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글쓰기 전부터 떨립니다.. 어제 처음으로 경복궁이라는 데를 가본다음 의식을 보고..여러가지르 느끼고..좋은 하루 였습니다만..이렇게 글을 올릴 려니..가슴이 두근두근..하네요..꼭 통과 하길..
참고 삼아.제가 태그를 못하는 지라 사진은 없답니다.ㅠㅠ 그래도 도움주실려고 노력해주신 정명근님...감솨함다
@@@궁성문 개폐 및 수문장 교대의식
조선시대의 수문장은 서울의 도성문관 궁성문을 관장하는 최고의 책임자였다. 특히 궁성 수문장은 엄격한 절차에 따라 궁성문을 여닫고 근무를 교대 함으로써, 왕실의 안녕은 물론 국가의 안위를 수호해 나갔다.
그러므로 궁성문 개폐 및 수문장 교대 절차는 조선시대 왕실 호위문화의 정수라는 의미를 갖는다.
조선의 궁궐 가운데 정궁이라 불리는 경복궁의 정문이 광화문에서 최초로 선보인 이행사는 철저한 학술적 고증에 입각하여 재현을 시도했다. 다만 대상시기는 수문장이 제도적으로 정비되는 조선전기로 국한했다.
행사 순서
1. 수문장 교대 및 개문의식(10시)
-광화문 타종: 개문준비, 숙직군 입장 및 정렬
-초 엄: 교대 수문장, 수종장 및 휘하 군사
-중 엄: 군호응대, 수문장패 확인, 군례 후 수문장, 수종장 교대 절차
-삼 엄: 승정원 주서, 도총부 당하,액정서 사약 개문,숙직 요령장
입궁 후 퇴장
2. 수문장 교대 및 척간.행순의식(11시-14시)
*순장, 순관,감군의 검열과 순찰
3. 수문장 교대 및 폐문의식(15:30)
-광화문 타종: 폐문 준비, 교대군 입장 및 정렬
-초 엄: 교대 수문장, 수종장, 요령장 및 휘하 군사 광화문 당도
-중 엄: 군호 응대, 수문장패 확인, 군례 후 수문장, 수종장 교대절차
-삼 엄: 당직 요령장 출궁 후 승정원 주서,도총부 당하, 액정서 사약
폐문 및 퇴장
4. 부대행사(교대의식 중간에 시행)
-무예시범
*** 궁성문 개폐 및 수문장 교대 절차***
조선시대의 수문장은 도성과 궁성의 각 문을 관장하는 최고 책임자였다. 조선왕조는 도성과 궁궐의 수비를 보다 철저히 하기 위해 예종 1년(1469)에 처음으로 수문장을 설치하고,『경국대전』에 법으로 제도화하였다. 원래 조선 궁궐의 각 문은 중앙군인 오위(五衛)의 호군(護軍)이 당번에 따라 수위(守衛)하도록 되어 있던 것을 별도로 수문장을 두어 그 책임을 맡긴 것이다. 조선시대 이전에도 별도의 수문장이 없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수문장제의 설치와 운영은 조선시대 도성 및 궁궐수비의 특성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수문장은 크게 도성문을 지키는 ‘도성 수문장’과 궁궐문을 지키는 ‘왕궁 수문장’으로 구분된다. 그 가운데 왕궁 수문장은 국왕의 신변을 직접 책임 맡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중시되었다. 따라서 흔히 수문장 하면 바로 왕궁 수문장을 지칭하기도 하였다. 왕궁 수문장은 궁궐을 수호하기 위해 쌓은 궁성의 문을 관리했기 때문에 ‘궁성 수문장’ 이라고도 불렀다.
궁성 수문장은 순번에 따라 주야로 각 문을 수위하면서 궁성문의 개폐와 출입자의 관리·감독, 궁궐문의 수호 등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궁성문은 처음에는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닫기만 했던 것을 예종대 남이의 옥사가 있은 후 별도의 자물쇠를 만들어 궁성문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성문을 열고 닫은 후에는 열쇠는 반드시 승정원에 반납하여 보관하도록 하였다. 만일 문을 여닫는 시간외에도 왕명을 받은 선전관이 개문(開門)과 폐문(閉門) 표신을 제시하면 특별히 열고 닫았다. 또한 국왕이 궐밖에 행차 시에는 궁궐문의 열쇠를 수문장이 직접 관장하는 임무를 맡았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수문장은 서반의 4품 이상 중에서 추천된 자를 국왕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근무를 섰다. 수문장이 모두 20명이었으나 정직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한때 군공을 포상하기 위해 430여명으로 늘어나기도 했으나, 전란후 원래대로 정비되었다. 특히 양난을 거친 후 도성과 궁궐의 수비와 당직 근무를 더욱 엄격히 할 필요가 생겨나면서 새로이 ‘수문장청(守門將廳)’이라는 종6품의 관아를 설치하였다. 그 인원도 1746년(영조 2)에 반포된 『속대전』에는 수문장에 종6품직 5명, 종9품직 18명 등 23명으로 정해졌다. 그 후 1863년(고종 2)에 반포된『대전회통』에는 수문장이 29명으로 늘어났다. 이 밖에 조선후기에는 함흥, 전주, 수원 등지의 왕실 묘전(廟殿)을 지키는 4곳의 ‘각전수문장(各殿守門將)’ 이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의 궁성문을 수호하는 수문장의 책무는 단순히 문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국왕의 안전은 물론 국가의 안위와 직결되는 막중한 역할이었다. 국왕이 임어하는 서울의 도성과 궁성문을 관장하는 수문장제는 조선시대 도성방어는 물론 왕실 호위체제의 선봉이자 핵심조직으로서 그 제도가 근대식 제도로 개편되는 고종 31년(1894)까지 그 역사적 기능을 다하였다.
