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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성령 강림 약속과 예수의 승천 및 새사도 맛디아의 선출
구속사적 개관
사도행전은 예수 성육신(成肉身) 이전의 구약은 물론 예수의 성육신으로 개시될 같은 신약시대이기는 하되 임마누엘(Immanuel) 예수께서 직접 세상에 계시던 때와는 또 다른 상황의 구속사가 개시되는 시점에서 그 막을 연다. 즉 초림하신 예수께서 십자가 수난을 통하여 구속 사역은 이미 성취하셨으나 그 최종 실현인 천국 구원은 당신의 재림으로 도래할 세상 끝날 이후에 비로소 이루어질 것을 다시금 새 언약으로 주시고 승천하심으로써 야기된 전혀 새로운 구속사적 상황에서 그 막을 연다.
실로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한 구속 사역의 성취를 주 내용으로 하는 구약(舊約)은 예수의 재림을 통한 구속 사역의 실현 곧 천국의 완전한 실현을 주 내용으로 하는 신약(新約)으로 확장 계승되어 구속사의 시대가 격변하였다. 그리하여 초림하신 구속주 예수의 구속 사역의 성취로 천국이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제 오고 오는 세대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자가 주의 구속 사역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구원을 얻을 충분한 시간을 주시기 위하여, 구속 사역이 최종적으로 실현되는 장(場)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천국이 아직 완전히 도래하지는 않았다. 이런 중간기적 상황에서 세상과 천국의 갈등은 더욱 첨예하게 되었다. 더욱이 이제 성육신초림과 구속 사역의 완수로 구약을 성취하시고 신약을 여신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신 반면에 성령(聖靈, Holy Spirit)이 이 땅위에 강림하시게 되었다(요 16:1-15; 행 2:1-4). 곧 제 1위 성부 하나님(God, The Father)이 수립하신 인간 구속의 법을 제2위 성자 하나님(God, The Son)이신 예수께서 이제 막 성취하신 상황에서 제3위 하나님이신 성령(God, The Holy Spirit)께서 그 구속 사역이 최종 실현되는 세상 끝날까지 이 세상에서 성도와 함께 하시고자 오순절 강림사건을 통하여 이 땅 역사위에 강림하시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예수께서 생전부터 당신의 사후 당신의 사역과 복음을 증거하여 세상 종말까지의 신약 시대에 오고 올 세대의 택한 백성의 신앙의 중심지가 될 교회(敎會)를 건립하도록 선택하시고 훈련시키신 주의 사도들(Apostles)이 주의 약속대로 강림하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초대 교회 건립이라는 구속사의 역동적인 한 시대를 개시하게 된 시점이 도래하였다.
사도행전은 바로 이런 시점에서 그 막을 열어서 복음의 실체이신 예수께서 부활 승천한 시점에서 전날 주님이 약속하신 제 3위 하나님이신 성령의 강림과 인도하시는 사역으로 주의 사도들이 주님의 구속(救贖)의 복음을 멀리 전하여 이를 믿고 회개하여 구원 얻을 자들의 모임인 교회가 폭발적으로 태동 성장하는 과정의 역사를 기록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도행전은 외면적으로 사도들을 통한 초대 교회의 태동 과정의 역사 기록이지만 그 이면의 실질적 원동력은 제 3위 하나님이신 성령의 사역을 통한 교회 건립 과정의 기록인 바, 본서는 사도행전인 동시에 성령행전이기도 하다.
한편 본장은 이 같은 책인 사도행전의 전반부로서 예수의 승천 이후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먼저 주의 사도와 기타 제자들이 변화를 받아 신약 선민(選民)인 우리 성도들의 중심지인 교회가 구약 선민의 수도였던 바로 그 예루살렘(Jerusalem)에서부터 폭발적으로 태동되기 시작하였던 격변기의 역사를 기록한 제1-7장까지의 일련 기사의 개시 부분이다.
이런 문맥하의 본장은 예수의 승천과 오순절 성령 강림 사이의 전환기적 상황의 사건들을 보도하고 있다. 즉 예수의 부활 및 승천 기사의 재강조와 주님은 이미 승천하셨으나 아직 성령강림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과도기적 상황의 사건들을 요약 보도함으로써 예수의 승천으로 종결된 누가복음의 역사 기록과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사도행전의 역사 기록을 이어주는 도입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좀 더 상술하면 다음과 같다. 복음의 실체이신 예수의 구속 사역을 기록한 사복음서 중 누가복음서와 예수의 승천 이후 강림하신 성령의 인도로 주의 사도들이 주의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건립한 과정의 역사를 기록한 사도행전의 저자는 공히 누가였다. 즉 누가복음서와 사도행전은 한 저자인 누가에 의하여 기록된 것으로서 각각 예수의 초림에서 승천까지, 그리고 주의 승천에서 초대교회의 완전한 태동까지의 연속되는 역사의 전 ․ 후를 상 ․ 하권 식으로 기록한 책들이었다. 이에 누가는 먼저 본장 전반부인 1-11절에서는 누가복음의 역사를 종결하고 다시 그의 새 책 사도행전을 시작하기 위하여 먼저 누가복음의 저자이기도 한 자신이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함을 밝힌다(1-2절). 그리고 일단 누가복음 말미의 주의 부활과 승천 당시의 기사(記事) 중 주께서 제자들에게 선교명령과 아울러 성령 강림의 약속을 주신 사실을 강조하여 다시금 요약 제시함으로써 이전의 누가복음과 이제 새로 기록되는 사도행전은 서로 연결되는 책임을 강력히 암시하는 동시에 이제 누가복음의 기록을 마치고 새로이 사도행전의 역사 기록을 자연스럽게 시작하는 계기를 만든다(3-11절). 한편 이처럼 일단 누가복음 말미의 사건을 재정리한 후 저자는 다시금 후반부 12-26절에서는 예수의 승천 이후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 이전의 주의 사도들의 행적을 요약함으로써 이제 다음 장에서부터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시작되는 본격적인 사도행전의 역사에 대비한다. 이런 후반부는 먼저 12-14절이 예수의 승천 이후 오순절 성령 강림까지의 대략 열흘 동안의 과도기에 주의 사도들이 성령 강림 약속을 기다리며 전심으로 기도하였음을 먼저 개략적으로 보도한다. 끝으로 15-26절은 이런 과도기 중에 있었던 가장 큰 사건으로서 주의 생전부터 당신의 부활 승천 이후 이 땅에 교회를 세운 자들로 특별히 선정되고 훈련된 12사도 중의 가룟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후에 가룟 유다가 처참한 최후를 맞아 한 자리의 궐석(關席)이 생겼으므로 제비를 뽑아 새로이 맛디아(Mathias)를 사도로 선출하여 12사도의 자리를 충원하였음을 보도한다.
구속사적 관점에서 1-11절의 전반부를 개관할 때 우리는 다음 세 가지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먼저 저자 누가가 주께서 부활 이후 아직 이 땅에 계실 때나 승천 당시에도 거듭 성령의 약속을 주셨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4-5, 7-8절). 이는 결국 다음 장에 기록된 오순절 성령 강림과 그 이후 사도행전 전체에 기록된 모든 성령의 사역은 저 혼자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 예언한 말씀의 성취로서 예수의 사역과 연속된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태초부터 세워진 성부 하나님의 섭리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역은 모두 다 성부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에 기인한 것으로서 태초부터 종말까지 연속되는 통일성을 가지고 전개되어 왔고 또 세상 끝 날까지 전개되어 가는 것임을 새삼 확인한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에 의하여 태초부터 종말까지 전개되는 구속사의 실체, 이 얼마나 위대한 진리인가!
둘째로 본문에서 우리는 주님이 성령의 인도까지 보장해 주시면서 거듭 주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선교(宣敎)의 명령을 주신 사실에 주목해 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된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자 성자의 지위를 버리시고 성육신(Incarnation) 강림하시어 구속 사역을 이루셨다. 그리고 당신의 구속의 복음을 전할 것을 당신의 사도들에게 명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도들이 성령의 도움으로 전한 복음을 듣고 제자가 된 자가 다시금 이를 세상에 증언하도록 함으로써 결국 주의 복음이 주의 제자들의 증언과 성령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로 온 세상 전시대의 택한 성도에게 전해지도록 섭리하셨다. 그리하여 이 선교의 명령에 순종하여 세상의 핍박과 유혹에도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까지 굴하지 않은 사도들과 믿음의 선진(先進)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기독교의 복음은 땅 끝까지 그리고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져 바로 오늘 나에게 이르렀다. 그러므로 이제 주님이 당신의 사도들에게 주신 명령은 바로 나에게 주어진 명령이기도 한 것이다. 거룩하고 순결한 주의 보혈의 공로를 믿음의 선진들의 증언을 통하여 듣고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믿어 절대 영원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나는 그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하여 그리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하여 선교의 대열에 동참하여야 한다. 실로 선교의 명령은 구속사가 끝나는 바로 그 순간까지 계속 수행되어야 할 가장 명시적이고 역동적인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딤후 4:2).
