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이야기] Eversmann. Let your love Flow - Hometown Glory - 2

[eversmann]

내가 기억하는 가족들 중에 내 곁은 떠난 사람은 아직은 할아버지 밖에 없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일이고..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 돌아가셨나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 던 그날 내 꿈에 할아버지가 보였고, xx야 잘 있거라.. 할아버지 간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까지 듣고

눈을 떠보니 엄마가 나를 깨우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시골에 가야한다고 옷을 챙겨입으라고 하셨다.

요즘 아이들은 삶, 죽음, 그리고 성에 대한 것을 너무 일찍 깨우치고

애들이 아니라 상전을 모시고 산다는 말을 할 정도로 눈치가 빠삭하고 영리하지만..

나는 눈치는 남들 보다 몇 배는 빨랐지만, 세상에 사는 이치에 일찍 눈을 뜬 그런 어린이가 아닌 그냥 세상 물정 모르고

차타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 였기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에 슬퍼하기 보다는

새로 산 하늘색 스머프 T shirt를 입고 시골에 내려 갈 수 있다는 것이 더욱 좋았다.

어느 정도 머리가 크고 난 뒤에는 가족들 중에, 아니면 아주 멀거나 가까운 친척 그 누구도 세상을 등지고

우리를 슬프게 했던적이 없었던 고로, 나는 친구나 회사 사람들로 부터 누구 누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더라

누구내 친척이 큰 병에 걸렸다더라.. 장래식때문에 하루 쉬어야 겠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나 자신과 그 만큼 기력을 잃어가는 부모님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죽음’이라는 것은 나에게는 참으로 거리가 먼 이야기 였다.

아마도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너무 오래 겪어보지 않아서, 그 동안 그 평온함에 안주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내가 한국을 떠나고, 할머니에게 치매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2004년...

처음에는 나를 더이상 기억하지 못한다는 할머니가 너무 가엽고, 옆에서 간병해 드리지 못하는 내가 너무 미안하게 느껴졌지만

그것도 잠시..

눈에서 안보이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딱 맞더라.

안보고 안듣고, 전혀 찾아뵙지 못하다 보니 치매로 힘들어하는 할머니, 간병하느라 더 힘든 가족들 보다는..

정말 힘들게 공부하던 내가 더 불쌍하게 느껴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할머니는 살만큼 사셨지만, 나는 이제 막 피어나는 (좀 오래된) 새싹이니.. ㅡ.,ㅡ

나의 이런 싸가지 없는 생각에 벌을 받았는지 이제는 엄마가 병을 앓고 있단다.

내가 그렇게 소리질러 가며 7년간 묶혀 두었던 울음을 토해내고 난 뒤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가족 모두 참 조용했다.

형차에 달린 navigation이 과속하지 말라고 뭐라뭐라 하는 소리 말고는

우리 가족의 7년 만의 재회는 참으로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괜한 짓을 했다. 입술이 터지도록 깨물더라도 참을 것을.. 그런데.. 남들보다 눈물이 몇 배는 많은걸 누굴 탓하겠냐..

그냥 알아도 모른척, 들어도 못들은 척, 내가 눈물을 훔치는 것을 다들 보고 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뿐이다.

가방은 선물로 가득 차있다. 너무 오랫만이고, 너무 오랫만에 보는 가족들이라

좀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것들을 선물하고 싶어 카드 박박 긁어가며 참 많이도 샀다.

내가 가지고 온 선물들을 열어보고 다행히 다들 입이 귀에 걸렸다.

그리고 내가 쓰는 물건들, 가져온 옷가지들을 보며 한국에서는 전혀 먹히지 않는 영국의 high street fashion이 도마위에 올랐다.

