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마음은 육식(六識)을 따라서 생기는가
❙ 원문
阿難言: 「我常聞佛開示四衆: 『由心生故 種種法生, 由法生故 種種心生.』 我今思惟, 即思惟體實我心性, 隨所合處心則隨有, 亦非內外 中間三處.」
佛告阿難: 「汝今說言: 『由法生故種種心生, 隨所合處心隨有者』, 是心無體則無所合. 若無有體而能合者, 則十九界因七塵合. 是義不然. 若有體者, 如汝以手自挃其體, 汝所知心為復內出? 為從外入? 若復內出還見身中, 若從外來先合見面.」
「阿難. 又汝覺了能知之心若必有體, 為復一體? 為有多體? 今在汝身, 為復遍體? 為不遍體? 若一體者, 則汝以手挃一𨈛時, 四𨈛應覺, 若咸覺者, 挃應無在. 若挃有所, 則汝一體自不能成. 若多體者, 則成多人. 何體為汝? 若遍體者, 同前所挃. 若不遍者, 當汝觸頭, 亦觸其足, 頭有所覺, 足應無知. 今汝不然, 是故應知, 隨所合處心則隨有, 無有是處.」
아난언: 「아상문불개시사중: 『유심생고 종종법생, 유법생고 종종심생.』 아금사유, 즉사유체실아심성, 수소합처심즉수유, 역비내외 중간삼처.」
불고아난: 「여금설언: 『유법생고종종심생, 수소합처심수유자』, 시심무체즉무소합. 약무유체이능합자, 즉십구계인칠진합. 시의불연. 약유체자, 여여이수자질기체. 여소지심위부내출? 위종내입? 약부내출환견신중, 약종외래선합견면.」
「아난. 우여각료능지지심약필유체, 위부일체? 위유다체? 금재여신, 위부변체? 위불변체? 약일체자, 즉여이수질일지시, 사지응각, 약함각자, 질응무재. 약질유소, 즉여일체자불능성. 약다체자, 즉성다인. 하체위여? 약변체자, 동전소질. 약불변자, 당여촉두, 역촉기족, 두유소각, 족응무지. 금여불연, 시고응지, 수소합처심즉수유, 무유시처.」
❙ 해설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는 항상 부처님께서 사부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설법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마음이 생김으로 인하여 가지가지 법이 생기고, 법이 생김으로 인하여 가지가지 마음이 생긴다.』 제가 지금 생각해 보니, 곧 생각하는 그것이 참으로 저의 마음이므로, 육근과 육진이 합하는 곳을 따라서 마음이 곧 생겨나므로, 안 밖 중간의 세 곳에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말하기를 『법이 생김으로 인하여 가지가지 마음이 생기고, 육근과 육진이 합하는 곳을 따라서 마음이 생긴다고 하는데』 이 마음이 실체가 없다면 곧 합할 수가 없을 것이다. 만약 마음이 실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합할 수 있다고 한다면, 곧, 십구계(十九界)가 칠진(七塵)을 인하여 합한 것이니, 그것은 옳지 않다. 만약 마음이 실체가 있다면, 네가 손으로 스스로 몸을 때리는 경우에, 너의 아는 마음이 안에서 나오느냐? 밖에서 들어오느냐? 만약 안에서 나온다면 몸속을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고, 만약 밖에서 들어온다면 먼저 마땅히 네 얼굴을 보아야 할 것이다.」
「아난아. 너의 깨닫고 아는 마음이 반드시 실체가 있다면, 그것이 한 개냐? 여러 개냐? 그리고 지금 너의 몸에 있다면, 너의 몸에 두루 있는 것이냐? 두루 있는 것이 아니냐? 만약 실체가 하나라고 한다면, 곧 네가 손으로 한쪽 팔을 때릴 경우에, 팔다리가 모두 아픔을 알아야 할 것이고, 만약 팔다리가 함께 아픔을 안다면, 때린 자리가 마땅히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만약 때린 자리가 따로 있다면, 곧 너의 실체가 하나라는 것은 성립되지 못한다. 만약 실체가 여러 개라고 한다면, 곧 여러 사람이 될 것인데, 어떤 몸을 너라고 하겠느냐? 만약 실체가 두루 있는 것이라면,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한쪽 팔을 때릴 경우에 팔다리가 모두 아픔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만약 실체가 두루 있는 것이 아니라면, 네가 머리를 만지면서 또한 발을 만지는 경우에, 머리에만 감각이 있고 발은 마땅히 알지 못해야 할 것이다. 지금 너는 그렇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육근과 육진이 합하는 곳을 따라서 마음이 곧 생겨난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 보충
법(法)
법(法)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 일, 현상 따위를 추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법에는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다 포함한다. 법(法)은 반드시 원인의 역할 또는 결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내 아이는 나를 원인으로 태어났고,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난 결과이다. 따라서 원인과 조건에 의하여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것을 법(法)이라고 하며, 연기법(緣起法)의 다른 이름이다. 예컨데, 연필은 법(法)이다. 왜냐하면 만들어진 것이고(결과), 글을 쓸 수 있는(원인)이기 때문이다.
