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문화를 통해 소통한다.
뉴욕한국문화재단 한.중.대만 미술작가 6인전
취재/홍성미(뉴욕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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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육의 화두 중 하나는 다문화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 천년을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한국과 달리-물론 지금은 한국 역시 다문화열기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빠르게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미국은 원주민(native American)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이민 집단으로 시작된 나라였다. 이에 따라 미국은 초기부터 다문화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고, 미국 내 문화적 배경이 다른 이질집단간의 갈등 역시 다른 나라보다 일찍 생겨나기 시작했다. 용광로 정책이나 샐러드 볼 정책등 미국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이질집단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러한 다문화주의 정책은 미국의 교육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 다문화교육의 핵심은 학생들에게 문화의 다양성을 가르치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어릴때부터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며 자연스럽게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고, 더 나아가 각 문화의 독창성과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 다원주의적 세계관을 배우게 된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끌로드 레비-스트라우스(Claude Levi-Strauss) 역시 “다양성이 없다면 인류는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대라는 다원화된 사회안에서 인류는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고 보존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은 미국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미국 뉴욕은 다양한 인종들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다문화도시라는 것이다. 그 중 뉴욕 최대의 한국인 커뮤니티가 있는 플러싱은 한국계 이민자를 포함해 중국과 대만 등 많은 소수민족 이민자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아시안 다문화 공동체의 메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플러싱은 그만큼 문화적 역동성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이 곳 플러싱에서 지난 9월 24일 뜻깊은 행사 하나가 열렸다. 한국, 중국,대만의 미술작가 여섯 명이 함께 참여했던 “한. 중. 대만 작가 6인전”이었다.
한국문화를 미국에 소개하고 있는 뉴욕한국문화재단(이사장 김지영 변호사)과 플러싱 타운홀의 공동주최로 열렸던 이번 전시회에는 뉴욕을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의 김희자 작가, 케이트 오 작가, 권영 작가와 더불어 중국의 Xin Song작가 , 대만의 Eric Chiang작가와 Hai-Hsin Huang 작가가 함께 초대되었다. Exploring Harmony with Nature (자연과의 조화를 탐구하다)라는 주제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작가들이 하나의 주제를 통해 다양한 예술적 해석을 보여주었던 인상적인 전시였다. 더불어 자연과 인간이라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속에서 화합과 조화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는 각별한 기회를 관람객들에게 제공해 주기도 했다. 플러싱 타운홀에서 있었던 이날 오프닝에는 이번 전시를 후원했던 뉴욕 한국문화원, 뉴욕 한인회와 대만 문화단체 등 지역사회 인사들이 함께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었다. 플러싱 타운홀의 대표이자 아트 디렉터인 엘렌 코다덱은 축사를 통해 “예술과 문화를 통한 다민족 교류행사는 플러싱 타운홀이 추진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사업”이라고 강조하며, “이러한 문화교류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타민족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가교 역활을 한다”고 덧붙혀 설명했다. 뉴욕한국문화재단 디렉터 김형근씨 역시 “문화만이 답이다” 라고 강조하며 다민족 지역사회의 조화를 이끌어 내는 가장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방법은 “문화를 통한 만남과 화합”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을 관람하던 관람객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이 날 여섯명의 작가들은 전시장을 가득 메운 호기심 가득한 관람객들을 직접 만나며 그 어느때 보다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 했다. 이러한 축제 분위기는 다민족의 화합과 발전을 기원하는 케이트 오 작가의 “기원무” 특별공연을 통해 한층 고조되었다. 한국전통의상인 활옷을 곱게 차려 입고 공연을 선보였던 케이트 오 작가는 화려한 활옷의 아름다움과 기원무의 간절한 춤사위를 통해 관람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거울과 나무판넬을 이용한 김희자 작가의 독특한 캔버스가 관람객들의 시선을 먼저 사로 잡았다. 철저한 자기성찰과 삶이라는 화두를 통해 치열하게 자기발견의 길을 캔버스에 담아 내고 있는 김희자 작가. 그녀의 작품 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꽃과 화려한 서늘함이 느껴지는 아이리스는 왠지 작가의 자화상을 마주하고 있는 듯 보는 이의 마음을 아련하게 만들기도 했다. 거울이라는 상징적 재료를 통해 인간의 마음에 맺혀지는 삶의 진실과 허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김희자 작가. 거울로 만든 삼각구조의 만화경 속 변화무쌍한 이미지는 알쏭달쏭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에게 무언의 화두를 하나씩 선물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화가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는 “나를 알고 싶다면 내 그림을 보라”고 항상 말했다고 한다. 케이트 오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클림트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했다. 가장 한국적이며 대중적인 그림. 우리의 전통민화를 이용해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케이트 오 작가는 그녀의 연꽃 연작시리즈를 선보였다. 꽃잎 하나하나를 무지개처럼 화려한 색으로 표현한 그녀의 연꽃은 마치 제크의 콩나무처럼 금방이라도 캔버스 밖으로 뛰쳐 나올듯 넘실거리고 있는듯 했고,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서면 왠지 그 부드러운 숨소리가 들릴것만 같았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인생의 반을 뉴욕에서 보냈다는 케이트 오 작가는 “다양한 인종과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뉴욕에서 생활하며 질서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자연의 모습” 을 보았다고 한다. “각색의 꽃들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영롱한 씨앗들을 보며 개개인의 아름다움과 꿈” 을 보기를 희망한다는 케이트 오 작가는 “마치 한송이 한송이의 꽃마다 다른색의 무궁한 가능성과 염원을 가진 씨앗을 품고 있듯, 그 다양성과 신비로움 그리고 그것이 주는 조화로움의 선물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미술전시, 아트페어, 문화공연, 민화 워크샵 등 한국과 미국을 종횡무진하며 작가로서 또 한국과 미국을 잇는 문화전령으로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케이트 오 작가는 내년 5월 한국 조계사에서 그녀의 두번째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살짝 귀뜸해 주었다.
