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데 컴포스텔라.(2012년 5월3일~6월13일)
(Santiago de Compostella)
퇴직(2009년1월18일)한지 3년이 지났다.
퇴직 할 때부터 언젠가 산티아고에 가겠다고 생각했다. 그
리고 러시아의 바이칼을 다녀 온 후에 친구 雄이 보낸 준 Bucket List 영화를 본 후 나도 리스트를 만들었고 리스트의 상단에 산티아고가 들어 있었다.
그래서 澤과 올레 길과 지리산 둘레 길을 걸었다. 龍 하고는 동해안 해파랑 길을 걸었다.
吾와 대관령 옛길도 걸었다.
그리고 植과 于, 烈이와 弴 까지 우리는 남해 길을 걷고 청산도와 보길도를 걸었다.
마침내 우리는 44년 된 묵은 친구들이 뜻을 같이 하고 산티아고 순례 길을 가기로 정했고, 북한산 둘레 길과
탄천 길, 광교산 자락과 화성을 끝으로 훈련을 마쳤다.
만날 때 마다 휴대용 저울로 무게를 체크하고 휴대물건에 대한 정보를 교환했다.
그리고 이 도전의 제목을 “배낭이 내 몸속으로 내 몸이 길속으로!” 정했다.
이런 여행은 실제 시작보다 준비가 더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냥 여행이 아니고 다소 모험이 들어 있는 Adventure Trip 이어서 더욱 그렇다.
짐은 8Kg을 넘지 않게 싸고 풀고를 연속으로 했다.
배낭은 오스페리 65L 짜리 빈 배낭의 무게는 1.65Kg이다.
원래 2.2Kg이 되는 튼튼한 배낭이 있었지만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비가 주룩 주룩 내리던 날 동대문에 가서
다시 구했다.
그동안 이것저것 사다 보니 등산가게처럼 짐이 많아 졌다.
집 사람은 빨리 다녀와야지 머리가 다 군시럽다고 했다.
물건의 리스트를 보자.
침낭은 여름용으로 경량이다.
침낭 속에 들어가는 라이너는 현지에서 벼룩을 방지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추가로 구했다.
실크 라이너다.
접이용 베게도 있다. 깔판 도 있다.
옷과 양말은 입은 것 외에 각 두 개씩을 챙겼다.
고어텍스 바람막이도 있다.
치약 칫솔 감기약 수면제 연고 반창고 소화제 진통제.
스위스제 Army 칼과 영국 경찰 호루라기, 썬 글라스, 바늘과 실, 손톱깍기, 포크 겸용수저, 급속 온수 히터,
휴대폰에 노래 입력, 스페인 회화 책, 수건과 등밀이 수건, 보온용 머플러, 오리털 경량 웃옷. 해가림 차단 망, 예비 경량 배낭, (베게는 불필요 했다/ 런닝도 불필요하다. 티 셔츠를 바로 입으면 된다/반팔은 불필요 긴팔이 좋다/약 중에 연고 쎄레스톤 지는 필수다/예비 경량 배낭은 유익하다/
현금은 복대 보다 팬티 안에 주머니를 달아 사용하는 것이 최고다) 여권과 비행기 E 티켓을 복사해서
휴대 했다.
분실 시 재발급을 위해 사진 2장도 함께 넣었다.
분실방지를 위해서 지갑과 휴대폰에는 끈을 달았다.
나는 개별 출발이어서 여행자 보험에도 가입했다.
2개월이나 집을 비우니 신문도 두 달 休止하도록 연락했다.
114에 전화해서 약정으로 3G로 인터넷을 데이터 로밍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현지 시간 기준으로 하루 12,000원이다. (1012년 5월부터 9,000원으로 인하 되었다.
파리의 호텔의 와이파이 사용 요금이 하루에 6유로이니 세계가격에 맞춰 인하 했는지도 모른다.
초읽기에 들어간다.
D-10일이다. 민양 아우네로부터 출정식을 겸한 식사대접을 받았다.
예쁜 꽃도 받고 썬 크림도 제수씨가 준비해 준다.
정겨움과 배려가 고맙다.
집 사람이 4월24일 욕조에서 넘어져서 발이 붓더니 뼈가 부러져 약식깁스를 했다.
3주가 지나야 된단다.
목발을 했으니 얼마나 불편 할 것인가?
집 떠날 마음이 가볍지 않을 듯하다.
D-4일이다. 기침이 연속된다.
끝날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짐은 풀고 싸고 재조정한다.
Just Go 에 있는 지도로 파리 중심가를 읽는다.
한 밤중에 실크 라이너의 윗부분을 정리하는 바느질을 했다.
벼룩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함이다.
라이너는 벼룩 예방조치로 준비 한 것이다.
베개를 버리고 깔판 자른 것으로 대체 했더니 훌륭하다.
낮에는 깔판 밤에는 베게가 될 수 있다. 무개를 다시 100g 줄였다.
여러 사람이 자는 침대가 찜찜할듯하여 야외용 금박지 깔판을 갖고 가려 했고, 반으로 잘라서 무개를 줄이고 확정했다. (부시럭대는 소리가 나지만 침대위에 까는데 유용했다)
컵과 전기 급속 히터를 빼 놨는데 새벽에 감기로 더운 물을 마시다 보니 히터는 필요성이 절박하다.
다시 짐 속에 넣었다.
파리에서 혼자 있는 3일 저녁과 4일 중식(조식은 호텔에 포함되어 있음) 생장 피드 포드에서의 출발 일을 위한 한식으로 누릉지를 3개 준비했다.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생장에서 피레네를 넘기 전에 한식을 먹기로 정하려 한다.(친구들은 한 개 정도만 준비하면 될 것이다.)
누릉지는 냄새도 구수하고 더운 물만 확보 되면 최고일성 싶다.
군산에서 만들어 내는 나라스께 몇 조각이면 금상첨화가 된다.
라면 스프 5개와 고추장 3 개, 피레네 넘는 당일 필요한 초콜렛 몇 개만 추가해야겠다.
D-3일이다. 4월30일 5월1일 5월2일
백화점과 나이키 매장에서 바람막이와 운동 팬티와 런닝을 추가로 구했다.
없어도 되는 것들인데.... 賢한테서 티켓 등이 모두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내가 받을 티켓은 몽파르나스에서 생장 까지 가는 TGV 열차 표다.
5월2일 날 11시 반에 양재역 산들해에서 최종적인 미팅을 하기로 했다.
D-1일이다. 친구들과 같이 중식하고 TGV 티켓 받고 파리에서의 친구들 숙소를 확인했다.
5월4일 친구들과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하철로 이동해야겠다. 짐은 9Kg 다.
더 이상 줄이는 것은 포기했다.
5월3일 목요일 맑음.
잠은 설쳤다미역국과 시래기 미나리나물로 식사하고 5시45분 공항버스에 탑승 했다.
스틱은 분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분해를 했는데 막상 높이는 줄지 않는다.
8시 반에 티켓을 받았다.
110게이트 35J 그런데 바쁜 시간에 게이트와 좌석을 혼동해서 한참동안 35게이틀 찾았다.
탑승 시 여권확인도 기본인데 다른 곳에 별도로 여권을 넣었다가 더듬거렸다.
자리는 비상구 옆(exit row seating)이니 최고의 자리다.
발을 멀리 펼칠 수 있기 때문에 프레스티지 좌석이나 진배없이 편하고 좋다.
옆에 앉은 두 처녀는 인터넷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인데 3년마다 안식휴가가 있어서 처음 맞는 안식 휴가를 로마와 피렌체로 여행 한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파리드골공항에 2시5분에 내렸다. 익숙한 공항이다.
에어프랑스 리무진 위치를 찾는데 이리저리 조금 헤맸다
.3시20분에 몽파르나스 역으로 가는 에어프랑스리무진을 16유로 내고 탔다.
집사람이 기침이 심해 고생하는 상황이 문자로 오갔다 .
멀리 떠나온 마음이 편치 않다.며느리 은정이 인사 전화 왔다.
Holiday inn 찾는데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wifi 는24시간에 6 유로란다. 한화로 9,000원이다.
우리나라 통신회사 데이터 로밍 코스트가 5월부터 24시간 사용기준으로 9,000원으로 인하 조정된 것과 호텔에서 책정한 wifi 비용이 우연하게도 같다.
우리나라가 국제 가격에 맞춘 것일까?
기름을 100% 수입해서 쓰는 프랑스의 자동차 기름 값과 우리나라 기름 값도 거의 값이 비슷한걸 보면 세계의 물가도 평준화 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단, 우리네의 물가는 높은 쪽으로 평준화 되고 있다.
호텔의 wifi는 안 쓰기로 했다,
밖으로 나가 몽파르나스 역 가는 길을 미리 확인하고 까르프에서 물과 스넥과 요풀레 사 오고 누릉지 끓여서 저녁 했다.
까르프는 현금을 받지 않아서 10유로 미만인데도 카드를 사용했다.
혼자 여행 할 때 인스턴트 누릉지와 냄새 심하지 않은 밑반찬을 준비 하면 혼자 밥을 먹기 불편한 경우에 대안이 된다.
Rei 등산 장비 중에서 물 끓이는 간단한 장비가 굿 이다.현지시간 10시 하루마감이다.
5월 4일 금요일 맑음.
시차로 자는 둥 마는 둥전화가 소리음은 물론 작동이 되지 않는다.
인터넷 사용방법이 원활치 않아 114와 통화했다.
갑자기 전화가 통화불능이 되는 경험은 잠시지만 심리적은 공황을 경험 한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기다리면 해결이 되는데 말이다.
114와 통화를 하면서 내 주민 뒤 번호를 까먹었다.
1006119 인지 다른 번호인지.방법이 달라지면 사람의 뇌는 교란현상이 온다.
가족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상상은 대단한 불편이 된다.
국내에 전쟁이 나고 카드 사용과 통신이 두절되고, 갖고 있는 현금도 고갈이 되고, 돌아 갈 항공편도 없다면 어찌 하지? 쓸데없는 걱정으로 확장이 된다.
해외에 기댈 수 있는 곳이나 내 능력으로 호구를 해결할 방법을 나는 갖고 있는가?
호텔에서 느긋하게 조식하고 몽파르나스 역에서 지하철 Metro로 티켓을 10장 구매하고 Bercy로 이동해서
친구들이 묵을 Kyriad호텔을 확인했다.
40분이면 충분하다. 노틀담을 거쳐 개선문과 상제리제 둘러 친구들을 기다렸다.
노틀담 앞의 바 카페에서 혼자 에소프레스 커피 한잔을 했다.
2009년 1월에 다녀갔으니 익숙하다. 그 때 식구들과 이용 했던 바로 그 카페다.
개선문 근처에서 식당을 찾다가 혼자 먹기 싫어서 작은 배낭에 넣고 간 빵과 음료로 벤치에서 식사를 했다.
간단한 비상식량을 조금씩 휴대하는 일은 해외여행에 요긴할 때가 많다.
파리 거리의 가로수 마로니에는 최근에 새로운 색상인 핑크 꽃이 개발이 된 것이 틀림없다.
기존의 하얀 꽃의 큰 나무의 중간마다 핑크 색의 작은 마로니에 꽃들이 배치되어 있다.
파리가 새롭게 보인 것은 마로니에 꽃 색상뿐이다. 모든 것이 그대로다.
2009년 겨울에는 꽃이 필 때가 아니었으니 볼 수 없었던 꽃 색이다.
중간 마다 오동나무 자주색 꽃도 한창이다 밤이라면 향기 가득하겠지. 꽃 중에 향기가 가장 강한 것이 오동나무 아닌가?
4시 넘어 친구들과 합류했다.
개선문으로 이동하여 콩코드광장을 거쳐 오페라하우스 앞으로 둘러 봤다.
익숙한 도시와 익숙한 모습은 설레 임이 없다.
파리가 처음인 친구가 하나 있으니 그에겐 많은 것이 생소할 것이다.
저녁은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사양화 된 변형된 한식집에서 내가 부담했다.
길을 찾는데 전화기 네비게이터가 유용했다.
친구들 숙소와 한식당, 둘아 올 때 잠시 길을 잃었는데 데이터 로밍한 네비의 도움을 받았다.
참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다.
그러나 인간과의 접촉을 줄이고 기계에 의지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낮에 길을 찾을 때 파리장 들에게 길을 물으면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5월 5일 토요일 맑았다가 저녁 무렵 비.
호텔은 주말이라고 조식시간이 한 시간 뒤로 물려있어서 그냥 나와 몽파르나스 역까지 걸었다.
역내의 Poul 에서크로와상과 pain 초코렛 주스와 커피를6. 10유로주고 때웠다.
빵 이름을 좀 잘 알면 좋겠다.
앙꼬 빵 곰보 빵 만 기억하고 있으니 기껏 아는 빵의 이름은 크로와상과 바게트 정도다.
대합실속에 참새도 까마귀도 있다.
손님들이 던져주어 먹을 것이 풍족하니 자연속의 새가 아닌 대합실 속의 새로 진화 되어 버렸다.
영국에 있을 때 바다 가까운 도시에서 갈매기 무리를 떠나 비둘기들과 살고 지내던 갈매기 생각이 난다.
8515호 떼제베 Irun행을 친구들과 같이 만나서 탑승했다.
8시25분차 6코치 41석에 앉아 프랑스남쪽의 광활한 녹색과 노란색 유체 밭 사이를 달린다.
중간마다 안개도 자욱하다.
서석이 마눌은 그동안 오래 떨어져 본적이 없어, 떠나오기 멸일 전부터 옆에 앉아 네 아빠 간단다.
를 연발 했단다. 한 번도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보지 않은 낭군을 보내는 마음이다.
우리가 세상을 하직할 때 우리 부인들은 서석이 마나님처럼 이야기 할 것이다.
네 아빠 간 단다. 라고 하는 미래형이 아니고, 네 아버지 갔다. 라고 과거형으로 말 할 것이다.
11시46 분에 Bordeaux St.을 통과 한다.
와인을 연구하는 이들이 한번 쯤 찾는 도시다.
1시57분 Bayonne 도착해서 갈아 탈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점심을 했다.
예정된 시간대로 저녁 무렵 상장에 도착해서 크리덴셜에서 패스포트 받고 숙소를 안내받았으나
풀이어서 성 밖으로 이동했다.
Pregreno들의 상징인 조개껍질도 한 개씩 받아서 배낭 뒤에 매달았다.
크리덴셜에서 봉사하는 할머니들은 유쾌하고 에너지가 넘쳐 보기 좋다.
영어도 잘 구사한다.
4명이 50유로 내고 까르프에 들려서 물과 바게트 빵 과일을 사서 내일 아침과 점심 두 끼를 챙겼다.
저녁은 스테이크로 했다.
양은 많고 고기는 질기다.
9시에 잠자리에 일단 눴다.
숙소는 1인당 12.5유로 씩 내고, 한방에 네 명 모두 2층 침대에서 삐그덕 대는 소리 속에 잠을 잤다.
주인은 영어를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해서 소통에 시간이 든다.
잘 침대의 각자의 위치의 결정은 사다리타기로 정했다.
재돈과 내가ㅣ층, 광열과 현우가2층 이다.늘 챙길 일은 여권지갑현금이다.
현금은 2,000유로를 팬티 속에 별도로 주머니를 만들어 보관했으니 오케이다.
빨래 빨았는데 날이 흐리니 말라도 후 줄건 하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고 이구동성으로 합창하고, 카메라와 전화기를 전기충전 시키고 잤다.
5.6 일요일 맑음(어제 5월5일이 음력 윤 3월 보름이다)
그래서 새벽달을 봤다.
St. Jean Pied de Port---Roncesvalles. 25.7Km.
첫째 날이다.
Royal Colligiate Church 10세기의 교회가 있고, 전에는 Pilgrim 병원으로 이용된 곳이 있다.
100 bed 침대가 있다. 고도는 952m.
새벽 4시에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눈뜨고,각자 휴대해 온 누룽지 끓여먹고, 5시38분에출발이다.
둥근 달이 환 하다.
외국의 시골길에서 만난 새벽달은 크고 밝다.
둥근 달이 바로 눈앞이다.
지구와 달의 거리는 우리가 살던 곳이나 이 곳이나 비슷하겠지만 하늘이 맑은 탓이겠지.
새벽에 달 보면서 걸을 일이 별로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고.....
어제 저녁 열심히 길을 물어 놓았지만 식당총각과 동네아주머니의잘못과 우리의 잘못이 뒤 석여서
나포레온 루트에서 벗어났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이른 새벽 初 老人들의 어설픈 부지런함이 차질을 만들었다.
눈앞의 커다란 보름달은 6시8분에 서쪽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7Km 까지는 잘 갔지만 계획했던 나포레온 루트에서는 벗어 나 버렸다,
도중에 이 동네 마을에 사는 산보하는 부부를 만나 자세한 안내를 받았다.
약도 까지 내 수첩에 그리면서 안내와 설명을 해 준다.
자동차도로에서는 데이터 로밍 된 휴대폰의 어플리케이션 네비게이터를 잘 활용했다.
그런데 산길을 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네비게이터는 길을 벗어나는데 오히려 기여를 한 셈 이다.
점심은 산속에서 가져 간 바게트 빵과 사과 오렌지, 하몽 슬라이스치즈로 했다.
도중에 프랑스부부들을 만나 같이 사진 찍었다.
고사리가 천지고 밤나무도 많다. 지리산 둘레 길에서 고사리 때문에 지역 주민들과 걷는 이들이 다투던 일이 오버랩 됐다.
자연속의 푸름과 들꽃들이아름답다.
오후2시 론셋스바에스에 도착 했다.
피레네 산맥의 정상을 우회해서 90% 정도의 능선으로 통과한 셈이다.
敦이네 마님이 들은 정보로 우리 보다 앞서 간 2사람이 추위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
그 덕분에 우리는 출발 직전에 내복 한 벌씩을 추가로 챙겼다.
모 신문사의 글쟁이의 과장된 엄살 때문에 잔뜩 겁을 먹고 있던 우리에겐 다행스런 결과인지도 모른다.
우리들 무리 중에 死線을 넘은 重患者가 둘이나 있어서 오히려 잘 된 일이고 이렇게 돌아가게 한 것도 이 길을 열어준 성인 야고보의 뜻이라 여기고 감사하기로 했다.
잠자리는 인당20유로이고, 저녁식사가 인당 9유로인 숙소는 훌륭하다.
저녁식사는 순례자메뉴로와인 스파게티 송어와 감자였고 독일인 母女가 같은 탁자에 합류했다.
엄마는 영어를 못하고 딸은 잘 알아듣고 표현한다. 엄마의 통역사다.
암 브루넨 포어 댐 토레 성문 앞 우물가에 서 있는 보리수.
샬롬차베린 안녕 친구여 노래로 모녀를 웃겼다.
이히리베 디쉬 아일 러브 유. 이 말에 엄마는 수줍음을 탄다.
와인 마신 내 눈에 들어온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첫 날인 피레네 산맥 넘기는 나포레온 코스를 찾지 못하고 마리루트로 걸었고, 도로를 주로 많이 걸었다.
최고도는 1190 미터였다.
평이했지만 무리하지 않아 잘 된 일이다.
Der Lindenbaum(데어 린덴바움)
Am Brunnen vor dem Tore(암 브루넨 포어 뎀 토레)
Da steht ein Lindenbaum;(다 스테-트 아인 린덴바움)
Ich traeumt in seinem Schatten (이히 트로임트 인 자이넴 샤텐)
So manchen süssen Traum. (조 만첸 쥬센 트라움)
Ich schnitt in seine Rinde (이히 슈니트 인 자이네 린데)
So manches liebe Wort; (조 만체스 리-베 보르트)
Es zog in Freud' und Leide (에스 조크 인 프로이드 운트 나이데)
Zu ihm mich immer fort. (추 임 미히 임머- 포르트)
Ich musst' auch heute wandern (이히 무스트 아우흐 호이테 반데른)
Vorbei in tiefer Nacht, (포르바이 인 티-퍼- 나흐트)
Da hab' ich noch im Dunkel (다 하브 이히 나흐 임 둥켈)
Die Augen zugemacht. (디- 아우겐 추게마흐트)
Und seine Zweige rauschten, (운트 자이네 츠바이게 라우쉬텐)
Als riefen sie mir zu: (알스 리-펜 지- 미어 추)
Komm her zu mir, Geselle, (콤 헤르 추 미르 게젤레)
Hier find'st du deine Ruh'! (히-르 핀트츠 두 다이네 루-)
Die kalten Winde bliesen(디- 칼텐 빈데 브리-센)
Mir grad ins Angesicht; (미르 그라드 인스 앙게지흐트)
Der Hut flog mir vom Kopfe, (데어 후트 프로그 미어 폼 코페)
Ich wendete mich nicht. (이히 벤데테 미히 니흐트)
Nun bin ich manche Stunde (눈 빈 이히 만체 스툰데)
Entfernt von jenem Ort, (엔트페른트 폰 예네 오르트)
Und immer hör' ich's rauschen: (운트 임머- 회르 이히스 라우쉔)
Du fändest Ruhe dort! (두 풴데스트 루헤 도르트)
5월7일 월요일 맑음.
Roncesvalles---Zubili 24.5Km
둘째 날이다.
4시경 기상해서 어재 사 놓은 빵으로 간단히 식사를 했다.
賢이 스틱을 잃어버렸다고 잠시 沈潛.
본인의 건망증을 탓한다. 내가 얼른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카운터 옆 항아리 속에 놓여 있는 스틱을 찾아냈다. 어제 숙박비와 식대를 계산 하면서 그 곳에 놓고 그냥 올라 온 것이다.
이렇게 잠시 잃었다가 다시 찾는 기쁨은 크다.
6시 20분 여명에 숙소를 출발했다. 이태리에서 온 수녀들 둘을 첫 대면했다.
전형적인 수사복장에 간편한 슬리퍼를 신었다.
이 두 분의 수녀들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멀어져 버렸다.
걷는 기간이 짧게 주어진 모양이다. 숙제하는 학생들 모습 같다.
허리는 끈으로 묶고 상의는 검은 후드 티다.
오늘 우리가 걷는 길은 참 좋다 평가를 한다면 A다.
눈으로 확인 된 한국인이 14명이나 된다.
고교 졸업하고 예술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영주의 조국원은 모양은 쾡과리같은데
천으로 만들어진 버너라는 소구를 갖고 다닌다.
씩씩한 젊은이다. 집안이 남사당과 관련이 있단다.
신나게 한판 돌리는 몸동작에 동행 하는 외국인들이 좋아라한다.
모 대학을 휴학하고 독일에서 봉사활동을 경험한 후,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로 번 돈 1,000만원을 자본으로
여행을 한다는 여학생도 만났다. 3월 6일에 집을 떠났단다.
길가에 피어난 들꽃들이 참 예쁘다. 길가엔 큰 민들레들이 지천이고 회양목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紅松 도 좋고 뻐꾸기 노래도 들린다.
쉬는 자리에 앉아서 지나가는 필그레노스들에게 알로/부엔까미노(안녕/ 좋은 순례길)를 열심히 던진다.
