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 무정 14

[좋은벗약초나라(원주)]

제14장 대혈마성

언제부터일까?

(강호계에는 기이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大血魔城)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랫동안 이어지던 폭풍전야(暴風前夜)의 적막이 깨어지는

 죽음의 전조이기도 했다.
소문은 네 곳에서 시작이 되었다.
첫 번째 소문, 그것은 수년 간 신비에 싸였던 혈검금군단이 

 마침내 비밀의 장막을 걷고 강호상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들은 천하를 상대로 혈전을 벌인다 했다.
두 번째 소문은 금릉(金陵)에서 시작이 되었다.
금릉에 자리를 잡은 풍운십천회(風雲十天會)가 

 최근 들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을 했다는 것이었다.
일컬어 풍운동맹(風雲同盟).
풍운십천회는 정사(正邪) 중간(中間)의 세력을 끌어들여

새로운 지평선(地平線)을 열기 시작했다.
풍운동맹은 묘화원(妙花園)이라는 신비 장소에서 이룩되었고, 

 구파일방(九派一幇)의 속가제자(俗家弟子)들과

 강호계의 거상(巨商)들이 한데 모여 이룩이 되었다.
풍운동맹은 천하에서 가장 특이한 신흥세력으로

 수적으로나, 저력으로나, 폭풍의 눈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들도 서서히 준동(蠢動)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강호의 겨울을 재촉하는 또 하나의 삭풍(朔風)으로 화하고 있었다.
세 번째 소문.
그것은 뇌왕천(雷王天)이라는 전통적 거인에 대한 소문이었다.
뇌왕천은 수년 간 세력이 약화되어 가고 있었다.

 팔황검세 뇌천강은 칩거에 들어갔으며, 

 뇌왕천의 대소사는 그의 여제자인 악금예(岳琴藝)가 도맡아 처리하고 있었다.
하나 그들은 정파와 사파에서  따돌림당했으며,

 이전과는 달리 가공할  패도적 활약을 하지 않는지라

그들에 대한 소문은 점점 불리한 쪽으로 변화해 갔다.
천하 모든 방파가 적으로 삼고 있는 무림의 거두(巨頭) 팔황검제 뇌천강,

그의 종말이 다가왔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 팔황검제는 죽어 가고 있다!
－ 그는 자신이 저지른 죄업으로 인해 아무도 존경하지 않는 가운데

 고독하게 죽어 가고 있다.

그는 하늘과 땅, 사람들에게서 버림을 받았다!
－ 뇌왕천은 이미 무적(無敵)이 아니다!
－ 뇌왕천의 후예들은 뇌왕율법을 거부하고 모조리 떠나갔다.

 팔황검제는 후계자도 두지 못하고 고독하게 죽어 갈 것이다.

뇌왕천이라는 이름이 주는 힘은 전과 달랐다.
그들이 그렇게 퇴조해 가는 이유는,

그 어떤 반대 세력보다도 거대하게 성장하고 있는 그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 악마의 그날이 다가서고 있다!
－ 이제 무림은 선택해야 한다. 그들에게 죽거나, 그들을 섬기든가!

또 하나의 하늘로 등장하는 무리들,

그들은 바로 대혈마성(大血魔城)의 마도고수들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열사(熱砂)의 대지.
평원(平原)의 광활무변은 있으나 녹음(綠陰)이 없다.

 낮에는 살이 익을 정도로 뜨겁고, 밤이 되면 뼛골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워진다.
대상들도 가로지르지 못하는 북방의 오지, 등격리(騰格里).
가물거리는 열사만이 끝없이 이어지고,

 이글거리는 태양(太陽)으로 인해 모든 것이 죽어 버린 죽음의 대지이다.
모래 바람과 열기가 번갈아 핥아 내리는 영겁의 저주 아래

 죽음의 대지가 되어 버린 등격리사막 한가운데.
휘리리리링－!
아아, 바람(風)!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바람이 거기서 시작되고 있었다.
가끔 가다가는 용권선풍(龍捲旋風)이라는 거대한 바람이 일어나

