 사용하던 낳고'(겐나오)라는 능동태형 대신에 '나시리라'(에겐네데)의 수동태형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의 탄생 과정에 있어서 인간적 방법의 노력이나 성적 결합의 결과로서의 잉태가 아님을 암시하기 위함이었다. 그 암시는 18절에서 곧바로 나타나는데' 즉 예수는 족보상으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았지만 실제적으로는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1:17 아브라함부터‥‥열네 대러라. - 마태의 족보에서 아브라함부터 요셉까지는 42세대인데 누가의 족보에는 55세대로 13세대의 차이가 난다. 이 차이는 시간적으로 약 400년의 기간이다. 마태는 족보의 숫자와 세대의 역사적 구분을 위해 의도적으로 많은 이름들을 생략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대하 6장 자료노트, '히브리인들의 족보 기록 방법'을 참조하라. 이러한 마태 족보의 특징은 14대씩 3기로 나누어 기록했다는 점이다. 우선 마태는 이스라엘 역사상의 전환기적인 사건과 인물을 기준으로 족보를 나누었는데 첫 번째 14대는 축복과 약속, 그리고 기다림의 시기이며, 두 번째 14대는 약속의 성취와 축복, 번영의 시기, 세 번째 14대는 이스라엘의 쇠퇴와 회복, 그리고 대망의 시기이다. 따라서 각 시기의 첫 이름과 끝 이름은 그 시기를 열고 맺는 역할을 하는데, 예수는 회복과 대망의 시기에 대한 성취 기점이 된다. 특별히 마태 족보의 핵심은 14라는 숫자인데 이에 관하여는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우선 단순한 의미에서 볼 때 족보를 14×3의 도식으로 기록한 것은 독자의 기억을 돕기 위한 유대 족보상의 관례를 따른 것이라는 견해이며(Michaelis, Eichorts), 다음으로는 다윗의 이름과 관련하여 이름으로부터 추출된 숫자를 역사 해석에 적용한 것이라는 견해이다(Plummer, Johnson). 즉 '다윗'( )의 알파벳 숫자의 합이 14이다(ד은 4, ו은 6). 유대 묵시 문학이나 요한계시록에서 자주 사용되는 숫자 나열을 통한 상징법을 마태도 족보에 반영한 것이며, 마태는 이 족보를 통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다친 때에 성취하셨을 뿐만 아니라 다윗을 통해 당신의 통치를 실현하셨고, 또한 다윗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율법의 시대를 끝내고 복음의 시대를 여셨음을 보여 주고자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본절의 기록과 달리 바벨론 포로기에서부터 예수까지는 13대의 명단밖에 나타나지 않는다(12-16절). 이에 대해 학자들 간에는 ① 11절의 본문을 필사자의 오기로 보고 요시야와 여고냐 사이에 여호야김을 첨가해야 한다는 견해(Weiss, Meyer, Clarke)와 ② 여고냐를 포로 전과 후로 두 번 계산해야 한다는 견해(Hendriksen), ③ 그리고 6절의 다윗을 두 번 계산해야 한다는 견해(De Wette, Bengel)가 제시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②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1:18-25 동정녀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앞 단락(1-17절)에서 족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Messiah)이자 만장의 왕으로서 법적 혈통적 정통성(正統性)을 지니고 있음을 부각시킨 바 있는 본서의 저자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경위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런데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자와 여자의 일반적인 혼인 관계에 의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 단지 여자의 몸을 빌어 성령으로 잉태한 후 탄생하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이와 같은 여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은 앞서 족보를 통해서 강조된 인성(人性)에 이어서 신성(神性)을 부각시켜 주고 있다. 즉 온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사람의 모습'으로 성육신( )하실 수밖에 없었으나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만한 흠 없는 희생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아담으로부터 온 인류에 전가(轉據)된 원죄와 전혀 무관한 존재라야만 했다. 그러므로 동정녀 탄생이라는 특별하고도 경이로운 탄생 과정을 통하여, 메시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의 아들'로서 인성(人性)과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神性)을 아울러 지니시게 된 것이다.
바로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인간이시면서 또한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비로소 온 인류가 안고 있던 죄의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인간으로서의 생애를 살아가셨으므로 인류가 당하는 고통과 문제점들을 일일이 다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근본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과 동등 되시므로(빌 2:6) 인류를 그 모든 고통과 문제점들로부터 능히 건져내실 수 있는 권세를 지니고 계신 것이다.
