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등명]기초불교용어 모음 ♥ 재가자
2559.12.9
1.무구행 불자님
기초불교용어정리
2559. 12. 9
일본불교
일본불교는 한국과 베트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중국불교의 테두리 안에서
전개되었다.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6세기초 백제를 통해서였다. 당시 일본은 백제와 친밀한 문화적 교류를 하고 있었으며 552년(긴메이
덴노 13) 백제 성왕(聖王)은 불상과 율 보내
불교를 받아들일 것을 권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 조정에는 새로운 종교를 지지하는 파와 반대하는 파의 대립이 있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왕실과 귀족들 간에 수용되었다. 특히 스이코 덴노의 섭정이었던 쇼토구[聖德] 세자 594년 삼보흥륭(三寶興隆)의 칙서를
내리고 17개조헌법을 제정해서 불교의 국가적 숭앙을 촉구함으로써 일본 불교의 초석을 놓았다
쇼토쿠 태자는 불교에 의해 씨족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형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불교의 보급은 또한 발달된 대륙문화의 수입을 뜻하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도 여러 경전을 연구하여<유마경>. <승만경>. <법화경>에 대한 주석서를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일본 불교의 지식층은 대부분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건너간 한국 승려들이었으며 그들 가운데는 혜종. 혜자와 같이 쇼토구 태자의 스승이 된 사람도 있었다. 이들 한국 승려들과 중국에 유학한 일본 승려들에 의해
7세기 일본에는 <삼론>. <성실론 成實論>
<구사론> 의 연구를 주로 하는 학파들이 각각 세워 졌으며 중국의 법상종도 들어와서
강력한 교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출처 : 인터넷 검색
無垢行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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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법전 거사님
기초 불교용어
2559.12.9.
제시어 - 일본불교(日本佛敎)
고대 이후 일본인의 주된 종교로 사상과 문학•건
축•생활등 문화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온 불
교는 기원전 5세기에 인도에서 시작되어 6세기에 중국과 한국을 거쳐 일본에 전해졌다.
7세기 초 쇼투쿠(聖德) 태자는 불교를 보호하였고
호류지를 비롯한 많은 사찰을 지었다.
나라 시대에는 일시 호국불교적인 성격도 있었지
만 헤이안 시대 때까지 불교는 귀족들을 위한 종교
로 발달하였다.
가마쿠라(鎌倉)시대에 와서 뛰어난 고승들의 출현
과 함께 귀족들의 종교에서 서민이나 무사들을 위
한 새로운 종파가 속속 생겨났는데, 신불교의 기운
은 전계층과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각종 새로운 종파가 창설되어 호넨•신란•도겐•
니치렌 등의 승려들이 민중에게 알아듣기 쉽게 불
도를 설파하였다.
또 이때 무사들을 중심으로 선종이 보급되었는데,
오늘날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의 하나가 된 다도 •
꽃꽃이 등은 이때 선종에서 유행한 것이기도 하다
에도 시대에는 막부의 보호를 받아 크게 번창하였
는데 사찰이 장례의식을 전달함으로써 당시의 유
교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종교적 역할이 강화되기
도 하였다.
한국과는 달리 사찰의 대부분은 산속이 아닌 주택
가 주변에 자리잡고 사찰 안에 가족 납곱당을 갖춘 묘지도 갖게 되었다.
불교는 오늘날에도 가장 많은 신자를 보유하고 있
다.
일본인이라면 대부분 신자가 아니라도 사원에 참
배하고, 장례식은 불교의식에 따라 거행한다.
시신은 화장하여 사원에 딸린 가족 납골당에 안치
하고 사후에는 일반적으로 계명을 붙인다.
또한 일부 종파를 제외하고는 근대 들어 대부분의 종파에서 승려들의 결혼을 인정하고 있으며, 자식 혹은 양자를 통해 주지직이 계승되고있다.