서석의 천주교 입문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
양떼들이 열심히 지나가는 모습도 목격했다. 노랑나비 한 마리가 연신 우리를 앞서서 팔랑거리면서 간다.
우리를 안내 하는 사도인가? 500 미터 이상을 길을 따라 날더니 풀 섶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알베르게는 15~17유로에 아침포함이다.
침대 위치는 사다리 타기로 우선권을 결정했다.
처음으로 갖고 간 빨래 줄을 걸고 빨래를 널었다.
학생들의 단 구간 걷기 수학여행팀이 우리의 출입구로 통과 하는 방에 가득 차서 크고 작은 남녀 학생들이
떠들고 아무데서나 홀랑 홀랑 옷을 벗어 보기가 난감하다.
처녀티가 나는 조숙한 여학생들의 벗은 모양은 보기에 좋고......
저녁은 세트 메뉴로 샐러드와 닭이나 쇠고기 선택이고, 후식은 아이스크림과 에소프레스로 했다.
슈퍼에서 빵을 준비 하고 고추그림이 있는 캔을 샀다.
캐찹을 도마도 주스인 줄 잘 못 알고 샀다.
서석과 敦의 수술이야기를 들었다. 서석은 이미 옛적에 死線을 넘어 죽음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 했다.
6개월 동안 성지를 순례중인 충청도 남자 분을 14번째 한국인으로 인사 했다.
기침이 다시 시작돼서 시럽을 먹었다.
나는 누구지?
삶은 뭐지?
어찌 살아야지?
내가 세상을 떠날 때 주변은 어떻게 정리하고 나는 어떻게 돌아가지?
떠난다고 생각 하는 것 보다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좋지.
데이터로밍은 13일경에 하자. 24시간 기준으로 추가요금은 9,000원이다.
멜론에서 받은 음악이 잘 활용되지 않는다.
문명으로부터의 탈출, 삶의 단순화.
다음에 내 초점은?
命理學 또 다른 기획여행.
5월8일 화요일. 중간 중간 비를 뿌렸다.
Zubili---Pamplona 20.4Km
3일째다.
14~15 세기에 지어진 Metropolitan Cathedral 이 있다. 고도는 446m.
7시45분 출발해서 공용 알베르게에 3시반경 도착했다.
풍광과 길은 A, 난이도는 없다.
캐나다에서 온 Dona가 피자를 나눠 준다.그녀는 살이 많고 하체가 비대해서 앉았다 일어날 때 힘들어한다.
도중에 도시를 관통한다.
지나가던 순례자가 사과 하나를 건네준다.
초코렛 아이스바를 2유로씩 내고 먹었다. 스페인의 전국의 빙과는 네슬레가 완전히 장악해 있다.
곳곳에 판넬로 아이스크림의 사진과 가격을 붙여 놓고 있다.
오늘숙박비는 6유로씩이다오늘도 어김없이 사다리 타서 침대를 배정 했다.
친구들은 발이 화끈하다고 하는데 나는 오케이다.
준비와 훈련은 결과에 확실히 들어 난다.
슈퍼마켓에서 산 고추그림 캔은 먹고 난 후 빈 깡통은 주전자로 쓸 계획이다.
굵은 고추를 약하게 염장 한 것으로 매운 맛은 하나도 없다. 스위트 하다.
그래도 고추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스페인 요리에 한 두 개씩 곁들여 나오는 음식 재료다.
우리 집 가훈은 야고보에 나오는 구절로 하자.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그리고 화내기는 더 더욱 더디 하라.”
종전의 가훈은 “냅사 둬!” 간섭하지 말고 그냥 놔두라는 의미였다.
내가 걷는 길은 삶과 같다.
지나온 길지금의 길가야할 길눈보라도 비바람도 꽃피고 새우는 평화로운 길도 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누구에게도 길은 존재한다.
서석은 後黑學을 얘기했다.
팜플로나는 막다라 돌다리를 건넌다.
공용 알베르게에 7유로 씩 내고 숙박했다.
시내로 나가 케밥 먹고 베레모를 하나 샀다.
투우 장면이 수놓인 베레모다.
헤밍웨이 케밥 집이다. 헤밍웨이가 다녀간 집인지? 상호가 그냥 그런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스페인 내전 때 헤밍웨이는 종군 기자로 참전을 했고, 이 전쟁의 무대가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로 탄생 된 것이다.
케밥의 맛은 그저 그렇다.
이 고장엔 鬪牛用 소를 시내 중심부에 풀어 놓고 사람들이 도망을 치는 축제가 있다.
7월 중순에 축제가 열린다. 이곳은 스페인의 17개 자치주 중의 하나인 나바라주의 州都다.
축제의 이름은 산 페르민 이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소몰이 행사인 Encierro 엔시에로 다. 투우경기에 쓰일 소를 사육장에서 풀어 놓고
구 시가지의 골목길 800여 미터를 질주해서 투우장으로 들어가는 소몰이 행사다.
사망자도 나오고 부상자들도 나온다.
1926년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뜬다, 에 소개 되어 세계 사람들이 기억하는 축제가 되었다.
이 도시는 헤밍웨이의 도시인 것 같다.
한 사람의 유명한 작가와 영화는 세월이 흘러도 살아 있는 스토리로 세계인들을 흡입하는 효력이 있다.
스틱의 안전커버와 전기 히터의 플러그를 잃어버렸다.
그런데 누군가 뜯지도 않은 다기능 멀티 플러그를 알베르게의 탁자 위에 놓고 갔다.
간단한 단순 플러그를 잃어버리고 멀티 플러그를 주웠으니 塞翁之馬인 셈이다.
그런데 혹시라도 놓고 간 주인이 다시 찾으러 오는 것은 아닐까?
뒤에 생각이 나면 얼마나 서운 할까?
타인의 불편을 상상하니 내 맘이 편치 않다.
중간에 비를 한 번 맞았는데 시내에 들어서자 강한소나기가 내렸다.
바람도 몹시 분다. 슈퍼를 찾는데 한 참을 헤매고, 미네랄워터를 샀는데 물이 짭 짜름 간이 있다.
더위방지용 소금 보충용 물인가?
5월9일 수요일. 맑음
Pamplona---Puente la Reina 24Km
4일차다.
12세기에 축조된 Romanesque Bridge 가 있다. 고도는 346m다.
銀의 길을 포함하여 1,900Km를 3월8일부터 두 달째 걷고 있는 울산에 있는 회사에 다니다가 퇴직한 30대
총각과 한 룸을 같이 썼다.
표정이 어두워 보이는 게 마음에 걸린다. 아직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한 것 같다.
끝없는 밀밭, 강낭콩 밭, 붉은 양귀비꽃 찔레꽃.....보랏빛 야생무스까리도 보인다.
풍력발전기도 많이 보인다.
이렇게 넓고 좋은 땅에 사는 국민들이 경제문제로 오르내리는 일이 이해불가다.
정부가 상환 능력이 부족해서 구제 금융을 요청 하는 일들. 신용등급이 급강하 하고....
보이지 않는 악마의 손이 경제를 지배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열심히 일하는 농부들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 말이다.
국민소득이 3만 불 이상이니 우리나라 보다 1.5배는 부자인 곳 아닌가?
엥겔지수에 영향을 주는 생활물가는 우리 보다 확실히 싸다.
헐떡이면서 오르는 산언덕에서 길가의 식용달팽이를 줍는 현지인을 봤다.
큰 검정개를 짐꾼삼아 걷는 이도 보이고 노부부가 카트를 끌고 당기며 걷기도 한다.
옛날에는 당나귀도 끌고 걸었다고 하는데.....
당나귀 한 마리 장만해서 양쪽으로 짐을 달고 힘들 때는 가끔 타기도 하면서 간다면 훨씬 좋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은 이 길을 왜 걷는가?
알베르게에 들어와 저녁주문 시 賢이 짜증을 내서 걸쭉한 욕으로 공격해버렸다.
한쪽이 치 솟아 오르면 눌러주는 것이 같이 함께 하는 길 걷기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스스로들 미리 알아서 음식을 주문을 하지 않았다고 짜증을 냈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들 각자는 음식의 자유로운 선택에도 모두 아직 익숙하지 못하다.
다 챙겨줘야 하는 본인의 입장에서도 짜증 날 것이다.
이 알베르게는 인쇄 된 종이에 영어로 메뉴를 표시하고 각자의 선택 메뉴를 체크하게 되어 있다.
확실하고 빠른 음식주문 방식이다.
8유로 받는 알베르게는 훌륭하다. 세탁실 신 닦는 곳 화장실과 샤워 실이 잘 갖춰있다.
나는 샐러드 전통소시지 요고루트 로제와인을 시켰다.
서석은 로제 와인이 처음인 모양이다.
햇볕이 따갑다. 밀린 빨래들을 모두 빨았다.
다음에는 銀의 길 천 킬로 한번 도전해 볼까? 혼자 마음속으로 다음을 세워 본다.
우리 집 가훈은 야고보 전서에서 따서 정하자. 거듭 다짐을 한다.
듣기는 빨리하라.말하기는 더디 하라.화내는 일은 더욱 더디 하라. 세상에 많은 말 중 이 말처럼 절실한 말은 없을 듯하다. 서석이 발에 물집 생겼다. 본인이 뜸을 직접 떴다.
뜸을 뜨면 70도 정도의 뜨거움에 물집이 터져 나온다.
敦이 허벅지에 상처가 나서 특효약 쎄레스톤지를 줬다.
정말 중요하게 내 스스로의 경험으로부터 알아 낸 약이다.
먼 길이나 등산 시에 살과 살의 마찰로 상처가 났을 때 최고의 치료제 이니, 이런 길을 나설 때 상비약이다.
남자들의 外道 이야기로 걷는 고통을 달랬다. 친구들 끼리 이런 길을 걸을 때 발설하는 경험담은 듣는 자도 말하는 자도 고소한 면과 속 시원함이 같이 있다. 뻥 튀김도 같이 있고.
한가한 저녁 시간에는 혼자 걷는 총각과 모 대학 휴학여학생의 멘토를 했다.
난 병사와 아가씨. 내가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스토리가 영화가 된 이야기를 해 줬다.
무언가 집중하면 타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인생사는 아주 작은 일들도 가꾸고 키우면 큰 파장이 될 수 있다.
이 길이 어떤 길인가? 성경 속에 있는 전설 같이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 거창한 성당이 만들어지고,
그 스토리의 현상화가 많은 이들이 이 길을 찾아서 자신을 세워 가는 위대한 길로 변하지 않았는가?
오늘의 길은 난이도는 보통이다.풍광은A,
날씨는 끝 무렵에는 태양이 灼熱 얼굴과 팔이 탔다.
5월 10일 목요일. 맑음.
Puente la Reina --- Estella/Lizarra 22Km
5일차다.
12세기에 지어진 Church of San Pedro de la Rua 가 있고 고도는 426m 다.
일기예보는 화창이고 화씨78도(26.1도/섭씨)다.
어제 밤 독일아줌마는스페인 텝 워터(수도 물)는 전혀 문제가 없단다.
賢 이야기로는 독일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숙소와 식당을 찾아 가면 실패가 없다고 한다.
그 만큼 그네들은 준비도 철저히 하고 연구도 많이 한다는 이야기겠지.
개 데리고 가는 사내는 독일인이고 개는 도팔멘 믹서종이라고 말했다.
분당에서 온 아주머니 둘은 세례명이 하나는 마리아 또 하나는 마르안느란다.
우리 팀에도 바오로가 있고 모세가 있다.
바다를 열게 한 모세와 제자중의 으뜸 제자인 바오로와 같이 가는 순례길이니 순탄 하다.
비가 오지 않고 날씨가 받쳐주는 것은 모두 모세의 공이라 했다.
바닷물도 가르는데 비구름 정도야........
흐르는 물가에 앉아 둑일 아줌마에게 서석이 뜸을 떠 줬다.
유명한 한 의사 라고 구라 쳤다. He is a famous oriental doctor.
무료봉사이긴 하지만 국내라면 의료법 위반 행위다.
도중에 점심은 또띠아(계란에 감자 버물려서 익힌 것)외 신 라면을 추가했다.
주인장이 자기는 반절은 한국인이라고 친절히 대한다.
부인이 한국인인가?
길가의 이 팝엔 한국인들이 많이 다녀간 흔적이 있다.
오랜만의 한국 냄새에 흥분해서 김치라면 받던 서석이가 라면을 엎질렀다. 거시기 델 뻔.
2유로 받으니 비싸지 않다.
주인장은 추가로 끓인 라면은 계산에서 뺀다.
길가에서 사뿐사뿐 걸어가는 프랑스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을 걷는 독일 프랑스 이태리 등 많은 유럽인들은 영어에 능숙하지 못해서 서로 더 말이 잘 통하는 것 같다. 인사는 모두 Where are from? 으로 시작이다.
코리아라 하면 꼭 남인지 북인지를 묻는다. 남쪽은 대충 알려 지고, 북이 세습 뉴스로 많이 알려 진 듯하다.
이 프랑스여인도 까미노를 걷는 한국 사람이 참 많다고 한다.
프랑스 대통령이 바뀌었단다. 나를 제외한 친구들 모두 발병이 났다.뜸을 뜨고 바늘을 통과 시켰다.
가는 실 보다 굵은 실을 통과 시켜야 효과가 있다. 가는 실은 흘러나오는 물의 통로를 막아 버린다.
커피 허브 코코아 끓여 마셨다.
터널 벽엔 바스크나라에 자유를! 여긴 스페인이 아니다 라는 글이 보인다.
공용 알베르게는 Full 이어서 유스호스텔로 찾아갔다.
오르막의 언덕이 걷기와 더위에 지친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
난이도 는 약간 풍광은 중간.보리밭 밀밭 포도밭이 많다.
붉디붉은 양귀비도 지천이고 달팽이가 많다. 길가의 풀들을 모두 달팽이가 갉아 먹어 치웠다.
유스호스텔의 체구가 작은 여자는 친절하다.
저녁은 순례자 메뉴로 했다. 팝 안에는 나이든 건달들이 폐를 돌리고 있다.
동네 팝은 항상 여자들은 많지 않고 남자들의 놀이터다.
시간이 빨라서 식사를 기다리는데 한참을 썼다.
스파게티 포크 무스타드 내가 선택한 메뉴다.스파게티를 친구들에게 나눠 주다가 賢에게 지도 받았다.
지나친 배려나 관심은 오히려 상대에게 불편을 준다.
오래 묵은 친구라 해도 중간 접촉이 거의 없던 친구의 관습을 잘 이해하지 못한 현상일 것이다.
5월11일 금요일 맑음.
Estella/Lizarra --- Torres del Rio (29Km).
6일차다.
Torres del Rio 까지 29km를 계획 했으나 발 고장이 심해서Los Arcos의 별두개짜리 MAVI에 묵었다.(21.20Km) 점심은 뛰고 순례자메뉴로 샐러드 생선 아이스크림에 와인과 물이다.
중간에 賢놓쳤다 가 합류했다. 敦이 제일 힘들어 한다.
밀밭사이로 난 길을 친구들은 밤에 걸으면 좋겠다고 했다.길은 지루하다. 날씨는 쨍 이다.
난이도 높다. 풍광은 그저 그렇고. 벌써 시들해 졌나?
나도 서석의 침도 맞고 틈도 떴다.오른발 뒤꿈치 부분은 바늘이 들어가지 않는다.굳은살로 궂혀질 거 같다.
식당에서 1회용 플라스틱 컵을 각자 휴대케 해서 인스턴트커피를 끓여줬다.
이런 것이 생존력이다.
프라스틱 1회용 컵은 지속적으로 휴대키로 했다.
잠들었던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 한다.오후6시 종소리가 들린다.
이 넓은 국토, 한 때는 세계를 지배한 나라 지금은 왜 어렵지?
이라체 수도원 포도주는 한 모금 만 마실 수 있도록 찔끔 찔끔 나온다.
서석이 포도주를 피처럼 묻혀가며 한 모금을 마신다.난 물병 하나를 비우고 여러 번 레버를 당겨 서너 모금
담았다.
이번 통과지역에 2차 대전의 격전지가 있다는데 확인 못했다.
5월12일 토요일 맑음. Torres del Rio --- Logrono 20Km 인데 어제 다 못 걸은 7.9Km를 더 하면 27.9Km 다.
7일차다.
Cathedral of Santa Maria de la Redonda 로그료뇨 성당이 있고 고도는 384m 다.
기침을 심하게 하느라 잠을 설쳤는데 목에 머플러하고 시럽과 조제해 간 감기약을 한 봉지 먹고 나니 신기하게 기침이 멈췄다.
이런 치료도 이 길이 주는 은혜인가?
길과 자연은 우리에게 자연치유력을 준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걷기에 지쳐서 파김치가 된 몸도 오후에 쉬고, 하룻저녁을 자고 나면 거뜬해 진다.
賢은 자다 깨다해서 잠이 엉망이라고 했다.
사람마다 느끼는 길은 다르다.배낭이 몸속으로 적응된듯하다.
그런데 어느 날 어느 시간대는 몸속으로 쏙 들어오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몸에서 멀리 빠져 나가려고 용을 쓰는 듯하다.
몸이 길속으로는 좀 더 기다려보자.
배낭의 무게를 줄여 보려고 애 쓰던 생각이 난다.
어디서나 알베르게 숙소에서는 배게를 주기 때문에 처음에 넣었다가 뺀 배게는 잘 한 일이다.
반바지는 태양 열 때문에 적어도 걸을 동안은 쓸모가 없다.
반팔 티도 불필요 한데 나는 거의 반팔 티다.
팔 토시를 갖고 오지 않았다면 큰일 이었을 것이다.
런닝 3개도 불필요 한 것이었다. 무게를 줄인다고 면도자루는 빼버리고 면도날만 넣은 것은 너무 했고....
비누나 치약을 줄이는데도 애를 썼는데........
느끼는 배낭의 무게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6시40분에 출발했다.
야생마늘과 솔방울을 배낭 뒤에 달고 걸었다.
야생마늘과 고사리를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오는 독소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시식하지 못했다. 고사리는 삶아서 말리는 것이기도 하고....
길가의 많은 야생 복숭아나무는 순례자들에게 열매를 제공하는 걸까?
관리 되지 않는 복숭아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중세부터 걸었던 이 길에 순례자들이 먹고 버린 씨앗이 싹을 터서 저런 야생 복숭아로 자란 것은 아닐까?
21Km 진출한 Viana 에서 삼겹살 튀긴 요리(이름은 모르고)와 닭 가슴 살 요리와 샐러드로 식사했다.
敦이 걷기가 어려워 택시 불러서 Lognos까지 8킬로 이동 했다.
현지에서 처음으로 현지의 전화와 연결해 본 순간이다.
敦발은 발바닥 앞 쪽에 궂은살이 있는데 걸을수록 이것이 생살을 쏙쏙 쑤시는 게 마치 바늘로 발바닥을 쑤시는 거 같다고 한다.
공립 알베르게에 7유로씩 주고 숙소를 결정했다.
뒤에 걸어온 賢는 자리가 없어 성당의 알베르게로 갔다.
저녁은 시내로 나가서 난 스테이크 친구들은 갑오징어로 했다.
오징어 요리가 그럴싸하게 보인다. 같이 만났던 마리아도 동석했다.
바나나와 사과를 내일 간식으로 준비했다.
서양인 중에 아들과 80쯤 되는 나이든 노인이 열심히 걷는다.
지나오던 팝에서 힘들게 보여서 굿 모닝 써 하고 경칭을 써서 인사를 건 낸 팀이다.
그 노인은 자기 전에 내복으로 갈아입고 침낭 속으로 쏙 들어 간다.
도시가 규모가 있고 알베르게가 도시 중앙이어서 밤늦게 까지 소란스럽다.
敦이 걸어서 이동하기가 어려울 듯해서 Info 에 가서 프랑스 길 설명 책자도 얻고 택시 영업집도 알아 놓았다. 이 동네 택시는 운송회사가 있는 게 아니라 팝의 여주인이 같이 하고 있는 일이었다.
팝의 딸이 영어를 하기 때문에 우리들의 의사가 잘 소통이 되었다.
내일 아침 택시 시간과 이동해 갈 알베르게, 숙소에 대한 예약까지 마쳤다.
5.13일 일요일 맑음.
Logrono --- Najera 29.6Km.
8일차다.
나헤라 팜플로나 왕국의 수도 였고 918년과 1,076년의 구축물이 남아 있다. 고도는 485m 다.
6시 반에 성당 앞에서 賢과 만나 이동했다.
날씨는 흐리고 바람이 좋아 걷기에는 그만이다.
Navarrete 까지 이동하고, 敦과 서석은 우리들 배낭과 함께 택시로 이동했다.
택시가 어렵게 소통되었다. 짐 없이 이동하니 날 것 같다.
뒤꿈치가 물이 잡혀 아프다알베르게에 도착해서 물 빼고 바늘 통과시키고 뜸떴다.
항문부분에 마찰로 인해 상처가 나서 약 처리를 했다.
아침은 크로아상과 하몽 바게트에 우유커피, 점심은 시금치 스파게티에 오렌지 주스로 했다.
포도넝쿨다루는 기술에서 플라타너스 platan 조경기술이 발전되었음에 틀림이 없다.
스페인 역사를 들었다.이사벨여왕의 태평시대.
콜럼버스의 지원(항해술의 도사인 네덜란드의 콜럼버스에게 이사벨 여왕이 탐험에 필요한 일체를 지원 했다)신대륙의 진출과 미국독립.
십자군전쟁.
스페인의 내전과 프랑코.
갈리시아에 자유를!
한국가의 리더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교황청의 부패.
종교개혁.
교회의 부패종교를 앞세워 사람들을 홀린다. 역사는 진화하지 않고 반복할 뿐이다.
컴퓨터 열고 식구들과 소통했다. 데이터 로밍을 하루 풀었기 때문이다.
먼저 간 식구들이 4인용 방을 구했다. 행운이다.인당 8유로 씩 주고 숙소를 정했다.
다른 순례자들과 섞이지 않고 우리만 한 방에 머문 다는 것은 편안한 일이다.
여럿이 잠을 같이 자는 경우에는 코를 고는 사람이 한둘은 꼭 있기 때문에 우리 중 코골이가 있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데 이렇게 우리만 있게 되는 날엔 누군가 코를 심하게 골면 모두 신경이 쓰여 잠을 설친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고무줄 큰 것으로 고리를 만들고 준비해 간 빨래 줄을 연결해서 코골이 친구의 팔에 미리 걸어 놓는다.
코를 골면 잡아당기는 원리다. 코 고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 비행기 속에서 준 眼帶로 마스크를 하고 자는
친구가 측은해서 줄 당기기를 그만 두기로 했다.
저녁은 pilgrims's 셋 메뉴샐러드 생선 타드 와인으로 했다.
성당 위의 황새를 원 카트 사진 속에 담았다.
황새들은 우리나라 까치처럼 높은 곳에 큰 집을 짓는데, 대게 큰 굴뚝 위에 짓고 새끼를 친다.
이 식당은 Wi-Fi free 다.
수용과 수현(서석이 따님) 찬웅에게 카카오 보냈다.
5월14 일 월요일 맑음..