셋째는 예수님께서 재림의 약속을 남기시고 승천하셨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의 구속주가 되시고자 이 땅에 성육신 강림하셨던 주님은 본래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절대 초월 자였던 제 2위 성자 하나님이셨음(마 27:53,54)을 단적으로 입증하는 사건이었다. 그리하여 이는 이런 주님이 행하신 구속 사역은 절대적 확실성이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그리고 성도로 하여금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남기신 약속대로 이제 당신이 성취하신 구속 사역을 전 우주와 인간에 대한 심판을 마치신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천국을 여심으로 최종 실현시키고자 오실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게 해 준다. 성도는 실로 승천하신 주님과 연합하여 이미 그 신분상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이며 또한 천국의 완전한 도래를 대망하는 자이다.
다음 예수 승천 이후 오순절 성령 강림까지의 중간기의 상황을 개략적으로 보도한 12-14절에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 동안에 사도들과 제자들이 보혜사(保惠師)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주의 약속을 믿고 예루살렘에 모여 흩어지지 않고 기도하며 성령이 강림하여 오시기를 기다렸음에 주목하게 된다(14절). 그리고 사도행전 전체를 볼 때 이러한 주님의 약속은 이루어졌고 나아가 강림하신 성령의 사역으로 놀라운 초대 교회의 승리의 역사가 전개되었음을 새삼 확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후의 구속사적 약속 곧 주의 재림과 천국 구원의 약속도 필히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초대 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의 자세를 본받아 교회를 중심으로 기도하며 그 날을 대비해야 함을 깨닫는다.
끝으로 본장 마지막 단락은 사도들이 예수 승천 이후 성령 강림 이전의 과도기에 행한 주요 사건의 하나로 소개된 배반자 가룟 유다의 죽음으로 궐석이 된 12사도의 자리를 보충하여 초대 교회의 근간이 된 사도의 조직을 확립한 사건이 제시된다. 이는 하나님은 당신의 구속사를 절대 주권을 가지고 홀로 전개해 나가시나 그 과정에 있어서는 필히 인간 성도들의 순종과 사역을 통하여 구속 사역을 전개하시는 바 교회와 성도는 조직 정비, 정책 수립, 자질 향상 등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도 경주해야 함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구속사의 전개에 도구로 동참하는 것은 성도의 의무이자 최대의 특권이다. 기타 가룟 유다의 죽음, 새 사도 맛디아의 선출과정, 12사도직의 이례 등에 대해서는 해당 강해주석과 본장 자료노트 '사도의 이해'와 행 서른 특별자료 12사도의 행적'을 참조하라.
외울 말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서언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부활 이후 주의 행적 회고
3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주의 승천 사건 회고
6 ○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는 사도와 무리들
12 ○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새 사도 선출 회의
15 ○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본문 & 자료노트
주요주제-1:15-26 사도(使徒)의 이해
사도들의 행적과 역할은 비단 사도행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들과 예수님과의 관계의 원형을 제시하는 사복음서, 사도로서의 권위를 배경으로 쓰여진 서신서 전반에 두루 미친다. 이에 사도직의 기본 사항을 요약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정의
사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스톨로스'( )는 문자적으로 '왕이나 권세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특정 공무를 수행하기 위해 파송 받은 자'란 의미이다. 따라서 넓은 의미로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파견하신 구약 시대의 모세(출 6:11) 엘리야(왕상 18:1) 등과 같은 선지자 그리고 현재도 주의 복음 선교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교회로부터 파견된 주의 종들도 사도라고 표현될 수도 있다. 또 실재로 초대 교회 시대에도 예수님의 12사도 및 바울 사도와 유사한 권위를 가진 예수의 형제 야고보(고전 15:7; 갈 1:19)와 전도자 바나바(행 14:4,14)도 사도라 칭함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 신학적으로 엄밀히는 사도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초대 교회의 설립자로 임명받은 예수의 생전의 12사도와 예수 승천 이후의 바울 사도만을 가리킨다(눅 6:13; 행 9:15). 이어 본고에서는 이상의 광의의 사도직이 아니라 협의의 사도직만을 다루기로 한다.
2. 직무
이에 대해서는 본장 자료노트의 도표를 참조하라.
3. 특징
교회란 예수의 구속 사역의 복음을 믿는 성도들의 지상 공동체로서 예수의 승천 이후 오순절 성령 강림을 기점으로 태동된 것이다. 사도란 예수를 직접 목격한 증언자요 또한 예수로부터 직접 위임된 권위를 가지고 바로 이런 교회의 초대 창설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위임된 자들이다. 이런 사도직은 신적 권위성과 함께 교회가 창설된 초대 교회 시대에 국한된 직이라는 비상직(非常職)으로서의 특징을 갖는다. 그리하여 이런 사도직을 보유한 사도들은 초대 교회의 기본 조직과 교리를 수립하였고 또한 후대에 신앙의 표준이 된 복음서, 사도행전, 서신서 및 계시록 등 신약 성경 전체를 성령의 영감으로 직 ․ 간접으로 기록하기도 하는 등 중대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한편 카톨릭 교회에서는 이처럼 특정교회가 아니라 교회 전체의 설립자가 된 사도들의 직위를 교황을 비롯한 신부(神父=귀신의 아비)들이 계승했다고 주장하나 이는 초대 교회 창설이라는 특정하고도 비상한 임무를 위해 예수님이 직접 수여한 사도직의 본질을 자신들의 교권 장악을 위하여 곡해한 오류로서 신학적 ․ 역사적 근거가 전혀 업다.
4. 의의
주 예수님으로부터 교회의 설립이라는 위대한 직무를 부여받은 사도들은 자신의 사상이나 권위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복음만을 가르치며 교회의 종으로 헌신하였고 마침내는 대부분이 순교하였다. 그리하여 바로 이런 사도들의 피 어린 증언과 신앙의 전통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요 교회의 일원이 된 것이다. 이에 우리도 먼저는 예수를 직접 목격한 사도들이 직접 예수 복음을 증거했다는 점에서 그 복음의 진실성을 새삼 깨닫고 나아가서는 사도들의 자세를 본받아 나 스스로 내 삶의 현장에서 복음의 사도가 되어야 하겠다.
주요주제-1:3-11 예수 부활의 역사성과 부활 후의 행적 요약
요 27장 연구자료 참조
주요주제-1:5, 세례의 이해
행 8장 연구자료 참조
도표-1:8,22 사도의 7대 사역
예수의 12제자들은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부터 다시 재림하실 때 까지 전 신약 성도들의 신앙과 생활의 중심이 되는 교회를 설립하도록 미리 세움 받은 사도(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들이다. 이제 신약 성경에 제시된 바 사도의 7대 사역을 한 곳에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1. 복음 전파(마 10:5-7; 막 3:14)
2. 예수님의 역할(행 1:8,22)
3. 교회 설립(엡 2:7)
4. 말씀 교육(행 2:42)
5. 교회 감독(행 15:4)
6. 성도에 대한 권징(고전 5:1-5)
7. 성경 기록(엡 3:1-4)
원어연구-1:14, 기도
한글개역 성정에는 단지 '기도'라는 한 단어로 표현되어 있으나 '기도'에 해당하는 헬라어에는 두 단어가 있다. 즉. '프로슈케'와 '테에시스'이다. 먼저 '프로슈케'는 '소원하다'는 뜻의 '유코마이'에서 유래한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가리킨다. 즉 이때의 기도는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간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위한 자신의 신앙 고백 찬양 등을 드리는 기도를 가리킨다.
