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가타 릿샤쿠지3 - 야마데라역에서 곤폰주도를 지나 계단을 올라 산 정상에 오르다!
2022년 11월 4일 야마가타 (山形) 역에서 센다이행 仙山線(선산선) 기차를 타고는 3정거장 야마데라
(山寺) 역에 내려 산으로 들어가서는...... 릿샤쿠지 (立石寺) 절의 본당인 곤폰주도를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가파른 산에 만든 수없이 많은 돌 계단 을 숨을 헐떡이며 40여분을 올라
드디어 거의 정상 에 이르러....... 아름다운 여러 절 건물들을 구경합니다.
릿샤쿠지(立石寺) 는 헤이안(平安) 시대 전기에 천태종 (天台宗)의 승려인 자각대사
(慈覚大師, 지카쿠다이시) 에 의해 860년에 창건 된 오랜 역사가 있는 절 입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가인(歌人)・마츠오 바쇼 (松尾芭蕉) 노래의 무대가 되었으며 1000단이 넘는 긴 돌 계단 을
올라 가야 하는데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돌계단 끝에 오르면 산 아래를 조망하며 절경 을 즐길수 있습니다.
1,015단의 돌 계단 을 한발짝 나아갈 때마다 번뇌가 소멸 된다고 전해지는 수행의
길로.... 에도 시대 전기에 마츠오 바쇼 가 노래를 읊었던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일본어 교과서 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시즈카사야 이와니 시미이루 세미노코에 (閑さや 岩に
しみ入る 蝉の声, 고요함과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소리)” 라는 노래의 무대 도 되고 있습니다.
돌출한 바위 위에 세워진 붉은색으로 벽을 칠한 건물은 카이잔도 (開山堂)라고 하는데 릿샤쿠지를 개산한
자각 대사의 미도 (御堂 어당) 로 벼랑 아래에 있는 자연굴에, 스승을 금관에 넣어 매장하였다고 합니다.
미도에는 대사의 목조 존상 (尊像)이 모셔져 있어 아침 저녁 식사와 향이 끊이지 않고 평소에는 문 닫힌
미도(御堂 어당) 지만 일년에 한번 대사의 기일에 해당하는 1월 14일에 법회가 열리고 개장 됩니다.
왼쪽으로 바위에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왼쪽에 바위 위에 지어진 정자 같은게 보이니 불교의
5대 명왕을 모시는 “고다이도(五大堂)” 인가 본데..... 부타이즈쿠리 (舞台造り) 의
양식을 한 미도(御堂 어당) 에서 산의 절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등 절경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문득 오대산 월정사 주석 을 했던 봉은사 조실 인 한암 스님 을 생각해 봅니다.
한암 스님은 1925년 하안거 후 “내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봄날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 는 배우지 않겠다” 라는 고별사를
남긴후 오대산 상원사 로 은거 한 이래 26년동안 동구밖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합니다.
6.25 때는 “나는 여기 앉은채 생사를 맞이 할 것이다”...
1951년 국군이 전략상 상원사 절을 불태우려고 하자
가사 장삼을 입고 단정히 선당에 앉아 상원사 를 지켰습니다.
“항상 절에 거하면서 고요히 앉아 사유하라, 사람들과 휩쓸리지 않으며
무리지어 잡담하지 말라, 바깥세계에 대하여 탐착하지 말라!
음식에 욕심내지 말고 몸과 행동을 바르게 하라, 모듭 업을 깨끗이
하며 마음에 때 가 묻지 않게 하라, 뜻은 고상하게 지조는 굳게 가져라.
그 한암 의 제자 탄허 스님 은 중용 을 인용해 ”바람이 일어나는 곳을 알고 은미함
속에 드러남을 안다면 함께 덕으로 들어갈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또 장자 에 보면 忘適之適 (망적지적) 이란 말이 있으니 알맞다는 생각 마저도 잊고....
만족한다는 생각마저 잊어야 비로소 만족에 도달 한다고 설파 했다고 합니다.
발이 있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은 신발이 꼭맞기 때문이요, 허리에 대해 잊어
버리는 것은 허리띠가 꼭 맞기 때문이고 시비를 잊는 것은 마음이 서로 합하기 때문 이다.
맞음에서 출발하여 그 어느 것이든 맞지않는 것이 없는 것은 알맞다는
생각 까지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라고도 했다니 새길만하지 않는지?
