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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 속 새별오름 올라
2005년 12월 15 일
버스를 타고 서부관광도로에 들어설 때까지도 눈이 그렇게 많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새벽부터 친구들의 걱정 전화가 빗발치는데 난감했다. TV를 틀어보니 도 전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고 한라산을 넘어가는 모든 도로가 전면통제 되었다고 방송하고 있다. 우선 wansan과 김립 등과 전화로 의논한 결과 10시경이 되면 제설작업이 끝나 통제가 풀리겠지 하는 안이한 마음에 버스를 타고 성판악에 모여 물오름을 오르기로 잠정적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막상 터미널에 도착해보니 5.16과 1100도로는 전면통제가 풀리지 않고, 다행히 서부관광도로 등은 체인을 감고 운행이 가능하다고 해서 당초 계획대로 새별오름에 가기로 결정하였다. 그 바람에 서귀포의 김립은 돈내코 입구에서 차를 기다리다가 다시 터미널로 바쁘게 움직인 보람도 없이 서귀포에서 오는 버스는 중간에 세워주지 않는다는 바람에 아쉽게 산행을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이 글을 읽는 김립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전하며 마음으로나마 우리의 행복을 나눠주고 싶다.
버스가 관광대를 지나자 주변은 돌변하여 온 세상이 하얗다. 길가에는 제설차에 밀린 눈이 수북하고 산과 들도 하얀 옷으로 갈아입었다. 눈도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함박눈이다. 따뜻한 차 안에 앉아 눈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는 정취도 그만이다. 이렇게 한없이 가고 싶다. 갓길에는 지난밤에 버려둔 차들이 눈을 한 짐씩 이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신천지 미술관을 지나 경마장 부근부터는 차들이 비상등을 켜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거북이 걸음이다. 나중에 보니 납읍목장 고갯길에서 노선버스가 앞서가던 승용차를 추돌하는 사고가 있어서 차들이 더 느리게 진행한 것 같다. 한 쪽 차선은 체인을 감는 차량들로 더 혼잡하다.
새별오름 진입로 못 미쳐 조랑말 공연장 앞에서 하차했다. 버스는 우리가 내리자 거의 빈차나 다름이 없다. 길가에 쌓인 눈이 발목까지 빠지는 상황이라 겨우 앞사람의 발자국을 밟으며 북돌아진 오름 부근에 있는 굴다리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따뜻한 모과차 한잔으로 한숨을 돌리고 각자 아이젠을 부착하기 시작했다. 이 또한 가관이다. 거의 처음으로 아이젠인가 하는 것을 사용하는 터라 어떻게 하는지 몰라 서로 눈치를 보며 착용하느라고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래도 제대로 안됐던지 가는 길에 아이젠이 빠져서 눈 속을 찾아 헤매는 해프닝도 있었다.
초보들 치고는 꽤 용감한 우리들은 아이젠 소리를 철걱거리며 씩씩하게 눈길을 헤쳐 나갔다. 3,40cm가 족히 되는 아무도 밟지 않은 처녀설을 앞장이 밟은 족적을 따라 한발 한발 밟으며 나아갔다. 오늘의 앞장은 발 크기가 가장 큰 남산이 wansan의 조언을 들으며 맡았다. 그가 앞장서 커다란 족적을 남김으로서 뒤에 따라가는 친구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다. 옛말에 처음 족적을 남긴 이의 발걸음이 비틀거리면 뒤를 따르는 사람 모두 비틀거리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이런 면에서 오늘 앞장 선 남산의 족적은 칭찬 받을 만 했다. 하얗게 덮인 설원에 울긋불긋 열 한명이 한 줄로 서서 남산을 따라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새별오름 표지석이 눈을 함빡 뒤집어쓰고 우리를 반긴다.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주변에 모여 섰는데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앞이 안보일 정도로 주변이 왁왁하다. 눈송이가 소용돌이치며 얼굴에 부딪친다. 눈에 눈이 들어가 눈물이 난다. 이 물은 눈(雪)물인가 눈(目)물인가? 주변에 피할 곳도 없다. 다들 옷깃을 바짝 여미고 마스크를 하고 오름을 향하여 걷기 시작한다. 전진 또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눈 등반에는 초보들이라 부족한 장비가 많다. 신발도 방수가 안돼는 것은 금방 양말이 젖는다. 발목덧씨우개(이름이 있는데 이름을 잊었다)를 하지 않아 신발 속으로 눈이 계속 들어온다. 속옷만 두껍게 입어서 몸은 둔하고 땀이 흐르고 입에서는 단내가 난다. 눈길에 오름을 오르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임을 이제야 알겠다.
