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오더라 / 김유정
삼월이다.
얼었던 땅에서 봄소식이 전해온다. 까톡, 까톡, 단체방 카톡이 부산하다.
“복수초가 피었어.”
“돌멩이 틈에서 보랏빛 제비꽃을 보았다. 앙증맞은 민들레도 보았다.”
“복사꽃이 망울을 맺었더라. 남산에 개나리가 피려 하더라. 머지않아 진달래랑 목련도 피겠어.”
얼굴이 상기한 노친네들의 단톡방이 꽃 사진과 함께 요란하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싶다. 온 집안을 꽃 그림으로 장식하고, 난이나 생화 한 송이라도 꽂아놔야 직성이 풀리던 나, 누구 집에 방문할 때면 꼭 꽃을 사 가고 싶어하던 내가 이런 꽃소식조차 듣고 싶지 않다.
세상에 좋은 게 하나도 없다. 분리수거를 하느라 밖에 나갔더니 등교 시간인 유치원 노란 버스에 탄 아이들이 차장 밖으로 엄마 아빠와 손을 흔든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버스도 택시도 쌩쌩 달린다. 내 마음만 먹구름이지 세상은 하나도 바뀐 게 없다. 나 혼자 버려진 것 같다. 모두에게서 배신당한 것만 같다.
어제도 산책을 하고 이상이 없던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 걷지를 못한다. 너무 놀랐다. 당황하니 구급차 번호도 생각나지 않았다. 겨우 119를 불러 종합병원에 갔다. 응급실 앞엔 대기차가 많아 초조한 마음으로 오래 기다렸다. 무슨 검사가 많고 8시간이나 걸려 겨우 흡인성 폐렴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일주일치 약 처방을 주며 퇴원하란다. 노인에게 폐렴이라니. 입원시켜 달라 했지만 3차 병원엔 산소 호흡기가 필요한 위급한 경우가 아니면 입원이 안 된다고 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안절부절못한다. 말로만 듣던 응급차, 응급실 언제 또 갈지 몰라 겁이 덜컥 났다.
이 병을 이기지 못하면 이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모습을 볼 수도 없는 날이 오겠구나 생각하니 아무 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막막해졌다. 세상이 다 끝난 것 같았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안이하게 살았던가 싶었다. 때때로 가졌던 근심과 걱정 슬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죽음에 비교할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기도에 매달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교회 구역 식구들이나 지인들의 기도 요청이 있을 때 얼마나 매달리고 진심이었던 가 돌이켜보았다. 타인의 애사에 얼마나 마음 아파하고 위로했던 가. 얼마나 깊이 참여했던가, 얼마나 내가 그들의 슬픔에 손잡고 울어주었던가 다시금 꼬집어본다. 혹시 방관자나 일회성이 아니었을까. 많은 눈물의 기도가 있었지만 정작 나에게 닥친 절실한 기도엔 무게가 다르다.
‘남의 옆구리에 쉬 실리는 게 내 손톱 밑 가시보다 못 하다’는 옛말이 실감났다. 파리의 알을 쉬라고 하니 옆구리에 생겼다면 요즈음 말로는 늑막염이나 간이 잘못된 것처럼 중한 병인데 우선 나의 손톱 밑 가시가 더 아프게 느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내가 얼마나 위로나 도움이 되었을 가 돌아보며 열심이고 진심이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허상이었던 것 같다. 미안한 마음도 들면서 남의 슬픔에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싶어진다. 정리할 시간이 되었다고 연명 치료 거부 신청도 해 놓고 삶에 달관한 것처럼 여유 있게 생각하던 모습은 한낱 치기였고 허세였다.
다행히 남편은 다른 병원에 일주일 입원해 치료하고 집에 왔다. 어느새 아파트 입구 화단에 개나리도 산수유도 제법 피어 있었다. 이제서야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김없이 봄은 오더라. 폴 발레리 시처럼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