아빠는 아주 무덤덤하게 - 내가 사온 셔츠를 입고 아무말 않고 조용히 소파에 앉아

모델 출신 큰 아들, 대한민국 최신 유행은 죄다 섭렵하고 있는 광고회사 중역 출신 엄마와

나름 빠숀을 본고장 중에 하나, ‘영국’ 물 좀 먹었다는 유학파 막내가 벌이는

‘That’s what I call Fashion’을 보고 가끔씩 웃으실 뿐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이 7년만에 함께한 점심 식사는 끝이 나고, 형은 다시 회사로 아빠도 역시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고

나와 엄마만 남았다. 한국에서는 아직 먹히지 않는 영국의 High street fashion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엄마의 다리를 배고 눕는다. 손톱도 깎아달라고 조르고, 귀지도 파달라고 졸라본다.

이렇게 엄마와 함께 누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본적이 언제인지 기억에도 없다.

제대한 후에는 일하느라 바빳고 한국을 나오기 몇 달 전부터는 아무도 모르게 준비를 하느라 집에 있을 시간도 없었다.

그때는 엄마 역시 아주 바쁜 하루를 보내셨기에, 친구같은 아들, 딸같은 아들과 함께 이런 시간을 보내는 건

아마도 10년이 훨씬 넘었을 것이다.

할머니의 치매 이야기로 시작한 엄마의 이야기는 한참동안 끊기지 않았다.

고상함과 터프함을 다 갖춘 big mouth인 엄마의 화려한 언변에 웃기도 했지만

엄마가 귀를 파주고 있었으니 제대로 웃지도 못하고 아주 조심할 뿐이다.

할머니가 처음 치매를 시작하시고 난 뒤 시작된 엄마의 파란만장한 맏며느리 생활은.. 정말 한숨 밖에 나오지 않더라.

회사에서는 간부로 회의에 이메일에 치이고, 집에서는 주부로, 치매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맏며느리로

몇 년을 그렇게 엄마 몸을 돌보지 않고 살다보니, 몸이 이상한 것도 느끼지 못했고..

결국 그렇게 엄마는 암 덩어리를 3기 말이 될 때까지 몸에서 고이고이 키웠더라.

할머니가 워낙 별나게 치매를 시작하셨기 때문에 처음 일년 동안에는 어느 요양원에서도 10일 이상 버티지를 못했다고한다.

전화가 울릴 때마다, 또 요양원인가.. 또 무슨 사고를 치고 쫓겨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가슴부터 덜컥 내려않는 몇 년을 그렇게 보내고, 엄마가 암선고를 받은 2007년 10월..

그때는 내가 회사에서 work permit을 받기위해 한참 준비하고 있을때 였다.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한 때는 6월 이었지만, 접수를 시작하고 결과를 기다린 것은 9월 부터였기에

엄마는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를 해서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물어보셨다.

그때 마다 짜증을 부렸던 내가 천하의 못된 놈처럼 느껴진다. 내가 그 일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work permit이 허가 되지 않으면 짤없이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기에

여기다가 엄마의 암선고 까지 겹친다면 나의 이 미친 변태 같은 정신 상태가 또 어런 짓을 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였을까..

나는 우리 집안에서 철저히 없는 사람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엄마의 소식을 알았다면..

아마도.. 다 미뤄두고 한국으로 잠시라도 들어갔겠지.. 엄마가 내 성격을 아는데..

아니, 이 정도는 나를 아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엄마도 한국에서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주면서 만약을 대비해서 나름 공부를 하셨기에

Work permit을 신청하는 기간동안에는 외국 여행이 철저하게 금지되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엄마가 수술을 하는 것을 안다면, 내가 다 때려치우고, Home Office 로 보내진 내 여권을 찾아다가

아주 짐싸들고 올 것을 우리 가족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비밀로 해야만 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겠더라.

간병이야기는 누구의 이야기를 들어도 마찬가지인 법.. 본인도 그렇지만 가족은 더욱 힘든 것이 암 투병이다.

아니, 가족 중에 누구 하나라도 아픈 사람이 있다면 그 가족의 하루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이다.

내가 그래봐서 안다.

내가 그 아픈 가족의 한사람 역할을 아주 톡톡히 해보았기 때문에

엄마, 아빠 형이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두 눈으로 똑바로 봐서 다 아는데..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엄마가 그렇게 힘들어 했다면, 아는 아마도 직장이고 학교고 다 때려치우고

24시간 간병에 매달렸을 것이 분명한데… 그 잘난 외국 생활 하는 덕에 그러지 못했다.

