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일자, 2006, 12, 4,
"곰" 은 백제를 상징하고,, 백제인은 곰족의 후예라고 하며,, 곰은 "고마"<固麻>로 발음 되기도 하는데 ~
"고마나루" 는 "곰나루" 즉 백제를 상징하는 곰에서 따온 지명<地名>이라고 합니다 ~
"웅신단" <熊神檀>은.. 곰신을 모신 사당<祠堂>이구요 ~
"웅신단비"<熊神檀碑>에는.. 웅신단의 내력이 담겨있읍니다 ~
1972 년 웅진동 "서혈사지"에서 출토된 "돌 곰상" 원형인데.. 6 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공주박물관에 소장돼 있구요 ~
곰을 의미하는 지명은 백제의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는데,, 백제 초기 한강 유역에 축조된 몽촌토성의 "몽촌"<夢村>은..?
고어<古語>로 "곰마을" 을 뜻하며,, 금강 유역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새로 정착한 도읍지에..?
"고마나루" 한자로는 "웅진"<雄津>이란 지명을 부여했고 "웅천주"<雄川州>라 부르기도 했으며 ~
고려시대에는 "곰주" 즉 "공주"<公州>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겁니다 ~
백제의 상징 동물인 "곰" 은 일본으로도 건너가,, 백제인들이 많이 이주한 "규슈" 에는 곰과 관련된 지명으로 ~
"쿠마<곰>모토" "쿠마가와" 등이 남아있어,, 이를 통해 "고마나루" 가 곰의 "본향"<本鄕>이란 사실을 알수있다는 거구요 ~
백제의 문주왕은 475 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3 만의 병력을 이끌고 한성을 공격하자 ~
금강 유역의 요충지였던 웅진<雄津>으로 천도 하였고,, 고마나루는 이때부터 538 년 "사비"<泗沘 부여>로 ~
도읍을 다시 옮길때까지 약 60 여년간 백제의 수도였다가,, 도시 이름이 "공주" 로 바뀌면서 오늘날 "고마나루" 는 ~
강변의 나루지역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고,, 고마나루는 금강이 공주시 유역을 굽이돌아 흘러가는 강변에 위치해 있구요 ~
금강의 푸른 물,, 고운 백사장,, 길게 조성된 소나무 숲,, 강건너 우뚝솟은 연미산이 "고마나루 권역" 이라고 합니다 !!
"고마나루" 는 옛 "웅진시대"<熊津時代>백제의 행정, 군사, 교통의 중심지였고,, 660 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때 ~
당나라의 장수 소정방이 금강을 거슬러 올라와 주둔한 곳으로.. 백제 멸망이후.. 웅진 도독부가 설치되기도 했구요 ~
1010 년 고려의 현종도 거란의 침략으로 나주로 피난할때 고마나루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
오늘날 고마나루에는.. 금강의 "수신"<水神>에게 제사를 올리던 "웅진단 터" 가 남아있는데 ~
"웅진단" 은.. 백제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국가의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네요 ~
이 제사를 "웅진단제"<雄津壇祭>라 하는데,, 이제 국가제의는 아니지만 지역민을 중심으로 "곰사당" <웅신단>에서 ~
매년 음력 3, 16 일 행해지고 있으며,, 계룡산 "산신제"<山神祭>와 함께 유교식으로 지내는 "수신제"<水神祭>로 ~
"중사"<中祀>의 규모인데 "소사"<小祀>인 "산신제" 보다는 절차가 복잡하고 제수 음식도 다양하다고 합니다 ~
"노송"<老松>이 드리워진 솔숲길은.. 곰과 사람이 만나.. 2 세를 둔 전설이 깃든곳이랍니다..?
이곳에는 총각과 쳐녀 곰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는데.. 그 줄거리는..?
옛날 한 총각이 연미산에서 길을 잃고 헤메다,, 바위굴에 들어가 쉬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아름다운 처녀를 만나게 된거라..?
총각은 처녀와 굴속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부부의 연<緣>을 맺었다네요..?
이후 며칠을 지내는동안.. 매일 굴 밖으로 나가 음식을 가져오는,, 부인을 이상하게 여기고 따라간 총각은..?
그녀가 곰으로 변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고.. 이후 부자연 스러워진 남자를 의심하게된 암곰은..?
그를 굴속에 가두고 살면서 자식을 둘이나 낳았지만.. 어느날 총각은 금강을 건너 도망을 친거라..?
상심한 암곰은.. 자식을 안고 강물에 뛰어들어 숨을 거뒀답니다 ~
그후 이 강을 건너던 나룻배가 뒤집히는 일이 많아져.. 강옆에 사당을 짓고.. 곰의 넔을 위로했다는 전설입니다..?
이웃한 "웅진 백제" 를 지킨 왕성인 "공주 공산성" <公州 公山城>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