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하 작가님의 글
(이 글을 쓰신 권태하 작가님은 경북 영주 출신으로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1979년 MBC TV 개국 10주년 기념 TV드라마 공모에 당선한 후 ‘수사반장’의 작가로 활동했습니다. 1993년 <월간중앙>창간 25주년 기념 일천만원고료 논픽션 공모에도 당선했고, 장편소설 <그들은 나를 칼리만탄의 왕이라 부른다>와 산문집 <나는 진실한 바보가 그립다> 등을 펴내었습니다. 서울 ‘동대문문화원’을 창설한 후 다년간 사무국장과 상임이사로 일한 바 있습니다. 지금은 주로 서울 장안동의 자택에 칩거하며 포털 ‘다음’ 안의 ‘나무귀인’이라는 개인 블로그에 주옥같은 글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글도 권태하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지요하 주)
지요하 장편소설 「향수」(鄕愁)를 읽고
점점 깊어 가는 가을, 이때쯤 불현듯이 고향 생각이 나는 사람들에게 소설가 지요하가 최근에 펴낸 장편소설 <향수(鄕愁)>(도서출판 가야, 2011년 9월 출간)를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구수한 흙냄새가 그리운 사람, 논둑길을 걸으며 누런 벼이삭이 내뿜는 향긋한 나락향기에 취해보고 싶은 사람, 아니면 비릿한 갯내가 그리운 사람이어도 좋다, 지요하의 <향수>를 펼치면 책에서 바로 그립던 그 냄새가 난다.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등단한 지요하 작가는 그간 120여 편의 중‧단편과 <신화 잠들다> 등 다수의 장편소설을 발표했으며, 한국 문단에 대표적인 향토작가(현 충남소설가협회 회장)로 명성이 높은 우직스런 충청도 태안 촌사람이다.
최근에는 태풍이며 홍수 피해에 거명이 되어 조금 당혹스럽지만 지요하 작가가 살고 있는 태안은 조선 8도에서 가장 평안한 곳이라 하여 지명조차 ‘태안(泰安)’이라 불리어졌던 곳이다. 선친(지동환, 동화작가)에 이어 2대째 고향 태안을 지키며 문학의 길마저 대를 이어 걷는 지요하 작가의 글에서는 태안 냄새, 즉 항상 넉넉하고 편안한 촌사람 냄새가 난다.
그는 나 같은 단순한 글쟁이가 아니다. 그는 현재의 한국 문단에서 희소가치로 돋보이는 행동하는 양심, 지행일체의 선비이며 또한 신심이 깊은 참 신앙인으로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를 닮은 투박스럽고도 두툼한 책, 400페이지라는 중압감에 선뜻 책을 잡기가 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만 책을 열어 몇 페이지만 읽어도 파스텔 톤으로 펼쳐지는 고향이 눈에 아른거리고, 좀 더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옛 추억으로 빨려 들어가서 마치 독자 자신이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 고향으로 되돌아 온 듯한 느낌에 행복해진다.
주인공인 농촌 총각 허칠만이 피난민의 손녀인 수협직원 한미숙을 만나 결혼에 골인하는 과정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는 그 시절 내 이야기였던 것도 같고, 친구가 나에게 들려주었던 그 친구의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면서 오래 전에 망막 속에 지워졌던 첫사랑 그녀 모습이 아물거리며 가슴 두근거렸던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지요하 작가는 소설 속의 주인공 허칠만의 6촌 형님으로 등장하는 허칠박이라는 소설가를 통해 20년 전 자신이 소설을 통해 세상에 대고 말하고 싶었던 농민들의 아픔과, 자신이 꿈꾸었던 올바른 세상을 위한 민초들의 각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목소리 톤이 강하지 않아서 오히려 작품을 위해서는 다행스러운 느낌이다.
사실 소설 <향수>는 지요하 작가가 책 서문에서 밝혔듯이 그가 최근에 쓴 작품이 아니다. 20년 전 태안에 지역신문이 창간되면 주간지였던 그 신문에 연재했던 것을 최근에 책으로 엮을 생각으로 모우다가 금년에 미수(米壽)를 맞이하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고자 출간한 것이라고 했다.
