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배정받은 곳은
다름아닌 집 근처 '휘문 중학교' 였다.
집에서 가까워서 무작위추첨에서 되었겠지만....
'사립'이라는 것, 이제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도 중요했지만,
'운동부'가 유명하다는 것은 정말이지 흥분되는 일이었다.
(농구부, 야구부, 아이스하키부 등이 있었다.)
이제 봉황기 야구대회를 동대문운동장에서 단체로 응원할 수 있고,
장충체육관에서 고등학교 대항 농구대회 응원석에 앉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아마 일학년 때였나,
어느 아침 늦게 일어나 뛰어서 등교를 하는데
신호등을 건너고 골목을 도는 순간 전봇대에 부딪히고 말았다.
'어이쿠~'
그런데, 내 앞의 그림자는 길고 거대했다.
한참 후에 알게된 일이지만, '전봇대'은 '서장훈'이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학교로 교문으로 달음질 쳤다.
그런데, 교실에 들어갔더니 거인같은 아이가 또 한 명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장난끼가 넘쳤고 무서움 보다는 친근감이 있었다.
현주엽이었다.
내가
(어머니께서 국민학교 시절 계산에 느리다며, 당시 유행이었던)
'속셈학원'에 다닐 때
반에 앉아 수업을 기다리고 있으면
느즈막히 교실문을 고개를 숙이고 겨우 통과한 거인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또한번 마주친 교실에서 가벼운 눈인사를 나눴다.
그는 천진난만하고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렸다.
그러나, 입학한 이후 주엽이는
수업시간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중간고사 기간에도 교실에 시험시작 전에 잠깐 들어와서
제일 먼저 나갔다.
점심 시간 때면 농구부원 들만 따로 식당 의 한칸을 차지하고
엄청난 양의 배식을 받아 먹고 라면을 또 먹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지며 구경했다.
그 와중에서도 선배간 규율이 엄격했는지 주엽이는 선배 서장훈에게 깍듯함을 넘어서 엄숙한 무언가가 있었다.
당시 다른 남(男)중학교 간에 단체 패싸움도 있었는데,
다른 학교에서 시비를 가리려 우리학교에 왔다가,
농구부를 보고는 넘보지 못했다는
여느 '무협소설'의 한 장면 같은 웃지못할 전설 같은 얘기도 있었다.
(실제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여름이면, 학교가 파하고
단체로 몰려가 장충체육관에서 '휘문'을 목청껏 외치기도 했다.
그 당시 휘문중학교, (이후 이 둘이 공히 '휘문고' 진학)는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었고, 패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아!
당시 '이상민'이 있었던 '용산고' 와의 농구 경기에서
막판에 연이은 가로채기에 당해 역전패를 당한 적이 있었다. 어찌나 기억에 남던지 몰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둘은 각각, 연세대와 고려대로 진학했고, 서로 다른 행보를 보였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이후 주엽이는 몇몇 프로팀에서 활약을 하다가
부상을 이유로 은퇴를 했고,
서 선배는 센터로서 프로에서 활약을 하다가
인생의 몇몇 굴곡을 건너는 것을 화면을 통해서 봤다.
오늘 신문을 보니 서장훈(나에게는 '선배님') 은퇴식을 한다는 기사를 봤다.
이제 이 둘 모두가 은퇴를 하게됐다.
이 기사를 보고 있자니, 왠지 나의 세대가 거의 현역으로는 석양 뒷편으로 사라지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그럼에도 선발에서 제외되더라도, 인생은 계속되고, 삶은 지속된다.
이 둘의 인생에 즐거움과 행운이 함께 하실길 바란다.
http://sports.media.daum.net/basketball/news/kbl/breaking/view.html?newsid=20130321160808972
첫댓글 나는 군산남중 나왔는데, 야구부가 유명했었지. 특히 지금 LG수석코치인 조계현은 같은 동네 출신이었고 중학교 대선배였지. 그런데 상헌이가 학교 다닌 동네는 부자동네이고 내가 살았던 동네는 가난한 동네라 야구선수는 거의 지금으로 보면 일진들이었지.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