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님께서 바둑판식 대형이 하상지반에서 작동할 때 위험성에 대해 본 카페의 칼럼에 올려주신 글을 읽고 나서 사고가 발생한 포7대대에서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병력을 바둑판 격자 모양으로 배치하는 바둑판식 수색대형을 유지해서 이번 사고가 발생했는가에 대해 보다 세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카페에서 많이 다룬 주제지만 바둑판식 수색은 수색대형이 아니라 넓은 수변지역을 바둑판의 격자와 같이 구획화 하여 분할된 지역별로 누락됨 없이 꼼꼼하게 수색하되, 수풀더미나, 나무가지와 같이 의심스러운 지점은 세부적으로 확인하는 수색방법입니다.
그러나 포7대대에서는 바둑판식 수색이 바둑판의 격자에 놓여 있는 바둑알의 모습처럼 수색대형을 유지하는 것으로 오해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사고 당시 과연 이들이 얘기하는 바둑판식 수색대형을 유지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바둑판식 수색대형을 교범에서 본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습니다. 다만 포7대대측에서 바둑판식 수색대형을 계속 주장하고 있으니, 이 글에서는 이들의 주장에 따라 그냥 바둑판식 수색대형이라고 칭하겠습니다.
먼저 포7대대에서 주장하는 바둑판식 수색대형은 아마 이런 모습일 것입니다.
위의 바둑판식 수색대형 샘플은 5열 5오(5X5)로 편성한 대형이지만, 바둑판식 수색대형은 3열 3오(3X3), 3열 4오(3X4), 4열 4오(4X4), 4열 3오(4X3).... 등 등 무궁무진하게 많은 대형이 만들어지겠죠.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몇 열 몇 오로 수색대형을 형성하든지 어쨌든 바둑판에 올려진 바둑알처럼 수색대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모습은 직사각형 또는 정사각형 모양의 수색대형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해병대 수사단의 장관 보고서에 명시된 사고 당시 수색대형과 언론에 보도된 사고발생 5분전 수색하는 모습과 비교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해병대수사단에서 작성한 장관 조사결과보고에 포함된 사고당시 장병 위치 요도입니다.
얼핏보면 3열로 5오로 대형을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3오(이해를 돕기 위해 3오란 3번째 줄을 의미합니다.)는 2명, 4오도 2명, 마지막 5오는 4명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바둑판식 수색대형이라 할 수 없습니다. 수색대형의 중간중간에 병력들이 빠져 있고 마지막 줄에는 4명의 병력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바둑판식이라 하기에는 뭔가 어설픈 대형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과연 이 요도는 신뢰할 수 있는가? 이 요도는 해병대 수사관이 당시 수색에 참가했던 해병들의 증언을 통해서 내 앞에 누가 있었고 내 옆에 누가 있었는지를 듣고 개략적으로 도식화 하여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위치가 정확히 요도에 나와 있는 그 지점에 있었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또한 이 요도를 통해서는 개인의 간격과 앞뒤의 거리도 가늠되지도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이 비교적 병력들의 기동이 자유로운 육상(수변)도 아니고 급류가 형성되는 하천의 본류였기 때문에 이렇게 병력들이 대열을 유지하면서 수색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요도만 가지고 실제 이들이 주장하는 바둑판식 수색대형을 유지했다고 보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습니다. 수사단에서 작성한 이 요도에 매몰되어서 실제 이러한 대형으로 수색대형을 유지했다고 인식해서는 안됩니다. 경찰에서 제대로 확인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사고 발생 5분 전 사진을 보겠습니다.
