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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2박 3일로 외출이다
가을 강가에 홀로 앉아 봐야
함께 감을
저 하늘 높게 저 흘러가는 강물에
하얀 구름처럼
반짝이는 너의 손길을 안다
내가 '가을엔 남자가'를 쓴 지가 벌써 7~8년이 넘었다
별스럽지도 않고 글도 어쩌다 나의 일상으로
쓰기 시작한 건데 올리자마자 조회가 기하급수적으로 천 단위로 많아졌다
깝짝 놀래 여기저기 물어 보고 옆분들에게도 미안하여 내려 버릴까도 했던 글이다
그래도 싫지는 안 했지만 내내 멋쩍었던 글이다
가을엔 남자인 내가
그때 만해도 집에서나 주위에서나 기세등등했다
그때
“당신 하고 나는 어떻게 만났지?”
“참네! 친정 오빠가 있었으니까 만났지.”
“그러면 오빠친구들과는 아무 하고나 결혼할 뻔했네?,,,”
“아침 댓바람부터 뭔 소리여~?
당신이니까 했지”
“그러니까 내가 누구냐고?”
“아~ 귀찮아! 당신이니까 했다고”
“내가 어떻게 당신 맘에 들었냐고”
“애말이요~~ 진작에 그렇게 말할 거시지
걸음걸이가 멋있었어
오빠랑 걸어갈 때 당신 뒷모습이..”
“지금도?”
“응
수영장에서 남자샤워실로 걸어 들어갈 때... 멋져”
내가 버버리코트 입었을 때
어깨에 기대고 싶다고 했지?
내가 샤넬 백 하나 탁 사줬을 때
친정 부모님 기일 가는 길에 2박 3일 다녀오라고 할 때
이렇게 집사람 앞에서도 허세 팡팡대며 있는 폼 없는 폼 다 낼 때다
그런데 오늘도 아래층 샤브샤브 집이 오픈하는 날이라서
인사차 팔아주러 갔는데
이 사람은 고기 종류 주문도 온도 조절도 자기가 다한다
밥은 나중에 국물이 졸으면 넣으란다
얄포롬하게 대패로 밀은 듯한 목살 우삼겹살을 끓는 국물에 한 장씩 담거 먹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고
야채 고기를 한꺼번에 넣고 푹 끓여 그 국물에 밥이나 면을 팍팍 끓여 먹는 게 나다
이럴 바에야 소고기 덮밥을 시킬 걸
나는 이것저것 하다 못해 반찬으로 나온 무말랭이 무침도 다 한꺼번에 집어넣고 푹푹 비비는 게 제맛인데ㅠ
맞다 나이가 드니 점점 애들 같아져
섭섭함도 많이 타고 자꾸 찾는다 의지하고 싶어진다
그 마음은 몰라주고 이 사람은 점점 더 목소리가 커지고
거칠거칠해진다
다들 한몫을 하는 세상이니 집사람도 안식구가 아니라 거대한 모뉴먼트로 우뚝 섰다
어린이들은 어린이들대로 즐겁게 놔두고
청소년들은 그들대로 이해해 주고
젊은 세대는 젊음을 믿어주고
요즘 할줌마들은 나이를 종 잡을 수가 없으니
그리 멀리도 가깝게도 안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내가 빨리 걷기 하는 호수 고무메트 트랙은 햇볕이 쨍쨍 한 날은 벚나무 터널이 쭉 있어 좋고
끄무룩 한 날엔 호젓하고 정스러워서 좋다
오늘도 발바닥에 힘을 팍팍 주며 빨리 걷기하고 있는데
내 앞으로 급히 들어오며 하하를 냅다 휘둘러대며 추월해 간다
이어폰 끼고 야! 너 그러니까 70%만 해줘~란다
그 빨간 잠바 쟈크 안 열면 너만 손해란다
와 요즘 할줌마들 쎄다
롯데 타워를 배경으로 모습들을 담는 외국인 여성들은 사람들이 지나가려면 웃으면서 비켜주기까지 하는데
내가 하늘을 보고 걷거나 땅만 보고 걸어갈 것이지 뭣 땜시
고 비싼 아웃도어 입고 나오는 MZ 할줌마들을 신기해했는지
집사람만 보고 살더니 고놈의 코로나 땜시 갇혀있다가 걷기 운동하는 것도 콧바람도 바람은 바람인가 보다
여자들은 가정을 지키고 가꾸어 나가는 지덕미는 옛 고화에서나 보는 거
내가 어떤 땐 살기 위해 사는 건지 죽기 위해서 사는 건지 해질 때가 있다
너를 보고는 죽어라 살아야겠는데
내가 ‘가을엔 남자가’를 쓴 지도 세상이 바이러스 전쟁으로 뒤집혀 버렸다
누군 이럴수록 땅 5 에이커로 온 삶을 다해 사는데
이 가을에 추수의 감사기도는커녕
수시로 비닐하우스에서 팜 농장 이야기로만 돈돈하더니
男! 밭 갈고 힘쓰는 가을엔 남자가 가 아니라 가을도 여자의 계절인가 보다
집사람도 가을이고 뭐고 계절 없이 판을 짜고 친다
男! 기세 등등 했던 가을엔 남자가는 옛말이고
가을에도 여자가 대세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쓰고 그려 논 것들을
