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글이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아픔에 대해서 같이 공유도 하고 그걸 다른 걸로 바꿔나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따르는 글이었다면 이 글은 본격적으로 그 결과 내가 맡게 된 현재 일에 깊이 진입해서 본격적으로 내가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질문을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의 질문이 일파만파 중요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하찮은 것과 고귀한 것. 이런 위계를 다 뒤집는 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 필요하다. 하찮아 보이지만 나는 그게 좋아. 그러면 어떡하나? 굉장히 흔들리고 분열이 시작된다. 왜 하찮아 보이는가. 분명한 증거가 있다. 보수가 적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근본적으로 전복적인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젠더는 명사가 아니고 동사다. 그런 점에서 동성애자들이 비정상이라고, 정상/비정상을 가른다는 것도 굉장히 편견에 의한 선긋기이다. 판단을 내려놓는 게 어렵기에 편견은 훨씬 매력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속해있으면 안심이 된다. 우리는 거기서 안심할 것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모험을 할 필요가 있다.
혈연에 의해서 뭉쳐진 가정을 정상가정, 모범가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룹홈을, 그 정상가정을 흉내내는 유사가정을 보는 위계를 다시 보아야 한다. 그룹홈은 왜 독자적인 가정이면 안 되나. 왜 유사가정이어야 하나. 이모는 왜 엄마 노릇을 해야 하는가.
전통적인 혈연가족, 유교적인 위계질서, 이런 것들이 곪아터지면서 대안가정이 많이 나오고 있다. 혈연, 굉장히 억압적이다. 엄마 같지도 않은데 자식들을 엄마 아닌 사람보다 더 비정상적으로 학대하고 착취하는 엄마들이 얼마나 많나.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다. 낭만적인 고정관념. 뒤집을 필요가 있다. 그룹홈은 독자성을 가진 고유한 길을 스스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모사하는 가정이면 어때. 공동체면 어때. 호칭을 엄마로, 이모로. 선생님으로. 이것은 정상가족을 흉내내는 게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 모였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렇다면 우리 관계는 어떤 합의하는 과정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너희는 어떻게 부르고 싶어? 이런 식의 합의들 말이다. 물론 어린 나이의 아이는 어떤 호칭이 되었든 접하는 대로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흉내내는게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모여 사는 것. 혈연이 아니라도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혈연이 쇠사슬처럼, 사랑은 커녕 증오만 남아서 그런 가정이 얼마나 많나. 부모니까 할 도리 다 해야해. 이런 걸 뒤집어 생각할 필요 있을 것 같다.
글쓴이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이모도 됐다가 집에서 엄마도 됐다가. 딴집 냄새 난다는 자식도, 유사 자식도, 이 두 집 사이에서. 내 안에서도, 아이들 속의 내가 참 마음에 들어, 그러나 하찮아 보이는 외부의 시선 때문에 여전히 불안하다. 바뀌어 가는 내 외모가 불안하기도 하다. 이 흔들림이 이 글을 굉장히 진솔하게 보여준다.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질문한다. 지극히 전면적이고 소중한 분열이다. 인간은 다 이렇잖아.
외부에서 어떻게 보는가와 내가 어떻게 보는가는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잘 없다. 나 이상으로 추앙받는 것도, 이하로 무시당하는 것도 불편하다. 내가 어떤 인간으로 어떻게 갱신되어갈 것인가. 정체성은 흔들릴 뿐 아니라 동사처럼 계속 움직이는 것이다. 흔들림은 정상인 듯 하다. 이 글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다 흔들린다. 아이들 마음이 사분오열 갈라지는 게 보인다. 내 집의 내 배로 낳은 자매도 엄마를 독점하고 싶지만 혹시나 하는 그 마음들이 왔다갔다 다 보인다. 지극히 정상적인 분열 아니겠나.
이 직업을 소명으로 볼 것인가. 임노동으로 대할 것인가. 어느 하나로 볼 수는 없다. 모든 직업에는 소명의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내 직업에 내가 충실하게 임하는 순간에. 연봉이 얼마냐가 아니라. 어 직업이든 간에 주변의 시선이 들어오지 않는다. 나와 대상간에 씨름해야 하는 너무나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문득 소명에 대한 질문이 숭고하게 발생하는 것. 위계 사다리 안에 들어 있는 직업인으로서가 아니라 '내가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거룩함이 나오는 순간이다. 항상 소명 가질 순 없지만. 완전 무시할 순 없을 것 같다. 이모로 불리는 보육사로서, 은혜님만 소명을 가져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선택한, 어떻게 흘러와서 어떻게 도착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 일을 하게 되었다.
가장 기쁘게, 창조적으로 일하는 방법은 넘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이 현장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이 가장 급진적이다. 가장 래디컬한 질문은 무엇인가. 내가 여전히 누구의 흉내를 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내 방식대로 하기 위해서는 가열찬 노력이 필요하다. 흉내내기 보다 더 기쁜 길이. 계속 실패하더라도. 선생님이라 부르더라도 합의된다면 이모라 부르더라도 상관이 없다. 우리가 왜 모였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른의 역할. 아이를 존중하는 것,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게 어른의 역할이다. 이모든 어른은 정해딘 규칙을 지키도록 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돕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같이 살기 위해서는 아이들과 소통이 되는 언어로 단번에 답을 얻을 수 없고 아이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선생님이 그 근본적인 질문을 갖고 가다보면 아이들이 존중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까.