Najera --- Sto Domingo de la Calzada 21Km.
잔여 거리:562.1Km. 9일차다.
순례자들의 Monument 가 있고 고도는 638m 다.
4시 반에 기상 세수했다.
늘 제일 먼저 부시덕대는 소리에 친구들이 잠을 깬다.
이런 불필요한 부지런 떨기는 어릴 때 초등학교 시절 방학을 하면 동네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 온 동네의 아이들을 불러서 4H 운동으로 동네 청소 하던 시절부터 오래된 습관인 걸 어찌하랴?
더구나 갖고 간 물건들은 모두 비가 올 땔 대비해서 비닐 백에 넣고 있었으니 소리가 요란하다.
오늘은 21m구간 평탄할 것이다.오른쪽 발뒤꿈치는 물을 빼고 실을 달아 놓았더니 오케이다.
왼쪽뒤꿈치에 다시 물이 차기 시작하는 듯하다.
어제는 그늘이 많았는데도 노출 된 장딴지 부분은 sun burn되어 쓰라리다.
그래서 순례길 산티아고에서는 실외에서의 반바지는 불필요한 옷 이다.
가능하면 긴 바지 착용을 원칙으로 정했다.모자에 그물망 달고 얼굴 가리게 쓰고 팔 토시를 준비한 건 정말 잘한 일이다.그
래서 서양인들에게 나는 bee벌/elephant코끼리/wood packer딱 다구리가 됐다.
눈 만 내 놓고 얼굴을 가리고 코 부분이 돌출되어 열려 있는 한국 특수 해 가리개를 쓰고 다녔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여성분들은 잘 착용하지만 남자들은 사용을 거의 하지 않는 물건이다.(이름은 모르겠다)
여성들도 예외 없이 화장실이 없는 길가에서는 용변을 봐야 하므로 여성용 등산용 바지나 반바지에 지퍼를
달아 치마가 되게 하면 여성들도 엉덩이를 모두 들어내지 않고 용변을 몰 수 있을 것이다. 산티아고 , 등산 용 다용도 치마바지 말이다.
우산을 양산으로 배낭에 꽂고 펴서 달고 가는 서양인을 우리는 엄브렐러맨umbrella man) 으로 불렀다.
골초인 唯一無二한 일본 여자는 가오로꼬 소리聲 아들子이니 Voice's son이다. 그래도 같은 동양인이어서
살갑다.
왜? 걷고 있는가?靈肉을 정비 하기위해서. 카미노 길은 영혼과 육체의 정비창고인가?
배낭에는 H2O라는 표시가 있는 곳이 있다.
물병을 배낭 속에 넣고 물이 마려울 때 배낭을 내려놓지 않아도 걸으면서 물을 마실 수 있는 편리한 것이다.
대부분은 큰 자루 같은 곳에 물을 담아 넣고 연결된 호스로 물을 마시는데, 간단한 물병 마개에 끼어 있는 것이 제일 간편하다. 나중에 하나 사야겠다.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敦과 서석은 걸으면서 서로의 배낭 속의 물을 빼서 마시면서 간다.
swap drinking method 다. 이 길이 천국을 상상하면서 걷는 길이기도 하니 기왕이면 내 배낭의 물을 다른 친구가 마시고 나는 그 친구의 물을 마시면서 걸으면 천국 연습 아닐까?
누군가 삶은 예행연습이 없다고 했다.좋은 목표, 좋은 방향을 향해 한 순간 한순간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삶의 길목에는 예행연습의 구간이 많다고도 했다.
예행연습은 실제처럼 철저하게!실제는 예행연습처럼 편안하게!
그러면 우리의 인생길이 평탄해질 것이라 했다.
길을 가는 것은 삶과 똑 같다. 이 길을 걷기 위해 예행연습을 실제처럼 했다.
그래서 실제의 길이 편한지도 모르겠다. 천국을 향하는 길도 예행연습이 필요 하지 않을까?
죄를 많이 졌다면 지옥 가는 길도 체험이 필요 할 것이다.
어린 시절 들었던 지옥과 천당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지옥도 천당도 모두 젓가락을 긴 것을 갖고 있는데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만 먹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하나도 먹지 못하고 음식을 모두 버리고 있고, 천당 사람들은 서로에게 음식을 긴 젓가락으로 먹여 주고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더라는 이야기다.
바람이 시원하고 길도 순탄하다.아름다운 길이다.
천국의길 하늘과 밀밭 하나.밀밭은 밀의 품종에 따라 연녹색 그냥 녹색 청 녹색이 있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밀밭을 지날 땐 연, 녹, 청 밀밭은 모두 검정색으로 밀밭으로 변 한다.
중간을 가로 지르는 노란 유체 꽃은 노랑 카펫이다.
간간히 피어 난 붉은 양귀비 무더기는 정열의 나라 스페인의 원색으로 느껴진다.
투우를 할 때 소를 홀리는 수건도 붉은 색이고, 플라밍고 춤을 출 때 치마의 안감도 붉은 색이 아닌가?
자연의 강한 색은 민족의 성품을 만들어 낸다.
영국인들은 2차 대전 때 노르망디 전선에서 피를 흘리면서 죽어 가던 병사들의 모습을 붉은 양귀비에 매치시켜서 전쟁의 종료일인 11월11일 전후로 종이 양귀비를 가슴에 달고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이들을 추모하고 그들을 돕는 기금을 조성한다.
영국의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던 작년11월에 중국에서는 영국총리가 가슴에 양귀비를 달고 중국에 오는 것에 시비를 걸었다. 중국의 아편전쟁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양국의 외교적 협상으로 결국 영국총리는 양귀비를 가슴에 단체로 중국을 다녀갔다.
우리민족의 흰색과 검정색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밖은 희고 속은 검은 인물들이 많이 살고 있는 나라는 아닐까?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 희고 속 검은 건 너뿐인가 하노라.
유독 마음속이 검은 사람들이 우리에겐 많이 있다.
검찰을 들락거리는 이 나라의 리더들을 볼 때 마다 생각나는 일이다.
남의 좋은 일에 축하를 할 때 진심보다는 배 아리를 많이 하는 우리네인가?
어려움엔 같이 걱정하고 좋은 일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일에는 서양인들이 우리보다 훨씬 진지하고 진실한 것 같다.
스페인의 내전처럼 좌우가 충돌해서 같은 민족 끼리 殺傷이 이뤄진 그 모습 그대로를 우리가 연출했다.
세계2차 대전 이전에 발생한 것이 스페인이고, 2차 대전 이후에 일어 난 곳이 우리다.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의 잊혀 진 죽음은 무엇을 일깨우는가?
키 작은 군인이 혁명으로 집권하여 39년을 통치 하고, 스페인의 기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것과 우리의 5.16의 주인공은 잘 닮아 있다.
프랑코는 “나는 오직 신과 역사 앞에 책임 질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좋은 말 같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히 오만한 말로 느껴진다.
친구 하나가 역사는 발전하거나 진보 하지 않고 반복만을 지속한다고 했다.
종교도 비판적으로 논하면 끝이 없다.
거대한 종교시설의 역사의 흔적과 출현은 수탈의 역사가 아닌가?
자연의 돌을 정으로 찍어서 만들어 냈던 민초들은 후손에게 물려 줄 위대한 돌바닥을 만들었지만
糊口之策으로 체측 아래 죽으라고 일만 했을 것이라는 친구의 말에 공감이 간다.
현대에서의 기업 속에서의 근로자의 역할도 같다고 일갈 한다. 경영자 역시 돌 작업 구간의 감독자 일뿐이라고.......... 강낭콩을 심은 곳은 맨 흑도 조금 보인다.
콩밭이 너무 넓어서 시작과 끝이 보이질 않는다.
멀리 높은 산 엔 아직 흰 눈이 보인다.
하나(느)님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라 부르고 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 알았다)감사 합니다.
저는 교회도 잘 나가지 않고, 찬송가는 한 개도 제대로 모르지만이런 행복 주심에 감사 합니다.
돈 스톱부부(큰 길 가의 STOP 간판에 누군가 Don't와 Walking을 낙서한 간판 아래서 이들 부부를 만났고,
그래서 서로 돈 스톱으로 인사를 나누는 사이다)가 지나가면서 손을 번쩍 들고 흔들어 준다.
프랑스에서 온 女 의학도와 동행을 하고 있다.
알베르게는 도네이션이고, 5유로 냈다.거꾸로 걷는 사람 몇 명을 봤다.
아침은 초코 빵과 거피. 중식은 필그레노스 메뉴를 12유로로 아스파라가스, 폭립, 아이스크림으로 했다.
음식의 질이 훌륭하다.
시내 중심가를 돌아보고저녁은 한국인 11명이 같이 해먹고 우리가 50유로 식 재료비를 부담 했다.
모 은행 퇴직자인 본부장 둘은 59일정으로 포르투갈 까지 간 단다.
5월15일 화요일 맑음.
Sto Domingo de la Calzada --- Belorado 22.7 Km.
10일차다.잔여거리는 539.4km다.
고도는 772m 다.
고속도로 따라 걷는 길이 많은 힘든 길이다.
敦은 발의 공이(Corn)로부터 오는 통증이 심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심리적인 안정과 고통완화를 위해서 한국의 종합병원 장이고 정형외과 닥터인 후배에게 전화해서 내가 아프다고 치료방법과 개선방법을 문의 했다.
진통제로 완화시키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답이다.
이렇게 힘들 때 의사와 전화 문진 내용을 알려 주는 것만으로 고통이 조금은 완화되길 기대하는 마음이다.
내일은 27km 계획인데, 일단 진통제를 먹고 가다가 敦은 택시로 이동여부를 판단키로 했다.
집사람과 문자(Text)해서 이달 통신비 와 揆의 골프장 서류 챙겨는 일을 상의 했다.
골프장이 파산 신청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발은 양쪽 뒤꿈치를 실로 통과하고 排水 중이다.
초판에 힘들고 후반에는 끄떡없다. 지구력도 양호하다.
걷다가 한동안씩 꼭 졸리는 일을 빼고는......
잠이 매일 부족해서 걷는 중간에 졸음이 쏟아지고, 발을 헛디딜 것만 같은 시간대가 있다.
길가에서 뽑아 마시는 콜라가 잠을 깨우는 특효약이다.
벨로라도 성당 위 탑에는 황새가 네 마리나 집을 짓고 앉아있다.
시간마다 성당(교회)의 종이 울려 시끄러울 텐데 황새는 왜 꼭 종탑 위에만 집을 짓는 것일까?
그 옛날에는 사람들이 황새를 잡아먹기도 했는데, 성당 종탑위에 집을 짓고 사는 황새는 신성시해서 잡아먹질 않고 그냥 뒀고, 그러다 보니 황새들은 자연스럽게 종소리가 시끄럽지만 이곳이 가장 안전한 보금자리로 여기는 世世孫孫 최고의 보금자리로 고착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엉뚱한 생각이다.
종각 뒤로는 스핑크스 바위가 보인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 바위는 스핑크스 바위처럼 보였다.
영어가 유창한 알베르게의 리셉션리스터(호스피텔러)는 한국 서울에 3번이나 사이클 관련 비즈니스로 방문했고 서울은 아름다운 도시라고 너스레를 떤다.
한국을 다녀 간 분들은 늘 호감을 갖고 이야기 한다.
이 알베르게에는 일어 안내문이 있다.한국인 방문객이 몇 배나 많은 데도 한국어는 쏙 빠져 있다.
왜 그럴까? 문화 예술측면의 유럽 국가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아직 요원하다.
저녁은 10유로 7시 반 시작하고, 아침은 6시부터고 3유로란다.
이 작은 도시가 오늘은 축제일 이라고 상업시설은 거의 모두크로스다.
쇠퇴해 가는 기운이 가득한 시골이다. 중앙 스퀘어의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좋다.
이네들은 포도원의 포도나무를 다루는 기술이 탁월해서 가로수인 플라타너스도 과감하게 전정을 해서 일정 높이로 자라고 나면 위로 뻗어 나는 가지는 잘라 버리고, 옆으로 나무와 나무의 가지들을 연결되게 유도해서 인간이 그늘로 필요로 하는 만큼만 남겨 둔다.
나무가 오랜 세월 뒤 틀린 모습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잔인하게 보인기도 하지만 또 다른 측면으로 보면 아름다운 예술적인 나무로 보이기도 한다.
사물을 보고 사고하는 모든 것은 주관적이다.
저녁 무렵 동네의 광장에서는 축제를 한다.소녀들이 유희하고 처녀들이 탱고 춤을 춘다.
농사일과 관련된 축제다. 시간에 맞춰서 정장을 한 노인들이 쏟아 나온다.
청년들은 모두 돈 벌러 외지로 나갔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전쟁이 발발 해서 남자들이 외지에 나갔을 시절에도 이런 모습을 이 마을은 유지 했을 것이다.
작은 잡화를 파는 가게에서 친구들에게 과자를 한 봉지씩 사 주고 서석에게는 뜸을 뜨는데 필요한 라이터를 샀더니 꿀물이 들은 눈깔사탕을 덤으로 준다.
이렇게 덤으로 주는 우리의 옛 시골의 정감이 그대로 남아 있어 정겹게 느껴진다.
저녁식사는 묵고 있는 쿠아트로 알베르게의 식당에서 빈 스프, 생선과 양파, 과일칵테일 와인으로 했다.
와인 병이 요란하다. 모두 맛있다.
알베르게에서 부속으로 운영하는 식당이지만 비교적 전문화된 제법 격식을 갖춘 식당이다.
인포 센터에서 프랑스루트 안내 책을 4개 받아 친구들에게도 나눠 주고 목걸이 사고,
내일 친구 둘이 이동할 택시와 다음 알베르게를 예약했다.
처음 미리 숙소예약을 한 셈이다.
걷기는 육체적으로는 고통이다. 정신과 영혼에게는 양분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일 처리는 굿이다. 프리 Wi-Fi 열렸다.
5월16일 수요일 맑음.
Belorado --- Ages 27.4Km .
잔여거리는 512Km.
11일차다.
16세기의 Parish Church of Santa Eulalia de Merida 가 있고, 고도는 971m 다.
발이 탈이 난 敦에겐 문제가 있는 거리다.
택시 대책이 필요했다. 배낭만 차로 보내는 방법도 있지만 하루정도는 Full로 발을 쉬게 해 줘야 될 것 같은
판단이다. 계속 발이 악화되면 다른 대책도 필요하지만 개선이 되면 다시 걸으면 된다.
인간의 신체는 자연적인 복원능력이 강함을 믿는다.
나는 걷는다. 길게 지속적으로 걷는 일은 마음과 육체에 확실한 치료효과가 있다.
아침은 알베르게에서 3유로씩 내고바게트 빵과 주스와 커피로 했다.
유럽인들의 가장 간단한 식사의 모습일 것이다. 돈도 들지 않고 간단하고 좋다.
커피는 원두를 근본으로 하되,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서 섞어 먹는 카페 리체가 보통이다.
애소프레스에 우유를 탄 것이니 커피 라떼다.
애소프레스 싱글은 카페 쏠로 쁘띠이고, 애소프레스 더불은 아메리카나 커피, 카페 쏠로 그란데로 불린다.
배가 부를 땐 쏠리 쁘띠로 양을 줄이는 게 내겐 깔끔하고 좋다.
KAIS(동네 팝의 이름) 로 이동해서 친구 둘은 택시로 9시에 출발키로 했다.
작은 배낭에 우의와 물과 카메라만 챙겼다.
같이 걷는 賢의 일용품도 내 작은 배낭으로 옮겼다.
배낭이 몸 안으로 쏙 들어온다. 완전이 몸과 하나다.
산 속에 자동차에 이동 가판이 차려져 있는데 음료와 과자와 과일이 기부금제다.
넉넉한 마음이 들어 좋은데, 파는 사람에게도 이 방법이 이득이 되는 것 같다.
어차피 1유로 아래의 물건들이기 때문이다.
점심은 초코과자 머핀 카페레체로 5.8유로다.
1050고지의 산을 넘는다.평지에는 속도를 냈다.
서양인들의 시속 5Km 보다 훨씬 빠른 경보로 이동을 해 본다.
24Km 까지 시속4.5Km 최고기록이다. 평지는 거의 속보다.
이 길을 가는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사진을 찍지도 않고 거의가 걷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그냥 걷기에만 몰두하는 것처럼 보인다. 속도가 무지 빠르다.
산속 길에서 군인들을 보았다. 소대 단위 정도의 훈련이듯 하다. 여자들도 합동으로 편성 되어 있다.
팝에서 만난 여군 한명과 셀카(스스로 찍는 사진)로 찰깍 했다.
이동하는 山의 양쪽으로는 고사리가 천지다.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고사리가 이들에게는 독이 있는 풀로 방치되고 있다.
관목이 없는 지역이다. 노랑꽃, 글라디올러스 gladiolus 를 닮은 흰 꽃 들이 너무 아름답다.
예약하고 친구 둘이 택시로 미리 도착해서 진을 친 알베르게는 넘 좋다.
아침저녁식사를 포함 인당 20유로란다.
세트로 장사를 하는 셈인데 pilgreno 들에게도 편리하고 좋다.
저녁 식탁은 수원에서 온 스페인어를 잘 구사하고 와인을 잘 마시고, 양고기를 맛있게 선택하고 혼자서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뉴욕에도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음)도 둘러보는 미즈(세례 명 미래암)양과
에콰도르에서 온 스페인어 사용 여성과 합석했다.
검은 피부를 갖고 있는 순례자는 드믄 편이다. 러시아인도 중국인도 이 길은 아직 걷지 않는다.
그런데 왜? 한국인들이 이 길을 유독 좋아 하지?
왜 걸어? 영혼의 길이니 걷지.
세계인들이 걷는 이유는 성경과 연결이 되고, 거대한 성당과 연결이 된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걷는 길이다.
전설이 꽃 피고, 지금조차도 많은 이들의 역사와 전설을 만들어 내는 2,000년의 최고의 역사의 길이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알베르게의 빨래 줄에 빨래를 걸어 놓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모태 기독 신앙인인 賢의
성경얘기 잘 들었다.
주일 학교 때 들었던 이야기 그대로를 잘 도 기억한다고 敦이 놀라워한다.
가끔씩 심리적인 불편도 동행하고 있는 영혼을 함께 하는 소중한 친구들이 우리 넷이다.
기독교인 1명, 천주교 신자 2명, 모두 오랜 신앙생활과 내공이 있는 친구들인데 종속,
맹목 신앙이 아닌 유구한 기독교의 역사에 대한 건전한 비판적 인식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다.
빛과 그림자 모두를 어우르는 친구들이다.
날씨 굿이고, 오후엔 뜨겁다.걷는 길은 좋다.
오늘 묵은 아주 작은 마을인 아게스는 16세기에 형성된 마을인데 독특하고 아름답다.
집집마다 넘버링이 되어있고 고색창연한 집과 벽, 수준 높은 조경이 아름답고 창의적인 설치미술, 동네화단과 성당, 단연코 지금까지 본 마을 중 최고다.
누군가 한 사람의 탁월한 예술가가 이 마을에 거주 하고 있을 것 같다.
박정희시대의 보고 가는 마을이 생각난다. 오늘이 5.16이어서 그런가?
새마을 운동 초기로 독으로 묻은 화장실을 시멘트 콘크리트로 개조하고, 도지사인 현역 장군이 마을에 들려 이장과 사진을 한 장 찍고, 화강석 돌로 보고 가는 마을 이라는 간판을 세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예술마을과 새마을은 차원이 다른 마을이다.
서석 코 골기 방지를 위해 끈으로 묶고. 핸드링을 채웠다.
敦이는 밤에 화장실에 갔었는데 화장실 안에서 鼻音을 들었단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은 동물들 중에서도 복잡함이 끝이 없다.
나만 알고 있는 나, 다른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나, 나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잘 알고 있는 나,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나조차도 나를 모르는 나.....
5월17일 목요일 날씨 맑음.
Ages --- Brugos 23Km.
잔여거리 489Km.
12일차다.
17~18세기의 Church of Nuestra Senora de la Calle 이 있고 고도는 740m 다.
퇴직 후의 일기,
희망리스트(Bucket List) 내 말이 많았다.
침묵의 길 아닌가?영혼을 살피는 길이 되자.
어제 저녁의 메뉴는 빠야야와 포크 여러 가지 Various과일이었다.
떠나기 전 몸 상태가 아픈 곳이 많았는데 정상됨에 감사한다.
걷는 힘 듬 때문에 다른 고통과 아픔들은 잊혀 진 것인지도 모른다.
잘 잘 수 있고 잘 먹고 잘 배설됨에 감사합니다.
靈肉은 무엇인가?오늘부터 영혼의 길을 간다고 서석이 一喝했다.
땅은Soil 이고 영혼은Soul 이다 .땅은 아래 속으로 있고, 영혼은 위에 있는 것.
영혼이 육체를 잠시 빌려 쓰는 것 인가? 세상 여행이 끝이 나면 肉은 땅 속으로 In 하게 되고,
靈은 공중으로 Up 하게 된다.
내 몸은 내가 안다.
영혼은 내가 모른다.내
영혼은 어떤 모습인가?
선인가? 악인가?
사랑인가? 증오인가?
자갈길을 오른다.
길의 반절은 보로고스 시내를 관통하는 멋없는 길이다.
서석 마나님 문자가 감동적이다. 남편인 서석이 폰 문자로 고맙고 사랑한다.
해서 34년 만에 느끼는 행복이라고....
우리는 가장 필요하고 영원한 동반자엔 부인에게도 좋은 말은 인색하고 험한 말을 잘 한다.
도시로 들어오는 도중에 중식당 만나서 4인 메뉴 푸짐하게 먹었다.채소 새우칵테일샐러드, 볶음밥 쇠고기
요리, 닭 날개, 닭 부드러운 chop요리, 새우버섯죽순요리를 30유로 내가 부담했다.
유럽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도시에는 어느 곳이나 중국음식점이 있고, 가격도 거의 평준화 되어 있다.
영국의 남부 에서도 인당 5.9유로 정도면 실컷 먹었던 기억이 있다.
모처럼 우린 배불리 먹고 포식을 했다. 우리 돈 45,000원에 네 명이 실컷 먹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도시를 관통하는 길은 힘들다.
날씨는 흐리다가 맑아졌다.
약국에 들려 발바닥에 사용하는 콘 스펀지 sponge를 구했다.
발바닥 아픈 곳 주변을 스펀지로 감싸고 가운데는 구멍을 내서 편하게 걸을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敦도 賢도 필요한 물건들이다.
시내를 흐르는 강이 아름답고, 크고 잘 다듬어 진 플라타너스와 토피아리 전정된 나무,
마로니에 나무는 파리보다도 한수 위다.
파리의 상제리제 거리의 겨울 등을 밝히는 나무도 플라타너스를 긴 사각으로 손질 한 것이지만
스페인만큼 기교롭지는 못하다.
시내 중심에는 영화 엘시드의 기사상이 있다.생 맥주한잔 씩을 했다.
친구들에게 바닐라아이스크림 한 개 씩을 사줬다.