한편 '데에시스'는 '데오의 중간태인 '데오마이'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데오'는 '묶다' 또는 '조이다'라는 의미이므로 '데오마이 '의 기본 의미는 '스스로 조이다'이고, 여기에서 '(졸라매듯) 구하다', 또는 '탄원하다'라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그리고 '데오마이'의 명사형인 '데에시스'는 일반 헬라어 문헌에서 '궁핍'이나 '빈곤'을 가리키기도 한다. 즉 이것은 '어떤 것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궁핍한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데에시스'는 '자신의 절박한 형편에 대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탄원'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어원적 배경에서 보면 '프로슈케'는 기도에 있어서 성도의 헌신적인 면을 강조하는 용어인 반면에 '데에시스'는 개인적인 곤궁을 강조하는 기도와 탄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기도에는 자신의 문제 해결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도 있지만 하나님께 자신의 헌신을 다짐하고 찬양을 드리는 기도도 있다.
한편 본문에서 쓰인 '기도'에 해당하는 단어는 '데에시스'가 아니고 '프로슈케'이다. 이는 당시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 강림을 기다리며 기도하던 사람들은 단지 자신들의 필요를 위해서만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헌신을 다짐하며 찬양을 드리는 기도에 전혀 힘쓰고 있었음을 알게해 준다. 이같이 하나님께 대한 헌신적인 태도는 오늘날에도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성도들에게 절대 요청되는 것이라 하겠다.
주요주제-1:5,8 성령 세례와 성령 내주 및 성령 충만
행 9장 자료노트 참조
주요주제-1:8 초대 교회 선교사
행 서론 특별자료 참조
지리배경-1:1-1:12, 감람산
막 13장 자료노트 참조
신학용어: 1-1:12, 안식일
신 5장 자료노트 참조
인물연구- 1:25, 가룟 유다
마 26장 연구자료 참조
도표-1:26, 12사도의 행적 본권
행 서론 특별자료 참조
1:1-11 새 책을 시작하는 말
사복음서(the Four Gospel)가 복음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도하고 있다면 사도행전(the Acts)은 과거의 주의 약속대로 임하신 성령의 인도로 주의 복음을 널리 전하여 교회를 세운 사도들의 사역을 기록한 책으로서 결국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서로 연속되는 전 ․ 후의 역사를 보도하고 있다 하겠다. 한편 사도행전은 직접적으로는 사복음서 중에서도 누가복음 함께 한 저자 누가에 의하여 집필된 것으로서 서로 상 ․ 하권의 관계에 있는 책이다.
이러한 사도행전의 첫 장인 본장에서 저자 누가는 완전 독립된 다른 책들에서처럼 본격적인 서론을 쓰기보다는 간단히 사도행전의 저자 또한 누가복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누가 자신인 사실만 간략히 밝힌다(1-2절). 그 후 누가복음 말미에 약속되었던 주의 부활 및 승천 기사를 주의 성령 강림의 약속을 중심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상술한다(3-11절). 그리고 주님의 승천(昇天) 이후부터 오순절 성령 강림(降蘿) 이전의 대략 열흘 동안의 과도기적 상황과 그 기간에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이었던 가룟 유다의 죽음으로 결원(缺員)이 난 12사도의 자리를 충원키 위해 새 사도 맛디아를 선출한 사건을 간략히 보도한다(7-26절). 이런 내용으로 사도행전의 첫 장을 기록함으로써 저자 누가는 예수님의 승천 기사로 끝난 누가복음과 예수님의 승천에서 시작되어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본격적으로 개시되게 되는 사도행전 기사가 연속된 것임을 보여 주는 동시에 다음 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본격 개시되는 사도들의 초대 교회 건립 과정의 역사 기록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도입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누가복음과 본서를 이어주는 연결부로는 도입부의 역할을 하는 본장 중에서도 첫 단락인 본문은 이전 누가복음의 기록과 이후 본서의 기록을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일단 누가복음의 기록을 종합 요약하고 특히 그 말미의 기록을 다시 한 번 상술함으로써 머리말의 역할을 대신하는 단락이다. 이란(?) 본문의 세부 내용을 요약하자면 먼저 누가복음의 저자이기도 한 자신이 누가복음과 서로 연속되는 역사를 기록한 본서의 저자라는 사실과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승천까지를 기록한 누가복음의 기록 범위를 일단 밝힌다(1-2절). 그 후 누가복음 말미에 약술되었던 주의 부활 승천 기사 중 예수님의 부활 이후의 행적(3-5절)자(?) 실수의(?) 승천 장면(6-11절)을 주께서 거듭하여 당신의 사도들에게 성령강림의 약속과 복음 전파의 명령을 주셨다는 측면에서 집중 강조하여 다시 한 번 부연 설명하고 있다.
이런 본문에 담긴 주의 승천과 부활 각 사건은 실로 그 각각이 구속사적 대사건으로 거기에 담긴 의미를 고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 사건 자체로서가 아니라 누가복음과 본서 역사의 연결부로서의 성격이 강하므로 그 세부 내용의 의미는 해당 구절 주석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저자가 이런 사실을 보도할 때 가장 강조한 측면인 성령 강림의 약속과 선교 명령의 의미 고찰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본 문단 뿐만 아니라 구속사적 관점에서도 중대한 문제이어서 본장 구속사 개관 란에서 상술하였는바 본장 구속사적 개관을 필히 참조하라.
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데오빌로여. - 데오빌로(데오필레)는 본서의 전편이라 할 수 있는 누가복음(눅 1:3)에서도 수신자로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각하'라는 존칭만 빠져있다(Bruce). 이 사람이 누구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과 견해가 있지만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고 있다. 다만, 당시 총독 이상의 관직자에게만 붙여지던 '각하'라는 존칭이 그에게 사용된 것으로 보아서 그를 당시 유대 지방의 총독인 '벨릭스'(행 23:6)나, '베스도'(행 25:1; 26:25)였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Streeter). 또 이 이름의 어원이 '하나님의 사랑'(데오필로스)이므로 이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 혹은 '하나님의 친구', 즉 모든 성도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Bruce). 그러나 불특정 다수에게 '각하'라는 존칭이 부여될 수 없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없다. 어째든 누가복음의 서두(눅 1:3,4)와 관련해 볼 때 데오빌로는 이미 기독교에 대한 상당한 이해와 관심을 갖고 있는 실제 인물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눅 1:3 주석 참조.
먼저 쓴 글에는. - 누가는 자신이 이미 쓴 누가복음을 염두에 두고 '먼저 쓴 글'(톤 맨 프로톤 로곤) 이라는 말을 쓸 때 정관사 '톤'을 사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여기서 정관사 '톤'(은 선행되는 어떤 것을 지칭하기 때문이다(Longeneker). 따라서 이는 전통적으로 사도행전을 누가가 썼다고 하는 해석을 뒷바침해 주는 구절이라고 볼 수 있다. 행 서론 '저자와 기록 연대' 참조.
예수의‥‥시작하심부터. - 2절의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이란 말과 합하여 누가복음의 내용(또는 주제)을 밝혀 주고 있는 구절이다. 이는 또한 누가복음의 후편인 본서가 그 이후의 사건들을 다를 것임을 간접적으로 나타내 준다. 한편 본절의 '시작하다'(에륵사토)는 '아르코마이'( )의 현재 부정사형이다. 따라서 이는 예수님께서 땅에 오셔서 시작하셨던 사역과 가르침을 그의 제자들을 통해 지금도 계속 수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Toussaint).
1: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성령으로 명하시고. - 이것은 주님의 모든 사역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제자들의 복음 전파 사역 역시 성령에 의한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주님의 마지막 지상(至上) 명령(마 28:18-20; 막 16:15-18; 눅 24:44-49)에서 성령으로 명하셨다는 기록은 없지만 예수의 사역 전체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서 이루어졌고(눅 3:21,22; 4:1,14,18; 10:21; 행 1:4; 10:38), 구약의 예언대로(사 61:1) 그분은 항상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시면서(요 20:22 주석 참조) 제자들의 모든 사역이 성령으로 말미암을 것임을 친히 강조하셨다(8절). 누가는 이러한 성령의 사역을 본서에서 특별히 강조를 하고 있다(행 1:8,16; 2:4,14-41; 8:29; 9:31; 10:45).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으로도 불린다.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 - 1절의 '예수님의‥‥'와 합하여 그분의 지상(地上) 사역을 가리키는 구절이다. 한편 본절에서 '승천한다'(아넬렘프데)는 '내가 들어올리다'(아날람바노)의 수동태형으로서 '하늘로'라는 의미는 내포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70인역(Lxx)에서 엘리야의 승천 장면을 기록한 것과(왕하 2:11), 다른 곳에서도(11,21절; 막 16:19) 같은 단어로써 승천을 묘사한 것에 비추어 승천(昇天)으로 번역함이 자연스럽다(Hervey).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께서 십자가 수난을 당한 때로부터 승천하시기 전까지의 약 40일간의 행적을 언급하고 있는 구절이다.
