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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을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
----- 김용택 시인의 1985년 작 <섬진강1>부분
10월 9일은 '섬진강'이라는 생명의 발원(發源) 또는 시원(始原)을 찾아가는 날이었다. 전북 진안군 팔공산까지 가야 하는 여정이기에 우리는 아침 8시에 출발했다. 정의로운 총무님은 물과 떡을 빈틈없이 준비해오셨다. 3기 교육생은 13명이 참석했다. 갈수록 출석률이 낮아지고 있다. 왕서방이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 "총무 올 때는 회장이 안 오고, 회장이 올 때는 총무가 안 오니 어찌 된 판이고!" 나는 "잘 하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라는 대답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가을의 산과 들판은 순환의 여백과 무르익는 빛으로 가득했다. 우리에게 섬진강의 발원을 찾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섬진강은 우리 삶의 젖줄이다. 강이 품고 이어주며 키우는 생명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중에서 인간 역시 변함없이 물려주는 강의 젖줄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인간들이 생명의 근원인 강의 숨통을 조여왔고 더욱 조이려 한다. 우리는 강과 더불어 자랐다. 어릴 때 섬진강의 반짝이는 물빛과 눈부신 모래는 놀이터이자 정서의 고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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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의 발원은 팔공산 중턱에서 시작된다. 일명 '데미샘'('데미'는 '더미'(봉우리)라는 말의 전라도 사투리다)은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에 속한 팔공산의 서쪽계곡(1,080m)에서 샘솟는다. 팔공산은 그 높이가 1,147m인데, 장수군과 진안군이 고지대여서 가까이에서는 산이 그렇게 높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버스는 3시간 여를 달려 팔공산 입구 관리사무소 아래쪽에 우리를 내려 놓았다. 관리사무소에서 데미샘까지는 1.19km이다. 잘 걷는 사람이 왕복 1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군말없이 데미샘으로 걸음을 옮겼다. 30분 남짓 부지런히 올라가니 데미샘이 나타났다.
강은 아무리 작은 시작이라도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데미샘 주변의 숲은 울창했고(그래서 진안군에서는 '체험의 숲'이라는 이름의 휴양림을 만들었다) 샘물은 맑고 시원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 작은 샘에서 비롯된 물줄기가 225km의 장대하고 유구한 섬진강을 이루며 간다. 섬진강은 그렇게 시작해서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정읍시와 임실군의 경계에 이르러 섬진강댐에 가로막혀 일명 옥정호를 이룬다. 순창군·곡성군·구례군을 남동쪽으로 흐르며 하동군 금성면과 광양시 진월면 경계에서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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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의 상류에서 갈담저수지까지를 오원천(烏院川), 곡성군 고달면과 오곡면 부근을 순자강(鶉子江)이라 부른다. 주요지류로는 정읍시 산내면에서 합류되는 추령천을 비롯해 일중천(임실군 덕치면)·오수천(순창군 적성면)·심초천(순창군 적성면)·경천(순창군 유등면과 풍산면 경계)·옥과천(곡성군 옥과면)·요천(남원시 송동면)·수지천(남원시 송동면)·보성강(곡성군 죽곡면과 구례군 구례읍 경계)·황전천(구례군 문척면)·서시천(구례군 구례읍과 마산면 경계)·가리내(구례군 간전면)·화개천(하동군 화개면)·횡천강(하동군 횡천면) 등이 있다.
데미샘에서 이미 시간은 12시를 넘고 있었다. 왕서방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공무원 점심시간은 12시부터인데 인자 밥묵으러 갑시다!" 아침을 먹지 않은 나로서도 너무 배가 고팠다. 버스에 와서는 총무님이 나눠 준 떡을 허겁지겁 베어물었다. 겨우 허기를 조금 달래고 선배님이 갖고 오신 단감을 나도 먹고 싶었으나 정의로운 총무님에게 드렸다.(착하지요?) 한참을 내려온 식당에서 먹는 점심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마치 시골집에서 먹는 듯한 된장찌개와 반찬은 허기에 지친 혀가 탄복하였다. 거기다가 유수용 선생님이 사 주신 '진안 막걸리'는 약간 밋밋하긴 해도 금상첨화였던 것.
나는 데미샘을 처음 가보았다. 그런데 데미샘의 물줄기가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에 있는 '섬진강댐'에서 하동 쪽으로 과연 얼마나 유입될 수 있을까. 지난번 광양만 탐사때도 강사님이 말했듯이 하동에서는 섬진강의 발원지를 '섬진강댐'으로 봐야하지 않느냐는 일종의 항변이다. 우리는 가로막힌 섬진강을 보기 위해 섬진강댐으로 향했다. 댐과 관련한 자료를 보면 이렇게 나와 있다. "섬진강 다목적 댐은 일제의 강점기인 1926년에 동진 농지개량 조합에 의해서 1차 준공되었고, 제1차경제개발 5개년 계획사업으로 1965년에 준공되었다. 유역면적이 7백 63㎢ 저수면적 26.5㎢ 총저수량 4억 3천만 톤에 달하는 옥정호는, 노령산맥 줄기 사이 임실군 운암면 일대를 흘러가는 섬진강 상류 물을 옥정리에서 댐을 막아 반대쪽인 서쪽 정읍군 칠보로 넘겨 계화도와 호남평야를 적셔주는 한편, 물을 배수하면서 그 낙차를 이용하여 발전하는 다목적 댐이다."