어쭙잖은 것들인데도 나도 못하는 걸
잘 모아 둬 줘서 고맙다
이 사람 요즘엔 쩍 하면 내가 내가 하면서 자기가 척척 알아서 한다
진즉 시어른 모시고 애들들 키우는 가사일에만 묶어 놀게 아니라 생활 전선에도 한 역할하게 할 걸
애들이 잘 커줬으니 배부른 소리겠지만
진즉 그랬으면 내가 한강 인도교에서나 같은 싸한 바람은 타지 않을 거다
사는 게 다 그런 건지
내가 주인으로 살았는 그런 내가 중심이었는데
내가 가족을 위해 억척스레 산 것이 엊그젠데 이젠 내가 가족의 한 일원임을 알아나가며 감사한다
이 사람이 2박 3일로 동창 모임에 간다며 내가 좋아하는 2년 된 묵은지 넣고 고등어 찜해 놓고 가면
그 2년 된 묵은지처럼 깊은 안식구의 맛을 느낀다
대충 훌 사이즈로 입는 좀 훌렁한거가 닿는 촉감이 정스러 좋다
내가 와이샤스 소매 끝에 이니셜 마크를 새기지 말아야겠다
새콤 달콤하지 않고 대충 살아야 묵은지 우려내는 깊은 맛을 안다
넉넉한 옷을 걸치고 천천히 걸을 란다
누구 보라는 것이 아니라 바짓가랭이에 내 종아리가 닿는 감촉이 고 느낌이니까 ^
가을엔 남자가~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가을이 깊어지며
나의 가을도 작년과 다르게 허허로움만 남긴다
갑자기 추워져서 콜럼비아 후드 티를 꺼내려니 어디다 둔 줄을 못 찾겠다
혼자 해결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다 뒤져봐도 없다
할 수 없어 이 사람에게 전화를 하니 옆에서 그새 전화냐?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누구들을 위해서 그렇게 앞뒤 안가리고 일했는데
부담스런 존재는 싫다
이젠 손주들 볼 때가 처 자식 위해 살 때와 다르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하나하나가 나를 닮았고 3대 증조를 닮았다
손주들 꽃이 꽃 중에 꽃
온 집안을 환하게 밝히고 나가 아침저녁으로 즐겁다
의사 선생님이
손녀라고 할 때 내 소원이 지 할머니와 엄마 쌍카플 눈 닮고
허벅지는 지 고모와 3대 할머니를 닮으랬더니
눈은 아직 안 까져서 모르겠는데 허벅지는 닮아서 꿀벅지다
어찌나 통통 튼실한지 엎드려서 상체를 불끈불끈 든다
며늘아이가 이 녀석 가졌을 때 시아버지 내가 태몽을 꿔줬다
목욕을 시킬 때 보면
아직 눈은 쌍꺼풀이 안 생겼는데
허벅지는 고모와 3대 할머니를 닮아서 엄청 꿀벅지
어찌나 통통하고 예쁜지 난 하도 좋아서 내가 엊저녁 꿈에
조 녀석 저기에 다가 내 이니셜을 새겨주는 꿈을 꿨다고 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그냥 웃기만 하는데
이 사람은 나보고 애들 앞에서 주책이라며 말을 가로막아버린다
아직 백사오십일 밖에 안 됐는데 팔로 상체를 세우고 나를 한참을 쳐다본다
이름 작명할 때 사주를 보니 이 애는 나하고 합도 들고 이 할비를 엄청 챙길 거란다
그전에 너를 얻고 나서 쓴 글이 생각난다
<나는 더 이상 사랑을 안 남겨 놓으련다
내 모든 것은
너에게 다 쏟아붓겠다
곱고 예쁘게만 자라다오.
할비가~>라고 썼었지?
내가 손녀에게 내 이니셜을 새겨줬다면
그건 내가 죽어서도 그 애를 위해 뭐를 남겨 놓아야 함이고
내가 나를 그녀에게 남겨 놓았다면 그 또한 나의 책임이고
내가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면 나의 맹세이고
내가 저녁 종소리에 감사하면 그게 내일이리라
누가 나를 필요로 함은 그 또한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함일 거다
늙으나 죽으나 깨나 사랑한다는 말 외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Loneliness Trail ~ok
‘가을엔 남자가’~ 원본보기 주소
https://cafe.daum.net/musicgarden/F44n/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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