敦과賢은 병원치료비를 납부하러 가고, 서석과 난 성당내부를 둘러 봤다.
이곳은 치료비를 병원에서 받지 않고 치료 하고, 돈은 지정 은행에 납부 하라고 한다.
은행들의 근무 시간이 우리가 도착할 시간쯤에는 늘 siesta에 걸리기 때문에 납부가 쉽지 않고
아무 은행에나 납부 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지정한 은행에만 나부해야 하는 일도 번잡스럽고
외국인에게는 불편한 일이다.
그래도 혹시라도 출국하는 날 치료비 안 내고 가는 외국인이라고 출국이 금지 될 지도 모른다는 지례짐작에
치료비를 납부하지 못하는 게 늘 敦에게 부담이 되어 왔다.
일요일에 敦이 응급실에 가서 발에 약을 바르는 치료를 받았을 때 40유로가 청구 된 돈이다.
성당 입구의 티케팅 부스에서 필그레미노라 했더니 크리덴셜을 보여 달라 한다.
갖고 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뒤에 있는 알베르게에 묵고 있다고 했더니 어른 반 값 2.5 유로를 받는다.
우리 둘의 행색은 이미 증명서가 없어도 순례자로 되어 있었다.
보로고스성당은 스페인의 세비야 토레도의 성당과 더불어 스페인의 3대성당이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이 역시 수탈의 역사일 수밖엔 없다.
이 나라의 國富의 흔적일 수도 있지만.....
내 카메라는 생맥주를 마실 때 賢이가 갖고 있던 동전을 와르르 쏟아서 그 것을 줍는 일을 거들다가 내 맥주를 쏟아서 카메라고 술을 마셔 아웃되었다.
on off 를 해 보면 렌즈 부분이 열렸다가 닫히는데 삐 삐...
작은 경고음을 내면서 점차 열리고 닫히는 범위가 줄어든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잠에 드는 모습과 똑 같다.
사람이나 카메라는 술을 마시면 동작이 비슷해지네. 새로운 발견이다.
실크 라이너 까는(펼치는)방법을 옆에 자는 이태리 여인 것을 보고 이제야 알았다.
이 여자는 베게 까지 함께 실크 라이너로 싸고 몸이 쏙 들어 간다.
百聞不如一見, 아니 내가 진즉에 만들었던 百見不如一行 이다.
백번 보는 것 보다 한번 해 보는 것이 최고다 라 는 뜻이다.
얼른 나도 그렇게 했다.
카메라 아웃 된 일에 마음이 편치 않다. 천천히 생각하고 침착하게 대응했다면 문제가 없을 텐데 대응이 부족했다. 지리산 둘레 길을 걸었을 때도 카메라는 지리산의 계곡 물 속으로 다이빙을 했었다.
이 때 카메라의 작동을 중단하고 건조해지기를 기다리면 된다고 나중에 카메라 수리공이 알려 줬었는데
깜박 잃어 먹었다. 경험한 일인데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일이다.그냥 말리면 되는데.....
셔터를 눌러 대고, 덥히고 말린다고 전기충전 까지 해 버렸으니 이때 이미 내부 장치들이 쇼트가 이뤄진 셈이다.
이런 일에 지식에 풍부한 賢이 내 무식을 탓했고, 아쉬워했다.내 무식이 틀림이 없다.
인공호흡의 원리를 몰라서 인공호흡 한다고 오히려 숨을 막히게 해서 사망케 하는 무식한 인간 꼴이 되어
버렸다. 만사는 원리를 이해하고 침착하게 정하고 동하는 게 이치이거늘....쯧쯧
틱 틱 소리 내던 카메라는 이젠 렌즈조차 열리지 않는 상태로 눈을 감았다. 카메라 다이.
대성당 밝은 대 낮 햇빛도 쨍쨍한데나이든 사내와 젊은 여인이 롱 키스를 한다.
네 이놈 고추 힘 빼라.
나무꾼과 선녀가 있었다. 선녀가 나무꾼의 옷을 훔쳤지.
나무꾼은 물 밖으로 나오면서 물위에 떠다니던 조롱박으로 자신의 중요 부분을 감추고 물위로 나왔지.
그 조롱박을 이 땅, 이 길을 걸었던 성인 야고보는 물병으로 달고 다녔다.
선녀가 주문하기를 오른 손 떼시오. 왼 손 떼시오. 그래도 바가지는 중요부분에 걸려 있었지.
선녀의 마지막 명령어는 야 이놈아 힘을 빼라 였었거든.
알베르게 침대에도 털보인 남자와 여인 한 쌍이 아픈 개가 상처를 서로 핥듯이 핥아댄다.
너도 이놈 고추 힘 좀 빼라.
우리 눈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어서 더욱 그렇다.
5월18일 금요일
Buros---Honillos del Camino.20.70Km .
13일 차다.
고도는 825m 다.
4시 반 기상.이 알베르게는 6시45분에서 8시 사이에 나갈 수 있다.
조심조심 걷는 날 이 되자. 금요일이고 13일 차이니 말이다.
도시를 걸어 나오는 길은 어제 들아 갈 때 보다 훨씬 도시 풍광이 좋다.
뻐꾸기도우네. 울긴 왜 울어. 새는 울지 않고 노래한다.
정확한 표현은 울지도 노래하지도 않고 소리를 내는 것이다. 짝을 향해서 자기 위치를 알리는 일이다.
인개가 자욱하다.
인생길 도 五里霧中.
10 킬로 걷고 베이컨바게트와 올리브로 조식을 했다.
밥 먹고 걷는 길이 너무 졸려서 무릎을 꿇을 것 같다.
광우병 걸린 소처럼?음식에 뭘 탔나.옛날이라면 이런 상황엔 돈 빼앗기고 목숨도 잃는다.
저 하늘의 저 구름은 왜 저렇게 푸르고 하얄까?
하늘의 조각구름들이 變化無雙 하다.
그 가운데를 높이 날아오른 비행기 한 대는 하연 금을 죽 긋고 지나간다.
목적지에 이르는 길은 아름답다.
지난해 자랐다가 시든 풀들과 새로운 밀밭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세상에 태어 난 이후 가장 아름다운 구름을 본다.
이 길은 천국 가는 연습 길이니 그렇겠지.
어릴 때 시골 내 고향에서 봤던 그 구름을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살았던 게지.
오늘 알베르게는 줄을 선 순서가 내가 1번이다.
물도 잘 안 나오지만 인당 6유로다.
점심은 스페샬 Ensalada+pan을 4.1 유로에 화이트와인5 유로,쪼리조는 3.5유로 내고 먹고 마셨다.
화이트 완인(비노 블랑)이 짱이다.
난생 처음으로 가장 맛있고 온도가 맞는 화이트 와인인데 5유로라니.... 많이많이 마실껄.....
그리고 작은 성당 앞의 돌 계단위에 뒤집어 누워 버릴껄...
돌 담 위에 8개의 돌을 올린다. 집 사람, 나, 그리고 딸과 사위, 외손녀와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녀.
그들에 대한 내 소망을 돌 속에 담아 돌담위에 놓는다.
마을의 작은 성당.집사람 나보다 오래 살고, 영육이 건강한 채로.
수 큰마음 가정의 팀워크,
철 술 실수 끝, 본래 착한 영혼 잘 가꿔 가고,
윤 세상에 날개를 신나게 펼 실력을 갖춰라.
진 목 빨리 낫고, 일 속에서 타고난 언변과 친화력으로 최고 되 거라.
정 영혼이 맑다. 그 맑디맑은 영혼 잘 보전하고 희망대로 이루 거라.
연 하고 싶은 것 모두 다하고, 양씨 女의 장기를 발휘해라.
가정은 서로를 위해 지원하고 아끼는 일이다. 누구나 듣기를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화내기는 더욱 더디 하기로 하자.
말로써 공을 망가뜨리는 어리석은 식구들은 되지 말자.
氣를 서로 북돋아 주는 가족이 되자.
나는 어느 날 때가 되는 날,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스르르 타던 촛불이 커지듯이 가고 싶구나.
보기 흉한 촛물(초가 녹을 때 흘리는 물)은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촛물을 흘리지 않으려면 꺼지는 그 시간 까지 큰 바람이 나를 어지럽히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이 작은 성당의 안 쪽 뒤뜰에는 이 땅에 살다가 가난하게 저 세상으로 간 영혼들이 흩어진 흙더미에
간신히 묻혀 있었다.
나는 현지적응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스페인 붉은 고추 캔을 사서 먹고 빈 캔은 물을 끓이는 주전자를 만들고,
자판기에서 산 칵테일 믹스드 견과류를 먹고 난 작은 캔은 에스프레스 espresso커피 잔을 만들었다.
가장자리가 없는 2층 침대에서 잠을 잘 땐 팔래 줄 로 갖고 간 긴 고무줄로 안전 라인을 친다.
First Safety.
떨어질 수 있으므로. 서양인이 엄지 손 가락을 들어 준다. 이 줄에 전화기를 매달았다.
한 밤중에 시계 보기 위해 고생할 일이 없다.아이디어 굿.
현대판 로빈슨크루스다. 출발 한 날부터 지금까지 수염까지 기르고 있으니 말이다. 7
0세 2020년 건강 만 허락 한다면 난 1,000Km 銀의 길을 걷고 싶다.
5월3일을 출발로 정하고/가족 중 누가 한 명 동행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수용 은정 채윤 누구든...진과 철인 가장이니 어려울 것이고.이 꿈도 얼마나 좋은가?
Bucket List 유지.
헛간 같은 작은방에 동서양 남녀 12명이 잤다. 混宿했다고 표현하면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좋은 상상 하겠네.
고달픈 걷기의 연속에는 異性이 존재 하지 않는 듯하다.
여자들의 미모도 향기도 상존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온 머리 짧은 부인은 늘 남편 보다 앞서서 사뿐사뿐 걷는다.
Your peaceful face always make us happy. 이 한마디에 그녀는 천사가 된다.
감사를 표하면 웃는 얼굴이 헤 맑다.
낼 데이터 로밍 오픈하면 사진과 기록을 내 멜로 최대로 전송 백업하자.
전주 경기전에 왕들의 근영 사진과 서적을 보관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이런 알베르게 사업이 어떨까? 불가판단을 했다.
걷기 좋은 길에 값이 싸고 편리한 숙소를 마련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나도 오늘은 10분간 siesta를 즐겼다. 제도적으로 걷는 이들을 위한 차별화된 값싼 숙소의 마련이 과제다.
난 직업 속에서 얻은 것들이 많다.品性이 환경으로 좋게 변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는 내 집 사람의 판정이다.
7년을 돌아다녀 健脚을 갖게 되었다. 이는 이 길을 걷는 친구들의 판정이다.
식물과 동물을 많이 안다. 그들의 생태나 습성에 대한 이해도 다른 이들보다 한 수 위에 있다.
인간의 本性을 짐작하는 능력을 조금 갖고 있는 편이다.
이런 능력은 앞으로도 내 運命과 八字를 바꿀 것이다.
교회는 15분마 덩딩 덩딩 투박한 소리를 낸다.
알베르게의 봉사자인 젊은 여인이 자기 시계를 보고 때 맞춰 종을 친다.
그래서 이 여인이 퇴근 한 후에는 이 성당의 종도 잠을 자 버린다.
30분마다 딩딩 한다. 퇴근 하는 鍾.
오후 8시인데 밖은 환하다.구름 속에 해가 있어 춥다.
해가 구름에서 전부 나오면 태양은 작열하는 열로 변한다.
저녁은 바나나와 치즈 빵으로 끝냈다.
5.19일 토요일 맑음 .
Hornillos del Camino --- Castrojeriz 20Km.
14일차다 .
11세기의 Former Colligiate Church of Santa Maria del Manzano 있고 고도는 808m 다.
평생 동안 다른 사람의 발바닥, 이 길을 걷는 동안 敦의 발바닥을 제일 많이 봤다.
아이디어와 창의는 어디서 오는가? 호기심과 순수함에서 온다.
이런 것의 원천은 어린이의 마음이다.
내 속엔 어린이의 마음이 가득한가?
아침은 바나나 사과와 토마토로 했다. 복숭아주스도 곁들였다.
오늘 길은 축복의 길이다.
처음은2.5m 마른 길.그리곤 진흙길.
다음은 두 갈래 머리길그리고 포프라 포장 길주변의 꽃들이 환상이다.
노랑 흰 붉은 꽃들의 조화.눈 속에 마음속에 담아 둬야지.
카메라 아웃 된 후에 잘 간직 하겠다고 빼 논 8기가 메모리카드도 분실 했다.
잠시 속이 상했다.파리에서부터 부로고스까지 사진은 현우한테 받도록 하자.
점심은 필그레노스 메뉴로 하고 난 뼈골 수프와 포크로 했다.
진흙길을 걸을 때는 인생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발에 붙는 흙을 떼지 않고 통과 했다.
내 인생에 어느 순간에 무게를 더 하는 진 흙 같은 것들...
걷다보면 어는 순간 흙이 절로 스스로 떨어져 나가고 어느새 본래 대로 돌아 온 내 모습도 있다.
각자가 짊어진 인생의 무게도 그러 하리라.
5월20일 일요일 비.
Castrojeriz --- Fromista 23.50Km .
15일차다.
백업한 자료를 찾을 수 없다. 11세기의 Church of Martin 이 있고 고도는 783m 다.
(나는 21일에 모발 폰이 완전히 망가졌다. 5월18일 토요일까지의 자료는 혹시 모른다는 염려로 그동안의 모발 폰에 기록한 메모들을 내 컴퓨터로 백업을 해 뒀다. 그런데 모발 폰이 부서지기 전 하루치는 귀국 후에 다시 고친 모발 폰에서 그 흔적과 기록을 찾았다.)
알베르게가 공간은 좋은데 문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심하다.
삐그덕 대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
축의금을 모발 폰에 심어 놓은 은행 어플리케이션의 구좌를 통해서 송금을 했다.
Itero de la vaga 까지는 헐떡이면서 올랐다.
비가 내렸다.
고개 넘어서는 또다시 진흙 밭이다. 진흙 밭을 걷는 것은 허덕대는 우리네 삶의 모습과 같다.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안고 가는 모든 부담스러운 일들은 이 순간 발에 붙는 진흙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떼어 버리려 해도 진흙은 자꾸 다시 붙는다.
아예 될 대로 되라 라는 마음으로 진흙을 그대로 두고 걸으면 걸음은 걸을 만 해진다.
진흙 밭도 때가 되면 마른 길이 되고, 진흙들도 스스로 떨어져 버린다.
중간에 다시 털어 내는 진흙은 조금만 걸으면 다시 발에 붙어 버린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그냥 그대로 두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해소되는 이치와 꼭 같다.
중간 마을을 지나면서 동네 사람들 넷에게 브에노스디아스 올라 인사를 던지니 순박하고 밝게 웃어 준다.
쉬는 동안 팝에서 커피는 카페쏠로그란데로 했다.
6Km전은 canal 이다. 곧바르게 인공적으로 농사를 위해 잘 만들어진 수로다.
갈대 사이로 숨바꼭질하는 물새 소리와 멀리서는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넓디넓은 맥 평선(수평선을 지평선이라 하므로 보리로 평원을 이룬 것은 麥 평선)을 가로지른다.
직선의 수로 옆의 갈대는 작년 것과 금년 것 새 순이 조화를 이룬다.
작년의 마른 잎 사이로 연하지만 강한 갈대의 푸른 새 잎들이 힘차게 솟구치는 모습이다.
가족들 각자에 대한 나의 소망을 빌었다.
우리 집사람에 대한 나의 소망, 내 자신에 대한 나의 소망, 딸네 가정, 그리고 각자에 대한 나의 소망, 아들네 가정, 그리고 각자에 대한 나의 소망을 짧지만 구체적으로 연속적인 기도를 했다.
가족들 각자를 향한 이런 기도를 해 본적이 없었는데......
기온은 차고 손이 시리다. 이 지역의 기온은 평균으로도 여름은 우리 보다 4~5도 낮고,
반대로 겨울에는 우리보다 4~5도 높아지는 온도인 듯하다.
고도는 해발 약 800미터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 인터넷 창에서 카미노(까미노가 아님)를 써칭 하여 좌측의 중간 하단의 유용한 링크에 알베르게를
스페인어로 소개하는 곳이 있는데 이곳을 찾아보면 스페인 인들을 위해서 코스별 알베르게와 고도가 지명마다 표시되어 있다.
출발 전에 이곳의 지명과 고도를 수첩에 모두 옮겨 적어 놨기 때문에 지역을 통과 할 때마다 힘이 얼마나 드는지를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늦은 점심의 메인은 닭 요리는 후식은 수박으로 했다.
수박은 우리 것이 최고인데.... 이 알베르게는 조식 포함 9.5유로다.
접수처의 호스텔러가 친절하고 살갑다.
브로고스 까지 찍었던 잃어버린 사진기의 메모리 카드를 캐나다 부부가 주워서 한국인 기욱씨를 통해 내게
다시 돌아 왔다. 기적에 감사한다. 기적 같은 되돌림이다.
잃어버린 멀티 플러그가 대신 되돌아 온 일 다음으로 두 번째의 되돌림이다.
이 길을 걸었던 야고보 성인께서 시련과 기적을 경험케 하는 것일까?
700 장도 넘게 찍은 사진이 사진기가 맥주를 마시고 망가졌던 날,
메모리 카드라도 잘 보관하겠다는 생각으로 주머니의 비닐 속에 잘 챙겨 뒀던 것이 어디론가 살아져서 잠깐이지만 나를 힘들게 했던 그 메모리가 돌아 왔다. 사진을 몽 땅 잃어버리고,
친구 賢에게 부탁해서 지금 까지 친구가 찍은 사진을 USB로 넘겨달라고 했던 사진이 기적처럼
다시 내게 돌아 왔다. 그 캐나다 부부는 사진 메모리 카드를 주워서 자신들의 카메라 속에 넣어 보고,
동양인임을 확인 한 후 우리와 모습이 같은 한국 사람을 찾아서 우릴 확인해보고 되돌려 주라고 부탁했다.
저녁 7시 미사에는 서석과 같이 참석 했다.
청년들과 처녀들 몇이 새롭게 세례를 받는 의식을 봤다.
강론은 전혀 알 수가 없지만 상호 교류 시간에 주변과 악수를 나누고, 성과와 오르간 연주음악은 모발 폰에
녹음을 했다. 그리고 동네 가게에서 포크와 나이프가 결합되고 떨어지는 나이프를 한 개 샀다.
5월21일 월요일.
맑음 날씨는 춥다. 10도C 정도에 바람.
Fromista --- Carrion de Los Condes 13.1Km .
잔여거리는 404.8Km다.
16일차다.
13세기의 Royal Monastery of Sata Clara 가 있고 고도는 839m 다.
좌측 어께에 찬 기운이 갑자기 엄습하여 짜릿하고 시원한 느낌이 든다.
무슨 조화인가? 어께에 성령이? 어께에 기적이?
배낭은 몸속으로 내 몸이 길속으로 완전히 들어갔다.
일부러 의식하지 않는 한 배낭의 무게를 전혀 느끼지 않는 상태다.
시속 5.5Km 끝이 보일 만큼 평탄하고 곧은길이다.
옆으로는 차도가 나란히 뻗어 있다. 선두로 치고 나간 敦과 서석의 꼬리가 보이지 않는다.
뒤 따르던 賢과 나는 한가롭게 차를 한잔씩 했다.
오늘 이 길은 옵션의 또 다른 길이 있다고 한다. 그 길은 하천을 따라 가는 길인데 알베르게 여자가 그 길은
진흙탕이라고 가지 말라고 賢 에게 알려 줬단다.
그래서 우리 둘은 자동차 길에 붙은 곧은길을 따라 갔다. 옵션 길을 따라 간 친구들의 뒤 야기는 진흙은 흔적도 없고 너무나 아름다운 최고의 길이라고 했다.
흐르는 물을 따라 작년의 갈대와 새 순이 돋는 푸름과 물새들의 노래가 장관이었든 모양이다.
이렇듯 잘못된 현지의 정보는 오히려 발 거름을 뒤틀리게 하고, 뒤 마음도 씁쓸하게 만들기도 한다.
정오경에 선두로 다른 길로 갔던 敦이 전화벨을 울려 왔다.
사진기를 고장 내고 난 후 나는 연신 내 모발 폰으로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기 때문에 허리에 묶음장치의 끈은 폰과 함께 붙어 있어서 분실이나 완충효과를 상실한 채로 있었다.
전화를 받는 순간 길가의 자갈 위로 놓치고 말았다. 곧바로 전화는 먹통이 되었다.
표면의 크리스털 액정이 작은 돌에 정통으로 부딪쳐서 여러 방향으로 금이 가고 말았다. 깨져 버렸다.
문자 들어오는 소리는 들리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전화의 기능은 모두 상실하고 말았다.
편안한 마음을 갖기로 했다. 인간으로 말하면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호흡은 있는데 인지를 못한다.
사회나 지인들로 부터의 고립이 아닌 오히려 자유를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길 위에서 이런 사고를 주는 것이 내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때 내 머리로 생각해 낼 수 있는 전화번호는 집 사람과 우리 집 전화번호가 유일 했다.
이미 내 뇌는 불필요한 기능이라고 판단하고 있던 암기기능은 완전히 상실한 채로 고착되어 있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고립이 이뤄지는 일은 죽음과 다름이 없다. 감사 기도를 드렸다.
가족들의 안녕을 기원했다. 나를 성원해 주고 있는 두 가정에 진심으로 평화와 사랑을 기원했다.
카메라도 기능을 상실 하고 전화기도 이렇게 되었다. 내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라. 미련을 두지 마라.
이 길을 걷는 동안만이라도 문명의 이기와 멀어 져라. 죽음도 오늘과 같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연락 선상에서 살아져 간다. 그 때 나를 기억하고 슬퍼 해 줄 사람이 누군가?
전화가 불통이 되면 나를 염려 해 줄 사람이 누굴까? 손에 꼽을 정도다.
W with Family, H, P, J, C, K ..... 나라는 존재는 열 사람 이내의 염려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나머지의 주변인 들은 몇 번 연락 해보다가 응답이 없으면 자연스레 잊혀지는 사이가 아닐까?
전화를 잃는 것/ 사회와의 갑작스런 단절은 죽음과 유사하다.
그러나 둘은 공통적으로 오히려 마음에 평화를 주고 있다. 아직 죽음은 경험하기 전이지만..
이를 경험하고 느끼게 하는 것도 감사한 일 아닌가? 점심은 훌륭하다.
갈릭 사골 스프, Pork, 아이스크림, 침낭 속에 실크 라이너를 쓰고 자던 것을 반대로 침낭을 실크 라이너 속으로 바꿔서 사용해 보니 이도 좋다. 세상은 거꾸로 해 보는 것들이 유용할 때가 있다.
서석의 전화로 우리 집으로 문자로 안부를 전했다.
Pay computer를 켜니 빈번하게 왕래한 이 메일 주소들이 잡힌다.
Salute1977@naver.com kalpilot@hotmail.net jinberrie@paran.com 상황을 알렸다.
좌판이 영문이니 서툴겠지만 영어로 보낼 수밖에 없다.