Work permit은 잘 해결되고 5년간의 노예계약을 받아내고 난 뒤,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내 자신에게 선물을 해 주자고

대출까지 받아가며 차를 사고 앞으로 5년은 더 있을 수 있다며 집안에 가구를 바꾸고, 정장을 몇 벌이나 더 사들였는지 모른다.

엄마는 인공장기를 다는 것을 권유받을 정도로 몸안의 장이란 장은 대부분 들어내야하는 대수술을 받고 있는 동안

나는 어느 차를 사야할까, 차를 사고 어떻게 꾸밀까..

새로 산 정장에 맡는 셔츠사야 한다고, 쇼핑하느라 정신없는 주말을 보내고

그러고 보니 구두와 타이도 새로 사야겠기에 다시 바쁜 주말을 보내는 하루하루를 계속 했다.

집에는 항상 전화를 받지 않고, 가끔 통화가 되더라도 항상 목소리에 힘이 없었던 이유를

단지 감기가 심해서 떨어지지 않는 말을 그대로 믿고서

약이라도 잘 챙겨먹고, 주사 한방 맞으라는 철없는 소리로 전화를 끊을 때 마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새로산 차 자랑이며, 새로 산 가구가 어떻고.. 뭐 이런 이야기를 들을때

엄마는 분명히 전화기를 잡고있을 힘조차 없었을 텐데..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다. 뭐라 할 말이 없다. 엄마가 암투병을 시작한 것을 알았다면..

이제는 나도 인간답게 살아야 할 시간이야.. 이렇게 혼자 자기합리화를 시키며

그 큰 돈을 쓰고 필요하지도 않은 그 많은 것들을 사들였을까..

내가 당장 날아가지 못한다고 해도, 약값이라도, 병원비라도 조금 보탰다면

내가 이만큼 죄책감이 들지도 않았을 것일 텐데..

엄마는 나에게 끝까지 비밀로 한것이 너무 다행이라고, 그나마 이만큼 몸이라도 움직일때 내가 왔기 때문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하신다.

그래야 맛난 음식이라도 차려주고, 그 동안 못 먹은 엄마가 차려주는 저녁상이라도 받아보지 않겠냐고..

이것마저도 못해주면 나를 다시 보내놓고 그게 한이 되어서 아마 잠도 못 잘 것이라고 눈물을 흘리신다.

'그래.. 아들은 천하의 불효자식으로 만들어 놓고, 엄마는 그 잘난 김여사 표 밥상 이라도 차려 줄수 있다고 좋아라 해라..'

그렇게 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툭 던지고는 퉁퉁 부은 눈을 선그라스로 가리고는 담배를 사러 나선다.

집에서는 안피우러고 했는데.. 나의 약한 의지력은 또 여지없이 무너진다.

잠시 찬 바람이라도 쒜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다.

나의 첫날은 그렇게 지나고 있다.

내가 한달 넘게 새운 계획은 모두 필요없게 되었다.

그 계획은 대부분이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밤새 놀고, 여행다니고, 가족들과는..

아침은 매일 함께 먹고, 일주일에 두번 정도는 저녁도 같이 먹는 것이었는데..

나의 계획은 아침과 저녁은 무조건 집에서 엄마와,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점심 아니면 늦은 오후에 커피 한잔으로 바뀌었다.

아빠와 형, 모두 아침에 나가면 저녁 늦게 집에 들어오다 보니, 엄마는 하루 종일 혼자 계신다.

너무나 왕성하게 직장 생활하고, 할머니 간병하던 엄마가,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집에만 있는다고 생각을 하니..

나라면 아마도 금방 벽보고 이야기하는 수준이 되어버렸을 것 같다.

엄마는 자꾸만 나더라 나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너무나 많이 변한 서울도 구경하고 오라고 그러지만 내 발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그냥 엄마 옆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내가 있으면 반찬이라도 한가지 더 할 것이고

밥이라도 조금 더 많이 먹을 수 있을테니, 그렇게 잠시라도 엄마와 함께 있고 싶다.