1) 궁성문 개폐 및 수문장 교대 절차란
조선시대의 수문장은 도성과 궁성의 각 문을 관장하는 최고 책임자였다. 조선왕조는 도성과 궁궐의 수비를 보다 철저히 하기 위해 예종 1년(1469)에 처음으로 수문장을 설치하고,『경국대전』에 법으로 제도화하였다. 원래 조선 궁궐의 각 문은 중앙군인 오위(五衛)의 호군(護軍)이 당번에 따라 수위(守衛)하도록 되어 있던 것을 별도로 수문장을 두어 그 책임을 맡긴 것이다. 조선시대 이전에도 별도의 수문장이 없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수문장제의 설치와 운영은 조선시대 도성 및 궁궐수비의 특성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수문장은 크게 도성문을 지키는 ‘도성 수문장’과 궁궐문을 지키는 ‘왕궁 수문장’으로 구분된다. 그 가운데 왕궁 수문장은 국왕의 신변을 직접 책임 맡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중시되었다. 따라서 흔히 수문장 하면 바로 왕궁 수문장을 지칭하기도 하였다. 왕궁 수문장은 궁궐을 수호하기 위해 쌓은 궁성의 문을 관리했기 때문에 ‘궁성 수문장’ 이라고도 불렀다.
궁성 수문장은 순번에 따라 주야로 각 문을 수위하면서 궁성문의 개폐와 출입자의 관리·감독, 궁궐문의 수호 등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궁성문은 처음에는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닫기만 했던 것을 예종대 남이의 옥사가 있은 후 별도의 자물쇠를 만들어 궁성문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성문을 열고 닫은 후에는 열쇠는 반드시 승정원에 반납하여 보관하도록 하였다. 만일 문을 여닫는 시간외에도 왕명을 받은 선전관이 개문(開門)과 폐문(閉門) 표신을 제시하면 특별히 열고 닫았다. 또한 국왕이 궐밖에 행차 시에는 궁궐문의 열쇠를 수문장이 직접 관장하는 임무를 맡았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수문장은 서반의 4품 이상 중에서 추천된 자를 국왕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근무를 섰다. 수문장이 모두 20명이었으나 정직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한때 군공을 포상하기 위해 430여명으로 늘어나기도 했으나, 전란후 원래대로 정비되었다. 특히 양난을 거친 후 도성과 궁궐의 수비와 당직 근무를 더욱 엄격히 할 필요가 생겨나면서 새로이 ‘수문장청(守門將廳)’이라는 종6품의 관아를 설치하였다. 그 인원도 1746년(영조 2)에 반포된 『속대전』에는 수문장에 종6품직 5명, 종9품직 18명 등 23명으로 정해졌다. 그 후 1863년(고종 2)에 반포된『대전회통』에는 수문장이 29명으로 늘어났다. 이 밖에 조선후기에는 함흥, 전주, 수원 등지의 왕실 묘전(廟殿)을 지키는 4곳의 ‘각전수문장(各殿守門將)’ 이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의 궁성문을 수호하는 수문장의 책무는 단순히 문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국왕의 안전은 물론 국가의 안위와 직결되는 막중한 역할이었다. 국왕이 임어하는 서울의 도성과 궁성문을 관장하는 수문장제는 조선시대 도성방어는 물론 왕실 호위체제의 선봉이자 핵심조직으로서 그 제도가 근대식 제도로 개편되는 고종 31년(1894)까지 그 역사적 기능을 다하였다.
***연혁***
1392. 태조 즉위 : 조선왕조 건국
1394. 태조 3 : 한양 천도
1395. 태조 4 : 경복궁 완성 및 입어(入御)
1400. 정종 1 : 왕자의 난으로 개성 환도
1405. 태종 5 : 한양 환도, 신궁 창덕궁 이어(移御)
1418. 태종 18 : 성문개폐를 위한 원목부(圓木符) 만듬
1427. 세종 9 : 경복궁 정주(定住)
1469. 예종 1 : 수문장 제도 설치
1473. 성종 16 : 『경국대전』 수문장의 4품이상 임명 법제화
1592. 선조 25 : 경복궁 화재
1746. 영조 22 : 『속대전』에 수문장청 설치 및 수문장 정원 23명 명문화
1863. 고종 2 : 경복궁 중건 『대전회통』수문장 정원 29명으로 확대
1868. 고종 5 : 경복궁 이어
1894. 고종 31 : 수문장청, 군국아문으로 통합
- 광화문 대종고를 33번 타종하면
- 개문 관리의 준비 및 수문장 교대절차를 준비한다.
- 승정원 주서가 승지로부터 궁성문의 자물쇠를 받는다.
- 승정원 주서가 도총부당하, 액정서사약과 함께 광화문으로
이동 준비한다.
- 수문장, 요령장, 수종장이 숙배하고 병조로부터 패와 군호를 받는다.