이러한 본문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기록은 눅 1:26-38에도 있으나 본장 18-23절에 나타난 천사의 요셉 방문 기록은 4복음서 중 본서에만 나타난다. 또한 메시야의 동정녀 탄생은 일찍이 사 7:14에서 예언된 바 있다. 이렇듯 본문의 메시야 동정녀 탄생은 우연한 사건이 아닌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사 대망(待望)되어 온 예언의 성취이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는 눅 1장 자료노트를 보다 참조하라.
한편 이러한 본문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①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온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실 수 있는 구세주(敎世主)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천사는 예수님의 이름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21절)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을 나타낸다(행 4:12).
②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들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23절). 죄로 인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던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롭고 산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이 다(히 10:20).
③ 성도들은 비록 자신에게 현실적으로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는 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온전히 순종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본문에서 요셉은 마리아의 혼전 임신이 자신에게 어떤 수치를 가져다줄지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천사의 지시에 따르는 신실함을 드러내고 있다. 요셉은 물론 천사의 지시를 듣기 전, 마리아의 순결을 의심할 때에도,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기보다 마리아를 위해 조용히 두 사람의 약혼을 파기하려는 의로움(19절)을 보여 준 바 있다. 이러한 요셉의 의로운 행위는 오늘날 남녀 관계를 비롯한 모든 관계에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 1절이 마태의 족보의 서론이라면' 18절은 25절까지 기록된 예수의 탄생에 대한 신적 사역의 서론이다.
그 모친 마리아가‥‥동거하기 전에. - 마리아와 요셉은 '정혼' 곧 결혼하기로 약속한 관계였다. 그런데 유대 풍습에서 이 '정혼'은 오늘날과 같이 쉽게 파기할 수 있는 성격의 약혼이 아니라 매우 중대하고 강한 결속력을 갖는 약속이다. 따라서 이 약속을 파기할 수 있는 근거는 간음과 같은 지극히 제한된 이유에 국한되었다(신 22:23'24). 한편 서로 정혼한 사이는 법적으로 부부관계로 인정되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동거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유대 풍습에는 남녀가 정혼한 후 얼마의 기간이 (약 1년) 지나야 비로소 동거할 수 있으며, 그 사이에라도 서로의 육체를 범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신 22:25). 아무튼 마리아와 요셉이 정혼함으로써 성령으로 나신 예수는 요셉의 족보를 법적으로 이어받게 되었다.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 곧 성육신(聖肉身)을 말한다. 이 성육신이란 그리스' 로마의 신화에서 나타나는 신인 현현(神人顯現), 즉 가현설(Docetism)이나 성령이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것 그 이상의 초자연적 사역이다. 성육신은 신적 능력으로 말미암아 신성과 인성을 소유한 신비한 탄생이며 완전한 일치의 결합이다. 뿐만 아니라 이 성육신의 과정이 예수의 선재성(先在性)을 부인하지 못한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은 그의 선재성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성육신을 통해 예수의 선재성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찬란하게 빛나게 되는 것이다(요 1:14). 이에 대해서는 눅 1장 자료노트, '동정녀 탄생'을 보다 참조하라. 한편 마태는 마리아의 잉태를 '성령으로' 되어진 것이라고 함으로써 요셉과 예수와의 혈통적 관계를 분명히 배제하고 있다. 이것은 앞의 '동거하기 전에'에서도 암시되고 있는데, 여기서의 '동거'(쉰엘데인)는 성적 관계를 의미한다.
나타났더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휴레데'( )의 원형 '휴로'( )는 '얻다' 혹은 '인지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본절은 마리아가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깨달았음을 의미한다. 즉 마리아의 잉태 사실이 타인에 의해 드러난 것이 아니라 마리아 자신이 요셉에게 먼저 그 사실을 알렸다고 볼 수 있다.
