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스
2002년 5월 8일 (수) / 제 1 회
#1. 진해 앞바다
4월의 햇살을 수줍게 머금은 채 눈부시게 출렁이고 있는 바다.
소도시를 껴안고 있는 바다의 품이 아늑해 뵌다.
바다를 배경으로 해군사관 생도들의 훈련이 한창이고, 그 뒤로 해안에 정박중인 거북선 한 척이 도드라져 보인다. 진해다.
#2. 진해 중앙고등학교(남고) 운동장
1,2학년 체육 수업중인 운동장. 달리고 구르는 남학생들의 함성이 시원하다.
풋풋하고 생명력 넘치는 그 풍경 속으로 불쑥 초췌한 최장수의 모습(작업 잠바 차림)이 끼어든다. 반쯤 넋이 나간 눈으로 어느 교실 창문 하나를 응시하고 있는 최장수, 뭔가 심상치가 않다.
그 교실 창으로 영어지문을 낭독하는 교사의 걸쭉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지독한 경상 도식 영어억양에다 알아듣기 힘들 정도의 영어발음이다. 과장돼도 좋으니까 코믹하게!
#3. 교실복도
As the hot air carrying water with it pushes up into the freezing air, the water freezes into drops of ice. Then they fall down into warmer air
3-3반 팻말. 교실 안에선 교사의 못말리는(?) 경상도버전 영어지문 낭독이 마침내 대 단원의 막을 내리고...
교 사 : (E) 요문제 요거는 98년도, 쌔리 바로 마 작년도 수능에 출제된 문제다. 사정없이 별 시개(세 개) 치라!
최장수, 교실 창문 너머로 학생들 하나 하나의 얼굴을 확인하며 아들을 찾고있다.
교 사 : (E, 이어지는) 지금부터 증학키 2분, 볼펜 뽀사지게 증답을 찾는다! 된나? 자아 서탔뜨(start)!
학생들 일제히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아들 찾기가 쉽지 않은 최장수. 그 눈이 더욱 절 실해져서 학생들 속을 애틋하게 헤맨다.
#4. 교실 안
교사,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교 사 : (발견하고 쥐어박으며) 별 시개 별 시개 문디 자슥아!
학생1, 기출문제집의 해당 지문에 하나였던 별을 세 개로 늘여 중요도를 체크하는데,
교 사 : (다시 쥐어박으며) 빨간 별 빨간 별!
학생1, 재빨리 빨간 볼펜으로 별 세 개를 그려넣는다.
교사, 돌아다니다가 꾸벅꾸벅 조는 학생2의 뒤통수를 세게 내리쳐 책상에 박는다.
교 사 : (학생2의 머리를 끌어올려 헤드락 자세로) 증신상태 봐라 증신상태!
학 생2 : (비명) 으-악! 샘요! 악- 샘요! 자,잘못 했심니다! 안잡니더! 죽어도 안잡니더!
교 사 : 모두 단디 들어라! (목을 더 힘껏 조르며) 내는 공부 몬하는 건 용서해도 금쪽같 은 내 시간에 딴짓꺼리 허는 요런 싸가지 읎는 자-, (뭔가 발견하고 잔뜩 사나워 져서 이를 악물고) 최.관.우!
학생들의 시선 일제히 한곳으로.
이어폰을 통해 흐르는 락음악에 몸을 맡긴 채 혼자 신이 나 과격한 헤드뱅잉을 하고 있 는 관우. 책상 위엔 책 대신 요란하게 물이 빠진 청바지가 여러 벌 올려져 있고, 관우 는 리듬을 타며 그 청바지를 군데군데 폼나게 정성을 다해 찢고있는 중이다.
교 사 : (헤드락 걸었던 학생2의 머리통을 확 내던지며 포효하는) 최-관-우우-!
창문 밖의 최장수, 익숙한 이름에 놀란 시선을 교실 안으로 던진다. 아들이다!
관우의 짝이 얼른 이어폰을 빼주는데,
관 우 : 왜 그래 임마?
관우짝 : (입모양으로) 독사!
관 우 : 독사가 왜 임- (보는데 독오른 독사다!) ... ...
관우, 황급히 청바지와 지저분한 실오라기들로 엉망인 책상을 정리하는데, 되려 가위가 떨어지고 칼이 떨어지고 실패가 떨어지고... 마지막으로 주먹만한 돌덩이(청바지 문지 르는 데 사용했던) 하나가 교사의 발등을 쿡 찧으며 슬로우 비디오로 떨어진다.
학생들 숨죽여 웃는다. 학생1과 학생2는 하이파이브까지!
관 우 : (설상가상에 청천벽력, 돌덩이와 교사의 얼굴을 차례로 보며 안절부절)
발등의 통증을 이 악물고 참으며 부들부들 관우를 쏘아보는 교사.
관 우 : (슬슬 눈치를 보며 슬며시 발등의 돌덩이를 치워주고 일어서며)이게 왜 하필 거 길. 고,공연이 있어서, 낼이 공연이거든요, 예. (생각나서) 잠시만요! (허둥지둥 가방을 뒤져 뭔가를 찾는다)
찾는 게 없는지 잡히는 대로 가방 안의 소지품들을 꺼내 놓는데, 보기에도 민망한 에로 영화 비디오테이프(코믹한 제목들로!)도 튀어나온다.
관 우 : (드디어 찾은 듯) 여깄다! (공연포스터를 건네며) 낼공연에 선생님도 오세요. 요 건 특별히 선생님한테만 드리는 (힘주어 강조) 50% 할인티켓!
교 사 : (독오른 손으로 사납게 뺨을 날린다)
관 우 : (휘청한다)
교 사 : 이 자슥이 번번히... 쓰레기같은 새끼! 고3이란 새끼가 허구헌날! 대갈통에 똥물 만 가득 찬 새끼!
관 우 : (맞은 뺨 두손으로 감싼 채 쏘아보며) 말씀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교 사 : 이 자식이 엇따대고, 야 이 새끼야 니가 지금 두눈 시뻘겋게 치뜨고 째리보문 우 짤긴데? 그 눈깔 퍼뜩 제자리로 몬갔다놓나?
관 우 : (그대로 매섭게 쏘아본다)
교 사 : 이 자슥이 그래도 (또 뺨을 날리려고 손을 드는데)
관 우 : (그 손을 홱 낚아채서 힘주어 잡는다, 노려보는)
교 사 : (당황, 노여워서 부들부들) 최,최관우 니, 이손, 이손 퍼,퍼뜩 몬놓나? 어?
관 우 : (팽팽하게 노려보고 씩씩거리며 한다는 말이) 그럼 이번엔 왼쪽 뺨을 날린다고 약 속해 주십시오! 맞은 데 또 맞으면 얼마나 아픈줄 아십니까? 낼 공연도 있는데 멍 이라도 들면, 이손 놔드릴테니까 먼저 약속부터 하세요! (절실하게) 이번엔 왼쪽 뺨입니다아? 예?
#5. 교실 밖 복도
최장수, 아들의 모습에 기운이 쫘악 빠진다.
최장수 : (무겁게 눈을 감는다, 뭔가 많이 힘든 듯)
#6. 서울 제일고교
조용한 교정 ins.
#7. 제일고교(남녀공학)의 교무실
교무회의 중.
교 장 : (훈시중인, 노여운) 8개 고등학교 가운데 7등 했어요! 7등! 도대체가 이게 말이 나 되는 등숩니까?
심각한 표정의 교사들, 죄인처럼 얼굴을 들지 못하고 교장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 그 모 습들 위로,
교 장 : (off) 대체 고3들 학습지도를 어떻게 하고 있길래 대 제일고교가 하루아침에 이런 수모를 당하는 겁니까? 아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들만 꾹 다물고들 계시지말고 말 씀 좀 해보세요! 학년부장 선생님!
학 년 : (면목 없어서 고개를 푹 숙인다)
교 장 : (교사들을 매섭게 둘러보며) 영어과 부장선생님!
영어과 : (몸둘 바 모르고 고개를 돌리는데, 뭔가 발견하고 휘동그레지다가 이내 걱정스런 시선이 된다)
그 시선 따라가 보면 젊은 여교사가 꾸벅꾸벅 졸고 있다. 앞으로 쏠려 얼굴을 덮은 머 리카락 탓에 아직 얼굴은 확인이 안되고, 좌우상하로 심하게 출렁이는 머리가 우스꽝스 러우면서도 위태롭다.
영어과 부장교사, 교장의 눈을 피해 몰래 깨운다.
영어과 : 김선생! 김선생!
여교사, 정신없이 졸고 있다.
영어과 : (의자를 당겨앉아 팔을 잡고 흔든다) 일어나 김선생! 김선생!
그 바람에 졸던 여교사, 이마를 책상에 쿵 소리가 날 정도로 심하게 처박는다.
채 원 : (박은 채 단발마) 아야!
교장을 위시한 교사들 일제히 채원을 쳐다본다.
교 장 : (노여운) 김채원 선생님!
채 원 : (이마 매만지며 아직 상황 파악 못하고 찡그린 얼굴을 들며) 네. (아파서) 아후 - 왜 그러시는데요? (하는데 매서운 표정의 교장이다!) 교,교장 선... (구원을 바라 듯 동료교사들을 쳐다본다)
동료교사들의 걱정어린 시선. 일어서라는 눈짓.
채 원 : (황급히 입가의 침을 닦고 머리를 단정히 하며 벌떡 일어나 교장을 향해 환한 미 소로) 부르셨습니까 교장선생님!
교 장 : (홱 쏘아보며) 회의 끝나고 교장실로 좀 오세욧!
채 원 : (이크!)
(E) 소음에 가까운 드럼 연주.
#8. 제일고교 밴드부 연습실
즐비한 악기들 속에 드럼 앞에 앉은 채원, 막무가내로 양손을 휘두르며 라이드심벌을 두드리고 크래쉬심벌을 치고 있다. 악기 연주가 아니라 완전히 스트레스 해소용이다.
여학생 : (OFF) 차라리 권투를 배우세요! 드럼이 무슨 샌드백도 아니고.
채 원 :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권투? 그러네 진짜. 때리는 맛은 그게 더 있겠다!
여학생 : (하교차림으로 다가오며) 오늘은 또 누군데요? 가가멜이요 아지라엘이요?
채 원 : (흥분해서) 가가, (하다가) 교장선생님.
여학생 : 왜요? (훑어보며) 오늘은 복장불량도 아니구 지난주에 걸린 염색머린 그저께 푸셨 구...
채 원 : 졸다가 걸렸어 회의 때. 아휴 별일두 아닌 거 가지구 졸린 데 조는 게 사람이지, 선생은 뭐 사람 아니니?
