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100주년에 대한 고찰 金 松 培 (시인. 한국문인협회 시분과회장) 1. 현대시의 생성과 전개 과정 우리 현대시는 올해로 100년의 역사를 맞는다. 대체로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이 1908년 11월, 그가 창간한『少年』지에 신체시「海에게서 少年에게」를 발표한 것을 기점으로 하여 산정한 것이다. 그러나 최남선은 이 작품을 통해서 시의 형식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으나 그 내용은 개화기의 일반 시가(詩歌)와 잘 구분되지 않는 면도 있다. 종래의 4. 4조나 7. 5조의 정형시 율격을 파괴하고 근대시로 발전시킬 준비의 단계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철...ㄹ썩, 철...ㄹ썩, 쏴...아. / 저 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 / 그 중에서 또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 담 크고 순진한 소년배들이 /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 오너라 소년배 입맞춰주마. / 철...ㄹ썩, 철...ㄹ썩, 척, 투르릉, 꽉. --「해에게서 소년에게」마지막 연 우리의 근대시는 서구문명(1984년, 정조 8년에 서교(西敎)의 성경과 찬송가가 들어오고 1985년에는 영국의『天路歷程』이 소개됨)의 유입으로 신구 문화의 갈등에서 출발한다. 이는 개화기 시가가 개화사상이나 애국정신을 고취하는 강렬한 저항을 노래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우리 근대시의 본격적인 출발은 최남선과 이광수, 김 억이『少年』,『靑春』,『學之光』등이 창간되어 여기에 신시를 처음 보여줌으로써 이 시도는 우리 현대시의 방향을 예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현대시의 출발점은 어디서부터일까. 많은 학자나 평론가들은 육당이 신체시의 선구자라고는 할 수 있어도 완전한 자유시의 개척자라고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우리는 1919년 2월『創造』창간호에 발표된 주요한(朱耀翰)의「불놀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아 날이 저문다, 西便하늘에, 외로운 江물 우에, 스러져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이라 파일날, 큰길을 물밀어가는 사람소리.......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제1연) 이는 육당의 강한 창가적(唱歌的)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산문형식으로 구성한 자유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4월 초파일에 흥겹게 노는 군중과 떨어져 죽은 애인을 그리워하던 젊은이가 죽음의 유혹에 사로잡히지만 ‘불놀이’ 광경을 보고 삶의 의지를 회복하는 이야기시의 형태가 시인의 개성적인 서정의 발견이며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현대시의 생성은 1919년 3. 1운동을 전후하여 우선『태서문예신보』(1918.9.)가 창간되어 김 억의「밋으라」,「오히려」,「무덤」, 장두철의「외 외 아직도」, 백대진의「어진 아내」, 이 일의「나의 노래」,「孤獨의 歌」, 최영택의「일어나는 불」,「잠자코」,「己未의 세임」, 계 원의「樂群」과 음고생의「떠라 怠學生」등의 창작품과 번역물이 게재됨으로써 활기를 갖게 된다. 또한 그 이전에 발간된『少年』,『靑春』『태서문예신보』가 교양을 겸한 준문예지 성격을 띄었다면『創造』(1921.2.) 는 유학생들에 의해서 발간된 순문예지라는 데서 우리 문학사상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이 일의「東京아 잘 있거라」,「新生의 日」, 오천석의「꿈길」, 김 억의「浪人의 봄」,「夜의 雨滴」,「無過의 泣」,「그리워」,「春岡」,과 이광수의「밋븜」,와 함께 주요한의「불놀이」,「새벽꿈」, 「하이안 안개」,「선물」등이 발표되면서 시연(詩聯)을 고려한 반자유 음률의 신시로 발전시켰다. 이후 계속되는 시동인들의 활발한 활동은 동인지(혹은 문예지)들의 창간과 더불어 문예지들의 역할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낳게 되었다. - 『開闢』(1920.6.) 