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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자유 게시판◇ 스크랩 2007년 7월 16일 이천일! 아직 살아있다. [재방송]
이천일 추천 0 조회 170 09.12.15 21:02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이천일 서울에서 탄생

 

 돌 무렵에 내가 자주 울었고 병원에 자주 다녔다고 한다.

 

 우리 집에 세들어 사는 집 중에 무당의 친정 엄마인가가 살았다고 한다.


 1974 무렵이던가 내가 뛰어다니다가 같은 돌 뿌리에 두 번 이상 걸려 넘어져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어릴 때 육교 위로 지나가는데 대통령과 경호 차량들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태극기를 흔들었고 나는 위에서 구경하며 내려다보았다.


 1978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산에 올라가서 동내를 내려보다가 해가 지고 있어 내려가려던 도중에 길을 못 찾고 뭐에 홀린 것처럼 제자리를 맴돌며 길을 빨리 못 찾은 경험이 있다.


 1979년 무렵 mind control에 의한 것으로 생각할만한 이상한 想像을 했다.  이 무렵 어머니가 미국에서 사는 의사로부터 경기도 화성시 병점역으로부터 약 3km 떨어진 곳에 있는 시골집과 땅을 사들였다.  이 무렵에 이상하게도 통일교를 믿는 여자와 짝꿍이 됐다. 짝꿍 아버지는 목사였다.
여자 짝꿍이 예뻤고 서로 사이가 좋았다. 다음 해에도 같은 반이 되길 바랬는데, 같은 반이 됐다. 

[고등학교 때도 친했던 친구와 1. 2. 3학년 같은 반 옆자리였다.]

 

 동네에서 함께 놀던 아이의 친구가 알고 보니 아들을 낳기 위해 치장된 남장여자 아이라고 들었다.

 

▒ 70년대에는 Knee Kick을 Knee Kick으로 막은 사건과 이후 발차기를 발차기로 반사적으로 막는 무술 수준에의 기술이 생각지도 못하게 갑자기, 저절로 실전 상황에서 생겼다.
그리고 이웃집이 옷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고모부가 중동에서 일하셨고, 지금 생각해 보면 시장에서 공작원이 아닌가 생각되는 아줌마의 멘트가 있었으며,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 그리고 외삼촌이 돌아가시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친척 가출 사건과 병원 입원 사건 등의 사건·사고와 변화들이 있었는데, 이 당시 미군 등이 사용하던 종류의 mind control과 directed energy weapons 그리고 공작과 극초단파 증후군 등을 유발 시키는 원격 생리학적 실험이 개입되어 젊은 나이에 수면 중에 돌아가셨던 사건들이 일어났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교활하고 사악하며 복합적인 project가 진행된 원인은 유전자의 견제였을까?  아님 우리 집안 여자나 남자 중 누군가를 욕심내서였을까?  그들은 directed energy weapons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도덕적 궁지에 몰렸던 것이다!

 1982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우리 집에 세들어 살던 피아노 선생아줌마네 가족이 미국 이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충동성의 원인 중 하나가 외부 자극의 간섭에 의한 것으로 생각한다. mind control에 의한 것인지 이 무렵 이것이 개입했던 것 같다.
외부로부터 오는 Impulsive의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 인공위성의 mind control 기술 이용에 대한 실태 조사와 GWEN 네트워크 그리고 Alaska Gakona에 위치한 HAARP system부터 점검해 보고 싶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한국 언론사와 한국 정부 그리고 미국 언론사와 미국 정부를 1차적인 조사 대상으로 삼고싶다.


 1983년 무렵 중학생 때 directed energy weapons의 작용으로 의심해볼 만한 종아리부위의 성장통 등을 경험했다. 그리고 만화가게에서 나오다 어지러운듯하게 뒤로 넘어가듯 쓰러졌는데, 이상한 것은 table 위로 넘어졌고 안정감 스러운 것이 느껴진 것 같았으며 하나도 안 다쳤다. 만화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내가 原來 생리학적 실험대상이나 mind control의 표적이 되었다기보다는 주변의 누군가에게 감기나, 또는 재수에 옴 붙는 것처럼 옮은 것으로 생각한다.
가령 친·인척이 먼저 피해자였거나 이웃집 친구 아버지가 發明家셨는데, 그 집 아들과 놀다가 전염되듯 표적이 되었거나 아버지가 陸軍 將星인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그 집안에 드나드는 사람은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査察 對象이 되었다거나, 피해자가 다른 被害者 근처에 있었거나 가해자의 이웃이었거나 해서 피해자가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았었다.
한국의 경우 상당히 많은 사람이 생리학적 실험대상이나 mind control의 대상인 것 같고, 나처럼 본인이 직접 인지하도록 대놓고 당하는 피해자는 극소수인 것 같다.  
初期에는 生理學的 實驗 對象이나 mind control의 標的으로 조용히 지켜보는 수준이었다가 나중에는 directed energy weapons와 stalking 까지 겹쳐 被害가 發生하게 된 것 같다.]