 거대한 부락을 통째로 휘말아 버리고,

낮과 밤의 극심한 기온차가 모든 것을 가루로 부수어 버리고 만다.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못하는 저주의 대지.
한데, 언제부터일까?
끝이 없이 펼쳐진 모래의 땅 저 너머에 하나의 성이 장엄한 기세로 솟아나고 있었다.
신기루처럼 나타나는 혈성(血城).
자금성(紫禁城)보다도 거대하고, 뇌왕천보다도 웅장한

 이십팔(二十八) 리(里)의 거대한 성벽(城壁)이 열사의 대지 한가운데 솟아올라 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일대의 모든  것은 불타 죽고 말았는데,

거대한  핏빛 성의 주변만은 전혀 달랐다.

신록(新綠)이 우거졌고, 기화요초가 태탕( 蕩)한 향기를 피우고 있다.
환상처럼 아름다운 장소.
그러나 모든 것은 살아 있는 아름다움이라기보다 죽어 있는, 

 정지되어 있는 사악한 아름다움이었다.
아아, 바로 악마의 하늘이라는 대혈마성(大血魔城)이 아닌가?
수백 년에 걸쳐 마도세력을 병탄, 규합하는 가운데

가공하고  거대무쌍한 세력을 이룩한 마도무림의 성역이다.
보라! 언제부터인가 수없이 많은 혈포인(血袍人)들이 대오정연하게

 하나의  대전(大殿) 주위로 다가서고 있지 않는가?
휘리리리릭－ 휘리리릭－!
꾸역꾸역 몰려드는 자들의 수는 거의 수만(數萬)에 달했다.
이들의 가슴에는 검(劍)이 수놓아져 있다.
검의 숫자는 사람들마다 각기 다르다.

그리고 검의 숫자는  바로 서열(序列)을 뜻한다.

적어도 검이 세 개는 되어야 마도 서열에 끼일 수 있다.
대혈마전(大血魔殿).
대혈마성의 무수한 전각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전각이다.

 일천 명이 들어차도 부족함이 없는 전각.

 그 근처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오검(五劍) 서열(序列) 위에 있어야 한다.
구주팔황(九州八荒)에서 웅자를 품고 대혈마성에 모여든 자들.
아아, 이들은 하나같이 피에 굶주린 눈빛을 갖고 있지 않는가?
악마성에 찌든 무리들은 무수한 동심원을 이루며 대혈마전 근처로 모여들었다.

칠검(七劍) 이상의 서열을 가진 자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을 걸친  채

이미 대전 위에 이르렀다.
이전에는 일방(一幇)의 패주(覇主)이거나,

 일파(一派)의 대종사(大宗師) 역할을  했던 자들의 수는

 무려 사백오십칠(四百五十七)에 달한다.
'드디어… 악마의 그늘이 되었다.'
'대혈마성의 영도 아래…

 우리 전 마도연맹은 중원천하를 향하여 진군하게 되는 것이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참아 왔다. 마침내… 때가 온 것이다.'
사백오십칠 인은 모두 호법(護法)의 지위에 올라 있었다.

 이들은 포권(抱拳)을 한 채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팔검(八劍) 지위에 오른 자들,

 이들은 이미 전설적인 마명(魔名)을 천하에 날린 자들이다.
천하 백도인들이 공적(公敵)으로 지목하고 추적대를 보내어 죽이려  했으나

죽이지 못한 자들도 있으며,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고 알려진 자들도 있다.
그리고 중원무림계에는 알려지지 않은

 변황무림계의 위대한 패왕(覇王)들의 모습도 여럿 끼여 있었다.
일백팔(一百八) 인(人).
팔검 서열에 오른 사람들의 수는 도합 일백팔 인이었다.
하나같이 은포(銀袍)를 걸치고 있는 자들,