해 받으신 후에‥‥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으로부터(행 3:18; 17:3; 26:23) 승리하시고 제자들에게 부활의 증거를 직접 보여 주었음을 뜻한다.
확실한 많은 증거. - 이 증거들은 눅 24:13 이하의 사건들과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신 것'(9절) 또한 베드로의 증언(행 10:39-41)과 바울의 증언(고전 15:5-8) 등을 가리킨다.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까지 40일 동안을 세상에 계셨다는 기록은 이곳에만 나타나고 있다. 그 40일 동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10여 차례 나타나셨는데, 항상 그들과 함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셨다가 다른 곳으로 가시곤 하셨다. 이때에 주님은 자신의 육체적 부활을 입증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해 주셨다(마 28:1-10; 막 16:9-18; 눅 24:13-50; 요 20:14-31; 21: 1-25).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 이스라엘 민족은 일찍부터 하나님을 그들을 다스리시는 '왕'(멜렉)으로 여겼고, 그분이 통치하시는 전 영역을 '그분의 나라'로 인정했다(시 103:19; 단 2:44-45; 7:13-14). 이러한 사상은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과 연관되어 신약에서도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적인 것(마 12:28; 눅 17:20; 17:21)과 미래적인 것(마 25장)으로 보다 세분되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중심 주제였을 뿐만 아니라(마 20:1-16; 눅 17:20,21), 제자들의 사역에 있어서도 중심 주제였다(행 8:12; 19:8; 20:25; 28:23,31), 이와 관련해서는 본서 눅 서론 특별자료, '하나님 나라의 이해'를 참조하라.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사도와 같이 모이사. - 여기서 '사도'는 예수님의 12제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보다 넓은 의미로도 종종 사용되었다. 이에 관해서는 마 10:2-4주석을 참조하라. 다음으로 '같이 모이사'(쉰알리조메노스)는 '쉰'(같이, 함께)과 '할리조'(모으다, 소금치다)의 합성어이다. 그러므로 함께 소금 쳐진 것을 나누는 행동, 곧 식사의 장면을 연상할 수 있다(Meyer). 이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과 함에 식사를 하신 기록(눅 24:41-43; 요 21:13-15; 행 10:41)으로 보아서 타당성이 있다. 때문에 공동 번역은 본절을 '사도들과 함께 계신 자리에서'로 번역하고 있다. 예수님께선 그 자리에서 그들에게 최후의 당부 말씀을 주셨던 것이다(Bruce).
예루살렘을 떠나지 맡고‥‥기다리라. - 예루살렘은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대단히 의미가 깊은 곳이다. 이곳은 구약 시대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쳤던 장소이며(창 22:2,14), 또한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곳이기도 하다(대하 3:1).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시사 인류 구원 사역을 이루신 곳이다. 이러한 예루살렘은 장차 성도들의 영원한 처소가 될 새 예루살렘의 모형이기도 하다(계 21:1-7). 대상 11장 자료노트, '예루살렘의 역사' 참조. 그런데 예수에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도록 당부하신 이유는 단지 그곳이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성읍인 까닭만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도록 당부하신 이유는 ① 신앙적 열망으로 예루살렘까지 예수님을 따라온 제자들로 하여금 그 신앙적 열망을 견지하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사실 애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제자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진다면 모든 신앙 열정이 식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② 제자들로 하여금 단결하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만일 제자들이 흩어진다면 그들에 의해 세워져야 할 교회는 결코 설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한 곳에 머물게 했는데 그곳이 바로 구속사적으로 중요한 성읍인 예루살렘이었던 것이다. ③ 제자들로 하여금 그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예수의 복음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8절; 눅 24:47-49). 이는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의 핵심이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 성령 강림에 관한 약속을 가리킨다(눅 24:49). 이미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에 관한 모든 사항을 말씀하신 바 있다(요 14:16,17,26; 15:26), 주님은 십자가의 사역 이후로 제자들을 떠나지만 주의 이름으로 보내는 진리의 영, 곧 성령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시므로 그들이 능히 복음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요 뜻이었다. '성령'에 대해서는 그랜드 종합 교리 '성령 강해주석 신론을 보다 참조하라.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회개의 표적은 물 세례와 성령 세례로 구분할 수 있다. 행 8장 연구자료, '세례의 이해' 참조. 예수님께서는 이 표적 가운데서 보다 분명하고 확실한 세례에 대하여 말씀하시고자 요한의 물 세례를 인용하시면서(마 3:11; 막 1:8; 눅 3:16) 성령 세례에 대한 말씀으로 이어가고 계신다. 이 성령 세례는 이미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되었고(겔 36:26; 욜 2:28-32) 오순절 사건을 통하여 성취되었다(행 2:1-13). 성령세례는 구원을 위한 필수적 요소로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약속되어 있으며(요 7:37-39; 행 15:7-9), 우리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는 순간에 주어진다.
너희는‥‥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의 구속 사역을 이루신 오늘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영이 모든 육체에 부어질 것'이라는 구약 예언처럼(사 32:15; 욜 2:28) 성령이 그들의 모든 삶을 주장하실 것임을 알아야 한다. 즉 요한의 물세례가 죄를 씻는다는 상징적인 의미의 외적 의식인 반면(마 3:6,11; 막 1:4), 성령 세례는 내적으로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초월적인 역사와 은혜로만 가능하다(롬 6:3,4; 골 2:12). 따라서 회개 없는 성령의 세례나 성령의 체험이 없는 회개는 있을 수가 없다(마 16:16, 17; 고전 12:3; 요일 4:15).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 역시 성령의 체험을 통하여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고서야(요 3:5) 온전히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사역을 감당할 수가 있었다.
1: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에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저희가 모였을 때에. - 이 모임이 4절에 나와 있는 모임과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원문상 본절 초두에 나와 있는 접속사 '멘 운'(그러므로)은 본절 이하의 기사가 내용상 앞의 기사와 연관된 것임을 암시한다(Toussaint, Longener).
예수님께 묻자와 가로되. - 아마도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4,5절)에 대하여 흥분된 마음을 가진 듯하다. 왜냐하면 '묻자와'(에로톤)라는 단어는 미완료형으로 계속적인 반복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즉 누가가 굳이 '묻다'라는 말을 미완료형으로 표현한 것은 제자들의 심적 상태를 더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한 외도에서였을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이니까. -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그분의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정치적 회복으로 이해하여 주님이 이 땅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신다는 말(마 25:31)의 의미를 현재적인 것으로 이해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이 외세의 압제에서 해방되면 자신들도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되길 희망했었다(막 10: 35-45; 눅 22:7-32). 그러나 그러한 그들의 기대는 예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으로 인해 여지없이 무산되었다. 이에 저들은 각기 흩어졌다가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 다시금 모이어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4절)에 대한 얘기까지 재차 듣게 되었으나 예수의 말씀을 오해하여 이처럼 또다시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Longeneker).
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두셨으니. - 하나님의 작정하신 때가 되면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임은 성경에 약속되어 있는 사항이다(롬 11:1-36). 그러나 그 약속 역시 정치적인 것이 아닌 구속사적인 것이다. 더욱이 주님은 지금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계셨다. 즉 그들에게 있어선 이제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는 일과, 오직 주님의 증인된 삶을 살 것을 다짐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인 것이다. 따라서 주님은 이스라엘 회복의 때를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직접적인 답변을 하기보다는 그들이 감당해야 될 사명만을 다시 한번 인식시켜 주신 것이다(8절).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복 시기를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 36 막 13:32)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 주셨는데, 이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비밀 사항이며 오직 성도들은 그날이 올 때 까지 복음의 사역만을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한편 여기서 '때'(크로누스)는 어떤 긴 시간을 나타내고, '기한'(카이루스)은 일정한 시기를 나타낸다. 즉 전자는 환경에 관계없이 절대적인 때이며, 후자는 결정적인 때이다(Vincent). 그러한 의미에서 전자는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기 전에 지나야 할 때를 의미하고, 후자는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바로 그 시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Bruce).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 '오직'(알라)에 강조점이 있다. 즉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때와 기한을 알려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는 데 최우선 과제인 복음 전파에 심혈을 기울이라는 말이다. 하여튼 앞에서 주님은 '성령의 임함'이 하나님의 약속임을 말씀하셨는데(4,5절) 본절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본절은 본서 전반에 걸쳐 나타난 제자들이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사역시(행 2:32; 3:15; 5:32; 10:39; 13:31; 22:15) 주님께서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셨던 것처럼(마 3:16; 눅 3:21,22) 성령의 능력을 입고서 사역하게 될 것임을 약속하신 것이다.
