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랗게 운다 / 이서빈
외발로 서있는 소나무 온몸이 따끔거린다
이 세상 바늘 다 소나무 몸에서 나온 것
바람 구름 안개의 모시적삼
새들과 벌나비 온갖 곤충 옷 천의무봉 솜씨로 한 땀 한 땀
손가락 곱도록 품삯 한 푼 없이 지어 계절의 온도습도 조절했다
그들의 옷 짓는 일로 일생 보낸 장인 목에
시퍼런 전기톱소리 초승달보다 섬뜩한 날 선다
톱날에 잘려 나온 톱밥 펄펄 마지막 숨 흩날리며 땅으로 고요히 내려앉는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흐느낀다
언제 숨 잘릴지 모르는 시한부 어깨 들썩이며 운다
별빛도 파랗게 파랗게 새파랗게 울고
허공천에 지나가던 바람 파라람 파라람 운다
재선충 바글바글 덤벼 숨 멈춘 동족 보며
어둠이 지운 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거라고 구불구불 울다
목울대 툭 불거져 옹이 되도록 운다
비늘 다 벗겨져 속살 보이는 귀신 되어 운다
어려서는 강제로 사지 잘라
자신들 구미에 맞게 분재라는 죄목 붙여 화분에 가두고
자라서는 재목이라 목 잘라
이제 더 이상 살 수 없을 거라고 서럽서럽 운다
멈출 줄 모르는 인간 욕심에 잘려죽고 말라죽고
생식불능 되어 소나무란 말은 닫힐 거라고
슬피슬피 슬슬피피 운다
기형 공화국 / 이서빈
허릴 묶고도 용케 잘 살아가는 동물 왕국 새들은 눈물 나도록 웃다 배꼽 빠졌다. 배꼽 찾아나선 손님은 돌아오지않고 손님 기다리던 부린 눈물샘 다 말랐다. 새 손은 바람내장 훑고, 내장은 구불구불 소화 불량 앓는다.
꽃들은 모두 벌나비들 활주로가 된다. 혈관 가득 푸른피 출렁이며 낯선 날들 착륙시키고 굉음 이륙 하고 있다. 물그늘 비린내만 키워내고 사람들은 키워서는 안 될 일들만 낳아기른다. 허공 맴돌다 비로 눈으로 내리는 넋들의 유언장.
한 이불속 등돌린 너와 나
가까워 아득하고 서러운 그가혹
아득하거나 서럽거나 가혹하단 말,
기형시를 흐느끼며 뿌려댄다.
쩍쩍 갈라진 손가락 시장 한 귀퉁이 달빛 파는 것 다 헤진옷 벗어 아기 덮어주고, 구멍난 으뜸부끄럼가리개로 추운겨울 건너 지하도에 앉아 초점 잃은 시선 감고 있는 동짓달 초승달보다 더 시린날.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말도 이젠 얼어붙었다.
시리다는 말 안시리다는 말로 바뀔 때
이세상 계절 저세상 계절된다.
기형 공화국엔 기형들만 사는 게 아니라
너무도 번듯한 외형들이 기형을 만들고 있다.
방울새와 청노루귀와 너도 바람꽃 / 이서빈
1
겨우내 찾아봐도 보이지 않던 것들 봄이 되니 일제히 제 목소리를 낸다.
방울소리를 모아 만든 비눗방울엔 어린것들만 살고 있다. 비눗방울에서 놀란 잠의키를 늘리고 음악책장을 넘기면 쪼로롱 방울소리 어린 뼈를 긁는다.
방울소리 울리는 고양이와 강아지와 나귀는 잠깐 빌려온 새 한 마리를 목에 매달고 가랑이 사이로 이리저리 소리를 끌고 다닌다.
이름만 있는 방울새, 고양이와 강아지와 나귀가 지나갈 때 마다 딸랑거리는 건 방울새 한 마리를 달고 다니기 때문이다.
2
청노루귀꽃 속엔 젊고 붉은 동굴이 있고 한통속으로 습기와 빛을 끌어당기는 달팽이도 있다. 나이 들면 바늘귀를 꿰지 못하는 것도 청노루귀 탓이다. 늘 귀를 씻는 푸른 청노루귀. 바늘은 온몸에 작은 귀하나 매달고 헤지거나 터진 봄의 초록그늘을 감치고 홈질한다.