이 사진에는 9명의 병력들만 나옵니다. 해병대 수사단 조사결과 보고서에는 14명이 수중에 있었다고 하니, 이 중 5명은 아마 사진의 앵글 밖에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진으로 봤을 때 제일 우측에 있는 2명의 인원들은 삽을 들고 있지도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 간부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해병대 수사단에서 작성한 요도와 비교해볼 때 간부 2명은 이 사진의 우측에 있을 가능성이 높고 나머지 3명의 해병은 이 사진의 좌측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진에 나온 7명의 해병들 중 6명은 옹기종기 모여있고, 나머지 한명은 병력들과 떨어져서 혼자 삽질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을 보면 어떻습니까? 앞서 언급한 바둑판식 수색대형 샘플과 해병대 수사단에서 작성한 요도와 비교해 볼 때, 바둑판식 수색대형이 머리 속에 그려지나요? 전혀 아닙니다. 이 사진 상의 대형은 도대체 무슨 대형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해병대 수사단 요도 상에는 보문교 아래쪽 방향으로 수색을 하고 있고 간부들 4명은 제일 마직막 줄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병력들의 시선, 또는 수색방향은 사진의 좌측 방향을 보고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간부들이 있는 우측 방향(보문교 방향)을 보고 수색을 하고 있습니다. 일정한 수색대형을 유지한 상태에서 병력들은 기동방향(수색방향)을 따라서 수색을 해야 하는데 이들은 수색방향과는 정 반대 방향을 보고 수색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까요? 한마디로 무질서합니다. 말은 바둑판식 수색대형을 유지했다고 하는데 실상은 전혀 바둑판식 수색대형을 유지하면서 수색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익명님께서도 의문을 갖고 있는 것 처럼 사고 발생 5분 전에 사진에 나와 있는 이와 같은 모습으로 수색을 하고 있었는데 불과 5분 사이에 갑자기 간부들이 각성하거나 아니면 대원들이 각성하여 해병대 수사단에서 작성한 요도와 같은 대형으로 변경해서 수색을 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결론은 해병대 수사단에서 작성한 요도를 신뢰할 수가 없고, 아마 실제 사고 당시 수색은 사진에 나와 있는 모습처럼 무질서하게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여기서 청문회에서 박정훈 대령이 바둑판식 수색을 하려면 굳이 육상에서 할 필요가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에 대해 비판해볼까 합니다. 박정훈 수사단장이 바둑판식 수색을 하려면 굳이 육상에서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반대로 말하면 바둑판식 수색이 육상보다는 수중에서 효과적인 수색대형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박정훈 수사단장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국회의원이 질문을 해줬으면 좋았을텐데 그 이유는 묻지 않고 그냥 바둑판식 수색은 육상에서는 무의미한 수색대형이라는 박정훈 대령의 어처구니 없는 답만 듣고 이것을 기정사실화 해버리고 잘 모르는 국민들을 호도하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포7대대에서 바둑판식 수색방식을 수색대형으로 의미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전제로, 수중에서 바둑판식 수색대형을 편성하는데는 몇 가지 고려요소가 있습니다
1. 임무 : 실종자를 찾는데 효과적인 대형 2. 지형 : 작전을 수행하는 지역에 적합한 대형 3. 병력(수색조 편성) : 하나의 수색조로 편성된 병력 수(통상 육군과 해병에서는 분대 단위로 수색대형을 유지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10명 미만으로 1개 수색조가 편성되고 이 또한 분대장조, 부분대장조로 구분할 경우에는 통상 5명 미만으로 수색조가 편성됩니다.) |
1. 임무 측면 : 바둑판식 수색대형 자체를 실종자를 수색하는데 부적절한 대형으로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꼼꼼한 수색을 위해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형태로 대형을 유지할 경우 앞에서 놓친 부분을 뒤따르는 병력들이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에 꼭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실종자 수색이라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결국 실종자가 있을 법한 곳에서 수색을 해야 하는데 급류가 형성되는 하천의 바닥은 실종자가 도저히 가라앉아 있을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하천 본류에 실종자가 있다면 당연히 떠올라서 급류를 타고 떠내려가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것은 그냥 눈으로 보고 확인하면 되는 것이지, 삽으로 하천바닥을 찌르고 다닐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2. 