그리고 댐을 만든 배경으로는 "댐이 건설되기 전 우리나라의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의 젖줄은 동진강이었지만 이 동진강은 평소 하천유랑이 절대부족하여 약간의 한발시에도 국가의 식량 생산에 커다란 차질을 빚어왔다. 따라서 동진강과 이웃해 있는 수원이 풍부한 섬진강 물을 유역 변경에 의하여 동진강에 공급하기 위하여 60백만m2의 이치형 관계용댐으로 1925 ~ 1929년 운암제(구댐)를 건설하였으며 지금의 다목적댐은 1940년 전력생산에 필요한 용수를 확보하고 관계용수 공급능력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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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에 물을 가두면서 운암면의 300여 가구와 경지면적 70%가 수몰되었다. 수몰지역의 주민들을 섬진강 물을 공급받는 계화도 간척지로 이주시켰다. 지금은 그곳이 곡창지대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토질이 좋지않고 농사가 잘 되지 않아 많은 농민들이 빚을 지고 야반도주를 하였다고 한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물에 잠긴 터전을 잃고 억지로 이주한 곳에서까지 삶을 뿌리뽑혔던 농민들은 그 후 어떻게 살아왔을까.
댐으로 해서 이루어진 옥정호는 마치 바다같은 풍경이었다. 물론 가뭄이 심하면 그 옥정호도 바닥을 드러낸다. 우리는 임실을 거쳐 오는 동안 섬진강 댐으로 저수된 끝없는 호수의 광경을 두 눈으로 보았다. 그만큼 가로막혀 고여 있는 섬진강의 저수량은 엄청났다. 우리는 댐에 도착하여 입구쪽 아래 강바닥 가까이 직경 30cm 정도의 관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보고 허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생색에 그치는 물줄기였다. 결국 우리의 입장에서는 섬진강의 발원이 바로 그곳일 수밖에 없다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지난 8월 16일 폭우 때문에 섬진강 댐에서는 수문을 열고 초당 700여톤의 물을 방류하였다. 그리고 이번 국정감사에서 전북도는 '섬진강댐 재개발 사업비' 예산을 정산서를 수차례 조작해서 국비 94억원을 제멋대로 사용한 것이 밝혀졌다. 기가 막힌 노릇이다. 강을 두고 벌어지는 인간의 탐욕과 수탈은 가증스럽게 이어진다.
우리는 저장된 물에 비하면 갓난아기 오줌 줄기 보다도 못하게 흘려보내는 물줄기에 허탈함을 안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시간은 오후 4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동을 향하는 도중에 장군목의 섬진강 지류를 보러갔다. 임실군 덕치면 장산(진뫼)마을에서 천담마을과 구담마을을 지나 장군목에 이르는 협곡의 옆으로는 '지리산 시골길'이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길을 걷지는 못하고 버스에 앉아 초조와 불안, 그리고 죄송함과 안타까운 마음이 뒤섞인 채로 지나가야 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버스가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길을 들어가고 만 것이다. 중간에 공사까지 하고 있는 그 위험천만한 길을 아슬아슬하게 왕복하면서도 기사님(성함이 뭐죠?)은 불평 한 마디 안했다. 마지막 유원지 앞에서 차를 돌려 놓고 다만 "집에는 언제 보내 줄낀데?"라고만 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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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댐에서 하동 쪽으로 흘려 보내는 물줄기
진뫼 마을에서 천담마을까지 강 따라 이어지는 4km 구간은 김용택 시인이 예전에 천담분교로 출.퇴근 하던 길이다. 김용택 시인은 "이 십리 길이야 말로 천국의 길"이라며, "눈곱만큼도 지루하지 않고 순간순간 계절계절이 즐거웠고 행복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다"고 했다. 천담마을에서 계속 강을 따라 가면 구담마을인데,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촬영했던 곳이다. 구담마을 앞으로 물도리동을 이루며 흘러가는 섬진강이 그야말로 그림같은 곳이다. 아름다운 길을 끼고 흐르는 섬진강 지류는 바위들로 빼곡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 그 길을 걸어보지 못했다. 언제쯤 다시 가서 걸어볼 수 있을까.
돌아 나올 때 시간이 이미 6시를 넘고 있었다. 나는 진주에서 7시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초조함이 극에 달했다. 거기다가 남원에서 저녁을 먹는단다. 어느 정도 늦을 것은 예상했지만 오차범위를 훨씬 벗어나고 있었다. 어쨌든 우리는 돌아오면서 기사님의 노고와 노련함에 큰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기사님의 대답은 "누구나 다 하는깁니다."였다.
남원에서 빨리 나오는 추어탕을 빨리 먹었어도 시간은 8시 30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날따라 저녁에 약속으로 바쁜 사람이 몇 있었는데, 바쁘지 않은 사람들은 당연히 밥도 천천히 먹고 여유만만이었다. 그 중에서 강의를 해 주셨던 숲길의 이상윤 이사는 "그냥 포기해." "2차에 간다고 해" 하면서 느긋하게 끊임없이 약을 올렸다. 하동에 도착하니 9시가 가까웠다. 12시간이 넘는 강행군이었다. 특히 이동시간이 많았으므로 가장 강행군 하신 분은 역시 버스 기사님이었다. 하동에 도착했을 때 진주에서는 "모임이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결국 그날 저녁에 박무열 선생과 나는 막걸리부터 시작해서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취하는 것과 함께 우리는 생태해설사의 마음가짐이라든지, 3기 교육생들이 해야할 일 등에 대한 '건설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는 것을 덧붙인다.
섬진강 발원지와 섬진강댐 탐방은 그렇게 끝났다. 죽을때까지 섬진강에서 생명을 수혈받아야 할 우리다. 강은 말없이 그 자리에서 유구하다. 작은 시작이라도 창대해질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고는 강 앞에서 부끄러울 뿐이다. 그런 강의 숨통을 조이는 인간들의 말로는 과연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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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에는 수억만톤의 물이 갇혀 있고 아래쪽 강의 물줄기는 이렇게 빈약하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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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6일 섬진댐에서 방류하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