1: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 요셉에 대하여 마태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기록했다. 그런데 요셉에 대한 이 같은 평가는 마리아의 잉태 사실과 관련된 요셉의 행동이 그 자신을 의로운 사람으로 평가되게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생활 자체에 대한 것일 것이다. 본래 '의로운'(디카이오스)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정직하고 곧은(just, righteous) 상태를 나타낸다.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 '가만히 끊고자 한다'는 것은 파혼의 가장 은밀한 형태를 취하여 두 사람만의 증인 앞에서 이혼장을 주고 정혼을 파기하는 것을 말한다(Edersheim). 그런데 이 구절에 있어서 의문시되는 점은 어떤 이유에서 요셉이 마리아와의 파혼을 은밀하게 처리하고자 하였는가이다. 율법에 있어서 정혼한 여자의 간음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이다(신 22:23,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자신과의 신성한 약속을 가장 수치스럽게 파기한 마리아를 아주 관대하게 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는 몇 가지 견해가 있는데, 우선 요셉은 마리아의 잉태 사실을 알았지만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나타내지 않았다는 견해이며(Gundry), 다음은 요셉이 진심으로 마리아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가 평생을 수치와 모욕을 당하며 사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견해(Lenski)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자신의 입으로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을 요셉에게 고백했다고 전제한다면(18절 주석 참조) 다음과 같은 가정이 더욱 타당성이 있을 것이다. 마리아는 자신의 성령으로 말미암은 잉태의 사실을 제일 먼저 알아야 할 사람은 요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셉은 이미 법적으로 그녀의 남편이며 그를 위해 그녀 자신의 순결을 지키는 것은 가장 큰 의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이 사실을 요셉에게 알렸을 때 정작 문제가 되었던 것은 마리아의 진실성 여부가 아니라 성령 잉태 그 자체였다. 요셉에게 있어서 마리아의 순결에 대한 진실성은 믿을 수 있어도 어떻게 처녀가 남자 없이, 그것도 하나님의 영으로 잉태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은 자신의 지식과 이성을 초월하는 것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믿고 싶으나 믿을 수 없는 그 일에 대한 최선의 방법이 조용히 혼인을 파기하는 것이며, 또 이렇게 함으로써 파혼의 결과로 오는 여러 가지 충격들을 최소화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여기서 요셉이 율법을 충실히 지키려고 노력하는 정직하고 곧은 인물이면서 사랑과 용서를 겸비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본장 연구자료 참조.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 이 구절은 19절에서 요셉이 '가만히 끊고자' 결심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의 심한 내적 갈등상태를 보여 준다. 즉 동적인 히브리적 사유(思惟)의 측면에서 본다면 19절의 내적 결심이 20절에서는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졌어야 하는데, '이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요셉의 갈등이 깊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 이것은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 사역을 위해 개입하신 것을 보여 준다. 만일 주의 사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요셉은 그의 생각대로 행동했을 것이고, 결국 예수는 법적인 아버지가 없는 상태에서 출생했을 것이다. 이 같은 하나님의 개입은 요셉의 생애 동안 3차례에 걸쳐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타난다(마 1:20; 2:13,19). 그런데 '주의 사자'와 관련된 누가의 기록에는 수태 고지(受胎告知)를 요셉이 아닌 마리아가 받고 있으며' 또한 '주의 사자' 대신에 '천사'(앙겔로스)로 나타나며 그 이름까지 '가브리엘'로 기록하고 있다. 마태와 누가의 기록이 이처럼 차이가 나는 것은 마태는 구약의 전형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이고 누가는 이방인들을 위해 이 부분에 대해 여러 가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을 것이다. '주의 사자'(앙겔로스 퀴리우)란 대부분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사명을 지닌 전달자를 말한다(창 16:10; 마 2:13; 눅 1:11; 2:9; 행 5:1 9등). 한편 한글 개역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원문에는 본절 앞에 '보라'는 의미의 감탄사 '이두'( )가 있어 문맥상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환기시켜주고 있다. 흔히 많은 번역자나 한글 개역 성경 대부분이 '이두'의 의미를 생략하거나 무시하고 있는데' '보라'(behold, look)의 의미를 가진 '이두'는 갑작스런 장면이나 문맥이 바뀔 때 극적인 생동감을 더해 주기 위한 용법으로 다양하게 사용된다. 즉 마태는 '이두'라는 말을 본절 앞에서 사용함으로써 메시야의 잉태를 알리는 주의 사자의 출현에 독자들의 환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편 누가는 이 '주의 사자'가 직접 나타나는 것으로 기록하는 반면에 마태는 계속 '현몽'(現夢)하였다고 기록함으로써 계시 전달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 요셉을 '다윗의 자손'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부른 것은 그에게 있어서 대단한 명예이며 영광이다. 이 표현을 통해 요셉과 예수를 연결하는 다윗의 족보가 재확인되지만, 그 이전에 마태는 요셉에게 예수의 법적 부친으로서, 또한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위한 수행자로서의 존칭적 표현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이로써 요셉은 자신이 수행해야 할 중요한 사명에 대해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네 아내‥‥무서워 말라. - '무서워하다'의 원형동사는 '포베오'( )로 '두려워하다'( )나 하나님에 대한 '존경'(respect)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마 17:6; 27:54; 눅 1:5; 18:2등). 즉 요셉이 두려워했던 것은 마리아를 데려온 후 그가 당하게 될 수치와 비난이었다기보다는 그가 처한 초자연적 상황이었을 것이다. 즉 그의 두려움은 주의 사자의 나타남과 이로써 듣게 되는 메시야 탄생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인 것이다. 한편 '무서워 말라'는 주의 사자의 명령은 요셉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드리도록 하기 위한 준비이다.
