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목요카페 / 김일용 시인
1.강의 목표
역사와 삶의 관조적 격절과 배설의 즐거움
2. 강의론
시인이 되고 싶어 시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논술이란 단어가 교육부에 의해 입시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 나는 아이들에게 80년도 말부터 장르별로 글쓰기를 가르쳤는데 설명문 논설문 일기 독후감 등등 많은 글쓰기 중에 아이들에게 동시를 가르치는 것이 제일 어려움을 느꼈다.
동시를 어떻게 가르쳐야만 잘 할 수 있을까?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강의 듣고 나름 공부한 것이 시 공부요, 시인이 된 계기였다.
그 후 논술학원에서 국어라는 과목별 장르를 가르치면서 시에 대한 이해, 논술에 나오는 시의 감상에 관해 자신이 공부하는 계기와 교육부 제도하에 학교에서 시를 잘못 가르치고 있다는 점, 논술로 시를 가르칠 때는 이론보다는 시평에 대한 인지를 중요시했다.
통합 논술로서 국어부터 음악 미술 역사까지 광범위하게 가르치는 견해에서 역사에 매력을 느끼고 유적지를 찾아 주말이면 가르치는 학생들과 유적지와 교과서 내용에 필요한 박물관 탐방을 곁들이며 그에 대해 논술을 하게 되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 자칭 삼류 시인이 시를 짓고 읊는다는 것은 내가 봐도 참으로 어설프고 낯부끄러운 일이겠으나 항상 나답게 내 흥에 겨워 내 멋에 사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시를 짓는 일이란 관조적 격절, 살아온 슬픔과 고독 함몰될 수밖에 없는 자신에서 돌파구를 찾아 스스로 배설함으로써 웃음이 커지는 자신을 이야기 한 시다.
자신을 읊조리는 시가 많다는 건 내가 봐도 안다.
삶이 녹녹하지 않았던 시절을 한발 물러서 관조적으로 바라보며 희망을 꿈꾸었던 시기
일상에서 생의 의미를 들여다보고자 갈망했던 삶의 편린들 속에서 발견되어 써 내려갔던 시어들의 치열한 묘사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이자 비평가였던 에즈라 파운드의 좋은 시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은 sense 즉 지적인 감각과 sound 음악성, 이미지, 톤 네 가지로 설명했다.
독자들에게 더러는 난해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으나 상투적인 감각이 아닌 지적인 감각 그리고 독자들에게 예술적인 흥분과 쾌감을 주는 내재율의 현대적 감각이 중요하고 마음속에 그려지는 형상 시인의 눈으로 어떤 세계를 바라보느냐의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은 시는 독자가 먼저 안다는 것이다.
해석도 독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고 그에 연연하지는 않되 시의 묘미는 그런 것이라고.
나 자신은 항상 “나답게”라고 자신이 시 짓는 것에 모자람과 부족한 부분을 그리 표현하는 핑계일 수도 있으나 등단이나 시 잘 짓는 첨삭지도 또는 방법, 인맥 학연 문학상에 연연하지 않는 그야말로 보고 느끼는 관조적인 면에서 초연하게 심리적인 심상과 경험의 뻔한 것과의 격절, 자유롭고 다채로운 시의 일부분에 그래도 삶은 살만하다는 것을 생각하며
시를 쓰는 것은 자신과의 대화와 배설이라 생각한다.
리얼리즘을 구사하는 산문과 같은 시. 내가 지적받았던 문구이기도 하다
쓸데없는 사설과 설명하려 든다는 시의 허술하고, 세련되지 못했던 장치들 직설적인 구성.
이 또한 역사탐방과 논술을 가르쳤던 찌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적 이야기든 사회 비판이든 의식의 성찰이든 서정과 역사의 흐름을 꿰뚫어 본 언어를 매개로 이미지를 바꾼 직설적인 화법이 시에서 그런 양상을 낳을 수도 있는 판단이다.
어떤 지인은 시보다는 산문에 강하니 나에게 수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시의 묘미를 안다면 그럴 순 없는 일이다
사실 시인보다는 낭송가가 더 인기가 많다.
