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창법을 알아보겠습니다.
1.노래 잘 하기.
2.노래를 잘 부르는 방법.
3.어떻게 노래를 잘 불러요?
1.2.3번을 검색했는데 1번이 창법의 내용이
충실하고 2번은 가수 홍자의 노래비법이 소
개되었네요.
모두 11면의 검색 내용이 소개되었어요.
노래 창법은 목소리가 가장 훌륭한 악기라고
합니다.
세종대왕님은 발성기관의 모양을 본 떠서
한글을 창제하였다는 건 세계인들이 모두 잘
아는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죠.
말 소리를 이루는 발성기관의 역할과 노래를
부를때의 각 발성기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기능을 살펴보겠습니다.
1.폐-발성기관으로 공기를 보내는 바람통
역할을 함.
2.후두- 리드(reed)처럼 폐에 흡입된 공기를
떨게함.
3.흉강과 비강.구강(전두부 안면)등의 기관은
관악기의 관처럼 공명현상으로 소리를 크게함.
4.혀- 입 천장.이.입술과 함께 일단 진동된 소
리를 모음 .자음으로 분절함
네 부위의 기관은 평상시 각각 독립작용하고
발성시 조화롭게 상호작용하여 소리를 낸다.
음악교육이 서양음악 위주로 되다보니 서양
오페라 노래를 흔히 성악이라 하고 , 성악의
발성법을 "벨칸토"라고 합니다.
서양인들이 1인 오페라로 부르는 "판소리" 를
살펴보겠습니다.
판소리는 동편제와 서편제 혹은 중고제까지
로 분류하지만 흡습 혼합하여 융합하는 문화
의 특성상 불변적으로 절대적인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는 필자인 저의 소견입니다.
음악이 소리꾼, 작곡가 성악가등의 전유물이 아니듯 악보이전에 구전음악이 오랜시대에
전승되다가 체계를 갖춘 기록의 방법이 등장 하였지요.
우리 판소리의 중요한 구성요소는 관객들이
소리꾼 창자와의 유기적인 교감으로 귀명창
들의 추임새로 소리꾼 명창과 고수와 삼위일
체로 소리마당을 완성하는 모두가 하나된
대동축제가 우리 국악의 참다운 진면목입니다.
종묘제례악에서 혼연일체된 엄숙하고 장엄한
현장을 영상매체를 통하여 자주 봅니다.
외국가수들이 내한공연시 청중들의 떼창에
감격하여 자주 내한공연을 하였다는 잘 알려
진 우리나라의 가수와 팬이 떼창으로 하나된
공연장을 연출한 광경은 우리의 판소리문화
와 풍물굿판의 남녀노소 모두가 흥겹게 즐기
는 공연문화 역량에서 비롯되었고 이러한 우
리민족의 특성은 고서에 제천의식 행사후에
천제께 찬양과 하느님이신 천제의 후손인
천손들의 행복과 평강을 기원드리면서 모두
가 화합축제로 합일된 가무를 즐겼던 오래된
역사의 전통이 있었던 것입니다.
제천의식인 제사이후에 마시는 술을 우리민
족은 단순한 주막이나 도로 두변에서 마시는
음주와 구별하여 븍두칠성 자미원에 계신 하
느님이신 천제님께서 축복하신 술의 의미인
음복이라하는 오랜 제례용어가 지금까지 면
면히 계승되고있는데 중국 춘추필법의 존화
비이 화이론에 짜 맞춘 음주가무로 기록된대
로 읽지마시고 우리의 제례용어대로 음복가
무로 읽으셔야 천제께 제사를 올리신 선조들
의 위대한 유업을 선양하고 후손들이 국조국
국통의 정통을 계승하는 광명리세(천도지덕
의 밝은 도리) 홍익인간으로 전인류가 서로돕
고 모두가 잘 사는 조화로운 상생으로인류가
꿈꾸었던 복지락토의 세계촌으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모든 문화의 기초를 이루는 근본입
니다.
우리민족의 제천문화는 요녕성 적봉 홍산문
명에서 총묘단이 발굴됨으로써 고대국가가
완성된 것은 총묘단의 세개의 틀이 모두 완성
된 것으로써 국가가 완성된 근거로 확정합니
다.
제천의식의 제사문화는 오직 하느님이신 천
제께 제사를 모실 있으며 제천의식의 주재자
는 천자이신 임금님이 하는 것입니다.
