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미 순교와 관련된 신앙 증거 터와 순교 터
벌판길과 진둠병
▲ 해미성지 진둠벙
▲ 해미성지 진둠벙
▲ 해미성지 자리개 돌
▲ 해미성지 자리개 돌
▲ 해미성지 자리개 돌
▲ 해미성지 자리개 돌
▲ 해미성지 자리개 돌
1790년대부터 80여 년간 시산 혈하를 이루던 서문밖 사형 터는 병인 대박해시(1866년 이후)에는 주거 인접지역인 관계로 대량의 사학죄인의 시체를 처리하기에는 협소한 장소였다.
1천여 명을 단기간 동안에 처형하기 위해 벌판에서 집행하게 되었는데 죽이는 일과 시체 처리하는 일을 한꺼번에 해치우기 위해서 십 수명씩 생매장하게 되었다.
생매장 시키러 가는 길에 큰 개울을 만나게 된다. 개울을 건너는 곳에 외나무다리가 있었고, 그 밑에는 물길에 패인 둠벙이 있었다. 두 팔을 뒤로 묶이어 끌려오는 사학죄인들을 외나무 다리 위에서 둠벙에 밀어 넣어 버리기도 하였다.
묶인 몸으로 곤두박질 당한 죄인은 둠벙 속에 쳐 박혀 죽었다.
이 둠벙에 죄인들이 떨어져 죽었다 하여 동리 사람들 입에 ‘죄인 둠벙’이라 일컬어지다가 오늘날에는 말이 줄어서 ‘진둠벙’ 이라 불리어진다.
자리개질 사형
해미읍성 서문밖 형장에서는 잔인하게 돌다리 위에서 팔다리를 잡고 들어서 돌에 메어치는, 자리개질이 고안되기도 했고, 여러 명을 눕혀 두고 돌기둥을 떨어뜨려 한꺼번에 죽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숨이 끊어지지 않아 꿈틀거리는 몸뚱이를 발견하면 횃불로 눈을 지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해미 진영의 서문 밖은 항상 천주학쟁이들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그 피로 내를 이루었다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