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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문학 이야기·임성규
현실의 남루함을 뛰어넘는 불온한 상상력
-이현의『짜장면 불어요!』(창비, 2006)-
1. 아이들 곁으로 바짝 다가선 단편 동화의 묘미
단편 동화를 읽는 묘미는 어디에 있을까? 그건 장편 동화와 달리 하나의 작품집으로 엮이면서 한데 뒤섞이기도 하고 때론 하나의 중심을 향해 견고하게 연대하는 통일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처음엔 각각의 이야기들이 감동의 옷을 입고 다가서지만 마지막에 가서 하나의 주제로 꿰어지는 작품집 전체의 여운이 가슴 가득해질 때 문학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렇게 볼 때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 이현의『짜장면 불어요!』(창비, 2006)는 보다 독특한 의미를 지니고 다가온다. 개별 작품들이 뿜어내는 문학성의 밀도가 가슴 저리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작품집 전체가 하나의 줄기를 향해 뻗어나가기 보다는 부채꼴 모양의 차이를 띄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동화 읽는 묘미를 배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말 대로 서로 다른 표정과 몸짓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그녀의 말에서 이미 예비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얼굴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듯이, 생각이며 행동거지며 사는 모양새도 모두 달랐으면 좋겠다. 제멋대로, 내키는 대로, 다 달랐으면 좋겠다. 내가 훌쩍 시간을 거슬러 어린 날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게 뭐 어떠냐고 엉덩이를 흔들면서 까불고 다닐 작정이다. 지금부터라도 그럴 작정이다. 나만 그럴 게 아니다. 어린 친구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백발성성한 할머니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이면 참 재미있겠다. 누군가 다가와서, “넌 왜 달라?” 이렇게 물으면 우리 모두 경쾌하게 말하는 거다.
“그게 뭐 어때서?” (이현,「머리말」,『짜장면 불어요!』창비, 2006, 4-5쪽.)
사실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들은 현재를 미래에 저당 잡힌 채 '지금 이곳‘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잃어버린 채 일상인의 평균치로 살아가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자기만의 색깔이나 개성을 잃어버린 채 보통 사람이라는 어른의 잣대로 좌지우지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 어린이들에게 주는 문학은 현실에서 한 걸음 비켜나와 때론 일탈하기도 하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자유를 주기도 하는 작품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작품집에 실린 다섯 가지 이야기들은 저마다의 맛과 멋을 지닌 채 아이들에게 마음의 해방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란 점에서 더욱 든든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약력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전태일 문학상’을 통해 등단하고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를 수상하였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집은 어느 정도의 문학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은 것이라 아니할 수 없으며, 작가만의 고유한 창작역량에 믿음이 간다. 그러므로 이 작품집에 실린 이야기를 함께 읽으면서 현실의 남루함에 맞서는 전복의 상상력, 불온한 상상력을 함께 체험해 보는 일은 뜻 깊은 자리가 되리라 생각한다.
2. 불온한 상상력, 전복의 상상력
다섯 편의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끄는 작품은 단연 표제작인「짜장면 불어요!」이다. 실제로는 열네 살이지만 열일곱 살이라고 속이고 중국집에 취직한 용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데, 특히 중국집에서 먼저 일하고 있던 기삼이를 만나 벌이게 되는 대화 장면이야말로 이 작품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요소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이 이야기의 대부분이 둘의 대화 장면에 국한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거나 심심해할 틈을 주지 않은 채 짜장면과 철가방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그리하여 짜장면에 대한 노래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장면’이 맞느냐 ‘짜장면’이 맞느냐 하는 언쟁 그리고 철가방에 음식 담기와 짜장면을 배달할 수 있는 모든 장소에 대한 이야기까지 거쳐나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잡생각을 잊고 짜장면이 불러일으키는 감흥에 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만큼 사소한 짜장면 하나지만 그에 대한 자료조사나 작가의 고민이 결합되어 이룩된 것이 바로 이 작품이란 점에서 작가의 창작 실천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정작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곳을 벗어나 좋은 대학 가려는 용태와 중국집에서 짜장면 만들고 배달하는 일을 기꺼이 즐겁게 해 나가는 기삼이의 대조가 작품 속에 깔려 있기도 하다.