- 수문장은 요령장, 수종장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광화문으로 이동을
준비한다.
- 수문군(갑사·정병·대졸) 70명, 요령군(정병 2),
수종군(서운관생 2, 기수 4)
- 광화문 밖에서는 숙직 요령장이 요령군과 함께 대기 정렬한다.
- 광화문 문루에서는 숙직 수종장과 수종군이 문루에서 내려와 대기 정렬
- 취타군이 행진을 준비한다.
3.개문관리 및 수문장의 교대 행군
- 平明(5시)에 초엄을 찬정하면
- 취타대를 앞세워 중앙 관리 및 수문장 수문 군사들이 광화문에 당도
- 승정원 주서, 도총부당하, 액정서사약이 광화문 앞에 당도 한다.
- 요령장, 수종장 역시 휘하 군사들을 인솔하고 함께 광화문에 당도한다.
4. 수문장 및 수종장의 교대의식
- 중엄(북)을 치면
- 교대 수문장은 군호를 응대하고 수문장 패를 확인한 후에 서로 군례를 행한다.
- 지휘봉인 등채를 양손으로 잡고 수평으로 들어 상호의 경례를 한다.
- 군례를 마치면 출문부, 궤함의 민원사항 등의 당직 업무를 인수인계 한다.
- 업무를 인수인계 한 후에는 수문장과 수문군의 교대절차를 행한 후 정렬 대기 한다.
- 교대 수종장은 수종장 패를 확인한 후에 서로 군례를 행한다.
- 지휘봉인 등채를 양손으로 잡고 수평으로 들어 상호의 경례를 한다.
- 군례를 마치면 교대 수종장은 광화문의 2층 문루로 올라가 근무를 선다.
- 업무를 인수 인계한 수종장과 수종군은 교대절차를 행한 후 정렬 대기한다.
5.궁성문 개폐와 요령장 교대
- 삼엄(종)을 찬정하면
- 승정원 주서, 도총부 당하관, 사약이 약시함의 자물쇠를 꺼내 함께 궁성문을 연다.
- 문이 열리면 문밖에서 대기중인 요령장이 문안으로 들어온다.
- 교체 요령장과 서로 요렬장 패를 확인한 후 서로 군례를 행한다.
- 군례를 마치면 업무를 인수인계 한 후 요령군의 교대절차를 행한 후 정렬 대기한다.
- 요령군의 교대절차가 끝나면 숙직군이 대오를 정렬하여 퇴장을 준비한다.
訛言而惑及 無故驚軍者罰
- 헛된 말을 하여 혹하게 하거나 까닭없이 군을 놀라게 하는 자는 처벌한다.
朝鮮 中宗 三年
조선 중종 3년
兵曹 入直 堂上官 兵曹判書 成 希 顔
병조 입직 당상관 병조판서 성 희 안
***직책,관 직,복 식,무 기,임 무***
도총부당하- 무관정4품이며 복식은 단 령 무기는 검을 사용하였다.
임무는 궁성문 개폐 감독이다.
승정원주서- 문관정7품이며복식은 단령이며 궁성문 개폐를 주관하였다.
액정서사약- 잡직정6품이며 복식은 단령이며 궁성문 열쇠관리를 관리
수 문 장- 무관4품이며 복식은 철릭/방령 무기는 검을 사용한다.
궁성문의 수호책임자이다.
종 사 관- 무관7품이며 복식은 철릭/방령이고 무기는 검을 사용한다.
수문장 보좌 및 출문부를 관리한다.
수 문 군- 갑 사/정병/대졸이며 각각 철 릭/반수철릭/반수철릭의 복식을 가지고 있다. 무기로는 검,활,장검 / 검,대도/ 검,방패를 사용하며 궁성문 파수의 역할을 한다.
수 종 장- 무관5품이며 복식은 요선철릭이고,검을 사용하며 대종고
관리 감독을 맡고 있다.
수 종 군- 관상감생도이며 복식은 액 주 름이다.대종고 시각 타종한다.
요 령 장- 무관4품이며 복식은철릭/방령이고 검을 무기로 사용한다.
궁성문 외곽 순찰감독을 한다.
요 령 군- 정 병이며 복식은 반수철릭이고 검,창을 사용하며 궁성문
외곽순찰을 한다.
전 루 군- 기 병이며 복식은 철릭/방령이고 검을 사용하며 궁성내 시각
을 전달한다.
@@@ 조선 세종대 궁중조회-상참의(常參儀)
***상참의 란?***
상참의란 매일 아침 궁궐에서 고위 관리가 국왕을 뵙고 정사를 보고하는 조회의식을 말한다 조회는 일명 조참(朝參) 이라고 하는 데, 날마다 하는 조참을 상참이라 했던 것이다.
본래 상참의는 고려 때부터 시행되다가 조선 세종조에 정비되어 국정 운영의 중추적인 제도로 발달하였다.
상참의는 국왕께 문안 인사를 드리는 알현(謁見)과 국가의 주요 업무를 보고하고 결정하는 조계(朝啓)등 두가지 절차로 이루었졌다. 그리하여"상참조계의" 라고도 하였다.