엄마는 그렇게 좋아하는 초밥도 이제는 잘 드시지 못한다.

수술하면서 위와 장을 대부분 들어내었기 때문에 소화하기가 너무 힘들단다.

그런데 그정도의 대수술을 받을 것을 생각해 보면 엄마는 아무도 그런 큰 수술을 받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피부색이 조금 창백할 뿐, 머리에 두건을 빼고는 살이 많이 빠진 것도 아니고, 내가 기억하는 7년전의 몸매 그대로 인듯하다.

아마도…

내가 온다고, 내가 와서 엄마가 너무 아픈 것을 보면, 아마도 영국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그렇게 눌러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부지런히 먹고, 더 부지런히 치료받고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엄마를 너무나 잘 안다.

내가 한국에 오고 몇 일 후에 엄마는 다시 6차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한다.

항암치료 한번에 보통 1주일이 걸리고, 병원에서 몇 일간 오만가지 약물을 다 맞아가며 몇 일씩 보내고 나면

그 보다 힘든 것이 없다고 한다. 수술은 마취라도 하니 눈뜨면 끝날 것을..

이 항암치료는 눈뜨고 그 약이 다 몸속으로 들어갈때 까지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마도 더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엄마가 다시 입원하는 날 엄마를 따라 처음으로 병원에 가본다.

엄마가 6일동안 입고 먹을 이런 저런 것들을 챙기고.. 아쉽다.

내가 한국 운전면허증을 아직 가지고 있었더라면 직접 병원까지 모시고 갈 것을..

당당하게 그 잘난 영국면허증 한장 가지고 온 덕분에 뒷자리에 앉아 엄마와 이야기를 할 뿐이다.

엄마는 작은 아들과 함께 다니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병원이 아니라면 엄마와 나는 정말 재밋는 시간을 보냈을 것을..

아무말 하지 않고 엄마의 가방을 들고 엄마가 입원해야 하는 병동으로 아주 천천히 걸어갈 뿐이다.

옷을 갈아입고, 엄마의 물건들을 2인용 병실에 가지런히 정리한다.

엄마는 1인실을 정말 싫어한다. 아무도 없는 1인실에 몇 일 씩 있는건 독방에 가둬놓는 것 보다 더 심하다며

절대 1인용실에 입원하지 않는다. 사실 옆 사람 잘못걸리면 빼도 박도 못하고 몇 일씩 잠도 못자고 고생해야 한다며

2인실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에 옆자리의 다른 환자 분은 다행이 엄마가 아는 사람이다.

그 동안 같은 병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병원에서도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신 분이란다.

형은 몇 번 와서 만나봤지만, 나는 처음 본다면서 이렇게 멋진 아들이 또 있었냐고 복도 많다며 내 손을 잡고

마치 몇 년만에 돌아온 아주머니의 아들을 본 것처럼 나를 반갑게 맞아 주신다. 사실 그렇게 멋진 아들은 아닌데… ㅡ.,ㅡ

아마도 나의 영국산 high street fashion이 먹힌 듯 하다.

첫날 부터 엄마는 이런 저런 주사를 맞기 시작한다.

한번 맞기 시작하면 몇시간이 걸릴수도 있고, 면회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내가 마냥 엄마 옆에 붙어서 옆 자리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빠 저녁도 차려드려야 하고..

결국 잠든 엄마를 보고서는 나도 병실을 나와 집으로 향한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병실에서 나와서도 복도에 한참을 서 있다.

옆에서 뭔가 힘이 되어드리고 싶은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대신 주사를 맞을 수도 없고, 엄마와 함께 다니며 해보고 싶었던 것은 몇 년이 될 지 모르지만 뒤로 밀어두어야만 했다.

엄마가 누워있는 침대가 아주 멀리서 보이는 곳에 서서 엄마를 보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를 잃어버리고 난 뒤 후회하는 눈물이 또 흐르기 시작한다. 쪽팔린것도 없다.