 이들은 천지현황(天地玄黃)의 사마반(四魔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천마반(天魔班).
그곳에는 북무림계(北武林界)의 거성(巨星)들이 모여 있다.
우두머리는 북천산(北天山)의 종사라는 마검천마존(魔劍天魔尊).
그는 이미 나이 이백사십에 다한 자인 데에도 불구하고,

 대혈마성에서는 수석장로(首席長老)의 지위에 불과했다.
지마반(地魔班).
서무림계(西武林界)의 거목(巨木)들이 모여 있다.
소뇌음사(少雷音寺)의 라마(喇 )인 뇌음마불(雷音魔佛)이 우두머리로 있으며,

  서천축국(西天竺國)의 전설적 거마들이 대거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은동철혈(金銀銅鐵血)의 오탑마불(五塔魔佛)이 있고,

 희마랍아(喜魔拉峨)의 설지(雪地)에서
수백 년 간 고립되어 있었다는 신비 방파 설산존궁(雪山尊宮)의 인물들이 있다.
하나하나 가공할 무공을 지니고 있으며,

 이미 수만 명의 휘하 제자를 거느리고 있는 위대한 마도종사들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하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에 만족하고 있는 듯했다.
현마반(玄魔班).
동무림계(東武林界)의 거인(巨人)들이 있는 곳,

부상(扶桑)의 병법가(兵法家)들이 장도(長刀)를 찬 채 앉아 있었다.
이들은 눈을 반쯤 감고 있는데,

 다른 곳의 무림고수들과는 달리 매우 차갑고 싸늘하며 예리한 기운을 흘리고 있다.
유구국(琉球國)의 제일고수라는 천마랑(天魔郞)도 있고,

동영제일검(東瀛第一劍)이라는 도혈랑(刀血郞)의 모습도 끼여 있다.
황마반(黃魔班).
남무림계(南武林界)의 거마(巨魔)들이 머물러 있다. 

남해마방(南海魔幇), 해왕사신궁(海王死神宮), 철룡무존부(鐵龍武尊府),

귀황천지문(鬼皇天地門), 능천거패궁(凌天巨覇宮)의 종사들이
팔검서열에 올라 있는 것이다.
구검(九劍) 서열(序列), 그 자리는 단 셋이다.
구마지존(九魔至尊) 혁천굉(赫天宏),
마영위사대(魔影衛士隊) 총검대주(總劍隊主) 종리탄(鐘里彈),
혈살풍막(血殺風幕) 막주(幕主) 겸 수석살좌(首席殺座) 혈살제일객(血殺第一客) 흑사(黑邪).
이들은 이미 죽었다고 알려진 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뇌왕천으로  인해 휘하 조직을 모조리 잃었다는 것이었다.
십검(十劍) 서열(序列).
그 자리는 도합 쌍좌(雙座)인데, 모두 텅 비어 있었다.
십검 서열은 소종사(少宗師)의 지위를 뜻한다.

 그 자리에 누가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마검대좌(魔劍大座),
잔화대좌(殘花大座).
그 자리는 마도무림계에서는 꿈의 자리이고,

 뇌왕천의 소종사 지위를 능가하는 가공할 권위를 갖고 있는 자리였다.
그 위에는 오직 하나의 자리만이 있다.
바로 천마대좌(天魔大坐).
대혈마성주인 천검성(天劍星)이 앉는 자리이고,

 천하의 일백팔류(一百八流) 마도무림 계파를 모두 관장하는 자리였다.

어디일까?
붉은 혈광배(血光杯)의 빛줄기가 일대를 피의 연못 바닥처럼 시뻘겋게 물들이고 있다.
드넓은 대리석전(大理石殿),

 이곳은  가공스러운 마기(魔氣)와  음침한 사기(邪氣)로 뒤덮여 있었다.
지금 두 개의 시선(視線)이 허공에서 부딪치고 있었다.
전신을 혈무(血霧)로 뒤덮은 자의 핏빛 섬전 같은 두 줄기 시선과,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백면 미장부의 차갑고 흐트러지지 않은 두 줄기의 시선.
네 줄기 시선은 오랫동안 허공에서 부딪치고 있었다.
대혈마성에서 가장 깊은 곳,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그들뿐이다.
전 마도를 굴복시킨 악마의 영웅(英雄)들.
이곳에는 천마계보(天魔係譜)라는 마도계의 계보  가운데