환국의 열성조 환인, 배달국 열성조이신 환웅,
(고)조선열성조이신 단군 , 이렇게 여러 환인
께서 제위한 열성조 환인과 여러 환웅께서 제
위하신 열성조 환웅과 여러 단군께서 제위한
열성조 단군만이 제천의식의 제사권으로 상
고시대는 우리민족의 열성조님들 만이 동 방세계에서 제천의식을 주재하셨습니다.
당시에는 당대의 최고신권과 최고 권위를
겸비한 국가지도자의 호칭이 대광명 환국
시대의 환인, 신시개천 배달국시대에는 환웅,
신성덕화 조선시대에서는 단군입니다.
저는 환인을 하느님, 환웅을 광명리세를
전수하신 민족의 가장 큰 스승, 단군을
밝고어진 천자 신군으로 의미가 있다고 봅
니다.
단군을 천자성군으로 볼 수있으나 성군은
환인환국시대부터 단군조선시대까지 의
이신설교인 신교의 가르침을 가장 활발히
신행했으므로 단군을 천자신군으로 표현
해야
우리민족의 신교문화에 맞습니다.
적어도 환국시대 이후부터 제 민족국가로
출발한 배달국 이후에, 고구려까지 우리민
족이 경영한 영토를 관경이라 했고 우리의
관경을 세계의 변방이 아닌 중심지로 보아
서 중국을 "서토"라고 불렀습니다.
서토는 우리민족및 북방민족 (지금의 중앙
아시아 카자흐스탄를 중심으로 한 북방 초
원지대 (현 중앙아시아) 제 민족은 단조조
선의 문화권으로 우리민족은 우리민족의
국가를 세계질서의 중심으로 단군조선 문화
권의 중심세계로 실천하며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중심국가로 고구려때까지 중국
의 당나와 쟁투를 하면서 단군문화권의 중심
국가였습니다.
서토중국인은 단군문화권의 북방민족의 천
제 의식의 신교문화를 싫어하였습니다.
이는 북방 제민족들이 천제 신교전통으로
천제의 아들인 천제자임을 자임며 중국에
복속을 요구했기에 북장민족의 우주관과 다
른 기계론적 우주관으로 설정하며 천제 경천
문화를 하나씩 지워가며 송나라 유학자들이
중화사상을 완성하며 숭천사상을 역사에서
완전히 천재 숭천사상을 지워낸것을400
0여년에 걸쳐서 완성하였습니다
순자의 기계론적 우주관은 현재의 유물사관
이며 성악설에 입각해 성인이 나라를 통치
해야한단것은 제자인 법가로 발전하여 왕권
전제독재로 악용되고 지금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와 종교 사상 인권탄압의 타민족 말
살 중화한족 단일민족화에 열을 올리고 있습
니다.
인간으로서 하지말아랴할 끔찍한 일들이 일
상적으로 버젓이 벌어지고 환경공해에 무감
각한 국민성과 물신주의는 중국을 더욱 악화
시키고 있습니다.
존화비이의 중화제일주의 타민족을 탄압하
는 중국민족주의 와 결합한 공산당일당독재
권력은 문화혁명때 중국땅의 이민족의 문화
유적지 파괴는 남아있는 고조선. 고구려,"발
해의 유적지를 모두 중국 한족의 유적지로 개
변시키고 인종 민족도 중국 한족으로 개변시
키는 인권존중 사해평등의 이상 세계주의와
상충하고 분쟁을 불러들이는 위험한 상황이
며 우리나라의 민족자존이 얼마나 소중한지
를 되세겨야 합니다.
우리민족의 제천의식은 신시개천한 배달국
의 역대 열성조이신 천황과 역대 열성조 천
자이신 단군만이 상고시대에는 제천의식을 주재했습니다
모든 제례악기와 신에게 올리는 신악가와 신
체의 아름다운 율동으로 신을 찬양하는 신무
는제천의식의 제사문화에서 시작되고 발전하
였습니다.
중국은 천제의 명을 받드는 의식인 봉선제
를 환웅열성조의 배달국,단군열성조 이후인
한나라 태조 유방이 산동성 태산에 올라가서
천체께 고하는 의식의 제사를 올린 봉선제가
최초의 기록입니다.