여학생 : 내가 우리 선생님땜에 못살아! 또 또 인터넷 고스톱, 또 밤샜죠?
채 원 : (계면쩍은) 아니 나두 한시간만 할라구 그랬지이. 근데 피박에 광박 폭탄까지 썼 다니까? 너같으면 잠이 오냐?
여학생 : 후우. 제가 몇 번을 말했어요? 선생님은 제발 그 고스톱을 끊어야 참선생님으루 거듭날 수 있다! 고스톱 끊기가 그렇게 힘들어요?
채 원 : 소영아 우리, 수업, 수업하자? 응? 어제 배운 거 복습부터 할까? (스틱 잡고 자세 를 잡는데)
채원의 핸드폰이 울린다.
채 원 : (받고) 여보세요? (사이, 귀가 따가운 듯 핸드폰을 뗐다가 놀라서) 뭐어 진해? 지 금? 암튼 내가 우리 엄마땜에 못살아! (여학생 흉내내며) 엄만 제발 그 건망증, 덜렁증부터 치룔해야 참경영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채원, 어이 없어하며 웃고있는 여학생을 향해 귀엽게 윙크한다. 해맑은 모습이다.
#9. 진해 블루진 공장 안
윤미희, 통화하며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더러운 것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몹시 우아한 구두발로, 그리고 연신 옷매무새와 머리매무새를 다져가면서...
화려한 윤미희의 의상이 기계가 멎은 부도 직전의 어수선한 공장풍경과 대조적이다.
그 뒤를 비서인 민주가 지시사항을 받아적으며 따르고 있다.
윤미희 : (통화중) 공장 인수하는데 당연히 사장인 내가 와야지 기획이사가 여길 왜 와? (사이) 어머 내가 왜 못해? 서류에 윤미희, 우아하게 싸인만 하면 되는데. (사이) 얘는, 그 서류를 깜빡하구 왔으니까 지금 너보구 갖구 내려오라는 거 아냐. 넌 뭐 중요도 따져가면서 깜빡하니?
민 주 : (키득키득 웃다가 뭔가 발견하고 놀라서) 사,사장님!
윤미희 : 빨랑 오기나 해. 끊어. (끊고) 왜 서비서? (시선을 쫓아 보면)
'비열한 기업 한강어패럴은 물러나라!', '블루진 인수 결사반대' 등등의 살벌한 피켓을 든 스무여 명의 공장사람들이 시위대를 만들어 다가오고 있다. 모두 비장한 표정들.
윤미희 : (긴장) 왜,왜들 이,이러세요?
시위대 윤미희를 압박하며 다가온다.
윤미희 : (공포) 서비서 어,얼른 기,기획이사한테 연락해. 이럴 땐 어떡해야 되는지 자세히 좀 물어봐.
민 주 : 네 사장님.
윤미희 : 여러분! 여러부운! 진정들 하구 우리 대화, 그래요 대화로 풀어요오!
시위대들 아랑곳하지 않은 채 윤미희 앞으로 바싹 다가오고, 윤미희 밀려서 계속 뒷걸 음질 치는데, 윤미희의 바로 뒤에는 장애물이 있다.
공장장 : (장애물 발견하고 그 장애물 응시하며) 보쇼, 내 미리 경고허는데 거 조심하는 기 좋을 기요!
윤미희 : (모르고 계속 뒷걸음질) 다,당신, 지금 나한테 혀,협박하는 거야? 뭘 조심해 뭘? 내가 그따위 협박에나 넘어갈 만만한 사람처럼 보여- (동시에 장애물과 충돌해 쿵 하고 벌러덩 넘어진다) 캭!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나자빠져 있는 윤미희. 좀 전의 비장함은 사라지고 박장대소하는 시위대들.
#10. 관우의 집 전경
아름다운 저택이다.
만취한 최장수, 대문을 들어서다 문득 '최장수'라고 적힌 문패를 보고, 떼어내 바닥에 내팽개친다.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최장수의 문패.
몸을 가누지 못하고 흔들흔들 하면서 충혈된 눈으로 땅바닥에 처박힌 자신의 이름을 멀 건히 바라보고 있는 최장수.
(E) 관우 패거리들이 서로의 악기를 맞춰보며 연습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11. 관우의 집 지하실
'제1회 블루스카이 정기공연' 포스터(전 멤버의 사진이 하단에 인쇄된)로 도배된 벽. 한켠엔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 가정용품들과 운동기구들로 어수선한 지하실 한가운데, 빨강, 노랑, 초록, 보라로 염색한 펑키 스타일의 멤버들이 각자의 악기 앞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관우, 자신이 만든 청바지를 각 멤버들에게 던져준다.
관 우 : 어이 민수! (던지고) 이건 환이 꺼! (던지고) 그리고 이건 (던지며) 야 살 좀 빼 자식아! 락의 정신이 뭐냐? 고독과 반항! 도대체 그 실루엣으로 고독과 반항을 어 떻게 표현할라구, 살 빼! 어?
민 수 : (청바지 보며 감탄) 야아! 관우 니 마 쌔리 음악 때리치워뿌리고 느거 아버지 소 원대로 청바지 장사나 해라. 어짜피 느거아부지 죽고나문 느그공장 니꺼 된다 아 이가.
관 우 : 미쳤냐? 그 고생을 내가 하게! 난 울아버지 공장 물려받으면 그날로 확 다 팔아서 바로 영국으로 뜬다! 락하면 영국 아니냐?
뚱 보 : 느그아부지 공장, 느그아부지 인생이고 분신이라매. 아부지분신을 그래 막 팔아도 되나? 그것도 락정신은 아닌데.
관 우 : 아부지 분신이지 내 분신이냐? 아버지인생은 아버지인생, 내인생은 내인생! 야, 우리공장 한 십년쯤 후에 싸악 팔아치우면 나 하나 평생 먹고 놀 정도론 떨어지겠 지? 안그냐 명환아? (고개 돌리는데 발견하고 움찔) 아버..지...?
문앞에 만취상태의 최장수, 비틀비틀 몸을 가누지 못하는데도 눈만큼은 살아서 아들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손엔 소주병이...
멤버들 벌떡 일어나고 인사하는데,
최장수, 무시하고 밴드 연습실로 바뀐 지하실을 훑다가 도배된 포스터에 시선이 멈춘 다. 참을 수 없는 뭔가가 확 치밀어 오른다.
최장수 : (포스터 노려보며) 대학은, 안갈끼가?
관 우 : ... ..대학 안가고도 성공할 수 있어요 아버지! 아버지도 대학은커녕 고등학 교도 안나오고 턱하니 성공했잖아요! 아버지처럼 저두요 대학같은 거, (하는데)
최장수, 소주병을 벽면의 포스터로 날린다. 와장창 깨져서 떨어지는 파편들.
관 우 : (놀라서) 아버지? (하는데)
최장수, 쌓였던 울분이 폭발, 짐승같은 소리를 지르며 야구방망이를 들고 악기들을 제 부수기 시작한다.
최장수 : (정신나간 사람처럼 부수며) 끝났다! 다 끝났다! 그러니까 니는 대학 가란 말이다 대학! 남들한테 안짓밟힐라문 배우고 또 배우란 말이다! 이따위 것이 다 뭐꼬? 이 따위 것이 다... 대학 가는 기다! 잘난 놈들한테 안당할라문 니는 무조건 배우는 기다!
관 우 : (놀라서 멍하니 있다가 만류하는) 도대체 왜 이래요 왜? 악긴 안돼요! 악긴 안돼 요 아부지!
최장수 : (확 밀쳐버리는)
관우, 나자빠진다.
사나운 기세로 악기를 사정없이 깨부수고 짓밟는 최장수.
통증을 느끼며 몸을 일으킨 관우, 광기서린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도 하고싶지도 않다. 자신의 키보드를 부수려는 아버지를 보고,
관 우 : (순간 달려들며) 악기, 내 악긴 건드리지 말란 말이야! (악기로부터 아버지를 거 칠게 떼어내고 확 밀친다)
심하게 휘청하는 최장수, 가구 모서리에 이마를 박고 나자빠진다.
멤버들 화들짝 놀라 일제히 관우를 쳐다보고,
관 우 : (씩씩거리며 아버지를 외면하고 섰다) 내 인생이야! 한번 뿐인 내인생이란 말이 야! 아무리 아버지라도 이런 식의 간섭, 난 필요없어! 술주정은 딴데 가서 해! 너 무 추해서 더는 못봐주겠으니까!
#12. 관우의 집 거실
거실 한 벽을 차지하고 있는 가족사진.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소파에 멍하니 앉아 사진을 쳐다보고 있는 최장수.
오영숙과 장비, 윤희와 관우를 차례로 쳐다보는 최장수. 그 눈이 슬프다.
그때 쇼핑백을 가득 든 오영숙 들어선다.
오영숙 : 아이구 낼은 해가 서쪽에서 뜬대? 이 시간에 당신이 웬일이야? (쇼핑백들 올려놓 으며) 여보, 우리 부산으루 이사가자. 잘난 백화점 쇼핑하러 번번히 부산까지, 알 아보니까 올 4월에 입주 예정인 아파트두 많더라. (옆에 앉으며) 가자 응? 여긴 쇼핑하기, (쳐다보고 놀라서) 여보? 왜 이래 당신? 어쩌다 이런 거야?
최장수 : (시선 그대로 가족사진을 향한 채) ... ...
#13. 관우의 집 지하실
부서지고 깨지고 넘어진 악기들로 아수라장이 된 지하실.
공연이 좌절된 멤버들 한숨만 푹푹 내쉬고 앉아있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삭히느라 관우는 어쩔줄 몰라하고 있다.
뚱 보 : 느그아부지 와저라노? 똑 정신나간 사람맨치로.
민 수 : (뚱보에게 눈치 준다, 관우의 눈치를 살피는)
관 우 :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 벌떡 일어나고 오기와 독기로) 가자!
민 수 : 어데를?
관 우 : 무슨 수를 써서든 낼 공연, 한다! (이 악물고) 누구 보란듯이 하고야 말거다! (휑 하니 나간다)
#15. 김해공항 - 렌트카 안
빨간 선루프(또는 오픈카) 스포츠카(렌트카) 앞의 민주, 연신 출입문을 쳐다본다.
민 주 : (발견하고 손을 흔들며) 김채원 여기야!
단촐한 여행차림의 채원, 역시 발견하고 미소로 다가온다.
채 원 : (빨간 스포츠카 보고 휘동그레져서) 뭐야 이건?
민 주 : 뭐긴 뭐야 우리 사장님 취향이지.
채 원 : 우리엄마 취향 이거 아냐!