1:21 아들을‥‥예수라 하라. - 본절은 천사의 수태고지 중에서 핵심 부분에 해당한다. 또한 수태 고지 중 누가복음의 기록과 거의 일치하는 유일한 부분이다(눅 1:31). 한편 본래 자녀의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부모의 권리이다. 그리고 태어나서 8일 만에 할례를 받고서야 비로소 유아의 이름을 지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이스라엘의 관습이었다(창 17:12; 눅 1:59; 2:21). 그러나 예수의 이름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지어졌는데' 이것은 마치 요셉의 권리를 빼앗는 것 같으나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일이며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수'의 이름이 신적 기원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이 그의 친 아버지가 되심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예수스)는 '여호와가 구원하심 '이라는 뜻으로 유대인들의 보통 흔한 이름 '여호수아'( ) 혹은 '예수아'( )의 헬라어 표기이다. '예수' 혹은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흔한 이름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 이름이 지니고 있는 의미 때문이다. 특히 이들 중에서 눈의 아들이며 모세의 후계자였던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적 인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의 '여호수아'에 대해서는 수 1장 연구 자료를 보다 참조하라. 그렇다고 해서 '예수'의 이름이 여호수아의 이름을 변형시키거나 모방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이유는 동사 '칼레세이스'( )는 '부르라'라는 의미의 명령어로 하나님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자기 백성을‥‥구원 할 자이심이라. - '예수'의 이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다. 특별히 한글 개역 성경에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원문 상에는 '그가'(아우토스)가 문장 내에서 강의적(講義的) 용법으로 사용되어 졌다. 이것을 정확하게 번역한다면 '~구원할 이는 그 자신이다'로' 구세주로서 예수의 유일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구하다'(소조)라는 동사는 어떤 자연적 위험이나 정치적 억압, 질병으로부터 이끌어 내는 것뿐만 아니라 죄나 영원한 죽음으로부터의 구출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구원받을 '자기 백성'은 결코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기대하는 구원의 의미는 죄나 죽음으로부터가 아니라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정치적인 구원이었다. 그러나 '자기 백성을 저희의 죄에서'라고 수식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생각했던 정치적 메시야상을 죄 가운데 있는 전 인류로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딤전 2:4).
1:22 이 모든 일의‥‥이루려 하심이니. - 이 구절은 마태가 즐겨 사용한 관용구(慣用句)이다(마 2:15,23; 4:14; 8:21; 12:17; 13:35 등). 사복음서 중에 구약을 가장 많이 인용한 마태는 이 같은 방법으로 구약과 마태복음을 예언과 성취라는 입장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한편 22절과 23절이 천사의 말인지 아니면 마태의 설명인지에 관하여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심지어 어느 경우에는 22절의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를 마태가 천사의 말 가운데서 채용하여 사용한 관용구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Lenski). 그러나 구약 성경의 인용을 시종 일관 하나님의 구속사적 성취로 보도(報道)한 본서의 신학적 특징을 염두에 둔다면 이 구절은 마태 자신의 신학적 관점에서 나온 해설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성 있다. 그리고 인용구마다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이라고 기록함으로써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 가운데 이루어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본권 신약 총론 특별자료 참조.
