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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소크라테스-변증법적 질문의 방법-13P
소흥렬(1980). 소크라테스-변증법적 질문의 방법. 서광선 외. 『철학하는 방법』.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pp. 11-34.
1. 소크라테스의 방법
소크라테스의 방법은 대화법(對話法)이라고 한다. 플라톤이 그의 저서들을 대화형식으로 쓰면서 소크라테스를 그 대화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철학하는 방법을 대화법이라고 하게 된 것도 같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수사관이 범죄혐의자를 심문하는 방법과도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단지 소크라테스는 수사관이 아니며 그와 철학적인‘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범죄혐의자가 아닌 그의 친구나 친지들이므로 심문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다른 비유로 소크라테스의 방법을 말하자면 그것은 정신의학자가 그의 환자를 심문하는 방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상대자가 정신병환자라는 특수조건이 심문의 성질을 소크라테스의 방법과는 다르게 한다. 정신의학자는 자기 환자의 병을 치료하기위해서 그 원인을 찾아내고자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에게 심문을 당하는 사람은 그런 정신병환자가 아니라 정상적이고 건전한사람들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에서 얻은 것은 치료적인 효과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지식에 대한 새로운 이해나 인식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지금까지 자기 자신이 사용해 온 일반적인개념에 대한 자기의 지식이 잘못되어 있었거나 정확하지 못했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잘못 알고 있으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방법이 목적하는 바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들 중에서도 초기에 쓴 것들은 소크라테스의 철학하는 방법을 비교적 정확하게 그대로 그려주는 것 같으나, 그 이후의 것들은 소크라테스를 대화에 참여시키긴 하지만 (법에 관한 대화편에는 소크라테스가 전혀 등장도 하지 않지만) 초기작품에서와 같은 역할을 하게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내용도 플라톤 자신의 철학 사상들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플라톤대화편들 중, 초기작품 하나를 선택하여 소크라테스의 방법이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라케스(Laches)』라는 이름으로 된 작품은 용기에 관한 대화편이다. [각주 1: Plato, The Dialogues of Plato, tr. by B. Jowett, 1937, New York: Random House, Vol. Ⅰ, pp. 55-77.] 일반적으로 잘 소개가 되지 않은 작품이지만 소크라테스의 방법을 분석해 보기에는 아주 좋은 작품인 것 같다.
대화의 시작은 소크라테스를 아는 사람들이지만 그보다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자기네 자녀들의 교육문제에 대해서 의논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자기들 간의 대화가 어느 단계까지 가서 더 진전을 하지 않게 되자 소크라테스를 불러서 함께 대화하기로 한다.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된다는 것도 미리 알고들 있다. 예컨대 그들 중의 한 사람은 소크라테스와의 대화가 어떤 성질의 것이라는 것을 자상하게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시작하게 되면 그의 논쟁에 휘말려 들어가서 계속 끌려 다니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가루를 체로 치듯 자기의 모든 생각들, 자기의 과거와 현재에 관한 모든 것들을 털어 내놓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자기가 잘못한 것,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지적당하게 되므로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그것이 해로운 것은 아니라고 고백한다. 소크라테스에게 심문을 당하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며 불쾌한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소크라테스의 방법대로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또한 그때까지 대화를 이끌어오던 한 사람은 소크라테스에게 자기의 나이 탓을 하면서 자기 대신 대화를 이끌어가 주기를 부탁한다. 자기는 이제 늙었기 때문에 기억력이 나빠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가 질문하고자 한 것조차 잘 기억을 못하게 되며, 질문에 대한 대답들도 잘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가 다른 일이나 이야기로 중단되게 되면 대화의 줄기를 놓치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방법에서 아주 중요한 조건이 되는 한 가지는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의 기억력이다. 대화에서 나온 이야기내용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모두 다 기억할 수 있어야한다. 새 질문을 계속하기위해서도 우선 앞서 이야기된 것을 기억해야하며, 대화의 내용이 일관성을 갖기 위해서도 앞의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뒤의 이야기와의 모순 되는 점이나 대화의 본 줄기에서 이탈되는 내용을 지적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대화의 주도권을 위임 받은 소크라테스는 먼저 대화의 주제가 되는 문제 자체부터 새롭게 제기해본다. 젊은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어떤 사람들이 훌륭한 스승이냐 라든지, 교육을 통해서 더 훌륭하게 된 사람이 누구냐 라는 것을 물어보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문제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관심을 가진 문제라는 것은 자기네 자녀들에게 덕(德)을 가르침으로써 그들의 마음이 더 낫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규정한 다음 소크라테스는 “덕이란 무엇이냐?”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젊은이들에게 덕을 가르치고자하는 자신들이 덕이 무엇인가를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덕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아는 바를 말할 수도 있어야 하므로 덕에 대한 지식으로 대화를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이처럼 소크라테스의 방법은 언제나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 특히 일반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지식의 내용을 검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인식론(認識論)적인 문제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관심의 대상은 대체로 윤리적인개념들이 된다. 인간이 도덕적으로 더 훌륭하게 되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관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미 지식과 행위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입장이 전제되어 있다.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그릇된 행동을 하는 까닭은 도덕에 관한 그들의 이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도덕적인 인식이 잘 되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도덕적인 인식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할 수는 있다. 물론 인식은 잘 되어 있으면서도 욕망이나 충동 때문에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관심은 잘못된 인식이 인간을 도덕적으로 나쁘게 하는 경우를 줄이자는 데 있는 것 같다.