작가는 책 서문에서 “소설 안에 들어 있는 20년 전 30년 전의 상황들이 오늘에도 변함없이 재현되고 있음을 보면서 30년 전이 곧 오늘이고, 오늘이 곧 30년 전 그때인 것 같은 현실이라는 생각에 책을 내면서 시점이동 같은 것을 전혀 시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향수>를 읽고 나서 생각하니 변함없이 재현되는 상황들 때문만이 아니라 이 책이 20년 전 30년 전 이야기어도 오늘 일처럼 생생한 감동으로 독자들을 빠져들게 하는 까닭은 소설의 무대가 바로 안면도와 태안 서산 등 바다와 농토, 즉 작가 자신의 고향을 지 작가 특유의 옹기그릇 같은 투박하면서도 진실한 인품에서 비롯되는 세밀한 터치의 필력으로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 듯 스토리를 풀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소설 전반에 걸쳐 질펀하고도 푸짐하게 깔려 있는 농익은 충청도 사투리의 맛깔스러움에 더욱 진한 땀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책을 읽다가 잠시 눈을 감은 적이 여러 번, 특히나 충청도 사투리가 심한 서산, 태안, 그 바닥 말투는 곱씹을수록 향수가 더욱 진하게 묻어나는 것 같다. 어쩌면 따끈따끈한 구들방 횃대에 걸려 있던 잘 뜬 메주 냄새일 것도 같고 어쩌면 곰삭은 서산 어리굴젓에서 풍기는 갯내 같기도 한 고향 사람들의 땀 냄새를 맡을 수 있어 책을 읽는 동안 너무 행복했다.
지요하 작가와 나는, 나의 계수씨가 지 작가 누님의 시누이라는 개인적인 연이 있다. 뿐만 아니라 젊어서 잠시 스치듯이 같은 직장에 몸을 담은 적도 있고, 천주교 인터넷에 글을 쓰며 정기적인 모임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러기에 나는 그 누구보다도 지요하 작가를 잘 안다.
그는 하늘이 낸 효자이다. 그가 어머니 고희(古稀)때 선친 유고 문집 <팥죽할머니와 늑대>를 발간하여 어머니를 감격케 해드렸듯이 소설 <향수>를 서둘러 출간한 것도 금년에 88세이신 자당 어르신의 미수(米壽)를 기념하여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함이리라.
그 어머니가 어떤 분이신가? 85세이셨던 3년 전 이맘때 폐암 말기로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암세포가 온몸에 전이된 채 강남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하늘바라기를 하고 계실 때 내가 문병을 하고 나오면서 지 작가에게 “아무래도 천수를 다 하신 것 같다”고 말씀드렸던 그 어르신이 아니시던가.
하지만 지 작가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태안에서 가까운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내려와 하루에 두세 번씩 내외가 번갈아가며 간호를 하면서 온갖 대체의학 요법을 병행, 지극 정성을 다하여 치료를 한 결과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아들 내외의 지극한 효심이 하늘에 닿았다”고 극구 찬양할 정도로 기적을 일으켜 그 어르신이 지금은 주일 교중미사에 참석하실 정도로 건강하시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지요하 작가, 85세의 노구에 말기 폐암과 암세포의 임파선 전이라는 사망 선고를 받아 호스피스 병동에서 한 달 넘게 보내셨던 어머니를 살려내어 미수를 맞게 해 드리니 그 마음이 얼마나 복될까 생각하면 향수라는 책이 내게도 복을 갖다 주어 건강을 되찾게 해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내 성격을 아는 이들, 내 불로그를 읽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지요하 작가의 소설 <향수>를 각각 한 권씩 사 달라 부탁하고 싶다. 이 가을에 하늘이 낸 효자에게 적선을 하는 셈치고 두터운 이 책 한 권을 다 읽는다면 그대는 아마도 그 어느 해 가을보다도 가슴이 따뜻한 행복한 가을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로 알려진 돈 잘 버는 작가의 책만 사 보지 말고 비록 이름은 덜 알려졌더라도 지요하 작가처럼 지행일치의 삶을 사는 향토작가의 책도 사서 읽어주어야만 우리문학이 순수성을 잃지 않고 더욱더 발전해 나갈 것이라는 판단에서 두 손 모아 여러분께 부탁드리는 것이다.
교보문고(1544-1900), 영풍문고(종로점 02-399-5660)에서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