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전에 선배와 함께 문경의 운달산에 갔다가 상주에 들러 곶감을 사다 먹은후 매년 이맘때가 되면 산행코스를 문경 주변으로 잡아 산행후에 곶감을 사러 상주에 들렀다가 수안보에서 온천과 저녁식사를 하고 귀경하고는 했다.
올 해는 가족여행으로 온천과 맛집탐방을 겸해 상주로 곶감을 사러 갔다오기로 하고 토요일 아이들의 일과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오후 5시경에 집을 나섰다.
토요일 오후라서 스키장으로 떠나는 인파 때문에 영동고속도로가 지체될 것으로 생각해 중부고속도로로 일죽까지 간 뒤 일죽에서 38번국도로 장호원으로 가다 장호원 초입에서 작녁말에 개통된 장호원-주덕간 고속화국도를 타고 주덕사거리를 지나 충주를 거쳐 수안보에 도착하니 7시 50분쯤 되었다. 저녁식사는 이곳에서 꿩요리를 먹기로 하고 몇 해전에 영화식당 주인아주머니가 꿩요리를 잘한다고 알려 주신 감나무집으로 갔다. 수안보에서는 예전에는 주정산가든이란 곳이 꿩요리로 유명했으나 요즘은 대장군이란 식당이 제일 알려져 있는 곳인데 그 아주머니는 오히려 자신은 감나무집이 더 나은 것 같다는 말씀이셨다. 그리고 대장군은 몇차례 들러서 맛을 본 경험이 있어서 이번엔 감나무집식당으로 방향을 잡았다.
감나무식당의 전경
원래 꿩으로 유명한 곳은 원주의 치악산이다. 치악산의 "치"자는 한자로 꿩을 뜻하는 "꿩치"자가 아닌가. 그래서 옛부터 원주에서는 만두속으로 꿩고기를 사용했다. 나도 수안보에서 꿩요리를 맛보기전에는 꿩만두가 꿩요리의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수안보의 꿩요리는 코스요리이다. 5~6가지의 요리가 나오나 식당마다 메뉴가 조금씩 틀린 것 같다. 꿩요리음식점에서 공통으로 나오는 것은 꿩만두, 꿩육회 그리고 꿩샤브샤브이다. 그리고 식사로 꿩수재비가 나오는데 감나무집의 메뉴는 조금 특색이 있었다.
7가지 요리가 나오는데 먼저 꿩만두와 꿩샤브샤브가 나오고 뒤이어 꿩육회, 꿩다리튀김, 꿩탕수육, 꿩부추무침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운탕이 나온다.
꿩다리튀김과 탕수육은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는데 어린아이들이 아주 좋아할 맛이다. 그리고 공기밥과 같이 한 매운탕도 끓이면 끓일 수록 맛이 진해지는 것 같았다. 매운탕에 들어간 얇게 썰어넣은 무우도 맛이 일품이었다.
아이들이 처음 먹어보는 꿩요리에 아주 만족해 하는 것 같아 행복한 식사시간을 보냈다.
꿩샤브샤브와 꿩만두
꿩매운탕
문경새재 주변에 펜션이 몇군데 있었으나 갑자기 떠나온 여행이라 예약을 할 수 없었다. 수안보와 문경읍의 온천주변에는 깨끗한 모텔이 많아 예약을 하지 않아도 숙박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러나 술집과 노래방의 번쩍이는 네온싸인이 왠지 비교육적(?)인 것 같아서 문경새재입구의 조용한 모텔을 찾아 갔고 그곳이 관문모텔이었다. 주변은 아주 조용했다. 아이들은 관문모텔 위에 위치한 그럴 듯한 모습의 문경관광호텔에서 하루 밤을 묵자고 성화였지만 하루밤을 묵자고 거금을 투자하는 것 보다 한끼를 더 잘 먹는 것이 더욱 실용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관문모텔로 들어갔다.
"잠만 자고 나올 것을" 하고 다른 시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그날 밤을 무척 추위에 떨게 했다. 방바닥은 따뜻했으나 윗풍이 있어서인지 이불밖으로 내민 얼굴과 어깨는 아주 시렸다. 마치 겨울에 텐트를 치고 산속에서 잠을 청하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아내에게 계속되는 잔소리에 시달려야만 했다.
일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났으나 모두 춥다고 이불 속에서 비비작거리며 나오질 않는다. 나의 결정으로 추위에 떤 것이므로 나도 강력하게 재촉하지도 못했다. 문경온천이 오전 6시부터 9시까지는 조조할인이 되어 4,000원(일반 6,000원 소인 5,000원)에 입장이 되므로 오전 9시 전까지만 가기로 했다. 그러나 일찍일어나 문경새재 안쪽의 KBS 대하드라마 왕건의 촬영장을 산책삼아 돌아 보려던 계획은 수포가 되었다.