현재 일본에는 약 7만 5.000채의 절이 있으며, 승
려수는 18만, 신도수는 8.000만 명 정도이다.
출처: 지식백과
김이철(법전), 묘상, 도원행, 무량광, 자비심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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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명화 불자님
기초불교용어
2559. 12. 9
제시어 : 일본불교
일본의 불교는 538년 백제 성왕(聖王) 때 도장(道藏)이 불상과 경전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성실종(成實宗)의 개조가 된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백제는 일본과의 접촉이 빈번하여 관륵(觀勒)은 역법(曆法) ·천문 ·지리 ·술수(術數) 등을 일본에 전하였고, 혜총(惠聰) ·도림(道琳) ·담혜(曇慧) ·혜미(慧彌) 등 많은 고승이 일본에 건너가 불교와 문화에 크게 공헌하였다. 일본에 전해진 불교는 여러 호족(豪族)들의 지지를 얻어 마침내는 쇼토쿠 태자[聖德太子]가 불교장려책을 쓰게 됨으로써 공식적인 지위를 굳혔다. 나라[奈良] 시대에는 불교가 국가와의 연관을 더욱 굳혀 고쿠분사[國分寺]의 제도도 이 무렵의 산물이다.
이 시대는 중국불교가 황금시대를 이룬 때였으므로 그들의 여러 종지(宗旨)가 차례로 건너와 삼론(三論) ·법상 ·성실 ·구사(俱舍) ·율 ·화엄 등 이른바 남부6종(宗)이 성립하였다. 헤이안[平安] 시대에 이르러 불교는 천태(天台) ·진언(眞言)의 2종이 중심이 되어 전개된다. 천태종의 사이초[最澄], 진언종의 구카이[空海] 등은 모두 입당(入唐)하여 새로운 불법을 구한 개조들이다. 남부6종은 이들 2개 종파의 발전에 따라 점차로 그 세력을 잃게 되었고, 특히 사이초가 대승계단(大乘戒壇)을 개설하고 그가 죽자 이것이 국가의 공인을 얻음으로써 남부6종의 몰락은 결정적으로 되었다. 또 헤이안불교는 귀족들의 열성적인 귀의와 보호를 받아 귀족불교라 일컬어졌는데, 귀족들은 조정의 본을 떠 조사(造寺) ·조탑(造塔)에 힘쓰는 한편 기도(祈禱)와 법회를 자주 열어 그 권세를 자랑하였다.
한편 이렇게 귀족들과 깊은 관련을 갖게 된 승려들은 세속적 권위와 결탁하게 되었고, 절은 귀족으로부터 기부받은 토지를 지키기 위하여 승병(僧兵)을 두게 됨으로써 많은 폐단을 낳게 되는 근원이 되었다. 일본불교가 민중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가마쿠라[鎌倉] 시대이다. 말법사상(末法思想)을 배경으로 일어난 정토종이,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는 일만이 정토왕생(淨土往生)의 정정업(正定業)이라고 설하면서 급속히 교세를 넓히다가 기성종파의 반감을 사고 박해를 받게 되었다. 정토종을 확립한 겐쿠[源空:法然]의 문하에는 많은 인재가 모여 여러 종파로 분립되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것은 정토진종(淨土眞宗)을 개설한 신란[親鸞]이다. 그도 스승과 마찬가지로 유형에 처해졌으나 그는 유형지에서 저술과 포교에 주력하였다. 한편 에이사이[榮西] ·도겐[道元] 등에 의하여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선종(禪宗)은 계율에 엄격한 수양의 교법으로서 무사계급과 결부되어 발전하였다. 가마쿠라불교의 최후를 장식한 것은 니치렌종[日蓮宗]이다. 니치렌은 처음 진언밀교(眞言密敎)를 배우고 이어 천태(天台)를 배워 《법화경》의 진리를 깨닫고 니치렌종을 개종하였다.