민 주 : (운전석으로 가며) 취향이 바뀌셨대! 아니 30년 동안 교수님한테 뺏긴 당신 취향 을 이젠 되찾으시겠대! (차에 오른다)
채 원 : (차를 한번 다시 훑고서 타며) 정말 우리엄마가 이찰 렌트하랬니?
민 주 : (안전벨트를 매며) 응! 니네엄마 오늘 의상 보면 너 더 쇼클걸? 서륜?
채 원 : (가방에서 봉투 꺼내서) 여기.
민 주 : (시동 걸며) 니가 갖구 있어.
빨간 스포츠카, 날쌔게 빠져나가고, 채원 갸웃거리며 차안을 둘러본다.
#16. 부산-진해간 도로
frin 되는 관우의 트럭. 빌린 악기들 실려있고,
“우리 것보다 훠얼 낫네!”, “느거들 진짜 조심해야 된데이! 쬐께라도 기스나문 우린 마 그날로 죽음이다!” 등 떠들면서 악기 살펴보고 있다.
관우는 조수석에 앉아 흐뭇한.
#17. 을숙도
을숙도의 아름다운 풍경, 힘차게 비상하는 철새 무리들...
채 원 : (풍경에 감탄) 야아~ 너무 감동적이지 않니!
민 주 : (담배 피우며) 너한테 안감동적인 게 어딨어? 이 세상 모든 게 감동이지.
채 원 : 저 수면 위루 따뜻하게 부서지는 햇살!
민 주 : (O.L) 주근깨, 기미, 피부노화의 원흉이야.
채 원 : 건강한 생명력을 배우게 하는 강물!
민 주 : (O.L) 안은 썩어 있을 걸.
채 원 : 서로 나누며 조화롭게 공생하는 물고기와 새들!
민 주 : (O.L) 너 황조롱이가 들쥐 잡아먹는 장면 못봤지? 야아 그거 정말 피 튀긴다?
채 원 : 야 서민주! 너는 애가,
민 주 : 그러는 넌? 도랑에 핀 들꽃만 봐도 감동 먹는 얘가 어째서 그렇게 은석씨한텐 냉 정하니?
채 원 : 내가 뭐?
민 주 : 넌 진짜 아무 느낌두 없어?
채 원 : 오빠라니까. 오빠두 날 그렇게 생각하구.
민 주 : 오빠 좋아하네! 세상에 어떤 오빠가 지여동생을 그런 사랑스런 눈으로 보냐?
채 원 : 은석 오빤 내가 잘 알아. 나한테 다른 맘 있었으면 벌써 얘기했을 거야.
민 주 : 혼기 꽉찬 은석씨 다른 여잔 쳐다두 안보는 거, 그럼 그건 뭐냐?. 여잔 너만 만나 구 너만 보잖아?
채 원 : (정말 그런가? 생각하는 얼굴이 되고)
#18. 을숙도 부근 부산-진해 간 도로
달리는 관우의 트럭
그때, 채원의 스포츠카가 쌩-하고 트럭을 앞질러 간다.
멤버들 빨간 스포츠카에 ”우와 쥑이네!“ 탄성을 지르고, 관우도 유심히 쳐다본다.
#19. 부산-진해 간 도로, 스포츠카, 트럭
채원 창문을 열고 바람 음미하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채 원 : 야 저거(선루프 창) 열리지?
민 주 : 열리겠지.
채 원 : 열어봐. 얼른?
민 주 : (연다)
채원, 일어나고 선루프 창으로 상체를 내민다. 바람을 맞는 채원.
저만치 뒤에 관우의 트럭이 달려오고 있다.
트럭 안...
운전사 : 저 가스나 저거 또라이 아이가?
관 우 : (쳐다보면)
채원, 두 팔을 번쩍 들고 상체를 활처럼 휘어서 바람을 음미하고 있다. 그러나 쭉뻗은 팔 한손엔 서류봉투가 들려져있고 파닥이며 날리는 서류봉투 입구가 왠지 위험스럽게 보인다. 채원, 이제 팔을 흔들며 환호까지 내지른다. 위태위태 흔들리는 봉투.
어느 순간, 봉투에서 서류들이 날리기 시작하고 공중을 날던 서류들 뒤따라오던 트럭의 앞유리창에 다다닥 붙는다. 당황한 트럭,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악셀레이터를 밟아 위험스럽게 질주하다가 스포츠카 옆을 지나쳐 도로 옆에 처박힌다. 비명을 지르고 나뒹구는 멤버들, 위험스럽게 앞으로 처박히는 관우.
채 원 : (홱 뒤돌아보면)
자신의 차 뒤 길가에 처박혀 있는 트럭, 쓰러져있는 사람들, 꼼짝도 하지 않고 처박힌 운전석과 조수석의 사람.
채 원 : (깜짝 놀라서 잠시) ... ... (문득 트럭 앞창을 가린 서류들 발견하고 휘동그레진 시선을 제손으로 옮기면)
채원의 손에는 바람에 몸이 상한 빈 서류봉투만 너덜너덜 들려져있다.
채 원 : (사태파악하고 얼이 빠진다)
차에서 민주가 내린다.
민 주 : (당황) 오 마이 갓! 대체 이게...! 야 김채원! (하는데)
채원, 스르르 차안으로 주저않고 기절해버린다.
민 주 : (창문을 두드리며) 채원아! 채원아!
의식을 잃고 널부러진 채원.
역시 의식을 잃고 트럭 콘솔박스에 처박혀 있는 관우.
#20. 검도장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이 검도 대련중이다. 고요 속의 숨막히는 접전.
카메라가 그중 한사람의 동선을 계속 따라다닌다. 기(氣)가 느껴질 정도로 절제있고 쩌 렁쩌렁한 기합소리로 맹공을 퍼붓는 남자의 눈빛이 호면 틈 사이로 예사롭지가 않다. 그 검도장 일각...
세련되고 고급스런 차림의 윤희, 손목시계에서 남자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노려본다. 그 옆에는 평범한 차림의 미정이 연신 시간을 확인하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다.
미 정 : 기다리라구 하구선 벌써 저러구 한시간째야. 교수님이 인턴사원 좀 부탁했다구 벌 써부터 우릴 자기네 회사 직원쯤으루 아는 거야 뭐야?
윤 희 : (자존심 상하고 치밀어 오르는, 그대로 남자를 쏘아보며) 그거(자료와 여러 개의 포트폴리오) 줘봐.
미 정 : (건네며) 이건 왜?
윤희, 자료들을 안고 대련장 한가운데를 향해 가파르게 걸어나간다.
사람들 놀라고, 웅성웅성...
윤희, 검을 맞대고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두 사람 사이를 기세 좋게 끼어든다.
윤 희 : (예의 그 남자를 응시하며) 이건 교수님이 내일 특강에 참조하시라는 자료구요, (가슴팍에 떠안긴다), 이건 저희과 우수 포트폴리오예요. 요청하셨다면서요? (떠 안긴다)
남 자 : 무슨 짓이야? 예의두 몰라?
윤 희 : 난 검도 별루예요. 지루해서요. 그리구 대화할 땐 그거 벗구 하는 게 예의란 거 아닌가요?
남자, 호면을 천천히 벗는다. 온통 땀에 젖은 얼굴, 은석이다!
은 석 : 이분(대련 상대)한테 사과해.
윤 희 : 사관 그쪽이 해야죠. 사람을 한시간씩이나 기다리게 한 게 누군데.
은 석 : 약속없이 무턱대고 들이닥친 건 니들이야. 난 내시간 누구한테도 방해받지 않아.
윤 희 : 초면에 싹뚝싹뚝 반말, 것두 예읜 아니죠? 알았아요. 그쪽 시간 방해하고 싶은 생 각 눈꼽만큼도 없으니까 싸움, 계속 하세요! 그럼! (휑하니 간다)
은 석 : (불쾌한 시선 잠시 줬다가 거두고, 손짓으로 기사를 부른다)
은석, 자료를 넘기고 다시 호면을 쓰고 대련자세 취한다. 한점 흐뜨러짐이 없다.
#21. 검도장 밖, 주차장
파르르 나오는 윤희, 뒤따르는 미정.
윤 희 : (건물 올려다보며) 재수 없어!
미 정 : 성질 좀 죽이지. 요즘같은 취업난에 인턴사원 하다가 턱하니 한강어패럴에 취직만 되면 그게 어딘데?
윤 희 : 안 가! 저딴 사람 밑에서 난 죽어두 일 못해! (운전석에 올라탄다)
(벨트 매며) 정 취직 못하면 우리아빠 회사에 하지 뭐. 너두 데려가줘?
미 정 : 정말? 진짜 그래두 돼?
윤 희 : 알았어. 아빠한테 말해볼게!
미 정 : 고마워! 고마워 윤희야!
윤 희 : (도도한 미소) 백화점이나 가자. 잡지 보구 찍어둔 시계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두 들어왔나 모르겠네. (경쾌하게 차를 출발시킨다)
#22. 병원 전경
#23. 응급실
근심스럽게 병상을 지키고 있는 민주. 누워있는 채원의 몸만 보이게.
민 주 : (긴 한숨) 후우...
그때 요란하게 들려오는 코고는 소리!
민 주 : (?? 둘러본다)
응급실의 환자들 심각한 모습으로, 때론 탈진한 모습으로 누워있다.
민주, 요란한 코고는 소리의 주인공을 찾아헤매는데. 어느 쇠약한 할머니 환자가 기운 없는 턱짓으로 민주쪽을 가리킨다.
민 주 : (턱짓의 방향대로 시선을 천천히 옮기면)
링거 투약중인 의식을 잃은(?) 채원, 코를 골고 있다.
민 주 : 어머 어머 어머! 오 마이 갓!
채 원 : (세상 모르고 코를 고는)
민 주 : (가차없이 때리며 깨우는) 일어나 일어나 김채원! 남사스러워서 증말!
채 원 : (부스스 눈을 뜨고 휘 둘러보고는 벌떡 일어나 앉아) 내가 왜 여기 있어?
민 주 : 너는 무슨 애가 사고 내놓구 코까지 드르릉 드르릉. 잠이 오니? 잠이 와?
채 원 : (그제사 생각나서) 마,맞다! 사고! 그 사람들 어떻게 됐어? 많이, 많이 다쳤어?
민 주 : (근심) 후우...
채 원 : (두려운) 주,죽었니?
#24. 병 실
어느 병상, 붕대로 완전히 친친 감은 다리 하나가 공중에 들려져 있고, 카메라 상체쪽 으로 이동하면, 머리에도 붕대를 감은 뚱보다.
뚱 보 : 이꼴을 해갖꼬 연주를 우째 하노?
민 수 : (OFF) 그래도 니는 일마 손은 멀쩡하다 아이가? 우리 봐라 우리.