 가장 지고한 위엄을  지닌 계보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지배자만이

 머무를 수 있는 자리였다.
"마검향(魔劍香)! 본좌는 지금이 때라고 여기는데, 너만은 어이해 때가 아니라고 하느냐?"
잔혹한 핏빛 시선.
그러한 시선을 가진 사람은 지상에 한 사람뿐이다.
바로 천마종(天魔宗)!
대혈마성을 이룩한 악마의 제황(帝皇)만이 그러한 눈빛을 흘려 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시선 앞에서도 기가 죽지 않을 시선을 가진 자는 그가 후계자로 지목하고 있는
마검대좌의 주인뿐이다.
마검향(魔劍香)!
꽤나 준미(俊美)한 인상을 갖고 있는 자이다.
나이는 스물하나 정도, 입술이 얄팍하고 매부리코가 예리한 분위기를 보인다.

전체적으로 준수한 인상이나,

그의 시선에 실린 침침한 기운은 상대를 섬칫하게 만든다.
전 마도 서열 가운데 제이위(第二位).
마도계가 지정한 모든 관문(關門)을 거쳤으며, 

 이미 장로회(長老會)와 호법총평의회(護法總評義會)에서의 무공 시험을 간단히 거친 자.
그는 장차 전 마도를 통솔할 악마의 절대자(絶對者)로 키워졌다.
마검향은 마도세력이 대진군하기 직전,

 대혈마성의 종사인 천검성과 단독 대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막강(莫强)합니다. 그것은 압니다!"
"한데?"
"상대 또한 막강합니다!"
"그것은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

 네가 천(千) 일(日) 폐관(閉關)하는 사이 그들은 힘을  잃어 갔고,

요즈음에 이르러서는 백도계(白道界)마저 그들을 공적으로 지목하고 있다!"
"하오나 그들은 아직 존재하고  있으며, 백도계의 태두(泰斗)라는  소림사(少林寺)는

 그들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검향은 직선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그가 아닌 그 누구도 천검성 앞에서는 말대답을 하지 못한다.
천검성의 제자이자 양아들이며,

 천하혈세(天下血洗)를 진두에서 지휘를 하기로 안배가 된 마도 소종사.
그는 악마의 수업을 끝내고 십여 일 전에 출관했다.
천검성은 그의 출관을 기다려 마도고수들을 모았는데,

마검향은 천검성과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저는 그들의 저력을 압니다, 대종사!"
마검향이 크게 말하자.
"물론 본좌도 그것을 알고 있다. 마검향, 너는 십 세 때 자청해서 그곳에 갔었다!"
"…"
"그 이유는, 적(敵)을 알기 위함이었다!"
"그… 그렇습니다!"
"너는 그곳에서 네 능력을 보였고,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기 직전에 그곳을 떠났다!"
"그렇습니다!"
그곳이라니?
대체 어떠한 곳을 그곳이라 하는 것일까?
"너는 그곳의 인물들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본좌가 세운 병법은 네가 그곳에 들어갈 때, 너를 보호하기 위해 함께 들어간 

혈살풍막주(血殺風幕主) 흑사(黑邪)가 수집한 정보를 기초로 하고 있다!"
자욱한 혈무 가운데에서 손 하나가 나타났다.
핏빛의 손, 혈옥으로 만든 듯한 악마의 손은

 마검향의 뒤쪽에 있는 벽면을 가리켰다.
혈거벽(血巨壁).
그곳에는 천하지리(天下地理)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천하무림계의 거대 방파들의 세력 판도에 대한 것이

 매우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저것을 이룩하기 위해… 무려 백 년이 걸렸다!"
우르르릉－!
천검성의 말로 인해 대전이 뒤흔들렸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뇌왕천(雷王天)과 소림사(少林寺),풍운십천회(風雲十天會)와 무당파(武當派)…

훗훗… 게다가 그들 가운데에는 우리들이 보낸 첩자들이 득실거리고 있고,
그들의 상부 자리에 침투한  자들도 수없이 많다! 