잔 물, 노 월, 청 우, 강아지, 황석우, 춘 성), 오상순, 김석송 등이 창 간호에 작품을 발표하였음. - 『廢墟』(1920.7.) 김억, 남궁벽, 김영환, 나혜석, 염상섭, 오상순, 황석우, 이익상 등이 낭 만주의를 기조로 하여 퇴폐주의, 감상주의, 이상주의를 포괄한 다양성을 띠고 있음. - 『薔薇村』(1921.5.) 변영로, 황석우, 정태신, 근포 신태악, 춘성 노자영, 희월 박영희, 박 종화, 이 홍, 이 훈 등이 작품을 발표한 최초의 시 동인지임. - 『白潮』(1922.1.) 나 빈, 홍사용, 노자영, 박종화, 이상화, 오천석, 이광수, 박영희, 현진 건, 김기진 등이 참여하여『薔薇村』의 낭만주의 경향을 계승하여 감상적, 퇴폐적, 상징 적, 환상적 방향으로 더욱 심화 발전되어 초기 낭만주의 시운동에 기여함. - 『金星』(1923.11.) 이상백, 백기만, 양주동, 이장희, 손진태, 유 엽, 양주동 등이 참여하 였고 김동환, 박용서, 이원영 등이 추천시를 발표함. - 『廢墟以後』(1924.1.) 오상순, 김석송 등이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예술지상주의 이념을 천명함. - 『靈臺』(1924.) 김관호, 김소월, 김동인, 김억, 전영택, 이광수, 오천석, 주요한 등이 순 수한 창조적 의욕으로 결집하여 후기 문학운동의 주조인 순문학적 요소가 그 특징을 이 룸. - 『朝鮮文壇』(1924.10.) 방인근, 이광수, 박팔양, 남진우 등인 발간한 최초의 순수문예지. 권두사에 ‘참된 예술’ ‘인생을 위한 예술’ ‘우리 조선’을 강조하여 민족주의 문학을 표방 함. 시론으로 주요한, 김안서, 이광수, 이은상, 양주동, 최남선이 참여함. - 『海外文學』(1927.1.) 김진섭(독문학), 이선근(러문학), 정인섭(영문학), 이하윤 (불문학), 이헌구(불문학), 김광섭(영문학), 장기제(영문학) 등 당시 일본 유학생 중심으로 외국문학 을 통한 우리 문학의 건설을 강조함. - 『朝鮮詩壇』(1928.11.) 황석우, 염상섭, 김억, 김동환, 김해강, 고형곤, 백형기, 김정한, 김현승, 유치환, 모기윤, 이서구, 박팔양, 이익상, 김영팔 등이 범조선의 시 잡지를 표방 함. - 『文藝公論』(1929.5.) 방인근, 양주동, 염상섭, 심훈, 정인보, 이은상, 김억, 한설야, 김소 월, 이장희 등이 활동함. 이와 같이 1910년대에 생성하는 우리 현대시는 신체시를 넘어 1920년대 본격적인 자유시 형태를 갖추는데 문예지들의 많은 기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물론 만해 한용운과 같이 이러한 문예지에 동참하지 않고 자기 개성 내부에서 출발한 시인들도 많았다. 현대시는 1930년대를 맞으면서 음운적(音韻的) 혹은 음율적(音律的) 언어로 자아의 사상과 감정을 조화시킨 현대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는데, 1910년대는 시의 계몽시대이며 1920년대는 동인문단으로부터 개인적인 창작시 탐색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서정시와 주지시가 새롭게 등장하고 1930년대는 자연의 귀의와 민족정신의 수련으로 우리 현대시를 정착하는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 특히 1930년 3월에『詩文學』이 발행되면서 김영랑, 이하윤, 박용철, 김현구, 허보, 변영로, 신석정, 김기림, 임학수, 임춘길 등 우리 시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시인이 자신의 언어와 감정과 개성을 충분히 발현하고 있다. 더구나 외국문학과 비교할 수 있는 정인보, 이하윤, 정지용, 박용철, 서항석, 이헌구의 동서양 현대시를 번역 소개하는 새로운 업적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들의 작품 경향은 자기 언어의 미학을 최대한 시와 접목시키는 순수서정의 형태이며 인간의 내면세계를 미화하여 표출시킨 현대시의 전통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끄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그 후에『新東亞』(1931.11.),『文藝月刊』(1931.11.),『新人文學』(1934.8.),『三四文學』(1934.9.),『詩苑』(1935.2.),『藝術』(1934.12.),『四海公論』(1935.5.),『詩人部落』(1936.11.),『浪漫』(1936),『朝光』(1935.11.),『詩建設』(1936),『詩人春秋』(1937.6.),『삼천리문학』(1938.11.),『斷層』(1937.4.),『靑色紙』(1938.6.),『작품』(1939),『白紙』(1939.7.),『雄鷄』(1939),『人文評論』(1939) 등의 잡지들이 발간되어 많은 시인들이 활동하게 되어 우리 시사(詩史)에서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1939년 2월에 창간된 순수문학지『文章』에서는 박종화, 김상용, 모윤숙, 임화, 이양하, 정지용, 김교한, 이병기, 김동환, 김종한, 이한직, 김수돈, 조지훈, 신석정, 김동명, 김광섭, 박두진, 김기림, 이육사, 변영로, 김영진, 박목월, 신석초, 박남수, 오장환, 이호우, 김광균, 서정주, 유엽, 노춘성 등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라성(綺羅星)의 시인들이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어서 이『文章』지야말로 우리 현대시의 정착에 공헌을 하고 있다. 