병상 앞의 네 멤버, 양팔을 모두 기브스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머리와 한쪽 팔을 기브 스한 친구, 목과 한쪽 팔을 기브스한 친구, 마지막으로 관우는 이마에 거즈를 붙이고 오른쪽 팔에만 기브스를 하고 있다. 형형색색의 염색머리와 흰 기브스가 떼지어 머리를 맞대고 모의를 하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명 환 : 어짜피 이래 된 거 보상이나 배 터지게 받자!
민 수 : 차 보이까 돈께나 있는 집 골빈 가스나 같던데, 우리 요구 안들어주고 촐싹 거리문 그 가스나 앞에서 바로 드러눕는 기다. 관우 니 생각은 우떤노?
관 우 : (아까부터 화난 얼굴이다)
명 환 : (다른 멤버들한테 눈치를 주는데)
관 우 : (벌떡 일어나며) 가자!
명 환 : 아파죽겠는데 어데?
관 우 : 어디긴 어디야? 재수없는 그 기집애한테지. 니들은 가자마자 바닥에 다 드러누워. 담판은 내가 지을게! 신체적 정신적 보상은 물론이고, 공연 취소에 따른 피해보 상,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흘린 땀값까지 다 받아낼 거야! 가자! (앞서나간다)
#25. 병원복도
이마에 거즈, 오른팔에 기브스한 관우, 두눈을 부릅뜨고 성큼성큼 걸어온다.
그 뒤를 각양각색의 염색머리에 다양한 부위를 기브스한 세명의 멤버가 열지어 황야의 무법자들처럼 뒤따르고, 마지막으로 뚱보가 목발을 짚고서 힘들게 뒤쫓아온다.
#26. 응급실
채원, 기대앉아 먹성좋게 빵을 우걱우걱 먹고 있고, 민주는 침대에 걸터앉아있다.
민 주 : 일단 트럭기사하군 합의가 됐구 문제는 남자애들인데...
채 원 : (걱정) 보상금 많이 내놓으라 그러면 어떡하지? (목이 막히는지 가슴을 두드리고)
민 주 : 꼴이 딱 시골 날라리들이던데 한몫 챙기려구 들겠지.
채 원 : 올라가서 확 드러누워 버릴까? 너두 눕구 나두 눕구. (하는데)
민 주 : 오 마이 갓!
채 원 : (보면)
기브스한 다섯 전사들 보무도 당당하게 응급실로 들어선다.
관 우 : 어디야?
명 환 : (가리키며) 저기.
관 우 : (쳐다보면)
채원의 얼굴은 민주에게 가려서 안보이고 민주만 보인다.
관 우 : (노려보며) 행동개시!
멤버들 네 명, 병상 가까이로 가서 일제히 바닥에 벌러덩 드러눕는다.
민 주 : 어머 어머 어머! (채원에게 소근) 어떡해? 얘들이 선수 쳤어!
채 원 : (당황, 겁나기도 하고, 소근) 날라리가 아니라 양아치들 아냐? 어떻게 좀 해봐?
민 주 : 지금 뭐하는 짓이예요?
관 우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우리가 정한 보상액은 일인당 천만원씩 합이 오천입니다! 우린 오천에서 한푼도 양보할 생각이 없으니까 알아서 하십시오!
누워있는 멤버들도 그 액수에 눈이 휘동그레진다.
민 주 : 네? 그게 지금 말이 되는 액수라구 생각하세요?
관 우 : 낼이 저희들 공연입니다. 장소대여비, 판매한 티켓 환불료, 기타 공연준비 금액만 해도 상당액이 될 뿐만 아니라, 내일 공연을 위해서 그동안 우리 멤버들이 불철주 야 흘린,(하는데)
채 원 : (관우의 시선에서, OFF) 저기요!
관 우 : (민주 너머로 시선을 주는데)
채원, 빵을 급하게 삼키며 빵봉지를 몰래 이불 속으로 감추곤 입가의 부스러기를 털고,
이제 관우의 시선에서 고개를 떨군 채 침대에서 내려온다.
채 원 : (공손한 자세로 천천히 꾸벅 사과의 절을 한다)
관 우 : (뭐야 또? 하는 표정으로 지켜보는데)
천천히 고개를 들고 관우를 응시하는 채원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거기다 얼핏 보이 는 고인 눈물까지!
관 우 : (입이 벌어지고 눈이 휘동그레지는, 두눈을 닦고 정신을 차리고 다시 쳐다본다)
채 원 : 정말 죄송합니다. 어쩌다가 제가 여러분들께 이런... (기어이 눈물 한방울이 또르 르)
관 우 :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 완전히 넋이 빠져서 침만 꿀꺽 삼키는)
그 모습 위로 (E) 관우의 심장 뛰는 소리! 점점 더 빠르고 크게!
채 원 : 보상..이요? 흑흑흑. 그럼요 당연히 보상해 드려야죠. 음악을 하신다구요?
관 우 : (넋이 빠진 채) 예,예.
채 원 : 흑흑흑. 세상에 내가 어쩌자구 이런 귀하신 분들을...흑흑흑. 내가..흑흑..내가 다쳤어야 되는 건데... (울면서 꾸벅꾸벅)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관 우 : 아,아뇨. 죄,죄송은요?
채 원 : (갑자기 휘청) 아!
관 우 : 왜, 왜 그러세요?
채 원 : 괜찮아요. 아마 정신적인 충격때문, (하다가 침대를 잡고 스르르 주저앉는다)
민 주 : (얘가 지금 무슨 쇼를 하는 거야? 일으켜 세우려는데)
관 우 : 비켜요! (달려들어 부축하며) 괜찮으세요? 저 여기 잡구 일어나세요.
관우, 채원을 부축해서 침대에 눕힌다.
관 우 : 의사 부를까요? (뛰쳐나가려는데)
채 원 : (황소같은 힘으로 관우의 팔을 확 잡는다) 자,잠시 안정만 취하면 된다구, 의사 선생님이 방금 다녀가셨어요.
관 우 : (그러냐고 끄덕끄덕하다가) 팔 좀...
채 원 : (그제서야 놓아준다)
관 우 : 힘이.. 좋으시네요.
채 원 : 네? 네에... 보상금 말인데요? (어느새 글썽글썽) 오천..이라구요? 정말 오천에서 한푼두 깎아줄 순 없는 건가요?
관 우 : 아,아뇨. 제가 애,액수를 잘못, 예 잘못 불렀어요. 오천이 아니라 오백, 오백입니 다! 아니 아니, 보상은 무슨! 그딴 거 필요없어요! 전 멀쩡합니다. 보세요?
멤버들 : (동시에 벌떡 일어나며) 야 일마?
관 우 : (한술 더 떠) 많이 놀라셨죠? 정신적 충격말군 어디 다친 덴 없습니까?
민주, 놀라서 채원을 보면 채원도 놀라서 쟤 왜 저래? 하는 눈짓을 보낸다.
#27. 병원건물 로비
네 멤버들 비장한 각오로 엘리베이터쪽을 연신 보며 채원을 기다리고 있다.
명 환 : 우리가 완전히 당한 기다. 이거는 말도 안된다.
관 우 : (아직 멍해서) 미안하다.
민 수 : 미안하문 일마, 그 가스나들 나오거든 똑바로 해라. 오천은 몰라도 오백은 받아내 야지.
뚱 보 : 하모. 트럭기사도 2백 받았는데.
명 환 : 야 나온다!
관 우 : (홱 고개돌려 쳐다본다)
민주와 채원, 가까이로 오고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출입문 쪽으로 걸어나간다.
명 환 : (관우 향해) 뭐하노?
관 우 : 어? 어. (심장이 떨려 손으로 가슴을 진정시키는데)
멤버들 일제히 관우를 끌어서 채원의 앞으로 민다.
채 원 : (?, 민주 쳐다보며 긴장) 또 무슨...
멤버들 : (강한 어조) 퍼뜩 얘기해라.
관 우 : 어어. (두눈 질끈 감았다 뜨고 결심한 듯 씩씩하게) 저기요?
채 원 : (바싹 긴장) 네.
관 우 : 병원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절을 한다)
채 원 : (??)
채 원 : 그,그럼 이제 가,가두 돼요?
관 우 : (멍한 채) 예!
채원, 민주 팔짱을 끼고 서둘러 나간다.
관우의 시선에서 채원 조금씩 멀어지고
관 우 : (뭔가 답답하고 터질 것 같은 마음에 그 뒷모습에 대고) 전 최관우라고 합니다! 채원,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간다.
관 우 : (시선 못떼고 뛰는 가슴으로)
#28. 병원뜰 , 스포츠카 안
민주와 채원, 안전벨트를 맨다.
민 주 : 김채원 너, 괜히 엄한 애들 고생시키지말구 선생 때려치우고 연극판에나 뛰어 들 어라!
채 원 : 내가 애들 다루는데는 이거잖냐? 날라리들이 더 순진하고 착하다 너?
민 주 : 걔 너한테 완전히 맛이, (하다가 백미러 보고 놀라서) 채원아!
채 원 : 왜? (백미러 보면)
관우, 열심히 뛰어온다. 다친 오른쪽 팔은 가슴으로 감싸고.
채 원 : 어머! 쟤가 왜 또 와? 뭐하니? 시동 안걸구. 튀어! 빨리 튀어! 쟤 분명히 딴소리 하러 오는 거야?
채원의 차 출발하려는 찰나, 관우가 차 트렁크를 상체로 잡으며 출발을 저지한다.
관 우 : (뒷유리를 치며) 잠깐만요! 잠깐만요!
뒷유리창을 사이로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절박한 관우와 바싹 긴장한 채원이 마주보고 있다.
관 우 : (유리창을 통해) 할 얘기가 있어요. 지금 꼭 해야 되는 얘기예요!
민 주 : 돈 때문에 그러는거 같지 않은데...
채 원 : 뭐해? 빨리 차 출발 안시키구? 얼른?
민 주 : (휑하니 차를 출발시킨다)
채원의 차, 관우의 품에서 미끄러져가고, 관우 뒤쫓아간다.
그러나 채원의 차는 휑하니 병원을 빠져나간다. 그제야 멈춰서는 관우.
관 우 :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오래 안타깝게 바라본다)
#29. 한강 어패럴 사옥 전경 (해질무렵)
#30. 은석의 사무실
'기획이사 이은석' 명패가 먼저 보인다.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부친 은석, 통화내용이 갑갑한지 넥타이도 느슨하게 조금 푼다.
은 석 : (짜증은 나나 예의를 차려서) 그럼 아직도 계약서에 인수 도장을 안찍으셨단 말씀 입니까?