이 종파는 천태 이외의 종파를 부정하는 도전적인 언동 때문에 자주 법난(法難)을 받았다. 그러나 후에 민중들 사이에 교세가 확장되어 지금은 진종(眞宗)과 나란히 대종파를 이루고 있다. 무로마치[室町] 시대 이후 불교는 점차 쇠퇴하다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천하를 통일하자 완전히 교세가 꺾였으며, 에도[江戶] 시대에는 정권의 도구로 타락하였다. 이렇게 침체 ·부패한 불교에 대하여 비난 ·배척의 운동도 자주 일어났으나,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뜻있는 불제자들에 의하여 혁신의 기운도 높아지고 여러 종파의 부흥운동도 추진되어 근대적 종교로서의 불교발전이 이룩되었다.
출처: 두산백과
대명화 합장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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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해일 거사님
기초 불교 용어 정리 (해일)
2559. 12. 9
제시어 : 일본불교(日本佛敎)
일본의 불교는 538년 백제 성왕(聖王)때 도장(道藏)이 불상과 경전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성실종(成實宗)의 개조가 된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백제는 일본과의 접촉이 빈번하여 관륵(觀勒)은 역법(曆法)∙천문 ∙ 지리 ∙술수(術數)등을 일본에 전하였고, 혜덕(惠德) ∙ 도림(道琳)∙담혜(曇慧)∙혜미(慧彌) 등 많은 고승이 일본에 건너가 불교와 문화에 크게 공헌 하였다. 일본에 전해진 불교는 여러 호족(豪族)들의 지지를 얻어 마침내 성덕태자(聖德太子)가 불교장려책을 쓰게 됨으로써 공식적인 지위를 굳혔다. 나라시대(奈良時代)에는 불교가 국가와의 연관을 더욱 굳혀 국분사(國分寺)의 제도도 이 무렵의 산물이다. 이 시대에는 중국불교가 황금시대를 이룬 때였으므로 그들의 여러 종지(宗旨)가 차례로 건너와 삼론(三論) ∙ 법상 ∙ 성실 ∙ 구사 ∙ 율 ∙ 화엄 등 소위 남부 6종이 성립하였다. 평안(平安) 시대에 이르러 불교는 천태 ∙ 진언의 2종이 중심이 되어 전개된다. 천태종의 최징(最澄) 진언종의 공해(公海)는 모두 입당하여 새로운 불법을 구한 개조들이다. 남부6종은 이들 2개 종파의 발전에 따라 점차로 그 세력을 잃게 되었고, 특히 사이초가 대승 계단(戒壇)을 개설하고 그가 죽자 이것이 국가의 공인을 얻음으로써 남부종의 몰락은 결정적으로 되었다. 또 헤이앙 불교는 귀족들의 열성적인 귀의와 보호를 받아 귀족불교라 일컬어졌는데, 귀족들은 조정의 본을 떠 조사(造寺) ∙조탑(造塔)에 힘쓰는 한편 기도와 법회를 자주 열어 그 권세를 자랑하였다. 한편 이렇게 귀족들과 깊은 관련을 갖게 된 불교의 승려(僧)들은 세속적 권위와 결탁하게 되었고, 절은 귀족으로부터 기부받은 토지를 지키기 위하여 승병(僧兵)을 두게 됨으로써 많은 폐단을 낳게 되는 근원이 된다.
일본불교가 민중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겸창(鎌倉) 시대이다. 말법사상(末法思想)을 배경으로 일어난 정토종이,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는 일만이 정토왕생의 정정업(正定業)이라고 설하면서 급속히 교세를 넓히다가 기성종파의 반감을 사고 박해를 받게 되었다.
