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직장인들 ‘자기계발 강박증’

[이인권]

2007년 3월 2일 (금) 19:13   경향신문

불안한 직장인들 ‘자기계발 강박증’

대기업 입사 10년차 김모 과장(37)은 최근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 ‘자기계발 성과 미진’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다. 승진을 위해 치른 토익시험 성적이 형편없이 나온 이후부터다. 김과장은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에 항상 불안하다”며 “한때 영어학원에 다니기도 했지만 끝까지 다니지 못해 스스로에게 실망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자기계발 강박증’이 직장인들을 옥죄고 있다. 45세가 정년이라는 ‘사오정 시대’에 승진과 이직, 퇴직 이후를 준비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지만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정신과 병·의원마다 이런 직장인 환자들이 적지 않다.

한양대 구리병원 정신과 박용천 교수는 “환자 10명 중 1명은 자기계발 강박증 환자”라며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호소해 검사해보면 대체로 강박증 환자였다”고 전했다. 박교수는 “직장에서 퇴출당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자기계발을 하게 되는데, 이는 일종의 성공 노이로제”라고 덧붙였다.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96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기계발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87.9%에 달했다. 특히 대기업 직장인(91.7%)과 차장급(91.2%)이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기계발에 매달리는 첫번째 이유는 이직(49.5%)이었다.

강남 파고다학원의 CNN 뉴스청취 담당교사 인석민씨는 “새벽반의 경우 80%가 직장인이며 50, 60대 직장 남성도 제법 많다”며 “수강생은 원래 유학준비생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자기계발을 위한 수강생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자기계발 강박증을 사오정 세대만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젊은 회사원 ‘환자’들도 많다. 지난해 한 은행에 입사한 서모씨(28)는 미국 MBA(경영대학원)에 가기 위해 공부 중이다. 서씨는 “기회만 닿는다면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고 싶다”고 말했다. 은행이 선호 직장인 점을 감안하면 서씨 역시 강박증 증세가 없다고 볼 수 없다.

한국 IBM 입사 3년차인 문진주씨(26)는 매주 토요일이면 영국식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영국문화원에서 회화수업을 듣는다. 일요일엔 회사 재즈보컬 동호회에서 3시간씩 노래 연습을 하고, 평일 저녁에는 요가학원에 다닌다. 지난 겨울 휴가 때엔 태국 푸껫에서 스쿠버다이빙을 배워 자격증을 획득했다. 문씨는 “직장 퇴직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가급적 많은 것을 배워 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인크루트가 직장인 11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발적’으로 자기계발을 하는 직장인이 95.5%에 달했다. 사회가 계발을 강요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생존을 위해 ‘자발적’으로 배우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2004년(59.8%)과 비교해 자기계발 중인 직장인(73.8%)은 14%나 증가했다.

〈김준일·임현주기자 anti@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 경향신문 & 미디어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if(document.getElementById("news_content") && txtSize){document.getElementById("news_content").style.fontSize=txtSize;} if( document.getElementById("status_info") ) { document.getElementById("status_info").innerHTML='

<\/a><\/a><\/div>'; }

[ 기사제공 ]  경향신문   |   경향신문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