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기테다소나무
오늘 금강수목원에서 숲해설 실습에서 특이하고 일반인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아주 훌륭한 소나무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그 이름하여 리기테다소나무는
한국의 현신규 박사가 리기다소나무와 테에다소나무의 우수한 성질을 인공적으로 교잡해서 개량한 소나무이다. 두 종 모두 외국에서 들여온 도입종이다. 리기다소나무는 추위에 잘 견딜 뿐 아니라 메마른 땅에서 잘 자라는 성질이 있으며, 테에다소나무는 재질이 뛰어나다.
높이 30m, 지름 1m까지 자란다. 나무의 겉면은 매우 거칠고 결이 곧게 뻗는다. 나무줄기의 중심부는 붉은빛을 띤 갈색이고 통나무의 겉 부분은 노란빛을 띤 흰색이며 나무줄기의 중심부와 통나무의 겉 부분이 맨눈으로도 뚜렷이 나뉜다. 나이테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목재의 비중이 작고, 수축성과 흡수성은 작은 편이다. 인장강도(극한강도)와 전단강도는 보통 정도이고, 압축강도와 휨강도는 약하다. 경도는 보통이다. 이러한 성질 때문에 건축재로 적합하고 토목·포장·펄프 등의 용도로도 쓰인다. 교잡을 통해 추위에 약한 테에다소나무의 단점을 극복하여 중부지방에 심는다. 황해도 이남 (강원도 제외) 정도는 서식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네이버 지식백과] 리기테다소나무 [rigitaeda pin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평생을 나무하고만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나무는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됐고 내가 나무 속에 있는지 나무가 내 속에 있는지조차 모를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또 그러다 보니 사람의 마음속은 헤아릴 줄 몰라도 나무의 생리나 애환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눈이 뜨였고, 나무와의 대화 속에서 나무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됐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임학자(林學者) 고 현신규 박사(1911~1986)가 남긴 말이다. 일제의 수탈과 6·25전쟁을 거치며 금수강산이라 불리던 우리 국토는 헐벗게 됐다. 하지만 오늘날은 숲이 너무 울창해 해마다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를 솎아내야 할 형편이다. 이처럼 우리 국토를 울창하게 만든 일등 공신은 바로 현신규 박사다. 아직 일반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현신규 박사의 공로를 돌아보자.
1963년 미국 상원의 알렉산더 와일리 의원은 한국에 ‘기적의 소나무’가 만들어졌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바로 현신규 박사가 리기다소나무(Pinus rigida)를 엄마로, 테다소나무(Pinus taeda)를 아빠로 삼아 좋은 점만 타고난 리기테다소나무(Pinus rigitaeda)다.
미국 동북부 지역에 자라는 리기다소나무는 재래종 소나무(육송, Pinus densiflora)에 비해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추위와 병충해에도 강해서 일본 강점기 헐벗은 산에 많이 심어졌다. 하지만 리기다소나무는 곧게 자라지 않고 재질도 연약해 목재로서의 가치는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반면 테다소나무는 주로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며 생장이 빠르고 재질도 좋지만 척박한 토양과 추위에 약한 수종이다. 현신규 박사는 두 나무의 장점만 모아 추위와 병충해에 강하면서 생장이 빠르고 재질이 좋은 나무를 만든 셈이다.
사실 리기테다소나무는 1930년대 미국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현신규 박사는 미국 여러 곳에서 테다소나무의 꽃가루를 채집해 추위에도 강한 품종을 만들었기 때문에 기존의 리기테다소나무가 내한성을 갖도록 재발견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유럽의 잡종 낙엽송과 에테뉴 라디아타소나무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성공한 ‘교잡종’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우수한 형질에도 불구하고 현재 리기테다소나무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현신규 박사의 소나무 연구는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보다는 과학자 개인의 관심과 노력으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정부가 산림정책을 주도한 제1차 치산녹화사업(1973~1978)은 경제적으로 유용한 나무보다 이른 시일 내에 산림을 푸르게 만들 수 있는 속성수 위주로 진행됐다.
또 리기테다소나무의 종자를 얻으려면 리기다소나무의 암꽃에 비닐봉지를 싸서 그 안에 테다소나무의 꽃가루를 주사하는 수작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테다소나무가 남부지역 이상에서는 자라지 않고 개화시기가 4월 21부터 5월 2일까지로 리기다소나무의 개화 시기인 5월 1일부터 8일과 겹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숲의 조성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계획해야 함에도 단기적인 녹화사업에 치중한 결과 오늘날 전국의 숲에는 쓸모없는 나무가 많은 셈이다.
현신규 박사는 2003년 2월 20일 과학기술 명예의 전당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기술자인 장영실과 허준, 우장춘 등과 함께 헌정됐다. 현신규 박사는 황폐해진 국토를 위해 재질이 좋고 빨리 자라는 나무를 개발해 보급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임목육종연구소가 문을 열고 현신규 박사가 작사한 ‘육종의 노래’ 1절의 후렴부분에는 그 마음이 잘 표현돼 있다.
“칠보산 넘어드는 정기의 바람에, 붉은흙 무르익는 내음새 풍기며 푸른솔밭 넘어드는 조화의 바람에, 가지각색 나무꽃이 향기를 풍긴다. 정열과 의지의 연장을 들메고, 동지여 오늘도 일하러 갑시다. 육종! 육종! 임목의 육종은 하늘이 우리에게 준 사명이라네.”
첫댓글 현장감 있는 자료와 사진이 실감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