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TV가 빛나는 밤에 (연이말2)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이 곳은 무조건적으로 연예인을 비난하는 곳이 아닌 올바른 비판을 지향하는 카페입니다. |
나
는 성균관대 경제학부에 입학해 6학기를 다니다 자퇴하고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3학년으로 편입했다. 성대에서 또 다른 성대로 학교를
바꾸는 것은 성균관대가 있는 종로구에 살다가 성공회대가 있는 구로구로 이사 가는 것보다 훨씬 거리가 느껴지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서 많은 이들이 나에게 이유를 물어 왔다. 그 반대 방향이었으면 던져지지 않았을 그 질문 말이다.
“왜 ‘낮은’ 학교로 갔어?”
그럼 일단 그 ‘높은’ 학교 이야기를 먼저 해 보자. 사실 그 ‘높은’ 학교도 더 높아지고 싶어 “over the SKY”란 표어가 학교 곳곳에 나부끼곤 했는데 피해의식이 좀 있는듯하다. 등급 매기기 좋아하는 반도의 흔한 대학 계급도에서 SKY에 눌린 채 서-성-한(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으로 같은 레벨이라며 묶여 있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나는 성균관대에 대한 애정이 많다. 캠퍼스 곳곳에 다양한 추억이 담겨 있고 좋은 경험과 아름다운 만남들이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 이 글에서 애써 학교를 욕되게 하는 내용을 쓰고 싶지는 않다. 내가 다니던 시절에 성균관대가 학생들이 발행한 교지<성균>에 삼성 재단과 학교를 비판하는 기사가 실렸다는 이유로 교지를 전량 회수했었다거나 시민사회활동을 하는 교수님들을 ‘문제교수’로 지목해 이들의 동향을 학교가 몰래 사찰했다거나 하는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너무나 흔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것은, 학문은 다양성을 가져야 한다. 비판도 허용되어야 하고 다른 가치도 논의되어야 한다.
나는 이윤지상주의적 가치만이 상품처럼 유통되는 주류 경제학(자본을 위한 경제학)이 싫었다. 흔히 진보적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편향됐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말을 먼저 들어야 하는 것이 한국의 대학들이 아닐까? 성균관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학에는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사고를 가능케 하는 비주류 경제학의 설 자리는 없었다. 약자에게 한없이 거친 우리 세상의 경제 논리를 해부하고 싶었고, 이를 넘어설 대안에 갈증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그나마 공부할 가치가 있는 커리큘럼과 교수님들을 찾아 성공회대로 편입했다.
듣보잡대? 부천 SKY대? 상공회대?
성공회대가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 아는 분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학교가 존재하는지라도 알고 있으면 다행인건가?
성공회대로 편입한 후 자취방을 구하러 학교 근처의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몇몇 부동산에 걸려 있는 지도에는 성공회대가 ‘상공회대’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만약 고려대가 모음이 뒤집어져 ‘구려대’라고 적혀있는 지도가 있었다면 당장 폐기처분됐을 텐데 내가 방문한 부동산 여기저기의 지도들은 별다른 관심없이 그냥 그렇게 그곳에 ‘뭔가’가 있다는 것만을 표시하고 있는듯했다.
성공회대에 들어온 후에 이런 ‘소외된 존재감’을 경험한 재학생들의 체험기들을 숱하게 들을 수 있었다. 입학 자체가 가족과 친지의 ‘위로대상’이 되었다거나 택시 기사님에게 ‘성공회대’ 가자고 했더니 ‘뭐? 상공회? 상공회의소?’라며 못 알아 듣는 민망한 경험을 했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그런거다. 성공회대가 위치한 구로구와 부천시의 경계에는 가톨릭대와 유한대학이 있는데 이들 세 학교를 묶어 부천SKY라고 자조 섞인 농을 던지기도 했다.(물론 가톨릭의 첫 알파벳은 ‘K’가 아니라 ‘C’임을 알면서도 그런다)
하지만 대학이 가지는 학문적 내실에서는 자조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편입을 위한 면접관으로 한국 사회과학의 거목들이신 ‘조희연’ 교수님과 ‘정해구’ 교수님이 앉아 계신 걸 봤을 때부터 잘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성공회대에서 시대의 아픔을 함께 더듬어가는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다양한 세계를 고민할 수 있는 상상력들을 채울 수 있었다.
사실 나를 성공회대를 이끈 것 중 하나는 「월간 조선」이었음을 고백한다. 2007년 1월호에 실린 <[집중취재]「左派 사관학교」성공회대학의 전모>라는 뭔가 범죄집단을 파헤치는 듯한 제목의 기사를 읽으면서 기사의 의도와는 다르게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내실있는 배움의 장소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 기사는 성공회대 교수들의 각종 운동․투옥 경력을 일일이 나열하며 문제 삼고 있었지만, 되레 ‘골방 학자’에 머물지 않고 시대의 불의에 저항하는 실천하는 지성이었음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어 고마울 따름이었다.