귀가 어두워지거나 갈색이 되면 촘촘하단 말보다 듬성듬성 이란 말이 더 가깝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로 길어지거나 귀가 얇아진다는 것은 귀를 씻지 않은 양쪽 귀가 앞말과 뒷말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3
나도 없는데 너도 바람꽃이라니 못생긴 꽃들이 입술을 씰룩거린다. 아직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꽃씨들 바람을 타고 다니다 정착하면 그곳이 한 해 주소가 된다. 꽃봉오리 터뜨리며 폴짝폴짝 말문을 열면 흙의 주소는 미가 된다.
바람기 많은 바람꽃 수꽃이 멀리 날아가 바람을 피워 낳은 꽃을 너도바람꽃이라 이름 지었다면 꽃들은 모두 편부이거나 편모슬하다.
소금사막길 / 이서빈
낙타들, 지루한 행렬로 소금사막 건넌다.
낙타몸엔 경적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무릎 꿇어 소릴 내거나 기다릴 뿐
스스로 창을 닫은 긴눈썹과
발굽닿는 자리에 소금 부서지는 소리가 짜다.
푸른바람 걸린 나뭇가지위를 지나다보면
흰소금 쌓인 지점을 지나가게 된다.
어느새 끼어든 제설차가 염화칼슘 뿌려대며 지나간다.
흰사막인 듯 눈천지가 돼버린 길
가끔 낙타울음 닮은 경적이 끼어들어 미끄러운 길
닭들이 득실거리는 트럭 저만치 앞서가고
파란술병 든 빨간치마와 야자나무그늘이 느리게 지나가는 길
길들은 순간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 옛날 소금길은 좁아터져 정체되었지만
오늘 이길은 넓어서 더 엉킨다.
갓길표지도 없이
서로 서로 위험 속도 내며 지나갈 뿐이다.
터널을 지나 저물어가는 산 돌아가
저녁대문을 향해가는 후미등 붉은행렬들이 흐른다.
모래언덕은 속도를 잠그고 바람을 풀어놓는다.
처음 보는 겨울그림자 한 폭이
길 한복판에 걸려있다.
긴장한 낙타의 귀들이 허공에 펄펄 살아서 걸려있다.
다쉬테캐비르* 사막, 그 어디쯤 지나가고있는 걸까.
지구공 소금사막길 혹속에 남은 연료양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란 최대의 사막
魂을 흔드는 댓잎 / 이서빈
방울소리는 소리만 날아다닌다.
무거운 소리,
모시적삼 훨훨 춤추며 하얀영혼을 위로하고
아기魂 살결위로 포동포동 흘러내리는
달빛울음….
이승 뒤뜰 대밭서 차고푸른 휘파람소리 난다.
작두날 번뜩이며
시퍼런 메아리로 떠도는 대나무들의 몸짓
암호를 전송하는 청청한 마디들
철철 우는 아기울음소리의 댓잎들이다
먼 산사 처마끝에 매달린
새끼목어 울음소리 맑게 달래지고 있다.
여의주 하나 손에 쥔 채
죽음 놀고 있는 아기는 저승으로
엄마가 오기를 기다린다
나부끼는 춤사위에 업장 풀어내고
모시적삼 한복이 여승보다 슬피 운다.
바람에 빈 들녘이 흔들린다.
달빛이 쏟아지는 처연한 몸짓사이
神아기야, 넌 푸른안개 몸을 가린 서천꽃밭이다.
‘살주는 살살꽃 뼈준 뼈살꽃 피준 피살꽃
영혼 되살아나는 도환생꽃’*
이꽃밭은 저승이승 연결해 준다는 기별인데
생불꽃 불망꽃 울음꽃 웃음꽃 …자정꽃**
이저승 오가는 섣달그믐 황금마차를 탈 걸 그랬다
*전설속의 꽃
**전솔 속에 꽃
[ 이서빈 시인 약력 ]
*경북 영주 출생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저서:‘달의 이동 경로’(시집)‘저토록 완연한 뒷모습’(민조시집),
*한국 문협 인성교육위원,
*국제 펜 클럽 회원,
*중랑 문화원 ‘남과 다른 시 쓰기’ 창작교실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