문경온천의 전경
결국 오전 8시 30분경에 문경온천에 도착했다. 문경온천의 수질은 알카리성으로 피로회복과 신경통에 좋다고 한다. 온천장은 1200명이 온천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규모는 컸으나 분위기는 산만했다. 추위에 언 몸을 온천물로 풀고 10시 30분경에 나와 온천장내에 있는 분식집에서 오뎅으로 허기를 면하고 곶감을 사러 상주로 향했다.
상주는 삼백의 고장이라고 하는데 삼백이란 "쌀", "곶감" 그리고 "누에고치"이다.
상주는 곶감으로 알려져 있지만 쌀도 경기미에 뒤지지 않는 아주 좋은 쌀이라고 한다. 쌀도 사보려고 했으나 일요일에는 정미소가 쉬는 날이라 사지는 못했다. 다음 번에 가면 쌀도 사 먹어 보려 한다.
곶감은 비타민C가 많고 당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혈액순환에 좋고 겨울철에 곶감을 많이 먹으면 감기예방에 좋다고 한다. 감기걸려서 고생하는 것 보다 약간 투자하여 곶감 먹고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단골집인 삼백농원에서 곶감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문경에서 수안보로 넘어오는 길가 사과과수원에서 파는 문경사과도 한상자를 샀다. 작년에도 샀더니 주인아주머니가 아주 반가워하시며 아이들에게 군고구마도 주셨다. 문경은 충주에 비해 일교차가 크고 토질이 진흙밭이라 사과가 당도가 높고 육질이 부드럽다고 한다.
수안보에서 가장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은 산채정식이다. 충주시에서 대표적인 토속음식점으로 선정한 영화식당은 추천하기에 모자라는 점이 없는 괜찮은 집이다. 전국 어디에서도 이만한 산채정식을 내놓는 식당을 가 본적이 없다.
이집의 강점은 산나물의 이름이 적힌 조그만 접시에 그 산나물을 한젓갈 먹을 만큼만 담아 내놓는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산채정식을 먹더라도 무슨 나물을 먹었는지 먹은 나물이 무슨 맛이었는지를 잘 모르고 먹을 수 밖에 없었으나 이곳에서는 무슨 나물을 먹었는지 그 맛이 어떤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조금씩 내놓기 때문에 잔반이 적고 남은 나물을 다시 사용할 수 없다.
항상 반찬이 많이 나오는 정식집에 가면 혹시 이 반찬들이 다른 식탁에 올랐다가 다시 올라온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된다. 밥은 돌솥에 직접지은 영양밥이다. 밥이 다 되면 공기에 밥을 던 후에 솥에 누른 밥은 누른 밥을 만들어 나온다. 그리고 식사전에는 직접 만든 두부와 김치가 나오는데 두부의 맛도 고소한 것이 아주 좋다. 또한 재래식 된장으로 만든 된장찌게도 입맛을 뎅기게 한다.
우리 아이들도 육식을 좋아하고 야채를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산나물의 이름이 적힌 접시에 조금씩 나오는 것이 재미있는지 이곳에서는 다 먹고 접시를 한쪽으로 모아놓는 재미로 열심히 먹는다. 주말에는 다른 곳에 비해 상당히 붐비는 편이지만 꼭 한번 들러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영화식당의 전경
영화식당의 산채정식
점심식사후에 그냥 서울로 돌아오기가 아쉬워 조금 돌기는 하지만 월악산송계계곡을 통과하여 충주호쪽 월악나루 앞을 지나 충주로 나오는 길로 방향을 잡았다.
월악산국립공원을 통과하므로 입장료를 내야만 했다. 그리고 월악산국립공원을 들어온 김에 몇년전인가 아이들이 어릴 적에 들러본 곳이긴 하지만 아이들 기억에서는 지워졌을 것 같아서 미륵사지터에 잠시 들러 보기로 했다.
미륵사지 오층석탑 앞에서
미륵사지는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의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다.
미륵사지의 입석불과 석등 그리고 오층석탑이 일직선 상에 놓여있고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다. 이는 북쪽의 덕주골의 덕주사 뒤편에 있는 마애불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덕주골은 마의태자와 함께 이곳에 들렀던 태자의 동생인 덕주공주의 이름을 따 붙여진 이름이다. 아마도 망국의 한을 안고 이곳에 들어온 오누이가 부처님의 힘으로 신라의 재건을 빌었는지도 모르겠다.
겨울이라서 왠지 초라해 보이는 송계계곡을 빠져나오니 충주호가 눈앞에 들어왔다. 겨울철이면 수량이 부족해 추한 모습이었던 예년과는 달리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인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서서히 서쪽으로 기울어 가는 햇빛에 반사된 호수의 풍광을 즐기며 귀경길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