시인조차 시집을 사서 읽지 않는 시대에 나 같은 사람마저 시를 저버리면 어쩌자는 것인가?
물론 내가 시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태산이 무너지거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에 그리 아쉬운 것이 있을까만은 내가 안 될 것 같다.
밀려오는 고독은 어쩔 것인가? 현실 구조를 투시하는 상황에 폭발하는 분노의 표출은 어떻게 할 것이며 황폐한 내 마음을 어찌 다스릴 것인가? 자신을 파괴하는 것도 모자라 자연 만물까지 파괴하려는 인간의 심산을 어찌 막을 것인가?
버무려 잘 익은 발효의 맛도 좋고 생김치의 싱싱한 맛도 좋다.
시는 잘 버무린 겉절이와 숙성된 묵은지 마냥 그저 군침 돌도록 혀끝부터 뱃속까지 맛나다.
*격절 –서로 사이가 떨어져서 연락이 끊김
3. 시 몇 편
강화 교동에서 옛 임을 기억하다
晴庭 김일용
구부러진 골목 따라 집들이 들어섰다
밥을 굶어 지친 아이의 흐느낌 같은 등 흰 골목
술주정뱅이 다리처럼 휘휘 젓고 다녔던 휘청거리는 골목
지분 냄새와 하수도 냄새가 묘한 그림으로 어우러지는 지친 골목
그늘진 웃음을 팔아야 했던 순이의 노란 얼굴이 있었던 골목
다락방 이층에서 허기진 몸뚱어리와 뒤섞여 뒹굴고는
단정한 얼굴로 내려와 단술을 따라야 했던 웃음 쓰린 골목
앙칼진 여자들의 싸움박질 구경하던 귀퉁이 모질었던 골목
만물상처럼 널려있던 여인들의 몰골이
저마다 색을 칠한 색깔들로 표현되어 누렇게 떠갔던 골목
시장바닥처럼 잡소리와 웃음이 끊이질 않았던
대낮부터 전구 알 밝히며 여름이면 모기떼 몰려다녔던 막다른 골목
애증으로 고개 돌린 내 가슴으로
영원히 깨어나질 않았던 그 옛 임이
산처럼 웅크린 채,
표정 어린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쌍화차를 마시는 풍경
晴庭 김일용
번잡한 시골 장터 지하다방
햇빛 못 본 듯, 웅크리고 있는 화분 속 퀴퀴한 냄새
진한 향수 배인 육감적인 늙은 마담
구석진 곳마다 차지하고 앉은 낯선 이방인
둥그런 눈 게슴츠레 뜨고
까칠한 붉은 턱수염이 돋아난 입에서
어눌하게 기어 나오는 색기色氣 어린 농담
커피 향에 찌든, 풋내나는 몸뚱이를
제 것인 양 주물러 대는 피부색 진한 손
*쌍화점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回回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역에서 돈 벌러 왔다는 회회아비의 후손들이
손목을 쥐고서
쌍화 향 그윽한 쌍화차를 마시고 있다
커피 향도 섞여 뒹굴고
쌍화차도 뒤섞여 나 뒹굴고
굽 높은 하이힐 따각따각 말발굽처럼 요란을 떨며
얄밉게도 비틀어 씹어대는 껌
초 미니스커트 바람에 춤추고
오토바이 발이 되어 춤추는
*그 잔데 같이 난잡한 곳 없다는 그곳으로
쌍화차 마시러 간다.
커피 배달하러 간다.
*고려가요 쌍화점 인용
갑골문자
晴庭 김일용
가늠할 수 없는 무게의 등껍질이
작은 등을 차지하더니 딱딱한 등짐이 되었다.
손금처럼 갈라진 등판 위로
고단함이 날로 번져 뿌리째 박혀 버린 상처의 굳어짐
고통의 신호 체계를 무시했던
아둔함을 향해
사정없이 각을 세워 파내는 난도질
골수마저 메말라가는 뼈마디에
지문처럼 각인되어 지울 수 없는 문자들
신경 속까지 저려 오는 낯선 용어들이
구석구석 안주할 자리를 찾아 전신을 소유하더니
뼈에 사무치는 선고를 내렸다.
