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가 악했던 만큼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시리라”라고 아래 본문에서와 증거되어 있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해서, 게다가 대단해 보이는 직분이나 위치에 있다고 해서, 더 나아가 많은 권한과 영향력이 있는 자리나 신분이라고 해서 무조건 ‘주여 주여’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닌 것인데..
먼저 각성하며 자복하고 돌이키지 않음은 물론 여전히 벗하고 반복하며 심지어는 심각해지는 죄악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리 기도들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대로 응답이 되는 것일 수는 없는 것이고, 오히려 반대로 그러한 신앙적 행위나 열심들만큼 위선과 외식이 되어 하나님 앞에 가증스러움이나 진노의 제목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죄악들 가운데에서는 여러 모양으로 올려 드리는 찬미와 송축들도, 경배와 예배들도 열납될 수가 없는 것이고..
참으로 그러한 자들, 그러한 상태에서는 새벽을 깨우고 밤을 새워 철야기도하며 일주일 이상을 금식하며 기도한다고 해도, 천천의 숫양들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들로 나아가고 땅과 밭들을 팔아 헌물하며 심지어는 한 나라를 통째로 올려 드리면서 특별 작정을 한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오히려 가증스러움이나 진노의 제목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상 그러한 경우에는 하나님께서는 더욱 사랑하셔서라도 아비의 심정으로 그러한 자들이 먼저 자신의 죄악들을 각성하고 더 이상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으며 하루 바삐 돌이키고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되도록 하나님의 시간까지 하늘의 힘과 응답과 복들 등은 막으시곤 하는 것이고, 반대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곤 하며, 때로는 마치 광야 40년과 같이 헤매게도 하시는 것인데..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야 말로 최선의 응답이자 최고의 사랑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 이유는 조금도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분인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다 실행하시면서 모두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모양의 응답과 열납과 역사들 등과 같은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고, 말씀대로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는 분인 것이며, 말씀 그대로 누리고 경험하며 이루고 성취되게 하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하나님 아버지, 다시 말해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일반 은총이든지 특별은총이든지 간에 어쨌든 모든 하늘의 힘과 역사들에 있어서, 무엇보다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에 있어서 조금도 모순이 될 수 없는 것임은 물론 모든 일들에 있어 전적으로 합당함이 될 수 있도록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어 말씀을 보이시고, 말씀의 나라를 경험케 하시며,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시고,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와 진노와 음부와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서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며,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뀔 수 있게 하신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것이고, 사실 말씀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고 우리 인생들이 접할 수 있도록 기록될 수 있게 하신 직접적, 실질적인 힘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깨달으며 믿고 행하며 증거하고 누리며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현실적, 경험적인 힘이신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바꾸어 말하면 다름 아닌 바로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말씀에 치열하고 뜨거운 열정과 함께, 실상은 그 자체부터가 인간적인 힘이나 의, 세상의 능력이나 방법들로는 불가한 것으로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며 돌이킴과 함께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암송하며 필사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치열한 말씀의 신앙, 진정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과 함께..
실제로 여러 모양의 기도와 경배와 헌신들 등에 있어서의 하나님으로 인한 크고 작은 응답과 열납들,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실제와 경험들, 생생함과 강렬함들이 함께 하고 나타나며 누리게 되고 예비되어 있음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된 그 어느 누구일지라도, 그 어떤 죄악들에서도, 그 어떤 상황들에서도 언제든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으며, 그와 함께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도 실제로 가능하고 생생하게 누릴 수 있음은..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의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의 구원이, 또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가, 게다가 그와 같은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이, 참으로 그러한 모든 면들이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고 완전히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들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이상으로 강력하고 실제적이며 기적적이고 신령하며 현실적이고 초월적이며 절대적인 것이 때문입니다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그 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가 악했던 만큼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시리라"
(미가3:1~4)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3월 14일(목)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