1:23 보라 처녀가‥‥낳을 것이요. - 마태는 사 7:14; 8:10의 예언이 마리아의 성령 잉태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마태는 이사야서의 인용절을 70인역(lxx)에서 그대로 채택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언어학적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처녀'에 대한 사 7:14의 히브리 원문은 '알마'( )인데 그 뜻은 결혼이나 처녀성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약 20-40세 가량의 젊은 여자를 의미하며 이에 상응하는 헬라어 단어는 '네아니스'( )이다. 그러나 70인역(Lxx)에서는 '알마'를 '파르데노스'( )로 번역하였는데 그 뜻은 남자를 경험하지 못한 동정녀를 의미하며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베툴라'( )이다. 즉 원문과 헬라어 번역 사이에 의미상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 문제로 인하여 비평가들이 주장하는 견해는 먼저 예수의 탄생이 결코 동정녀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다음으로 사 7:14의 예언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직접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중복된 사건을 예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관하여는 각 단어가 구약 성경에서 사용되어진 예들을 살펴봄으로써 충분히 반증되어진다. 우선 '알마'의 경우는 사전적으로 '젊은 여자'를 의미하지만 그 사용된 문맥상에서는 분명히 결혼하지 아니한 여자를 가리키고 있다(창 24:43; 출 2:8; 시 68:25; 잠 30:19; 아 1:3; 6:8). 또한 '베툴라' 역시 '처녀'를 의미하지만 때로는 남편이 없는 과부를 뜻하기도 한다(욜 1:8). 즉 각 단어의 의미는 단정적이기보다는 문맥에 따라 다분히 포용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 7:14의 '알마'를 '파르데노스'로 번역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며 동시에 마태가 인용한 단어는 전후 문맥에 비추어 '처녀'임이 분명해진다(마 1:18,25; 눅 1:34). 한편 본절과 관련하여 사 7:14을 해석하는데 에는 이사야의 예언이 유다 왕 아하스 당시나 그 후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직접적 예언이면서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까지 연결된다는 중복 예언설과 반대로 그 예언은 직접적으로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예언하는 것이라는 단일 예언설이 있다. 중복 예언설에는 이사야의 예언이 당시 10대 소년인 히스기야 왕이나 아하스 왕의 아들에 대한 것이라는 설(設)과 또는 당시의 처녀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지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사야의 예언에 가장 타당한 해석은 단일 사건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직접 예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70인역(Lxx)의 번역자들에 의해 인정되어진 것이며(이 때문에 '파르데노스'로 번역), 이것은 그 뒤에 나오는 '임마누엘'의 해석에서 더욱 분명해 진다. 이 임마누엘은 곧 같은 예언인 사 9:6,7이나 사 11:1-5과 내용적으로 같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 7:14의 처녀는 마리아이며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를 번역한즉‥‥계시다 함이라. - 마태는 사 8:10을 인용하여 '임마누엘'( )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임마누엘'은 '함께'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임'( )과 '우리와'라는 의미의 '마누'( ), 그리고 '하나님'이란 의미의 '엘'( )이 결합된 형태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은 죄인들에게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의 표현이다(요 1:14). 한편 여기서 '하리라'(칼레수신)는 직역을 하면 '그들이‥‥부를 것이다'라는 의미로 이는 하나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한한 은혜의 체험을 입음으로 증거할 것이라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1:24 요셉이 잠을 깨어‥‥데러왔으나. - 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계시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자주 사용되었다(창 20:6; 삿 7:13; 삼상 28:6 등). 요셉도 꿈속에서 주의 사자로부터 계시를 받았다. 그 계시가 비록 꿈으로 나타난 것일지라도 '의로운 사람' 요셉은 자신의 고민과 갈등을 벗어 버리고 천사의 명령에 즉각 순종하였다. 이미 정혼하였던 마리아를 요셉은 자신의 집에 데려옴으로써 예수의 탄생으로 말미암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는 의지적 결단을 보여 주고 있다. 본장 연구 자료의 인물연구 '요셉'과 '마리아'를 참조하라.
1:25 아들을 첫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 이 기록을 통해서 마태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더욱 확실히 하고 있다. 특별히 여기서 '동침'에 해당하는 헬라어 기본형은 '기노스코'( )로 이는 성적 관계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동사 '야다'( )와 같은 뜻이다 (창 4:1; 삿 11:39; 삼상 1:19; 눅 1:34 등). 하여간 결혼한 부부가 동침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지만 요셉은 의도적으로 동침치 아니하였다. 그 이유로는 창 20:1-8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사건과 같이 하나님의 막으심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 보다는 메시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에 대한 신성함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요셉 자신의 경건한 금욕 생활이 더 타당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후에는 요셉과 정상적인 성관계를 가졌다. 그러므로 카톨릭에서 주장하는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설'은 타당성을 갖지 못한다. 오히려 성경에는 요셉과 마리아가 부부관계를 통해 여러 자녀를 낳았음을 보여 주고 있다(마 12:46,47; 막 3:31,32; 6:3; 눅8:19'20; 요 2:12; 7:3; 행 1:14).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 '예수'의 이름에 대하여서는 21절 주석을 참조하라. 눅 2:21에 의하면 출생 후 8일 만에 예수는 할례를 받고 그 이름이 불려졌다. 물론 '예수님'의 이름은 천사로부터 받았지만 그 부친 요셉에 의하여 호명되어졌다. 즉 요셉은 예수에 대하여 법적인 부친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이로써 예수는 법적으로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게 되었다.