더구나 이 때 신인 추천제도를 시행하여 김종한(현대적인 감각의 추구), 조지훈(동양적 禪 세계의 직관), 박목월(향토 정관의 미), 박두진(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연에 귀의), 이한직(현대적 예지의 세계), 박남수(모더니즘의 실험), 김상옥(이지와 우아한 세계의 섬세), 조정순(한국 여성미의 조화), 김수돈(향수적인 토속성), 이호우(한국의 정한) 등 우리 시단의 거목들을 미리 알고 등단시킨 듯하다. 물론 이 추천제도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도 시행했으나 1년에 한 명만 뽑는 제도였다. 당시 박목월을 추천한 정지용의 추천사와 박목월의 추천소감 일부는 다음과 같다. 북에는 김소월이 있었거니와 남에는 박목월이가 날만하다. 소월의 툭툭 불거지는 삭주 구성조(朔州 龜城調)는 지금 읽어도 좋더니 목월이 못지않아 아기자기 섬세한 맛이 좋다. ...... 요적수사(謠的修辭)를 다분히 정리하고 나면 목월의 시가 바로 조선 시다. 조용한 황혼의 노래나 열 편이나 스무 편이나 쓰고 혹은 포플라의 노래 몇 편에 자장가나 두어 편 쓰고 삼십 안짝에 또는 사십 넘어서 예순 안짝에 혹은 여든 안짝에 죽으리라.(1939.9. 첫 추천. 12. 두 번째, 1940.9. 마지막 추천) 이러하듯이『문장』지를 통한 일군의 시인들은 자연의 재발견과 인간과 민족의 역사를 투영하여 우리 현대시의 지평을 열었다는 큰 의의를 갖게 된다. 그 중에서도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세 시인이 발행한『靑鹿集』(1946.6.)은 30년대 후기 우리 시문학의 이정표였다는 점과 이들을 ‘청록파’라 이름한 것도 우리 시사에 큰 흔적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2. 현대시의 중흥기와 시단 형태 1940년대에는 우리 문학의 혼란기였다. 일제가 우리글과 말을 말살한 식민지시대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 망명시와 ‘간도문단’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상화, 이육사, 윤동주, 한용운 등은 항일 저항시를 써서 체포되고 옥사하기도 했으며 한편으로는 몇몇 문인들의 친일문학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처럼 해방 직후 우리 문학사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식민지시대 문학의 청산과 새로운 민족문학의 창출이라는 과제가 주워졌다. 그러나 정치세력들의 좌우 사상적 대립으로 우리 문단도 문학적 대립과 갈등을 겪게 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임화, 임학수, 조벽암, 조 운, 이용악, 정지용, 김기림 등은 북으로 가고 김동명, 구 상, 함윤수, 조영암, 양명문 등은 북에서 남으로 왔다. 우리 시단에도 국토의 분단으로 인해서 좌우의 분열은 필연적이었다. 조지훈, 유치환, 서정주 등이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여 민족문학을 통한 독립운동을 벌였는가 하면 임 화 등은 ‘조선문학가동맹’을 만들어 정치적 운동에 동참하게 된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문예』가 창간되고 이형기, 이원섭, 이동주, 박양균, 이형기, 송 욱, 황금찬 등이 등장하였다. 이밖에도 ‘백맥’, ‘시탑’ 등 동인운동을 통해서 정한모, 김윤성, 구경서, 김춘수, 김규동, 한하운, 조 향, 김구용, 신동집, 서정태, 김종길, 조병화 등이 활동하게 된다. 1950년 6. 25 동란과 함께 종군시단이 형성되기도 했으며 수복후 휴전선으로 남북이 양분되고 조선, 동아, 한국일보 등이 신춘문예를 통해 신인들이 등장하여 우리의 대표적인 문학지인『현대문학』『문학예술』『자유문학』이 창간되어 우리 문단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한성기, 김관식, 문덕수, 이성교, 정공채, 박정희, 이제하, 고 은, 황동규, 홍윤기, 민 영, 마종기, 이 중, 김후란, 왕수영, 박희진, 성찬경, 신경림, 신기선, 조영서, 허만하, 김종원, 권용태, 이준영, 원동영, 김해성, 유경환, 박재삼, 성춘복 등 지금도 생생한 시인들이 보인다. 