***상참의 내용***
상참의는 매일 새벽 5시경에 궁궐 내의 국왕 집무실이라 할 수 있는 편전(便殿)에서 이루어졌다. 다만, 특별한 경우는 정전(正殿)에서 시행하기도 했다. 아침 일찍 조회를 한 까닭은 마치 혼정신성(昏定晨省)의 예와 같이 국가의 고위 관리들이 해뜨기 전에 국왕을 문안하고 나라 일에 대해 정성을 다한다는 깔린 것이다.
조회에 참가하는 종친, 공신을 비록해 의정, 중신, 시종관 등의 6품 이상의 주요 문무관리를 상참관이라 하였다.
다만, 알현이 끝난 후 곧바로 시작된 조계에는 그가운데 별도로 의정부와 6조, 한성부를 비롯해 3품 당상관 이상의 문무관리만이 참여하였는데,이들을 계사관(啓事官)이라 하였다.
특히 조계 때에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현안인 형벌, 인재등용, 주요 정책등을 보고하고 처리하였다.
상참의가 끝나면 곧바로 시사, 윤대, 경영으로 이어지는 국정운영이 계속되었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상참의는 궁중 내지 왕실의 일상이 시작되는 첫절차인 동시에 국가를 다스리는 정사의 출발점이었다. 오늘날 국무회의와 비슷한 일일 주요 보고회의라 하겠다.
***상참의 의례 절차***
1. 고(鼓)를 쳐서 세번 소리가 나면 상참관은 모두 상복의 차림으로 사정전 동쪽, 서쪽의 합문 밖에 나간다.(2품이상의 관원으로서 늙어 병이 있는 사람은 특지(特旨)로써 제례하게하면 참여하지 않는다.
2. 판통례가 합문 밖에 나아가서 부복하고 꿇어 앉아 외판(外辦)을 아뢰면 임금이 익선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고 자리에 나오는데 산과 선을 시위하기를 평상시의 의식과 같이 한다.
3. 승지와 통찬이 서쪽,합문을 지나 먼저 전정에 들어와서 겹줄로 북향하되 동쪽을 상으로 한다. 두 번 절하고 마치면 각기 자리에 나아간다.
4. 봉례랑이 상참관들을 나누어 인도하여 동쪽합문과 서쪽합문을 지나 들어와서(봉례랑이 상참관들을 인도하여 합문에 이르러 정지한다.) 각각 자리에 나아간다.
5. 통찬이 " 국궁(鞠긍), 재배(再排), 흥(興), 평신(平身)하라" 고 창하여, 상참관들이 국궁하여 두 번 절하고 일어나서 몸을 바로 한다.
6. 계사관에 해당하는 이는 (공산과 한성부의 관원은 매5일마다 한차례씩 한다)동계,서계을 지나 올라와서 자리에 나아가 부복을 하는 데,(무릇 전내에 출입하는 사람은 지게문 안에서 땅에 엎드린다.)사관이 이를 뒤따른다.
7. 계사하지 않는 사람은 차례대로 나가고, 산과 선을 가진 사람과 시위하는 사람도 또한 나간다.
문화재 관리국이 설치, 운영하는 궁중유물 전시관은 3개 층에 10개의 전시실을 갖춘 전문 전시관이다. 상설 전시관과 기획 전시관으로 나누어진 10개의 전시실 중 2층에는 악기류, 정치 경제, 과학 자료, 오례의, 궁궐 건축, 궁중 의식과 생활에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3층에는 어보책류, 공예품, 궁중복식 및 장신구류, 회화류, 동궐도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관람에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이곳에서는 또 문화재 관련 각종 특별 전시와 토요 특별 문화강좌 등을 개최하고 있다. 덕수궁 내에 있으므로 덕수궁을 들렀을 때 한번 찾아볼 만하다.
DATA ☎ 771-9951/ 개관시간 9:00~19:00(동절기는 17:30까지) 입장은 퇴관시간 1시간 전까지 /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단체 30인이상) 어른-700원(520원), 청소년 800원(250원), 어린이 무료/ 주차 가능
2.남산 공원
옛날에는 목멱산, 마뫼, 종남산, 인경산 등으로 불리다가 1910년에는 고종에 의해 한양공원으로 명명되기도 한 남산공원은 지방에서 서울 구경을 하러 오는 사람이나 외국인들이 빠뜨리지 않고 돌아보는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분수대, 식물원, 소동물원, 안중근 의사 기념관, 남산시립도서관 등 주변의 시설은 교육장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해발 265m의 남산을 중심으로 그 일대에 조성된 공원이라 도심의 공해를 벗어나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 남산 일대에는 소나무, 단풍나무, 신갈나무를 비롯해 남산제비꽃, 단풍취 등 생태학적 가치가 있는 식물들이 울창한 수림을 이루고 있다.
DATA 남산공원 관리사무소
☎ 753-2563/ 24시간 개방/ 입장료 무료
3.남산 식물원
1968년 개관해서 1971년 지금의 모습으로 증설되면서 남산의 명소로 자리잡은 식물원. 분재, 난, 선인장, 다육식물, 관엽식물 등 800여 종의 풍부한 식물을 보유하고 있다. 식물원의 바로 옆에는 소동물원도 있어서 시외의 공원으로 일부러 가지 않아도 산책을 겸해 구경할 수 있어서 좋다. 일반에게 항시 개방되어 있는 이곳에는 꽃사슴, 원숭이, 오리 등 어린이들에게 친근한 동물들이 있다.