“덕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인 것 같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덕 일반”에 대한 논의를 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덕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여 그 본질을 논해보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용기’라는 덕을 택한다. 그래서 그 다음의 대화는 “용기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시작이 된다.
용기의 본질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대한 첫 대답은 전쟁에서 도망가지 않고 자기자리를 지키면서 적에게 대항하여 싸우는 사람이 용감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용기’는 하나의 보편개념이지만 그 개념의 뜻을 물어보면 대개의 사람들은 용기의 구체적인 예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것은 사람들이 ‘용기’라는 말을 배울 때 그런 구체적인 예를 통하여 배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용감한 사람들의 행위를 이야기 들음으로써 ‘용기’의 뜻을 점차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원하는 것은 그처럼 구체적인 한 예를 들어보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 대답이 나오게 된 것은 소크라테스 자신이 질문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반성하면서 그는 그의 질문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전쟁에서는 도망가지 않기 때문에 용감한 군인도 있으나, 일단 후퇴를 했다가 싸워서 이기는 용감한 군인도 있다. 또한 용감한 사람이란 전쟁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와 싸워야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리고 질병이나 가난과 싸우는 사람들 중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정치가들 중에도 용감한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고통이나 공포를 이겨내는 용기가 있는가 하면 자기의 욕망이나 쾌락을 억제하는 데 필요한 용기도 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제기하고자하는 문제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용감한 행위들에 공통되는 속성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그런 다양한 행위들을 모두 용감한 행위라고 하는 까닭은 그러한 공통적인속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한다. 하나의 개념이 여러 가지 다른 현상을 서술해준다는 것은 그 현상들 간에 적어도 한 가지 또는 그 이상의 공통된 성질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중요한 개념들을 정확하게 정의(定意)해보고자 한 노력은 학문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없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와 같은 공통적인속성이 있으리라고 믿는 것은 언어에 대한 그릇된 이해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서양철학에 와서 이었으며, 특히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유사(Family Resemblance)’이론을 통하여 비로소 그러한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한 가족의 구성원들도 서로 닮긴 하지만 반드시 한 가지 공통적인특징을 갖지 않을 수 있듯이, 언어의 개념도 여러 가지 다른 사실들을 서술해주면서도 그런 사실들 간의 공통적인속성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가족유사성’이다. 소크라테스가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없다. ‘용기’라는 개념의 공통속성을 추구한다는 사실로 미루어보면, 그런 속성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 것 같으나 그런 것을 추구하는 대화가 만족할만한 결론도 없이 끝나버리게 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런 공통속성이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으리라 생각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는 대부분 분명한 결론이 없이 끝나고 만다. 아마 하나의 명확한 결론에 이르는 것보다 소크라테스의 방법에 의한 대화를 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리라 생각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소크라테스의 방법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 중에는 잘못알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지적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정확한 해답이나 정확한 지식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기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2천 몇 백 년 후 비트겐슈타인에 의해서 널리 인식이 된 ‘개념의 가족유사성’도 사실은 이미 소크라테스의 방법에 의해서 암시가 되었던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방법이란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게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에 가서는 공통적인속성을 찾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추구해 보는 대화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뜻이 된다.
용기의 공통속성을 물어보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대한 답은 “용기란 영혼의 인내, 또는 영혼이 견디어내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당장 이것이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정의임을 지적한다. 모든 인내가 다 용기일 수는 없지 않은가? 참는 것 중에도 현명하게 참는 것과 어리석게 참는 것이 있다. 어리석게 견디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기위해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간단한 추리를 한다. 그리고 전제를 위해 필요한 개념으로서 ‘좋은 것’과 ‘나쁜 것’ 그리고 ‘고상한 것’과 ‘해로운 것’ 등을 이용한다. 그의 추리는 아래와 같다.
용기는 고상하다. 현명한 인내는 좋고 고상하다. 어리석은 인내는 나쁘고 해롭다. 고상한 것은 나쁘거나 해롭지 않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인내는 고상하지 않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인내는 용기가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방법에서 중요한 또 한 가지는 추리능력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을 바탕으로 하여 추리를 해봄으로써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수도 있다. 추리소설의 명탐정들은 이러한 추리력에 뛰어난 사람이다. 또한 추리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한 말이 다른 어떤 내용들을 함축하고 있는가를 알 수도 있다. 그와 같이 함축된 의미가 본래 의도했던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의도와는 반대되는 것이 될 경우 우리는 우리가 한 말을 취소해야할 때도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추리력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 대화의 내용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갈 것인가를 미리 알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은 그의 마음속에서 미리 그러한 추리가 되어 있음을 뜻한다. 하나의 생각에서 시작하여 그것이 어떤 다른 생각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를 먼저 자기 혼자서 생각해낼 수없다면 소크라테스와 같은 역할을 할 수없기 때문이다.