“빨간 머리요? 됐어요! 난 공부도 잘해요. 꼭 좋은 대학 가서 성공할 거예요.”-중략-
“공부를 못하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무수히 많아. 철가방을 들 수도 있고, 춤추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집 짓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장사를 할 수도 있고, 요리사가 될 수도 있고, 백수가 될 수도 있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공부를 잘하면 딱 세 가지 밖에 안 되잖아. 거기다 이 세 가지 직업을 가지게 되면 평생 공부를 해야 한다고. 너 공부하는 거 좋아하냐? (135-136쪽.)
공부 잘하는 애들이 택할 수 있는 직업은 의사, 검사, 판사, 변호사, 박사뿐이라는 지적도 뼈아프게 다가오지만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병통 중 하나라는 점에서 작가가 의도했건 혹은 필자가 오독했던 간에 분명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부분이라고 판단된다. 특히 반값 등록금 투쟁을 벌이는 대학생들의 고민과 아픔을 고려한다면 도대체 대학이란 무엇 하는 곳이며, 젊은 청춘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장차 커 나갈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새삼 되새기게 해준다.
한편「우리들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일어나는 또래 연애 문화와 성 문제가 불거져 있다는 점에서 어린이문학에서 흔치 않은 소재를 그 안에 품은 채 새로운 문제 상황을 일깨워 주고 있다. 특히 평범한 여학생인 현경이와 인기 많은 남학생인 상우가 서로 좋아하게 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작품의 면면은 이제 일상이 되어 버린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연애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에 값한다.
서로 사귀게 됨에 따라 점점 가까워진 두 아이는 아무도 없는 현경이 집에서 같이 영화를 보게 되는데 뽀뽀를 하려는 찰나 현경이 엄마가 집에 오게 되면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엄마가 낌새를 못 차릴 리 없다. 다 큰 남학생과 여학생이 둘만 한 집에 있는 건 위험하다는 것을 엄마뿐만 아니라 현경이도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후 상우가 야한 사진을 학교에 가지고 와서 남학생들과 돌려 보다가 선생님께 들킨 것이 화근이 되어 둘 사이는 서먹서먹해지게 된다. 그리고 사건이 있은 후 다시 만난 자리에서 상우가 미안하다고 하지만, 둘 사이는 이제 사랑인지 우정인지 헷갈리는 상황에 들게 된다.
가슴에서 따뜻한 기운이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상우의 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졌다. 그게 어른들이 말하는 우정인지, 애들이 말하는 사랑인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우정이 뭔지 사랑이 뭔지 나도 잘 모른다. 그래도 내 마음을 상우에게 전하고 싶었다. 상우를 향해 피어오르는 마음이니까, 그게 무엇이든 상우에게 전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았다. 상우도 그날, 나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44쪽.)
사실 초등학교 고학년 쯤 되면 누구나 좋아하는 이성 친구가 있기 마련이고, 좋아하는 걸 넘어서 사귀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이 현재 초등학교 고학년의 풍속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므로 그러한 상황에 직면한 현경이와 상우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곧 아이들이 학교 주변의 일상에서 접하는 소재를 문학적으로 흥미 있게 직조해 내었다는 점에서 작품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 곧, 사랑과 우정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형상화한 작가의 창작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사례이며 또래 성문화를 직접적으로 건드렸다는 점에서 새로운 어린이문학의 출구를 열어젖힌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한편 작품「3일간」은 화가 겸 강사인 엄마와 신문기자인 아빠를 둔 윤서를 중심으로 부모님이 이혼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친구들의 도움을 구하는 윤서의 모습을 그린 이야기이다. 친구들로 가난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영선이가 있고, 사흘 먼저 전학 와서 친구가 된 가난한 집 딸아이 희주가 있다. 희주는 부모님이 이혼하여 친척집에 얹혀살고 있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3일간 일어난 일을 영선이를 초점화자로 하여 진행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짧은 기간에 일어난 사건의 추이와 각 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충분히 여유롭게 살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결말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다. 아마 이 작품집 전체가 그런 것으로 보이는데 작가는 시종일관 이야기를 전개해 내고 있으면서도 정작 결말 부분에서 뚜렷한 해결을 보여주지 않은 채 독자의 선택과 생각을 요구하는 열린 결말을 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더욱 깊은 마음으로 작품이 지닌 둔중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는 과제를 하나씩 안는 셈이다.
작품「봄날에도 흰곰은 춥다」의 주인공 동민이도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엄마는 광주에서 이모할머니가 운영하는 감자탕 집에 일하러 갔고, 버스기사였던 아버지는 이제 이삿짐센터에 나가 막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가장인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우리는 봄날의 흰곰이 누구인지를 뻔히 아는 채로 가슴이 아파 옴을 느끼게 된다.