한편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등 신춘문예에서도 박봉우, 신동문, 윤삼하, 안도섭, 신동엽, 황 명, 강인섭, 정진규, 김규동, 권일송, 주문돈, 박이도 등이 등장하고 동인활동도 활발해서 ‘시간표 없는 정거장’, ‘후반기’, ‘시와 비평’, ‘신작품’, ‘청포도’, ‘남풍’, ‘영도’ 등의 동인으로 고 원, 장 호, 조 향, 이봉래, 박성룡, 최하림,김수영, 김경린, 박인환, 박태진, 김원태, 함혜련, 신석정, 김현승 등이 등장하여 우리 시단의 융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대체로 1950년대 우리 시단에는 새로운 서정시 운동과 모더니즘 실험운동, 주지주의 시운동이 일어나 한국시의 일대 변혁을 모색하게 된다. 시를 감정이나 직관으로 처리하지 않고 인간의 마음속 깊숙이 파고드는 새로운 지성적인 서정을 개척하려는 운동으로 박재삼, 박성룡, 구자운, 이성교, 신동집, 정한모, 구경서, 천상병 등은 전통적 서정을 바탕으로 해서 현대적인 서정을 창출하고 있다. 또한 김수영, 박인환, 김경린, 김규동, 조 향 등은 전위적인 실험을 통해 문명비평과 사회풍자로 실험시의 새로운 미학을 개척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신동문, 김광림, 성찬경, 김종삼, 박남수, 송 욱, 전봉건, 김춘수 등은 존재와 의식을 통해 이미지를 한결 심화하여 냉철한 이성을 혼합한 주지주의 시운동을 펼쳐서 시의 영토와 상상의 세계를 확대하는 반면에 시인의 의식을 확고하게 정립하는 주지시 운동에 동참하였다. 특히 송 욱은 동음이어(同音異語)의 배열과 어휘의 전도(顚倒)를 통해 풍자적 이미지를 강하게 투영하는 특징을 엿볼 수 있으며 성찬경은 영문학상에 나타난 19세기적 설화조의 조용한 서정으로 회화적 질서 속에서 감각적인 이미지에 몰입하여 투명한 음색과 협화음(協和音)의 시풍을 지니고 있다. 孤獨이 梅毒처럼 / 여박한 8字면 / 淸溪川邊 酌婦를 / 한 아름 안아 보듯 / 痴情 같은 政治가 / 常識이 病인 양하여 / 抱主나 아내나 / 빛과 살붙이와 / 現金이 實現하는 現實 앞에서 --송 욱의 「何如之鄕」중에서 物質觀念 / 觀念物質 / 사이 사이 膜 --성찬경의「물방울 소묘」중에서 이러한 주지주의 시운동은 30년대 정지용, 김광균, 김기림, 오장환 등이 감상성을 배제하지 못한 채 리리시즘의 세계에 침잠했던 허약성을 극복하고 나선 후반기 동인들의 뒤를 이은 우리 현대시의 한 유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우리는 4. 19와 5. 16이라는 정치적 격동기를 맞게 된다. 따라서 우리 시단에도 잔잔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민주화를 외치는 사회적 기류에 편승하여 김지하의 「오적」, 신동엽의「껍데기는 가라」, 김수영의「풀」, 신경림의「농무」등과 같이 사회 참여적 요소가 강한 경향의 작품들이 나오는가하면, 순수기교의 예술 지향적 작품들로 양분하게 된다. 그러나 문예지들과 각 신문의 신춘문예가 활성화하면서 신인 풍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어 기라성 같은 시인들이 등장한다. 대략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현대문학』: 강우식 김석규 김여정 김재흔 박경석 박제천 박주일 신규호 오규원 오세영 오재철 유승우 이건청 이규호 이동진 이생진 이수화 이승훈 이성부 이일기 이창윤 임 보 전재수 정의홍 정현웅 정현종 조남익 조운제 주성윤 주원규 진을주 진헌성 최연진 함 홍근 황갑주 허영자 등 -『자유문학』: 권기호 김사림 김종해 박재릉 최원규 최원식 황명걸 등 -『월간문학』: 이시영 임영조 이동명 이항수 등 -『시문학』: 양왕용 오순탁 이상개 홍신선 등 -『사상계』: 강계순 신중신 정민호 -『조선일보』: 신세훈 최하림 권오운 강인한 신대철 김창근 등 -『경향신문』: 조태일 김종해 노익성 윤상규(윤후명) 등 -『동아일보』: 김원호 이 탄 김광협 이가림 이성부 마종하 정희성 등 -『한국일보』: 박이도 이근배 문효치 채규판 김종철 등 -『서울신문』: 장윤우 이수익 박의상 강희근 박정만 등 -『중앙일보』: 조상기 오탁번 석지현 배미순 등 이처럼 50년대가 청록파와 미당 서정주 등에 의한 전통적인 한국 서정시에 대한 정착을 모색했다면 60년대는 사회적인 혼란을 겪으면서도 자성의 시각에서 조용한 비판적인 안정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70년대는 우리 사회가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에 돌입한다. 