지형 측면 : 바둑판식 수색 대형은 기본적으로 병력을 어느 정도 넓게 산개할 수 있고 병력들의 기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육상지역에서 적용할 수 있는 대형입니다. 예를 들어 수색조가 3열 3오로 대형을 편성할 경우에는 개인당 간격은 감시의 중복이 발생하지 않도록 통상 2m 이상은 이격해야 할 것인데, 병력이 3열로 서 있으니 산술적으로 열과 열사이의 간격이 2MX2열을 하면 총 4M가 될 것이고, 성인 한 사람이 서 있는 공간을 대략 1M로 했을 때 세 사람이기 때문에 3M 정도 차지한다고 보면 최소한 7M의 기동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즉, 수사단의 요도와 같이 3열로 병력들이 늘어섰을 때 최소 7M의 기동공간이 있어야 3열 3오의 바둑판식 대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천은 중앙으로 갈수록 수심이 깊어지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수변에 근접한 곳을 기준으로 하천의 중심부로 7M나 더 들어가게 될 경우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중에서는 이렇게 병력들을 산개해서 수색하는 바둑판식 수색대형을 유지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정한 수색대형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는 병력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기동하면서 옆사람과 앞 사람과의 간격과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데 급류가 형성되는 하천에서는 병력의 기동 자체가 제한되기 때문에 일정한 대형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군에서는 수중수색을 위한 수색대형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군에서 해상이나 강상에서 수색임무가 부여되면 통상 IBS나 고속전투주정 등을 이용하여 해상(강상)정찰을 하든지, 아니면 잠수부를 투입하여 특정 지점에 대해 정밀 수중수색을 합니다. 그리고 그도 아니면 경계초소 또는 일정한 육상 지점에 병력들을 배치하여 육안으로 해상이나 강상을 관측하는 방식을 적용하지 병력들을 직접 수중으로 투입하여 수색대형을 유지하면서 수중수색을 시키지 않습니다. 현재 육군이나 해병대에서 수색정찰 또는 대침투작전 교범에서 제시하는 모든 수색대형은 육상에 한정된 수색대형입니다.
박정훈 전 수사단장은 무슨 의미로 바둑판식 수색을 하려면 굳이 육상에서 할 필요가 없다고 청문회에서 말한 것인지 저의 군사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설사 사고 당시 박정훈 대령이 바둑판식 수색의 의미에 대해 정확히 몰랐다 하더라도 이미 사고가 발생한지 11개월이 경과한 시점인데 본인이 만약 바둑판식 수색이 왜 육상에서 할 필요가 없는 수색이라고 주장할 것 같으면 최소한 이에 대한 자기 논리라도 만들야 하는데 과연 이런 노력이라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3. 병력(수색 조 편성) 측면 : 여기서 주목할 점은 포11대대장이 7월 18일 16:22에 수색조편성에 대한 지침을 카톡으로 전파했다는 것입니다.(물론 포11대대장이 전파한 카톡은 여단장이나 사단장의 지시가 아니라 본인의 자의적 판단입니다.)
이 카톡에서 포11대대장은 "작전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해 개개인의 경계구역을 나누고 4인 1개조로 책임주고 찔러가면서 확인할 것(1열로 비효율적으로 하는 부대장이 없도록 바둑판식 수색정찰을 실시할 것)" 이라고 포병부대에 전파합니다.
포11대대장의 카톡대로 수색작전이 수행되었다면 1개 수색조는 4인 1개조로 편성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4명은 바둑판식으로 대형을 유지해야 하고 또 개개인의 경계구역(감시구역)을 나눠줘야 합니다. 그리고 찔러가면서 확인해야 하는데 포11대대장은 모든 카톡에서 목적어를 생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찔러가면서라는 행위는 있는데 도대체 어디를 찔러서 무엇을 확인하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여단장이 포11대대장 뿐만 아니라 전 부대에 교육한 것은 수풀더미나, 나무가지 등 사체가 걸려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 의심스러운 곳이며, 이런 곳을 찔러보면서 확인하라고 했는데 무작정 찔러가면서 확인하라고 하니 황당하게도 하천 바닥을 찌르고 있는 겁니다.