윤미희 : (F) 그쪽 사장한테 내일 찍자구 했어. 기획이산 아무 걱정 안해두 돼.
은 석 : 그쪽 공장 직원들 동향은 어떻습니까? 시위대는 완전히 물러갔구요?
#31. 호텔 방, 사무실
윤미희 : 으응. 것두 기획이사가 시키는 대루 고대루 했어. 그쪽 공장장 불러다 당근을 줬더니, 아휴 당근이 뭐야 그만한 조건이면 꿀단지지. 그 공장장 완전히 우리 편이야. (불쑥) 채원아! 엄마 샤워하게 더운물 좀 받아줘! 거품 많이!.
은 석 : (채원이란 소리에 움찔) 채원이 지금 진해에 있습니까?
윤미희 : (F) 응. 계약서, 채원이가 갖구 왔잖아. 바꿔줄까?
은 석 : (순간 갈등하다가) 아뇨. 그럼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끊고)
은석의 시선, 자연스레 채원의 사진으로 향한다. 사진 속의 채원은 여고생, 은석은 대 학생, 다정한 오누이같은 모습이다!
은 석 : (채원 바라보며 아련한)
#32. 보석가게
은석, 신중하게 반지를 고르고 있다. 꽤 오래 고른 듯...
판매원 : 커플링 하시게요?
은 석 : 아뇨.
판매원 : 그럼...(은석을 훑고) 프로프즈 용인가요?
은 석 : (조금 멋쩍게 끄덕이는)
판매원 : (상품을 보이며) 그럼 이런 건 어떠세요?
은 석 : 너무 화려하네요.
판매원 : 화려하시다... 그럼 이건 어떠세요? 심플한게,
은 석 : (O.L) 너무 단조롭네요. 미안합니다. 제가 원하는 게 없군요. (짧게 목례하고 걸 어나가는)
은석, 특별한 걸 사주고 싶은데 반지 고르기가 쉽지 않다.
#33. 관우의 공연장
나름대로 공연장 꾸민.
기브스한 멤버들 기브스한 채로 각자의 악기 앞에 앉아, 혹은 서서 한숨만 푹푹...
관 우 : (온통 채원 생각뿐) 여기 사람은 아니구, 서울말 쓰는 걸 보면 서울 사람이겠지?
멤버들 무시하고, 부러진 손으로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 용을 쓴다.
관 우 : 분명히 군항제 보러왔을 거야! 낼 구석구석 샅샅이 찾아봐야겠어! 이 좁은 바닥에 서 그 여자 하나 못찾아내겠냐? 낼 열시까지 전부 우체국 앞으로 나와 알았지?
#34. 호텔방 (밤), 은석 방
잠들기 직전의 민주와 채원, 나란히 침대에 누워있다.
그때 채원의 핸드폰이 울리고...
채 원 : 여보세요? (사이) 오빠!
민 주 : (다가와서 들으려는 듯)
은 석 : 자는데 내가 깨운 거 아냐?
채 원 : (민주 밀어내며) 아냐. 근데 왜?
민 주 : 왜는 무슨? 보구 싶으니까 한거지. 암튼 산통 깨는 데는 뭐 있어.
체 원 : (발로 민주를 밀어낸다)
은 석 : 낼 몇시에 올라와?
채 원 : 저녁 7시 비행기.
은 석 : 공항에서 기다릴게. 내일 보자.
채 원 : 지하철 타면 금방인데 뭐할라구. 아후 나오지마.
은 석 :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내일 공항서 봐. 끊는다. (끊고)
채 원 : (가볍게 갸웃하면서 끊는다)
민 주 : 뭐라구 그러는데? 낼 만나재? 공항으루 나오겠대?
채 원 : (확 눕히며) 잠이나 자.
채원, 천장을 보고 반듯이 눕는다. 민주도 잠을 청하고...
채 원 : (무슨 생각을 하는지 피식 웃는다)
민 주 : (눈감은 채 졸린) 저봐. 기집애 저두 좋으면서 내숭은. (잠이 들고)
채 원 : (떠오르는)
플래시 백, 채원차 뒷유리창에 얼굴을 붙이고 절박하게 채원을 바라보던 관우의 모습!
채원, 입가에 가득 미소를 지으며 팔을 뻗어 스탠드 불을 끈다.
채 원 : 휴우. 돈 굳었다! 5천이 뭐야? 큰일날 뻔했네! (이불을 머리끝까지 당기고 잠이 든다) ... ..
#35. 관우의 집 거실
관우, 들어온다.
소파엔 최장수(이마엔 밴드) 가 앉아있다. 아들을 오래 기다린 듯...
두 사람의 시선, 공중에서 만난다.
관 우 : (싸늘하게 피하고 2층으로)
최장수 : (놀라서 쫓아오며) 팔이 와 이렇노?
관 우 : (삐딱) 상관할 거 없잖아요?
최장수 : 후우... 얘기 좀 하자.
관 우 : 할 얘기 없어요.
최장수 : 아부지가 있다. (한없이 슬픈) 니한테 오늘 꼭 해야될 얘기다.
관 우 : (휑하니 2층으로 올라가는데)
최장수 : 미안하다. 관우야. (눈가 젖어들고) 니한텐 참말로 미안하다.
관 우 : (뒤 안돌아본채 멈춰선다)
최장수 :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니는 이 아부질 용서해 도. 니는 우리집 장남 아이가. 이 아 부지가 제일로 믿는 장남 아이가.
관 우 : (내처 올라간다)
최장수 : ... ...
#36. 관우의 방
들어오는 관우, 아버지가 왠지 이상해서 닫던 문 너머로 잠시 눈길을 준다.
그러나 이내 대수롭지 않게 문을 닫는다.
침대로 가서 풀썩 눕는 관우, 천장을 올려다본다. 떠오르고...
플래쉬 백, 채원과의 첫대면 장면! 아름다운 채원의 눈물!
관우, 이리뒤척 저리뒤척, 채원 생각으로 미칠 것 같다.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묻고마 는 관우.
#37. 최장수의 서재겸 작업실
간단한 책장, 책장엔 주로 낚시 관련 책들...
작업대와 재봉틀, 각종 청바지들...
스탠드 불빛 아래 우두커니 책상에 앉아있는 최장수.
최장수 : ... ...
어느 순간, 최장수 느린 동작으로 서랍에서 편지봉투와 편지지를 꺼낸다.
순백의 종이에서 (F.O)
#38. 군항제가 열리고 있는 진해시
만개한 벚꽃, 북적이는 관광객들. 군악대 행진해가고 시 곳곳에선 특별한 이벤트가 한 창이다.
활기찬 진해 군항제의 볼거리 스케치.
그 장면 장면들 속에 관우와 네 명의 멤버들이 기브스한 불편한 몸으로 인파 속을 헤치 며 채원을 찾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러 행사장을 누비며 막무가내로 채원을 찾고있 는 다섯 전사들의 모습이 코믹하다!
#39. 군항제가 열리고 있는 진해시 일각
채원과 비슷한 뒷모습의 여자를 발견하고 반색하며 홱 돌려세우는 관우, 그러나 채원이 아니고...
관 우 : 미안합니다. 잘못 봤어요.
관우, 아무리 찾아도 채원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없어서 애가 탄다.
바로 그때 채원과 민주가 관우의 뒤쪽으로 행사를 구경하며 지나간다.
관우, 전혀 모른 채 다른 곳만 애타는 시선으로 살펴보다가 채원과 반대방향으로 찾아 나선다.
채 원 : (벚꽃 보며) 너무 이쁘다! 근데 진해에 특별히 벚꽃이 많은 이유가 뭐야? 여긴 도 시 전체가 벚꽃이잖아?
민 주 : 내가 아냐. (시계 보며) 난 이제 그만 들어가봐야 돼. 12시에 이쪽 사장하고 계약 서에 최종 도장 찍기루 했거든. (차 키 주며) 차 니가 써. 간다? (가고)
민주를 배웅한 채원, 사람들 속을 걸어들어 간다.
이것 저것을 유심히 구경하는 채원, 그러나 이내 북적이는 사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 리 치인다. 채원, 사람들 속을 빠져나온다.
#40. 주택가
벚꽃터널로 이루어진 주택가를 걷는 채원. 벚꽃도 감상하고 향기도 음미 해보고.
파킹해 놓은 스포츠카에 다다른 채원, 지나가는 행인을 향해,
채 원 : 해안으루 갈려면 어떻게 가야 돼요?
행인,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채 원 : 감사합니다. (차에 키를 꽂다가 문득 발견하고 어?)
벽면에 관우의 공연 포스터가 부착돼 있다!
채 원 : (유심히 본다)
#41. 공연장
채원, 들어선다. 텅빈 공연장.
채 원 :(웬지 미안해지고)
채원, 무대쪽으로 걸어간다. 이것저것 악기들을 만져보는 채원.
채 원 : 되게 미안하네...
채원, 공연 포스터의 관우 사진을 유심히 본다. 미소가 저절로 일고...
#42. 공연장 밖
너털너털 걸어오는 관우, 홧김에 캔깡통을 확 차버리고.
공연장 입구로 들어가려는데, 안에서 엉망진창의 드럼 연주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관 우 : (더 열받아서) 누구야 또 저건? 저걸 확 그냥! (달려들어간다)
#43. 공연장
관우 파르르해서 달려들어오는데,
관 우 : (세상에!)
채원, 모션은 LG카드 광고에 나오는 이영애같이, 그러나 연주실력은 듣기에도 민망한 괴소리를 내며 혼자 신이 나 무아지경으로 연주하고 있다.
관 우 : (입가에 미소가, 급기야는 찢어질 정도로 해서 바라보고 있다)
채원, 어느덧 대장정의 연주를 마치고 고개를 드는데,
채 원 : (세상에!)
당황한 채원, 황급히 일어나려다 뒤로 콰당하고 넘어지고 만다!
채 원 : (창피해 죽겠고)
어느새 달려온 관우, 손을 뻗어 내민다.
채 원 : (선뜻 잡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안잡으려니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고)
관 우 : (잔잔한 미소로 잡으라고 재촉하는)
채 원 : (그 손을 잡는다)
관 우 : (손을 이끌어 힘껏 일으켜 세운다)
순간, 관우의 힘에 이끌려 채원의 몸이 관우의 몸에 바싹 밀착되고, 두사람 모두 당황 한다. 몸을 뒤로 빼는 채원. 잡힌 손을 놓으려는데, 관우, 채원의 손을 놔주지 않는다.
채 원 : (놀라서 쳐다본다)
관 우 : (싱그러운 미소, 잡은 손을 흔들어 그대로 악수하며)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요. 난 최관웁니다. 그쪽은요?