갑자기 시야가 환해진다. 눈보라가 그쳤다. 새별오름의 단아한 모습이 하얀 분을 바르고 우리를 내려다본다. 정월대보름 들불 축제에 불꽃으로 승화하기 위한 새와 억새가 제법 아이들 키만큼 자라 있다. 길을 벗어난 곳에는 눈이 종아리까지 파묻힐 정도다. 눈을 밟은 소리가 뽀드득거린다. 누가 쓴 글에 어린 눈은 뽀드득 소리가 나고 내린지 오래된 눈은 뿌드득 소리가 난다고 했었는데 그게 맞는지 모르겠다. 제법 가파른 남사면을 택해서 오르는 길은 여간 힘들지 않다. 친구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2,30분 걸었을까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야호! 이렇게 좋을 수가! 눈 덮힌 벌판에 우뚝 선 새별오름 정상에서 우리는 지팡이를 흔들며 환호했다. 때마침 눈도 그치고 바람도 잠잠하다. 주변 경치가 한 폭의 산수화가 되어 우리를 압도한다. 바로 옆에 이달봉과 이달촛대가 피라미드처럼 누웠고 멀리 가까이 크고 작은 오름들이 혹은 짙게 혹은 희미하게 화폭을 장식하고 있다. 길게 뻗은 눈길에는 자동차들이 쩔쩔매며 거북이처럼 기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소주 맛도 절로난다. 4홉 소주 두 병이 눈깜짝할 새 동났다. 다들 흥에 겨워 신바람이 절로 난다. 누가 강강술래 하자랄 것도 없이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원무를 춘다. 흥겹게 돌아가며 원무를 춘다. 아! 이런 행복~ 지금 이 시각 우리처럼 행복한 사람들 또 있을까? ~나와 보라고 그래! 소리치고 싶다. 이 자리에 참석 못한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특히 꼭 참석하려고 동분서주하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간 김립에게 너무 미안하다.
놀다보니 정오가 훨씬 지났다. 내려오는 길은 아이젠의 효과를 톡톡히 느끼며 일부러 눈위에 뒹굴기도 하며 내려왔다. 눈 내린 날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사물이 단순화되어 쉽게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 것이 화를 불러 조그만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뒤따라 내려오던 꼴찌가 앞장을 앞지를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뒤에서 내려다보니 앞장이 좌측으로 도는 것보다 직선으로 가로 지르면 나가는 길이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늘 꼴찌로서 남의 뒤꽁무니만 따르던 수모를 오늘 보란 듯이 복수하리라 결심한 그는 우매한 백성 셋(햇살부부, 나리엄마)을 대동 드디어 반역을 꽤했다. 좌회전 지시를 무시하고 드넓은 설원을 향하여 직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공동묘지로 향하는 길이었고 자신만만하게 길을 개척하던 꼴찌는 결국 두손을 들고 말았다. 낮은 야산이 가로 막혀 눈 덮힌 관목과 억새를 헤칠 엄두가 안난다. 결국 우리는 갔던 길을 되돌아 앞장이 간 길을 되짚어 오는 20여분 동안 먼저 간 여덟 명의 친구들은 큰길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추위에 떨어야 했다. 반역자들을 대표하여 정중하게 사과를 드리는 바이다.
그 동안 찻길에는 눈이 많이 녹아 질퍽거린다. 길가에 치워 둔 눈도 오후 들면서 녹아내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아스팔트 길을 아이젠 소리 철커덕거리며 버스를 탈 수 있는 곳으로 긴 행렬을 이루며 한 줄로 걸었다. 재수 좋게 얼마 기다리지 않아 버스가 도착하고 우리는 다시 따스한 문화의 품에 안겼다.
터미널 부근에 있는 메로왕이라는 메로 전문식당에서 지리로 배를 채우니 천국이 따로 없다. 오늘 우리 나이로서는 약간 무모한 짓을 했지만 결과는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그리고 너무 행복했다. 다시 이런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김립 미안해.
첫댓글 김립씨. 다음 코스는 지미봉입니다. 모일 장소는 종달초등학교 정문 앞입니다. 안내 부탁합니다. 한라산은 송년특집이나 신년 특집으로 마련합시다.
눈길을 앞장서서 헤쳐나가는 데는 뒷 사람보다 배는 힘이 들어갈 것이다. 남산 덕택에 뒷 사람들은 덜 고생했다. 사람이 많이 다녀 길이 난 한라산 등반로 같은 데는 힘이 덜 들지만 적설기 오름등반은 길을 개척해 가며 가는 것이라 아무 오름이나 갈 수는 없다.
이번에 오른 새별오름과 같은 기분으로 오를 수 있는 곳은 낮기는 하지만 동광검문소 가기 직전에 있는 원물오름이 있는데 버스를 타고 이번과 같이 가면 된다.
야호! 멋있다. 대설 한파속의 산행.산정에서 피켓을 쳐든 모습이 흡사 알파인들이 희말랴 K2봉을 정복한 모습 그대로다. CNE冬남冬녀들의 의기가 한파를 녹인다. 즐겁고 행복한 마음, 깁립도 한웅큼 받아 마셨다. 설중속의 산행 무사히 마쳐 기쁘다. 버스 승객도 대중속에 끼어야 힘을 과시하나벼,,,김립은 이래저래 외롭다
그냥 되 돌아올 순 없고 눈보라 속 고근산을 오르고 내려왔지.... 지난 여름 폭우속에 부부동반으로 오르던 기억을 떠 올리며 혼자 걸었네. 가지 온 아이젠도 채우지 않은채 까짓것 하며 올랐지. 산정이 너무 허막하여 그래도 두바퀴를 돌고 자국만 남기고. 꼴찌님 항상 앞장 자국만 따라 가기요.담은 지미봉에서 만나기로.
립이 앞장을 섰더라면 '꼴찌의 반란'은 없었을 건데, 산 할배가 나서는 바람에 (농담). 버스 타고 가서 술장사가 잘 되었고, 雪上加酒, 기분이 너무 좋아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고생한 셋과 기다린 일곱, 이해와 용서를 바랍니다. 립 혼자 고근산에 올라보니 술도 술친구도 없어 아마 울고 싶었을 걸? 지미봉에서 두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