정토종을 확립한 원공(源空 : 法然)의 문하에는 많은 인재가 모여 여러 종파로 분리되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것은 정토진종(淨土眞宗)을 개설한 친만(親彎)이다. 그는 스승과 마찬가지로 유형에 처해졌으나 그는 유형지에서 저술과 포교에 힘썼다. 한편 영서(榮書) ∙ 도원(道元) 등에 의하여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선종(禪宗) 은 계율에 엄격한 수양의 교법으로서 무사계급과 결부되어 발전하였다. 가마쿠라 불교의 최후를 장식한 것은 일련종이다. 일연은 처음 진언밀교를 배우고 이어 천태(天台)를 배워 법화경』 진리를 깨닫고 일연종을 개종하였다. 이 종파는 천태 이외의 종파를 부정하는 도전적인 언동 때문에 자주 법난(法難)을 받았다. 그러나 후에 민중들 사이에 교세가 확장되어 지금은 진종(眞宗)과 나란히 대종파를 이루고 있다. 실정(室町) 시대 이후 불교는 점차 생기를 잃게 되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를 통일하자 완전히 무릎을 꿇었고, 강호(江戶) 시대에는 정권의 도구로 타락하였다. 이렇게 침체 ∙ 부패한 불교에 대하여 비난 ∙ 배척의 운동도 자주 일어났으나, 명치유신(明治維新) 이후 뜻있는 불교도들에 의하여 혁신의 기운도 높아지고 여러 종파의 부흥운동도 추진되어 근대적 종교로서의 불교발전이 이룩되게 되었다.
(불교학대사전∙불교대사전에서)
해일(海日) 합장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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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진지 불자님
기초 불교 용어
2559. 12. 9
제시어 ㅡ 일본불교
일본의 불교는 538년 백제 성왕 때 도장이 불상과 경전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성실종(成實宗)의 개조가 된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백제는 일본과의 접촉이 빈번하여 관륵은 역법 · 도림 · 담혜 · 혜미 등 많은 고승이 일본에 건너가 불교와 문화에 크게 공헌하였다.
나라시대에는 불교가 국가와의 연관을 더욱 굳혀 국분사(國分寺)의 제도도 이 무렵의 산물이다.
이 시대는 중국불교가 황금시대를 이룬 때였으므로 그들의 여러 종지(宗旨)가 차례로 건너와 삼론(三論) · 법상 · 성실 · 구사 · 율 · 화엄 등 소위 남부 6종이 성립하였다.
평안시대에 이르러 불교는 천태 · 진언의 2종이 중심이 되어 전개된다.
천태종의 최징 진언종의 공해는 모두 입당하여 새로운 불법을 구한 개조들이다.
남부 6종은 이들 2개 종파의 발전에 따라 점차로 그 세력을 잃게 되었고, 특히 사이초가 대승 계단(戒壇)을 개설하고 그가 죽자 이것이 국가의 공인을 얻음으로써 남부 종의 몰락은 결정적으로 되었다.
또 헤이앙 불교는 귀족들의 열성적인 귀의와 보호를 받아 귀족 불교라 일컬어졌는데, 귀족들은 조정의 본을 떠 조사(造寺) · 조탑(造塔)에 힘쓰는 한편 기도와 법회를 자주 열어 그 권세를 자랑하였다.
한편 이렇게 귀족들과 깊은 관련을 갖게 된 불교의 승려들은 세속적 권위와 결탁하게 되었고, 절은 귀족으로부터 기부받은 토지를 지키기 위하여 승병(僧兵)을 두게 됨으로써 많은 폐단을 낳게 되는 근원이 되었다.
일본불교가 민중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겸창 시대이다. 말법사상(末法思相)을 배경으로 일어난 정토종이,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는 일만이 정토왕생의 정정업(正定業)이라고 설하면서 급속히 교세를 넓히다가 기성종파의 반감을 사고 박해를 받게 되었다.
가마쿠라 불교의 최후를 장식한 것은 일련종이다.
일연은 처음 진언밀교를 배우고 이어 천태(天台)를 배워 「법화경」의 진리를 깨닫고 일연종을 개종하였다.