십팔계(18界)의 구조
육근(六根) |
| 육진(六塵) |
| 육식(六識) |
|
|
눈(안근 眼根) 귀(이근 耳根) 코(비근 鼻根) 혀(설근 舌根) 몸(신근 身根) 뜻(의근 意根) | → | 색(色) 형색 성(聲) 소리 향(香) 냄새 미(味) 맛맛 촉(觸) 촉감 법(法) 생각 | → |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 시각현상이 생긴다 청각현상이 생긴다 후각현상이 생긴다 미각현상이 생긴다 촉각현상이 생긴다 지각현상이 생긴다 | 법(法) |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으로서, 세 가지 요소인 (근-진-식) 이 합하여야 생긴다. 눈으로 모양을 보고 시각현상을 아는 마음이 생긴다. 근-진-식 세 가지의 연기(緣起)에 의하여 생겨난 정보들이 모두 법(法)이다. 제육(第六) 의식(意識)은 전오식(前五識)을 통하여 들어온 정보와 지각현상에서 들어온 정보를 포함하여 모든 법(法)을 아는 마음이다.
체(體). 마음에 체(體)가 있는가?
대상을 아는 마음은 단독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항상 세 가지 요소인 <근-진-식> 이 합하여야 생긴다. 그런데 아난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생고종종심생(法生故種種心生)을 떠올리고는 생각하는 것을 마음이라고 답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근이 없는 <근× - 진○ - 식○> 의 구조가 되기 때문에 세 가지 요소가 없고 따라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예컨대 칠진(七塵)을 원인으로 해본들 근(根)이라는 요소가 없기 때문에 마음도 생기지 않고 십구계(十九界)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주관없는 객관없고, 객관없는 주관없다. 주객이 상대하여야 아는 마음이 생긴다.
합한다는 것은 서로가 상대하여 같이 접촉이 되는 것인데, 근-진-식의 세 가지 실체가 없다면 마음이 일어날 수가 없다. 마음이 실체가 없는 것이라면 법(法)이 생기지 않는다. 예컨대, 안근-색진-안식의 세 가지 실체가 합하여야 시각현상을 아는 마음이 생긴다. 따라서 세 가지 실체가 없다면 합할 수 없을 것이고, 합할 수가 없으면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만약 마음에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그 체가 하나이든지[一體], 여럿이든지[多體], 온몸에 두루 하든지[遍體], 한 곳에만 있든지[不遍體]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네 가지를 물으신 후 낱낱이 아니라고 하신다. 따라서 마음의 체(體)는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마음의 종류는 두 가지이다. 심체(心體)와 심상(心相)이다. 우리의 본성은 심체(心體)를 말한다. 심체(心體)는 모양도 없고 색깔도 없고 생멸(生滅)하는 것이 아니다. 심체는 공(空)의 상태를 말하며, 무(無)와 다르고, 무한한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텅 비어 청정하고 고요한 상태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성정명체(性淨明體)의 정(淨)이며, 공적영지(空寂靈知)의 공적(空寂)이다. 그러나 대상을 만나면 대상을 분명하게 안다. 명(明)이고 영지(靈知)이다. 심상(心相)은 마음의 모양으로서, 모양이 있는 것은 생겼다가 사라진다. 예컨데 누가 나를 비난하면 마음에 감정이 일어났다가 사라진다[生滅]
아난은 육식(六識)을 마음이라고 한다. 본래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눈이 경계를 보고 안식(眼識)이 생기니까, 그때 일어나는 생각을 마음이라고 한다. 그러나 육식은 마음이 아니다. 육식(六識)은 경계에 따라 일어나는 생각인 반연심(返緣心)일 뿐이다. 좋은 것을 보면 좋은 생각, 나쁜 것을 보면 나쁜 생각이 일어나는 것처럼, 육진경계에 따라 늘 변하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진심인 상주진심(常住眞心)과는 다르다. 아난은, 마음이 내암(內暗. 五臟六腑) 외명(外明. 竅穴) 중간(中間. 根裡)의 세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관(육근)과 객관(육진)이 합칠 때 떠오르는 생각(六識)이 마음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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