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창업주들 배출한 진주 승산마을
이병철·구인회·조홍제의 운명적 만남이 시작된 지수초교는 기업가의 성지
물길 막힌 배산임수 지형 덕에 '富의 기운' 응집…100대 재벌 중 30명 배출 LG그룹 창업주 고(故) 구인회 회장과 GS그룹 창업주 고 허만정 회장의 생가가 있는 진주 승산마을 전경.경남 진주는 흔히들 ‘충절의 고장’이라고 합니다. 진주 사람들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맞서 두 차례나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1592년 10월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 3000명은 왜군 3만 명과 싸워 격퇴시켰습니다. 그 다음해 설욕을 다짐하고 죽기 살기로 총공격을 감행한 왜군 5만 명에 맞서 겨우 3000명의 관군과 의병이 처절하게 싸우다 모두 전사했습니다. 승전을 기념해 연회를 벌이던 왜장을 촉석루에서 끌어안고 깊고 푸른 남강에 몸을 던진 의기(義妓) 논개도 바로 진주가 낳은 인물입니다. 이 고장에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올려 세운 글로벌 기업인들의 생가가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사업으로 보국(報國)했던 기업인들의 흔적을 찾아 의미 있는 여행을 떠나보실까요.
삼성·금성·효성 창업주의 태를 묻은 곳 승산마을에는 대기업 회장 생가만 12채가 있다.부자마을 여행의 출발점은 진주 옆 동네인 경남 의령군 솥바위(鼎巖)다. 조선 후기 어떤 도사가 솥바위를 보고 “앞으로 이 솥바위를 중심으로 8㎞(20리) 이내에서 국부(國富) 세 명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예언처럼 솥바위를 중심으로 세 개의 다리가 놓인 형상대로 경남 의령에서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함안에서 효성 창업주 조홍제 회장이, 진주 지수면 승산마을에서 럭키금성(현 LG)의 구인회 회장이 태어났다. 재계 총수들의 어린 시절 흔적이 남아 있는 승산마을은 868가구 1800여 명이 살고 있는 한적한 곳이다. 김해 허씨가 먼저 자리 잡은 뒤 300년 전부터 능성 구씨가 이주해 삶의 터전을 일궜다고 한다. 구 회장의 생가를 비롯해 구자원 LIG 회장 생가, 구자신 쿠쿠전자 회장 생가가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150여 채의 기와집이 있었는데 현재는 50여 채만 남아 있다. 대부분 그룹에서 관리하는 집이라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승산마을에 응집된 풍요의 기운을 받아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마을의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니 허씨들의 제사 공간인 허연정이 보인다. 허연정의 연못은 여름이면 연꽃이 화사해 ‘연당’이라 불리지만 지금은 늦가을이라 낙엽만이 수북하다. 허연정을 돌아 나와 왼쪽으로 몇 걸음 옮기면 이병철 회장 누나의 집이 나온다. 이 회장이 승산마을로 시집온 누이의 집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사용했던 우물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승산마을의 길은 낮은 돌담으로 이어져 있다. 돌담길 남쪽에는 구 회장 생가가, 북쪽에는 구 회장의 처가인 허선구의 고가(古家)가 나온다. 허선구는 일신고녀(진주여고의 전신) 설립에 참여했으며 중외일보를 경영한 인물이다. 지방문화재이기도 한 허선구의 고가는 아버지 허만식이 1914년 지은 집으로, 지금까지 후손들이 관리해 오고 있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GS 창업주 허만정 회장 손자인 허창수 명예회장 생가, 알토 허승효 회장 생가, 삼양통상 허정구 명예회장 생가 등 일일이 이름을 열거하기도 벅찬 대기업 회장들의 생가가 12채나 들어서 있다. 부자 기운 듬뿍…횡룡입수형 명당 마을 한국의 부자를 배출한 승산마을은 어떤 특별한 기운이 흐르고 있을까. 풍수전문가들은 승산마을을 풍수지리로 보면 가로로 길게 누운 용처럼 생긴 산(방어산)이 개천(남강) 앞에서 우뚝 멈춰선 모양인 횡룡입수(橫龍入首)형이어서 마을에 금전운이 흐른다고 했다.