1장 연구 자료
○ 요셉-마리아와 결혼한 의로운 자
1. 인적 사항
① '요셉'은 '하나님께서 더하신다'라는 뜻.
② 다원의 자손이며 베들레헴 출신(마 1:20).
③ 예수의 부친이며, 마리아의 남편(마 1:16).
④ 나사렛 사람이며, 직업은 목수(마 2:23; 13:55).
⑤ 예수 외에 네 아들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과 여러 딸들을 둠(마 13:55,56).
2. 시대적 배경
가이사 아구스도(B.C. 27-A.D. 12년)와 디베료 가이사(A.D. 12-37년)가 로마 제국의 통치자로 있었으며, 유대에서는 헤롯 대왕(B.C. 37-A.D. 4년)과 헤롯 안디바(A.D. 4-39년)가 분봉왕으로 통치하던 시기의 인물, 이 시기에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격동적인 세태의 물결을 따라 이리 저리 몰려다니거나 방황하였으나 요셉은 나사렛이란 조그만 시골에서 목수 일에만 전념했던 소박하고 신실한 인물이었다. 신약 총론 '신약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보다 참조하라.
3. 성품
① 정혼한 마리아가 동거하기 전에 잉태한 사실을 알고 가만히 끊고자 한 것으로 보아 의롭고 이해심이 많은 자(마 1:18,19).
② 주의 사자의 지시대로 마리아와 결혼하고, 천사의 지시대로 헤롯 대왕을 피해 애굽으로 떠난 것으로 보아 주의 말씀만을 신뢰하고 순종한 자(마 1:24; 2:13-15).
③ 구약 규례대로 난지 8일된 예수께 할례를 행하러 예루살렘에 갔고, 해마다 유월절을 지킨 것으로 보아 주의 법을 사랑한 자(눅 2:21-24,41).
④ 예수의 탄생에 대한 계시를 받았으면서도 목자들과 시므온의 고백을 기이하게 여기고 성전에서 찾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것으로 보아 때로 영적인 깨달음이 더딘 자(눅 2:18,33,50).
4. 주요 생애
결 혼 이 전 | ||
출생 | - | |
목수가 됨 | - | 마 13:55 |
마리아와 정혼함 | B.C. 5년 | 마 1:18 |
마리아의 잉태 소식 들음 | 〃 | 마 1:18 |
마리아와 파혼 결심함 | 〃 | 마 1:19 |
꿈에 예수 탄생의 계시 받음 | 〃 | 마 1:20 |
마리아와 결혼함 | B.C.5년 | 마 1:24,25 |
결 혼 이 후 | ||
호적하러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에 감 | B.C. 4년 | 눅 2:4,5 |
예수 탄생 | 〃 | 눅 2:7 |
목자들의 방문 받음 | 〃 | 눅 2:15-20 |
동방박사의 방문 받음 | 〃 | 마 2:11 |
예수에게 정결례를 행함 | 〃 | 눅 2:21-20 |
꿈에 헤롯을 피하라는 계시받음 | 〃 | 마 2:13 |
애굽으로 피난감 | 〃 | 마 2:14 |
헤롯 사후(死後) 나사렛으로 귀환함 | ||
B.C. 3년 | 마 2:23 | |
12살된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감 | A.D. 8년 | 눅 2:41,42 |
예수를 잃어버렸다가 성전에서 찾음 | 〃 | 눅 2:눅-46 |
죽음 | A.D. 14년경 |
5. 구속사적 지위
① 온전한 순종으로 인해 예수의 육신의 아버지가 되는 축복을 받은 자(마 1:24).
② 다윗의 혈통을 통해 메시야를 보내시겠다 하신 하나님의 언약 성취 도구로 사용되는 축복을 받은 자(마 1:1,16).
6. 주요 공적
① 주의 뜻에 순종하여 잉태한 마리아와 결혼(마 1:24).
② 예수를 낳기까지 마리아와 동침치 않음(마 1:25).
③ 천사의 지시대로 순종하여 애굽으로 떠남으로써 아기 예수님의 생명을 구함(마 2:13-15).
