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개항과 근대화 운동
(1) 중국이 문호를 개방하다.
* 근대화란? 정치·경제·사회·문화·가치관 등의 모든 면에서 전반적으로 구조적 변화가 진행되어 후진적인 상태에서 보다 향상된 생활조건을 조성해 가는 과정을 말한다. 대체로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 문호(門戶) : 집으로 드나드는 문. 외부와 교류하기 위한 통로나 수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 중국의 근대화 운동 : 아편전쟁(1840, 1856) → 태평천국운동(1851) → 양무운동(1861) → 변법자강운동(1898) → 의화단운동(1899) → 신해혁명(1911) → 청의 멸망과 중화민국 수립
* 청나라 말기의 국내외 상황 : 국내(관리의 부정부패, 무거운 세금, 인구 증가와 토지 부족, 식량부족과 민생 곤란 → 백련교도의 난 등, 농민들의 반란 발생으로 정치·사회의 혼란), 국외(영국의 교역 확대 요구, 개항 요구, 개방 요구 = 서양 열강의 개항 요구) → 청의 거부
* 청의 대외 무역은 공무역(정부와 정부 사이에 행해지던 물물교환)이었다. 정부에서 허가한 상인들(공행)만이 광저우에서 무역이 가능하였다. → 유럽인들은 주로 광저우를 통해서 ‘차+비단+도자기’를 수입하였다. → 특히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 중국산 홍차(紅茶. 차잎을 적당히 발효시킨 차의 한 종류)를 많이 마심. → 중국은 홍차의 판매 대금으로, 은을 받음(청은, 은본위 제도) → 영국의 주된 수출품인 면직물과 모직물은 잘 팔리지 않고, 홍차의 수입이 증가하여, 무역에서 적자(赤子. 수입보다 지출이 많음. 손해)가 발생함 → 이에, 영국은 영국산 면직물(목화솜으로 짠 옷감)을 인도에 팔고, 그 대가로 인도에서 아편을 받았다. 영국은 그 아편(阿片)을 다시 중국에 팔고(밀수출. 몰래 판매함), 대가로 홍삼과 은을 받았다. → 영국에는 은의 수입이 증가하고, 중국에는 은이 감소하고 아편 중독자가 증가함(아편은 양귀비의 진액이다. 마약이면서 중국에선 의약으로도 사용되었다.) → 아편 중독자의 증가와 은의 감소는, 청의 국가적 문제(사회·경제적으로)가 되었다. → 은의 유출(영국으로 빠져 나감)로 은의 값이 폭등함, 세금을 은으로 납부하던 농민들에게 큰 고충이 됨 → 이에, 청나라 정부는 광저우의 관리인에게 영국의 아편을 몰수·폐기하고, 영국 상인들과의 무역을 금지시킴 → 이에 영국은 군대를 파견하여 중국과 전쟁을 시작함(1차 아편전쟁. 1840~1842) → 신식무기를 가진 영국에 항복함 → 난징조약(1842)이 체결됨 → 내용(홍콩을 영국에 할양, 광저우와 상하이 등을 개항, 배상금 지불, 공행을 통한 공무역 폐지, 1843년에는 다시 영사 재판권의 인정과 최혜국 대우를 인정함) → 난징조약은 중국이 서양과 맞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면서, 불평등 조약이다. 이후 청은 미국, 프랑스 등과 비슷한 내용의 조약을 체결하였다. 난징조약은 조선의 강화도조약(1876)에 해당한다. → 난징조약 체결로 중국의 문호가 서양에 개방되었다. → 에로 호 사건(1856년 광저우 앞 주강(珠江)에 정박하고 있던 중국인 소유의 영국 해적선 애로 호에 청나라 관리가 올라가, 청나라 관원에 의하여 승무원 전원이 체포되고 영국 국기가 바다에 던져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 난징조약 이후, 청과의 더 많은 교역을 바라던 영국은, 에로 호 사건을 구실(핑계)로, 프랑스(선교사 피살을 구실로)와 연합하여 광저우를 공격함 → 에로 호 사건을 구실로 영국과 프랑스가 일으킨 전쟁을 제2차 아편전쟁이라고 한다. →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광저우에서 북상(北上)하여, 톈진을 공격함 → 궁지에 몰린 청나라는 1858년 톈진조약을 체결함. → 에로 호 사건의 결과 체결된 조약이 톈진조약이다. → 톈진조약의 내용(외국 공사의 베이징 주재 허용, 톈진 등 항구의 추가 개항, 크리스트교 포교 허용, 청의 영토 자유 여행 등) → 자존심이 상한, 청은 톈진에서 1859년 영·프 공사를 태운 함대를 공격했다가, 베이징이 공격당함. → 영·프 연합군의 베이징 점령 → 러시아의 중재로, 베이징 조약 체결(1860) → 영국에 주룽반도 할양, 러시아는 중대의 대가로 연해주 획득함(얻음) → 청의 영국과 프랑스에, 절반이 식민지화됨(서양 열강의 청에 대한 영향력과 지배력이 강화됨) → 중화 질서(세상의 중심이 중국이라는 생각과 그러한 관계)의 붕괴(무너짐) → 중국은 팍스차이나(중국에 의한 세계 평화), 중화질서(중국 중심의 질서)의 회복을 꿈꾼다.
