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스트링거 경은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의 회의실 벽면은 온통 서가로 꾸며졌다. 반짝이는 테이블 위엔 버킹검궁에서 기사 작위를 받던 날 찍은 가족사진 액자가 놓여 있었다. 그가 받은 10개의 뉴스 보도 부문 에미상도 눈에 잘 띄게 벽에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런 그가 요즘 언론매체 때문에 울화가 치민다. 적어도 CEO로 몸담은 소니와 관련된 문제에서 그렇다. “우리는 컴퓨터 해킹의 대명사가 됐다”는 말을 그는 몇 번이나 반복했다. “약간 억울하다는 느낌이 든다. 너무 심하지 않나?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정보부(FBI)가 해킹 당한다면 소니도 별 수 없다. …이제 그 말을 듣는 데 넌더리가 난다.”
최근 시티뱅크와 록히드 마틴 같은 회사가 해킹의 표적이 됐지만 소니만큼 집중적으로 당하지는 않았다. 도쿄에 본사를 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네트워크가 한 번 해킹 당한 뒤 한 달 가까이 불통됐고, 또 다른 사이버 공격으로 소니의 영화 사이트가 장애를 일으켰다. 한 주 가까이 지난 뒤에야 플레이스테이션 고객에게 사고를 알리고, 일부 엔터테인먼트 사이트에서 패스워드를 암호화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소니에 빗발쳤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2013년까지 자리를 지키고 싶다고 한 스트링거가 얼마나 더 오래 버틸지 의문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스프링거는 그 보도를 “터무니없는 억측”이라고 일축했다. 올해 1월 “이사회에서 3년 더 회사를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그가 말했다. “우리가 당한 최근 사고는 누구나 해킹을 당할 수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어느 회사에나 취약점은 있다.” 그는 특히 소니가 시티뱅크 같은 다른 회사들보다 더 욕을 먹는 데 불만이 많다. 시티는 일반 회사도 아닌 은행인 데다 고객에게 사고를 알리는 데 한 달이나 걸렸는데도 말이다.
그의 말이 약간 방어적으로 들리는 까닭은 금방 이해가 간다. 불과 몇 달 전인 1월 그는 마침내 그 거대한 전자·엔터테인먼트 대기업을 일으켜 세우는 데 성공한 듯했다. 그때 연달아 강 펀치가 날아들었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의 여파로 일본의 10개 공장이 문을 닫았다. 이어 플레이스테이션이 해킹을 당했다. 대규모 지진 관련 세금 폭탄에다 쓰나미 며칠 뒤엔 덤으로 큰 허리 수술까지 받았다. 불과 6개월 새에 온갖 액운을 다 치렀다.
이제 69세의 스트링거는 또다시 원상복구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신화 속의 시지푸스처럼 끝없이 되풀이되는 고역이다. 하지만 웰시 태생의 그 거한(키 193cm)은 그런 압박에도 불구하고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다. 일본 공장에서 사망자가 한 명도 생기지 않았고 지진 피해를 입은 10개 공장 모두 다시 가동을 시작한 데 용기를 얻었다. “한 주 동안 뉴욕을 다녀왔다. 많은 사람이 ‘아주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들은 지난 한두 달의 스트레스로 내 얼굴이 반쪽이 됐으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는 어떻게든 대화 주제를 바꾸려고 기를 쓴다.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소니가 지구 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많은 엔터테인먼트 체험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소니의 3-D 캠코더, 인터넷 TV, 스마트폰 등의 다양한 제품에 관해 열변을 토한다. 그가 건넨 문서(“필요하면 가져가세요. 내가 작성한 문서니까.”)에는 전 세계에 공급된 소니의 가전제품 8억 대, 등록된 플레이스테이션 계정 7500만 개 등 세계 각지로 뻗친 소니의 촉수가 열거됐다.
애플 제품 이야기는 묻기도 전에 그가 선수를 쳤다. “지금 당장은 우리에게 아이패드 같은 제품이 없다”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애플 말고는 “아무도 그런 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소니는 올가을 태블릿 PC 모델 두 종을 출시할 예정이다(하나는 폴더형 조개 디자인이다).
그는 해킹 이야기를 꺼리면서도 왕년의 기자 기질은 숨기지 못하는 모양이다. ”내가 그 주제에 좀 발끈하는 이유는 회사가 지진으로부터 회복하려 안간힘을 다할 때 그리고 지금도 애쓰고 있는데 해킹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라고 그가 말했다. 수천 개의 사이트가 있는데 “어떻게 내가 여기 앉아서 앞으로는 공격받지 않도록 보완하겠다고 말하겠는가? 대책은 강구하지만 그건 알려진 위험이다.”
소니 때리기는 그 정도면 됐다고 그는 말한다. “요즘은 모두가 해킹을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