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계속되는 놀라움’ Endless Surprise in our motor life이라는 주제 아래 경기도 일산에 새로 지은 한국 국제전시장 KINTEX에서 열리는 제 5회 서울모터쇼는 2005년 4월29일 공식 개막식을 거쳐 4월30일부터 5월 8일까지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하고 있다.
세계자동차공업협회OICA가 공인한 국내 유일의 국제모터쇼인 서울모터쇼에는 모두 10개국 179개 업체가 참여하여 1997년 이후 처음으로 국내외 완성차업체가 함께 참가하는 통합모터쇼로서 웅장한 전시장에 걸맞게 다양한 승용차와 상용차, 이륜차, 자동차 부품 및 용품 등 전체 자동차 관련 품목들이 5만3천여㎡ 규모의 전시장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대, 기아, GM대우, 쌍용, 르노삼성 등 8개 완성차 회사와 122개 부품용품회사가 참가하였다. 해외에서도 미국의 포드, GM, 크라이슬러를 비롯하여 일본의 도요타와 혼다, 독일의 BMW와 아우디, 스웨덴의 볼보와 사브, 이탈리아의 페라리, 영국의 롤스로이스 등 8개국 30개 완성차 회사와 6개국 19개 부품용품회사가 각각 참가하였다.
이에 발맞추어 서울모터쇼 조직위원회는 최근 세계적으로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우리 자동차회사의 관심과 인식을 제고시키고, 급변하는 자동차디자인 트렌드 전망에 대한 자동차 디자인 국제세미나를 실시하였다. 이 세미나는 국내 자동차디자인 경쟁력 향상과 자동차디자인 강국인 이탈리아와 우리나라의 자동차디자인 업계간 정보 및 인적교류의 장을 제공하기 위하여 ‘문화로서의 자동차디자인 Car Design as Culture’이란 주제로 5월 2일 한국 국제전시장 세미나실에서 국내외 자동차 디자인 전문가 및 학생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 자연이 소유한 3차원 곡선의 세계 (박종서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장) - 움직임의 감성 소프트웨어-자동차디자인 (구상 국립한밭대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 이탈리아 자동차디자인의 탁월함 (카를로 신체리 이탈리아자동차공업협회 회장) - 카르체라노 : 미래의 자동차 - 디자인과 제품의 관계 (피에로 루이지 카르체라노 카르체 라노 회장) - 이데아 인스티튜티 : 매혹적이면서도 기능적인 (브라이언 존스 이데아 인스티튜티 국제사 업개발 디렉터) - 피닌파리나의 오늘 : 트랜스버설 문화로서의 디자인 (켄 오쿠야마 - 피닌파리나 크리에이 티브 디렉터) - 스톨라의 변함없는 미 - 엔지니어링 예술 86년 (존 마크 스톨라 아시아 회장)의 주제발 표와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 세미나에서처럼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자동차 디자인에서의 이탈리아 디자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이탈리아에 잠시 살펴보자.