‘용기란 현명하게 인내하는 것’이라는 데까지 대화를 이끌어온 소크라테스는 이제 왜 그것이 잘못된 정의인가를 이해하게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문제는 현명하게 견딘다고 하는 그 ‘현명함’이란 무엇인가에 있다. 전쟁에서 자기 자리를 끝까지 지키면서 싸우는 군인이 그렇게 함으로써 승리가 가능하리라는 것을 계산해서 알고 한다는 것을 현명하게 견디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무슨 용기가 되느냐 하는 것이다. 용감한 군인이란 그런 계산을 해보지 않거나 계산을 해보더라도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버티는 사람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사람이 앞서 말한 ‘어리석게 견디는’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것은 모순을 자아내고 만다. 용기란 현명하게 인내하는 것이라는 입장과 용기란 어리석게 인내하는 것이라는 입장은 서로 대치되는 입장들이다. 따라서 두 입장 중 어느 하나가 잘못된 것이거나 두 가지 모두가 잘못된 것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대화는 또다시 벽에 부닥치게 되고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열심히 대답을 해오던 사람은 용기가 무엇인가를 쉽게 말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자기 자신의 생각들이 서로 모순된 내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당할 때 사람은 누구나 당황하게 된다. 대개의 사람들은 우선 그러한 모순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모순의 사실이 분명하게 이해가 되고 수긍이 되면 곧 그러한 모순을 피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하는 것 같다. 이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합리적으로 생각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설명할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의 방법이 성취하고자하는 것 중에 하나는 우리의 생각 속에 있는 모순된 내용들을 들추어내어 그것을 시정하자는 것이다. 서로 모순 되는 두 명제는 함께 진리일 수없다. 그리고 서로 반대되는 두 명제와 모순 되는 두 명제를 구별한다면 모순 되는 명제들은 함께 거짓일 수없다. 따라서 서로 모순인 두 명제를 동시에 믿고 있다는 것은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거짓명제를 잘못 믿고 있다는 말이 되고 만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그것을 알면서 거짓된 것을 참된 것으로 믿으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의 방법에 말려든 사람은 자기의 무지함이나 어리석음을 폭로당하기 때문에 괴롭긴 하지만 그것이 자기에게는 유익한 결과를 가져 온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때는 자기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고통스런 경험이 되겠지만, 이지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자기를 그만큼 더 깨우쳐주는 유익한 경험이 된다는 것이다.
용기를 일종의 인내, 참는 것, 또는 견디어내는 것으로 보고자하는 입장은 이렇게 하여 모순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므로 대화는 이제 더 전개시켜 나갈 수없는 벽에 부닥치고 말았다. 다시 말하자면 대화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입장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화는 다른 사람에 의한 다른 입장을 등장시키면서 계속된다. 그 새로운 입장이란 용기를 일종의 지혜로 보자는 것이다. 용기를 일종의 지혜로 볼 때,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어떠한 지혜를 뜻하느냐라는 것이다. 무엇에 관한 지혜를 용기라고 하느냐가 문제이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두려움과 희망의 근거를 아는 지혜라는 것이다. 무엇을 두려워할 것이며, 무엇에 희망을 가질 것인지, 또는 무엇에 자신과 믿음을 가질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용기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러한 지혜가 없이 행동하는 짐승들이나 사람들은 용감한 존재가 될 수없다. 가령 사자에게는 그런 지혜가 있을 수없다고 가정한다면 ‘용감한 사자’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 지혜가 없이 함부로 행동하는 짐승이나 사람은 겁이 없다거나 지각이 없이 덤빈다고 하는 것이 옳지, 용감하다고 할 수없다는 것이다. 용기는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지 무엇에 희망을 걸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사람에게만 가능한 덕이 된다. 이것은 아주 그럴듯한 입장이다. 그러나 용기와 지혜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분명하게 하기위한 질문을 시작한다.
대화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덕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용기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고쳐서 시작하기로 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소크라테스는 용기가 덕의 한 부분임을 강조한다. 여기서도 대화의 내용을 처음 것부터 기억하고 있다가 언제나 필요에 따라서 앞뒤 내용의 관계를 규명해 주는 소크라테스의 능력이 나타난다. 소크라테스의 방법으로 대화의 흐름을 주도하고자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기억력과 앞서 말한 추리력, 그리고 모순된 점을 지적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제 덕의 한 부분인 용기와 지혜가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는가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먼저 용기에 관련된 지혜라는 것은 두려움과 희망의 근거를 아는 지혜이므로 미래에 관한 지혜여야 한다는 것을 밝혀둔다. 두려움이나 희망이라는 것은 미래에 있을 일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혜라는 것이 덕처럼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용감하면서 절제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지혜는 가지고 있으면서 과거나 현재에 대한 지혜를 갖지 않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혜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포함하는 모든 일에 관한 지혜를 말한다. 따라서 그러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또한 모든 덕을 갖춘 사람이 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지혜는 곧 덕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기본입장을 뜻하는 것이다. [각주 2: F. Copleston, A History of Philosophy, 1960, Westminster, Maryland: The Newman Press, Vol. Ⅰ, pp. 108-111. Platon의 대화편 중에서는 Meno에서 이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음.]