Today , I have arrived at Carrion de los Condes. Remain Km are 404,8Km. I have a big news ,
I dropped dawn my phone, so, the mirror was broken, From now, I can‘t communicate with my family by text, voice, pictures etc, But, fortunately my two friends have their phones, Lee & Yu. If you have special any news ,You can contact their phones. I am very happy, Don‘t worry about me. Su Young , You make phone call to your mom as soon as get this mail, Mom have to make phone call uncle Chan Woong (In Hae´s papa) what I lost my phone, because he always worry about me, See you soon. I will touch you , I love my family.
5월22일 화요일 맑음.
Carrion de los Condes --- 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26.6Km .
잔여거리 378.2Km .
17일차다.
벽돌 교회인 Parish Church of San Pedro 가 있고 고도는 913m 다.
6시 반 전에는 문도 열지 않고 출입문도 Close 되어 있다.
오늘은 배낭이 몸속으로 한번 들어 왔다가 두 번은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1 in 2 out 했다.
그래도 하루를 쉬고 나면 육체는 신기할 정도로 적응한다.
고달픔의 정도는 네 中老의 오줌 색으로 판명이 된다. 어느 날은 노랗고 또 어느 날은 제 색으로 돌아온다.
좋은 숙소를 정했다. 1 room for 4 friends. 아래층의 높이도 좋고 2층의 안전펜스도 잘 되어 있다.
대부분의 2층 침대들이 아래층의 높이가 낮아서 아래층에 자는 사람은 자기 침대에 편안하게 앉을 수 없는 상황들이 많고, 2층 침대의 경우에도 달랑 매트리스만 깔려 있어 자다가 밑으로 굴러 떨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2층에 자는 사람은 벽 쪽으로 붙어 자기도 하는 상황이다.
어떤 때는 중앙에 침대가 배치되어 2층은 좌우로 벽이 없어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염려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한 방에 우리만 있는 경우는 총 정비의 날이 된다. 인당 9유로를 냈다.
편리한 만큼 비싸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밀밭과 보리밭의 연속이다. 많은 꽃들이 푸른 색, 노란 색, 흰색으로 들판을 수놓고 바람은 서늘하고 하늘에 뜬 뭉게구름은 아름답게 움직인다.
한국말을 전혀 사용 하지 않는 한국인 같은 여인과 국적을 아직 모르는 서양인이 연신 입맞춤을 한다.
만난 지 100일이 체 안 되나 보다. 틈만 나면 몸을 붙인다.
敦에게 물으니 먹고 있는 진통제는 별로 효과가 없다고 한다. 친구들 말 속에 사촌은 물론이고
형제도 논을 사면 배가 아프고 아비가 논을 사면 아들은 행복하고, 아들이 논을 사면 아비는 다행이라
여긴단다. 남 잘되는 일에 배가 아픈 것은 분명한 寸數가 있다.
인간에 대한 답이 있을까?
5월23일 수요일 맑음.
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 Caljadilli de los Hermanillos 26.9Km.
18일차다.
고도는 816m 다.
밤하늘에 북두칠성을 봤다. 하늘의 밝은 별을 보는데 풍력계로 부터 비행기의 안전을 위해 번쩍이게 해 놓은 섬광 불빛들이 방해가 된다.
우회도로인 대체도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배낭은 몸속으로 들어 왔다 나가기를 반복한다. 뒤로는 찬란한 태양이 있다.
넓디넓은 길고 긴 흙 길이다.
Coto Calzada del 우회도로로 진입하면 중간의 4Km 구간정도는 천국으로 향하는 길처럼 각종 꽃들이 만발해 있다. 엄청나게 많은 라벤다, 샤스타데이지 이름 모를 희고 노랗고 붉고 자주 색의 꽃들이 천국의 길을
연다. 꽃들이 가장 많이 피어난 길이다.
초반에 만나서 피자를 얻어먹었던 캐나다 Donou 가 길을 가다 만나서 반갑게 포옹한다.
하체가 굵고 히프가 큰데도 잘도 걷는다. 앞서서 치고 나가는 걸음 거리가 이제 완전한 순례자로 변해 있다.
Peregranos를 위한 샘물가에서 바로셀로나의 노익장을 새로 만나 인사를 나눴다.
먹는 물인지 아니지 명확하지 않아 망설이는데 이 노인은 먹어도 된다고 우리에게 권했다.
목이 많이 말라 있던 서석군만 마셨다. 소독 되지 않은 물이라 이끼가 많다.
오염될 염려가 있음은 분명 하나 주변에 오염 요인은 없으니 반반이다.
서석에게 많이 마시지는 말라고 일렀다.
이 노인은 우리의 햇반 같은 인스턴트 샐러드인 Tuna 샐러드를 찬물에 담갔다가 먹는다.
슈퍼에 들락 거려도 글씨를 알 수 없어 이런 편안한 음식은 선택 할 수가 없어서 가까이 가서 물어보고
들여다보았더니 조금 먹어보라고 권한다. 사양했다.
마을 초입에 있는 숙소는 양호하다. 2인1실에 35유로씩이다. 호텔 형 숙소다. 식사도 이 집에서 했다.
두 여인이 손님도 받고 식사도 만들어 낸다.
방명록을 보고 한국의 70대들이 2일 앞서서 이 집에 묵고 갔음이 확인 됐다.
찬웅 친구가 문자로 알려 왔던 뉴스의 주인공들이다.
슈퍼에 가서 저녁 식사 분으로 단 빵과 요구로트 준비하고, 내일 아침거리로는 바게트 빵, 햄, 치즈, 토마토를 준비 했다. 16유로다. 4인이 두 끼를 먹을 음식이므로 인당 끼 당 2유로인 셈이다.
작은 슈퍼지만 있을 것은 모두 있다. 이 길은 마음이 병든 자, 육신이 병든 자 모두에게 좋은 길이다.
나를 들여다보던 어느 날, 왕초 아니더라도 가느다란 초가 되어 주변을 은근하게 비추다가 촛물 하나도
흘리지 않고 어느 날 부는 바람에 꺼지듯. 뚝 ... Adios.
가족들과 C와 B 가족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 했다.
B 혜 철 수 에게 Internet 으로 영문 소식을 보냈다.
I am very fine, My condition is best. We have walked about 450 km from start point. You know, I dropped dawn my phone , If you have any news, Please send to my friend´s phone. You may send text. Your mom know my friend´s phone´s number. Today´s walking road is very beautiful, lots of flowers, small and large, blue yellow red color, Have a nice day! I love you. I am very fine. 12-05-24 (목) 02:01 Dear my Big brother, Big crane ! I dropped dawn my phone on last Monday. My phone did not work. So, I can not send my news to you this weekend. Don´t worry about me. I am very very fine. We have walked about 450Km from Saint Jean Pied Port (Start Point) I will return to Korea on 13~15 June. I can not send by Korean letter, but I can get your e-mail by Korean letter. I used to check Hostel´s pay computer. Today, our destination was Caljadilli de los Hermanillos (Leon from far 43Km, Leon is Big city) A lot of beautiful flowers welcome to us, Red, Blue, Yellow, white, Large, and small. I put on a mile stone a tiny stone, I pray good luck and health and happiness for you and your wife . Take care! I am very fine. How about you and your papa? I dropped dawn my phone and broken on last Monday, I can not send my news to your papa by Kakaotalk . We are walked about 450Km fro start point. A lot of beautiful flowers welcome to us everyday. I use pay computer in my Hostel. See you soon. I love you and your papa.
5월24일 목요일 맑음.
Hermanillos --- Mansilla 24Km .
19일차다.
18세기의 산타 마리아 교회가 있고 고도는 802m 다.
4시에 기상해서 6시에 출발했다.
여명이어서 밖이 어두운데 친구 둘은 자기네는 환자이니 먼저 출발 하겠다고 나간다.
길을 잃지 말라고 일렀는데..... 앞선 간 친구들을 따라 잡기 위해 속도를 냈다.
길을 잘 못 들은 친구들은 우리 뒤를 따라 오느라고 더욱 힘들었고...
결국 앞서 갔던 친구 둘은 길을 잃고 다시 우리 뒤를 따라 왔다.
로마식의 가장 오래 된 길이라고 해서 우회 한 길인데 단단하게 호박돌만 박혀 있고, 지루하고 힘든 길이다.
단단한 길이어서 엄청난 중량물도 통과 할 수 있는 길이다.
그 시절 로마의 대 군단의 기갑부대들도 잘 통과 할 수 있었던 길임에 틀림이 없다.
주변에 식수가 부족한 것 빼놓고는 군사도로로 손색이 없다.
내 식구들과 나를 진심으로 위하고 염려 해 주는 분들의 가족들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걸었다.
돌을 주어서 산티아고 가는 길의 표시 돌 위에 올리면서 한 명 한 명에 대한 축복의 기원이다. 기
차가 달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휴식 자리에서는 거름냄새가 진동을 한다.
몸을 피 할 곳이 없으니 앞뒤로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가 소변을 볼 기회다.
지루한 길을 가다가 목적지 인줄 알았는데 4Km 정도를 더 가야 한다는 표시 목을 보고 너무 힘이 든다.
가져간 호루라기를 불었다, 뒤를 열심히 따라오고 있는 친구들에게 힘을 내라는 독려이기도 하고 내 스스로에게 힘을 넣기 위함도 있다.
가장 힘든 길이 오늘의 길이다. 그냥 주저앉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심장이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이런 순간에 저승으로 가는 게 아닐까?
이 길을 걷다가 죽은 이들의 표시 목을 잠시 생각해 본다.
이 길에 오기 전에 나는 유서를 쓰고 출발 했고, 친구들에게도 권했던 일이다.
반드시 돌아 갈 길이지만 유서도 연습이 필요하다. 서석은 혹시 걷다가 죽으면 순교라 했고,
혈관에 스턴트를 시술한 敦은 심장이 문제가 될 때 긴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프레이 같은 응급약을
휴대하고도 중간 까지 그 말은 하지 않고 걷고 있었다.
점심은 8유로에 샐러드 양고기 아이스크림으로 했다. 와인은 늘 기본으로 따라 나오고. 서석 전화로는 철 이의 소식이 들어오고, 敦의 전화로는 제주에 간다는 집 사람의 소식이 들어 왔다.
언제나 일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사람들은 집을 나서면 공연히 집 걱정을 한다. 세상이 뒤집어져도 변함없이 태양은 아침마다 동에서 뜨고 서로 진다.
전화가 없어도 불편함은 없다.
남은 여정을 카운트해서 6월7일에 산티아고에 들어가는 것으로 모두 합의 하고 확정 했다.
하루라도 차질이 생기면 안 되는 일이어서 수첩의 일자별 이동 정보란을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카운트를 했다.
우리 방에 같이 잠을 자게 된 이태리의 등치가 큰 두 명은 가방은 자동차로 먼저 보내고 자기들은 1일 35Km정도를 걷는다고 했다.
걷는 일 자체에 목적을 두고 있는 듯했다. 오른쪽 발에 물집이 생겨서 뜸을 다시 떴다.
슈퍼에 들려 쌀, 홍합, 양파, 계란, 마늘을 사서 한 통 죽을 끓였는데 너무 많으니 죽 맛도 없고 양만 많다.
발 때문에 고생 한 敦이 지나가는 말로 죽이 먹고 싶다고 했고, 죽을 끓이는 일이 가장 쉬울 것 같아서 해 보기로 한 일이다.
지나가던 이곳의 관리자가 “밥 고파 밥 빨리 줘요.” 외치면서 지나간다.
한국인들이 많이 들락거리면서 제법 한국말을 정확하게 익힌 듯하다.
먹다 남은 죽을 버리는 일이 마땅치 않아서 눈치를 보면서 버렸다.
뒤 늦게 들어온 賢은 남겨둔 재료로 쌀을 작게 넣고 죽을 잘 쑤어 먹었다고 했다.
방법은 알지만 경험이 없어서 양을 제대로 조절 하지 못하니 제대로 된 음식이 나오지를 않는다.
쌀의 양을 조절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소 뚜껑이 아무리 뜨겁다고 교육을 받은 새 며느리도 결국은 제가 직접 소 뚜껑에 데어 보아야 솥이 뜨거운 사실을 제대로 배운다고 옛 사람들이 말했다.
5월25일 금요일.
쾌청하고 태양은 작열. Mansilla --- Leon 18.1Km 잔여거리:310.5Km .
20일차다.
13만 정도가 거주 하는 큰 도시다. 고도는 838m 다. 레온 성당이 있다.
어떤 일이든 예단치 말아라. 특히 확실 하지 않은 내용을 미리 이야기 하면 금방 사실여부가 들어나 버린다.
새로운 길을 갈 때 길 앞의 일들을 미리 아는 채 하는 일이 그런 경우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의 앞일들도 길과 같지 않을까? 걸어가는 동안 수원 미래암을 만났다.
2차례 바에서 같이 쉬고 마실 것도 함께 했다.
집 사람과 지인들의 안녕을 기원했다. 처음 화살표대로만 따라 가다가 알베르게가 문 닫은 곳으로 가게 되어 되돌아오는 헛수고를 하기도 했다.
타인의 언행으로부터 배울 것들이 많다. 잘 하는 일은 잘 하는 것대로, 거슬리는 일은 거울로 삼아 자신의 실수를 줄이는 배움이 있다.
인간은 항상 스스로 깨우쳐 배우기보다는 남을 통해서 배우는 일들이 많다.
세상 삼라만상 모두가 스승 아닌가?
나는 누구였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일 것인가?
Who was I? Who am I? Who will I?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는?
내가 지나온 과거는 지금 내 앞에 길게 늘어졌다가 점점 줄어드는 내 그림자와 같다.
산티아고 프랑스 길은 거의 전 구간이 항상 서쪽으로 향하고 있으니 출발 시점에 길게 뻗은 자기 그림자를 보고 걷다가 점점 작아지는 자기 그림자는 어느덧 흔적도 없이 자기 몸속으로 들어와 버린다.
도중에도 그림자는 어두워지거나 하늘이 흐려지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현재는 강건하다.
미래의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이여야 되는가?
빨리 듣고, 더디게 말하고, 더욱 더디게 화를 내는 나, 아니 마치 내 아버지처럼 화 자체를 없애 버리는 내가
된다면 얼굴엔 늘 미소가 마음엔 언제나 평화가 있을 것이다.
.-나를 만나는 사람에게 즐거움과 得을 주고 살자.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 스스로가 그네들이 꿈을 만들어 가는 단초가 되자.
(조금 건방진 생각이라는 느낌도 든다)
-나의 言行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헤아려서 조절해 가자.
중국집을 좋아하는 미래암의 안내로 중식을 간단히 같이 하고 敦은 병원비를 납부 했다.
지정은행을 물어물어 잘 찾아 갔다.
한식이 그리 울 때 그런 대로의 대체음식으론 중국음식이 맞는 것 같다.
전화수리를 시도했다. Movil Qvice를 미리 물어서 확인해 두고, 오픈하는 5시 5분전에 문을 두드리니 유리 안에서 시계를 들어 보여 준다. 아직 문을 열려면 5분이 남았다는 신호다.
비러 먹다가 턱 떨어질 놈이다.
시간에 맞춰 문이 열리고, 전화기가 고장 난 경위를 설명 했더니 메모지에 적어준다.
수리비는 169유로 이고 수리 기간은 15days란다. 우리 돈으로 253,500원이다.
돈도 돈이지만 수리기간이 너무 길어 포기 했다. 한국이라면 앉은 자리에서 고쳐줄 건데....
대 성당 앞에서 강한 소나기를 만났다. 소나길 피하고 시간도 때우려고 도시 구경 나간 賢을 제외 하고 셋이서 요구 아이스크림 집에 가서 입맛대로 골라 먹었다. 돈은 내가 지불했다.
실내 장식이 하얀 색을 바탕으로 깨끗하고 심플하다.
달지 않은 건강 빙과 식품으로 한국에도 가능성이 보인다. 이미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www. yoogoweb.es 다. 남자 종업원이 나만큼 서툴게 영어를 한다. 그래도 소통은 된다.
이 동네에는 10유로 전문 숍이 있다. 예외 없이 모두가 10유로다.
우리 돈으로 15,000원이고 물건은 그런대로 보기 괜찮은 것들이다.
전화기 고장 후 항상 친구들에게 시간을 묻게 되어 글자판이 큰 시계 한 개를 샀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내게도 시간을 물으라고 했다.
대신 물을 때마다 1유로라고 값도 정했다.
땡볕에 들어 간 알베르게에서는 그동안 만났다가 떨어졌던 한국인들을 많이 다시 만났다.
오늘은 유난히 햇볕이 땡볕이어서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헐떡이고 있다.
빨래를 해서 줄에 걸고 시내로 나갔다가 소나기가 내리는 바람에 빨래가 모두 젖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누군가 빨래를 모두 걷어 옮겨 놓았다.
그 북새통으로 내 세수수건이 없어져 버렸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아서 작은 땀수건으로 대신하고 다시 하나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저녁시간에는 스퀘어에서 음악 연주가 있다. 록 음악이어서 젊은이들이 북적거린다.
그 자리에서 賢은 일본 여인이 말을 걸어 왔다 고 했다.
그리고 저녁을 같이 하자고 했는데, 이미 순례자 메뉴인 피레그레노 메뉴로 끝이 나서 아쉽지만 사양 했다고 했다. 잘만 되었다면 저녁도 같이 하고 잠도 같이 잘 수 있었을지도 모른 행운을 놓쳤다고 아쉬워한다. 놓친 고기는 원래가 큰 법 이어서 인물도 좋고 영어도 잘했다고 입맛을 다셨다. 돌아오는 길에 지나가던 젊은이들이 장난을 걸어온다. 서석이 큰 눈을 둥그렇게 뜨고 어께에 힘을 넣는다. 싸움닭이 목털을 세우는 것처럼.... 레온시의 밤 잠 자리는 밤새도록 소란으로 지속 되었다. 금요일에다 시내의 중심가인 탓이리라.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는 한국인 같은 여인과 동행 하던 서양인은 이 알베르게는 남녀 숙소가 분리 되어 있어서 우리옆 자리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게 됐다.
우리는 공연히 이 친구와는 아는 채도 하지 않고 조금 거리를 두고 속으로는 미워하는 처지다.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여인과 너무 밀착하고 문질러 대는 일이 보기 싫어서 그런 것 같다.
질투 하고 있나? 어째든 다음 날부터 이 그룹도 우릴 보고 올라 하고 인사를 나누기 시작 했다.
스페인어로 올라는 안녕? 이다. 같이 올라(Hola!) 하고 인사를 하지만 우리보고 타라고? 올라 타? 만나는 사람마다 올라가 입에 달리고, 부엔 카미노 (좋은 길 되세요 buen camino) 부에노스 디아스 (Buenos dias 아침 인사)를 열심히 하게 된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부에노스 디아스 라고 인사를 던지면 모두가 순진하고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전해 온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 길을 걷는 우리를 포함한 독일, 이태리, 프랑스 순례자들의 첫 인사는 Where are you from? 이다.
5월26일 토요일 .
걷기에 최적의 날씨 Leon --- San Martin del Camino 25.9Km .
21일차다.
고도는 870m 다.
어제 걸어 놨다 없어진 수건은 누군가 잘 못 가져갔다가 되돌려 놓을 것이라는 예감이 맞아 들었다.
출발 직전에 건조대로 가 보니 수건은 되돌아 와 있다. 작은 일이지만 기분 좋다.
플러그도 되돌아오고, 카메라의 메모리카드도 되돌아오고, 수건도 되돌아 왔으니 되돌아오기 3판이 되었다.
커피와 거친 바게트 빵을 알베르게에서 기부제로 조식으로 제공했다. 우리 모두 식사를 했는데 회계가 기부금을 내는 것을 잊고 나왔다. 마음에 조금 걸린다.
앞서간 다른 사람들의 가는 길을 무작정 따라 갔는데 노란 화살표 표시가 보이질 않는다.
노란 화살표를 잃어버리면 우리는 뒤 돌아 와서 반드시 다시 찾아본다.
이날은 젊은이들은 거의 지도를 갖고 움직이므로 길을 가로 질러 갈 수 있다고 믿고 되돌아 확인하는 일을 생략하고 이들의 꼬리를 놓치지 않았다.
내 고향 남쪽바다 가곡과 쇼팽의 이별을 큰 소리로 불렀다. 나의 기쁜 마음 그대에게 바치려 하는 이 한 마음을 들 으 소서 그대를 위한 노래 아 아 정답게 나의 마음 불 타 올라 나의 순정을 받아 주시오.
그리운 님 떠나가면 나만 홀로 외로움을 어찌 하랴 ~~~~
뒤를 열심히 따라 오던 동연배의 여인이 박수를 열심히 쳐 준다. 나한테 가수냐 고 묻는다.( Are you singer?) 아니라 했는데 노래 잘 한단다. 그냥 인사지// 자기는 캐나다 퀘벡에서 왔다고 했다.
지적인 모습이어서 나중에 친구들은 영어 책에 나오는 여자 선생님 사진과 같다고 했다.
나는 여러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는 이야기와 이곳에 내 Bucket List를 비우기 위해 왔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자신은 하루에 한 사람만을 놓고 지속적으로 기도를 한다고 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우리 집 사람을 위한 기도만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휴식을 위해 바에 짐을 내리는데 길가에서 체리를 판다. 2유로어치를 샀다.
체리를 사서 친구들과 나눠 먹다가 캐나다 여자 분에게도 권했다.
한 주먹 많이 가져가라 했는데 다섯 개만 집는다. 이 여자의 남편은 키가 크고 근엄한 모습이다.
뒤에 온 남편에게 체리를 사자고 했는데 남편은 거절을 한다.
이 때 부터 우리는 그 남편이 자기의 부인이 우리와 친해지는 것을 싫어하나 보다고 생각을 했다.
도중에 여러 번 만나지만 남편이 곁에 있을 때는 싸움 붙었다가 져버린 개처럼 슬슬 눈치를 보면서 아는 체를 했다.
먼 산에는 아직 흰 눈이 보인다. 오늘 걷고 나면 500Km 지점을 통과한다.
중반을 넘어서 종반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인당 7유로를 내고 4인 1실 방을 구했다.
태양은 오후 7시 반을 넘으면 힘을 뺀다. 8시가 되면 서늘해진다.
그래도 아직 햇볕은 따스하다. 따스한 햇볕이 좋다. 서양인들처럼 잠시 눕는 의자에 누어서 햇볕을 쏘였다.
5월27일 일요일 맑음 .
San Martin del Camino --- Astroga 24.2Km .
오늘 걷기가 끝이 나면 잔여거리는 260.4Km .
22일차다.
고도는 869m 다.
날씨는 화창, 걷기에 최고다. 흰 눈 덥힌 산은 더 가까이 다가온다. 최고의 길이다.
마늘 파 감자 호프 소나무 최고의 다리(Bridge) 고지의 평원, 희고 붉은 아카시아 Pray for my wife.