실제로 성공회대에는 그 학문적 깊이에도 불구하고 ‘불온한 전력’ 때문에 ‘편향’된 이 나라의 대학에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한 분들이 모인 외인부대 같은 곳이었다. 나는 여기서 성균관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계급젠더에스니시티” “지구화와 대안사회”와 같은 엣지있는 과목들을 들을 수 있었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들의 고난
식당이라면 음식 맛만 좋으면 됐지 유명한 곳일 필요는 없지만 한국의 대학은 서열이 있고 그 순서가 대학의 내용을 압도한다. 내가 처음 다닌 성균관대나 나중에 다닌 성공회대나 교수님은 다들 해당 분야에 학식이 있으시고 별 차이 없지만 그 앞에 어떤 대학명이 붙었는지에 따라 급이 달라져버린다. 성균관대를 다니던 나와 성공회대를 다니는 나 사이에는 차이가 없지만 세상은 차이를 만들려 한다. 대학은 공부하기 위해 다니는 것인데 도대체 이 서열은 누구를 위한 서열이란 말인가.
9월 중순부터 2013학년도 대입 수시 전형 논술고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수능 시험도 한 달 남짓 남았다. 입시경쟁 폭력에 어린 학생들의 아우성과 극단의 선택이 매해 여전하다. 곳곳의 대학편입 학원들에서는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자랑하는 현 세대이지만 아직 갖지 못한 스펙의 끝판왕인 ‘학벌 스펙’을 얻기 위해 쑥과 마늘을…아니 컵밥을 먹어가며 많은 청춘들이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성공회대에서도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다른 학교로의 편입이나 다른 길을 찾아 떠나는 학생들이 많았다. 편입 학원들이 대놓고 학교 정문부터 건물 곳곳에 편입하라는 포스터를 붙여둔 것을 보는 기분은 참 찝찝했다. ‘여긴 다닐 곳이 못 되니 빨리 그만두라’?
세상이 알아주는 대학에로의 골인을 위해 자신의 꿈은 접어가며 비좁은 사다리를 타기 위해 매달리는 그 손아귀는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도태에 대한 두려움을 꽉 쥐고 있다. 서바이벌 게임이 리얼하게 자기 삶에서 구현되는 이런 경쟁 시스템은 결국 루저들을 대량 생산하고 패배의 책임은 자신의 무능으로 돌리게 한다.
사람들이 올라감을 추구하는 사회란 그만큼 낮은 지위의 사람들이 차별받고 억압받는 현실을 표현한다. 공장에 다니다가 대학을 가려는 것은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고 격려받지만 그 반대 방향으로 가는 행동은 이유가 요구된다는 것은 육체 노동자에 대해 가해지는 사회적 소외를 반영한다. 그가 만들어 내는 가치의 크기가 얼마가 되든지 간에 이미 높으신 양반들이 결정해 놓은만큼의 대가만이 주어질 뿐이다. 이것이 정상사회인가? 민(民)이 주인이 된다는 민주적인 경제인가? 이 게임 시스템은 다수에게 이로운가?
이상한 1%의 나라
수험생들이 욕하면서 보는 스테디셀러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를 내 식대로 말하자면, 편입이 가장 쉬웠다. 세상이 대학을 서열화 해둔 덕택인지 소위 명문대의 편입 경쟁률에 비해 많이 낮았기도 하고, 성공회대 편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면접은 평소에 고민하던 사회문제들이라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외고 동문회 소식을 알리는 포스터가 나부끼던 성대에서 대안학교 출신들로 북적이는 별난 학교인 또 다른 성대로 옮길 수 있었다.
성공회대에 와서 학생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느낄 수 있는 그들의 한숨의 깊이가 이전에 다니던 그나마 잘 알려진 대학교의 학생들과 다름을 나는 솔직히 느꼈다. 미래에 대한 불안마저 서열화되어 있다. 그래서 학교 앞 소주가 이 동네가 좀 더 쓰다. 변화가 필요하다. 애써 부여잡은 경쟁의 사다리들을 뒤흔들어야 한다. 그럴 땐 이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님이 글씨를 써 준 소주 ‘처음처럼’의 광고 문구가 간절해진다.
“흔들어라. 더 즐거워진다!” “함께 흔들어라. 세상이 더 부드러워진다!”
(끝)
출처: http://hook.hani.co.kr/archives/45445
첫댓글 성공회대 교수님들 좀 짱임 ㅋㅋㅋ 다른학교학생이지만 성공회대 교수님들 강의 많이 들었었는데... 좋음.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주류경제학 뿐만 아니라 다른것까지 하셔서 더 좋음
성공회대는...예전에 올라온 글 때문에 이미지 진짜... 어케해도 좋게안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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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글이여??혹시 그 11학번선배가 페북에 글싸지르고 그랬던 사건이요??
성공회대에 대해 잘 모르고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할게요.ㅎㅎ 성공회대학생은 아니지만ㅋㅋ좀 그러네요 이런댓글
성공회대 좋은데ㅠ교수진들이 정말 좋은것 같음 나중에 다시 공부하면 우리학교말고 성공회대가서 하고싶음
글 잘쓰시네요ㅎㅎ또다른성대에대해 다시생각해보게됐어요
쌩뚱맞은 얘기지만 성균관대 편입시험 완전 극악의 난이도 ㅠ_ㅠ
엌 우리동네 성대를 말하는거였구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사회적시선속에서 당당히 갈길가신게 대단하다 여겨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