권능을 받고. - 여기서 '권능'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나민'( )은 본래 자연적인 힘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인격적인 힘(고전 1:18)과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행 8:13; 고후 12:7)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따라서 '권능을 받고'라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 입어'라는 의미이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 주님의 말씀이 전파되어야 할 전 영역을 가리킨다. 한편 누가는 본서에서 복음이 본절에 언급된 지명의 순서대로 전파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즉 복음은 예루살렘으로부터(행 1:1-7:60)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행 8:1-12: 25). 땅 끝까지 전파되었던 것이다(행 13:1-28:31). 특별히 '땅 끝까지'는 성경에서 '모든 국가들'을 지칭하고 있는데(시 2:8; 19:4; 사 48:20; 슥 9:10), 이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온 천하 만민에 대한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준다.
내 증인이 되리라. - 사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명은 역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으로서 이미 주님께서도 계속적으로 강조하셨다. 한편 독일 출신 신학자 렌스키(Lenski)는 '내 증인'에 대하여, 이는 '나에 의하여, 나를 위하여, 나에 관하여 증거하는 자'를 뜻한다고 주석 하였다. 더욱 '증인'(마르튀레스)이란 단어에는 '순교자'라는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는데, 이는 주에 관해 보고 들은 바를 증거할 뿐만 아니라(벧전5:1; 요일 1:1-3) 주를 위하여 순교할 자세가 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누가가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시면서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말씀은 누가가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기록한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이처럼 '되라'하지 않고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주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전파의 사명을 주시면서 복음 사역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요 바로 당신과 당신의 영이심을 깨우치고자 하신 것이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제자들은 성령의 인도에 따라 복음 증거 자들이 될 것임을 약속하시는 것이다. 이처럼 성령이 복음 사역의 주체요 인간은 그 도구로 사용된다는 사실은 본서가 수차 강조하는 바이 기도하다(행 13:2; 16:6; 20:23). 한편 본절은 복음 전파 및 하나님 나라와 관련하여 몇 가지 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① 전도자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의 시기는 하나님의 주권과 뜻에 맡기고 오직 주의 맡겨진 사명을 위해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② 전도자는 반드시 성령의 권능을 덧입어야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③ 전도자는 복음을 그가 처한 곳의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④ 복음 전도자는 민족이나 인종, 신분 등에 관계없이, 즉 편벽 됨이 없게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⑤ 하나님 나라는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자가 맞게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대명령을 성실히 준행하는 자에게 기쁨과 소망으로 약속된 것이라는 것이다.
1:9 주께서 이런 일들을 말씀하신 후에 그들이 보는 데서 위로 들려올라 가시니 구름이 그들의 시야에서 주를 가리더라.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 '내 증인이 되리라'(8절)는 말씀대로 이제 주의 제자들은 주님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증거해야 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더불어 십자가 고난부터 죽음. 부활 그리고 마지막으로 승천과 재림을 증거해야만 했다. 따라서 누가는 '보는 데서'(. 블래폰톤)를 현재 분사형으로 표기하여 주님의 승천이 제자들의 눈 앞에서 벌어진 실제적인 사건임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구름이 저를 가리워. 여기서 언급되는 구름이 자연 현상으로 인한 구름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구약에서 이미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상징하는 매개물로 자주 등장하였다(출 19: 16:왕상 8 : 10;단7 : 13). 그리고 신약에서도 주님과 제자들이 변화 산상에 있을 때(마 17 : 5; 막 9: 7 ;눅 9:34,35)와 주님의 재림을 묘사하는 곳(마 24 : 30 ; 막 13 : 26 ; 눅 21:27 ;살전 4:17) 등에서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본절의 구름 역시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나타내 주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 '자세히 보다'(아테니조)는 '주의깊게 응시하다'라는 의미로 누가가 즐겨 쓴 용어이다(행 3:4,12; 6:15; 10:4). 여기서는 현재분사형이 사용되어 행동의 계속성을 나타냄으로써 주님에 대한 제자들의 애끓는 이별의 심정을 잘 나타내 준다.
흰 옷 입은 두 사람. - '흰'색은 비단 성경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도 대개 순결과 존귀를 상징한다. 본절에서 그 같은 색깔의 옷을 입은 두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거룩함과 영광을 현시하는 천사들을 뜻하는데, 이러한 존재의 출현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관련한 주요 사건과 매우 깊은 관련을 맺는다(창 18:2; 단 10:5; 마 28:3; 눅 24;4 ; 행 10:30; 계 21:17).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갈릴리 사람들아. - 여기서 '갈릴리 사람들'은 사도들의 출신 성분을 상기시켜 준다(마 4:18-22). 그러한 그들을 불러 사도로 삼아주신 주님은 이제 그들 곁을 떠나셨다. 따라서 한때는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맡은 이적과 기사를 체험했던 그들이지만, 주님이 계시지 않는 지금은 만일 주의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는 한 그들은 그저 평범한 갈릴리 사람들, 즉 어부와 세리 등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어찌하여‥‥쳐다보느냐. - 변화산에서의 화려한 경험(마 17:1-8)과 십자가상에서 죽으셨던 주님이 부활하셔서 자신들과 함께 했던 그 추억 속에서 사도들은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이 당장이라도 다시금 내려오실 것만 같은 기대감으로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 사항일 뿐 저들에게는 새로운 사명이 부여되어 있었으니(8절) 본절은 이를 상기시켜 주는 두 천사의 일성(一聲)이다.
본 그대로 오시리라. - 구름을 타고 올라가신 주님께서 다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에 대한 약속이다. 이는 다른 곳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약속이다(단 7:13; 마 26:64;계 1:7). 그런즉 제자들이 마지막으로 증거해야 될 것은 결국 주님의 재림인 것이다. 따라서 '본 그대로 오시리라'는 이 약속은 예수님을 증거해야 할 제자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1:12-14 성령 강림을 기다리는 사도와 제자들
앞단락(1-11절) 서두에서 설명하였듯이 본서의 첫 장인 재 1장은 전반적으로 복음의 실체인 예수님의 탄생에서 승천까지의 기사를 기록한 누가복음과 그에 연속하여 예수님의 승천 후 강림하신 성령님의 인도로 주의 사도들이 주의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를 세우는 과정의 역사를 기록한 본서를 이어주는 도입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1-11절이 누가복음 기록 말미의 주의 부활 및 승천 기사를 주의 성령 강림 약속과 선교 명령을 중심으로 재 요약 정리하여 과거사를 일단락지음으로 써 이제 사도행전의 대 역사 기록을 도입하는 역할을 하였다면, 본 단락과 다음 단락은 이제 제2장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의 승천 이후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본격 개시되는 사도들의 초대 건립 과정의 기록되기 전의 과도기적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본서의 도입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문맥의 본문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 성령 강림이 있었던 오순절까지 약 10일간의 과도기 동안의 상황에 대한 개략적으로 보도함으로서 예수님의 성령 강림 약속과 선교 명령을 받은 사도들과 무리들이 주의 성령 강림 약속을 믿고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에 힘셨던 사실을 소개한다. 예수님의 승천이라는 위대한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분의 분부에 따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주의 약속대로 성령이 임하시기까지 모여 성령님이 임하기를 기다리며 기도하였다. 누가복음에도 예수님의 승천 후에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음이 기록되어 있는데(눅 14:52-53). 이는 이들이 예수님의 분부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주의 약속대로 성령이 임하시기까지 기도에 힘썼음을 보석 준다. 그리하여 성령님이 강림한 후에 예루살렘에 있던 이 다락방은 초대 교회의 요람이 되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모체로 발전하였다. 이 다락방은 행 12:12의 마가의 다락방과 동일시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13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이 때 기도했던 무리들은 사도들과 예수님의 모친과 형제, 그리고 예수님을 좇던 여인들로 성령을 받은 후에 복음을 널리 확장시키는 기수들이 되었다. 특히 사도들은 이전에는 상호 경쟁하거나 아니면 주의 수난시 주를 버리고 도망가는 용렬한 모습을 보였으나 주의 부활과 승천을 목격한 후에는 각자가 변하여 위대한 신앙의 전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두 한마음으로 합심하여 기도하였다. 결국 이러한 합심 기도를 바탕으로 초대 교회가 건설되고 부흥되었으며 온갖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복음은 온 세계에 전파되었다(행2:42:7:12:21:5).