그리고 내려와서 반대쪽인 그러니까 오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산 정상에
우뚝 선 불당이 보이니 바로 산길의 종점에 위치한 “오쿠노인(奥の院)” 입니다.
돌 계단의 최종 도착점에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이나 감동 은 실제 발걸음
을 옮긴 사람만 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니...... 고생한 보람이 있습니다.
그 옆쪽에 자리한 불당은 츄세이인(中性院) 으로 건물 안에 안치된 오빈즈루사마
(おびんずるさま) 는.... 장수의 효험을 내려주는 신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면 병이 낫고, 병에 잘 걸리지도 않는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앙을 받고 있으며 치매
방지의 효과 도 있다나요? 여기는 곤폰주도의 쇼후쿠보테이손 (招福布袋尊) 처럼 반짝입니다.
문학평론가이자 전북대 석좌교수 왕은철 씨는 “불교는 과학이다” 라는 말이 떠오르는데...
미움이나 분노에서 선과 자비가 싹튼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달라이 라마 가
그러하다. 티베트인들의 지도자인 그가 티베트인들의 적인 모택동을 애도한 것은 그래서다.
모택동 이 누구인가. 중국인들에게는 “주체적인 역사를 회복시켜준 은인” 일지 모르지만 티베트인들에게는
철천지 원수 였다. 모택동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은 고난의 장정을 통해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공화국을 세우자마자 서구 제국주의자들보다 “더 악랄한 제국주의자들로 표변” 했다.
그들은 평화로운 불교국가 티베트를 침략해 100만명 이 훌쩍 넘는 티베트인들을 학살하고 사원을 파괴 했다.
그들은 달라이 라마의 말대로 “공산주의를 가장한 쇼비니스트들” 이었다. 달라이 라마가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 것도 모택동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모택동이 1976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를 애도 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를 찾은 도올 김용옥 이 어쩌면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물었다. “그런데 왜
애도를 표시하셨습니까?” 그러자 그는 모택동으로 인한 고통과 그에 대한 분노 를 통해
부처의 가르침을 깨닫고 마음의 평화 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놀라운 답변이었다.
“적이라 할지라도 그 적으로 인해 나에게서 생겨나는 선을 더 귀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진노의 불길” 속에 영원히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무리 진노가 강렬하다 할지라도 어느 순간
에는 진노가 가라앉은 고요한 마음의 평화나 용서를 베푸는 그러한 감정의 전환 상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찾아온 “감정의 전환 상태” 를 밀어내고 다시 진노의 불길 속으로 뛰어들지만
그것은 자멸의 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진노의 불길에서 생겨난 선을 붙들고 귀하게
키워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것이 부처가 말하는 수행이었다. 너무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말이었다. 그에게 “불교는 과학” 이었다. 그 과학이 용서할 수 없는 모택동을 용서하게 만들었다.
오늘 이 산은 남녀 가릴 것 없이 섞였는데 경향신문 이유진 기자가 쓴 기사에 보면 일본에는 황당하게도
여성이 오르지 못하는 산 이 있습니다. 영적인 기운이 가득해서 신성한 산으로 일컫는 나라현에
있는 오미네산 입니다. 오미네산은 약 1300년 동안 슈겐도 라는 일본 종교인들의 수련장 이었습니다.
이 종교는 5월과 9월 사이에 오미네산 사원을 개방하기 때문에 이때 많은 순례자와 등산객이 이곳을 찾지만
여성만큼은 사원에 들어서면 안 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산 중턱쯤에는 ‘여성은 접근 금지’ 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으니 오미네산 슈켄도 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여성은 통과할 수 없다는 표시 입니다.
불교인들은 오미네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물질계에서 영적세계로 향하는 길 이라고 믿었습니다. 여성이 접근할
수 없는 이유는 여성의 존재가 영적인 길을 걷는 수행자를 유혹하고 방해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여성이 오미네산 순례길 정도는 등반할 수 있지만 사원으로 올라가는 것은 여전히
금지 되어 있습니다.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라서 사원이 있는 정상까지 가겠다고
우기면 가기야 가겠지만 굳이 불편한 시선 을 느끼며 가는 여성 등반객은 없다고 합니다.
여성의 존재 만으로 영적인 길에 방해가 된다며 접근 조차 막는다니.....
오히려 수도자로서 너무 신앙심과 의지가 약한 거 아니냐는 생각도 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