깎아내는 소름을 짓밟고 새겨진 문자
퉁겨지고 뒤틀린 재물 위로
새겨진 뼈아픔
사철 국화
晴庭 김일용
울어야 할 울음이 있어 우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남이 가는 길인데, 누군가 내 목숨 틀어쥐고
남아있는 자들의 슬픔에 따라
청초한 얼굴로 그들의 울음을 대신한다.
오늘 간 사람을 위해 내 명줄도 보태며
꽃다운 나이에
한창 예쁠 때 눈물의 조문도 받는다
마지막 길, 외롭다 말하지 마라
지극히 아름답고 깨끗한 생명들이 모여
가는 이의 몸 곱게 에워싸니
꽃길로 손을 잡아
먼 여행 같이 떠나는
눈부신 순장
활줄 없는 바이올린
晴庭 김일용
이제는 더 잘할 수 없음을
한탄하지 않는다
이미 많이 길들었다고.
수천 번 활줄이 끊어져 나가고
활 끝도 굳어 퉁겨졌다.
누런 종이에 아무렇게나 적혀있는 악보
널브러진 붉은 바이올린
켜지 않은 바이올린 모습에서 들리는
아득한 조화로움
이젠 남의 귀를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
무음 속에 무념
편한 가슴에 새겨넣는 쉼표
들려오는 멈출 듯 심장 박동의 음향.
강요당했던 지난날
꼭두각시도 의미 없다.
빌려왔던 작은 몸
통증과 울렁임 사이에 갈등했던 육신
비벼대며 고심했고
가볍게 스치는 떨림에도
온몸으로 울어 고운 소리를 내야 했던
내 살 깎아 치루는 남의 기쁨들
빛바랜 추억 하나 있으면 만족이다.
추레한 모습마저 고귀해 보이는 것은
뼈를 깎을 만치 죽도록 열심히 산 것이라고
끊어진 활줄의 내려놓음
눈부신 피안
말하기 없기
晴庭 김일용
삶은 끊임없이 소리 내고 흩어지며
의연하게 살아내는 것
무지한 언어들이 겨누고 조준해
한방에 매몰되는 참담한 일
초연한 얼굴로 버텨내며
가슴 조이며 산 시간 앞에
성난 상처들은 덫 난 채 번져만 가고
쪼개져 삐걱거리는 어긋난 언어들
시궁창 냄새 역겨운 억측
쓰일 수 없는 구실 못하는 생명 없는 말
묻어버리고 감추는데 길들인 손아귀
방향도 감각도 잃고 매일 전쟁 치르는
그들만의 커다란 일
극과 극을 치닫는 이골난 싸움질에 지치고
밤새 술 마시고 토해내는 토사물 앞에서
부끄러운 민낯 드러내도 악수 청하며 웃는
저 흉흉한 얼굴의 미소
보는 이들 가슴 치다 멍든 엄지손가락
오감 五感을 정지당한 사람들만 사는
감각 줄 죽인 무딘 세상
입속에서 툭툭 흘러나오는 죽은 단어들이
귓전을 때려도
밖으로 소리 내어 진정 말하기 없기
절대
진정으로 말하기 없기
도리포 정경
晴庭 김일용
금박으로 수놓은 스란치마
선의 경계를 풀어 헤쳐 놓고
장밋빛 양탄자 위로 출렁이는 선율
요분질이 한창이다
속살 흔들리는 리듬 앞에 가늠할 수 없는 깊이
오밀조밀 삼키고 옥죄는 흡입력 앞에
수직으로 밀려들어 미끄러지는 저 불끈한 힘
황홀한 밀착이 흥건하게 뒤엉켜 진흙탕 속
감탕질이 한참이다
살굿빛 시린 땅거미 스멀스멀 기어 나올 때
스란치마 걷어 올리고
까무룩 시간의 여운,
복사꽃 붉은 볼도 잠식되었다.