사회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생활패턴도 다양하게 물질적인 가치관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더구나 유신체제하에서 정치적인 구호와 산업 현장에서의 갈등들이 결국 참여와 순수라는 이분법적인 대립양상은 우리 문단에도 나타났으나 그동안 꾸준히 작품 활동의 장을 마련하면서 신인을 발굴한 『현대문학』,『현대시학』,『시문학,』『한국문학』,『월간문학』과 이 시기에 창간한『심상』,『문학사상』,『문학정신』등에서 새로운 시인들이 등장하게 된다. 대체로 살펴보면 김남웅 이기철 엄한정 신달자 정광수 오명규 박명자 곽현숙 윤석호 한상각 감태준 임영조 이세룡 신현정 장석주 호소향 윤재걸 박민수 김명배 김 현 신효정 설의웅 전연욱 지광현 정호승 김영재 조창환 한영옥 서영수 이근식 尹石山 김건일 이성선 김정웅 안수환 최진연 오진현 박해수 조재훈 손기섭 김진경 김수복 김성춘 한기팔 한광구 권택명 권달웅 윤강로 이명수 신 협 나태주 김창완 윤석산 국효문 김명인 황몽산 송수권 허형만 정성수 채수영 진경옥 이영춘 이운용 김남곤 김영만 등이 지금까지 왕성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1980년 이후 2000년대까지는 기존의 문학지 외에 월간지로『문학세계』,『문학공간』,『순수문학』,『한맥문학』,『현대시』,『한국문인』,『문학수첩』,『문예사조』,『조선문학』,『예술세계』등과 계간 또는 격월간으로『문학시대』,『정신과 표현』,『시와시학』,『문예한국』,『한국시』,『시인세계』,『시안』,『창조문학』,『해동문학』,『문예운동』,『문학예술』,『자유문학』,『지구문학』,『문학미디어』,『시로 여는 세상』등이 창간되어 시인을 발굴하고 있으며 각 신문사에서도 지속적으로 신춘문예의 등용문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처럼 80년 이후에는 시인천국이라 할 정도로 많은 시인들이 탄생하고 있지만 상희구 문인수 이상호 박상천 조의홍 이시연 길상호 이동희 김송배 이기애 김천우 오현정 박영하 송유미 나영자 고경희 김선굉 김종섭 이재호 박종숙 김현숙 방지원 김솔아 오만환 나호열 정인관 한택수 구중회 권경애 김기문 구재기 박만진 서정원 서지월 서정학 송계헌 송종규 윤여홍 장순금 하두자 허금주 신진숙 임지현 한소운 황미라 오필례 최수경 장은수 김월하 등의 작품을 문학지에서 대할 수 있다. 한편 가 문학지 출신별로 동인격인 모임을 조직하여 매년 사화집을 발간하고 문학기행, 시낭송회, 세미나 등을 실시하거나 지역별, 학교별, 연대별로 동인모임을 만들어 시가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시 인구를 확대하는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음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현대시의 생성 과정과 중흥기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문예지들의 상관성은 지대하다. 아마도 불가분의 관계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매체가 있었기에 생성하고 발전해 왔다. 그 문예지들의 기여에 힘입어 오늘 우리 현대시는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우후죽순으로 발간되는 문학지와 인터넷 매체, 영상문학의 등장 등을 보면서 21세기 현대시의 일대 전환기가 도래할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우리 시의 형성과정에서 보았듯이 명징(明澄)한 시인의 정신을 투철하게 투영하면서 자연이나 인성 등 존재를 성찰하는 현명한 시인의 자세와 시의 위의(威儀)가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3. 민중시 혹은 민족시의 한계 우리 시단에는 이른바 참여시라는 운동이 있었다. 이는 일제의 침략에 대한 저항에서 이상화 한용운 윤동주 이육사로 이어지는 항일적 저항이 해방과 더불어 좌우익의 형태로 변하게 된다. 6. 25에서부터 4. 19까지의 사회적인 변혁과 가치관의 새로운 변화에 따라 김수영 신동문 김소영 신동엽 정공채 박지수 박정온 안장현 등이 사회참여적인 저항시로 대두되고 있다. 이들은 사회비판적인 정신과 민족적인 역사의식이 하나의 시적 사유로 전환하면서 사회적 모순에 대한 고발이 주제를 형성하고 있었다. 