④ 어린 예수를 잘 양육함(눅 2:52).
7. 주요 실수
① 예수님의 신적 능력에 대해서 다소 이해가 부족했음(눅 2:40-50).
8. 평가 및 교훈
① 요셉은 마리아가 자신과 동거하기도 전에 임신한 상황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해결하려 하였다(마 1:18,19). 이처럼 불쾌한 일을 당했을 때 남의 허물을 크게 떠들지 않고 조용히 해결하려는 그의 의로움과 넓은 이해심은 그가 성숙한 신앙인이었음을 보여 준다. 아울러 이는 오늘날 내 문제는 '쉬쉬'하면서도' 다른 이의 허물에 대해서는 관용치 못하고 크게 문제화시키는 맡은 현대인에게 깊은 교훈을 준다.
② 요셉은 주의 사자로부터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을 듣고는 아무런 의심 없이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마 1:24).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인간의 이성과 과학으로 입증될 수 있는 부분만을 믿으려하지 않는가? 그러나 진정 인간의 논리와 과학으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다 이해할 수 없다. 요셉이 마리아의 성령 '잉태를 믿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을 때 그가 예수의 육신의 아버지가 되는 축복을 받지 않았는가? 실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히 11:6).
③ 요셉의 신앙은 자발적이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는 의로운 신앙이었다(마 1:24,25; 2:13-15). 그리하여 그는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항상 하나님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참으로 성도의 순종을 제사보다 기뻐하시는(삼상 15:22)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에게 형통의 축복을 허락하시며, 주 안에서 기쁨으로 살도록 인도하신다(신 28:1-6).
9. 핵심 성구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 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 1:24'25)
마리아-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어머니
1. 인적 사항
① 마리아는 '높여진 자'라는 뜻. 히브리어로는 '미리암'
② 유다 지파, 다윗 가문 출신(눅 1:32).
③ 나사렛 북쪽 세포리스 출신.
④ 아론의 자손인 엘리사벳의 친척(눅 1:36).
⑤ 목수 요셉의 아내,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눅 2:4-7).
⑥ 예수 외에 네 아들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과 여러 딸들을 둠(마 13:55,56; 막 6:3).
2. 시대적 배경
디베료 가이사(A.D.12-37년)가 로마 황제로,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헤롯 안디바가 유대 분봉왕으로 있던 시기의 인물, 예수의 생애 전체에 걸쳐 가장 큰 사랑으로 그를 돌보았던 예수의 육신의 어머니이자 가장 신실한 예수의 추종자였음.
3. 성품
① 아직 남자와 동침치 않은 처녀의 몸으로 천사의 수태고지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아 신앙을 위해서는 자기 고통을 각오할 정도로 확고한 신앙을 소유한 자(눅1:26-38).
② 율법의 전통에 따라 예수님께 할례와 정결례를 행하고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으로 보아 주의 법도를 사랑하는 자(눅 2:21-51).
③ 목자들의 증거와 성전에서 찾은 예수님의 말을 마음에 두고 생각한 것으로 보아 사려 깊고 영적인 민감함을 지닌 자(눅 2:19,51).
④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이면서도, 혈연적 정에 얽매이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음의 주로 받아들일 정도로 순종적이고 신실한 자(요 2:5; 행 1:14).
⑤ 곤경에 처한 혼인 잔치 집의 주인을 위해 예수께 기적을 요청할 정도로 사랑이 많고 온유한 자(요 2:3).
⑥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하인들에게 예수님 지시에 무조건 순종할 것을 지시할 만큼 예수의 신성을 확고히 믿은 자(요 2:5).
⑦ 예수를 잘 양육하고, 이후 예수의 공생애 기간 동안과 임종 때까지 예수님께 세심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을 정도로 예수에 대한 공경심과 사랑이 뛰어난 자(눅 2:52: 요 19:25-27).
4. 구속사적 지위
①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는데 쓰여진 그릇의 역할을 한 자(눅 1:30' 31).
② 예수의 육신의 어머니로서 만세에 복이 있다 일컬음 받은 자(눅 1:48).
5. 주요 공적
① 천사를 통해 알려주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함(눅 1:38; 2:7).
② 예수를 잘 양육하고' 혈연적 관계에 매이지 않음(눅 2:52).
③ 그리스도의 죽음의 순간까지 동행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킴(요 19:25-27).
6. 주요 실수
① 모정 때문에 공생애 사역중인 예수를 염려하며 그의 사역을 만류함(막 3:31-35).