몸도 마음도 건강한 채 나보다 長壽 하게 해 주고, 행복 하고 건강 하게 살아 갈수록 내가 후원하고
보살피리다. 당신 위해 최선을 다 하리다. 왜 나 자신이므로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By my wife, For my wife, Of my wife. 완전 닭살이다.
기부 제 이동 판매대가 보인다. 한국인의 낙서도 보이고. 도착해서 짐을 풀고 샤워 하고 빨래를 한 후 중심가로 나가서 10유로 내고 통닭과 감자를 4개 쿠아트루 cuatro 하고 주문을 했더니 종업원이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닭이 우리 것 보다 두 배는 크다.
왠 만해서는 다 먹기가 어렵다. 서석은 앞으로 당분간 닭 하고는 담을 쌓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 밤 걷고 있던 신부님과 식사 하러 나간 서석은 다시 그 닭 집에 들렸다.
15세기와 18세기에 걸쳐 지은 성당은 가우디의 흔적이 보인다. 아름다운 성당이다.
이곳에서 새로운 한 분을 만났다. 우리보다 훨씬 연배 인데 우린 젊게 봤다.
5년 정도는 나이가 앞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아는 知人들과 선후배로 얽힌 모그룹의 부회장이 혼자 걷고 있는 중이었다. 걷고 나면 샤워하기 전에 시원한 맥주부터 한잔 드는 것이 이분의 취미다.
알베르게 옆의 작은 공원에서 예쁜 아기를 유모차에 싣고 나오는 엄마가 있다.
포토 한 장 찍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노우라고 답을 한다. 기념 핀 등 몇 가지를 샀다.
22명이 한 방에서 잤다.
5월28일 월요일 .
Astrogo --- Foncebadon 25.9Km 걷고 나면 잔여 거리는 234.5Km 남는다.
23일차다.
철 십자가 Cruz de Ferro 가는 오리지널은 아스토로가 박물관에 보존 되어 있고,
현재 것은 1976년에 만들어 재 오픈 한 것임 고도는 1,436m 다.
고도 870m에서 1,430m 까지 560m를 오르는 길이니 청계산이나 광교산을 등산 하는 것과 같다.
6시 40분에 출발해서 오후 1시 30분에 도착 했다.
비교적 긴 거리여서 가파른 길에 대한 부담은 적다.
천국 가는 길의 모습을 미리 보길 원한다면 산티아고에 가라.
걷는 사람마다 느낌은 다를 테지만..... 이런 글 들 때문에 한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통하는 능력이 다른 나라 사람들 보다 빠른 것도 우리네들의 탁월한 장점이다.
온갖 꽃과 소나무 이곳이 현세의 천국이 아닌가?
내가 살던 세상과 이미 멀리 10,000Km 이상 떨어져 왔고 내가 살아 온 세상과의 관계로부터의 단절이 아닌
자유를 주기 위해 전화를 내 대신 죽게 했으니 모든 욕심도 감정 까지도 버렸으므로 이미 나는 천국 속에 들어 와 있지 않은가?
실제적인 이동 도 서울에서 파리 9,000Km 파리에서 생장 까지 700Km, 걷는 이 길 800Km . 총 10,500Km다. 세상과 소통하는 그 날 나는 다시 부활을 경험 할 것이다.
집/혁은다/유수채/태/찬/구/현/갑/일/큰/ 모두에게 은총과 사랑과 영광이 함께하기를....
스페인의 피카소의 고향인 말라가에서 온 얼굴이 하얗고 믿음이 깊을 것 같은 여인은 아침에 어둠 속에 짐을 꾸리며 나를 꼭 안아 준다. 따스하다. 그리고 엉망이 된 자신의 발에 밴드를 붙인다. 이 여인은 천사인가?
루마니아의 중량이 나가는 여인은 밝은 얼굴이 좋다. Your bright face make me happy. 라 했더니 너무 좋아 한다. 퀘백의 남편의 엄격함에 기가 죽은 여인은 화이트 초콜릿을 살짝 전해 준다.
Astrogo에는 맛있는 초콜릿 가게가 많이 있었다.
이 산 동네의 알베르게는 독점이다. 저녁은 9유로나 받는데 음식은 달랑 쌀도 설익은 빠에야를 안겨 준다.
그래서 독점방지금지법이 필요한 건데..... 와인은 한 병 더 시켰는데 덤으로 줬다.
손님도 넘쳐서 말 외양간에 2층 침대를 놓고 사람을 채운다.
말들이 제 새끼와 함께 뛰어 논다.
커다란 염소가 어슬렁거린다.
큰 잡종 개는 사람 곁에 앉아 포즈를 취한다.
검은 고양이는 사람에게 제 몸을 살짝 기댄다.
동물과 자연과 인간이 절묘하게 조화되고 어울리는 장소이니 천당이네.
소와 양은 인간이 잡아먹기 위해 기르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지내고 있긴 하지만.....
물은 차갑다. 먼저 오는 순으로 서브를 받으니 오늘은 2층이다 .
우리 모두 2층에 배치를 받았다. First come first served.
순례자들은 아래층이 편하기 때문에 거의 아래층을 선호 한다.
2층에 침낭과 라이너를 펴고 필요한 물건들은 주렁주렁 걸었다.
오늘은 한 방에서 22명이 같이 잔다.
내 밑에는 체중이 나보다 2배 이상 일 것 같고, 히프는 내 것 3배도 넘을 것 같은 여인이 잠자리를 틀었다.
이 여인이 위에 잔다면 난 불안에 떨었을 것이다.
오르막을 걸어서 땀을 제법 많이 흘린 날이다.
敦 은 이제 훨훨 나른다. 오르막길에서는 뒤도 보지 않고 뚜벅 뚜벅 걷는다. 왜 그렇게 빨리 걷느냐고 물으면. 멈추면 죽을 것 같아서 그렇다고 답한다.
자기는 내리막이 더 힘들고, 오르막은 천천히 오르면 힘이 더 들기 때문에 땅만 보고 마구 걷는단다.
그러면서 머리를 들면 안 되는 것이 골프만 그런 줄 알았더니 이렇게 먼 길 산을 오를 때도 머리는 들면 안 된다고 새로운 진리를 말한다. 내가 한 개를 덧 붙였다. 사람들 앞에서도 머리를 들면 총에 맞는다고 했다.
늘 자신을 낮춘 겸손한 삶이 필요 하다고 했다. 나는 과연 타인 앞에 잘 난 척을 한 적은 없는가? 정리하면 머리를 들어서는 안 될 3가지가 있다. 골프, 이런 산 오름, 만인 앞에.....
어째든 敦인 He can do. She can do, Why not?을 이룬 셈이다.
이곳의 인터넷도 한글 식별이 안 된다. 보내는 글은 간단히 영문으로 할 수 있지만 보내온 글은 인식 할 수가 없다. 실랑이를 하다가 1유로만 날아갔다.
저녁은 독일인 청년 1명, 한국인 처녀 2명과 같은 테이블에서 했다.
독일인 청년은 19살 이고 한국 처녀 둘은 한명은 대학 3년 생,
다른 한 명은 캐나다에서 임상병리부분 Job으로 1년간 일하고 귀국하는 길에 이곳을 걷고 가기로 했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이 길을 걷는 경우의 공통점은 마음을 아직 정하지 못한 방황의 기운이 그 속에 있다.
이 두 처녀는 걷기가 끝나면 바로세로나 를 거쳐 귀국한다고 한다. 도
중에 만 났던 그 최 부회장과 敦이 이야기를 나누더니 서로의 신원이 확인 되었다.
이런 길을 걸을 때 사람들은 쉽게 입을 열게 되나보다.
敦이 나를 불러서 내가 아는 분들의 친구이고 선후배 임을 알린다.
다시 정중히 인사하고 나를 밝혔다. 그리고 아는 분들에게 안부도 같이 전했다.
체구는 작지만 용기 있고 멋진 분이다.
식구들을 기원 하면서 하나씩 주웠던 차돌들은 오른 쪽 호주머니에 넣고 나를 염려 해주는 知人들의
축복을 기원하면 주워서 챙긴 차돌은 왼 호주머니에 넣어 두고 잠을 청했다.
이 기원의 나만의 차돌들은 내일 사용 될 것이다.
5월29일 화요일 맑음. 덥고 태양은 작열.
Foncebadon --- Ponfferada 27.3Km .
24일차다 .
고도는 541 m 이고 Knights Templar Castle 있다.
하루를 출발 할 때 마다 군대에서 아침 점호 하듯이 오늘은 몇 월 몇일, 몇 일째이고, 우리가 걷게 되는 지역의 고도차는 얼마이고, 남은 거리는 얼마다. 라는 정보를 팀원들에게 크게 알린다.
전화가 가동이 될 때는 이 지방의 일기도 같이 예보 했다.
데이터 로밍이 되거나 Wifi 가 되는 지역에서는 미리 깔아 놓은 Weather 어플리케이션으로 시간대별 날씨를 알 수가 있었다.
간혹 거리를 잘 못 이야기해서 팀원들의 핀잔도 듣는다.
이런 경우는 미리 준비 해온 스페인 사람들의 카미노 정보를 수첩에 옮길 때 졸았거나 깨알 같이 쓴 글씨를 잘 보지 않고 지나쳤을 때이다.
그리고 잔여 거리도 내가 표시한 것이 하루를 걷기전의 잔여 거리인지, 걷고 난 후의 잔여 거리인지를 처음에는 혼동을 해서 중간 마다 표시된 거리표시와 불일치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스페인 현장의 거리 표시도 오락가락 하는 경우들이 있다.
늘 가는 길이 얼마나 멀까? 하고 노심초사하는 친구들에게는 이런 미스가 생기면 큰 비난거리가 된다.
그래서 내가 외친 구호가 하나 있다. “정확한 숫자 데이터 제공으로 신뢰를 확보 하자.”다. 이렇게 외치면
친구들은 낄낄댄다.
이른 아침 출발 직전에 비스겟 몇 개를 스스로 돈을 내고(주인은 아직 활동 미 개시) 나눠 먹었다.
옆에 놓여 있던 다른 과자를 그냥 먹어도 되느냐? 고 서석이 손으로 집었다.
값이 붙어 있지 않으니 그냥 놓으라 했고, 제자리에 내려놓았는데 같이 있던 키가 작은 스페인
노익장이 일갈 한다.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제 나라 말로/ 표정이나 제스처 gesture를 보니 손으로
집은 것을 다시 놓으면 어쩌라는 나무람이다.
옳은 이야기지만 제 땅에서 텃새를 하는 꼬장꼬장한 말 많은 늙은이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늙은이는 간섭이 많고 말이 많다. 말수를 줄이자. 내 말을 줄이자. 물으면 답하되.....
중간 산간 마을은 Clean 그 자체다. 길을 내려온다. 부서진 돌 밭 길이다.
아름다운 길이다.
철 십자가에 기도의 차돌과 집 사람 몫으로 주운 큰 솔방울을 놓고, 기도를 응축했다.
높은 산이어서 맑은 날에 사진을 찍기가 어려운데 오늘 이렇게 맑은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라고 이곳을 많이
연구한 賢 좋아 한다.
틈틈이 마찰도 있지만 우린 모두 맑은 영혼들이 아닌가?
몇 일전 만난 안식년을 택하여 이 길을 걷고 있는 대전의 신부는 No pain, No glory 라는 말을 누군가 했다고 전한다.
고통 없는 영광은 없다. No pain, No gain에서 응용되어진 길을 걷는 일에 고통은 당연하게 따른다는 말이다.
40년 전에 맺어진 우리들끼리도 간혹 던지는 언어들이 상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악의가 아니라도 들으면 불편한 이야기를 미리 스스로 억제 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도 賢者의 길이다. 오늘 알베르게도 시설이 최고다.
기부금 제여서 인당 5유로씩을 부담 했다. 4인 씩 나눠진 방이 있으니 우린 자동으로 우리 끼리 쉬게 된다.
4인 방이라도 서로 낯선 사람들 끼리 사용하는 경우는 흔하다.
혼자 여행 하면 늘 같이 끼어야 한다.
큰 도시여서 중국집을 찾았더니 호스텔러를 보좌 하는 잘 생긴 남자가 처음에는 약도를 그려 주었는데,
나가는 방향을 다시 확인 했더니 도시 맵에 정확이 표시를 해준다.
누군가 뒤에서 중국집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이 도시에는 그 집 오직 하나라고 답을 한다. 스페인 사람들의 발음으로는 중국집 중국을 치노 라고 하나 보다. 그렇게 들린다.
음식점으로 해외에서 자리를 잡던 중국인들이 스페인에서는 아시아 프라자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동양의
물건들을 싸게 파는 잡화상을 체인망으로 잘 갖추고 있다.
라면을 구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매장을 둘러 봤지만 먹을거리는 거의 취급 하지 않았다.
해외에서 동포들의 기반을 위해 서로 룰을 갖고 지원하는 중국인들의 또 다른 사업이 스페인에 활착 되고
있다.
도시의 거리가 높낮이차이가 많아 중국집으로 내려가는 길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넷이 27유로로 배불리 먹었는데 백화 수복 정종이 보인다.
우리가 반색을 하니 그 집 젊은 안주인이 공짜로 한잔씩을 따라 준다.
이 중국집 안주인은 스페인에서 태어나고 자란 야무진 여자다.
주방은 유색인인 이방인이 맡고 있고, 배달은 남편이 하고 홀은 이 여주인의 몫으로 보인다.
그런데 백화수복은 군산에서 생산 된 것이 아니고 중국에서 생산된 정종임을 알았다.
어쨋튼 고향의 술을 이 먼 곳에서 그대로 보니 반갑다.
슈퍼에서 석식과 조식거리를 준비 했다.
우린 늘 이렇게 도착을 한 시간대에는 조금 거창하고 충분하게 영양을 섭취하고 그냥 건너뛰어도 되는데
서운 하므로 저녁은 아주 작은 빵이나 바나나, 그리고 요구르트 정도로 위를 달래 주고, 아침은 우유나 빵,
과일 등으로 식사를 해결 한다.
잘 먹는 정식은 약 인당 10유로이고 아침과 저녁은 인당 2~3유로면 해결이 된다.
당초 책자에는 예산으로 Km 당 1유로를 쓰면 된다고 했는데 우리는 하루에 35유로 정도를 사용하고 있다.
20 Km 남짓 걸으면서 조금 더 쓰고 있는 셈이다.
가끔 맥주도 마시고, 늘 잘 먹는 덕분이다.
우리 돈으로는 하루 잠자리까지 포함하여 50,000 여원 정도를 쓰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물가는 우리 보다 저렴하다. 엥겔 지수가 우리보다 낮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고기류는 품질도 값도 양호 하다. 길가의 음식의 질도 우리보다 한수 위다.
이곳의 Pay Computer 도 한글을 인식 하지 못한다.
국내 인터넷 회사가 미리 만들어 디자인 된 사진 속의 우리글은 잘 보이고, 인식을 못해도 어디가 보내기이고 쓰는 곳이고 휴지통인지 그 틀을 잘 알고 있어서 영문으로 메일을 쓰고 보내는 데는 지장이 없다.
이런 경우 컴퓨터는 한글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인식하는 것이다.
최 부회장도 같이 묵었다. 갑자기 한국인들이 증가 되었다.
중간에 끼어드는 사람들과 앞서고 뒤선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서 만나진 모양이다.
거의 20인 가까이 한 알베르게서 묵게 됐다. 여기저거 한국말이 들려온다.
이렇게 많아지면 반가운 마음보다는 무례함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안식년을 이곳에서 보내는 신부, 학생들과 처녀, 중학생 딸을 데리고 걷고 있는 젊은 엄마는 자기 딸의
새로운 모습을 봐서 너무 좋다고 말 한다.
또 다른 한국인 무리는 주장에서 닭백숙을 만들어 먹고 있었다.
새로 만난 70대 동갑 부부, 이 들은 제 작년에 다녀갔는데 너무 이 길이 좋아서 칠순 기념으로 큰 딸과 함께
로마 스페인의 관광을 겸해서 다시 걷고 있단다. 3가족이 60일 여행에 예산으로는 2천 만 원 정도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눌 때 70대인 남자는 수염을 계속 기르고 있던 나를 보고 자기보다 연배인 듯하다 고 했다. 그 사람은 위암 수술을 받은 사람이고, 부인은 심장 박동기를 달고 있다고 했다.
물가가 너무 싸고 식품의 품질이 좋아서 자기들은 가져 온 라면 스프에 감자, 고기, 야채 넣고 밥을 해서 먹고 다닌다고 했다. 경기도 양평에 살고 있는 이 부부 사이에 충청도 60 중반을 넘은 사내가 한 명 같이 지낸다.
이분도 특이해서 우리가 처음에 만난 인연이 있고, 기억하고 가끔 어찌 되었을 까? 라고 우리 팀의 대화에 출현하는 인물이다.
처음 이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가 먹은 음식 값이 얼마인지를 묻고 자기는 좀 더 싼 음식을 찾아야 한다고 떠났던 인물이다.
그 때 자기를 소개하기를 에루살렘 성지 까지는 부인과 같이 왔는데 자기는 돌아가지 않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 길 까지 걷기로 했고, 50일을 넘게 혼자 다닌다고 했다.
영어는 잘 이해를 못하고. 실제로 키친(부엌) 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분이 었다.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파리에서 이곳으로 오는 열차 표를 구하는데 3시간 이상 시간을 소모 했다고 했다.
우리 중 누군가 목에 굵게 걸고 다니는 금 목거리를 보고 아마도 태생은 시골인데 땅이 있어서 보상을 받고 벼락부자가 됐나 보다고 했다.
늦게 생장에 도착해서 혼자 피레네를 고생스럽게 넘었던 이야기를 했던 그 분인데... 이 노부부와 따님 팀에 속해서 나타났다.
서로 종교가 같고, 믿음도 깊고, 의지가 되어 같이 동행 한듯하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능력의 있음은 분명 하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함께 다닌다.
이 노 가족들에게는 조금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 분은 식사가 잘 해결이 되니 충분히 묻혀 다닐 가치가 있는 지도 모른다.
두 부부는 이 길을 걷고 병이 회복이 되고, 체중도 적당히 줄었다고 카미노를 찬양 했다.
충주 그 양반은 피레네를 혼자 넘다가 배낭끈이 끊어진 이야기, 2층 침대에서 자다가 아리로 떨어진 이야기로 우리를 웃겼다.
끈이 떨어진 배낭은 버리고 새로 한 개를 샀다고 했다.
우리보다 나이가 조금 위인데 스틱도 없이 한 손에는 커다란 카메라 손가방을 하나 들고 가볍게 걷는다.
멋진 인생이다.
敦과 서석이 슈퍼에 가서 캔 맥주와 견과류를 사다가 한국인들끼리 나눠 마셨다.
5월30일 수요일 맑음.
Ponfferrada --- Villafranca del Bierzo 24.1Km 걷고 나면 잔여 거리는 183.1Km 남는다.
고도는 530m 애서 500M 까지 이어지니 평탄한 길이다. 25일차다.
고도 509 m 12세기의 Santiago 라는 이름의 교회와 13세기의 San Francisco 교회가 있다.
항상 우리는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향한다. 그래서 늘 아침에 출발하면 내 그림자가 길게 앞을 인도 한다.
길고 긴 내 그림자를 이렇게 오랫동안 볼 수 있는 것도 이 길이 주는 은혜다.
그리고 점점 그림자는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이 길은 전체가 예외 없이 늘 그랬다.
시간과 세월의 흐름은 지금 내가 아침마다 보는 그림자와 다름이 없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속으로 숨어 버린다.
60중반을 넘어 가는 삶의 남은 그림자는 이미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는 삶이다.
긴 그림자도 갑자기 구름이나 비바람이 밀려오면 시야에서 살아져 버린다.
정오쯤 몸속으로 들어 와 사라질 그림자가 중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도 우리네 삶과 닮아 있다.
그런데 유일하게도 오늘의 출발지는 도시 전체를 빠져 나가는 동안 해를 마주하고
동쪽으로 방향이 이뤄져 있다. 6시 50분 출발 했다.
賢은 앞서 갔고 남은 우리 셋은 길을 잘 못 들어 리턴도 했다. 2Km 정도는 늘어 나 버렸다.
체리를 길가에서 따 먹기도 했는데 늘 주인에게 들 낄까 봐 노심초사다.
1유로만 주면 우리네 번데기 살 때 담아주는 봉투 같은 것에 한 봉지를 주는데... 3유로 내고 세 봉지 사서 나눠 먹었다.
이 길은 각자 걷는 길, 협력 할 때 만나고 혼자 이고 싶을 땐 떨어져서 걸으면 된다.
가끔 늘 같이 움직이는 우릴 보고 싸우지 않느냐 고 한국인들이 묻는다.
우린 미워졌다가 좋아지는 심리적이 갈등이 오가긴 해도 싸우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친구끼리 왔다가 싸우고 헤어져 걷기도 한다는 데....
우리의 출발 대형은 같이 출발을 하는 날도 조금 걷다 보면 賢이 제일 앞서서 껑충 껑충 간다.
다리가 걸어서 우리가 보기엔 힘도 들지 않고 잘 나간다.
그리고 환자 그룹으로 자청하는 敦과 서석은 정답게 무리를 이루고 배낭 속의 물을 서로 스와핑으로 빼고 박아(배낭에 다시 넣어 주는 일인데 옆에 끼워 주는 동작이니 박아 준다는 표현이 옳다)주면서 걷는다.
나는 20Km 정도를 넘으면 노래를 하고, 속도를 가속해서 앞 서 나간다. 레파토리(리피트곡)가 30개도 넘는데 서석은 늘 10개라고 우긴다. 같이 걷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면서 각자 자신의 마음과 대화를 한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賢인 이곳저곳 구경을 다닌다.
그래서 언제나 사전 연구도 열심히 했지만 늘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우리에게 잘 알려 준다.
도중에 어제 만난 母女들을 만났다.
우린 가장 먼저 출발 하고 느리게 걷고 늦게 도착하는 편이어서 길가에서 눈에 익은 순례자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성당의 鶴이 사는 집에는 참새들이 끼어서 산다. 서로 뭔가를 돕고 살던지, 아니면 참새가 일방적으로 끼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끼를 쳐서 먹이를 주는 황새의 모습도 가끔 볼 수 있다.
제가 삼킨 먹이를 새끼를 위해 다시 토해서 먹여 주는 것이라고 賢이 알려준다.
꿀꺽 삼 낀 먹이를 목 줄기의 중간에 보관했다가 제 배고픔은 참아내고 새끼를 위해 다시 먹이는 일은 사람 못지않다.
아주 작은 교회로 검은 세타를 단정하게 입은 허리가 조금 굽은 할머니가 큰 열쇠꾸러미를 들고 나와 교회 문을 연다. 얼른 들여다봤다. 깨끗한 흰 테이블 포가 눈에 들어오고 그 위에 촛불을 켠다.
성모마리아와 예수님 앞에는 흰 카라 꽃이 정갈하게 꽂아있다.
저 카라 꽃은 우리 집 사람이 좋아 하는 꽃인데.....
