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을 떼며 / 김이경
꽃잎 하나를 떼어냈다. 시든 이파리 끝이 말려 있다. 우울해 보이던 꽃이 금방 환하게 웃고 있다.
카페나 레스토랑에 가면 식탁에 한두 송이의 꽃이 꽂혀 있다. 그 아름다움을 탐내면서도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날마다 끼니 챙겨 먹는 것도 동동거려야 하는 생활에서 꽃까지 신경 쓰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잠깐 꽃꽂이를 배웠을 때, 수반에 꽂아 놓은 꽃들이 시들면 뒤처리가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다 치울 시기를 놓치기라도 하면 향내나던 자리에서 나는 악취는 더 심했다. 뿐만아니다. 빠듯한 생활비를 쪼개야 하는 소시민에게 늘 아름다운 꽃꽂이를 유지한다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침봉(針峰)엔 녹만 슬었다.
꽃병이라고는 하기엔 너무 작은 병에 장미 한 송이를 꽂아 식탁에 놓으면서부터 아침마다 한 가지 일이 늘었다. 조금 시들어 보이는 꽃잎을 떼어내는 것이다. 활짝 피었던 꽃은 겉잎부터 끝이 까만색으로 조금씩 말렸다. 이것을 조심스럽게 떼어내면 시든 것같이 보이던 꽃은 이내 싱싱해졌다. 그렇게 하다 보니 마지막 잎이 남을 때까지 꽃은 싱싱한 모습을 간직했다. 꽃송이는 조금씩 작아지지만, 한 겹씩 잎이 떼어진 꽃송이가 작은 몸을 움츠린 모습은, 꽃밭에 질펀하게 떨어져 시든 장미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고 할까. 열반에 드는 고승도 아니건만, 이렇게 조금씩 몸집을 줄이고 비워 가면 되는 거라는 설법을 하듯.
마음을 비운다고 한다. 그러나 제 살을 떼어내는 아픔을 견뎌야하는 일인데, 말처럼 쉬운 이이랴.
나는 또 어떠한가? 어차피 내 삶과 제 갈 길이 한가지일 수 없는 일인데도 늘 애잔하고 안타까운 두 아들, 직장인이라는 굴레로 버리지 못하는 승진에의 미련. 아등바등해봐도 그저 제자리인 재물이며 잡다한 신변사들은…….
고려말의 고승인 나옹선사의 선시(禪詩)가 떠오른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놓고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라 하네
고승도 그렇게 벗기를 원했던 것은 그만큼 벗는다는 일이 쉽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꽃인들 채 시들지 않은 이파리를 떼어내는 것이 아프지 않으랴. 아직은 향내나는 꽃잎일진대. 그러나 이른 아침 꽃잎을 떼어내며 내 욕망과 번뇌를 그렇게 벗고 싶다.
오늘 아침에도 잎 하나를 떼어낸다. 나는 무엇을 버리고 비어있는 조요(照耀)함을 얻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