채 원 : 네? 김..채원..인데요.
관 우 : 김채원... 정말 예쁜 이름이네요.
채 원 : 소,손은 좀...
관 우 : (못들은 척 그대로 잡고) 벚꽃놀이..오셨어요?
채 원 : 네, 뭐, 그런..셈이죠. 근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생각했던 것보다 운치두 없구 향기두 느낄 수가 없네요. (손을 빼려는데)
관 우 : (잡은 손을 이끌며) 가요.
채 원 : 네?
관 우 : 운치두 있구 향기두 느낄 수 있는 곳, 내가 안내해 줄게요. 가요?
채 원 : (잡혀서 끌려가는 손을 쳐다보며) 저기요? 저기, 저기요?
#44. 윤희의 오피스텔
처 놓은 얇은 커튼을 뚫고 햇살이 강하게 침대를 비춘다.
반라의 남녀. 고개를 돌리고 부스스 눈을 뜨는 여자는 윤희다.
윤희, 11시를 가리키는 벽시계 보고 깜짝 놀라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간다.
#45. 욕실
샤워를 하는 윤희.
#46. 오피스텔
윤희, 외출준비가 끝난 모습으로 화장대 앞으로 가 앉는다.
윤 희 : (향수를 뿌리며 거울을 통해) 일어나 할 말 있어!
남 자 : (일어나며) 일요일이야. 하루종일 같이 있자.
윤 희 : 특강 있다구 했잖아. 10시부턴데 왕창 늦었어. 옷 입어.
남 자 : (뒤에서 목을 껴안으며) 가지마.
윤 희 : 안돼.
남 자 : 이래두? (목을 두른 한손을 흔드는데)
반지 케이스다!
윤 희 : (관심을 보인다)
남 자 : (열어서 보인다)
윤 희 : (놀라고 반색)
남 자 : 잡지 보구 니가 찜한 거. 맞지?
윤 희 : (끄덕이는)
남 자 : 내가 끼워줄게.
윤 희 : (강한 어조) 아냐! 내가 낄게. (직접 낀다)
남 자 : 이태리에서 샀어.
윤 희 : 그럼 한국서보단 반값으루 샀겠네! 어쨌든 고마워.
남 자 : (떨떠름해져서) 응. 할 말이 뭐야?
윤 희 : ... ... 헤어져.
남 자 : 뭐?
윤 희 : 이윤 간단해. 니가 싫어졌어. 니가 싫은 이율 구체적으루 대라면 10가지 정돈 쉬 지않구 댈수 있어. 대?
남 자 : 너...?
윤 희 : (일어나 나가며) 반진, 이별의 선물루 받을게. 나두 너한테 이 정도 쯤은 했으니 까. 열쇤 화장대 위에 두구가. 안녕! (나간다)
#47. 강의실
'(주)한강어패럴 이은석 기획이사 특강' 안내 플래카드가 보이고...
강단의 은석, 진지하게 강의중이다.
의상 디자인학과의 학생들, 두 눈을 빛내며 경청하고 있다.
#48. 캠퍼스 - 주차장
윤희의 차, 질주한다.
주차장에 급하게 파킹되는 차.
차에서 내리는 윤희, 급하게 뛰어가는데,
윤희의 앞을 막아서는 요란한 관광나이트 홍보용 차!
윤 희 : (익숙한 일인 듯) 허! (돌아서 가는데)
달려온 봉균(촌스런 업소용 제복에 변강쇠라는 이름표까지 달고!), 윤희의 팔을 덥썩 잡는다.
봉 균 : 얘기 좀 허자.
윤 희 : (귀찮은) 일요일인데 오늘 수업 있는 줄은 또 어떻게 알았어?
봉 균 : 느그과 스케쥴, 니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윤 희 : 그럼 나 지금 왕창 늦었다는 것두 알겠네! (홱 뿌리치며) 이것 놔! 그리구 귀찮으 니까 제발 따라다니지 마. 한번만 더 이러면 악질 스토커루 경찰에 신고할 거야? (뛰어간다)
봉 균 : (그 등에 대고) 그라문 니가 그놈캉 먼저 헤어지란 말이다! 니가 몰라서 그카는 데 글마 진짜로 나쁜 놈이다! 천하의 바람둥이란 말이다! 윤희야 듣나? 윤희야 내말 들리나?
#49. 강의실 복도
윤희, 시계보며 급하게 달려온다. 강의실 쪽으로 간다.
#50. 강의실
은 석 : 그럼 강의는 이것으로 마치기로 하고, 인턴사원 지원설 나눠줄테니까 관심있는 사 람들은 지원해보세요.
은석, 앞으로 가서 맨앞의 학생에게 지원서 뭉치를 건네며,
은 석 : 수업 끝났으니까 먼저 나가도 괜찮아요. (교탁 앞으로 가는데)
문이 열리고 윤희가 들어선다. (*출입문이 앞문밖에 없는 강의실!)
은 석 : (굳어서 응시)
윤 희 : 흠 흠. 늦어서 죄송합니다!
은 석 : (무시하고 이내 관심없는 듯 시선 거둔다)
윤 희 : (자존심이 상하고, 또각또각 다가온다)
은 석 : (묵묵히 수업 자료들을 정리한다)
윤 희 : 출석.. 체크 좀 해주세요!
은 석 : (시선 안주고 하던 일 계속) 학생은 오늘 강의에 출석 안한 거루 알구 있는데?
윤 희 : 늦어 그렇지 강의실에 오긴 왔죠. 부탁드릴게요. 오늘 특강 안들으면 교수님이 무 조건 F라구 하셔서요. 사실 그쪽이야 제가 출석을 하든 안하든 상관두 없잖아요?
은 석 : 학생이 F를 받든 A를 받든 나한테 상관없기는 그것두 마찬가지야. (인턴사원 용지 를 건네며) 이거나 받아.
윤희, 받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세로로 찢는다. 그리고 세로로 찢은 종이 차곡히 모아 서 다시 건넨다.
윤 희 : 그쪽 꺼니까 그쪽이 버리세요.
은 석 : (그제야 유심히 쳐다본다)
윤 희 : (눈으로 도도한 미소)
은 석 : (천천히 찢어진 종이로 시선을 옮기는데)
은석의 시선에 윤희의 반지가 눈에 들어온다.
은 석 : (유심히 살피며) 이런 건 어디서 팔아?
윤 희 : (??)
은 석 : (바라보며) 반지말야.
윤 희 : (??)
은 석 : 똑같은 건 싫구 비슷한 걸 사구 싶은데.
윤 희 : 어떡하죠? 이건 세계적인 명품이예요. 한두푼 하는 게 아닌데?
은 석 : 어쨌든.
윤 희 :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하죠. 제가 반지를 골라줄 테니까 대신, 내가 오늘 출 석한 거루 해줘요.
은 석 : (끄덕)
윤 희 : (출석부를 펴서 내민다)
은 석 : 이름이...?
윤 희 : 최윤희.
은석, 많은 이름 중에 '최윤희'를 찾는다. 마침내 최윤희!
#51. 진해 내수면 연구소 내 연못(?)
연못을 빙 둘러 온통 벚나무 천지다. 인적이 드물어서 조용하고...
벚꽃 눈이 내리는 숲길을 채원이 앞서고 관우는 조금 거리를 두고 뒤따라 걷고 있다.
채 원 : (벚꽃을 만끽한다)
관 우 : (바라보는 것만으로 좋은)
채 원 : 여긴 정말 조용하네요.
관 우 : 내 비밀장소거든요.
채 원 : (돌아보며) 비밀장소?
관 우 : 난 일기를 노트에다 안쓰고 여기 와서 써요. 비밀일기는 더더욱. (연못 가까이로 내려가고) 일루 와 볼래요?
채 원 : (내려가고)
관 우 : 내 비밀일기 한번 들여다봐요.
채 원 : (미소로 연못을 들여다본다)
관 우 : 보여요? 내 비밀들이?
채 원 : (맞장구치며 끄덕끄덕) 조기 어제 일기가 적혀있네요! O월 O일 날씨 화창. 길가다 벼락 맞음. 웬 재수없는 여자 때문에 몸 다치고 공연 취소됨. 게다가 한달간 기브 스 신세. (바라보며) 정확하게 찾았죠?
관 우 : (미소로 응시)
채 원 : (어색) 참, 어제, 꼭 해야 된다는 얘기, 있었잖아요? 뭔데요?
관 우 : 어제 일기에 그것두 적혀있을텐데.
채 원 : (연못 일견하고) 그러게요? 밤새 그것만 지워졌나봐요?
관 우 : 그럼 다시 쓰죠 뭐.
채 원 : (미소로 기다리는)
관 우 : (응시하며) 첫눈에 반했어요! 앞으로 채원씰 많이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채 원 : (휘동그레지는)
#52. 백화점 티파니 매장
윤 희 : (직원에게) 이런(자신의 반지) 분위길 원하는 모양인데 작년 봄에 나왔던 거 있 죠? 그걸루 한번 보여줘봐요.
직원, 꺼내서 보여준다.
은 석 : (유심히 보며 마음에 드는 듯) 다른 것도 한번 보도록 하죠.
윤 희 : (삐죽) 이런 데선 디자인이 문제가 아니라 가격이 문제죠. 가격부터 물어보구 이 거 꺼내라, 저거 꺼내라 하시죠?
직원, 두세 가지 정도를 꺼내놓는다.
은 석 : (유심히 보고는 그 중 한가지를 지목하며) 이걸로 하도록 하죠.
윤 희 : (깐죽) 이봐요? 이건 아까 꺼의 두배예요?
직원, 은석을 보며 대답 기다린다.
은 석 : 주세요. 싸이즌 이 학생, (하다가) 이 아가씨하구 비슷해요.
윤 희 : (놀라는, 다시 본다)
은 석 : (선택한 반지를 응시한다, 그 입가에 얼핏 미소가)
#53. 진해 파크랜드
채원과 관우의 비명소리와 함께 급하강하는 바이킹.
채원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씩씩하게 스릴을 즐기는데, 관우는 하얗게 질려서 어쩔줄몰 라한다.
다시 급하강하는 채원과 관우. 채원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신이 났고, 관우는 남자 체면이 말이 아니다. 관우의 모습을 보며 더 즐거워하는 채원!
시간경과 되어 바이킹 앞...
희희낙락인 채원, 하얗게 질린 관우, 걸어나온다.
채 원 : 괜찮아요?
관 우 : (안괜찮지만 억지로) 네.
채 원 : 괜찮으면 한번 더 타요! 가요! (앞장서간다)
관 우 : (어기적어기적 끌려가다가 결국) 욱! (주저앉아 토하고 만다)
채 원 : (놀라서) 두드려줘요?