DATA 식물원 개관시간 9:00~18:00(동절기는17:00까지)/ 입장료 : 어른 300원, 청소년 200원, 어린이 100원
4.덕수궁
덕수궁은 본래 세조의 큰손자인 월산대군의 사저로서 경운궁이라 불렸으나 순종이 고종의 만수무강을 비는 마음으로 덕수궁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이 왕궁으로 사용되었던 때는 조선왕조 수난기였기 때문에 특별한 감회가 있는 곳이다. 정문인 대한문을 들어서면 정전인 중화전을 비롯해 여러 채의 전각이 있고 세종대왕 때에 만들어진 물시계도 있다. 2호선 시청역에서 하차하여 덕수궁 출구로 나가면 바로 앞에 대한문과 매표소가 있다.
DATA ☎ 771-9951/ 개방시간 9:00~17:00(계절에 따라 조금씩 변동)/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어른-700원, 청소년 300원
5.서울타워
소나무 숲이 울창한 남산 정상에 세워진 서울타워는 서울 도심 어느 곳에서라도 맑은 날이면 쉽게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여러 관람시설과 각종 전시물, 식당가, 쇼핑코너 등이 있는 서울타워의 전망대까지는 엘리베이터로 오르는데 입구에서 입장권을 끊어야 한다. 종합입장권을 끊으면 지구촌민속박물관, 입체영상관, 환상의나라 등의 관람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해발 480m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경치는 밤이 되면 더욱 특별해지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한강과 인천 앞바다, 개성의 송악산까지 바라다 보인다. 서울타워 주위로는 팔각정, 봉수대 등이 있어서 이곳에서도 서울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DATA
안내전화 ☎ 775-6222/ 개관시간 9:00~24:30/ 종합입장권 요금(단체) : 어른 10,000원(9,100원), 청소년 8,000원(7,400원), 어린이 6,000원(5,900원)/ 전망대 입장료(단체) : 어른 4,000원(3,500원), 청소년 3,000원(2,500원), 어린이 2,000원(1,500원)/ 민속박물관과, 입체영상관 , 환상의나라 입장료(단체) : 어른 3,000원(2,500원), 청소년 2,500원(2,000원), 어린이 2,000원(1,500원)/ 주차 200여 대 가능
6.안중근 의사 기념관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남산공원 주차장으로 오르면 바로 왼쪽에 보이는 웅장한 건물에 마련되어 있다. 기념관 입구에는 안중근 의사의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는 동상이 세워져 있어서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1970년 각계 독지가와 국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이 기념관 안에는 안 의사의 성장배경과 육영사업, 일제시대 당시 의병활동 자료, 의거를 결행하게 된 자료 등이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다.
DATA ☎ 771-4195/ 개관시간 9:00-18:00(동절기는 17:00까지)/매주 월요일 휴관/ 남산공원 주차장 이용
7.우정 박물관
1985년 5월 서울 중앙우체국 내의 4층과 5층에 개관한 우정박물관은 1880년대 근대 우편의 시작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우리 나라 정보통신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여기에는 세계의 우체통과 복장, 국내외의 우표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어 우표 수집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를 더해 주고 있다. 4층의 제1전시실에는 통신의 역사, 한국 우정의 발자취, 우체통의 변천과정, 정보통신부 건물의 변천을 주제로 관련 실물 자료들과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5층의 제2전시실은 우표로 보는 우리의 역사, 우편 집배업무 용품, 한국의 우표와 엽서, 세계의 우표를 테마로 자료들을 전시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취미우표도 전시, 판매하고 있다.
DATA ☎ 756-2858/ 개관시간 9:00~18:00(11~2월은 18:00까지, 토요일 13:00까지)/ 국경일·공휴일 휴관/ 입장료 무료/ 서울 중앙우체국 주차장 이용
8.유관순 기념관
정동의 이화여고 내에 위치한 유관순기념관은 유관순 열사의 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해 1974년 개관된 곳. 정문 안으로 들어서서 학교 건물 뒤 스탠드 옆으로 가면 보이는 건물로 이화여고의 대강당(2천여 석 규모)으로도 사용된다. 2층에는 일제시대의 독립운동 상황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한쪽에는 유관순 열사의 유품들이 보존되어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 올라가다 학교 정문 수위실에서 기념관 출입 허가를 받으면 일반인도 언제든지 관람 할 수 있다. 학교 내에 있기 때문에 강당의 이용에는 시간, 내용의 제한을 받는다.
DATA ☎ 752-3353/ 개관시간 9:00~17:00(방학중 변동)/ 입장료 무료
9.정동극장
1995년 6월 덕수궁 뒤편 정동길에 개관한 이곳은 신극, 창극, 판소리, 공연장의 전통을 지녔던 '원각사의 복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현재 국립극장이 운영하며 국립극장 분원으로 사용되는데, 전통 및 현대공연의 상설 공연장, 그리고 직장인 등 시민들이 즐겨 찾는 도심 속의 문화공간으로 사랑받는 곳이 되었다. 97년 2월부터 마련된 '전통예술 상설무대'는 한국의 맥박을 일깨우는 살아 있는 우리의 소리, 우리의 장단, 우리의 몸짓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한국인에게는 우리의 신명과 감동을, 외국인에게는 한국 전통문화의 그윽한 향기와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무대다.