7. 주요 생애
예수 탄생 이전 | ||
출생 | - | |
나사렛에서 거주 | - | 눅 1:26 |
요셉과 정혼 | B.C 5년 | 눅 1:27 |
천사로부터수태고지(受胎告知) 들음 | 〃 | 눅 1:27-37 |
친척 엘리사벳 방문 | 〃 | 눅 1:40 |
요셉과 결혼 | 〃 | 마 1:24 |
요셉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호적하러 감 | B.C 4년 | 눅 2:1-5 |
예수 출산(出産)함 | B.C 4년 | 눅 2:5-7 |
예수 탄생 이후 | ||
목자들의 방문 받음 | B.C 4년 | 눅 2:16-19 |
동방 박사들의 방문 받음 | 〃 | 마 2:1-12 |
예수님에게 정결례 행함 | 〃 | 눅 2:22 |
헤롯의 유아 학살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 | 〃 | 마 2:13-15 |
헤롯 사후(死後) 나사렛으로 귀환 | B.C 3년 | 마 2:23 |
유월절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 방문 | A.D 8년 | 눅 2:41,42 |
예수를 잃어버렸다가 성전에서 발견 | 〃 | 눅 2:45-40 |
요셉의 사망 | AD. 14년 경 | |
예수의 부양받음 | AD. 14-27년 | |
예수의 공생애 이후 | ||
가나 혼인 잔치의 이적 목격 | AD. 27년 | 요 2:1-10 |
모정으로써 사역중인 예수를 만류 | - | 막 3:21,31-35 |
예수의 죽음 목격 | AD. 30년 | 요 19:25-27 |
예수의 부활 목격 | 〃 | 눅 24:10 |
예수의 제자들과 함께 기도에 힘씀 | - | 행 1:14 |
사도 요한의 봉양을 받음 | - | 요 19:27 |
죽음 | - |
8. 평가 및 교훈
① 나사렛에서 평범하게 자라던 마리아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 출산케 하시는 은혜를 내리셨다(눅 1:26-38; 2:1-7). 이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꾼의 선택 여부가 인간적인 학력, 지위, 빈부, 권력의 유무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에 따라서만 결정되어짐을 교훈한다. 참으로 마리아는 하나님께 크게 은혜를 받은 복된 여인이다. 그러나 마리아만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 모든 성도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의 지극하신 사랑과 은혜로써 우리를 구원하시고(엡 2:8) 사역을 맡기셨다. 이에 우리는 늘 그 은혜에 감사하며 복음에 빚진자의 심정으로 겸손하게 주의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②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하였지만 아직 그와 동침치 않은 입장에서, 더욱이 유대의 엄격한 관습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통한 예수님의 잉태를 믿음으로 받아들였다(눅 1:26-38). 이는 하나님의 뜻이 귀중한 줄을 알아 자신의 고통 감수와 인내를 전제로 하며 그 뜻에 겸손히 순복하는 실로 대단한 결단의 모습인 것이다. 이와 같은 헌신의 결단이 있었기에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Incarnation)하시는 데 쓰여진 그릇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리아의 영광에 앞서 그녀의 놀라운 헌신의 결단을 기억해야 하겠다.
③ 자신의 메시야 잉태를 예고 받은 마리아는 비천한 계집종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라며 그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였다(눅 1:46-48).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당신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항상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주의 은혜와 영광에 대한 찬양을 기뻐하신다(엡 1:5,6).
④ 마리아는 예수와의 혈연적 관계에 매이지 않고' 어머니로서의 모든 고통을 감수하며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참으로 그녀는 아들에 대한 개인적 사랑을 극복하고 믿음의 어머니로서 끝까지 신실한 믿음을 나타냈던 것이다(눅 2:51; 요 2:4,5).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 예수를 온전히 나의 구주로 영접하기 위해 감수해야 할 고통은 어떠한 것인가?
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잘 알던 마리아도 인간적인 생각에 치중하게 될 때' 공생애 사역중인 예수를 염려하여 그를 붙들려 하였다(막 3:21,31-35). 이처럼 우리들도 나의 생각에 치중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때로 염려하며 한정시키고 있지는 않는가?
⑥ 예수가 부활 승천한 후 마리아는 제자들과 힘써 기도 생활을 행하였다(행 1:14). 이처럼 그리스도를 영접한 우리 성도들은 주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기도 생활에 힘씀으로써 하나님이 부르실 때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어야 하겠다(계 22:20).
9. 핵심 성구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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