그러므로 지혜를 덕 중의 어느 특정한 한 가지, 예컨대, 용기라든지 절제와 같은 것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부당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용기를 지혜로 생각한다면, 지혜는 곧 덕이니까, 결과적으로 용기는 덕의 한 부분이 아니라 덕 그 자체, 즉 전체적인 덕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용기란 덕의 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덕의 전체가 된다는 자가당착적인 결론을 피할 수없다는 것이다. 대화의 중심내용은 여기서 끝난다. 만족할만한 결론을 얻지는 못하고 다만 용기에 대한 평범한 생각들이 얼마나 부정확한 것이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으로 대화는 끝이 나고 만다.
소크라테스 자신의 입장을 말하는 요청이 들어올 만한데도 그런 것을 말하는 사람이 없으며, 소크라테스 자신도 그런 것을 시도하려하지 않는다. 자기가 무엇이든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렇게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자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본래 관심은 자기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을 할 것이냐에 있었는데, 소크라테스와의 대화가 끝난 후에는 자기네 자녀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아직도 더 배워야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없게 된 것이다. 만일 소크라테스가 거기서 어떤 결정적인 답을 주고자했다면 거기 모였던 사람들은 그것으로 만족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배우게 되었다는 결과는 될지 모르나 자기들 자신이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 자기들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밝혀내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지거나 약화되고 말았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방법은 어떤 철학적인사상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자기사상을 남에게 주입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목적을 둔 교수방법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방법은 사람마다 자기 자신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이다. 소크라테스의 방법 그 자체가 철학하는 방법의 한 가지이면서, 그 방법의 특징이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철학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는 데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기의 철학사상을 남긴 사람이 아니다. 물론 사상적인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에 와서 더 중요한 결실을 맺게 되었으며,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에 와서 또 한번 아주 중요한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남긴 것은 철학하는 방법이다. 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철학의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사명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방법은 일차적으로 남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깨우쳐주는 방법이다. 이것은 두 사람 간의 대화에서 가능한 것이며, 소크라테스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이차적으로 그것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켜서 스스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자기 자신이 소크라테스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억력에서나 추리력 또는 다른 철학적인관심에 있어서 훈련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곧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학자가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다음에는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2. 소크라테스라는 사람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람이었느냐에 대해서는 플라톤의 대화편 둘에 기록된 것 이외에도 몇 가지 다른 기록들이 있는데, 이 기록들이 모두 조금씩 다른 인상들을 그려주기 때문에 학자들 간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각주 3: F. Copleston, A History of Philosophy, 1960, Westminster, Maryland: The Newman Press, Vol. Ⅰ, pp. 99-104.]
여기서는 인간 소크라테스에 관한 학문적 논쟁을 소개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견해들 중에 어느 정도 공통성을 갖는 요소들을 모아서 인간 소크라테스를 이해해보았으면 한다. 그러면 그의 개성 또는 타고난 체질이나 성품, 그리고 그가 자라난 가정환경과 사회 환경, 그리고 철학적 교육과정과 철학자로서 성숙하게 된 계기, 및 철학자로서의 자기생애에 대한 신념 등을 중심으로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을 알아보기로 하자. [각주 4: 여기서 종합해 본 내용은 주로 A. E. Taylor의 Socrates (1952, Doubleday Anchor Books)에서 얻은 것이며, Copleston의 A History of Philosophy (1960, Westminster, Maryland: The Newman Press)와 K. Jaspers의 Socrates, Buddha, Confucius, Jesus (1962, Harcourt, Brace & World)에서도 도움이 되는 자료를 얻을 수 있었음.]
소크라테스는 추남이었다. 평범한 얼굴이 아니라 괴짜로 생긴 모습이었다. 코도 이상하게 생겼고, 눈도 이상하게 생겼고, 얼굴 전체의 윤곽과 몸집도 이상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사람들의 조롱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좀 괴짜로 생긴 사람이었다. 게다가 성품은 사철 꼭 같은 옷을 입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남들의 눈에 더욱 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얼굴표정에는 남을 비꼬는 것 같은, 또는 남을 비웃는 것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그의 겸손이 그렇게 표현돼 있거나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체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강인한 체질을 타고 났다는 사실인 것 같다. 겨울철에는 맨발로 행군을 할 수 있었다든지,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는 편이나 기회가 있어서 마시게 되면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고 하는 것은 그의 체력을 말해준다. 그리고 신체적인정력 또는 스태미나가 좋기 때문에 아마 정신적인스태미나도 좋았을 것이다. 하루 종일 생각에 몰두한 적도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오래 집중할 수 있는 정신력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무슨 일에든지 몰두할 수 있는 성품도 이런 신체적 정신적 스태미나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된다. 소크라테스는 무슨 일에든지 정열적으로 임했던 것 같다. 철학이란 학문에 대해서도, 그가 사귀는 친구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에게 철학을 배우러오는 제자들에 대해서도 그는 정열을 쏟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또한 그는 아주 민감한 사람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신의 음성 같은 이상한 소리를 듣는 체험 같은 것은 그의 예민한 감수성과도 관계있는 일일 것이다. 그는 직관적 통찰력 또는 상상력 같은 것에도 뛰어난 사람이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소크라테스는 모든 면에서 풍부하게 여유 있게 타고난 사람이었든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부모가 누구였다는 것은 알려져 있으나 직업이 무엇이었느냐에 관해서는 분명한 기록이 없다. 아버지는 돌을 깎는 석공이었고, 어머니는 산파였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근거가 분명치 않다고 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부모가 그다지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었음은 그들이 남긴 유산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어릴 적부터 여유 있게 자랐을 것이며, 나중에는 부모가 남긴 유산으로 얼마 동안은 여유 있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늙어서 가난으로 고생했다면 그것은 철학에만 관심이 있었던 그가 자기 가정의 경제문제를 너무 등한시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부인이 악처로 이름이 나게 된 것도 가정에 대한 그의 무관심이 원인이었을 수 있다.
