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이 한자 이름 미영 ( 美瑛 )..북해도 하얀 도화지에 나무 하나 그려놓고 지붕 뾰족한 집에 노란 색칠하고, 그리고 그런 곳에서 살며 입구에 작은 우체통 하나 세우고.. 기차 창 너머 하얀 세상을 보니 가끔 꿈에서 살았던 집이 그려진다. 연옥을 나와 천당으로 가는 길목을 스치는 느낌이 든다. 비에이 한자 이름 미영 ( 美瑛 ) 이름도 옥처럼 아름답다. 겨울엔 하얀 보석이요 여름엔 푸른 보석이다. 멀리 내리는 눈은 소록소록 내리는데 가까이 내리는 눈은 내 얼굴을 파고든다. 옷깃을 올려도 몰아치는 눈은 내 눈에 들어가 눈물이 되어 뺨으로 흐른다. 장난감 같은 한 칸의 기차가 서너 명의 손님을 싣고 작은 카페 같은 역에 섰다. 늙은 역무원 한 명이 일일이 고개 숙여 인사하며 손으로 기차표를 받는다. 눈 내리는 시골 기차역엔 택시도 없고 눈 잡으러 뛰노는 강아지도 없다. 사람 찾아 길 물으러 여행 안내소에 들렀다. 서너 명의 이방인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여행 안내소 직원의 말을 듣는다. 눈이 이렇게 많이 오면 택시도 없고 경치도 볼 수도 없으니 당신은 운 없는 사람이라나.. 안내소 구석에 운 없는 젊은 여행객이 홀로 지도만 만지작거리며 창 너머 눈을 본다. 말을 건넨다. “ 한국 분이시죠..?”. 그녀는 놀란 듯 그러나 망설임 없이 답한다. “네” 걸어서 가면 길 잊고 조난 당한다며 안내소 직원이 말리지만 나는 웃었다. 속 좁은 일본인이 안 된다면 억지로라도 꼭 하고픈 한국인이 되고 싶었다. 일본 하면 부정적인 생각부터 들지만 실제로 여행 중 만난 그들은 순수하고 친절하다. 지도에 눈을 후후 불며 길을 확인하고 달려드는 눈을 피해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다. 말하면 입으로 눈이 들어가고 눈을 크게 뜨면 눈으로 눈이 들어간다. 그래도 좋다.오늘 이 곳에서 눈 덕분에 막내 딸 한명이 생겼고 걷다가 미끄러지면 서로 잡아 주었다. 조그만 얼굴에 목도리 사이로 까만 눈동자가 반짝인다. 추위에 얼어 빨간 볼이 사과보다 붉고 얼어버린 입술 모양이 조각처럼 아름답다. 다리가 아파오고 배낭 무게에 허리가 아파온다. 멀리 하얀 언덕 위에 나무가 한 줄로 서있다. 담배 광고로 유명한 “마일드 세븐“이다 우리는 찾았고 우리는 즐거웠고 우리는 해냈다. 돌아가면 안내소 직원에게 이곳에서 찍은 사진을 꼭 보여주고 한번 웃어 주고 싶다. 세 시간 정도 낯선 시골 눈길을 걸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긴 눈길 여행에 사람은 단지 우리뿐이었다. 비에이 눈길은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진정 보석은.. 그 곳에서 만나 하루 동안 내 딸이 된 그녀였다.(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