나와 百年의 列車를 타야 할 / 그 女子는 / 그 사람이 運轉하는 / 美 八軍의 車를 탔다 // 바퀴는 나의 맨발이 못따르는 / 揮發油를 타고 / 바퀴는 / 굴러갔다. // 버드나무에 말을 맨 駐屯 / 資本이 / 땅 위에서 黃昏 때의 꽃밭같이 / 꽃으로 피었다 / 公主들은 / 主로 그 꽃만 좋아했다. // 그리고 / 달리는 바퀴 위의 美 八軍의 / 車 안은 / 이러한 꽃으로 가득차 / 資本은 빛나도록 달리고 있다. --정공채의 「美 八軍의 車 <24>」 어느 평론가는 우리의 참여문학은 프랑스의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참여시는 일제 저항시와는 달리 너무나 많은 정치성을 띈다. 4. 19이후 자유당 독재정권과 5. 16에서부터 유신체제에 이르기까지 그 근간을 두고 김지하, 신동엽, 고 은, 신경림, 김규동, 민 영 등이 현실정치를 비판하고 사회적 부정과 부패, 부조리를 공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후 참여문학 논쟁이 문인들 간에 치열하게 벌어지기도 했으나 언제부터인가 민중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보수와 진보의 양상으로 바뀌게 된다. 소위 ‘창비파’니 ‘문지파’니 하는 그룹이 단일화하여 보수문단과 양분되어 유신철폐, 민주화 운동, 노동자 해방, 민족 통일, 반미 전선이라는 청치구호를 외치면서 길거리로 뛰쳐나온다. 그들은 노태우, 김영삼 정권에서는 민주화가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는 전제하에 ‘한국민족작가회’를 결성하고 민족이란 이름으로 진보적 문학을 통한 활동을 전개했다. 더구나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그들은 국가 정책 노선인 남북관계의 개선에 ‘남북문학교류작가회의’를 통해서 국가 예산을 축내면서 평양을 갔다 오고 민족 통일을 외쳤다. 한편 순수문학을 고집하는 보수진영에서는 선비정신을 내세워 무력하기만 했다. 소위 민작이 득실거리는 동안의 세월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명명했다. 정권이 보수쪽으로 교체되니까 슬그머니 ‘한국작가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지난 10년간 문예진흥기금을 전유물로 여기던 그들이 꼬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남북문학 교류를 통해서 [통일문학]을 남북 합동으로 발간했다고 한다. 국내에 반입 허가를 신청했으나 보수정부에서 인정할 리가 없다. 그들은 노무현 정권에서 지원하기로 한 몇 천만 원의 경비를 새 정부가 주지 않아서 반입이 불가하다고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어쨌거나 그들의 문학 계보는 ‘저항→ 참여 → 민중 → 민족 → 한국작가’란 이름으로 정권에 따라서 편리하게 변하고 있다. 문학에 무슨 계보가 있는가. 매슈 아널드의 말대로 시는 인생 비평이 포함되어야 한다. 인생과 정치를 혼동하는 시가 어떻게 영원성을 확보할 것인가. 지난 2005년인가. 민중문학의 대표주자 백낙청은 평양에서 열기로 했다가 그쪽 사정에 의해서 금강산에서 남북문학교류가 있었다. 시낭송에서 저들은 이데올로기 시를 읽어대고 이쪽 사람들도 반미, 반기업 구호를 시라고 읽어서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김남주의 「조국은 하나다」인데 일부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조국은 하나다 /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 남 모르게 이제는 공공연하게 / 조국은 하나다 / 권력의 눈 앞에서 / 양기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 조국은 하나다 /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조국은 하나’라는 명목으로 ‘양키’와 자본가‘를 무자비하게 말장난을 하고 있다. 조국이 북쪽과의 하나라는 의미인지 일상어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언어의 무법자를 자칭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최영미의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잘 알고 있다. 그 중에서「Personal Computer」란 것이 있다. 우리의 시간과 정열을 그대에게 / 어쨌던 그는 매우 인간적이다 / 필요할 때 늘 곁에서 깜박거리는 / 친구보다 낫다 / 애인보다 낫다 / 말은 없어도 알아서 챙겨주는 / 그 앞에서 한없이 착해지고픈 / 이게 사랑이라면 // 아아 컴-퓨-터와 씹할 수 있다면! 