 우리가 패할 이유는  없다. 우리의 승산은… 십(十)이다!"
콰르르르릉－!
대전이 뒤흔들릴 때.
"아닙니다. 구(九)입니다. 그래서 대종사를 단독 배알하려 한 것입니다!"
마검향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십(十)과 구(九), 그 차이는 오직 하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뜻하는 바는 실로 거대하다.
"모든 것을 깨뜨릴 만한 운명의 절대자가 있습니다.

그자가  제거되지 않는 한 저희들이 승산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대종사!"
마검향은 절대마혼을 갖고 있었다.
천검성이 기른 자라고는 하나, 그의 기질이며 기도는 천검성과 판이하게 달랐다.
천검성은 마도의 것만 아나, 마검향은 백도의 것도 알고 있다.

 마검향이 그렇게 길러진 이유는,

항차 백도마저 지배하겠다는 천검성의 저의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하나의 패산(敗算)이 있습니다. 통촉해 주십시오!"
마검향이 힘있게 말하자.
"훗훗… 너의 마음을 안다. 그리고 지금 네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도 알고 있다. 

 너는 뇌천강이란 자를 겁내는 것이 아니냐?"
천검성이 웃으며 말할 때.
"그가 아닙니다, 대종사!"
"아… 아니라고?"
천검성은 처음으로 흠칫 놀랐다.

그리고 마검향의 목소리가 드센 어조로 이어졌다.
"뇌천강은 십오야(十五夜)의 만월(滿月)로 그 기세가 차츰차츰  기울어져 가고 있습니다

. 그는 강하기만 했지, 부드럽지 못해 더 강한 것을 만나면 꺾여 버릴 자입니다!"
"으음…!"
"제가 말하는 자는 전혀 다른 자입니다.

그자는… 어떠한  운명적인 저력을 갖고 있는 자입니다!"
"누구냐? 그자가?"
"그자는 제 또래의 인물입니다.

 그자는 뇌천강이 기른 자들 중 하나로 아무도 그 진실된 정체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 겉보기는 부드러우나, 정녕 거대한 혼을 지니고 있는 자입니다.
그자가 제거되기 전에는 우리들의 승산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핏빛 안개가 출렁거린다.
그리고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흐른다.
"옥린(玉鱗)이라는 자입니다. 그자는!"
마검향은 고개를 쳐든 채 혈거벽을 보고 있었다.
대혈마성이 수십 년에 걸쳐 수집한 천하무림계의 크고 작은 비밀이

 거기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수천 개의 점이 핏빛으로 박혀 있는 것을,

 홍묘안석(紅描眼石)으로 인해 찍혀진 점은 무엇인가?
천팔백 개의 혈점들은 하나의 장소나 사람을 뜻하고 있다.
대혈마성은 어떠한 방파도 모르는 사이,

 이미 천하각처에 수없이 많은 밀정을 내보냈다.
어디 그뿐이랴? 이미 이십만(二十萬) 무사들이 중원에  나가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사십여만 고수들이 있다.
대혈마성의 저력은 가히 일국(一國)을 능가하고 있었다.

그들은 숫자에 있어 이미 뇌왕천을 사 배 능가하고 있고,

 고수들의 수에 있어서는 뇌왕천의 다섯 배이다.
한데, 마검향은 그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불안해 하는 표정이었다.
"옥린이라는 놈은… 뇌천강보다도 거대한 데가 있는 놈입니다.

그놈이 있다면,  저희들이 하고자 하는 일은 막대한 지장을 받을 것입니다!"
마검향의 눈빛은 암울하다.
어렸을 때부터 마도의 종사로 길러진 인물.

그는 골수까지  마성에 찌든 악마라기보다는

 제반 마도의 절기와 천하 백도의 무공에 대해 능통한 위대한 승부사(勝負士)였다.
"일단은 그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의 가치는 뇌천강 이상입니다.