이러한 본문은 몇 가지 사실을 교훈해 준다.
① 이 당시 사도들과 성도들이 주의 약속을 믿고 성령 강림을 위하여 기도하며 기다릴 때 그 약속대로 성령이 임하였듯이, 주의 약속은 필히 성취되는 바 현재의 우리도 주의 재림과 천국 구원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면 필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원대한 희망을 새삼 확신하게 된다.
② 주님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자 하는 성도들은 서로 간에 자기의 아집과 이기심을 버리고 힘써 협력해야 한다(행 2:46; 4:24).
③ 성도들 간의 합심 기도는 교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며 환난과 박해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을 속히 받게 하는 비결이 된다(마 18:19; 눅 11:9; 엡 6:18).
1: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감람원이라 하는 산. - 감람산은 예루살렘 동 남편에 길게 뻗은 산으로(마 21:1; 26:30; 눅 19:29) 그곳에 감람나무(olive tree)가 많은 탓에 불려진 이름이다. 그리고 그 산 서편에는 '겟세마네' 동산이 있었다. 한편 성정에서 '감람나무'는 축복과 번영을 상징하는데 이런 연유에서인지 감람산은 여호와의 강림 처소로도 묘사되어 있다(겔 11:23). 감람 산에 대해서는 막 13장 자로노트를 보다 참조하라.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 유대인들은 안식일의 여행 거리를 최고 2천 규빗으로 규정하고 있다(Mishnah). 이는 도피성의 사방을 기준으로 설정한 것으로(민 35: 5) 그 거리는 1규빗이 약 45.67m이므로 약 1km 정도가 된다. 한편 본절은 예수님의 승천 사건이 안식일에 일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다만 예수님의 승천 사건이 예루살렘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일어났음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3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부활 후 40일 동안을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승천하셨음을 감안할 때 예수님의 승천 사건은 목요일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1: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 행 12:12을 보면 제자들이 모여 기도한 곳이 마가의 집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 가운데는 성령강림 사건이 있었던 곳이 마가의 다락방이며 또한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을 베푸신(눅 22:12) 집 주인이 마가였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을 베푸신 다락방(아나가이온)과 본절의 다락(후페로온)은 그 사용된 단어가 다르다. 따라서 두 곳이 같은 곳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저자가 다른 단어를 사용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의 다락은 마가의 다락방으로 볼 수 있으나 누가복음의 다락방은 다른 곳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본절의 다락은 아마도 주님이 부활하셔서 두 번이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곳과 동일한 곳으로 추정된다(눅 24:33; 요20:19,26). 한편 유대인들에게 있어 다락방은 집회나 기도를 위한 좋은 장소였다. 이와 관련해서 막 2장 연구자료, '신약 시대 팔레스틴의 가옥 구조'를 보다 참조하라.
베드로‥‥야고보의 아들 유다. - 누가는 이미 눅 6:13-16에서 12사도의 이름을 기록한 바 있다. 여기에서는 그곳과 몇 가지 순서상의 차이와 가룟 유다의 이름이 빠져있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12사도의 명단은 다른 복음서에도 나타나고 있는데(마 10:2-4; 막 3:16-19), 역시 가룟 유다의 이름이 제외된 것과 앞뒤 순서가 조금씩 바뀐 정도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은 제자들이 둘씩 보냄을 받은 전도 여행(막 6:7) 때의 순번을 따랐고, 누가복음은 선천적 출생과 혈연의 순서를 따른 듯하다(Hervey). 이러한 차이점과 그 특징에 대해서는 마 10:2-4 주석을 참조하라, 또한 이들 12사도에 관해서는 행 서론 특별자료, '12사도의 헝적'을 참조하라.
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여자들. - 이 여자들을 사도들의 아내로 보는 견해도 있다(Calvin, Erasmus). 그러나 누가가 복음서와 본서에서 주님을 따라다녔던 여자들에 대해서 자주 언급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눅 8:2,3; 23:27,49,55; 행 5:14; 9:36; 12:13; 16:14,16) 본절의 여자들 역시 예수님을 추종하며 십자가의 죽음의 현장에까지 따라다녔던 여인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Bruce, Hervey).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 성경에서 그녀에 대한 언급이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곳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녀는 숭배의 대상이 아닌 예배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마리아를 숭배하는 의식은 전혀 성경적인 것이 아닌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아우들로 더불어. -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는 그를 믿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난다(요 7:2-10). 그러나 모두 4명(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 마 13:55; 막 6:3)으로 알려진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복음 전파 사역에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야고보에게는 주님께서 부활 후 직접 찾아오셨었는데(고전 15:7). 그 이후로 그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큰 일꾼이 되었다(갈 1:19). 그리고 이 형제들 중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유다는 유다서를 기록했다. 마 13장 자료노트, '예수의 육적 가족들' 참조.
마음을 같이하여. - 직역하면 '같은 마음으로'이다. 즉 모든 개체들이 같은 마음으로 같은 데 뜻을 두고 전심 전력한 것을 가리킨다. 이는 바로 초대교회 형성 및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는 바 본서에 자주 언급되고 있다(행 2:46; 4:24).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처럼 기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성도들이 주님과 교통(交通)하는 대화이자 영적 호흡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님의 증인된 삶을 살고자했던 제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덧입기 위해서라도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따라서 누가는 이미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의 중요성(마 18:19-20 ; 눅 11:9-13)을 회상하는 가운데 성령 강림을 기다리는 제자들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예수에서는 부활 이후 40일을 이 세상에 계시며 제자들에게 보이셨다가 승천하셨으므로(3절) 제자들은 성령을 받기까지 약 10일 간을 이처럼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셨다. 즉 오순절은 유월절 후 다음 안식일로부터 50일째 이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 약 10일을 함께 모여 기도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1:15-26 가룟 유다의 죽음과 새 사도 맛디아 선출
앞단락(12-14절)에서는 예수님의 승천 이후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 이전의 과도기의 개략적 설명으로 예수의 분부에 따라 사도들과 성도들이 성령을 받기 위하여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합심하여 기도하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어 본문은 그런 과도기에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인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자들이 가룟 유다의 배반과 죽음으로(마 26:15; 27:5) 결원(缺員)이 생긴 사도직을 보궐(補關)한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베드로는 구약을 인용하여 가룟 유다의 비참한 최후가 구약에 이미 예언되었던 것임과 사도직 보궐의 필연성을 설명하고 있다(15-20절). 그런데 여기서 베드로가 가룟 유다의 최후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기록은 동일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의 기록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마태는 유다가 자신의 배신을 후회해서 목매어 자살했고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받은 돈으로 종교 지도자들이 '피 밭'이라 하는 밭을 산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마 27:3-10). 본문은 유다가 배가 터져 죽었고 밭도 그가 직접 산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인 기록이다. 즉 가룟 유다는 나무에 목을 매달았다가 나뭇가지나 끈이 끊어짐으로 땅에 떨어져 배가 터져 죽었으며, 밭은 가룟 유다의 돈으로 종교 지도자들이 산 까닭에 유다가 산 것처럼 묘사한 것이다. 하여튼 마태나 본문의 기록은 다같이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판 가룟 유다의 비참한 최후를 잘 묘사해 주고 있다. 한편 가룟 유다의 배신과 죽음에 관련하여 마태는 슥 11:12을 인용한 반면 베드로는 시 109:8의 다윗의 시를 인용하고 있는데, 이는 베드로가 사도직 보충의 필연성을 보다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두 기록 모두 가룟 유다의 배신과 죽음이 구약 예언의 성취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어째든 가룟 유다의 죽음은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 밖에 얼마는 것과 그가 비록 현세에서는 평안한 최후를 맞는다 해도 결국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게 될 것임을 예표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하겠다.