이 종파는 천태 이외의 종파를 부정하는 도전적인 언동 때문에 자주 법난(法難)을 받았다. 그러나 후에 민중들 사이에 교세가 확장되어 지금은 진종(眞宗)과 나란히 대종파를 이루고 있다.
명치유신 이후 뜻있는 불교도들에 의하여 혁신의 기운도 높아지고 여러 종파의 부흥운동도 추진되어 근대적 종교로서의 불교 발전이 이룩되게 되었다
---천진지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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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선승화 불자님
기초 불교 용어
2559.12.9.
일본 불교
6세기에 백제로부터 전래된 일본의 불교는 나라에서 대불개안을 시작하고 삼론종, 화엄종 등 6개 종파가 형성되었다. 쇼무 천황 때에 당나라 승려 감진이 일본에 들어와 일본 불교의 초석을 쌓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794년 간무 천황의 교토 천도에 이어 견당사로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온 구카이와 사이초가 각각 진언종, 천태종을 창시하여 일본 불교에서 고야산, 히에이 산 등의 비중이 커졌다. 그리고 정토신앙의 유행으로 아미타불 신앙이 보편화되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무사가 귀족에서 권력을 빼앗고 힘을 순조롭게 묻혀 있던 시대이기도 했다. 이 시대에는 임제종과 조동종이라는 두 선종이 잇따라 중국에서 소개되었다. 힘을 길러 가고 있었던 사무라이 집단이 선호한 것에 기반해 가마쿠라 등 많은 선사가 지어져 매우 번창했다. 이 대표적인 것을 「가마쿠라 오산」이라고 한다. 또한 호관사동식 불교 사서인 「원형석서」가 이 시기에 저술되었다.
더 전통적인 불교 사이에서도 현재 상황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높아졌다. 특히 율종과 거기에서 파생 된 진언 율종 등에서는 사회 복지 사업 등에 나서면서 민중 구제에 참가 뿐만 아니라 스스로 국가의 지정된 과단을 거부하고 자신의 수계 의식을 시작하는 등 새로운 종파보다 혁신적인 움직임조차 보였다.
1603년 에도에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불교와 관련하여 사사제법도를 정하였다. 또한 1654년 명나라에서 건너온 승려 은원이 황벽종을 창시하였다. 에도 시대 일본에서의 최대 불교 종파는 정토진종이었다.
1868년 이후 메이지 정부는 신토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는 숭신억불 정책을 펴 일본 불교계는 초유의 난관을 겪었다. 전국 각지의 사찰은 폐쇄되기도 하고 철거되기도 하고 매각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51년에는 종교법인법이 제정되어 이후 불교계는 각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일본의 불교 단체에서 세운 대학으로 입정, 고마자와, 무사시노, 용곡, 창가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선승화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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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광목 거사님
기초불교용어
2559 . 12 . 9
제시어 - 일본불교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6세기초 백제를 통해서였다.
당시 일본은 백제와 친밀한 문화적 교류를 하고 있었으며 552년(긴메이[欽明] 덴노 13) 백제 성왕(聖王)은 불상과 을 보내 불교를 받아들일 것을 권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 조정에는 새로운 종교를 지지하는 파와 반대하는 파의 대립이 있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왕실과 귀족들 간에 수용되었다.
스이코[推古] 덴노의 섭정이었던 쇼토쿠[聖德] 세자 594년 삼보흥륭(三寶興隆)의 칙서를 내리고 17개조헌법을 제정해서 불교의 국가적 숭앙을 촉구함으로써 일본 불교의 초석을 놓았다.
쇼토쿠 태자는 불교에 의해 씨족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형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불교의 보급은 또한 발달된 대륙문화의 수입을 뜻하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도 여러 경전을 연구하여 〈유마경〉·〈승만경〉·〈법화경〉에 대한 주석서를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일본 불교의 지식층은 대부분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건너간 한국 승려들이었으며 그들 가운데는 혜총·혜자와 같이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된 사람도 있었다.