엄마라는 파토스에 쉽게 넘어가는 여자가 되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엄마라고 부를 때 대답하는 것. 파토스가 파토스로 끝나면 그 파토스는 변덕이 죽 끓듯 한다. 거기서 굉장히 중요한 로고스의 작용이 필요하다. 이성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 파토스가 굉장히 중요. 엄마로부터 거리를 두는 엄마가 중요하다. 엄마 노릇을, 정념에 너무 쉽게 빠져들면 그릇이 커지질 않는다. 상대가 기뻐할 것을 예견하고 그렇게 했을 때 서로 기쁘다. 이게 파토스다. 그러면 제자리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언제나 그에 딱 맞는 위로를 줄 뿐.
창조력에는 언제나 마찰이 필요하다. 다르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맞춤형 위로. 충만한. 자칫 계속 빠져들면 곤란하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그러기 쉽다. 아이 뿐 아니라 선생님도 아이들 인정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원환' 관계. 원 안에서 맴을 도는 것. 내가 이렇게 하면 인정해주겠지 하고 맴을 도는 것. 누군가는 출구를 만들어 줘야 할 것이다. 맞춤형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기쁨의 전부를 삼아서는 안 된다. 이것이 파토스에 빠지는 함정이다. 냉담이 아니라 근본적인 질문을 놓지 않는 인간이 필요하다.
response(응답)와 responsibility(책임). 어원이 같다. 독자의 책임은 어떤 형태의 응답으로 반응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던 것 같다. 글쓰기의 욕망이 긍정적으로 엿보인다. 없어보여서. 하찮아 보여서. 안 보여서. 숨어 있어서. 중요하지만 없는 취급을 당하는 현장을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은혜님 과제인지도. 그 현장에서 한계에 부딪치는 문제들이 글로 바뀌어 나오면, 그게 공론화되고 공공의 질문이 된다면 그 그룹홈은 작은 공간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 그룹홈이 동사로서, 어떻게 단독성을 띤 가정으로서, 스스로 합의에 의해서, 어른 아이 함께 이런 과정이 도전적 글쓰기로 나온다면. 갱신과 창조의 과정, 아주 역동적이고 소중한 과정이 될 것이다.
====> 위의 글은 수업 중에 필기한 내용을 중심으로 제가 기억하고 싶은 내용 위주로 편집을 조금 가미한 글입니다. 때때로 내용이 왜곡되거나 문장이 어긋나있을 수 있지만. 하나하나 신경 쓰면 업로드를 제때 하지 못하거나, 하고 싶지 않아질 것 같아서 거친 글 그대로 올려버립니다.
====> 호칭을 정하게 된 배경을 듣고 싶더던 조민아님의 질문에 답변을 못 드렸어요. 이모라는 호칭은 제가 그룹홈에서 일하기 전부터 정해진 터라 저나 아이들이나 합의를 거친 적은 없어요.
제가 일하는 그룹홈은 대구 지역사회 대학생들이 동아리를 만들어서 보육원 아동들에게 과외를 하다가, 각종 사회복지 비리 등등을 알게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요(보육원 아이들이 후원받은 나이키 운동화가 원장이 사는 집에 놓여 있다던 이야기 등등등이요~). 보육원에서 과외를 하던 그 학생들이 하나둘씩 학교를 졸업하면서 '사회복지시설연구회'를 만들었어요. 이후 그게 대구 지역사회 시민운동으로 발전하면서 그때 그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우리복지시민연합'이라는 사회복지운동단체가 만들어졌어요. 저는 대학교 다닐 때 '사회복지시설연구회'에서 공부하고 내내 활동하다가 졸업하기도 전에 '우리복지시민연합' 1대 간사로 일을 시작하기도 했어요.
아무튼 '사시연'이란 동아리에서 운동을 함께 하던 청년 둘이 결혼은 하지만 아이는 낳지 말자, 대신 힘든 아이들을 입양을 하자고 했는데, 그게 여러가지 움직임을 낳으면서 '대안가정' 운동이란 것을 시작하게 만들었어요(한 가정에서 한 아이를 맡아 기른다면, 시작은 뭐 이런 문장으로 시작되었어요). 이후 우리복지시민연합의 시민들에 의해서 그룹홈이 만들어졌어요. 대형보육시설에서 단체 생활을 하는 아이들의 생활을 주목하는, 탈시설 운동의 일환이었어요. 그래서 그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사가 되면서 그룹홈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에게 '키다리 아저씨' '키다리 아줌마' 라고 소개가 되었어요. 그 일을 시작했던 부부는 '큰 엄마' '큰 아빠'라는 호칭을 사용했어요. 그리고 만들어진 그룹홈에 고용된 사회복지사들은 '이모'라는 호칭을 쓰기로 했어요.
====> 수업 중에 김경애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내가 왜 이 글을 썼을까?'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맥락들이 합평을 받으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걸 보고 많이 많이 놀라게 되었습니다. 쓰는 마음 못지않게 뜨거운 마음으로 읽고 응답해주시는 에너지를 느낍니다. 내가 뭐라고, 이깟 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다 조용히 불씨를 꺼뜨리고 말 그 시점에 조용히 다가와 숨을 불어넣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경애님 합평은 그래도 들었는데, 은혜님 합평 때는 잠이 들고 말았어요. 정성스런 후기도 감사한데 그룹홈의 역사까지 알게 되었네요.
글을 읽으면서 은혜님은 참 열심히 살아오신 분이라는 생각이 또 한번~~ 당췌 허투루 버린 시간이 없으셨던 것 같아요
후투루 지낸 시간이 참 많은 사람이라고 늘 생각해 왔는데 말이죠. 상희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그게 그렇게 늘 기억에 남고, 신기하고... 넘넘 감사했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