명당으로 손꼽히는 횡룡입수형 지형이 많은데 유독 승산마을이 3대를 넘어 대대손손 번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해 허씨와 능성 구씨가 혼인으로 연결돼 서로 화합하고 정을 나눴던 것이 후손에게도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승산마을 건너편에 있는 지수초등학교는 이병철·구인회·조홍제 창업주의 어린 시절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회장은 어린 시절 매형인 허순구 씨 댁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살았다. 지수초등학교 동창인 세 명이 동업할 때 세 별이 모였다고 해서 회사 이름을 삼성으로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올 정도다. 1980년대까지 지수초등학교 출신 중 30명이 한국의 100대 재벌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지수초등학교는 승산마을 인구가 줄면서 폐교됐고 대신 승산마을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가자는 의미에서 기업가 정신교육센터와 대한민국 기업역사관을 설립할 계획이다.
진주(경남)=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예부터 경남 진주는 물자가 풍부한 도시였다. 물자가 풍부한 도시는 문화와 교육이 발달하는 법. 조선시대에 이르러 진주에서 양반문화와 교방문화가 발달한 이유이기도 하다. 경북 안동은 단 2명의 정승만 배출한 반면, 정승을 11명이나 배출했을 정도로 세가 대단한 도시였다. 진주는 풍수지리와 지기가 좋은 지역으로도 꼽힌다. 옛 시대의 영화를 일일이 논할 것도 없다. 근대 들어 진주는 한국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굴지의 재벌들을 배출한 도시다. 재미있는 점은 이 재벌들이 한 시골마을에서 자라 한 학교에서 동문수학했다는 사실이다. 진주 동쪽에 자리한 지수면의 한 마을과 초등학교다.
허씨와 구씨가 600년 전부터 터를 잡고 살았던 마을
거부의 기운으로 가득 찬 마을과 학교를 찾아간다. 목적지는 경남 진주 지수면에 자리하고 있는 승산마을이다. 이 마을은 어떻게 조성된 것일까. 본래 600여년 전부터 허씨 집성촌이었다. 300년 전 허씨 일가에서 능성 구씨를 사위로 맞으면서 허씨와 구씨 일가가 대대로 사돈을 맺으며 함께 살았다.
마을은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수십 채의 기와집이 모여 있어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여기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늑하다. 풍수를 잘 모르는 사람도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실제로 이 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물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역수(逆水). 물이 나가는 곳이 보이지 않아 재물이 모인다거나, 양 날개를 펼친 학 모양의 방어산이 이 마을을 가리키고 있어 부자의 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승산마을에는 구한말 만석꾼만 2명이 있었다. 한 마을에 만석꾼이 한 명만 있어도 부자마을로 통하던 시기였다. 여기에 오천석꾼과 천석꾼도 여러 명이 살았을 정도로 부유한 마을이었다. 부자의 기운은 후세에도 이어졌다. 마을 집들을 둘러보다 보면 깜짝 놀란다. 집마다 내걸린 안내판에는 대기업 LG와 GS 계열의 창업주 생가라고 적혀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그룹 총수들이 서로 이웃하며 산 마을이다. 모두가 허씨 또는 구씨다. LG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을 비롯해 LIG 구자원 회장, 쿠쿠전자 구자신 회장, GS 창업주인 허준구 회장과 그의 아들인 허창수 현 회장, 알토전기 허승효 회장, 삼양통상 허정구 전 회장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차다. 대한민국 산업화를 일군 기업가 다수를 배출한 마을이다.