물건의 길이를 재는 빈티지 스타일의 나무자, 추가 달려 있는 오래된 저울, 부처의 얼굴 등 다양한 오브제를 모아놓은 권영작가의 작품은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난해해 보이기도 했다. 대학에서 원래 조각을 전공했다는 권영 작가의 작품은 미국 표현추상주의의 선두에 있었던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캔버스를 떠오르게 했다. “가장 동양적인 사상을 가장 서양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권영 작가의 회화작품을 통한 시도가 이번 전시의 오브제를 이용한 작품들에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모든 종교는 그 이름만 다를뿐 궁극적으론 하나의 진리로 통하고 있다”고 말하는 권영 작가는 인간의 욕망과 배타적 이기심이 낳은 세상의 모든 불평등과 부조리, 자연파괴와 환경오염 등 인류의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하며 이해와 조화를 통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그의 염원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한국 고유의 색채철학인 오방색을 접목시킨 작업을 하고 있다는 권영 작가는 한국의 전통자수를 이용한 재미있는 작업을 시도 중이라 전해주기도 했다. 그의 새로운 시도가 기대된다.
“인생은 짧다”고 말하는 작가 Eric Chiang의 이력은 조금 특별했다. 미술을 사랑했지만 현실이라는 파도 앞에서 작가 Eric Chiang은 23년동안 Goldman Sachs & Co.의 수석기술감독으로 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술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싶었던 어린시절의 꿈. 그리고 머리속을 온통 채우고 있던 미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고 말하는 작가 Eric Chiang 은 그의 50번째 생일을 맞이 한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미술가로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린시절 마음이 괴롭거나, 용기가 필요할 때면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힘을 얻곤 했다”는 작가 Eric Chiang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 어린 소년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던 예술의 위대한 힘”을 느꼈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에 대한 궁금증이 그제서야 조금 사라지는 듯 했다. 완벽한 균형을 통해 소리를 내고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는 생명이며 삶의 지표라고 말하는 작가 Eric Chiang은 마치 베토벤의 음악이 그에게 용기를 주었던 것처럼 그 역시 자신의 미술작품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의 위로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작가 Xin Song은 이번 전시에 참가했던 유일한 중국 미술인이었다. 베이징의 Central Academy of Fine Arts를 졸업한 그녀는 중국의 “Paper Cutting”이라는 전통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Paper Cutting은 농번기가 끝난 후 농부들이나 마을사람들이 남는 시간을 즐기기 위해 하던 여가활동의 하나였다고 한다. Paper Cutting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오랜시간 중국의 시골마을을 직접 찾아 다녔다는 작가 Xin Song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잡지속 이미지를 사용해 작업을 하고 있었다. Politics, War, Health, Beauty, Fashion, Population, Poverty, Luxury, The Environment & the Beauty of Nature, Modern Life & Technology, Sex & Taboo등 현재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잡지의 책장을 넘기며 그녀는 작품에 적합한 이미지를 고른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수집과정은 자연스럽게 작품에 대한 영감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매일매일 잡지라는 매체를 통해 세상을 듣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일련의 과정속에서 잡지라는 매체가 주는 중요성과 가치를 알게 되었다는 작가 Xin Song은 잡지속 이미지들은 세상을 비추는 또 다른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I live moment by moment”이라고 웃으며 말하는 작가 Hai-Hsin Huang은 이번 전시에 참가했던 최연소 작가였다. 많은 시간을 정부관련 웹사이트나 뉴스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을 찾아 본다는 그녀는 사회가 인정하는 “바람직한” 또는 “행복한” 이미지를 볼 때마다 “Humor”와 “Horror”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행복과 건강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그늘속에 존재하는 미묘한 긴장감과 두려움의 근원을 찾고 있다고 말하는 작가 Hai-Hsin Huang. 그녀의 작업과정을 그녀의 성격만큼 거리낌 없고 자유로워 보였다. 약 3주의 작업기간이 걸렸다는 그녀의 드로잉 작품은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 느낌을 단순하고 솔직하게 표현했다고 한다. 작품을 통해 어떤 특정한 비판이나 메세지를 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녀는 단지 삶의 모순적인 모습을 그녀의 느낌 그대로 작품속에 담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기획부터 전시까지 약 5개월의 준비기간이 걸렸다는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를 담당했던 고수정씨는 “한국, 중국, 대만 작가들의 동참을 이끌어 낸 것에 대해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번 전시를 통해 “다민족 문화교류의 범위가 확대되었고, 미술이라는 매체를 통한 화합과 소통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며 이에 대해 감사와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민족의 문화가 함께 어우러졌던 이번 전시는 왠지 더 풍성하고 꽉찬 느낌이 들었다.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쩌면 더욱 풍요로워짐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