(2) 다양한 근대화 운동이 일어나다
1) 태평천국운동(1851~1864) : 무능한 청나라를 몰아내고, 천국 같은 태평성대(太平聖代. 나라에 혼란 따위가 없어 백성들이 편안히 지내는 시대)한 나라를 세우자!
* 주창자 : 홍수전
* 주장 : 멸만흥한, 남녀평등
* 청나라(만주족) 정부 : 기독교 단체(상제회)
* 청 정부가 아편전쟁의 배상금 지불을 위해, 세금 인상(무능한 청나라 정부). 외국 상품 유입으로 물가 인상, 상권(商圈)이 광저우에서 상하이로 옮겨감 → 농민 생활의 곤란(민생 곤란) → 광저우 출신의 홍수전이 상제회(기독교 단체. 상제는 옥황상제를 말하고, 기독교의 하나님을 당시에 상제라고 표현했음)를 만들었데, 상제회가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자, 봉기함(1851)
→ 기독교를 바탕으로, 멸만흥한(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한족의 왕조를 세우겠다)을 외치며, 북진을 하여 난징(남경, 명나라의 수도)을 점령하고, 태평천국(太平天國)을 세움(1851) → 아마도 천국 같은 태평스러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이지요. 태평은 나라나 세상이 안정되어 걱정 없고 평안한 상태를 말한다. → 토지의 균등한 분배, 신분 제도의 철폐, 남녀의 평등 등을 외침 → 태평천국 군대와 한인 의용군(청나라 정부군을 대신. 증국번, 이홍장 중심)의 싸움에서 태평천국 군대가 짐 → 의의(불평등을 해결하고자 했던, 근대 민중 운동이다. 이후 신해혁명과 공산혁명에 영향을 줌)
2) 양무운동(1862~1895) = 중국의 전통과 제도(중체) + 서양의 기술(서용) → 부국강병 추구
* 주창자 : 한족 출신의 관료(증국번, 이홍장)
* 주장 : 중체서용(中體西用) → 근대적 기술 도입
* 양무운동(洋務運動) : 19세기 후반 청나라에서 서양(西洋)의 문물을 힘써(務) 받아들이고자 일어난 근대화 운동이다. 주로 서양의 군사기술과 군수산업을 도입하여 부국강병한 나라를 만들자는 운동이다.
* 양무운동은 중국의 전통과 제도를 바탕으로
19세기 후반에 중국 청나라에서 일어난 근대화 운동. 태평천국 운동과 애로호 사건 등에 자극을 받아 증국번, 이홍장 등이 주동이 되어 군사, 과학, 통신 따위의 개혁을 꾀하였다.
* 중체서용 : 중국의 유교적 전통과 사상은 그대로 유지하되(中體), 서양(西洋)의 기술만 수용(收用)하자는 주장이다.
중국 청나라 말기에, 태평천국 운동 이후에 일어난 양무운동의 기본 사상. 중국의 유교 문화를 바탕으로 하되, 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도입하여 부국강병을 꾀하자는 것이다. 청나라에서 일어난 양무운동의 기본 사상이다. 서양의 문물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자는 온건적 개화사상이다. 중체서용은 조선의 동도서기론, 대한제국의 구본신참, 일본의 화혼양재와 같은 성격이다. 조선에서는 김홍집 등 온건 개화 사상가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 결과 및 한계(청·일전쟁의 패배로 실패, 제도의 근본적 개혁 없이 서양의 기술만 받아들임. 지방의 관료들이 중심이 되어 주도, 정책의 일관성 부족) → 위(지배층)로부터 아래(피지배층)로 향한 개혁의 시도였으나, 실패함.
3) 변법자강(變法自疆)운동(1898) = 서양의 제도 + 서양의 기술 → 부국강병
* 낡은 법(法. 제도)을 고쳐(變. 바꿀 변) 스스로(自) 강(疆)하게 하겠다는 운동이다.
* 제도개혁을 통한 부강 운동이 변법자강운동이다.
