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부산에서 트레일러 추돌로 일가족 5명 중 4명이 숨진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운전자 등 유가족이 현대자동차 등을 상대로 낸 100억원 규모 민사소송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는다.
2일 유가족 측(원고) 소송대리를 맡은 법률사무소 나루 하종선 변호사에 따르면 최근 대법원에 상고이유서를 냈다. 유가족 측은 총 78쪽에 걸친 상고이유서를 통해 원심 판단의 법리 오해를 조목조목 따졌다.
유가족 측은 상고이유서에서 가장 먼저 '증거의 우월 원칙'을 주장했다.
민사소송에서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는 증거의 우월 기준에 따라 사실의 가능성이 50.1%임을 입증하면 충분함에도, '통상인의 일상생활에 있어 진실하다고 믿고 의심치 않는 정도의 개연성'이라고 판시한 원심은 70% 정도의 입증을 요구했으므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는 형사사건에서 검찰이 운전자의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처분해 사건을 종결했음에도, 되레 민사소송에서 높은 수준의 증명을 요구했다는 견해가 깔려있다.
유가족 측은 두 번째 상고이유로 사고가 난 싼타페 차량과 같은 모델에 '동일한 결함'이 있었음에도 사고 차량에 대한 '결함의 존재'를 부인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대차는 이번 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고압연료펌프 플렌지 볼트 풀림 현상'에 의한 누유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무상으로 자재 교환을 진행해왔다.
유가족 측은 1·2심에서 "이번 사고는 자동차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고압연료펌프 플렌지 볼트 풀림 현상으로 인해 연료가 누유되어 급발진이 일어나 발생한 것"이라고 줄곧 주장했으나 인정되지 않았다.
이에 이번 상고이유서에서도 "고압연료펌프 플렌지 볼트 풀림 결함은 급가속을 발생시키는 결함이므로 무상 수리가 아닌 '자발적 제품 수거(리콜)'를 통해 결함을 제거했어야 한다는 주장을 입증했다. 이는 결함을 입증하는 방법의 하나인 유사사례를 입증했는데 원심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유가족 측은 또 스스로 급발진 원인을 밝혀내고자 자동차 전문가들에게 별도로 의뢰해 진행한 사설 감정서들을 제출했지만, 이를 신뢰하지 않은 원심 판단은 '사적 감정 결과가 합리적인 경우에는 사실인정의 자료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와 어긋난다는 주장을 폈다.
이와 함께 '사고 당시 브레이크 시스템은 정상 작동했지만,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원심 판단도 문제 삼았다.
유가족 측은 ▲ 운전자는 6차례에 걸쳐 일관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진술한 점 ▲ 현장검증과 분석 결과 급발진 발생 후 감속이 이뤄진 사실을 확인해 운전자가 페달 오조작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검찰수사 결과와 감정서 ▲ 운전경력 36년인 운전자가 14초간 페달 오조작을 알지 못한 채 가속페달을 밟는 건 불가능한 점 등을 반박 논거로 제시했다.
끝으로 원심이 이번 사고가 제조사의 배타적 지배영역에서 발생했는지를 따져보지 않고, 결함의 인정 여부 및 제3의 원인으로 사고가 발생했는지만 살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급발진의 원인이 제조자의 실질적인 지배영역에 있는 엔진 시스템에서 발생했는지 살피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 변호사는 "소비자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최첨단 소프트웨어 결함에 의한 급발진 사고가 늘어 결함 입증의 어려움이 더 커지고 있음에도 민사소송에서 여전히 결함 증명의 정도를 매우 높게 설정해 결과적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급발진 사고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은 일가족 4명이 숨지는 참담함으로 인해 국민적인 관심사가 됐음에도 원심은 증명 정도를 매우 높게 설정해 제조물 책임 소송에 적용되는 증명책임 완화의 법리를 오해했고, 검찰조차 인정한 페달 오조작 부존재 등을 인정하지 않은 패소 판결을 했다"고 덧붙였다.
원고 측은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BMW 급발진 사건과 관련한 손해배상 사건과 함께 변론기일을 지정해 전문가 진술 청취, 국가 기관 또는 관계 기관의 의견서 제출 등을 통해 명확한 판단기준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