그러나 이동재라는 무법자는 전교조 소속인지는 모르지만 학생들에게 최영미의 시를 가르치고 있다. 그가 쓴 「씹을 위하여」라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최영미의 시 한 편을 읽어주는 시간 / ‘아아 컴-퓨-터와 씹할 수 있다면!’ / 낭독을 마치자 / 한 여학생이 씹이 뭐냐고 / 어느 나라 말이냐고 물었다 / 처음엔 날 놀리는 줄 알았다 / 그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서 정말 모르느냐고 했다 이런 류의 언어유희는 얼마든지 있다. 그들의 특기이다. 이렇게 써야만 시이며 베스트 셀러도 된다는 그들의 주장이다. 쓰는 자도 문제지만, 이런 것들을 작품이라고 문학지에 게재하고 또 시집을 출판하는 자는 더 문제가 많다. 이제 그들은 한계점에 도달했다. 그들이 외치고 주장하던 저항과 참여, 민중, 민족문학은 설 땅을 잃었다. 다시 고 은과 황지우, 김규동, 김지하 등이 순수 서정으로 반전하는 것을 보면 한 시절 풍미하던 정치판에서 당대 최고의 한국 시인의 영화를 누렸던 그들의 운명도 다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하면 선비들의 단체이며 비교적 순수를 견지하는 한국시인협회는 50년을 한결같이 선비정신으로 남아 있다. 1957년 2월에 창립된 한국시협은 우리 시단에 새로운 역사를 남겼다. 조지훈 박남수 박목월 이한직 박두진 박양균 김경린 김요섭 장수철 김구영 김윤성 정한모 송영택 양명문 조병화 박태진 황금찬 김종길 신동집 김춘수 이동주 장만영 박화목 이봉래 김종삼 장 호 유치환 전봉건 함윤수 이경순 유 정 김종문 이설주 김해강 천상병 서정주 김규동 장서언 조영암 장호강 이효상 최계락 이형기 신석초 신석정 김현승 한성기 송 욱 김수돈 설창수 김남조 이윤수 이영순 조 향 김상옥 등 우리 시단의 거물급 시인들이 참여하여 우리 한국시의 순화운동을 전개했다. 그동안 군사정부의 단체 통폐합에 따라 1961년에 강제 해산 되었다가 1965년 4월 재창립하여 유치환 조지훈 서정주 신석초 장만영 박목월 정한모 조병화 김남조 김춘수 김종길 홍윤숙 김광림 이형기 성찬경 정진규 허영자 이근배 김종해 오세영 오탁번 등이 회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50년의 역사를 장식하고 있다. 그후 문덕수 함동선 박재릉 최은하 신규호 신세훈 등이 참여한 한국현대시인협회가 결성되어 우리 시단에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4. 다원화시대와 현대시의 전망 시의 본령은 휴머니즘에 있다. 인성의 회복을 서정적 감응을 노래하면서 인간에게 진선미를 메시지로 전달하는 매체의 작용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일이다. 시인은 이러한 대명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그러나 1900년대와 2000년에 와서 시의 위기는 심각하다. 다원화 시대를 살면서 물질의 풍요와 문명의 이기에 떼밀리면서도 문학지의 발간은 수없이 늘어나고 각 언론매체나 백화점의 문화센터, 대학교에서도 문예창작과를 신설하는 것도 모자라 사회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시인 지망생들에게 강의를 개설하여 등단시키는 시인들의 사유는 그 폭이 좁아지고 정서가 괴멸되는 현상이다. 한편으로는 진정한 시 독자가 없다는 점도 문제이지만, 특정 출판사가 고의성을 띄고 베스트셀러 시인을 가공하는 점도 문제가 된다. 또한 이러한 신인들의 지적사유를 향상하고 시인의 자질과 시 정신 그리고 올바른 시 창작을 안내할 시(또는 문학)에 대한 교육이 어떤 문학단체에서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황폐화한 인간 정신을 고양하고 인생의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고뇌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도 ‘이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왜. 이 땅에 시가 있고 시인들이 있어서’라고 말한 원로 황금찬 시인이 기억난다. 시는 아름다움이나 진실, 나아가서는 구원을 찾는 인간의 순수하고 진솔한 표현이다. 시는 그만큼 인간의 정신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이것이 시의 기능이며 효용이다. 이처럼 시가 필요하고 시인의 존재 이유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우리 현대시의 미래지향적 전망은 시인들의 정서뿐만 아니라, 시 정신(poetry)도 크게 작용한다. 