* 주창자 : 개혁적 성향의 지식인(캉유웨이, 량치차오)
* 주장 : 입헌군주제 도입. 입헌주의 바탕으로 개혁
*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는 중체서용의 부분 개혁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일본의 메이지 유신의 영향을 받아 변법자강운동(變法自彊運動)을 전개하였다
* 청·일전쟁 패배, 열강의 침략 가속화, 양무운동에 대한 반성 → 정치·사회제도에 대한 개혁론 대두 → 입헌 군주제 도입 주장. 제도개혁(의회 설립, 과거제도와 교육제도 등 개혁). 상공업 육성, 근대교육 실시, 신식군대 양성 등 → 서태후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의 반발(무술정변. 서태후는 황제를 유폐시키고 급진개혁파 지도자를 처형함)로 100일 만에 실패(캉유웨이 등 일본 망명) → 의의(의미) : 입헌 군주제 수립을 목표로 한, 적극적 근대화 운동 → 위(지배층)로부터 아래(피지배층)로 향한 개혁의 시도였으나, 실패함.
4) 의화단 운동(1899~1901) : 반외세의 측면에서 동학농민운동과 성격이 비슷함. = 청나라를 도와 서양 세력을 물리치자!
* 주창자 : 의화단(불교 계통의 종교 단체 = 백련교 단체)
* 주장 : 부청멸양을 내세운, 외세배격(반외세)의 민족운동. 청나라를 받들어 외세를 몰아내자!
* 의화단 : 중국 청나라 때에, 외세를 배척하기 위하여 조직한 비밀 결사. 백련교(불교의 미륵신앙을 신봉하는 종교) 계통의 결사로, 1899년에 의화단 운동을 일으켰다.
* 부청멸양(扶淸滅洋) : 청나라를 돕고(부청) 서양을 물리친다(멸양)는 말로서, 서양세력의 침략으로부터 청나라를 지키고자 함.
* 반 외세, 반 제국주의, 반 크리스트교 → 교회와 철도, 전선 등 파괴 → 청나라 정부 + 의화단이 연합하여, 서양 열강을 물리치고자 함 → 의화단으로부터 자국민(自國民. 자기 나라 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8개국이(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독일, 미국, 일본) 연합하여 베이징을 공격하여, 의화단을 진압함 → 신축조약 체결(외국 군대의 베이징 주둔 허용, 배상금 지불. 불평등 조약)
5) 청나라 정부의 개혁 시도
의화단 운동 실패 이후, 청나라 정부의 근대적 개혁 시도 → 황실(서태후)을 중심으로 한 보수 관료들이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고, 헌법 제정(입헌군주제) 및 의회 개설, 과거제도 폐지 등 → 근대화를 위한 의지와 진정성 부족(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급급) → 새로운 개혁을 위해, 국민들에게 막대한 세금 부과 →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해, 실패함 → 국민들이 청나라에 희망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함 → 청나라를 없애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자!
5) 신해혁명(1911)
* 주창자 : 중국혁명동맹회(쑨원)
* 주장 : 청 왕정 타도, 공화정, 삼민주의
* 중국혁명동맹회 : 1905년 쑨원이 중심이 되어 일본 도쿄에서 결성한 혁명적 정치 단체이다.
* 의화단 운동의 실패와 청나라 정부의 미온적 개혁이 실패하자, 청나라를 없애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자는 혁명의 기운이 싹틈. → 쑨원 등은 청 왕조 타도 및 삼민주의(민족·민권·민생), 공화정 실시를 외치며 혁명을 일으킴(신해혁명. 1911) →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제국주의 열강을 몰아내고 중화민족(한족 중심)의 자유를 지킨다(민족. 만주족이 세운 청을 무너뜨리자). 공화정을 수립하고 모든 국민의 정치적 평등을 보장한다(민권. 국민이 주인이 되는 공화국을 만들자).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하는 등 국민의 생활안정을 위해서 개혁을 실시한다(민생. 국민의 생활 안정을 위해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하자). → 중화민국 수립(1912.1.1) → 쑨원이 임시 대총통이 되고, 공화국이 수립됨 → 중국의 남부 대부분을 혁명세력이 차지함 →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북부 지역은 위안스카이가 차지(청 왕조가 위안스카이에게 혁명세력 격파를 위해서 맡김. 위안스카이가 정치권과 군사권 장악) → 쑨원은 위안스카이에게 공화국 수립(공화정 실시)을 조건으로, 대총통을 위안스카이에게 넘김(위안스카이는 중화민국의 2대 임시 대총통이 되었다) → 위안스카이는 청나라 황제에게 퇴위 요구 → 청의 멸망(1616~1912. 마지막 임금은 선통제이다. 푸이가 선통제이다) → 청은 중국의 마지막 왕조(王朝. 왕이 지배하는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