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두분은 고향에서 농사일을하시고 우리는 대구에거주하고 있었다
아버지의생신은,음력9월16일,가을 ,풍요로운 추수가 그의 끝날무렵이라 계절적으로 너무나 좋은 시기였으며,어머니의 생신은 음력5월15일, 모내기로한창바쁜 시기라 먼동이 트는 새벽 별을보고 논 밭에 나가면 ,별을보고 집으로 돌아오는,농촌에서 가장바쁜 시기였다,70년대까지만 해도 개발도상국으로,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전환하는,농촌에서는 새마을 산업이 한창이라 골목길이 확트이고 논밭길도 손수래가다닐수있는 길이생기는가하며,도시에는 새 공단이생기는등,하루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있었다.
그래서 대대로 어렵게 살든 농촌지역을뜨나 공단이 생기는 도시로 이농하는 사람이많았다. 그때에 부모님께서도 평소 건강도안좋고 하셔서 대구로 전입 시장에서 장사를 하게되었다.그르나 대대로 수십년동안 농사일을하시다가 경험도없이 갑자기 장사를하니
환경에 적응하지못해 ,계속 적자만나고 하여,3년을 하고 다시 고향으로 가시게 되었다.고향사람들은 장사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한다면서,잘 돌아왔다고,모두들 환영하고,저녁에 마을 사람들이뫃여 술 한잔을 나누셨다,
아버지 생신때는 대구에서 음식재료를 준비하여 하루전에,고향에가서,밤이세도록 음식을 준비하여,아침에는 가까운 친척,점심은 아버지친구분,저녁은 어머니친구분,하루종일 작은 잔치기분이었다.서울큰누님도 늘 하루전에 오셔서 아내와함께 일을했으며 ,하루가끝나고,저녁이면 우리육남매가 밤이깊도록 정다운 살아온 이야기로 시간가는줄모르고 보름달아래서 웃음꽃을피우며 선선한 가을이라 넓은 마당에서 솥뚜껑에 불을피워 돼지고기를 꾸어먹고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나면 다음은 큰고모노래하세요하면, 학교종이 땡땡 하고 노래하고, 어머니께서는 늘 절 집같았는데 오늘은 사람사는것같다며 너무나좋아하셨고,아버지는,음 음,좋아하시면서 헛기침을 하셨다,그르나 어머니 생신은 한창 모내기 바쁜 시기라 새벽 아침일찍 식사하고,일하로가기가 바빧다.한마을에사시는 큰 고모님께서는 언제 멀리뜨날지도모르는데,죽기 살기 일만해서 누구줄려고 저렇게하노,오늘같은날은 좀 쉬면서 일해도 산다고했다,고모님께서는 막걸리를 좋아하셔서 오늘 돼지고기하고,술 많이먹어서 기분좋다,한달에 한번 생일 돌아오면 좋겠다고하여 한바탕 웃었다,사실 70년대까지만해도 농촌 생활은 그렇게 넉넉하지못해서 고기는 특별한날이아니면 먹기가 힘들었다.어느날.모두 살기바쁜데 몇일 앞당겨서 일요일날 여유있게 히자고 하여 그렇게했고.음식은 대구에서 하루전 장만하여 저녁 막차로가면,큰 누님이 먼저오셔서 손수래를 가지고 버스가 서는 입구까지 오셔서 기다리고 계셨으며.이렇게 음식을 준비해서 가니까,부모님도 누님들도 참 좋아하셨다,좀 힘들지만 그렇게 좋았다,일년에,한두번 부모님 생신이아니면 만나기 어려웠는데 일요일날하니 학교애다니는 아이들도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그리고 고모들과 함께 즐겁게 보낼수있었다.서울에사는 큰 누나는 어린 동생들을 엄마와같이 학교에가는일부터 모든것을 챙겨주고 해서 무슨일이생기면 늘 그리워진다,우리마을앞에는 낙동강물이흐르는데,육남매 아이들 모두 강가에 가면 큰 바위가있는데 그곳에서 놀면서 어릴때 점심먹고나면 늘 목욕했는 이야기.물새가 강위를 날아다닐때 놀든 생각.강가 보리밭에서 보리베다가 점심은 뽕나무 그늘에서 먹든생각 감자를 꾸어먹든생각 온갖추억들이 주마등같이 눈앞을 스쳐갔다.토 일요일이 지나고 모두 자기집으로 뜨날때는 어머니께서는,참기름,땅콩 ,고구마등을 보따리,보따리 쌓서 주셨으며,큰누님께서 힘드시며 지은 농사 이렇게 하지마라고하며,어머니는 내가앞으로 몇번이나 하겠나, 이제미로 일한다고 할때, 큰 누나는 또 눈물을흘리는,맏 딸이라 너무 정이 많았다.아버지는 손자 손녀들이 뜨나면서 인사하면 ,공책 연필사라고 늘 돈을 주셨고.어머니는 서울에사는 아들 딸보고 또 언제올래,하면 은, 모두 모정의눈물을 흘리면서,1년후,내년에 꼭 온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