3년 전인 2002년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와의 축구경기에서 안정환 선수의 골든 골로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반면에 상대편의 발길질하는 다혈질 감독에서 느꼈던 것처럼 라틴족 특유의 매우 정열적인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장화모양의 반도와 2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천성적으로 느긋하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따라하기 보다는 옛 것을 보존하고 지키는 것에 도덕 가치를 더 두고 있는 민족이다. 게다가 그들은 장인정신이 투철하여 대대로 물려받은 가내수공업이 각 지방마다 여러 분야에 걸쳐 발달되어 왔다. 이러한 장인정신이 음악, 문학, 미술, 패션 등 모든 문화 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음악에서는 로시니, 도니제티에 이어 베르디, 푸치니가 가극에서 전 세계를 압도하고 있으며, 문학에서는 단테에 이어 페트라르카가 등장하여 활약하였고 보카치오는 중세의 속박을 벗어던지고 인간미를 발견한 문학가였다. 미술에서는 피렌체를 중심으로 하는 이상적인 미를 보여준 보티첼리와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3대 천재 화가도 모두 이탈리아에서 배출될 정도로 매우 역사가 깊은 나라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성장한 디자인의 특징은 건방지고, 유희적이고, 무법의 디자인이 흔히 이탈리아의 이미지로 비쳐지리만큼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디자인의 또 다른 세계적인 특징은 대부분의 회사가 가족에 의해 운영된다는 것으로 스페인을 제외하고는 다른 선진국과는 크게 구별되는 점이다. 이와 같이 직접적인 운영방식은 대기업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산업의 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아울러 이탈리아 사람들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개인주의의 경향을 갖고 있으며, 개성을 중시하는 점이 매우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디자인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한 것이 바로 ‘카로체리아 Carrozzeria’이다. 우리에게는 ‘카로체리아’라는 단어가 생소하지만, 카로체리아는 이탈리아 말로, 흔히 ‘디자인 능력을 갖춘 소량 주문제작 방식의 자동차 회사’를 가리킬 때 사용되고 있다. 그 기원은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중세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귀족과 부유층의 기호에 맞게 마차의 차체를 제작하고 장식하던 장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자동차가 개발되자 자연스럽게 자동차의 차체 제작으로 전공을 바꾸었으며,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auto.joins.com%2Fpicture%2Fcolumn_design%2F200505061211200_3.jpg)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들은 독창적이고 수려한 디자인으로 명성을 높여 왔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유명한 자동차회사들이 아직도 그들의 손을 빌리는 것도 바로 이 명성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인 포니를 비롯하여, 쏘나타, 에스페로, 레간자, 마티즈, 라비타 등 여러 국산 승용차들이 이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이들은 단순히 자동차의 스타일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다. 제작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자동차를 설계할 뿐 아니라 생산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물론 이들의 규모는 거대 자동차회사들에 비하면 매우 보잘것없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 자동차 업계에 이들이 미치는 영향은 크다. 자칫 각 회사의 틀에 박힌 밋밋한 제품이 되기 쉬운 자동차에 개성과 혼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카로체리아들이 디자인한 자동차들 중 상당수는 시장에 내놓자마자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카로체리아’가 이탈리아의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꿈의 회사나 다름없는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렇게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을 주도하고 있는 유명한 ‘카로체리아’들 중 쥬지아로의 이탈디자인, 베르토네, 그리고 이번 세미나에 참가한 피닌파리나를 중심으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20세기 최고의 디자이너 - 쥬지아로와 이탈디자인
우리나라와 가장 친숙하며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를 비롯하여 국내 자동차 다수를 디자인한 디자이너가 바로 ‘조르제토 쥬지아로 Giorgetto Giugiaro’ 이다. 그는 지난 1999년에 ‘20세기 최고의 디자이너‘로 뽑혔으며,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했다는 평을 받는 이 시대 최고의 디자이너라 볼 수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베르토네’와 ‘피닌파리나’ 등을 제치고 가장 각광받는 카로체리아가 된 ‘이탈디자인’의 성공비결은 바로 쥬지아로의 예술 감각과 상업성이 잘 조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탈디자인의 조르제토 쥬지아로는 1938년 이탈리아 토리노 근교 피에몬테지방의 가레지오에서 출생하였다. 음악을 하는 할아버지와 화가인 아버지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예술적 감성을 몸에 익히며 미술공부를 하면서 자라났다. 행복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그는 1950년 토리노에 건너가 회화를 계속 공부하였으며. 유제미소 코르모의 문하생으로 패션디자인 및 일러스트레이션도 배웠다고 한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나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급격히 산업화가 진행되는 것을 느낀 그는 앞으로는 제품디자인도 중요할 것이라 생각하여 낮에는 순수미술을, 밤에는 야간학교에 등록하여 제품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auto.joins.com%2Fpicture%2Fcolumn_design%2F200505061211200_5.jpg) 이때, 쥬지아로는 당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던 자동차에 마음을 빼앗겨 자동차 디자인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55년 국립예술 아카데미 졸업 작품전에 내놓은 쥬지아로의 자동차 그림을 보고 피아트의 디자인 책임자이자 초대 피아트 설계자인 '단테 지아코사'가 그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 때 그의 나이는 겨우 17세였다고 한다.
