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안 올 것만 같았던 종이접기 교실 D-Day였습니다.
아침에 와서 학부모님들께 준비해두었던 내용대로 문자를 보내고, 카메라를 설치하고,
미비된 준비물을 확인해본 후, 수업 준비를 마쳤습니다.
어제 밤에도, 오늘 아침에도 아이들을 맞이하는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해보았지만 긴장되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동안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마주할 기회가 종종 있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5명이나 한 번에 만나는 일은 정말 생소했기 때문입니다.
어느정도 준비가 끝나자 구 선생님께 전화를 한 번 드렸습니다.
여느 때와 같은 퉁명스러운 "여보세요"라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오늘은 선생님께 응원을 받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하자 "아이 나 목 아파서 못 해요"라고
아픈 기색 하나 없이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너무 긴장된다"와 같이 투정을 부리자
마지막에는 무심하게 "색종이 잘 접으세요. 나 없어도 잘 할 수 있을 거에요"라고 응원의 말을 건네주셨습니다.
에너지 넘치는 파이팅은 아니었지만, 저희를 응원해주시는 선생님의 진심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다 나으시고 다음주에 보자는 말에는 "싫은데요"라며 장난으로 대꾸해주셨습니다.
사실 목이 아프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이번에는 진짜 아프신가' 싶어 걱정이 되었지만,
그렇게 장난을 치시는 것을 보니 괜찮으신 듯 하여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러고나니 아이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손을 잡고 온 아이들에게 미리 준비해둔 리본을 하나 씩 달아주었고
다른 아이들이 올 때까지 만화영화나 학원 얘기 등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얘기들을 미리 하고 있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들 5명 중 2명이 태권도를 같이 다닌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저희와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한 후, 이름표 꾸미기 활동을 했습니다.
다들 아직은 복지관이 낯선지 적극적으로 이름표를 꾸미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하나둘 찾아갔습니다.
이름만 쓰고 잘 꾸미지 않는 아이들의 곁에 가서 "이걸 써보는 건 어때?" "이거 그려볼까요?"라고
질문을 하고 부탁을 하며 아이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하나 둘 예쁘게 이름표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적극적으로 꾸민 아이도, 무슨 말을 해도 꾸미기 싫다는 아이도 있었지만,
그래도 다들 이름표가 하나 씩 만들어졌습니다.
이름표를 가지고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했는데 다들 아직은 부끄러운지
"제 이름은 이거(이름표를 가리키며)고요, 00살입니다" 정도로만 발표를 하고
박수를 쳐달라는 저희의 부탁에도 마지못해 박수는 치되, 이름표에 팔을 끼우고 로봇박수라고 하거나,
"이거 제가 치는 게 아니라 이름표가 치는 거에요"라고 말하며 말을 돌렸습니다.
이때까지는 이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잘 해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바람개비를 접을 때도, 교안을 보고 자기 혼자 멋대로 진행하는 아이,
다른 아이들보다 손이 느린 아이, 하다가 실패한 아이 등등 같은 설명을 듣고 만들었음에도
가지각색의 5개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아이들이 적어서 저와 아영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다가가
한 명 한 명 진도에 맞춰 가르쳐줄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바람개비 5개를 모두 완성하니 벌써 약속했던 11시였습니다.
바람개비를 접고 니께 잘도니, 내껀 왜 안도니 하며 교실을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이제 좀 친해진 것 같았습니다.
사실 밖에서 기다리시는 부모님들이 몇 분 보여서 전 활이나 몇 번 쏘고 마무리해야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먼저 옥상에 가자고 제안해주었습니다.
옥상에 가서 바람개비를 돌려보고, 제가 술래가 되어 얼음땡도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했습니다.
힘들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어떻게 맨날 애들이랑 회의를 몇 시간씩 하시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옥상에서 아이들이 서로 서로
"야 나 땡 해줘"
"야 거기 어니야" 하고 노는 모습을 보니 목표로 했던 아이들 간의 유대 강화가 이루어진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옥상에서 놀고 이제는 진짜 아이들을 보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쯤
또 아이들이 "우리 이제 개구리 접어보면 안돼요"라고 물어봤습니다.
아이들의 기대에 가득찬 얼굴을 보니 차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교실에 들어와서 개구리를 또 접었습니다,
개구리를 접고나니 이번에는 활을 쏴보고 싶다고 합니다.
또 쏘자고 했습니다.
밖에서 기다리시는 부모님들의 눈치가 보였지만
아이들이 오후에는 태권도 가야한다, 영어학원을 다니게 됐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지금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게 해주고 싶어 그만 집에 가자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쥐어짜내 약 2시간 정도 수업을 하고서야
부모님들이 한 분 두 분 들어오셔서 학원을 가야한다며 아이들을 데려가셨습니다.
1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밖에서 기다려주신 부모님들께 너무 죄송하면서도 감사했고,
부족한 선생님들을 맞아 수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해준 아이들에게도 굉장히 고마웠습니다.
마지막에는 아이들이 구 삼촌 빨리 나으라고 편지도 써줬습니다.
빨리 나으시라는 릴레이 영상이야 저희가 부탁해서 했다치더라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편지를 쓰는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 예뻤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으로 저도 같이 순수해지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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