영국에 잠시 살았던 때에 80 노처녀인 미스 릴리 Lily가 우리에게 선물로 준 작은 꽃도 카라였는데...... Google에서 PO22 7EQ를 치면 우리가 살던 영국의 그 집 앞의 카라 꽃을 지금도 볼 수가 있다. Google이 하필 그 때 찍은 사진을 그대로 올려놓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렌트했던 차량의 모습도 볼 수가 있다. 자기 집 문패에 Miss. Lily 라고 달아 놨었는데..... 살아 갈 날들 속엔 아름다운 기억들만이 가득하게 하소서.
친구들에게 뒤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간단히 급하게 무릎을 꿇고 오늘의 무사를 기원했다.
큰 포플러 poplar를 모두 베어 내고 새롭게 바로 옆에 포플러를 심어 놓은 곳이 보인다.
어차피 죽어 갈 나무이므로 뿌리는 둥치채로 그대로 두고 새 나무들을 심어 두었다.
나이 먹은 포플러를 일시에 개량한 모습이다. 마치 내가 몸 담았던 회사의 물갈이처럼......
효율적인 개량은 일시해 해 버리는 것이 자연이나 조직이나 같은 이치인가?
길가의 붉은 장미를 한 잎 따서 코 구멍에 끼어 넣었다. I am very tired, so blood is flowing from my nose. 내가 피곤해서 코 구멍에서 코피가 흐른다. 한 쪽 구멍에서 나오는 것으로 장미 꽃 잎을 꼽았으니
單數가 맞다. 두 구멍에서 나왔다면 are ~~~~~noses. 일 껄. 이렇게 자꾸 생각하면 영어는 어려워진다.
이 도시는 오래 된 슬픈 역사의 도시다. 현재는 5,000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는데 1589년 페스트가 창궐해서 마을을 황폐화 시켰고, 1715년 대 홍수는 마을을 쓸어 간 역사기록이 있다.
크고 깊은 냇물이 흐르는 곳이어서 상류에서 조절 기능을 갖고 있지 않으면 이 도시는 큰물이 나면 잠길 수밖에 없는 자연 조건임을 금방 알 수가 있다.
점심은 호텔에서 11유로씩 내고 나는 라자냐를 시켜 먹었다.
레드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곁들였다. 라자냐의 맛은 그저 그렇다. 마을 곳곳에는 커다란 호두나무들이 많다. 나뭇잎이 싱싱한 걸 보면 이 지역은 벌레를 걱정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오래 된 많은 호두나무들은 가을을 풍성하게 하고도 남을 것이다.
호스텔 앞의 장미 밭의 장미는 향기를 유난히 많이 풍긴다. 붉은 장미인데 햇볕에 몸을 모두 들어내고 햇볕의 사랑을 듬뿍 받은 탓 일 것이다.
5월31일 목요일 맑음.
Villafranca del Bierzo --- La feba 23.5Km.
고도 500에서 O Cebreiro 까지는 1,296까지 오르는 길이어서 고도 921인 La feba에서 쉬기로 정했다.
26일차다.
고도는 917m 18세기에 새로 지어진 San Andres 교회가 있다.
원래는 스페인 순례자들에게는 28Km 구간인데 당일 거리를 조정하여 줄였다.
도로를 따라 이동했다.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
먼저 간 賢은 놔두고 셋이서 아이스크림을 6유로 내고 사 먹었다.
스페인의 아이스크림 시장은 네슬레가 완전히 장악했다.
많은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立看板에 사진을 찍어 붙여 놓고 번호를 부여하고 가격까지 표시해서 손쉽게 고르고 사 먹을 수 있도록 했다. 큰 호두나무들의 연속이다. 길 가가 모두 호두나무이니 주인도 없을 것 같다.
작년에 떨어진 호두를 주어 이동하면서 발로 까 봤는데 모두 썩었다. 점심은 복숭아 넥타와 조리토로 했다.
거친 바게트 빵에 건조한 조리토는 맛이 없다. 고도 500에서 920까지는 아주 가파른 편이다.
독일처녀가 예쁜 모습으로 헐떡거리고 오른다.
처음 태어난 멧돼지의 줄무늬처럼 선이 쳐져 있는 모택동 모자의 색상이 예쁘다.
처녀의 모습도 예쁘다. 모자부터 칭찬 해 줬다. Your cap is very nice. 이 한마디 표현으로 족하다.
칭찬에는 모두 약해진다. 동서양이 같다.
법학도 이고 프랑크푸르트 Frankfort로부터 300Km 떨어진 곳에 산단다. 이름을 물었다. AANA 더블 A 라고 자기를 소개 한다. 같이 셀카(self camera)도 한 장 찍었다. 히프는 too big 이네.
성당이 운영 하는 알베르게는 기부제고 시설과 준비상황도 아주 양호 한다. 처음엔 우린 이 곳에 호스텔이라 붙어 있어서 숙박비가 비쌀 것이라고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 왔다. 대기 줄의 거의 끝에 붙었다.
30~40명 정원의 숙소다. 주방 시설도 준비가 완벽하다. 소금도 각종 차 류와 코코아 커피도 비치되어 있다.
밴디지 등 의약품도 잘 갖추고 있다. 야고보의 입상이 있다.
인스턴트 코코아 2봉과 커피 4봉, 작은 소금 2개를 챙겼다. 몸이 힘들어 질 때 만들어 먹는 커피와 코코아는 새로운 활력을 준다. 밭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영어도 잘 구사하고 옷도 멋지게 입었다.
농부도 우리와는 차림새가 다르네.
6월1일 금요일 .
우박 동반한 강한 소나기.전반적으로 흐림 La feba ---- Triacastela 26Km .
고도 921에서 1332까지 오르다가 662까지 내려간다.
달이 바뀌고 27일차다.
4시 반에 기상해서 일부러 밖에 나가 별을 봤다. 집에는 별일 없겠지.
멀리 떠 나 오면 늘 별일이 없을 집에 별 마음이 다 쓰인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독과 가시가 존재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뱉어 내는 말 속에 독과 가시를 제거해야 한다.
상대의 말 속에 독과 가시가 존재함이 감지 될 때는 대꾸함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 된다.
사람들의 범주에는 가족들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끼리도 함부로 표현하는 말 한마디가 큰 독이 되는 것을 주의 할 일이다.
가족이니 서운함도 이해하겠지 라는 지례짐작이 가정의 불화의 싹이 된다.
듣기는 빨리 하고, 말 하기는 더디 하고, 화내는 일은 더욱 더디 하라. 그리고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 전에 끼어들지 말고, 참고 끝까지 들어라. 이것만 잘 지켜도 聖人君子가 된다.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난하거나 나쁘게 이야기 하지 마라.
이것만 지켜도 좋은 인격을 갖춘 인물이 된다. 이렇게 하기만 해도 평판이 좋아 지고 젠틀맨이 된다.
나라는 이미지는 상대방에게 어떻게 고정되는지를 찬찬히 생각해 봐라.
지속적으로 오래도록 상대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서 만나라.
남은 12일 동안이라도 같이 가는 친구들에게 실천 해보자.
-상대를 존중해 주자.
-내 주장을 하지 말자.
-친구들의 장점과 단점에서 배우자.
-가능하면 많이 베풀자.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숨이 차다. 멕시코에서 온 대 학생들인 세리카와 알렉스를 만났다.
캐나다 출신인데 그네들과 같이 걷고 있는 안경 쓴 처녀는 팔뚝에 다닐 幸자가 문신되어 있다.
그래서 난 이 친구를 Happiness로 불렀다. 세리카는 눈이 동글고 귀엽게 보인다. 알렉스는 에너지가 넘친다. 수중 카메라를 갖고 와서 물 통 안에 제 머리를 박고 촬영을 한다.
다음엔 나도 수중 카메라 연구 해 봐야겠다. 세리카에게 영화 Bucket List 물으니 내용을 잘 안다.
이야기가 순조롭다 와우wow를 연방으로 외친다.
잘 먹어서 살이 찐 소떼는 걷기가 불편한 정도로 몸을 흔들며 제 집으로 돌아간다. 뒤뚱 뒤뚱 걸어 내려간다. 점심은 그린 소파(수프)와 쇠고기로 했다. 메뉴판이 영어가 없어서 같이 걷는 외국인들에게 물어서 결정했다. 음료도 여러 잔 마신 하루다. 점심 먹고 나니 굉장한 졸음이 온다. 약 타나? 씨에스타 잘 하라고....
산길, 차도, 꽃길이 소를 많이 키우는 지역이어서 쇠똥과 뒤범벅이다.
점심을 하는데 동네 음식점 아주머니는 영어는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다. 메뉴도 몽땅 스페인어로 되어 있어서 도무지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소리로 확인키로 하고 혹시 양 음메~~~~ 냐고 물었더니 무 무 우 하면서 소 울음소리를 낸다. 그래서 쇠고기로 판단하고 넷이 같은 메뉴로 쿠아트로(cuatro) 하고 시켰다.
이미 테스트 한 45도짜리 전통 독주 오르호를 곁들였다.
Bar의 높은 의자 위에는 삶에 지친 듯한 사내가 화이트 와인(비노 블랑) 한잔을 시켜 홀짝이다가 동전으로 값을 치루고 나간다. 뒤 모습에도 삶의 고단한 흔적이 달랑 잘랑 달려 있다.
오후에는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강한 우박을 동반한 소나기가 내린다.
내가 가져 간 빨래 줄은 고무줄인데, 길게 늘였던 고무줄 빨래 줄을 걷다가 고무줄이 튕겨서 눈을 다칠 뻔했다. 빨래는 모두 젖어서 다시 해야 했다.
늙은 서양 할매들은 홀랑 벗고 큰 수건만 두르고 욕실로 들어간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늙으면 노망이다.
거시기가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줄도 모르고 지나간다.
47살 이라고 자신의 나이를 알려 주고 우리와 한때 반갑게 지냈던 스위스의 여인은 잠들기 직전 까지 큰 소리로 끝없이 떠들어 댄다. 상식이 몰상식 하다. 이 이후로 난 이 여자는 마주치는 것을 피해 버렸다.
좋아졌던 사람도 어느 순간 미워져 버린다.
6월2일 토요일 흐림.
Tricastela --- Sarria 18.3Km 잔여거리는 115.3Km 로 줄었다.
고도는 662애서 454로 떨어지는 평탄 한 길이다. 28일차다.
11세기의 산타 마리아 라는 이름의 교회가 있다. 쇠 똥 동네 2번째 구간의 통과다.
짧은 거리여서 11시 반에 걷기는 끝이 난다. badge 와 칼을 한 개 샀다.
9유로씩 주고 2층에 4인 1룸을 잡았다.
사설 알베르게인데 주인의 취향이 실내를 가정집처럼 이것저것 장식해 두고 있는 집이다.
점심은 7유로에 뿔뽀 먹고 오르호 독주로 반주를 했다.
뿔뽀는 문어를 부드럽게 데쳐서 고춧가루와 왕 소금을 살살 뿌리고 오리브 기름에 절여서 내는 전통 음식인데 우리나라에서 하면 느끼하다고 할 음식이다. 우리는 문어 삶은 것에는 초장이 최고 아닌가.
만날수록 싫어지는 사람은 왜 그럴까? 잘 난 채 하는 사람, 아는 채 하는 사람, 겸손하지 못한 사람,
남을 터치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세상에는 만나면 좋고 다시 만나고 싶어지는 사람과 만날수록 싫어지는 사람이 있다. 만날수록 아낌없이 주고 싶은 사람과 만날수록 베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 나는 어떤 부류의 사람일까?
건설이 중단 되어 있는 건물이 보인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요즈음의 스페인의 경제 어려움과 불경기를 대변한다.
그러나 일상의 이들의 삶에는 어려움이 보이지 않는다.
오르호의 독주에 허브 향을 첨가해서 녹색으로 보이는 술은 이에르바스다.
저녁에는 부대찌개를 했는데 시금치 압축 된 것을 넣으면 좋을 것 같다고 부대찌개에 넣었더니 죽이 되고 말았다. 음식은 그 나름의 특징을 살린 음식다워야 한다.
부대찌개는 소시지와 햄을 설렁설렁 넣고 고춧가루와 야채 조금이면 족한데.... 지나치면 항상 문제가 된다.
세상만사는 모두 그렇다. 그래도 모두 맛있게 먹었다.
100Km 남짓의 거리이기 때문에 중간에 단 거리를 걷는 순례자들이 늘어나서 길은 북적 거린다.
100Km 이상만 걸으면 순례자 인증서를 준다고 들었다.
6월3일 일요일 흐림.
Sarria --- Portmarin 22.4Km 걷고 나면 잔여 거리는 92.9Km 다.
고도는 454에서 600정도 까지 오르다가 387로 떨어진다.
29일차다.
고도는 320m 이고 니콜라스 교회와 산 페드로 교회가 있다. 1182년 건축된 것이다.
스페인 아줌마 그룹을 만났다.
연신 노래를 부르며 소풍가는 초등학생들처럼 신나 있다. 나는 같이 어울려 걸었다.
그들의 발음을 따라서 한 구절 단어를 외치면 까르르 하고 웃어 댄다. 웃음 많은 여고생들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친해진다.
중간쯤에서 용모가 준수한 두 명의 젊은 여인들과 만났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United States, 모처럼 만난 미국인이다. 다음 질문은 Which state? 그리고 여간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들의 답은 기억해 내지 못한다. 들어도 금방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다음 문장을 생각 하느라고 들은 이야기는 머리에 메모리가 불가하다.
스페인어 전공자로 이곳에 단기 교사로 취업을 해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단다.
100Km 이상을 걸으면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걸은 인증이 되어 이곳에서 시작하는 그룹들이 많다.
이 선생들도 바쁜 시간에 틈을 내서 그렇게 합류 했다.
교회 묘지 철길 오솔길을 차례로 지난다. 이곳의 묘지는 층층으로 관을 넣고 밀봉하는 형태로 보인다.
어떤 곳에서는 땅 속에 묻어 있기도 했다. 사람들은 죽어서도 돈이 있는 사람의 묻힘과 허름하게 묻히는 사람들로 구분이 된다.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임에도.....
이 길을 걷다가 숨을 거두고 어딘가에 묻힌 뒤, 길가에 表示木으로 남아 있는 이들의 모습이 훨씬 좋아 보인다.
말라가 아주머니인 카르멘도 만나고 퀘백 아주머니도 다시 보고, 이태리의 키가 크고 영어는 한 마디도 구사 하지 못하는 사진사, 컴퓨터와 사진기와 전화로 하루를 정말 열심히 정리 하는 친구도 만나고,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젊은 여자들의 킬러 같은 사내도 만났다. 모두 우리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다.
이 바람둥이는 중간에 여인을 꼬드겨서 진한 새벽 키스를 해 댔단다. 친구들 중 누군가의 목격자 증언이다.
우리일행은 눈이 8개나 되어서 살짝 몰래 하는 사랑들도 잘도 알아내고, 금방 전파하고 공유해 버린다.
그리고 이 여인이 이 사내를 동행 한다. 여인이 낯선 남자를 줄곧 따라 다닌다. 역사를 이뤘나 보다.
간식음료는 카페 쏠로 쁘띠로 했다. 에소포레스 싱글이다. 우리네 연령대는 보통은 커피에 무심하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커피를 사서 마실 때 톨 그란데 등의 커피의 양의 크기를 표시한 것을 보곤 도대체 영어도 아니고,
무슨 나라 말인지 몰라서 기가 죽곤 하는데 스페인어나 불어 중에 하나 일 것이라고 짐작만 했는데 아프리카를 석권했던 스페인이 이 표시의 원조임을 알았다.
그래서 나이든 노인네 들은 아메리카노를 입에 달고 다니지만.... 25개의 원두 알을 25초 만에 25CC 뽑는 기술이 에소포레스 커피의 진수라고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가 되 살아 났다.
여기에 물 타면 아메라카노/ 여기에 더운 우유를 펄펄 끓여서 넣으면 커피 라떼/ 여기는 우유는 리체 이니
카페 리체 /그리고 흔들어서 버블을 만들어 올리면 카프치노가 아닌가?/ 돌아오던 날 공항의 전문 커피숍에서 두유를 덥혀 넣은 소이Soy 라떼도 맛을 보았다. 맛이 없어서 다시는 마시지 않겠지만.......
주방에 그릇이 없어서 백숙은 순연하기로 했다가 다시 준비해서 닭을 삶아 먹고, 죽도 잘 끓여 나눠 먹었다.
제일로 성공한 음식이다. 닭은 우리보다 훨씬 크고 기름지다.
주방의 그릇이 작아서 그릇 밑에 붙은 닭은 일부 누른 상태였다.
요리는 나와 賢, 설거지는 서석과 敦이 나눠 했다.
靈肉이 향기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씻고 닦고, 향수 바르고 마음을 수양하는 사람이다.
만날수록 보고 싶어지는 사람이 되어보자.
모든 좋음과 싫음은 그 사람이 하는 언행에 달려 있다.
동네 중간 창가에는 꽃들이 가득하다. 강물은 깨끗하지 않다.
소를 많이 키우는 곳에서 흘러드는 오물 탓인가. 면도를 해서 수염을 밀어 버렸다. 인물이 좋아 졌다.
이렇게 쇠똥냄새가 많이 나고 비까지 내리는 곳에서는 수도에서 나오는 찬물을 마시는데 조금 걱정이 된다.
생수를 살 곳도 없어서 마실 물이 어떤 것이냐고 물으면 대게는 빨래하는 곳의 물을 마시면 된다고 알려준다. 조금 의심스러워하면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고 나이스라고 믿음을 준다.
6월4일 일요일 맑음 .
Portomarin --- Palas de Rei 25Km 잔여 거리는 67.9Km 다.
30일차다.
고도는 565m 다. Teple of San Triso 가 있다.
이미 123Km부터 마일리지 표석은 Km 수를 카운트되기 시작했다.
定罪하고 淨罪하라. 네 죄를 규정하고 고백하고, 그리고 너의 죄를 정화하라. 라는 내(吾) 식의 규정이고 해석이다. 우리는 늘 東에서 西로 가고 있다. 그래서 이 길은 황혼에 선 자들의 길이다. 라고 나는 확신한다.
젊은이들이 걸을 길이라면 서에서 동 쪽으로가 좋다. 그림자를 앞세우고 걷는 자와 그림자를 뒤에 짊어지고 걷는 자의 차이다. 다음에 이 길을 걷는 다면 다시 서에서 동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자. 아무래도 포르토 Porto 에서 산티아고를 향하는 길이 그 길이 되지 않을까? 아니지 북으로 향하는 길이지.
자꾸 끌리는 사람, 싫은 사람. 반성, 참회의 길이다. 점심은 문어와 오징어에 쌀을 섞어 죽처럼 만든 것과 Knuckle Roast로 했다. 주인장의 인심이 좋다. 서석의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느냐는 주문에 허리춤에 자기 손을 올려서 가뜩 멋을 내 준다. 우리가 먹을 음식도 추천 해주었는데 잘 정해 주었다.
점심은 음식점 1대 주인장의 권고로 택한 음식이 소의 앞다리를 고온 살코기 뭉치다. 푸짐 하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인데 賢이 권투 용어 중에 팔꿈치로 치는 것이 럭클펀치란다.
그러니 이 로스트는 소의 무릎 부분의 살 고기를 푹 고아 삶은 것이다. 최고의 고단백 영양섭취다.
여러 방면에 박식한 친구가 동행하는 길은 유익하다. 양념 통에 고춧가루가 보였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고춧가루를 좋아 한다. 그런데 슈퍼에서 우리는 찾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 싸 줄 수 없겠느냐? 는 비교적 정확한 영어 요청에 이 음식점의 2대인 젊은이가 고춧가루를 듬뿍 싸줬다. Most Korean people likes red pepper. But, we can not find red pepper in Spain any super market. Could you give us some pepper?
선생인 케이트와 케서린 에게 e- mail 받기로 하고, 사진도 찍었다. 같은 방에는 미네소타 주립 대학생들이 가득 채워졌다. 인솔 교수는 한국말을 제법 구사한다. 한국학생들이 많아서 익혔다고 했다.
동양인 하나는 릭(Ric) 이라는 중국 학생이다.
길가다가 한 가족을 만났다. 내게 영어가 가능하냐고 묻는다. 영어가 유창한 미국 가족이다.
부모와 아이들 둘이다. 미국 가족이 모두 함께 걷는 모습은 이 가족이 처음이다.
6월5일 화요일 비 Palas de Rei --- Arzua 28.8Km 걷고 나면 39.1Km 남는다. 고도 편차는 100m 정도니 편안 한 길이다. 31일차다.
고도는 389 m, Chapel of La Magdalena 가 있다.
인구 7,000명의 마지막 도시다. 6시 5분전에 출발했다.
아침에 마신다고 서석과 敦이 사 온 우유가 정상 우유가 아니다. 다른 용도의 크림정도 된다.
고소한 맛이 기름이 그대로 인 것 같다. 배탈이 나지 않을 까 걱정 했는데 탈은 없었다.
슈퍼에서 우유 고르는 일도 쉽지 않다. 새벽달의 모습이 보름달 모양이다.
실제 음력이 몇 일 인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확인 해 보니 6월4일 날이 보름이었다. 그러니 하루 지난 보름달이었다) 까마귀와 개구리 노랑 들 창포 꽃이 어우러진다. 걸음들이 빨라진다.
10시경 뿔뽀 전문점이 보여서 뿔뽀 두 접시와 맥주를 마셨다.
사과로 간식하고 츠모나랑하 (오렌지 주스) 또띠아(감자에 계란 넣어 만든 것)로 점심 했다.
알베르게는 4인 1룸을 50유로 지불했다. 앞서 갔던 70대 노인들을 만났다. 인사를 나눴다.
새로운 年下의 사람들을 대 할 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겸손히 자세를 낮추는 것이 좋다.
연하의 사람들은 年上인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면 손해가 된다. 라는 지례 짐작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것도, 카카오로 글이나 그림을 보내는 것도 늙은이들은 조금 자제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조금은 수동적인 것이 늙은이들의 자세가 아닐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노익장들을 보고 느낀 생각이다.
비가 간간히 내렸다. 짐 풀고 얼 그레이 홍차 티 한잔씩을 했다. 모두 힘들어 한다.
저녁은 프레그레노 메뉴에 오르호 마셨다. 이 오르호는 술을 좋아 하는 친구들에게는 아편 같은 효과가 있다. 비가 내리는 탓인지 시내는 꾸리꾸리 하다.
6월6일 수요일.
Arzua --- Pedrouzo 19.1Km 걷고 나면 마지막 20Km 남는다.
32일차다 .
6시15분에 출발했다. 1시경 도착했다. 구름층이 깊다. 만나고 헤어졌던 세계의 순례자들을 여럿 다시 만난다. 말라가 칼멘은 우리를 위해 기도를 하겠단다.
타인을 위한 축복의 기도를 드리는 마음은 단수가 고수 아니겠는가? 발이 아파 너무 고생한 그녀가 완주 한 것은 이런 신앙과 믿음의 힘 때문일 것이다.
독일부부, 케이티와 캐서린, 기타와 짐을 끌고 가는 여인, 모두 낮 익은 얼굴들이다.
점심은 녹두 소파(스프)와 hake 로 선택했다. hake는 대구의 일종인 생선이다.