구한말 만석꾼 ‘허준’, LG·GS의 시발이 되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구한말 만석꾼 중 한 명인 허준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허준은 GS그룹의 뿌리인 허만정의 부친으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람이다. 그에 대한 일화 중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그는 평소 남이 볼 때는 짚신을 신고 다니고, 그렇지 않을 때는 들고 다닐 정도로 근검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홍수로 인근 주민들이 호별세를 내지 못하게 되자 세금을 대신 내주기도 했을 정도로 베푸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77세 때는 자신의 재산이 화로 남을 것을 염려해 재산을 4등분해 국가와 이웃, 친족과 조상에게 나눴다. 그의 의장비에는 이런 내용을 새겨 자식들이 지키도록 했다. 분배한 재산 중 논 600마지기는 진주여고의 전신인 진주일신학당을 세우는 데 쓰이기도 했다.
그의 아들인 허만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최준, 안희제와 함께 독립운동의 자금줄 역할을 한 백산상회를 세웠던 인물이다. 이후 허만정은 1946년 이웃이자 사돈인 연안 구인회(LG그룹 창업주) 씨가 락희화학공업사를 창업할 때 거액의 자본을 투자했다. 이 투자는 훗날 LG그룹의 주춧돌이 됐다. 그러면서 허만정은 그의 아들(3남)의 경영수업을 부탁했다. 당시 허만정은 아들인 허준구(전 LG건설 명예회장)에게 “구씨가 알아서 잘할 테니 절대 경영에는 간섭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마을의 역사를 살펴보았으니 이제 마을을 천천히 둘러볼 차례다. 마을 들머리에는 효주공원이 있다. 이곳 한쪽 바닥에 설치된 네모난 돌판도 ‘좋은’ 기운이 서린 곳으로 통한다. “확실하지 않지만, 돌판에 그려진 문양이 허만정 집안의 병풍에 그려진 문양이라는 얘기가 있다”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다.
마을로 들어서자 드넓은 터에 50여 채의 한옥이 펼쳐져 있다. 가옥은 여느 양반마을의 그것보다 크다. 가이드는 “이 마을에서 가장 작은 가옥이 500평 정도로, 보통 1200~1300평”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기와집들이 일제강점기에는 150여 채나 있었지만, 지금은 단 50여 채가 남아 있다.
한국 100대 재벌 중 30명이 다닌 학교가 있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재벌과 재벌의 집이다. LG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생가와 그 옆에는 구자원 LIG 창업주 생가, 바로 옆이 쿠쿠전자 구자신 회장의 생가가 있다. 뒤편으로 돌아가면 허창수 GS 회장의 본가다. 담길을 더 걷다보면 허만정 GS 창업주의 아버지인 허준 선생의 생가도 보인다. 그 앞으로 LG 구자경 회장의 외가와 GS 집안 종가,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창업주의 누나 생가가 있다. 골목 끝에는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의 생가도 있다. 마을 전체가 궁궐을 걷듯 아늑하고 고풍스럽다. 고가 내부를 들여다볼 수는 없다. 그래도 생가 주인의 이름이 적힌 알림판 앞에서 부자의 기운을 받아볼 수는 있다. 그래도 아쉽다면 대에 걸린 문고리를 잡고 부자의 기운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도로 건너편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1921년 개교한 지수초등학교다. 지난 2009년 인근 압사리 송정초등학교와 병합되면서 이름을 내주고 폐교됐다. 대신 텅 빈 학교 건물에는 ‘옛 지수초등학교’라는 명패를 새로 내걸었다.
이 학교의 명성은 졸업자 명단을 보면 알 수 있다. 1980년대까지 지수초등학교 출신 중 30명이 한국의 100대 재벌에 이름을 올렸다. 아동문학가인 최계락 시인의 모교도 지수초다. 무엇보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가 모두 이 학교 출신이다.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니면서 운동장에서 함께 축구를 즐기기도 했다.
교정에는 ‘부자소나무’가 있다. 구인회·이병철·조홍제 회장이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9년 태풍으로 부자소나무가 일부 부러지자 LG그룹에서 소나무 전문가를 파견해 치료하고 고정장치를 설치하기도 했다. 졸업생이나 학교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어 부자의 기를 받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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