철학자로서의 소크라테스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환경적인요인이 되었던 것은 그 당시 서구세계의 문화적 중심지였던 아테네의 분위기였다. 여러 나라, 여러 지방에서 모여든 학자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하고 논쟁을 벌일 수 있었던 분위기는 소크라테스처럼 배움에 정열을 가졌던 사람에게는 최적의 교육적인풍토가 되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생각이 개방적일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문화풍토에서 배우게 된 결과였을 것이며, 논쟁을 잘하고 추리를 잘하는 합리적사고의 능력도 그러한 학문적 풍토에서 자라난 결과였을 것이다. 젊은 소크라테스가 배운 철학은 그 당시에 성행했던 자연철학이었다. 우주의 근원에 대하여, 자연의 질서에 대하여,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기본이 되는 요소에 대하여, 그 당시의 자연철학자들은 제각기 자기대로 사색을 하고 주장을 했다. 그들의 관심은 자연과학적인관심이었으나 그들에게는 현대와 같은 과학적 방법이 없었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 것인가를 비교하고 검토해볼 수 있는 방법이나 기준도 없이 여러 가지 주장만 늘어놓게 되는 철학적 사색이 소크라테스 같은 젊은이에게 만족스러울 리가 없었을 것이다. 자연철학적인 사색에 싫증을 느낀 소크라테스는 새로운 방향의 철학을 찾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새로운 철학을 위한 암시를 아낙시고라스라는 철학자에게서 받았다. 아낙시고라스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근원을 마음에서 찾아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소크라테스가 그의 주장을 검토해보았을 때는 또 하나의 실망만 얻게 되었다고 한다. 아낙시고라스 자신은 자연철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마음’을 자기이론에 도입시킨 것도 자연현상에서의 운동의 근원을 설명하기위한 추상적인개념으로 쓰기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적 관심을 인간 세상의 문제로 돌려야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이미 소피스트라는 철학자들이 취한 입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피스트들은 진리의 탐구에 관심이 있었기보다는 지식을 가르치는 데 더 관심이 있었으며 진리문제에 관해서는 상대주의적인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상대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지식 또는 지혜를 추구하기 위하여 인간의 마음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의 개선을 자기철학의 중심과제로 삼았다. 마음의 개선을 통하여 인간이 지혜롭게 될 때 그는 또한 도덕적으로도 선하고 덕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믿게 된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한 사람의 철학자로서 사회적인 이름을 얻기 시작한 것은 나이 40세를 전후해서였다고 한다. 그 무렵에 그의 친구 한 사람이 델파이 신탁에 가서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한 질문을 하게 된 것 자체가 이미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철학자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델파이신탁의 대답도 그것을 긍정해주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자로서의 자기생애의 사명을 결정하는 데는 아마 이 델파이신탁의 이야기가 큰 영향을 주었을지 모른다. 그 일이 40세 전후에 있었다면 70세에 죽기까지 30여년의 여생을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이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또한 남들에게도 지혜의 길을 열어주는 철학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자신의 역할을 그는 산파의 역할이나 등에(?)의 기능에 비유해서 설명했으며, 방법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이 곧 위에서 소개한 소크라테스의 방법이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이름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을 수없었다. 그것은 사람의 지혜가 완전할 수없으므로 언제나 더 지혜롭게 될 수 있다는 데에도 이유가 있겠으나 소크라테스의 철학에 따르자면 그러한 지혜는 도덕생활에서의 덕으로 나타나야한다는 데도 이유가 있다. 소크라테스가 믿는 바로는 지혜가 더 할수록 사람은 더 선하고 덕스러워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지혜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고자 한 것은 지혜 그 자체가 좋다기보다도 오히려 그것이 인간을 덕스럽게 한다는데 더 큰 뜻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지혜가 인간을 덕스럽게 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그것은 개개인의 생활을 통하여 확신할 수밖에 없다. 지혜 있는 사람들이 과연 덕 있는 사람들인가를 실제생활 속에서 알아보고 확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보다도 지혜와 덕의 관계를 주장하는 소크라테스 자신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가장 덕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과연 소크라테스는 가장 현명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가장 덕 있는 사람, 또는 가장 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최후를 그려주는 대화편 파이돈의 마지막 구절에서 이 사실을 명백히 한다. [각주 5: Plato, The Dialogues of Plato, tr. by B. Jowett, 1937, New York: Random House, Vol. Ⅰ, p. 501.]