4인 1개조로 수색조를 편성하고 바둑판식 수색대형을 형성하면 아마 이런 모습이 될 것입니다.
만약, 포병에서 바둑판식 수색을 수색대형으로 오해했다 하더라도 포11대대장이 전파한 4명 1개조로 편성하여 바둑판식 수색대형을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이러한 수색조편성은 그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던 사단장 지시로 카톡이 전파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 사단장 지시는 아니지만 포병부대 카톡방에 그렇게 전파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사단장 지시로 결부시키고 있는 포병부대에서 설마 선택적으로 사단장 지시를 수명한 것은 아니겠죠. 설마 이제와서 자신에게 유리한 사단장 지시만 받아들이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은 쏙 빼고 모른척 하는 것은 아니겠죠. 바둑판식 수색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인식했다면 4인 1개조 수색조 편성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게 인식했겠죠. 런데 당시 수색 사진이나, 해병대 수사단에서 작성한 당시 수색 요도를 봐도 4명 1개조로 수색조가 편성되었다는 것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다시 사고 발생 5분 전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게 과연 4인 1개조로 경계구역을 나눠주면서 수색을 하는 모습인가요? 바둑판식 수색대형을 유지한 것도 아니고, 수색조를 4인 1개조로 편성하지도 않고, 어느 하나 카톡에 나와 있는 수색방법에 대한 지시가 이행되지도 않았는데 왜 포7대대장 측에서는 계속해서 바둑판식 수색지시만 물고 늘어지는 것일까요?
결론 : 당시 포7대대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둑판식 수색대형을 유지하지도 않았고, 무질서하게 수중수색이 이뤄졌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다가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물론 수변으로 한정된 작전지역을 임의로 이탈하여 수중수색을 한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안정장비도 없이 위험천만한 하천본류에 들어갔는데 이럴 경우 어떤 수색대형을 유지하더라고 위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고 이후 자신의 과실을 사단장이나 여단장에게 사고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구실을 찾아야 했고, 이때, 생존장병의 증언을 통해 "바둑판식 수색을 하라는 지시에 따라 모든 것이 바꼈다, 바둑판식 대형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 간격이 넓어지면서 급류에 휩쓸리게 되었다"는 주장이 언론에 도배되었고, 김경호 변호사가 포7대대장의 변호를 맡으면서 "일렬식이 비효율적이다, 바둑판식으로 하라"는 사단장 지시로 작성된 카톡내용을 포착하여 여기에 모든 화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고 당시 포7대대에서는 실제로 바둑판식 대형을 유지하지도 않았으면서 사고의 핵심 원인을 카톡에 나와 있는 사단장 지시인 바둑판식 수색과 연결시켜 작전통제권이 없는 사단장이 작전지시를 했다는 직권남용 문제를 부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한 수중수색의 잘못을 바둑판식 수색 지시로 희석하기 위한 전략으로 판단됩니다.
첫댓글 저는 해병대 수사단 보고서를 보고 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바둑판식 수색대형이라는 수색"대형"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전 수색작전을 해 본 적이 없는 민간인이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해병대수사단이 참 깜찍합니다.
새로운 수색대형을 그 짧은 시간에 창안해내고, 이것으로 군상급자까지 속였으니 말입니다.
이번에 접한 해병대 수사단 소속 일부 군사경찰의 모습은 수사관으로서의 자세도, 군인으로서의 자세도, 심지어 제대로 된 인간미도 갖추지 못한 어설픈 낭만파 하급 사무라이들 같네요.
주군이 죽이라고 명하면 우르르 달려가 날카로운 도로 상대를 잔인하게 난자할 줄만 아는.
심지어 주군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이도 있구요.
당시 수색임무 과업 시작 시각은 8:30분으로 돼 있어요. 즉 21분 지난 상태의 수색작전 전개 모습이지 휴식시간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