일찍이 공자가 ‘시 삼백 편의 내용은 한마디로 사악함이 없어야 한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思無邪)’고 강조한 것을 보면 보다 인간의 내면에서 흐르는 진실이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에게는 저마다 삶의 궤적이 있다. 인간의 칠정(七情-희로애락 애오욕)에 따라 상상력으로 재생하고 그 재생된 상상력은 다시 존재를 인식하면서 성찰하게 된다. 그 성찰을 통해서 개개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설정하게 되는데 이러한 감득작용이 이미지나 어떤 의미로 표현되는 것이 시의 창조과정이다. 이처럼 시적 의식의 흐름에는 인생관의 재창조뿐만 아니라, 물질문명의 팽배로 자연이 파괴되고 그 파괴된 자연은 바로 인간의 존엄과 상관하게 된다. 친자연, 친환경이라는 말과 같이 자연사랑에 대한 시인들의 고뇌도 있어야 한다. 그것들이 작품으로 형상화할 때 인간의 진실, 곧 시인의 정신으로 승화할 것이다. 우리의 시 정신은 어떤 초현실적인 절대자를 의지함으로써 인생의 고뇌와 무상에서 벗어나려는 종교나, 한 가닥 지엄한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서 이에 따르려는 윤리, 심지어 시와 가장 먼 듯한 철학도 현실에서 찾지 못한 우주와 인생의 근원을 탐구하는 한 이 모두는 시 정신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과학도 마찬가지이다. 당초에 과학은 우주의 불가사의에 대한 놀라움으로 하여 그 미지의 비밀을 탐지하려는 데서 비롯되었다면 과학정신도 시 정신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종교, 윤리, 철학, 과학 등 인생의 값진 유산의 중심축에는 엄연히 시정신이 포괄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는 인간의 가장 높은 가치이며 또 시정신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정서를 돌이키는 인간 혼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적기능의 원류를 상기하면서 21세기 우리 시의 전망에서 외적으로 절대 배제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시의 글로벌화이다. 노벨문학상의 도전이 아니라 세계 속에 한국시의 위의를 높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정책적으로 이를 지원하여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또 하나는 국토분단의 역사적 통한을 어떻게 승화해서 앞으로 다가올 통일시대의 문학을 정립할 것인가에 다한 지성적 고뇌이다. 이데올로기적인 체재의 시정신과 우리의 정신들이 어떻게 융합하고 조화할 것인가가 문제로 남는다. 무조건 ‘북으로 가자. 그들에게 식량을 지원하자’가 아니라, 적절한 묘법을 찾기는 아직 요원하지만, 통일 시대의 대비는 당대가 아니며 민족의 숙원으로 차세대에게도 동일한 과제가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내적으로는 2000년대 테크노피아시대를 맞으면서 우후죽순으로 생성하는 인터넷 카페문학의 범람을 어떻게 정화하고 어떤 방법으로 순화하여 우리 시문학 발전에 동참시킬 것인가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온라인에서 성행하는 이 문학운동을 문학단체들이 외면하고 이들을 무조건 천대하려는 발상은 전근대적이며 현실 실태의 접근을 피하려는 현상은 우리 시문학의 지향적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리 시단에는 자연 파괴로 지구의 존재가 위협받거나 인성부재의 현실에 대한 21세기적인 실험이 더욱 필요한 과제로 남는다. 이것은 우리 현대시 100년을 통해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정착시킨 찬란한 역사를 더욱 계승 발전시킬 우리 시인들의 숙명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 1994. 5. 민음사 김송배 :『화해의 시학』1996. 12. 국학자료원 김윤식. 김재홍. 정호웅. 서경석『우리 문학 100년』2001. 7. 현암사 김해성 :『한국현대시문학개설』1976. 12. 을유문화사 한국시인협회 :『한국시인협회 50년사』2007. 8. 국학자료원 ---------------- * [한국문인] 2009. 1월호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