관 우 : (무조건 저리 가라는 손짓, 창피하다)
채 원 : (같이 주저앉으며) 토하는 게 뭐가 창피하다구 그래요? 자연스런 신체반응인데. 토하구 싶을 때 토하는 게 사람이지, 참다가 괜히 삼켜봐요, 그게 훨씬 더 더러워 요.
관 우 : (그 말에 속이 더 역해서 심하게 토악질)
채 원 : 빨리 실컷, 남김없이 토해요. 그래야 한번 더 타죠?
관 우 : (질린 얼굴로 세상에!)
#54. 안민도로 전망대
진해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채원과 관우, 많이 친밀해진 듯 나란히 가까이에 서서 시가지를 내려보고 있다.
관 우 : 일본이 우리나랄 침략한 후 진해에 군항을 건설하면서 도시미화용으로 심기 시작 했대요.
채 원 : (끄덕이며) 유래가 좀 찜찜하네,
관 우 : 그래서 광복후엔 다 베어냈대요. 벚꽃이 왜 일본 국화잖아요.
채 원 : 그런데 지금은 왜 도시 전체가 벚나무 천지예요?
관 우 : 벚나무 중에서 진해에 가장 많은 왕벚나무는 원래 원산지가 우리나라 제주도라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대요. 그때부터 다시 심기 시작한 거죠.
채 원 : (끄덕이는) 저건(보행용 나무로 된 길) 뭐예요?
관 우 : 맨발로 걸어다니라고 만든 나무길이요.
채 원 : (아 그렇구나! 끄덕이고는)
채원, 불쑥 신발과 스타킹을 벗는다.
관 우 : (그 거침없음에 미소)
채 원 : (맨발로 걸으며) 근데 관우씬 사투리를 전혀 안쓰네요?
관 우 : (보조를 맞추어 따라 걸으며) 서울에서 태어났어요. 진해로 이사온 건 초등학교 6 학년 때구요. 서울은 언제 올라가요?
채 원 : 오늘 저녁 7시 비행기예요.
관 우 : (순간 어두워지는, 1시 30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본다) 진해에 다시 올 일은 없겠 죠?
채 원 : 그렇..겠죠 아마.
관 우 : 그럼 우리가 다시 만날 일도, (하는데)
채 원 : 악! (왼쪽 발바닥을 벴는지 발을 싸안고 주저앉는다)
관 우 : 왜 그래요?
채 원 : 유리에 베었나봐요. (발바닥을 보며) 아후!
채원의 발바닥에서 벤 상처치고는 조금 많다싶은 피가 흘러나온다.
관 우 : 많이 벤 거 같은 데요? 이리 줘봐요.
채 원 : 아니예요. 괜찮아요. (살펴보며 유리를 뺀다) 여깄다.
관 우 : (안타깝게 지켜보며) 손수건 같은 거 없어요?
채 원 : (아파하며) 아후. 그런 거 난 안키워요.
관우, 자신의 몸을 살피고 주머니를 뒤지나 찾는 게 없는 지 낙담하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에서인지 양말 한쪽을 벗는다.
관 우 : (양말 한쪽을 내밀며) 피가 계속 흐르니까 이걸루 꼭 막고 있어요.
채 원 : (찜찜하나 받아드는데 지독한 발냄새가 난다, 코를 막고) 이거 말군 없어요?
관 우 : 왼쪽 것도 벗어줘요?
채 원 : 아뇨. 됐어요.
관 우 :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요? (휑하니 달려내려간다, 전력질주)
채 원 : 어디 가요? (갸웃, 양말로 지혈시키며 진동하는 냄새에) 지혈하려다 되려 세균감 염 되겠네!
#55. 안민도로 구불구불 경사진 내리막길
관우, 구불구불 긴 길을 전력질주한다.
#56. 안민도로 동 나무 보행길
채 원 : 아픈 사람 혼자 놔두구 어딜 간거야? (아래 길을 보며 기다리는)
#57. 약국
약봉지를 든 관우, 황급히 뛰쳐나와 다시 달린다.
#58. 안민도로 구불구불 경사진 오르막길
땀이 비오듯 흐르는 모습으로 한손엔 약봉지를, 다른 한손엔 기브스를... 관우 전력질 주로 달린다.
#59. 안민도로 동 나무 보행길
채원, 양말을 살짝 떼내고 상처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관 우 : (OFF, 헥헥거리며) 이리 내봐요.
채 원 : (쳐다보면)
관 우 : (땀범벅인 얼굴로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고는 약봉지에서 약을 낸다)
소독약, 면솜, 거즈, 반창고...
채 원 : (조금 놀라서) 그럼 이걸 사러... ...
관 우 :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묵묵히 소독약부터 바르기 시작한다)
채 원 : (그 모습 어떤 느낌으로 지그시 바라보는)
관우, 상처에 거즈를 대고, 이빨로 반창고를 뜯어서 붙여준다.
채 원 : (뭔가 모를 따뜻함이 밀려온다)
#60. 안민도로 , 채원의 스포츠카
채원 운전하고, 관우는 조수석에...
구불구불 긴 길을 내려가는 차.
채 원 : 세상에, 그럼 이 길을 뛰어서 저 아래 약국까지 갔다 온거예요?
관 우 : 날아서 갈 순 없잖아요.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었지만.
채 원 :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고) 다음 관광 코슨 어디예요?
관 우 : 바다에 가구 싶댔죠? 해안도로로 가요.
채 원 : 오케이!
관 우 : (자꾸 시간에 신경이 쓰인다)
관우의 시선에서, 2시 30분을 나타내고 있는 차 시계!
#61. 해안도로, 스포츠카
시원스레 뚫린 해안도로를 달리는 스포츠카.
즐거워하는 두 사람. 관우는 가끔씩 시계를 의식한다.
#62. 해안 근처의 전망좋은 카페
찻잔을 앞에 놓고 말이 없는 관우와 채원.
관 우 : (벽시계를 힐끗 본다)
채 원 : 지금부턴 절대 시계 보기 없기! 한번 볼 때마다 만원! 어때요?
관 우 : (끄덕인다)
채 원 : 그러고보니까 우린 서로에 대해 이름밖에 아는 게 없네요.
무슨 일 하세요?
관 우 : (저도 모르게) 학생이죠 당연히.
채 원 : (뜻밖) 학생이요? (다소 갭이 느껴지고) 그럼.. 대학교 몇..학년인데요?
관 우 : 네? 예,에... 그,그러니까 대학교... 졸,졸업반이요. 내년에 졸업해요.
채 원 : (그나마 안도가 되고) 그럼 군대는?
관 우 : 다,당연히 갔다왔죠. 채원씬.. 나이가...?
채 원 : 다섯이요.
관 우 : 다,다섯, 그렇게 안보이는데. (하면서)
빠르게 탁자 밑으로 나이터울을 손가락으로 짚어본다. 스물, 스물하나, 스물두울, 스 물셋, 스물넷, 스물다섯!
관 우 : (입엣말로) 여,여섯살 차이! (몰래 흘낏흘낏 살펴본다, 마음의 소리) 먹어두 너무 먹었다! 밥은 안먹구 나이만 먹었냐?
채 원 :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시선은 관우를 꼼꼼히 살펴본다, 마음의 소리) 대학생 이라! 세상에! 까마득하군!
관 우 : 채원씬 무슨 일 하는데요?
채 원 : (화들짝 놀라는) 네?
관 우 : 직업이 뭐냐구요?
채 원 : 지,직업이요...? 뭐,뭐 하는 사람으루 보여요?
관 우 : 글쎄요... 뭐, 선생만 아니면 되죠 뭐!
채 원 : (내려놓던 찻잔을 확 엎지르고 만다)
테이블엔 빠른 속도로 뜨거운 커피가 퍼져나가는데...
관우, 황급히 기브스한 팔로 뜨거운 커피를 닦는다. 채원쪽으로 튀지않게 제쪽으로 커 피를 몰면서...
채 원 : (놀라서 보고 있는데)
관 우 : 채원씨 안뎄어요? 옷 버려요. 뒤루 물러나 있어요.
채 원 : (갈색으로 변해가는 기브스 보며 그저 끄덕이기만) ... (관우를 깊게 응시한다)
#63. 공장 사무실
'대표 최장수'라는 문패가 먼저 보이고,
소파엔 윤미희와 민주가 초조한 듯 앉아있다.
윤미희 : 도대체 여기 사장이란 사람은 어떻게 된 거야? 응? 12시에 약속해놓군 4시가 다 되도록 코빼기도 안 비추니...
민 주 : 공장장이 알려준 데는 다 연락을 해봤는데...
윤미희 : 아우 속상해서 증말! 이번엔 진짜 기획이사 보란듯이 멋있게 한 건 할라구 그랬는 데!
#64. 은석의 사무실 복도
'기획이사실' 안내판을 무겁게 응시하고 있는 최장수. 마침내 노크한다.
#65. 은석의 사무실
은 석 : (보고 뜻밖인, 일어나며)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최장수 : (무거운 시선으로 응시하기만) ... ...
은 석 : 좀 앉으시죠. (앉는데)
최장수 : (의자가 아니라 바닥에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는다)
은 석 : (움찔)
최장수 : (안주머니에서 봉투 두 개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두통의 '유서'
은 석 : (확 굳어진다) 이걸 사장님 아들딸한테 안주고 나한테 보여주는 이유가 뭡니까?
최장수 : 한통은 가족들 앞으로, 그라고 나머지 한통은 신문사 앞으로 썼네.
은 석 : (신문사란 말이 거슬려서) 협박, 하시는 겁니까?
최장수 : 협박 당할 기 있긴 있는 모양이제.
은 석 : 용건만 간단히 하시죠.
최장수 : (절실) 한분만 살리도. 그동안 한강이 블루진을 삼킬라고 물밑에서 무신 지랄을 했는지 내 다 안다. 인간으로서 내 당신은 용서 몬하지만 같은 기업하는 사람으로 서는 천만분 이해한다.
은 석 : ... ...
최장수 : 그라고 우쨌등가 내가 방만히 했시니까, 배 부르고 등 따시진지 을마나 됐대고 그 새 내가 게을리 했시니까, 다 내 죄업이고 내탓이다. 그케도, 그케도 당신이 한분 살리주문 안되겠나?
은 석 : ... ...
최장수 : 한분만 한분만 살리도! (눈가가 젖어들고) 내 큰아들놈이 올개 고3인데 이놈아가 똑 정신을 몬차리고 헤헤거리고 댕기는기, 그기 밟혀서 내가 아직은 몬가겠다! (눈물 흐르고) 철따구니 읎는 그놈, 내 인간 맨들고 가도 가야지 그놈 그렇게 내 팽기치고 그 불쌍한 놈한테 내짐 다 맡기고 그케는, 그케는 몬가겠다... (운다)
은 석 : (난감) ... ... (구내버튼을 누르고) 기획이사실로 좀 급히 올라오세요.