1984년 이미 야행성 인간이 되었다. 미친 듯이 운동하여 근육질체형이었으며 push up의 경우만 해도 非公認 Guinness 世界新記錄 保有者였으나 방구석에서 혼자 한 거라 인정받을 수가 없었다.
먼 훗날 한국의 김정기라는 사람이 나의 정기를 이어받은 것인지 公式 기네스 세계 신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그러나 나의 非公認 記錄을 깨지는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집 근처에 통장네 집이 있었는데, 동네에 대통령 부인이 찾아와서 만나본 모양인데, 영부인에 대한 좋은 말을 했었다.

서울특별시 ㅇㅇ구 같은 동네 또 다른 우리 집의 옆집 아이는 동물 학대를 하는 좀 이상한 녀석이었다.


1987년 목 뒤쪽과 심근부위를 directed energy weapons로 공격당했으며 4월3일 오전에 directed energy weapons로 공격당해 멀미나듯 어지럽고 무력한 증상을 경험했다. 일시적 손떨림도 경험했다.

 

▒ 1988년 전후 무렵 친척들과 함께 강원도 홍천에 놀러 가서 강가에 설치된 tent에서 자고 일어나자 일종의 나쁜 氣가 옮거나 작용한 것처럼 얼굴 외모가 급변했다. 당시에는 건강식품으로 복용하고 있던 태평양 만유의 부작용으로 생각했었다.
[이보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친척이 태평양 화장품 사장이었는데, 그 태평양 장업 사장의 아내가 장례식장 다녀오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던 사건이 있었다.]

 

1990년 얼굴 외모가 급변했다.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친구들 중에도 얼굴이 변하는 사람이 있었다. 

 

 지하철 안에서 백인 여성이 반사되는 유리창으로 나를 의식하고 보더니 종로 근처에서 내릴 때 나를 뒤 따라 내렸는데, 그때 잘해볼 걸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워낙 입체적이고 완벽한 미인이었다. 감시받던 미 대사의 여인이었나?  나까지 감시?  이건 아닌 것 같지만….


1994년 6월 3일 노동사무소 근로감독과 방문했을 때 과장이 나하고 담당 근로감독관에게 관심을 보였으며, 권위적이던 근로감독관이 노동자신분이었던 나를 앞에 두고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허리와 고개를 책상에 코가다을 정도로 점점 숙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 모습을 방송카메라로 찍어 방송했다면? 근데 누군가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이상한 느낌이 그 무렵 들었다. 사무실 안에 있던 수십 명의 근로감독과 직원들 말고 말이다. 근로감독과를 나오면서 권위주의와 노동부 공무원들의 근무태도 등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인식과 함께 담당 근로감독관의 인품이 조금만 더 훌륭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고 1989년 무렵에 생각했던, 건축목수들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을 모아 힘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노동사무소방문 후 얼마 안 되어
directed energy weapons에 의한 전자적 피폭을 엄청나게 당했다.

 

1995년 2월 3일 오른쪽 귀에 이상이 생겼다. 2월4일 오른쪽 귀가 저절로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 1994년 6월 3일 마지막 만났던 담당 근로감독관이 명절 무렵
KBS 9시 뉴스에 나왔다.


1996년 4월 20일 방송과 내가 관련된 양상으로 나오고 있었으나 아직 환청공격이나 생체자극신호 따위는 없었다.
이후에 TV방송에서 아나운서와 MC 등의 ad lib과 생체자극신호가 있었으며 뇌파 통신 기술처럼 나의 생체와 interface化된 방송시스템의 작용으로 방송과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이 있었다.


1996년 8월 3일 뇌파 통신처럼 나와 interface化된 방송통신시스템과의 무선연결상태를 끊고자 집을 떠난 다음날 오전 잠에서 일어날 무렵 향후 가해자가 될 자들이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는 등의 통신 환청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당시만 해도 나는 방송에 대한 좋은 감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1999년 6월 무렵 인터넷채팅사이트인 skylove 등에서 [뇌파도청]이란 아이디로 생각도 도청당할 수 있음을 알리기 시작했다.


1999년 8월 이후 가해조직의 team 구성에 변화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소리 나는 기계(Frey effect)로 고문을 시작했다.


2003년 나에게 온 전자파차단제품 판매  E-mail을 열어보니 우측 상단에 관련사이트 같은 곳과 [전자파피해자들을 위한 모임]이 link 되어있어
인권포럼과 다른 類似 被害者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2월13일 인권포럼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3월1일 모임을 통해 어떤 사람들인지 만나보게 되었다.


2004년 여러 Homepage와 스토킹 site를 開設하였다.


2007년 이천일! 아직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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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7.30 19:48

    첫댓글 결국은 죽인다면서 조금 일찍 죽여주면 안돼니?

  • 10.07.30 19:49

    일찍 죽이는것도 아깝다고 들려온다..진짜 너무 한다..내가 전생에 무슨잘못을 했는지 모르지만 1000배이상 보복당하는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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