다음으로 베드로는 계속해서 사도 될 자의 자격과 사명을 언급하고 있다(21,22절). 이를 보면 먼저 사도의 자격은 요한의 세례로부터 예수님의 승천하신 날까지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그분의 가르침을 받은 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의 사명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봉사의 직무를 감당하는 것이다. 이로 보아 사도직의 보충은 단순히 구약의 예언을 이루는 것만이 아니라 주님의 지상 대명(행 1:8)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함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마지막 단락은 가룟 유다의 자리를 대신할 사도직에 맛디아가 선출되는 과정을 보도한다(23-26절). 베드로의 말이 끝나자 사도직을 감당하기에 합당한 두 사람. 즉 요셉과 맛디아가 천거되었는데 11사도를 비롯한 120문도는 기도한 끝에 당시 하나님의 뜻을 가리는 방법으로 사용되던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사도로 세운다. 그래서 이제 다시 완전한 12사도를 채워 초대 교회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23-26절).
한편 새 사도 맛디아의 선출 기사 전반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①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절대주권을 가지고 당신의 사역을 전개하시지만 동시에 그 모든 사역은 필히 당신의 종들을 경유하여 행하시므로 성도는 인간 측의 최선의 노력도 다하여야 하는 바 그 일환으로 조직과 체계의 정비도 매우 중요하다.
② 교회에서 하나님의 직분자를 선출할 때에는 사람의 외적인 모습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명을 올바로 수행할 수 있는가를 염두에 두고 기도하며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는 가운데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다(요15:16; 고전1:27-29).
1: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 - 사도 바울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은 500여명이나 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전 15:6).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갈릴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며(Bruce), 여기에 모여 있는 120명은 12사도를 포함한 일부를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한편 유대인들의 산헤드린 공회의 규칙에는 자체 내에 공회를 둔 공동체 설립을 위한 최소한의 인원이 120명이며. 그 공동체의 임원을 전체의 10분지 1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누가는 그 규칙을 염두에 두고 120명이란 숫자를 강조한 것으로 추측된다(Marshall).
그 때에 베드로가‥‥가로되. - 베드로는 복음서에서도 가끔 암시적으로 지도자의 위치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난다(마 16:17-19), 그렇지만 그런 그도 한때는 주를 부인했다(마 26:69-75). 그러나 주님의 부활 이후 그는 다시 주님의 신임을 받고 (요 21:15-18) 신앙 공동체의 대표자적 위치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1: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형제들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안드레스 아델포이'는 '형제 남자들아'라는 뜻으로, 이는 유대인들이 서로를 호칭하던 일상어인데 여기에서는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여졌다. 이후 이 말은 본서에서 자주 사용되는데(약 25회), 주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모인 교회 구성원들의 명칭이었다(행 2:29,37; 6:3; 7:2; 13:15,26; 15:1-3).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 여기서 베드로가 성경의 기록 과정에서의 성령의 개입(영감)을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딤후 3:16). 즉 20절에 언급된 시편은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서 그랜드 종합 교리 중 서론의 '성경 영감론'을 참조하라.
예수 잡는 자들을‥‥성경이 응하였으니. - 베드로는 가룟 유다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그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 성경의 예언 성취였음을 확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에 예수님을 믿었던 많은 사람들이 시편에 기록된 많은 예언적 의미를 예수께 적용시키고 있었음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행 2:25-28,34,35). 따라서 성경이 응하였다는 베드로의 고백은 오늘날 성경을 믿는 모든 신자들에게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응되며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인도함 받기 때문이다.
지로한. - '앞잡이 노릇을 했던'이란 뜻으로, 가룟 유다가 예수를 잡는 자들을 안내한 사실을 가리킨다(눅 22:47,48).
1: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 이는 가룟 유다가 12사도의 일원으로서 활동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은 그의 변절로 인해 시편의 예언이 유다에게 엄격히 적용되었음을 강조해 줄다(요 6:71).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 유다의 직무는 12사도 가운데서 회계의 일을 맡아보는 것이었다(요 12:6). 이는 그가 평상시 예수와 다른 사도들로부터 대단한 신임을 받았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돈을 맡아 관리하던 그는 그만 물욕(物慾)에 사로잡혀 끝내는 은 30에 예수를 배신하고 말았던 것이다(마 26:14,15). 가룟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원인에 대해서는 마 26:16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1:18(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 한글 개역 성경에는 18절과 19절의 내용이 괄호 속에 넣어져 있다. 이는 베드로의 직접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예루살렘에 널리 퍼져 있던 이야기를 누가가 삽입하여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Hervey, Calvin). 그런데 이 부분의 내용은 평행 구절인 마태의 기록(마 27:3-10)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즉 밭을 누가 샀느냐에 대해서 마태는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을 하는 가운데 대제사장이 유다가 남긴 돈으로 밭을 샀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본문에서 누가는 유다가 밭을 산 것처럼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실제로 밭을 산 것은 대제사장이지만 결국 그 밭은 유다가 산 것이나 다름 없음을 누가가 강조하고자 한데서 발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튼 두 기록 모두 공통적으로 소유권이 유다에게 있음을 나타내려 했음을 알 수 있다(Lenski). 다음으로 '아겔다마'(하켈다마크) 곧 '피밭'이란 말의 기원에 대해서도 마태는 유다가 예수의 '무죄한 피'를 판 대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설명을 하고 있지만, 누가는 유다의 피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아겔다마'라는 말에는 위의 두 가지 의미가 모두 함축되어 있다고 보면 무리가 없다.
몸이‥‥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 마태의 기록에는 유다가 스스로 목매어 죽은 것으로 나와 있다(마 27:5). 따라서 그 기록과 본절을 종합해 볼 때 다음과 같은 추정이 가능하다. 즉 가룟 유다는 나무에 끈을 묶고 거기에 목을 매어 죽었는데 이후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유다의 몸이 땅에 떨어져 배가 터지고 창자가 파열된 것이다 (Longeneker, Lenski, Hervey). 이에 대해서는 마 27:5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본 방언. - 신약 시대 당시 유대인들의 일상 언어였던 아람어(the Aramic)를 가리킨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1권 구약 총론, '구약의 언어'를 참조하라.
1: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 초대 교회 당시 이미 시편은 구약 중에서도 잘 알려진 성경 중의 하나였다(눅 24:44), 한편 '기록하였으되'(게그라프타이)는 성경을 인용할 때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완료 수동태로서 인용하는 성경이 문자로 기록되어 있음을 나타내 준다(Robertson).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시 69:25의 인용으로 본래는 선민(選民)을 박해하는 자들의 말로(末路)를 간구한 시이다. 그런데 초대 교회 당시 이 시편 69편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다(Bruce, Longeneker, Hervey). 그렇기에 베드로가 인용하여 설교할 때 많은 사람들은 이를 유다에 대한 적용으로 쉽게 이해한 듯하다.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 70인역(Lxx)에 기록된 시 109:8의 인용이다. 베드로는 이렇듯 성경을 인용하여 유다의 후임자를 임명하는데 대한 근거로 삼았다. 그것은 곧 주님이 12사도를 12지파에 맞게 임명하신(마 19:28; 눅 22:30) 정통성을 잇기 위한 의도에서였다(Bruce). 한편 여기서 '직분'(에피스코펜)은 넓은 의미로 '영혼에 대한 감독의 직무'를 가리킨다(Evans, Hervey). 따라서 사도의 직무는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에 대한 감독, 관리로서 그들은 말씀의 선포자인 동시에 남을 섬기는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Hervey).
1: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요한의 세례로부터‥‥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 -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후부터 승천하기까지'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전반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본절은 사도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명시한 것으로도 볼 수 있겠는데, 이는 사도들이 증거해야 될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사건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눅 16:16; 행 10:37; 13:24,25). 즉 사도들의 사명은 세상에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그에 관해 증거하는 것인데, 이는 그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까지의 일들을 자세히 알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했고 제자들과 함께 있었던 자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사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예수님의 증거 자로서 소명이 있어야 사도가 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고전 9:12; 15:8-10; 갈 1:16,17). 그런즉 결국 가룟 유다의 자리를 대신할 사도를 뽑는 것은 단지 시편의 예언을 이루는 데만 그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8절)는 주님의 명령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자를 선택한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는 셈이다.