최장수 : (서럽게 운다)
은 석 : (보고 있기가 곤혹스러워 일어나 창문으로, 창밖으로 시선)
그때 노크 소리 나고, 경비원 들어온다.
경비원 : 부르셨습니까?
은 석 : (턱짓으로 끌고 나가라고 하는)
경비원 : (끄덕) 이봐요? 갑시다? 이봐요? (최장수를 강제로 일으켜세워 끌고나간다)
최장수 : (끌려나가며 절규하는) 한분만 살리도! 한분만 살리주이소!
경비원, 최장수를 문밖으로 끌고나가는데,
은석, 테이블 위의 유서를 집어 문께로 가지고 간다.
은 석 : (최장수의 주머니에 끼어주며) 불쌍한 그 아들한테나 전해주시죠!
경비원, 최장수를 끌고 문밖으로 완전히 나간다.
은 석 : (차갑게 문을 닫는다)
#66. 은석의 사무실 복도
질질 끌려가는 최장수.
#67. 진해 선착장
섬으로 가는 배 대기중인데,
채원, 배를 보며 탈까말까 갈등하고 있다.
관우, 표를 끊어서 온다.
관 우 : (티켓 한 장을 내밀며) 자요.
채 원 : (선뜻 받지 못한 채 망설이는)
관 우 : 배타고 10분이면 섬에 도착하구요 섬 한바퀴 도는데 30분도 안걸려요.
채 원 : (티켓을 물끄러미 내려보며 갈등)
그때 채원의 핸드폰이 울린다.
관 우 : (티켓을 손에 쥐어주고) 배에서 기다릴게요. (간다)
채 원 : 여보세요?
민 주 : (F) 왜 안와? 짐 챙기구 간단히 요기라두 하구 갈려면 지금 움직여야지. 어디야?
채 원 : 그냥...
민 주 : (F) 그냥이구 저냥이구 빨랑 와. 니네엄마 콘디션 엉망이야.
채 원 : 알았어. (끊고, 선착장의 배를 무거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채원,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배 위 관우의 시선과 마주친다.
채 원 : (고개를 떨구고 마는)
(E) 출발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 마침내 배가 선착장을 떠나려하는데,
채 원 : (황급히 뛰어가며) 잠깐만요! 같이 가요 아저씨! (여전히 씩씩하게) 아저씨이!
배 위의 관우, 그제서야 환한 미소로 채원을 기다린다.
#68. 바다, 배 안
넓고 푸른 바다.
나란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채원과 관우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같다.
채원의 머릿카락이 바람을 타고 관우의 뺨으로!
관 우 : (살며시 눈을 감고 채원의 향기를 맡는다)
#69. 섬 일각
섬 주민을 붙잡고 막무가내로 막 자전거를 빌린 관우, 자전거를 끌고 채원에게로 온다.
두 사람, 자전거에 올라타고 섬 일주를 시작한다.
#70. 섬 스케치
자전거를 타고 섬의 비경들을 순례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림같다.
신록이 돋아나는 오솔길을 운치있게 걷기도 하고...
꽃이 만발한 언덕 (혹은 갈대밭)을 걷기도 하고..
바닷가 백사장을 걷기도 하고.....
그 어느 순간, 시간을 확인하고 허겁지겁 달려오는 두 사람.
#71. 섬의 선착장
어느새 손을 잡고 두 사람 달려온다.
두 사람 허겁지겁 선착장에 도착하는데, 배는 이미 저만큼 떠나가고 있다.
채 원 : (애타게) 같이 가요! 같이 가요 아저씨! 아저씨이!
관 우 : (직원을 잡고) 다음 배는 몇시에 있습니까?
채 원 : (기대감으로 기다리는)
직 원 : 저기 막배요. 요즘은 사람이 웂어서 하루에 네분만 안댕기요.
관 우 : (놀라서 채원을 쳐다보면)
채 원 : (힘이 쫘악 빠진다)
#72. 바닷가 (석양)
채원과 관우,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있다. 오래된 듯...
관 우 : (일어난다)
채 원 : (묻듯 쳐다본다)
관 우 : 여기서 밤을 샐 순 없잖아요. (앞서나간다)
채 원 : (잠시 쳐다보다가 불안하게 따라간다)
#73. 호텔방
체크아웃 준비가 다 된 윤미희와 민주.
민 주 : (통화중) 무슨 소리야 그게? (사이) 누구? 오 마이 갓! (사이) 몰라. 끊어. (끊 고)
윤미희 : 도대체 이 시간까지 어디래니?
민 주 : 섬에서 발이 묶였대요.
윤미희 : 뭐?
#74. 폐가 - 방 안 (밤)
두 사람, 폐가로 들어서고...
채원, 훑어보며 왠지 섬뜩한게 무섭다.
관우, 어두운 방안으로 들어가 이내 전구 불을 켠다.
채 원 : 아는 집이예요?
관 우 : 아버지랑 낚시 올 때마다 이집서 묵고 가요. 섬이 워낙 작아서 숙박시설두 없거든 요. (내다보며) 밤새 그러구 있을 거예요?
채 원 : (망설이다가 쭈빗쭈빗 들어간다)
#75. 폐가의 방
채원,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예기치 못한 이 상황에 안절부절 한다.
관 우 : 많이 썰렁하죠? 조금만 참아요. (밖으로 나간다)
채 원 : (한숨) 후우... 어떡하면 좋아?
관우, 나무토막이 담긴 페인트통을 가지고 들어온다.
관 우 : (손으로 더듬어 찾으며) 성냥이 어디 있을텐데? 여깄다!
관우, 불을 지핀다.
관 우 : 곧 따뜻해질 거예요.
채 원 : 겉모습 치구는 없는 게 없네요?
관 우 : 운이 좋다면 컵라면두 있을 걸요?
채 원 : (불을 쬐며) 아버지랑 자주 왔나봐요?
관 우 : 지난 겨울까진 가끔씩 왔죠. 우리 아버지, 바다낚시 광이거든요.
채 원 : 부자지간에 낚시두 다니구, 참 좋네요. 난 아빠랑 뭘 같이 해 본적이 없는데...
관 우 : (생각나서 굳어지고) 요즘엔 좋지두 않아요. 어제두 한바탕 했는데요 뭐.
채 원 : 왜요?
관 우 : 레퍼토리야 뻔하죠 뭐. 고3인데 공부도 안, (순간 입을 확 틀어막는다)
채 원 : (?? 쳐다본다) 고3이요? 누가요?
관 우 : 네? 아 네에.. 그게, 그러니까 내동생이 고3인데 공부를 지독하게 안하거든요.
채 원 : (끄덕이다가) 동생이 공부를 안하는데 왜 관우씰?
관 우 : 내가 우리집 장남이잖아요. 동생을 옳은 길로 잘 이끌어줘라, 뭐 그런...
채 원 : 아버지한테 먼저 사과하세요. 어떤 이유건 부모님한테 대들고 싸우는 건 잘못이예요.
관 우 : 예. 나두 그러군 싶은데 자꾸 마음하고 다르게 행동이 나가서요. 낼 돌아가면
아버지한테 사과부터 해야겠어요. 어젯밤에 나한테 할 얘기가 있다구 하셨는데 모른 체 했거든요. 안그래도 종일 그게 걸리더라구요. (아버지를 생각한다)
#76. 밤바다
칠흑 같은 바다. 낮과는 달리 파도 소리가 두렵게 들린다.
그 어둠 속으로 어느 순간 사람의 실루엣이 나타나고, 그 실루엣 점점 더 깊이 그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바닷물 속에 이미 가슴이 잠긴 그 실루엣, 만취한 최장수다! 최장수, 점점 더 깊이 들 어가고, 마지막 최장수의 취한 눈에서 얼핏 눈물이 보인다. 이내 사라지는 최장수.
다시 바다는 칠흑같은 어둠과 높은 파도소리 뿐이다.
#77. 김포공항 안 (밤)
텅 빈 공항 안...
은석, 굳어서 서 있다.
#78. 폐가의 방 (마루)
방바닥에 놓인 컵 라면 두 개에 차례로 뜨거운 주전자 물이 부어진다.
채원, 식을세라 뚜껑을 닫고 젓가락을 올려놓는다.
관 우 : (라면 기다리며) 채원씨 아직 무슨 일 하는지 얘기 안했어요!
채 원 : 네? 네. ... ...(들리는)
관 우 : (E) 뭐 선생만 아니면 되죠 뭐!
채 원 : (떠오른다)
플래시 백, 수업중에 학생들에게 과격하게 분필을 날리는 채원의 모습!
관 우 : 무슨 남한테 말못할 업종에라두...
채 원 : 무,무슨 말씀이세요? 비서예요 비서!
관 우 : 비서..였구나? 어쩐지...
채 원 : 라,라면 다 됐어요. 먹어요. (밀어준다)
관 우 : 예. (먹으려는데 오른 손은 기브스를 했다! 왼손으로 시도하고)
채 원 : (모른 채 먹성좋게 후루룩 혼자 먹기 바쁘다)
관우,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바닥에 흘리는 게 더 많다.
관 우 : (침을 꼴깍 삼키며 채원을 부러운 시선으로)
채 원 : (진짜 잘 먹는다, 느끼고) 왜 안먹... (바닥에 흘려진 면발들 발견) 세상에 이 아 까운 면을 왜 흘려, (하다가 기브스한 오른팔에 시선이 멎고) ... ...
관 우 : (왼손으로 시늉) 자,잘 안되네요 이게.
채원, 아무말 없이 다가와 관우의 젓가락을 빼앗고 관우의 컵라면을 들고 먹여준다.
채 원 : (입에 넣어주는데)
관 우 : (그러나) 앗 뜨거!
채 원 : 뜨거워요? 미안해요. (이번엔 면발을 후후 불어서 식힌 다음 넣어준다)
관 우 : (행복해서 미칠 지경이다!) 채원씨두 먹어요. 어서요.
채 원 : 네. (먹고는, 다시 후후 정성 들여 면발을 식힌다)
관 우 :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채 원 : (면발을 관우의 입가로 갖다대는데)
관 우 : (채원의 입술에 키스를 한다)
채 원 : (깜짝 놀라 면발을 떨어뜨리고 컵라면을 엎지르는데도)
관우의 키스, 멈출 줄 모르고...
채 원 : (라면 국물에 다리가 뜨거워서 몸을 비트는데도)
관 우 : (모른 채 키스에 열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