포동포동 살진 몸에 하얀 러닝셔츠를 입고, 목이며 어깨며 팔에 온통 하얀 파스가 붙어 있었다. 목에 하얀 수건을 걸치고 구부정하게 어깨를 구부린 채 머리까지 수그리고 있었다.
-중략-
흰곰의 오른팔이 무겁게 앞으로 향하더니 소주병을 집어 들었다. 촬촬촬, 물소리가 조용한 부엌에 울려 퍼졌다. 벌컥, 흰곰은 소주를 들이켰다.
또 한 번 촬촬촬, 벌컥, 또 한 번 촬촬촬, 벌컥.
흰곰은 더 심하게 몸을 떨었다. 우워, 우워, 울부짖는 소리까지 내기 시작했다.
(171-173쪽.)
아버지가 슬픈 만큼 동민이도 슬프지 않을 수 없다. 한 가정이 경제적 문제 때문에 서로 떨어져 지내고 막일로 몸이 상할 대로 상한 상황을 작가는 파스를 붙인 채 소주를 훌쩍이는 아버지의 뒷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절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문학은 애초부터 희망의 문학이다. 아버지를 따라 울음에 잠기지만 한 가정을 든든히 건사해내어야겠다는 소년의 다짐을 우리는 작품 후반부에서 동민이의 모습으로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한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가 세상에 부딪쳐 비틀거리고 흔들릴 때 나이 어린 소년 주인공 또한 그 흔들림에 의해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작가는 말없이 힘겨운 아버지를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동민이의 모습을 통해 어린이문학의 희망이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작품집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작품은「지구는 잘 있지?」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민규가 우주선을 타고 동석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띄고 있다. 또한, 각종 과학지식을 동원하여 작품을 축조해내었다는 점에서 사이언스 픽션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로 인하여 작품집 전체가 단조로워지는 것을 막고 전체 작품에서 다양성과 새로움을 독자들이 느낄 수 있도록 안배한 작가의 역량이 느껴진다.
이 작품에 나오는 편지에는 날짜가 적혀 있는데, 읽다 보면 같은 날짜가 계속 되풀이되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우주의 시간과 지구의 시간은 다르다는 나름의 법칙을 축으로 하여 작품 전체를 구성해 낸 것이다.
특히 지구가 전쟁이라든가 에너지 고갈로 아사직전에 처하게 되어 새로운 자원을 얻을 수 있는 에덴으로 가야한다는 절박함 등은 이 작품의 주제의식이 지구의 생태 환경과 전쟁 방지에 있음을 되새기게 해준다.
사실 한국에서 어린이를 위한 사이언스 픽션은 더욱 개척해야 할 몫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작가들이 더욱 세심하게 접근하여 문학성 높은 작품들을 창작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로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작가 이 현이 생각한 어린이문학이 아주 다채로운 짜임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한편 환영할 만한 일이면서 많은 다른 작가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촉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더욱 열심히 어린이문학 창작에 전념하며 한편으론 청소년 소설에까지 영역을 확장하여 창작 활동에 임하고 있는 작가의 행로는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더욱 좋은 작품으로 독자와 만나게 되길 고대하며 부족한 평문으로 작품에 누가 되지나 않았는지 걱정이 앞선다. 앞으로 작가의 더욱 힘찬 발걸음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3. 다시 현실에 서서
이 작품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짜장면을 아직 배달하지 않았는데 방금 출발했다고 기삼이가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다. 바로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작업에 임하는 그만의 자세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손님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의 작은 속임수일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짜장면이 방금 출발했다“라든지 ”조금만 더 가면 산 정상이다“ 등의 말을 생활 속에서 드물지 않게 들으면서 작은 위안과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어린이문학 교육에서도 독자인 어린이 중심, 학습자 중심의 어린이문학 교육은 하나의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만큼 어린이문학의 독자인 어린이와 어른의 요구를 민감하게 감지해내는 작가들의 각성이 절실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생각의 편린을 어린이문학에서 생각하면 어떨까? 독자인 어린이와 어린이문학을 사랑하는 어른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꿰뚫어 보는 창작의 실천 말이다. 그건 그만큼 많은 작품들이 독자들과 원활하게 소통하기를 바라는 한 이기심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그러한 창작 실천이 기다려진다.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계간 어린이문학 제87호(2011년 겨울) 176~184쪽>
임성규 대구 해서초등학교 교사, 대구교대 국어교육과 강사, 경북대 국어교육과 박사과정에 있으며, 이오덕과 권정생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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