DATA ☎ 773-8960~3/ 덕수궁 뒤 정동교회 옆 / 규모 400석(지하 3층, 지상 2층)
10.조선일보 미술관
광화문 조선일보사 2층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일보미술관은 정동의 명소로 손꼽히는 문화공간이다. 주변에는 덕수궁을 비롯해 성공회 성당, 마당세실극장, 영국문화원 등이 모여 있어 도심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미술의 멋을 즐길 수 있다. 이 미술관에서는 1988년 조선일보사 정동별관 신축을 계기로'현대작가 초대전 앵콜 전시회'를 가졌고 지난 1960년대 현대 미술운동을 전개했던 주요 작가들을 다시 초대하여 미술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기도 했던 곳이다. 해마다 수십 건의 자체 기획전과 초대전 및 해외 전시를 유치함으로써 일반 대중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해 왔으며 이중섭 미술상을 제정해 해마다 수상자를 선정, 배출했다. 지금까지 황용엽, 김상유, 최경한, 권순철, 이만익 등 쟁쟁한 작가들의 대규모 기념전을 개최해 왔고, 특히 샤갈전, 독일현대판화전, 미국추상미술의 신조류전, 올해의 젊은 작가전, 고야 판화전, 백남준 비디오아트전, 강익중 초대전 등 굵직한 기획전으로 일반 화랑과 차별성을 두고 있다.
DATA ☎ 724-6313/ 개관시간 10:00~18:00 / 전시 준비 기간 휴관/ 입장료 무료/ 주변 유료 주차장 이용
11.조흥 금융박물관
중구 태평로의 조흥은행 광화문 지점 3, 4층에 자리잡은 조흥 금융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금융사 전문 박물관이다. 1997년 조흥은행에 의해 설립되어 우리 나라의 경제발전 과정을 금융사적인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있는 곳으로, 금융 관련 종사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알기 쉽게 금융의 발전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3층은 한국금융사실과 조흥은행사실, 4층은 갤러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국금융사실에는 조선시대의 어음, 수표, 전당표 등 전통금융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우리 나라 금융의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이곳에는 또 화폐전시실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 패화를 비롯, 고려시대의 동국통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폐와 각종 기념주화도 찾아볼 수 있다. 조흥은행사실은 한성은행으로 창립된 이래 100년의 역사를 가진 조흥은행의 발전 과정이 소개되고 있는 코너. 갤러리는 각종 전시를 위해 무료로 개방되는 곳으로 인기가 좋은 곳이다. 이 외에 영상 휴게실과, 국립중앙박물관을 포함한 세계 유명 박물관의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인터넷 코너도 설치되어 있다.
DATA ☎ 738-6806/ 개관시간 10:00~18:00/ 공휴일·일요일 휴관/ 입장료 무료/ 주변 유료 주차장 이용
12.호암갤러리
서소문로의 중앙일보사 건물 지하에 위치한 호암갤러리는 5백여 평의 전시공간을 갖춘 대형 미술관이다. 1층과 2층에 각각의 전시실과 미술 관련 갤러리 숍, 비디오실, 휴게실이 있다. 전시실에서는 1984년부터 국내외 작가들의 초대전 및 기획전을 열어 오고 있는데 그동안 30여 회의 대규모 특별전을 개최했다. 호암갤러리가 개최한 주요 전시회로는 한국 전통문화와 관계된 (고려불화특별전), (분청사기명품전), 그리고 한국 근대미술의 흐름과 위상을 재정립해 본 (한국화 100년전), (한국양화 70년전), (한국근대미술명품전), (현대한국회화전) 등이 있다. 또한(조지 시걸전), (앤디 워홀전), (샤갈전), (피카소 걸작선), (독일현대미술전), (아프리카미술전), (뉴욕현대미술전), (에르미타주명화전), (이태리 트랜스아방가르드전), (미국 포스트모던 대표작가 4인전) 등으로, 해외미술의 다양한 경향과 흐름을 국내에 소개해 왔다.
DATA 서소문로 중앙일보사 건물 내 / ☎ 771-2381, 750-7918/ 개관시간 10:00~18:00/ 전시 기간중 무휴/ 입장료 무료/ 주변 유료 주차장 이용
*여기서부터는 종로구입니다*
13.경복궁
경복궁은 조선의 건국과 함께 지어진 조선 왕조의 본궁이다. 처음 지어진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타 없어지고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다. 조선 말엽에 대원군의 노력으로 대대적으로 증수를 하여 옛모습을 되찾았으나, 곧 침략한 일본이 이곳에 총독부 터를 잡으면서 많은 건물을 헐어버려 지금은 10여 채의 건물만 남게 되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나라의 중요한 의식을 거행했던 근정전, 연회장소였던 경회루, 왕과 왕비의 침전이었던 강녕전과 교태전, 그리고 자경전과 향원정 등이 주요 국보와 보물들이다.
DATA ☎ 732-1931/ 입장시간 9:00~17:00 (3·4·9·10월), 9:00~18:00(5~8월), 9:00 ~16:00(11~2월)/ 매주 화요일 휴관/ 요금 19~24세 300원, 25~64세 700원
14.창경궁
사적 제 123호인 창경궁은 1405년 경복궁 다음으로 지어진 별궁이었다. 한때는 일제에 의하여 창경원이라 격하돼 동물원으로 탈바꿈했다가 1987년부터 본래 궁의 모습을 되찾았다. 궁 안에는 홍화문, 명정전(조선왕조의 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임), 동명전, 양화당, 춘당지 등이 있으며 구름다리를 통하여 종로 3가에 면해 있는 종묘와 드나들 수 있게 되어 있다.
