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가사문학
대봉대를 찾아서
오덕렬
대봉대待鳳臺는
소쇄원 으뜸 정자, 찾아가니 선계仙界,
담양군 가사문학면 지곡리 원림園林,
애양단 가는 길초 초가지붕 정자가
봉황을 기다리는 꿈의 대봉대라
이름하다.
대에 오르니 나는야 봉황鳳凰새!
내
전반신은 기린이요, 후반신은 사슴이이요,
목은 뱀이요, 꼬리는 물고기요,
등은 거북이요, 턱은 제비요,
이요 이요, 부리는 닭을 닮았다.
이런 형상을 한 상상의 봉황새는
오동나무에 깃들면서 죽실竹實을 먹고
영천靈泉의 물 머금고 산단다.
아참
널판지 틈새기 먼지가 세월이고,
기둥도 맨살로만 풍상과 지내면서,
퇴락한 모습이 오히려 살갑구나.
현판을 바라보며 두 팔 벌려,
기둥과 지둥이 닿을락 말락,
난간에 기대어 대숲에 잠기니,
자연 석벽에 담쟁이넝쿨 한가롭고,
이끼 덮은 석축 틈서리의
거미줄마다 흰 구슬 주렁주렁,
홈통 타고 흐르는 물소리에
깜짝
다람쥐 놀라 쳐다본다.
앞발 들고 멈춰 서서
앙증스런 꼬리를 깝죽대더니,
눈 마주치자 오동나무를 재빠르게
오른다.
뒷산에서 미끄러지듯 송림 벗어난
한 점 바람 스치니,
지그시 눈 감고서
봉과 황을 맞이한다.
이때껏
소쇄원 물소리 또록또록 들려오고,
너럭바위 쪽에서 대나무 홈통을 타고,
찰찰차알 옥수는 대봉대 연못으로
흘러흘러 드는데, 물소리 영롱하여
구석구석 쌓인 먼지
칼칼히 씻어내니,
마음이 맑아오고, 소리 또한 또렷하고,
소쇄원 48영을 시선詩仙들이 읊조린다.
한시에선 소정을 소쇄정이라 했지만
소쇄원도를 보면 대봉대만 뚜렷하고,
애양단 오곡문 밑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구슬 굴리는 물소리라.
그 물소리 소쇄 소쇄 소쇄원을
삼키더니
탐승객의 마음도 칼칼히 시쳐져
오늘 하루 평정심平靜心 안겨주고
대봉대 밑으로 홈통 타고 흘러서
자미탄에 이르러 광주호를 맑히네.
아서라
봉황을랑 놓아주고,
자연이 지어놓은 경관 중에,
그 속의 집 한 채, 그 집에 은거했던
소쇄처사 양산보, 만나나 보자꾸나.
마당 아래 담을 치고
집 한 채 앉혔으니,
광풍각光風閣이렷다.
비 갠 뒤 해가 뜨며
청량한 바람 솔솔 이니,
탐승객들아!
시문 짓고, 사색하며
서로서로 세월을 말하고
우리 함께 신선처럼
흐르는 물에 발도 씻자.
기다렸다.
대봉대에 기대어 봉황을 기다렸다.
누구나 마음속에 대봉대 한 채씩은
가지고 있으렷다, 가지고 있으렷다.
기다리는 봉황이야 서로 다르겠지….
얼마나
지났을까. 탐승객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깜짝
흐르던 물도 멈추는 듯,
영롱하다
그 물소리 어디로 갔을까나?
물소리 간데없다, 탐방객과 어울렸나.
대봉대 마루 내려와 잎 넓은
벽오동나무 그늘을 이고 서니
꿈속인 듯 어렴풋한 소리 스친다.
봉황이 마음속으로 날아드는 소린갑다.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오덕렬
수필 가사문학
오덕렬
추천 0
조회 10
24.06.24 07:06
댓글 2
다음검색
첫댓글 샘형의 명시를 읽노라니 문득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중기로 되돌아간 기분입니다. 정철 선생이 수염을 가다듬으며 정자에 느긋하게 앉아 ‘관동별곡’이 아니라 ‘대봉대를 찾아서’라는 샘형의 가사를 읊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거장의 훌륭한 작품 잘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수필 가사문학 소쇄원 편, 잘 감상하고 갑니다.
존경하는 샘님! 건강하십시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