이들 한국 승려들과 중국에 유학한 일본 승려들에 의해 7세기 일본에는 〈삼론〉·〈성실론 成實論〉·〈구사론〉의 연구를 주로 하는 학파들이 각각 세워졌으며 중국의 법상종도 들어와서 강력한 교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나라 시대[奈良時代:710~784]에는 화엄종도 수입되어 이른바 남도육종(南都六宗)의 성립을 보게 되었다.
율종·구사종·성실종·삼론종·법상종·화엄종으로서 주로 학승들이 경전과 교리를 연구하며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는 통제된 국교적 성격을 띤 불교였으며 민간포교활동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 율종·법상종·화엄종이 가장 영향력 있는 교단을 형성했으며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도다이 사[東大寺]를 본거지로 한 화엄종은 나라 시대의 불교를 대표하다시피 했다.
도다이 사에 안치된 대불(大佛) 비로자나불상(毘盧遮那佛像)은 나라 불교의 상징으로서 우주만물에 편재해 있는 법신불의 세계와 사사무애의 법계를 나타내고 있다.
교토[京都]로 수도를 옮긴 헤이안 시대[平安時代:794~1185]에는 중국으로부터 천태종과 진언종(眞言宗)이 들어와서 일본불교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천태종은 사이초[最澄:767~822]에 의해 수입되었으며, 히에이 산[比叡山]에 자리를 잡고 대승 계단을 설치하고 나라를 위한 승려들의 훈련에 힘썼다. 사이초는 천태종뿐만 아니라 율·진언밀교·선 등도 들여왔기 때문에 일본 천태종은 매우 융합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신·구·의 3업을 통해 즉신성불(卽身成佛)을 목적으로 하는 진언종은 사이초와 함께 당에 갔던 구카이[空海:774~835]에 의해 도입되어 고야 산[高野山]에 자리를 잡았다.
진언종은 물론 성불을 목적으로 하나 현세 이익을 추구하는 기복적 성격이 강했으며 귀족들 사이에 매우 인기가 있었다.
천태와 진언은 모두 현세적 성격이 강한 일본의 토착신앙인 신도(神道)와 습합된 형태로 공존했다.
헤이안 시대 말기에는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는 가운데 말법사상이 유행했으며, 종래의 융합적 성격을 띤 불교를 배척하고 오로지 하나의 구원의 길만을 선택해서 따르려는 전수(專修)운동이 강하게 일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무사들이 지배하는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1192~1333]에 들어오면서 더욱 강화되어 새로운 종파들이 출현했으며, 일본불교의 특이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마쿠라 시대에 성립된 이러한 전수 불교적 종파들을 남도육종이나 천태종과 진언종으로부터 구별하여 신불교(新佛敎)라 부르기도 한다.
불교의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전수 염불을 주창한 호넨[法然:1132~1212]으로서,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정토에 왕생한다는 단순한 신앙운동을 전개하여 많은 대중적 호응을 얻었으며 일본 정토종(淨土宗)의 원조가 되었다.
호넨의 제자들 가운데는 염불의 행(行)을 중시하느냐 아니면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는 믿음(信)을 중시하느냐에 대한 문제로 대립이 발생한 가운데 믿음을 중시하는 신란[親鸞:1173~1263]의 출현과 함께 정토진종(淨土眞宗)이라는 새로운 종파가 성립되었다.
신란은 신(信)의 일념이 발생하는 순간 정토왕생이 결정되며, 염불은 단지 아미타불의 은총에 대한 보은의 행위일 뿐임을 강조했다.
그는 믿음도 염불의 행도 모두 아미타불의 회향(廻向)의 힘에 의한 것이지, 자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순수타력신앙을 강조했다.
계율의 준수도 필요없게 되었으며 신란과 그의 제자들은 자유로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현재 정토진종은 일본불교의 최대 종단을 형성하고 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또한 매우 투쟁적인 승려 니치렌[日蓮:1222~82]이 등장하여 니치렌 종[日蓮宗]을 개창했다.