 그를 잡는다면 뇌천강은 희망을 잃게 될 것이고, 저절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으음, 네가 그리도 높이 평가하는 자가 있을 줄이야?"
천검성의 눈빛이 흐트러졌다.
핏빛 안개가 보다 짙어졌다.

천검성은 고뇌를 했고, 어느 순간 번갯불 같은 혈망을 토해  냈다.
"정녕 그 애송이가 그리도 두려운 존재이냐?"
"예."
"좋아. 그럼 그자의 이름을 살인 명단의 제이좌(第二座)에 기록하겠다!"
살인 명단!
그것은 대혈마성이 최근 강호 정세를 수집하여 만든 명단이다.

<제일좌(第一座) 팔황검제(八荒劍帝),
제이좌 무적대군주(無敵大軍主),
혈검총군주(血劍總軍主),
소림(少林) 제일고수(第一高手) 십방성불(十方聖佛)…>

살인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천하무림계의 절대자들이다.
대혈마성은 천하 정복을 위해 무수한 무사를 모았고, 크고 작은 비밀을 모두 수집했다.
그리고 이날, 악마의 대진군이 시작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곧 중토로 들어설 잔화영(殘花影)에게 그자를 죽이게 하겠다!"
"잔… 잔화영!"
"훗훗… 너는 아직 그 아이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아이는 대혈마성 최고(最高), 최후(最後)의 살인병기(殺人兵器)이다!"
"…"
"본좌가 그 아이를 기른 이유는, 천하무림의 절대자들을 암살하기 위함이었다.

 그 아이는 부풍혈인(扶風血忍)의 살인술을 전수받기 위해…

 조용히 부상국으로 떠났었다."
천검성은 그러한 자였다. 그는 악마의 대종사가 되기에 부끄럽지 않은 자였다.
그는 십 년 전 한 여아(女兒)를 거뒀다.
온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는 소녀 하나.
그녀는 대혈마성의 후계자가 되기에 부족하지 않은 자질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곧 마혼지경(魔魂之境)에 들어섰고,

 일백팔살(一百八煞)이라는  호위무사들을 대동하고 바다를 건넜다.
그 이유는 하나, 동해(東海)의 전설이라는 잔화류(殘花流)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 아이에게 옥린이라는 자를 암살케 하겠다. 훗훗…!"
"으음…!"
마검향은 신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천검성의 눈빛은 그를  향해 쉬지 않고 폭사되었다.
'본좌는 너를 알고 있다.

 너는… 네가 마도종사로  자라야 한다는 것을 마음 속이나마 거부하고 있다.'
번쩍－!
눈빛은 점점 가공스러워졌다.
'그러나… 마도종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의 운명이다. 

아느냐? 그것은 네게 지워진 숙명이다.'
천검성은 거의 호흡 소리를 내지 않았다.
혈무는 더욱 짙어졌으며, 마검향은 좀처럼 고개를 쳐들지 못했다.
그의 무릎 앞, 하나의 마번(魔幡)이 떨어져 뒹굴고 있다.
혈마령(血魔令)!
대혈마성의 총수(總帥)가 정한 신표이다.

 그것을 쥐는 자는 대혈마성의 내외단(內外壇) 모든 고수들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가 있다.
마검향은 오랫동안 혈마령을 바라봤다.
'저것을 쥐게 된다면… 나는 악마가 되어야 한다.

  나는… 무수한 사람을 죽이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피를 보아야 한다.

아아,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못할 것이 없다 여겨졌는데…

지금은 두렵다.

하늘의 높음이, 그리고 그 하늘에 도전하는 일에  선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 운명이라면… 두려우나, 피하지는 않는다.'
마검향은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천검성은 그가 대답할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마검향은 천천히 손을 내밀어 혈마령을 쥐었다.
"제가 앞에 서겠습니다, 대종사!"
순간.
"프핫핫… 네가 그것을 쥘 줄 알았다.