1:23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세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바사바라고도 하고‥‥요셉이요. - '바사바'(Barrages)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그의 이름이 '바나바라는 요셉'(행 4:36)과 흡사하다 해서 동일 인물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한편 여기서 '바사바'와 '요셉'은 히브리식 이름으로 '바사바'는 '사바(안식일)의 아들'이란 의미가 있는데, 이는 아마도 그가 안식일에 태어난 까닭으로 여겨진다. 또한 '유스도'는 로마식 이름으로 '의로울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맛디아.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을 지닌 '맛타디아스'의 약칭으로 유대 사회에서 흔한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그에 관해서도 역시 잘 알려져 있는 기록이 없다. 다만 예수님의 70인 제자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Eusebias).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에디오피아의 선교사로서 순교했다는 설(Bruce)과 유대에서 전도하다가 유대인의들에 맞아 순교했다는 설(Winer) 등이 있으나 모두 확인된 바는 없다.
1:24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 제자들은 자신들의 뜻대로 사도를 결정하거나 선출하지 않았다. 그들은 먼저 사도직에 합당한 두 사람을 선발한 후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리고 유대인의 전통대로 제비뽑기의 방법을 좇아 두 사람 중 한 명을 택하였다. 이 제비뽑기의 방법은 곧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홀로 주관하시기를 원한다는 의미이다(잠 16:33).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민 26장, 자료노트. '제비뽑기'를 참조하라.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 베드로의 기도는 기원조의 거룩한 표현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여기서 '주여'라는 호칭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중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Bengel, Bruce, Longeneker). 왜냐하면 이러한 표현은 대개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되었으며(시 7:9; 렘 17:10; 암 9:3),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적 행사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이다(행 7:59; 롬 8:27; 살전 3:11).
주의 택하신 바 되어. - 이 말의 의도는 새로이 선출되는 사도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사도의 직무를 주님으로부터 부여받게 됨을 공포하는 데 있다. 왜냐하면 누가는 '택하다'(에클레고마이)라는 동사를 2절에서 사용한 단어와 동일한 단어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도들이 주님으로부터 직접 택함을 받았음을 나타냄과 동시에 아무나 사도가 되기를 원한다고 해서 사도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1: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 - '봉사'(디아코니아스)라는 말에는 섬기는 자라고 하는 비하의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반면 '사도의 직무'(아포스톨레)는 권위를 지닌 선포자라는 의미가 강하다. 누가가 이 두 단어를 달리 나누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사도직이 한편으로는 존경과 권위를 지닌 것이지만, 동시에 남을 섬겨야 하는 힘든 중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Calvin).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 여기서 '제 곳'이 어디를 가리키느냐에 대하여선 학자들간에 다음과 같이 의견이 분분하다. ① 자신의 집을 가리킨다(Keuon). ②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고서 과거에 자신이 행하던 길로 돌아간 것을 가리킨다(Knowling). ③ 죽은 후 지옥으로 간 것을 뜻하는 완곡 어법이다(Longeneker, Robesn). 이 가운데 이미 18절에 유다의 비참한 최후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상의 세 견해 중 세 번째 것이 보다 타당하다.
1: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제비 뽑아. - 본절만 가지고서는 제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제비를 뽑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그러나 '뽑다'라는 말에 '던지다'는 의미를 지닌 '에발론'( )이란 단어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서 무엇을 던져서 뽑은 것 같다. 어째든 이러한 제비 뽑는 방법은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종종 사용되었다(레 16:7-10; 수 18:10). 그렇지만 오순절 성령 사건 이후에는 이러한 방법이 성경에 나타나고 있지 않는 것을 보아서 제비를 뽑아야 할 경우 대신 기도함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성령이 역사하시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도 모든 일에 오직 기도와 간구로 우리의 구할 것을 구해야 할 것이 다(빌 4:6).
연구자료
누가-신의 깊은 의사요 문학가
1. 인적 사항
① 누가는 '빛나다', '총명하다'라는 뜻.
②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출생한 헬라인(골 4:14).
③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눅 1:3; 행 1:1).
④ 바울의 최후까지 함께 했던 동역자(딤후 4:11).
⑤ 직업은 의사였음(골 4:14).
⑥ 디도의 형제로 추정됨(고후 8:16-18; 12:18).
2. 시대적 배경
A.D. 49-68년경에 주로 활동함. 이 시기는 사도 바울을 비롯한 많은 헌신적인 전도자들에 의해 복음이 로마 제국 전역에 전락되고 교회가 세워지던 초대 교회의 확장기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공생애와 그분의 구속 사역에 관한 체계적인 지식에 대한 요구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유대교의 한 일파인 듯이 보이는 기독교에 대해 올바로 소개하는 일이 시급하게 되었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을 직접 목격했던 초대 교회 1세대가 점차 이 세상을 떠남으로 인해 그 같은 일은 더욱 필요하였다. 이에 누가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거룩함으로써 시대의 요구에 기꺼이 부응하였다.
3. 주요 생애
전도여행 이전 | ||
안디옥에서 출생 | - | 골 4:14 |
의사가 됨 | - | 골 4:14 |
바울의 제 2차 전도 여행에 참여 | A.D. 49년 | 행 16:17-17 |
전도여행 이후 | ||
빌립보에서 복음 전파 | A.D. 49-52년 | 행 16:12; 20:5 |
바울의 제 3차 전도 여행에 합류 | A.D. 53-57년 | 행 18:23-21:16 |
바울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시 동행 | A.D. 58년 | 행 21:17-25 |
바울의 로마 호송 시 동행 | - | 행 25:11 |
바울의 투옥시 함께함 | A.D. 61년 | 딤후 4:11 |
누가복음 기록 | A.D. 61-63년경 | 눅 1:3 |
사도행전 기록 | A.D. 63-64년경 | 눅 1:1 |
순교한 것으로 전해짐 | - | - |
4. 성품
①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을 기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용된 언어, 운율, 비유 등이 아름답고 문장력이 탁월한 것으로 보아 뛰어난 문학적 자질을 갖출 자(눅 1:1-4; 행1:1,2).
② 바울의 제 2차 전도 여행부터 로마에 투옥되어 순교할 때 까지 동행한 것으로 보아 신의가 있는 신앙인(행 16:10-17; 17:1,2; 딤후 4:11).
③ 누가복음에 특히 가난한 자와 소외당한 자에 대한 기록이 많은 것으로 보아 고통 당하는 자를 돌아볼 줄 아는 참 사랑을 지닌 자(눅 11:5-13).
④ 교육을 잘 받은 유능한 의사로서 끝까지 사도 바울과 동행하며 그의 건강을 돌본 것으로 보아 임무에 충실하고 겸손한 자(딤후 4:11).
5. 구속사적 지위
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
② 최초의 의료 선교사이며(골 4:14), 최초의 교회사가(敎會史家).
③ 누가복음에 다섯 개의 영감 된 찬양을 실은 자(눅 1:42-45,46-55,68-79; 2: 10-14,29-32).
④ 기독교를 세계에 전파한 사도 바울이 순교하기까지 그가 가는 곳마다 동행하면서 치료를 담당한 초대 기독교 역사의 증인(고후 12:7; 갈 4:3; 딤후 4:11).
⑤ 자신의 의술과 글쓰는 재주 등 모든 것을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한 자.
6. 평가 및 교훈
① 누가는 대사도 바울의 허약한 육신을 주께서 주신 의술의 달란트로 치유하며, 그로 하여금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완수하도록 끝까지 그와 동행했다(행 17:1,2; 갈 4:3; 딤후 4:11). 오늘날에도 복음 전파 사역에 있어 누가와 같이 동역자로서의 적절한 역할을 담당해 주는 사람이 절실히 요구된다. 지금 우리도 '돕는 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② 누가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의사요, 두 서신을 기록한 뛰어난 저술가였으면서도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고, 묵묵히 바울을 조력하며 자신의 맡은 바 사명에 충실하였다(눅 1:1-4; 행 1:1,2; 골 4:14), 이같은 누가의 겸손한 태도는 오늘날 조그마한 자신의 업적도 드러내어 칭송 받고 싶어하는 자들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③ 어느 곳, 어느 상황에서라도 끝까지 바울과 동행했던 누가의 신의 있는 행동(빌 1:24; 골 4:14; 딤후 4:11)온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와, 또한 성도 상호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끝까지 충성하며 신의를 보여야 함을 잘 교훈해 준다.
④ 누가는 자신의 의술과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세심한 탐구와 노력 등 모든 재능과 힘을 다하여 주님의 영광을 구하였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이러한 누가의 본을 따라 우리의 재능과 시간과 건강, 그 모든 것을 주께 드려서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하겠다(롬 12:1).
7. 핵심 성구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골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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