그는 〈법화경〉 신앙을 고취했으며 염불을 모방하여 법화경의 이름을 부르는 창제행위(南無妙法蓮華經)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는 대중적인 신앙을 전파했다. 소카갓카이[創價學會] 등 전후 일본에 출현한 신흥 종교들은 니치렌 종 내지 법화신앙 계통에서 파생한 것들이 많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중국으로부터 선불교의 종파들도 수입되었다. 에이사이[榮西1141~1215]는 임제종(臨濟宗), 그리고 도겐[道元:1200~53]은 조동종(曹洞宗)을 개창했다.
선불교와 함께 일본 중세에는 다도·서도·하이쿠[俳句:17음절의 짧은 시] 등이 유행했으며 선은 일본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상의 가마쿠라 신불교의 지도자들은 모두 천태종에 몸담고 있던 승려들이었으나 기성 교단에 불만을 품고 새로운 불교 운동을 일으켰던 것인데, 그들에 의해 수립된 종파들은 가마쿠라와 아시카가 시대[足利時代:1338~1573]를 통하여 급성장했고, 오늘날에는 천태종과 진언종을 누르고 일본 불교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
도쿠가와 시대[德川時代:1603~1867]에는 그리스도교를 추방하기 위해 불교를 국교로서 보호했기 때문에 각 종파의 교단조직이 정비되고 교학도 다듬어졌으나 종교적 창의성과 역동성은 없었다.
메이지 시대[明治時代:1868~1912]가 되어 국왕을 중심으로 한 국수주의가 대두하면서, 신도(神道)와 불교를 분리시키고 불교를 배격하는 운동이 전개됨에 따라 불교는 국교적 위치를 상실하고 침체기에 들어갔으며, 메이지 정부의 명에 따라 승려들의 대처(帶妻)가 일반화되었다.
한편으로 서유럽의 근대적 불교 연구 방법이 도입되어 산스크리트·팔리어·티베트어 불전에 대한 연구와 불교사의 연구가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일본불교는 전반적으로 종파적 성격이 매우 강하고 종파의 개조에 대한 숭배가 성하며 계율준수의 전통이 사라져 승려들은 대부분 결혼을 하고 사찰들도 대다수 대를 이어 운영되고 있다.
일본불교는 한국과 베트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중국불교의 테두리 안에서 전개됨
광목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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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무애심 불자님
기초 불교용어
2559. 12. 09
제시어 : 일본불교
*메이지 이후
1868년 이후 메이지 정부는 신토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는 숭신억불 정책을 펴 일본 불교계는 초유의 난관을 겪었다. 전국 각지의 사찰은 폐쇄되기도 하고 철거되기도 하고 매각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51년에는 종교법인법이 제정되어 이후 불교계는 각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일본의 불교 단체에서 세운 대학으로 입정, 고마자와, 무사시노, 용곡, 창가 등이 있다.
출처 : 위키백과
무애심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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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혜호 불자님
기초불교용어
2559. 12. 9
* 일본불교
1. 한국을 통해 수용하였으며, 생활 불교와 장례 불교적 성격이 강함 불교가 민간 속에 깊이 뿌리내렸음
2. 종파 불교로 전개됨 → 종파적 차별성을 견지하면서 일본 종래의 신도(神道)와 절충함
◇ 신도(神道)
일본 고유의 민족 신앙으로, 선조나 자연을 숭배 하는 토착 신앙이다. 하지만 종교라기보다는 조상의 유풍을 따라 가미〔神:신앙의 대상〕를 받들어 모시는 국민 신앙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을 기초로 하여 전개되는 문화 현상을 포함해서 말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옮김
---혜호합장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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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청련안 불자님
불교 기초 용어
2559. 12. 9
제시어: 일본불교
아시아에는 전통을 자랑하는 많은 불교국이 있지만, 비교적 늦게 수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질과 양에 있어서 세계에서 불교가 가장 번성한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불교가 이렇게 발전했다면. 그 발전의 공로는 당연히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한국임이 분명한데, 이 점을 빌미로 한국인은 일본에 대해 지나치게 자부심과 우월감을 앞세워 온 것 같다. 문화적 수혜라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은 당사자인 일본이 무시하려 든다면 배은망덕이라 탓할 일이지만, 오늘날의 일본불교는 주체적으로 수용하면서 연마해 나간 진지한고 열렬한 노력의 결실임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불교는 일본에서 전개되고 정착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독특한 일본불교로 성장하게 된다
*불교는 처음부터 민중적 차원에서 일본에 도래한 것은 아니었으나 왕실로부터 민중 속으로 보급되었다.