고대의 음악은 하느님을 숭천경애하는 제천
의식 제사에서 시작하며 발전하고 천제께 고
하는 천고문과 경배를 드리는 제례음악과 천
제님의 은총과 축복에 보은 감사드리는 음복
가무 즉 시,가,무는 한가지라도 소홀하게 빠뜨
릴 수 없는 제천 제례의식인 제사문화의 3요소 입니다.
시 따로,음악 따로, 무용 따로 각각으로 발전했 던 문화적 환경이 아니라 시가무가 제천 제
사 문화와 동시에 발전했다는 것이 정설입니
다.
동방의 고려황실은 궁중제례악과 팔관회를
통하여 민족전통음악을 계승하였고 고려가요
는 두성으로 대단히 고음을 자유자재로 노래
를 불렀다고 기록전승이 있었습니다.
문헌상 기록된 상고대 단군조선의 "어화가"가
유명하고 백제시대 마한땅의 정읍시의 "정읍
사"가 남아있고 신라의 향가는 알려진 것이 없
습니다.
고려가요는 "청산별곡"의 얄리 얄리 얄랴 쌍
이 기억에 남습니다.
조선시대는 왕실차원에서 세종대왕등
임금께서 공중제례악에 정통하시어 궁중제
례악이 매우 발달하였습니다.
세종조에 임금이 반대하였지만 일반 여염집
백성들의 아녀자가 성폭력등의 피해를 본다
는 중신들의 주청에 세종은 "기생제도를 합법
현실화" 하셨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국서등 국가문서에 조예가 있
던 훈구척신들은 기생연희 야간문화로 음풍
농월로 노욕의 퇴폐성 문화에 몰두한 사장파
의 추문농단등 사회도덕이 혼탁하고 국가기
강이 무너진 조정의 기강을 바로 세우려고
조선시대 최초의 조선판 운동권이 결성되었 습니다.
이 최초의 도덕기강 회복을 기치로 도의 형제
결맹 도의지교가 결행된 것이 도학사림파의
시초인 "도학파"라고 후대의 역사가들은 말
합니다.
이런 도학파의 선생님들을 "도학연원"이라고
합니다.
최연상인 어계 조계선생은 "절의의 표상"으
로 경남 함양, 고향 향리에서 후학 제자들을
양성하여 중앙조정에 출사시킨 점필재 김종
직 선생은 "사림영수-영남학파"로 경남 양산.
최하 연하로 점필재 김종직선생과 동문수학
하시고 중앙관료생활 하시며 중앙조정에 신
입출사한사림 후배들의 관료생활 기본 필수
덕목을 알려주고 이끌어주고 솔선수범으로
"모본선도"를 훌륭히 하셔서 초기 신진사림
의 중앙관료로서 구심점으로 성종때 선왕들
의 실록편찬과 경국대전 완성등 국가의 기틀
을 완성하는 문화제도의 정비완성에 일익을
담당하셨습니다.
절의표상 어계 조려. 사림영수 점필재 김종
직. 모본선도 담헌 김극검선생, 이들 세분의
선생님께서는 모두 경남출생이고 도학사림의
시조가 된 "도학연원"으로 칭합니다.
사관은 "담헌선생은 성품이 청간하여 조정에
서 치졸함이 없고 사림이 모두 따르는 바이다"
라고 칭송하셨습니다.
정이품계로 남긴 재산이 전무하여 국가조정
에서 장례운구비, 장례지선산, 제사음식비,
제사봉토,특전등 국가조정에서 특은을 주셨
습니다.
담헌 선생께서 생전에 유지광의 보복하는 성
품을 꿰뚫으시고 여러차례 탄핵하였지만 상 부의 무마로 실패하셨습니다.
좀 더 오래 사셨으면 무오사화 이후의 사화변
란을 막으실 지혜는 충분하셨으리라 믿습니
다.
"조의제문"은 백번천번 옳고 점필재선생님과
친분관계의 사림선비들은 조의제문의 존재와
의미를 알았고 비밀을 철저히 지켜왔습니다.
탁영선생의 용기와 정의감과 스승의 명예와
사림의 명예를 고려한 조의제문 사초는
유지광이 건재함과 훈구대신들의 노회함, 연
산군의 왕권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오히려
극대화시켜주는 전략적으로 간과함은 오직
스승과 제자의 명예만 드높이고 연산의 폭정
불칼을 헌상시킨 결과를 불렀던 일면이 큼니
다..