DATA ☎ 762-4868/ 개관시간 9:00~17:30 (동절기는 16:00까지)/ 매주 화요일 휴무/ 입장료 어른-700원(단체 550원), 어린이-300원/ 정문 오른쪽 도로변으로 전용 무료 주차장이 있다.
15.탑골공원
1919년 3·1 운동의 발상지로 의미가 깊은 옛파고다 공원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뀐 곳. 공원 중앙의 팔각정은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던 뜻깊은 장소. 종로와 인사동 거리가 만나는 코너에 위치하여 도심 속의 좋은 휴식공간이기도 하지만 서울 시내 노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인기 있다. 인사동을 헤맸다면 다리를 쉴 겸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휴일에 카메라를 든 초보 사진작가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DATA 관리사무소 ☎ 742-0553, 731-0534/ 개방시간 6:00~21:00(동절기는 18:00까지)/ 입장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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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복천동고분군 유물/전시장(박물관)임다...
번호:404 글쓴이: 키티 짱
조회:9 날짜:2003/07/03 13:01
.. 부산시립박물관 복천분관
부산시립박물관 복천분관은 사적 제273호인 복천동고분군에서 발굴된 각종 유물들을 전시하여 시민들에게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고대 부산지역의 가야문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1996년 10월 5일에 개관 하였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친 복천동고분군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덧널무덤, 구덩식돌덧널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독널무덤 등 113기의 무덤과 여기서 출토된 9,000여점이상 되는 다양한 형태의 가야토기, 철제무기류, 금동관, 목걸이 등을 정리하여 두개의 대형 전시실에 진열하고, 고분군 내에는 발굴 당시 무덤의 내부 모습을 보여주는 야외전시관을 마련하여 가야문화를 알기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과 무덤형태들은 아직 미지의 왕국으로 남아 있는 가야의 신비를 풀어줄 정보 뿐만 아니라 이웃한 일본 고대문화의 원류를 규명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여 준다.
복천분관은 복천동고분군에 대한 계속적인 연구와 조사활동을 통해 고대 부산의 역사와 문화, 나아가 가야사의 실체를 규명하고 이러한 연구활동을 통한 성과를 공개하여 시민들의 역사교육장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문화 보존과 보호에 앞장서서 지역문화 연구와 발전에 노력할 것이다.
상설전시
부산시립박물관 복천분관의 상설전시는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과 인접 영남지역의 삼한·삼국시대 유물 및 일본의 유물들을 첨단 전시기법을 동원해 전시함으로써 부산지역의 뿌리와 문화적 성격을 올바로 전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총1,850여점의 유물과 모형을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 그리고 고분군이 자리한 언덕에 건립한 야외전시관에 나누어 전시하고, 레이저디스크·터치스크린·모형·패널 등의 다양한 전시매체를 이용하여 더욱 심층적이고 전문성 있는 내용을 관람객들이 쉽게 습득할 수 있도록 하였다.
1전시실
제1전시실은 복천동고분군이 형성되는 시기를 전후한 부산의 역사와 복천동고분군의 무덤형태 등을 주제로 6세기 이전 영남지역의 고대문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부산지역의 선사시대인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시대까지는 패널을 통하여 설명하였으며 삼한시대부터는 유물과 모형 등을 전시하였다.
복천동고분군의 무덤형태는 모형,매직비젼, 비디오모니터 등을 이용하여 시기에 따른 무덤형태의 변화, 다른지역 무덤형태와의 차이점, 복천동 고분군의 대표적인 무덤형태 등을 알 수 있다.
부산의 유적(2-1)
입체지형도와 영상을 통해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부산지역 50여곳의 유적을 개관한 도입부
삼한시대 전기의 문화(2-2∼6)
김해 대성동·부산 구서동·김해 양동·삼천포 늑도 유적 출토의 토기와 철기류 및 옹관 등 철기문화가 전개되는 시기의 유물
삼한시대 후기의 문화(2-7∼11)
울산 하대·부산 노포동·부산 동래패총 유적 출토의 토기·철기·장신구류 및 골각기 등 국가발생을 전후한 시기의 유물
삼국시대의 문화(2-12∼14)
토기를 통한 삼국시대 고구려·백제·가야·신라 각 국의 문화비교와 부산의 삼국시대 유물
가야멸망 후의 부산지역의 문화(2-15)
부산의 연산동고분군·덕천동고분군·두구동 임석고분군 출토의 토기와 청동허리띠 등 신라문물의 영향을 받은 유물
복천동고분군의 무덤형태(2-20)
복천동고분군의 대표적인 무덤형태인 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의 모형과 변화과정을 설명한 매직비젼
이미지월(2-24)
복천동고분군 출토 유물을 형상화한 부조
비디오실(2-25)
복천동고분군의 조사내용과 특징, 복천동고분군의 대외교류, 삼국시대의 마구와 갑주 등의 전시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사진을 상영하는 영상시설
2전시실
제 2전시실에는 복천동고분군에서 발굴된 각종유물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다.