뜨끈한 열기 밤새 식힐 만도 한데,
죽은 듯 고요를 삼킬 만도 한데
은근하게 거침없이 아득한 밤,
첫 새벽 미끈하게 건져 올리는 세상 환한 눈부심
하늘 향해 내지르는 저 불끈함
불뚝불뚝 치솟는 기둥
환장하겠다.
*도리포-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장소
잡초가 무성한 이유
晴庭 김일용
제 스스로 목숨 끊는 행위를 몰랐기 때문이다
살아야 한다는 오기가 본능처럼 몰려와
얼굴 디밀고 발돋음하며 밀쳐내는 것 외에는
스스로 무너지는 나약함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뽑혀서 온 몸 노랗게 널브러져도
버림받고 죽어야 하는 하찮은 것들의 뾰족이는 몸부림
짓밟히어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 잠깐 뒤로 하고
한 켠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새파랗게 질리도록 항거하는 아웅거림
무성함에서 나오는 힘은
작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의
처절한 반란의 응집인 것이다.
*2010년 시와 산문 등단 작품 중 하나
무감 놀이
晴庭 김일용
부끄러운 나이에 어른이 된다는 건
갈등을 가슴으로 이겨야 한다는 것
마음이 모질어질 때,
질투와 시기는 질긴 사람들끼리 하는 것
일해도 배부르지 않았던
움켜쥔 헛배에 물을 가득 담고
올가미에 얽매어
등에 시퍼런 증오를 꽂고 싶었을 때
놓지 말아야 할 끈을 물길에서 잃었다.
고요한 달빛
핏빛과 함께 녹아드는 시퍼런 강물
들려오는 바람결에 덩달아 우는 갈대는
제 슬픔에 녹인 한.
쾌자 만 걸친 혼 나간 여인
막걸리 한잔 걸치고 냅다 뛰어든 난장판
발바닥에 스치어 닿는 땅의 기운
뛰어오르며 하늘에 치솟는 고음
애증은 울음으로 속 털이 하고
집착에 힘겨운 몸은
신바람에 신명을 쏘아 대는데
웃음으로 속풀이 하는 너털웃음
뛰어오르는 높이만큼 슬픔도 사그라드는지
제정신 놓는지 모르고 펄펄 뛰는
저, 미쳐야 사는 짓
*쾌자-팔의 소매 없는 겉옷 총칭.
조선시대 정장과 가까운 옷으로 무복으로 쓰인다.
폐사지 주춧돌
晴庭 김일용
탑 하나
제 몸 추스르기도 빠듯한지
고요 머금고 기운 몸
지긋이 세상 바라보고 있다
한때, 단단한 무게를 받히고 서 있던 주춧돌
풀 속에 수줍은 듯 숨어
무너져 내린 머리 위로 허공을 이고 있다
누군가의 손길에서 마음에서 등지고
치솟은 화마에 얼룩져 데인 살들
화증으로 온몸 삭아질 때
홀연히 주저앉은 가벼운 껍질
텅 빈 가슴에 사방 휑한 들판이 되었다.
천년 바라만 보았던, 눈만이 산 나날
늙지도 않은 세월 앞에 외로이 무너지고
누군가 밟아 올라서도
제 몸 내주고 땅속에 박혀있는
검은 주춧돌
4. 시인으로서 앞을 내다보는 구상
굳이 시를 소개하며 설명하지 않았다 특별히 어렵지도 않거니와 느낌은 독자의 몫이기도 하고, 펜을 놓은 후는 내 생각과는 별개라 해도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다
다만 시를 보며 그 사람의 새로운 우주가 다가오는 느낌을 받는다면 나는 만족할 것이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서정성을 벗어난 사회 이슈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싶다.
그렇다고 신세대들이 요즘 쓰는 시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고 인기몰이에 집착한다고 써지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과 관철하고 혹독히 치러야 할 하는 문화의 역류와 언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고방식이 달라 흉내 낸다고 써질 일도 아니다
차별화와 새로운 활로의 모색 등을 통하여 시대를 불문하고 읽혀질 시에 대한 통합된 감수성에 대한 개인적 소견을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