이제는 조금 더 인간답게 살자고, 내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고 흥청망청 거렸던 내가 너무 밉고

그렇게 내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 전에,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던 가족들을 조금이라도 먼저 생각했더라면

이렇게 죄책감은 들지 않았을 것을.. 이렇게 크게 뉘우치고, 후회하고, 병원 바닥에 주져 앉아 또 그렇게 엉엉 울만큼

나는 큰 죄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누가 옆에서 내 어깨를 토닥거려주고 있다.

간호사가 이러고 있으면 안된다고 하려나 보다.. 생각하고는 다시 선그라스를 끼고 ‘이제 갈꺼에요..’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하고 일어서려는데, 아까 나를 그렇게 반갑게 맞아주시던 그 아주머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투병생활을 하는 이 분은 엄마보다 더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하고 계신 분이다.

자식들도 다 멀리 떨어져 있고, 남편도 부산에서 일하고 있으니, 병문안이라고는 일주일에 한번..

이분을 보니 우리 엄마는 조금 낳은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아주머니는 내 어깨를 감싸고 같이 병동 바닥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신다.

엄마가 수술 후에 너무 힘들어했지만, 작은 아들이 어쩌면 내년에는 한번 올지 모른다며 건강해져야 한다고

힘들어도 조금 더 먹고, 운동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다며

그 나이에 그런 큰 수술을 받으면 어떤 사람들은 6개월이 넘도록 회복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엄마는 수술후 두 달 정도 후부터 혼자 걷기도 하고, 보통 사람 먹는 만큼 밥도 먹을 만큼 회복했다고 이야기 해주신다.

엄마는 병실에 있으면서 항상 내 자랑을 하셨다며, 가방 두개 들고 나가면서 성공하기 전까지는 안 온다..

그렇게 소리한번 치고는 나가서 아직까지 한번도 들어오지 않고, 정말 한번도 들어오지 않는 독한 놈이라고..

입에 혀 같은 자식이라고, 내가 어떤 아들이었는지 너무 자랑을 해서, 그래서 나를 보고서는 그렇게 반가웠단다.

그리고 엄마가 그렇게 열심히 회복하려고 했던 이유가 다 나 때문이라고 해주신다.

그래서 한참을 더 운다.

다행이다.

선그라스도 가져왔고, 비니와 후드티, 그리고 가죽자켓으로 Typical Sunday morning 옷차림을 하고 나온 것이 다행스럽다.

- 주말에 미친듯이 술 퍼마시고, 완전 폐인이 된 얼굴을 가리면서도, 나름 절대 꿀리지 않는 패션을 하기에 이만큼 좋은 것이 없다.

내일 다시 올께요..

그렇게 짧게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병원 문을 나선다.

그렇게 퉁퉁 부은 눈과 벌개진 얼굴을 옷과 안경으로 최대한 가리고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선다.

연쇠살인범 수준으로 얼굴을 가렸으니 사람들은 내 주변에 잘 서있지도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멍하다는 말로 밖에 기분을 표현 할 수가 없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꿈을 꿔도 이런 좇같은 꿈을 꾸나 싶다가도

비니와 두건을 번갈아 가며 쓰는 눈썹이 없는 엄마를 보면 꿈이 아닌 것이 맞고..

왜 우리 집안에 이런 일이 났을까..

내가 무슨 잘못을 얼마나 했기에 이런 벌을 주시는가..

누가 주는 벌이든 내가 대신 받을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나의 한국에서의 한주는 이렇게 지나고 있다.

Wax - 엄마의 일기

[blackberry]

어머니의 이야기까지 함께 공유해 주신 eversmann님께 감사드립니다. 글 읽고 노래 들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더욱더 성공하는 모습 보여드리면 어머님도 더 힘이 나실겁니다. 힘내세욧!!!!!!!!!!

[eversmann]

thanks mate :-)

[Skittles]

아유 ㅠㅠ 전 할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셔서 이번편보고 또 할머니생각에 눈물 고였네요 ㅠㅠ 그래도 eversmann님 어머님은 괜찮으셔서 다행!

[supermini]

지금은 건강하신지 궁금합니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