알베르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좋다. 좋은 음악은 우리 귀에 잘 익숙한 음악들이다.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이 메일을 간단히 보냈다.
뿔뽀와 오르호로 마무리 하고 슈퍼에서 오르호에 커피를 탄 술, 오르호에 크림을 탄 술 등을 사다가 맛을 구분하는 훈련을 했다. 잘 알 수는 없지만 포도주를 농축시킨 독주라고 하니 포도주 담고 남은 끝 포도로 만드는 술이 아닌 가 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는 코냑이고 이곳은 오르호인가? 여기에 커피와 크림 그리고 허브 향을 첨가해서 별도로 판다.
칵테일로 개발을 한 셈이다.
6월7일 목요일 .
비가 오다가 개였다. 그리고 다시 비가 반복 된다.
O Pedrouzo --- Santiago de Compostela 잔여거리는 0Km 다.
33일차다.
계획보다 2일을 더 사용했다. 잘 한 일이다. 이른 아침에 비옷을 챙겨 입고 잘 빠져 나왔는데 앞 서 간 사람의 꽁무니만 따라가다가 길을 잃고 우회하게 되었다.
제일 선두에 내가 섰으니 길을 잃은 것은 완전한 내 실책이다. 마음속으로는 12시 전에 산티아고 대 성당에 도달하기로 작정하고 앞서서 몰아갔지만 우리에게 허락 하지 않았다.
70대 노인들도 일요일 미사에 참석한다고 했는데 속도를 늦추지 않고 같이 이동하고 도착했다.
끝 무렵이 되면 사람들은 모두 급해 지는 모양이다.
대게 사람들은 남의 고통에는 아무렇지 않게 스쳐 가고 자기의 작은 아픔에는 안달을 한다.
남에겐 엄격하고 내겐 관대 하다. 아무리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은 누구나 언제나 자기만의 편협한 거울로 세상을 본다.
반반이고 목표가 보이면 사자처럼 포효하고 돌진하자. 서둘음이 화를 자초 했다.
그래도 친구들은 불평을 말 하지 않는다.
마지막 이 길을 만만하게 보고 있는 우리에게 이 길이 주는 선물로 받는다.
굴다리 Amenel에서 차 마시고 휴식을 취했다. 70대들과도 조우했다.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보면 측은하기도 하고 장하게 보이기도 한다.
장한 측면 보다는 측은한 생각이 내겐 더 강하다.
산티아고 광장으로 향하는 굴다리 아래에는 백파이프 연주가 한창 이다.
멤버들을 바꿔 가며 거리의 악사들이 산티아고의 입성에 분위기를 잡아 준다.
어떤 때는 푸륫연주자 옆에 큰 검은 개가 함께 옆을 지키기도 한다.
고색창연한 성당의 벽들이 빗물에 젖어 더 검게 보인다. 성당 앞에 배치 된 경찰들은 친절하다.
물으면 거수경례를 하고 응답해 준다. 인증서를 수령하려고 길게 늘어선 줄에서 예비역 해군 대령을 만났다. 우리 바로 뒤에 있다가 서로 인사를 나눴고 본인이 자청해서 소개를 해준다. 열린 마음이다.
이곳이 세 번째라고 자랑을 한다. 이골 난 분이다. 나이는 우리보다 위로 66세 정도로 보인다.
포르투갈 포르토에서 200Km 길이 좋다고 추천한다.
銀의 길이나 리스본에서 올라오는 길은 큰 차도가 많아 위험했다고 전 한다. 모로코의 카사브랑카도 여행지로 추천을 한다. 알베르게를 정하고 하루에 12유로 씩 이틀씩을 잡았다.
큰 알베르게이고 2층이 아닌 단층 배치다. 그래 내년에는 포르토 길 한번 걸어 보자.
다양한 정보는 생각을 바꿔 놓기도 한다. 미사 하는 모습은 내일 다시 보기로 했다.
성당 옆 박물관에 혼자 미리 들어 가 보다가 5시 미사에 큰 향로를 흔드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큰 이벤트처럼 보인다. 전해 오는 다른 말로는 많은 순례자들의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큰 화로에 향을 피웠다고도 하는데...... 요즈음 순례자들은 매일 잘 씻는다.
산티아고에서는 감동으로 누구나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서로 축하 한다고 격려를 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글쟁이들의 글 장난이라 새겼다. 오히려 덤덤해 진다. 그리고 차분해 진다. 내리는 비 때문인가?
6월8일 금요일 맑음.
새벽부터 술에 취한 사람인지 정신이상자인지 모르지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는 사람 때문에 모두 급하게 눈을 떴다. 어떤 여자 분은 병원으로 데려가도록 엠블런스를 부르자 고도 했다.
알베르게에서 25분 쯤 걸어서 Autobus 터미널 로 이동해서 아침식사는 크로아상과 커피로 간단히 했다.
터미널에서 케이티 캐서린을 만났는데 머리를 서로 빗겨 주는 장면을 사진 찍었다. 보기에 좋다.
미국태생으로 스페인어를 전공하고 스페인에 와서 단기 교사를 하고 있는 이 처녀들은 귀엽다.
알베르게의 같은 방에서 잘 때도 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서로 머리를 잘 다듬어 주고 빗겨 준다.
웃는 모습이 풋풋한 젊음과 어우러져 참 예쁘다.
2층 버스로 승객들을 가득 태우고 버스는 9시에 Finestera 로 이동 했다.
자리 번호가 있는데도 순서대로 앉는다. 뒤에 서 있다가 제일 뒷부분에 앉게 되었다.
왕복 인당 22.5유로씩이다. 돌아오는 버스는 16시 25분이다.
파란 하늘 뭉게구름의 호수 마을이 아름답다고 생각 했는데 바로 바다와 연결 된다.
내가 처음 본 것이 호수가 아니라 바다였던 것 같다.
끝없이 주절대는 독일 남자, 무례한 자들이 이 속에도 있다.
자연 앞에 대중 앞에 조용하고 경건해지. 경험 하지 않은 것을 미리 아는 채 하면 바로 바로 들통이 난다.
해변의 모퉁이에서 주절대는 독일 남자가 하모니카를 분다.
오 쏠레미오 와 산타루치아를 반주 해달라고 했더니 어설프다. 몇 곡만 잘 불 수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작은 악기를 하나 다루면 여행의 피곤과 권태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다. 악기를 못 다루더라도 외국 가요를 원어로 알아 두고 한곡 뽑을 수가 있으면 으쓱 해질 수가 있다.
다음엔 가곡 몇 곡을 미리 챙겨 와야지. 빠야야 다시 먹고 카페 쏠로 쁘띠 마시고 간식으로 오르호와
전어 네 마리를 맛보았다. 전어는 한 마리가 1유로다. 왕 소금 살살 뿌리고 구어 낸 모양이 우리와 똑 같다.
길거리에 섰던 임시 장은 오후에 철시를 한다.
15시 버스로 리턴 했다. 더 이상 지체 할 일도 볼 것도 없다. 버스 속에 중간에 탄 현지처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잘 차려 입은 처녀들이 우아한 모습으로 차려입고 산티아고로 외출을 한다.
해변 가의 산 쪽의 마을들은 우리가 걸었던 마을 보다 훨씬 풍요로워 보인다.
창가로 스치는 풍광들이 아름답다. 중도의 산티아고 역에서 하차해서 마드리드 행 티켓을 구했다.
침대칸이 없어서 그냥 일반자리만 예약 했다.
6월9일 토요일 비가 내린다.
준비해둔 것들로 아침 식사를 했다. 바나나 사과 복숭아 바게트 빵, 웨하스 계란은 서석과 함께 삶았다.
6개여서 4개만 남겨 놓고 한 개씩 시식 했다. 먼저 일어나 부지런 떤 사람에 대한 특혜다.
성당으로 다시 나가서 구석구석을 다시 봤다. 야고보 銀製 관도 참배 하고 야고보 상의 어께를 뒤에서 잡고 소원을 빌었다. 집 사람이 저보다 오래 살게 해 주시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게 해 주십시오.
저는 작은 촛불처럼 살다가 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결에 꺼져 버리는 촛불처럼 살포시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아이들에 대한 바람도 급하게 기도로 올렸다.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미신적인 요소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12시 미사는 지루했다. 헌금도 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예수라는 말 뿐이다.
차이나 식당 까지 택시로 이동 했다. 이곳은 중국 식당이 몇 개 있는 모양이다.
영어를 못 알아듣는 택시 기사가 우리에게 반문하는 것이 어디 중국집이냐? 고 손짓을 하는 감이 들었다.
그 중 식당에는 우리에게 중식당이 좋다고 이야기 했던 해군대령이 혼자 식사를 주문하고 있었다.
그 분은 단품으로 알라카트로 새우 요리와 스프를 주문했다.
돌아오는 길에 막 철시 하고 있는 재래시장에 들려서 쇠고기, 양파, 감자, 애플망고와 체리 3Kg을 샀다.
서석은 얼른 오르호 한병을 챙겼다. 술을 좋아 하는 친구다.
중식당에서 이미 배부르게 먹었지만 기차 출발 시간인 22:33분 까지 남은 지루한 시간을 음식 만들기와 술로 때우는 게 최고일 것 같아서다.
쇠고기와 큰 감자를 설렁설렁 넣은 쇠고기 감자탕이지만 제법 맛이 난다. 고추 가루도 넣었다.
걷던 중간에 얻은 고춧가루를 소중하게 마지막 까지 갖고 다녔는데, 이 주방에는 고춧가루가 잔뜩 준비 되어 있었다. 스페인 고춧가루는 매운 맛이 우리 보다 강하다.
감자탕을 먹다가 내 컵의 오르호를 감자탕 속에 쏟았다. 얼른 식어 있던 감자탕을 불에 올려놓고 다시 끓였더니 오르호 냄새가 완벽하게 제거 되었다.
이 과정을 친구들은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알베르게에 같이 묵던 대학생 진이에게 9시에 오면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음식을 같이 먹을 수 있다고 서석과 賢이 약속을 했단다. 이미 음식은 찌꺼기만 남았다.
약속 지키기가 어려워 져서 애플망고와 체리에 메모를 붙여서 진이의 침대머리에 놓기로 했다.
賢이 알베르게의 호스페텔러에게 부탁을 하려고 시도 했다가 체크인을 위한 대기 줄이 많아 포기하고 정거장으로 이동했다. 어른 들이 약속을 지키지 못해 찝찝했다.
정거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는데 미래암이 우리 주라고 전한 와인을 들고 진이와 김성룡 학생이 왔다.
김君은 오늘 처음 만난 대학 3년의 건장한 청년이다. 만난 지 하루지만 서로 바로 가까워지고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이 이 길을 걷는 모든 이들의 한결 같은 마음이다. 몇 번만 걷다가 되 만나면 주저 없이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하는 곳도 이 길의 특징이다. 모두 같이 와인 한 잔씩을 했다,
진이는 무 알 콜 비어를 했다. 눈물을 글썽인다. 賢의 권유로 내 이메일 과 전화번호를 두 학생에게 줬다.
열차는 밤새도록 달린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자리는 불편하다. 자다 깨다 몸을 뒤 틀다 보니 마드리드 Chamartin 역에 아침 8시경 도착했다. 술에 취한 친구들이 물건을 잃어버릴 까 주의를 줬는데, 친구들은 모두 잘 했고, 나는 스틱을 놓고 내렸다.
우리와 같이 순례 길을 걸었던 땅딸보 떠버리 인 스페인 털보가 뭐라 뭐라 떠들어서야 내가 스틱을 기차 선반위에 그냥 두고 왔음을 알았다. 뒤 돌아 가도 어느 플렛 홈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여러 번 해 매다가 승무원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미 기차는 Go away 해버렸다.
나를 위해 먼 길을 같이 고생한 스틱은 이렇게 나를 떠나갔다. 아니지. 내가 떠나 보 낸 거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누군가 잘 쓸 수 있겠지.
내 전화 속에 마드리드 정보가 있었는데, 볼 수가 없게 되어 敦이 전화로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 물어 마드리드 민박 5개 전화번호를 입수 해 뒀다. 마드리드에는 약 20여개의 민박업소가 있다.
미리 숙박여부를 확인 했을 때 까미노 손님은 벼룩문제로 받지 않는다고 거절을 당했다.
루카스 민박과 연결이 잘 돼서 인당 조식 포함 25유로씩에 이틀을 묵기로 했다.
0034-915-598-411 사장이 친절하고 잘 응대 해줬다. 카미노 손님이 다녀가고 벼룩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 민박집은 망한다고 했다. 벼룩에 물렸다는 사람을 우리는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산티아고 대성당의 주변에 숙소를 구했던 캐나다에서 귀국하는 길에 걸었던 처녀가 벼룩 때문에 막판에 숙소를 옮겼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Anton Martin 역 출구 버거킹 대각선에서 유리창 2층에 한글이 보이는 집이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 버거킹은 안쪽으로 150m 이전을 했다. 시내 중심이어서 걸어서 프라도 미술관과 식물원, Sofia 미술관을 갈 수 있고 공항 리무진도 Atocha 역에서 편리하게 이용 할 수 있다.
6월10일 11일은 마드리드에서 보내고
10일은 프라도 미술관과 식물원 둘러 봤다. 11일은 소피아 미술관에 가서 유명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관람했다. 그림 속에 스페인의 굴곡의 역사가 들어 있어 더욱 뜻이 깊은 그림이다.
구경나온 유치원 아기들이 참 예쁘다. 베베 올라! 손을 흔들면 작은 소리로 올라 답하고 부끄러워한다.
돈 키호테 Don Quixote 상도 賢의 끈질긴 길 물음 결과로 기어이 찾아 봤다.
나오던 길의 Pob에서 마신 맥주와 맥주 안주는 맛이 그만이다.
스페인은 1936년 인민전선 좌파가 선거에서 승리하고 집권을 했고, 이에 반발한 군부의 프랑코가 중심이 되어 우파가 반발하여 내전이 발발했다. 1937년 히틀러의 독일 공군이 프랑코를 지원하기 위해 작은 도시인 게르니카를 공습한다. 이때의 참상을 피카소가 그림으로 표현하여 파리 국제박람회에 출품을 했다.
1939년 내전이 종식되고 우파가 정권을 장악했다. 1975년 까지 프랑코가 집권(39년간) 사망 후 후안카롤로스국왕이 즉위하고 민주화가 된다. 1981년 피카소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게르니카는 스페인에 귀환되고 전시 된 것이다.
스페인의 내전은 좌우의 대립으로 동족상잔의 모습이 우리의 전철이다. 양진영의 군인은 35만 명이 전사했다. 프랑코의 공화파는 3만~20만 정도를 처형 했고, 인민전선은 3만8천명을 처형했고 사제 7,000명과 수녀들도 희생되었다. 내전 종식 후 50만 명이 프랑스로 탈출했다가 15만 명 정도가 귀국했다.
39년간 통치한 프랑코는 신중, 영리, 기회주이자이며 내전 중에 독일과 이태리의 결정적인 지원을 받았다. 60년 후반에 스페인은 기적의 경제 성장을 이뤘고, 자신에 찬 독재자 프랑코는 나는 오직 신과 역사 앞에 책임을 질 뿐 이라고 일갈 했다. 스페인 내전이 더 유명한 것은 영국소설가 조지오웰이 무정부자의 전사로 참전하고, 헤밍웨이가 종군기자로 참전해서 그들의 문학 작품이 생생하게 전해 오기 때문에 그렇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 나?”도 무대가 이 시대다. 내 기억엔 코 때문에 어떻게 키스를 하느냐? 의 여 주인공의 물음에 코를 옆으로 회전하고 키스하면 된 다고 했던 남 주인공의 장면이 오랫동안 기억됐던 영화다.
중학교 시절에 봤던 걸로 기억된다. 그 때가 사춘기였나?
12일 아침 일찍 버스로 공항으로 이동하여 KAL 탑승했다. KLM을 타고 오는 친구들은 암스텔담을 거쳐서 이동하기 때문에 나 혼자 먼저 민박집을 나왔다. 좌석이 여유가 있어서 바로 표를 받았다. I'd like have emergency window a seat Please. 로 편안한 자리를 잡았다.
미리 검색한 Priority Pass 카드로 공항 라운지도 잘 이용 했다. 13일 6시경 인천 도착 상황 종료다.
체중계의 몸무게는 4Kg가 줄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한국인: 1)정기욱 청년: 생장에서 처음 만남. 모발 폰 회사를 그만두고 마음 추스르는 걷기. 2)조국원: 조국은 너를 원한다고 내가 이름을 고쳐 부른 학생. 대학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영주가 집인 학생으로 쾡과리 같은 버너를 휴대하고 씩씩하게 외국인들과 잘 어울리는 친구. 3)중앙대 전자 공학과를 3년 휴직하고 독일에서 봉사활동 경험한 후 국내에서 아르바이트로 천 만 원 정도를 모아서 걷기를 하고 있는 학생. 4)과기대 도자기과 전공 학생으로 휴학하고 힘들게 걷고 있는 진이. 큰 키에 몸도 발도 힘들어 지친 모습을 보인 학생. 마드리드로 오던 날 산티아고 역까지 와서 눈물을 글썽인 막내 딸 같은 아이. 귀국 후 내게 메일을 보내 왔다. 5)임상병리학을 전공하고 캐나다에서 취업한 후 귀국하던 차에 이 길을 선택해서 걷고 있는 과년한 처녀. 6)대전 교구 소속으로 안식년을 맞이해서 이 길을 걷고 있는 신부. 7)울산에서 모 회사에 근무하다가 퇴직 한 후 무작정 3월8일부터 1,900Km를 걷고 있는 조금은 표정이 차분한 청년. 내게 은의 길에 도전의 불을 붙여준 친구. 8)모 그룹의 부회장 근무 후 퇴직한 내 지인들의 친구, 선배, 후배가 되는 도전적인 전문경영인. 9)딸과 함께 칠순을 맞이해서 60일 동안을 일정으로 로마와 바로세로나를 거쳐 이 길을 걷고 있는 70세 동갑네 부부. 2년 전에 이 길을 걸었고, 너무 좋아서 다시 온 분들. 남편은 위암 수술을 하고, 부인은 심장 博動機를 달고 있는 부부. 10)충주 분으로 영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는데도 부인과 예루살렘 성지까지는 동반여행을 한 후에 홀로 이 길에 온 분. 배낭끈도 떨어지고, 영어가 되지 않아서 몽파르나스 역에서 기차표를 구하는데 3시간 이상 걸려서 피레네를 제일 마지막으로 늦게 넘고, 2층 침대에서 자다가 아래로 굴러 떨어진 경험의 소유자. 도중에 70대 가족을 만나서 서로 도우면서 식사를 해결해 가는 한국의 돈 끼호테. 11)수원에서 온 스페인어가 가능하고 와인과 양고기를 많이 좋아하는 3달 전 쯤 계획한 후 이 곳에 와서 自由奔忙하게 여행하고 있는 미래암. 12)남편과 작년에 이 길을 걷고 잊을 수 없어 다시 온 분당의 아주머니, 내년에는 남편과 다시 오겠다고 이야기 하는 마리아분. 그녀와 가끔 동행이 된 여자분. 13)중학생 정도의 어린 딸과 걷고 있다가 딸의 내면의 모습을 보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 좋아하는 젊은 엄마. 14)가끔은 차량이나 기차를 이용하고 숙소도 조금 업 그레이도 해서 동행하고 있는 부인을 위해서 조금 좋은 곳을 잡는 3가족의 부부들. 이질감으로 대화는 별로 이뤄지지 않음. 15)70대 노인들 6명의 그룹. 16)은행을 본부장급으로 퇴직한 동행의 친구 분 둘.
외국인: 1)부다페스트에서 온 조안나. 영어는 안 되지만 늘 선한 눈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 냈고, 한방에서 자기도 했고, 산티아고 성당에서는 우리를 안고 울던 여인. 스위스의 동행을 만나서 독일어로 신나게 이야기 했던 여인. 2)스위스에서 온 씩씩한 40대 중반의 여자. 우리가 코리아의 오라버니라고 이야기 했지만 저녁만 되어 제 말이 통하는 이들을 만나면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어 대는 무례한 여자. 양떼 치는 소녀였는가? 3)스페인의 마라가에서 오고 발가락 모두가 물러서 이른 아침엔 발가락에 밴드를 감는 일이 주요 행사인 얼굴이 맑은 여인. 어느 날 아침 의자에 앉으라는 내 권유에 볼을 대고 큰 포옹을 해 주던 이름이 카르맨이라는 여인, 산티아고 20Km 점에서 우릴 위해 가도하겠다고 이름을 기억해간 천사 같은 여인. 메일주소를 받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것이 아쉬운 분. 산티아고 성당에서는 다시 보지를 못함. 천사가 동행 했다가 미리 가 버린 것은 아닐까? 4)자전거로 여행하고 이어서 걷기를 하는 독일인 인상 좋은 부부. 5)프랑스의 의학 녀. 6)Don't stop 이라고 우리가 불렀고, 부인이 몸매가 유난히 아름다운 부부. 언제나 밝게 우리와 친구가 된 사람들. 7)슬로베니아에서 온 인상이 후하고 우릴 보면 진심으로 반가와 하고 좋아하고 인사를 나누던 두 부부. 8)히프가 내 것 3배는 되는 담배를 좋아 하는 뚱여. 9)탱크 같은 몸으로 지치지 않고 전진하는 중년. 체리 나무 밑에 쉬고 있던 우리들 사진을 찍어 간 친구. 10)캐나다에서 온 아주 작은 체구 45Kg 정도의 초로의 할머니. 걷는 모습은 늘 경쾌해서 사람들이 걷는 방법이 참 여러 가지라고 생각게 한 분. 뚜벅뚜벅 걷는 사람. 아장 아장 걷는 이, 사뿐 사뿐 걷는 분. 11)이태리인으로 큰 사진기와 오래된 노트북으로 열심히 정리하고 손을 들어 올리며 큰 키를 약간 숙이면서 인사를 해 오는 사진작가. 본인은 작가가 아니라고 했고 내 눈에는 전문가로 보였음. 도중에 부인이 같이 조인했음. 12)아주 작은 키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일본 남자. 13)담배를 멋지게 물고 커피를 마시는 일본 여인. 14)한국인 같은 여인이 서양인과 동행하고 서로 애인 사이인지 늘 몸을 부착하고 부비대는 그룹. 15)혼자 여행 하면서 키가 크고 준수한 용모로 도중에서 여자들을 애인으로 만들어 아침부터 키스를 해 대는 바람장이. 부러운 사람. 16)도중에 소풍가는 기분으로 노래하며 걷는 스페인 토박이 10 여인. 17)스페인어를 전공하고 단기교사로 일하고 있는 미국인들인 케이티 그룹 18)피자를 건네주고 히프가 거대한데도 열심히 잘 걸었던 도나. 19)검정 큰 개의 양쪽으로 등짐을 달고 걷고 있는 건장한 남자.
첫댓글 GOOD JOB !
잘 읽었습니다.작품입니다. 작품!!!
아주 좋았슴니다. 베리베리굿
대단한 일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