자랑스러운 나의 후예! 프핫핫…

이제 너는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

  네게 모든 것을 제수한다.

 팔십일방(八十一方)에 흩어진 전 마도고수를 부릴 수 있는 권한을 줄 것이고,

 네가 필요로 하는 것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가공할 능력을 주겠다.

 가서 장악하라, 무림(武林)을! 그리고 뇌왕천을! 이제는 너의 세상이다!"
콰르르르릉－!
대전이 뒤흔들렸다.

대리석 기둥이 뒤흔들리고, 핏빛 거벽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천지개벽(天地開闢)!
하늘이 찢어지고, 땅이 뒤흔들린다.

마도대평의회(魔道大評議會).
이 자리는 오랫동안 대진군을 기다리던 마도계 거두들이 학수고대하고 있던 자리였다.
드디어 폭풍의 날이 시작된 것이다.
상석(上席).
그 자리에는 천검성이 아니라 영준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손에 혈마령을 쥐고 있는 청년,

 하나의 예검(銳劍)을 연상케 하는 인상이 날카로운 자였다.
드넓은 장방형의 탁자 둘레에 마도계를 이끌고 있는 거두들이 시립한 채 서 있다.
팔검(八劍) 서열(序列) 위쪽의 고수들은 흥분된 기색을  애써 참으며

마검향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마검향의 명에 따라 은의괴인(銀衣怪人)이 말을 하고 있었다.
"저희들의 세력은 현재 삼로(三路)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백도를 어지럽히는 일입니다!"
"…"
"…!"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들 중 우두머리는 마마혼(魔魔魂).

 그는 소림사 일대에 포진(布陣)하고 있습니다.

 그의 역할은 소림사에서 최근 들어  방장의 후예로 지목을 받은

  허무승(虛無僧)이 이끄는 오천(五千) 불등(佛燈)이라는

 소림의 진짜 정예들을 감시하는 일입니다!"
허무승(虛無僧)이란 사람, 그의 신분은 백도계에서조차 비밀인데…

 대혈마성에서는 그를  알고 있었다.
그는 십방성불(十方聖佛)의 전인이다.
그는 칠십이(七十二) 종(種)  절기(絶技)와

달마역근경(達磨易筋經), 벌근세수경(伐筋洗髓經)에 통했다.
그는 소림이 실로 오랫만에 배출한 고수로,

 그의 진실된 무공은 가히 절대 절정이라고 소문이 난 상태였다.
"그는 백도 최후의 전설이라는 무적대군주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적대군주는 백도 최고의 비밀이다.

 그가 깨어난다면 백도는 불사조처럼 살아날 것이다.
무적대군주, 그 말로 인해 일대가 묘한 흥분에 휘어감겼다.
백도무림은 지난 천여 년 간의 무림사 가운데 가장 허약한 상태이다.
달마로 시작된 백도무림. 그들은 강하고 끈질기다.

 그들은 불굴의 무사혼을 갖고 있기에  언제나 마도를 능가해 왔다.
백도의 전성기는 무적성승의 진전을 이었다는 사자천불 이래 끝이 났다.
그는 소림을 강호제일지로 끌어올렸는데,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소림 사상 가장 강하다는 백팔 항마승을 이끌고.
그가 사라진 곳이 바로 금릉이었고, 그곳에서 무적대군주의 신화가 시작되었다.
그 후, 십성천(十聖天)이라 불렸던 십 인의 백도기인들이

 구파일방(九派一幇)의 비급과 영부(令符)를 갖고 전설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현재… 무적대군주가 나타날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으음…!"
"그러나 최후의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기에, 또 한 곳에다가 손을 쓰고 있습니다! 

장소는 바로 금릉(金陵)! 그곳에는 시세를 잘 모르고

혈기(血氣)만 믿고  날뛰는 백도의 젊은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곳에는 귀래혼(鬼來魂)이 나가 있습니다. 