그는 가장 현명하면서 가장 의롭다는 뜻에서 그 시대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찬양한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이 도덕적으로 옳게 살아감으로써 지혜와 덕의 관계를 스스로 입증해보고자 했다. 그는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던 것 같다. 친구의 유혹이나 제자의 유혹에도 그것이 나쁜 일이라고 판단되었을 때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는 일화들이 있다. 알시비아데스라는 제자가 동성애를 하고자 잠자리에 같이 들어갔다가 조금도 동하지 않는 소크라테스의 자세에 감탄하여 자신을 고백한 예가 그러한 것이다. [각주 6: Plato, The Dialogues of Plato, tr. by B. Jowett, 1937, New York: Random House, Vol. Ⅰ, pp. 341-342. (이 일화는 Symposium이라는 대화편의 마지막 부분에 있음).]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도덕적인용기나 인격적인고매함이 가장 잘 표현된 예는 역시 생애의 마지막 몇 해 동안에 일어났던 몇 가지 일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만년의 소크라테스는 정치적으로 불-안정된 아테네에서 온갖 위험과 위협을 겪으며 살아야했다. 스파르타와 다른 이웃 도시국가와의 전쟁에서 아테네는 이미 군사적으로 기울기 시작한 때였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반민주주의파들과의 경쟁으로 인한 정권교차가 자주 일어났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있었던 한 사건은 6명의 지휘관들을 집단으로 처형하는 정치적인재판이었다. 그들의 죄목은 지휘관으로서의 직무에 태만했기 때문에 아테네의 운명을 결정할 뻔했던 해전(海戰)에서 크게 이기기는 했으나 필요 이상의 희생을 치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지휘관들이 직무에 충실했었더라면 25척의 배와 4,000명의 생명을 잃는 손실을 가져오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법정에서는 헌법에도 어긋나는 집단재판을 감행하기로 했다. 그 당시 소크라테스는 원로원의 일원으로 있었으므로 그러한 재판을 허용하는 결정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법에 어긋나는 재판이었으므로 많은 원로원회원들이 처음에는 반대를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은 정치적인압력에 의해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찬성의 표를 던지게 되었지만 소크라테스만은 끝까지 버티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6명의 지휘관들이 집단 처형당하게 되었지만 소크라테스는 정치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지조를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사건은 그로부터 2년 후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정복되어 과두정치의 지배를 받던 때에 일어났다.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정치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지만 과두정치를 좋아할 리 없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정치에 참여하여 권력자의 위치에 오르고자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신의 음성과 같은 소리가 자기에게 지시한 바이기도 했다. 하지만 철학자로서의 소크라테스는 권력자이건 권력자가 아니건 옳지 않은 일을 할 때는 언제나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테네의 민주정치를 과두정치로 대치시켜서 독재적인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비판이 싫어서 자기네의 정치적인음모에 소크라테스를 가담시키는 획책을 꾸몄다. 그것은 어느 부자의 재산을 몰수하기위한 계획의 하나로서 소크라테스와 다른 네 사람으로 하여금 그 부자를 납치해오게 하자는 것이었다. 명령을 받은 다섯 사람 중 다른 네 사람은 명령대로 했으나 소크라테스는 거역을 했다. 명령을 거역한 죄로 소크라테스는 처형을 당할 뻔했으나 또 한 번의 정변에 의해서 과두정치가 무너지게 됨으로써 화를 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3년 후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민주정권을 장악한 새 권력자들에 의해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의 죄목은 첫째, 국가가 참배하는 신들에게 참배하지 않고 이상한 종교적 의식을 가르쳤다는 것과, 둘째,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게 된 것은 정치적인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특히 첫째 죄목은 그 근거가 분명치 않으며, 둘째 죄목에 대하여서도 정치적으로 해석해야만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영향을 준 사람들 중에서, 그 당시의 집권자들이나 아테네시민들이 싫어한 사람들이 두 사람 있었다고 한다. 한 사람은 앞서 소개가 된 알시비아데스인데 그는 아테네에서 유력한 지위에 있었던 정치가였으나 신성모독죄에 관련이 되어 아테네에서 추방된 후 스파르타로 가서 아테네 침략에 중대한 도움을 준 반역자 노릇을 했다. 또 한 사람은 과두정치 때의 집권자 중 한 사람이었던 크리티아스였다. 크리티아스는 과두정치의 권력자들 중에서도 가장 포악한 사람으로 알려졌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샀을까 짐작할 만하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들에 대한 증오가, 이미 그들을 죽고 없을 때였지만, 소크라테스에 대한 미움으로 바뀔 수도 있었을 것이며, 특히 집권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이 계속 현실에 대한 비판을 하고 젊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비판력을 길러주는 역할을 하게 한다는 것은 자기네 정권에 대한 큰 위협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위대함은 자기 자신의 재판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 최후의 사건에 임하는 태도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그는 유창하고 설득력 있는 말로 자기 자신의 무죄함을 변명했지만 배심원들의 다수를 움직일 수없었다. 합리적인설득이 감정적인편견을 완전히 제거할 수없었던 것이다. 모든 배심원들이 다 소크라테스 자신처럼 이지적이고 합리적이기를 기대할 수없다. 결과적으로 유죄판결이 나고 사형이라는 언도가 내렸다. 사형이란 너무 가혹한 형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으나, 그것은 소크라테스 자신이 아테네를 떠나는 추방의 길을 택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아테네에 살아있는 한 젊은이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포기할 수없다는 태도와 신념을 조금도 굽히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불가피했던 것 같다. [각주 7: 재판에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무죄함을 변명한 내용은 Apology라는 대화편에 기록되어 있음.]