연산은 흥청망청이라는 기생연희 집단으로
개편하였습니다.
제안대군의 야간 기생잔치 연희장에서
연산군은 애교있던 장녹수를 만났습니다.
확실한 역사적인 사실은 왕실종친과 훈척신
들은 연희를 즐기기위해서 기생들을 모집하
고 기생파티의 연희는 당 시대의 일상적인
야간 유흥문화였습니다.
연산이 꺼리낌없이 흥청망청으로 기생연희
집단으로 확대모집한 일이 당대엔그리 놀랄
일이 아닌 전대부터 있었던 관행화된 기생놀
이문화였습니다.
연산군은 기생놀이 연희문화를 너무 즐기고
왕권행사를 경국대전에서 규정한 왕권을
무시하고 인명참사로 보복받을 폭력적인 권
력을 자행하여 반정을 불러들인 건 자업자득
이였습니다.
반정세력도 연산군의 조정 중신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후대 사가들은 기록하였습니다.
연산군의 예술적 재능을 훌륭히 꽃피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후세에 말합니다.
그러나 경직된 선비사회와 유교의 잣대로
과연 연산군의 기생문화 기예를 선비들이
인정해주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화려한 무대장치는 백성들의 고혈이였고
명분을 쫒아 명예를 탐하는 선비들의 명예
욕도 화를 불러들였습니다.
고려말에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진선비들이
현실상황의 흐름을 읽지못하고 토지개혁도
반대하고 충신이라고 맹목적인 충성으로
충신이라는 명예만 탐하다가 고려왕족의
씨가 전부 뿌리째 전부 멸살된 통곡의 역사
는 미리세대의 교훈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진영읍 월파정엔 점필재 선생과 담헌선생이
함께 매화꽃 경치를 감상하며 점필재 선생께
서 시를 지어 정자 주인인 담헌선생께 증시한 지란지교의 아름다운 우정이 있습니다.
담헌선생은 무오사화 일년후에 사화의 충격
으로 쓰려져 눕고서 끝내 마음의 고통을 이겨
내시지못하고 연산5년에 타계하셨습니다.
이렇게 도학사림을 형성하신 도학연원의
가슴 아프고 쓰라린 험란한 역사가 있었습
니다.
조선전기에는 왕실의 기틀을 튼튼히 다지려
고 관료신하들이 만나서 회동하는것을
극히 꺼리고 경계하였는데 이런 모임을 분경
이라하여 엄벌하였고 저희 선현이신 담헌선
생계서는 후배관료를 반갑게 가택에서 맞이
하여 다른이의 고변으로 2품계를 강등당하
는 고신환수의 험란함을 치루면서 도학사림
을 일으키는 혈성만은 지극하셨습니다.
성종조에 도학사림을 성장시키기가 얼마나
힘든 조건이였는지 여실히 확인됩니다.
그 도학사림이 무오사화로 일거에 참사되었
으니 어찌 통탄스럽지 않았겠습니까?
조정암 선생님께서 형극의 희생으로 후학
인 도학사림은 성장했습니다.
궁중음악과 시조에 음률을 넣어 길게 풍월하
는 시조의 시가가 발전하였습니다
사회발전에 따라서 풍물놀이가 성행하고 조
선 후기에 전문 연희 가극단이 출현하고 시대
의 희노애락과 애환을 완창하는 판소리가 거족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음악은 인간의 희노애락을 표현하고 노래는
시대상을 반영하기에 거짓없는 사실과 진실
한 우리들의 이야기이고 생활사가 투영된
노래이기도 합니다.
노랫말은 거짓이 없습니다.
거짓된 노래는 사랑받지 못함니다.
필자인 제가 "해남문학회" 카페에 올려드린
음악 창법을 정리한 글이 다음인터넷에 게시
되어 있습니다.
검색하시어 많이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각 나라별 잘 하는 음악장르 1편
(1편부터 4편까지 있습니다)
*머라이어 케리의 창법 대중음악 다양한 창법
*벨칸토 창법 * 팔세토 창법 *레카토 창법
* 멜라끼 *판소리 창법
*노래 잘 부르는 방법
미약하여 불민한 제가 이렇게 정리하였습니
다.
부족한 졸필에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
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즐겁고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