각 유물의 쓰임새나 제작과정뿐만 아니라 다른지역에서 만들어진 유물들과 비교해 봄으로써 삼국시대 부산지역에 살았던 가야인들의 생활모습과 복천동고분군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복천동고분군의 토기문화 (3-1)
복천동고분군 출토의 토기변화와 가야토기의 지역적인 차이, 그리고 특이한 모양의 토기류
한강 이남지역에서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며, 이와 같은 형태와 특징을 가진 관은 지금까지 출토 예가 없는 독특한 금동관이다.
이후의 금관 또는 금동관의 장식 모양이 대부분 산(山)자 모양인 것으로 볼 때, 이 금동관이 시원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지방울
출토지 : 동래 복천동고분군 22호분
자루가 달린 둥근고리를 중심으로 은행알 모양의 방울을 여러개 만들어 그 안에 작은 구슬을 한나씩 놓아 소리가 나도록 한 것이다. 이 가지방울이 나온 22호 무덤은 복천동고분군에서 가장 높은 곳에 만들어졌고, 여러 가지 유물이 많이 나와 이 무덤의 주인공이 당시의 지배자였을 것으로 보인다.
갑옷
출토지 : 동래 복천동고분군 46호분
전사가 가장 치명상을 입기 쉬운 가슴과 등을 칼, 화살 등 공격용 무기로 부터 보호하는 중요한 방어용 무구로, 철제 갑옷은 4세기 중엽에 부산 · 김해 · 경주 등 영남의 동남지역에서 먼저 나타난다.
말머리모양 뿔잔
출토지 : 동래 복천동고분군 1호분
보물 제598호로써 일반용기를 변형시켜 만든 기형 용기의 일종이다. 특이한 모양의 토기는 죽은 사람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보내는 장례의식에 사용되거나 신앙행위와 관련된 유물로 생각된다.
말머리 가리개
출토지 : 동래 복천동고분군 10호분
말머리가리개는 당시 직접 말을 타고 전투를 벌였던 사실을 반영해 주는 좋은 자료이며,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말갖춤새들이 거의 종류별로 모두 나와 일찍부터 뛰어난 기마문화를 누리고 있었음을 입증해 준다.
사적 제273호
지정년월일 : 1981년 6월 9일
시 대 : 가야시대(伽倻時代)
소 재 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일대
소 개
현재 동래 중심가 북쪽에 반달모양으로 에워싸고 있는 마안산(속칭 대포산)의 중앙부에서 서남쪽으로 길게 뻗어 나온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는 부산의 가장 대표적인 고분군이다. 복천동고분군은 1969년 주택공사로 고분군의 일부가 파괴되면서 세상에 알려진 이후 1995년까지 부산대학교박물관과 부산시립박물관을 중심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지금까지 긴급 및 정식발굴을 통해 조사된 유구는 모두 130여 기에 달하며, 출토유물은 총 9,000여점이다. 출토유물에는 토기류 2,500여점, 철기류(금속류 포함) 3,200여점, 장신구류 4,010여점, 골각제(骨角製) 등 기타 유물 10여점, 인골(人骨) 5구, 말이빨 등 동물유존체 7점 등이 포함되어 있다.
경주지역과 같은 화려한 금은제(金銀製) 유물은 많지 않으나 대신 철제유물이 많은 것이 특징인데, 그 중에서도 무구류(武具類)가 특히 많아 주목되었다. 보물 제 598호인 마두식각배(馬頭式角杯), 오리모양토기, 등잔모양토기, 신발모양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한편 방어용 무기인 갑주류(甲胄類, 갑옷과 투구)는 복천동고분군의 중요한 유물로서 우리나라 갑옷 연구 및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천동고분군은 경주의 대형 고총고분(高塚古墳)을 제외하고는 함안의 말이산.도항리고분군, 고령 지산동고분군과 더불어 남부지방 최대의 고분군 중의 하나이며, 유물은 경주의 대형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 다음으로 많은 양이 출토되었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 부산시에서는 1992년부터 정화사업을 통해 고 분군을 사적공원으로 조성하고, 유물전시관 및 야외전시관을 통해 출토유물 및 발굴장면을 전시하고 있다.
동래구 복천동 동래읍성 내 중앙을 가로 지르며 야트막히 뻗어내린 구릉 전체에 분포하고 있다. 이 유적은 우리 박물관을 비롯하여 동아대학교박물관, 부산시립박물관에 의해 120여기의 고분이 조사되었고, 9,8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우리박물관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4차례에 걸쳐 조사하였는데 구릉의 정상부 즉, 중심 고분군의 조사는 우리박물관이 대부분 실시하였다. 대형분들은 구릉의 정상부를 따라 순차적으로 위로 올라가면서 늦은 시기의 무덤이 만들어져 있으며 구릉의 사면에는 소형 분들이 등고선 방향과 나란히 설치되어 있었다. 유물은 갑주류 마구류, 무기류 등 철기류와, 금동관을 비롯한 장신구류, 다양한 토기류가 출토되어 무덤의 주인공이 수장급이었음을 짐작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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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고 열심히 했는뎅... 잘 몰겠네염...
이렇게 하는 거 맞져...^^
근데 html로도 사진이 안 올라 가네여... 더 좋았을텐데...
한참 시도하다 포기했어영...
첫댓글 자료출처: 관광통역 그리고 번역(cafe.daum.net/ejceduc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