그 후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친구가 탈옥을 계획해두고 소크라테스를 설득시키고자했으나 그는 아테네를 떠나고자하지 않았다. 게다가 탈옥은 도덕적으로 용납이 될 수없는 짓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로서는 받아들일 수없었다. 비록 배심원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법의 절차에 따라서 결정된 판결이었으므로 기존하는 법의 질서를 존중하는 한, 그 판결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의 판결을 무시하고 도망을 간다면 소크라테스 자신도 아테네에 대한 배신행위를 하게 되는 데, 부모처럼 자기를 길러준 아테네였으며, 자기가 평생을 바쳐서 철학을 가르쳐 온 아테네시민들이었는데 어찌 자기생명을 좀 더 연장시키기 위해 배신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각주 8: 탈옥을 권유한 사람은 크리톤이었으며, 탈옥에 응하지 않는 소크라테스의 이유는 Crito라는 대화편에 기록되어 있음.]
소크라테스는 합리적인판단이 지시하는 대로 행동하는 이지적인사람이었다. 자기의 지혜가 가르쳐주는 대로 행동하는 것임을 믿었기 때문에 감정에 움직이지 않고 태연하고 여유 있는 자세로 독배를 마실 수 있었다. 죽음을 택하는 것도,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또 하나의 도덕적인행위이므로 철학자다운 지혜와 용기로써 결정하고 행동해야한다는 것이 소크라테스가 가르쳐준 마지막교훈이었던 것 같다. 그는 자기의 뛰어난 지혜로써 사람들을 감탄하게 했을 뿐 아니라 고매한 인격과 도덕적 행위로서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 위대한 인간이었다.
3. 소크라테스의 후예들
소크라테스는 예수처럼 죽음을 택함으로써 자기생애의 사명을 완성했다. 자기의 철학사상을 가르치려고하지도 않고 글로써 그것을 전하고자하지도 않으면서 독특한 자기의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철학하는 방법, 또는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글이란 것은 뜻이 애매함으로써 문제가 될 수 있으나 그런 애매성만 제거한다면 비교적 고정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따라서 글로 전달되는 철학사상도 해석의 여지를 가질 수는 있지만 어느 정도 고정된 내용을 갖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전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가지로만 고정될 수없었던 것 같다. 그를 안 사람들, 그와 대화를 해 본 사람들은 그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 영향이 어떤 것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무언가를 생각하게 했고, 자기들 자신도 소크라테스의 뒤를 이어 철학을 해야겠다는 충동을 느끼게 했지만 어떤 철학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인 것 같다. 그래서 소크라테스 이후의 희랍철학은 여러 종류의 학파로 나누어진다. 논리적인사고의 계발에만 주로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고, 개인주의적인도덕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도덕적인체계를 세워보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이런 모든 부분적인경향을 종합해서 하나의 철학체계를 세울 수 있는 플라톤이 있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서양철학사의 맥을 이루면서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플라톤까지도 글을 쓰지 않기로 했었다면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오늘날처럼 살아 있을 수 있었을까?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깊이 받았으면서도 그것을 초월하여 자기 자신의 철학을 독자적으로 전개해나갈 수 있었던 천재였다. 이처럼 소크라테스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다른 차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플라톤이 없었던들 오늘과 같은 서양철학의 역사는 시작이 될 수없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물론 플라톤의 철학이 또 한번 그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독창적으로 발전되고 계승되었다는 것은 서양철학사의 기반을 확고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사실이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해서 소크라테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어주는 고대희랍의 철학사를 통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자신의 글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글을 통해서만 전달되는 그의 철학은 그 후에도 여러 가지 다른 면으로 이해가 되어왔다. 희랍철학과 기독교와의 조화를 모색했던 초기기독교회의 교부들은 소크라테스를 예수나 별 다름 없는 순교자로 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를 통해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세에 이르러 기독교신학이 확립됨에 따라서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구별하게 되었고 소크라테스의 철학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이를 수없다는 것을 주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르네상스에 와서는 인간중심적이고 자연주의적이며 심지어는 회의주의적인소크라테스의 위대함이 다시 인정받게 되었으며, 16세기 계몽기에 와서는 소크라테스의 도덕적 인격이 가장 귀중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고 한다. 현대철학에서는 실존주의자 키에르케고르가 소크라테스의 방법에 관한 새로운 관심을 보였으며, 니체는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깊이 느끼면서도 그의 지성주의 내지는 합리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각주 9: K. Jaspers, Socrates, Buddha, Confucius, Jesus, 1962, New York: Harcourt, Brace & World, pp. 17-21.]