*일본불교는 주술적인 힘과 강하게 결부되어 있다. 불교는 왕실에 의해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고, 평화를 보전하고, 비를 내려 풍작을 기원하는 등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 불교는 일본인이 신봉하고있던 토착신을 완전히 압도하지 못하고 토착신의 존재와 위력을 인정하였다
다른 불교국들과 비교하여 일본은 놀라운 다양성과 풍족한 물질생활로써 보는 이들을 인상깊게 한다.
일본불교는 결점과 모순들을 놀라운 적용력으로써 다른 차원으로 극복하고 발전시킨 데에서 일본불교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청련안 사경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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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정각심 불자님
기초불교 용어정리
출처 ; naver
2559.12.09
일본불교
1)6세기에 백제로부터 전래된 일본의 불교는 나라에서 대불개안을 시작하고
삼론종, 화엄종 등 6개 종파가 형성되었다. 쇼무 천황 때에 당나라 승려 감진이
일본에 들어와 일본 불교의 초석을 쌓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2)헤이안 시대;
794년 간무 천황의 교토 천도에 이어 견당사로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온
구카이와 사이초가 각각 진언종, 천태종을 창시하여 일본 불교에서
고야산, 히에이 산 등의 비중이 커졌다. 그리고 정토신앙의 유행으로 아미타불 신앙이 보편화되었다
3)가마쿠라 시대;
가마쿠라 시대에는 무사가 귀족에서 권력을 빼앗고 힘을 순조롭게 묻혀 있던 시대이기도 했다.
이 시대에는 임제종과 조동종이라는 두 선종이 잇따라 중국에서 소개되었다.
힘을 길러 가고 있었던 사무라이 집단이 선호한 것에 기반해 가마쿠라 등
많은 선사가 지어져 매우 번창했다. 이 대표적인 것을 「가마쿠라 오산」이라고 한다.
또한 호관사동식 불교 사서인 「원형석서」가 이 시기에 저술되었다.
더 전통적인 불교 사이에서도 현재 상황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높아졌다.
특히 율종과 거기에서 파생 된 진언 율종 등에서는 사회 복지 사업 등에 나서면서
민중 구제에 참가 뿐만 아니라 스스로 국가의 지정된 과단을 거부하고
자신의 수계 의식을 시작하는 등 새로운 종파보다 혁신적인 움직임조차 보였다
4)에도 시대;
1603년 에도에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불교와 관련하여
사사제법도를 정하였다. 또한 1654년 명나라에서 건너온 승려 은원이
황벽종을 창시하였다. 에도 시대 일본에서의 최대 불교 종파는 정토진종이었다.
5)메이지 이후;
1868년 이후 메이지 정부는 신토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는 숭신억불 정책을 펴
일본 불교계는 초유의 난관을 겪었다. 전국 각지의 사찰은 폐쇄되기도 하고 철거되기도 하고 매각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51년에는 종교법인법이 제정되어 이후 불교계는 각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일본의 불교 단체에서 세운 대학으로 입정, 고마자와, 무사시노, 용곡, 창가 등이 있다
창원 정각심 합장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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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9.12.9 총편집 도원행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