 귀래혼은 백도의 전설을 무너뜨리는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마검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차디찬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은포괴인은 흑사(黑邪), 그는 히죽 웃으며 입술을 열었다.
"세 번째 세력은 금사탄 일대에 숨어 있습니다. 그들은 때가 되면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훗훗… 뇌천강 휘하 이십사만(二十四萬) 가운데  십오만은 싸움이 일어나며 도망갈  것이고,
칠만(七萬)은 반검(反劍)할 것입니다. 뇌왕천은 거의 폐허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뒤쪽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

깊은 침묵이 가라앉는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라도 들릴 정도의 완전한 침묵,

 그 침묵은 마검향의 목소리로 인해 깨어졌다.
"먼저… 소림사(少林寺)를 무림계에서 제명(除名)케 하라!"
"소… 소림을?"
"아아…!"
마도거두들은 흥분했고.
"그 다음, 천하의 백도를 등에 업고 뇌왕천을 친다!"
"예… 에?"
"천하의 후광을 업다니요?"
사람들이 얼떨떨해 할 때.
"소림은 뇌왕의 발에 밟혀 깨어지는 것으로 소문이 날 것이다.

 뇌왕은 곧 공적화 될 것이고,
우리들은 당당하게 뇌왕천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번쩍－!
무시무시한 마광이 그의 두 눈에서 폭사되어 나왔다.
야릇한 웃음, 그 웃음은 바로 악마의 웃음이었다.
'천하는 이제 알아야 한다. 나란 자를! 마검향이라는 자를!'
마검향은 혈마령을 불끈 거머쥐었다.
'나는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고금 무림계에  없었던 영세제일인의 자리이다.

 그 자리는 오직 나에게만 허용이 되리라! 오직 나에게만…!'

그날, 오만(五萬)이 대혈마성을 떠났다.
그 다음 날에는 십만(十萬)이 중원을 향해 대혈마성을  떠나갔다.

 만 마리 전서구(傳書鳩)가 떠올랐고,

천 마리 천리마(千里馬)가 전서를 가슴에  품은 첩자들을 태운 채

열사의  사막을 가로질러 사방으로 흩어져 갔다.
아아, 악마의 바람이여!
구천십지를 숨죽일 악마의 바람은 이렇게 시작이 되고 있었다.
하늘에는 유성우(流星雨)가 지고 있다.

마검향은  출정할 모든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그는 애검(愛劍)을 매만지며 하늘을 우러르고 있었다.
"오랫동안 하늘을 우러러봤다. 오랫동안 하늘에 도전하려 했었다!"
사악한 웃음, 아무도 그 진정한 뜻을 모를 사악한 웃음이다.

천검성마저도 짐작하지 못할 정녕 가공할 악마의 미소.
뚝－ 뚝－ 뚝－!
하늘은 유성의 비에 의해 난도질되고 있다.
은빛 화살이 되어 흑공을 가로지르는 유성들,

마검향의 눈빛은  끝없이 이어지는 유성의 궤적에 닿고 있었다.
"내가 노리는 것은 이인자(二人者)의 지위가 아니다.

 내가 노리는  것은 모든 천하제일(天下第一)이다.

언제고… 언제고… 만인이 나를 알리라!"
번쩍－!
잔혹한 빛이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온다.
'나는 삼 년에 걸쳐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는 히죽 웃으며 검신을 매만졌다

. 검신은 당장 피를 흘릴 듯이 붉게 반짝이고 있었다.
"일단 뇌왕의 하늘을 장악해야 한다

. 그곳에는 나의 추억이 있고, 나의 마지막 욕망(慾望)이 있다

. 훗훗…기다려라. 내가 간다!"
그는 중얼거렸고, 일순 그의 몸은 검은 바람이 되어  위로 떠올랐다.

 일수유(一須臾)의 순간에 그는 모습을 감췄다.

악마의 계절은 이렇게 시작이 되는 것인가?
가장 처절한 피의 계절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놀러오셔]

즐감합니다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방랑자

고맙습니다

rkatkgkamslek 즐독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정남]

rt

[십분만]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sanuro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