이상과 같이 서양철학사에서 소크라테스가 영향을 준 사상적인경향들을 종합해본다면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이 된다. 첫째는 도덕적인 면에서의 이상적인모델이 되는 소크라테스의 인격이 준 영향이 그것인데 여기서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두 가지 다른 입장이 다 같이 소크라테스의 사상적 후예들이라고 주장할 수가 있는 것 같다. 그 중 하나는 도덕규범이나 도덕교육의 효과를 무시하면서 사회에 대하여 냉소적인입장을 취하는 개인주의적, 반-도덕주의 내지는 도덕적 회의주의의 입장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상적인도덕체계를 모색하고 도덕질서와 도덕규범을 중요시하는 도덕주의적입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기독교가 지배해 온 서양역사에서는 소크라테스의 도덕철학이 어느 쪽으로 이해되느냐에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반기독교적일 수도 있었으며, 친기독교적일 수도 있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소크라테스의 철학과 기독교신학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면과 갈등을 느낄 수 있는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철학은 그 자체가 종교화되지 않으면서 종교의 타락을 견제해주는 역할을 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가지고 있는 이 같은 특징은 또 다른 측면에서 그것이 서양철학사에 영향을 준 사실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합리적인사고의 모델이 되는 소크라테스가 준 영향이다. 여기서도 그의 영향을 입은 사상적 후예들을 두 가지 극단적인입장들로 나누어 본다면, 하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최종적인진리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을 의심하는 회의주의가 될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의 지성적인능력에 모든 문제의 해결을 맡겨 보려는 지성주의가 될 것이다.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지성주의란 과학주의로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을 발달시켜온 인간의 지성적인능력에 기대를 걸어본다는 것은 곧 과학의 발달 그 자체에 기대를 걸어보는 과학주의가 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서양과학사에 공헌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양과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뜻에서 소크라테스도 그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니체가 소크라테스를 비판하는 것도 서양에서의 합리주의적인전통을 세우는 역할을 했다는 것과 그런 합리주의 전통에서 과학주의가 나왔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과학화될 수없다. 일찍이 소크라테스 자신이 그 당시의 자연철학에 대한 회의를 품고, 인간의 마음과 인간사회의 도덕에 관한 문제로 자기철학의 관심을 돌렸듯이, 그의 철학은 과학적인진리에 대해서도 그것의 한계와 근거를 의심해보는 회의주의적인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학주의로 빠져버릴 수없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방법은 과학적 방법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방법만으로는 과학을 발전시켜올 수없었다. 서양의 과학은 발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독특한 과학적 방법을 개발해오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방법은 과학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사고방식임은 틀림없다. 이를테면, 그것은 수학적인사고방식이 과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소크라테스의 방법과 수학적인사고방식의 관계에 대하여 현대의 한 수학자는 소크라테스의 방법이 기본적으로는 수학의 방법과 같은 혈족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수학의 이해를 위한 그의 글을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으로 쓰면서,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대화에서 나는, 방법과 언어습관까지도 가능한 한 원래의 소크라테스대화록을 따르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소크라테스 자신이 주연인물이 되며, 그 토론이 이루어지는 시기는, 그 후로부터 우리가 수학으로 이해하는 의미의, 수학이 생겨난 때로 잡았다. 그러므로 수학은 독자들에게 <태어나는 상태>로 나타난다. 대화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그의 고유한 토론방법을 사용한다. 그것은 그 자신이 문제를 제기하고 상대편으로 하여금 그 문제점을 이해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식 대화에서는 두 관점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여자들이 진리를 찾아내기 위하여 함께 노력한다. 그들은 관련된 개념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그 질문에 대한 대답에 한 걸음 한 걸음씩 가까이 간다. 토론을 하는 중에 참여자들은 자주 — 어떤 때는 아주 단정적인형태로 — 명제를 만들지만 조금 뒤에는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식대화는 하나의 유기적통일체이며 그것의 참된 뜻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능하다면 도중에 중단하지 않고 읽어야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특징이 소크라테스식 대화를 생기 있고 뚜렷하게 만드는 것이며, 그래서 나는 이런 형식이 특히 내 목적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였다.[각주 10: 알프레드 레니이, 수학의 발견, 조응천·기종석 공역, 1977, 과학과 인간사, 제 1장 “수학에 관한 소크라테스식 대화”의 서술 방법에 대한 견해를 “저자 후기”에서 밝히고 있음, pp. 39-140.]
소크라테스의 방법으로 특징지어지는 그의 철학은 수학적 방법 내지는 과학적방법과 상통하는 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학이나 과학과는 다른 철학의 독자적인영역을 확립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다. 종교나 신학과의 관계에서도 그러하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그의 독특한 방법 때문에 종교와 조화를 이루는 면을 가지면서도, 끝까지 종교화되지 않을 수 있는 철학으로서의 바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철학이 이처럼 과학이나 종교에서 독립된 독자적 위치를 확보해 왔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종교와 과학간의 다리를 만들어주는 역할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과학을 종교의 지배에서 독립시켜주는 역할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철학과 종교가 명확히 구별되지 못했고 과학의 발달이 중단되어버린 동양역사의 견지에서 볼 때 아주 중요한 것 같다.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보다는 철학자의 사상을 배우게 하는 동양의 권위주의는 쉽게 종교화되면서 과학적 탐구를 저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동양의 철학은 오늘과 같은 문화적 특징을 낳게 되었을 것이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근본적인차이는 서양철학이 소크라테스의 방법에서 그 전통을 이어받았다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현대과학을 베우지 않을 수 없는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에서 독립되면서도 과학과 배치되지 않는 철학일 것이며, 전통적인종교와 철학의 관계를 이어가면서도, 종교를 비판할 수 있고 종교에서 독립된 철학일 것이다. 이것은 곧 우리 중에서도 소크라테스의 후예들이 더 많이 나와야겠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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