쥬지아로는 피아트의 특수차 디자인연구소에 배치되어 자동차에 대한 지식을 쌓지만 본격적인 디자인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그는 1959년 말 21세의 나이로 베르토네의 스타일링 책임자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누치오 베르토네'가 전격 발탁한 것이다. 그는 이 회사에서 불과 4년만인 1963년에 알파 로메오 테스투도를 첫 작품으로 내놓으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또 다른 작품 줄리아 GT는 12만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그가 베르토네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유럽에서 유명한 자동차 27대를 디자인하였으며 그 중에서 무려 12대가 실제 판매되었다고 한다. 이후 1965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디자인업체인 기아Ghia에 들어가면서 경영에 참여하여 스타일링 센터와 시작차 부문 책임자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회사의 경영권이 아르헨티나 출신의 데토마소에게로 넘어가자 독립을 하기로 결심하고 프리랜스 디자이너가 되었다. 이때, 베르토네에서 초창기에 같이 근무하며 알게 된 엔지니어 '알도 만토바니'와 뜻이 맞아 1968년 지금의 이탈디자인을 설립하게 된다. 대표인 쥬지아로가 디자인을 맡고, 전무인 만토바니가 엔지니어링을 맡는 튼튼한 협력체제가 이탈디자인의 밑거름이 되었다. 설립한 이듬해 첫 양산차인 일본 스즈키 ‘캐리’를 선두로 72년 로터스 에스프리, 74년 폭스바겐 골프, 80년 판다와 우노 등을 빅 히트시키면서 자동차산업 디자인업계의 최고 영예인 영국 골든 콤파스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또한 1980년대에 이미 캡슐라와 투게더 같은 작품을 내놓으며 ‘미래의 차는 원박스카가 주류를 이룰 것’이라고 말한 것에서 쥬지아로의 탁월한 예측능력을 엿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쥬지아로의 명성을 높여준 차가 바로 폭스바겐 골프이다. 직선을 살린 박스형 해치백 차체에 높은 공간 활용도와 실용성을 담아 전 세계에서 히트한 자동차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auto.joins.com%2Fpicture%2Fcolumn_design%2F200505061260000_1.jpg) 우리나라의 자동차회사들과는 각별한 인연이 시작되어 1973년 현대자동차의 포니를 시발점으로 83년 스텔라, 85년 엑셀, 프레스토, 88년 쏘나타까지 독자모델의 틀을 잡았으며, 1996년 11월에 선보인 대우자동차의 라노스를 비롯하여 97년 레간자, 99년 마티즈, 매그너스, 레조 등 차종은 다르지만, 인기를 누려온 이 차들이 바로 쥬지아로의 이탈디자인이 디자인한 차종들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auto.joins.com%2Fpicture%2Fcolumn_design%2F200505061260600_1.jpg) 현재 이탈디자인은 1997년에 지은 1만평 규모의 사옥에서 750여명이 일하고 있으며, 3개의 생산라인을 갖추고 연간 150대의 시작차 타입을 만들 수 있다. 최근에는 스페인과 미국 캘리포니아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더 세우는 등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였으나 세계적인 경제 불황 및 세계 자동차회사들이 자체 디자인 능력을 강화하면서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2008년 창업 40주년을 맞는 이탈디자인의 미래는 창업자 쥬지아로의 2세인 ‘파브리치오’와 만토비니의 아들 ‘마르코’에게 달려 있는데, 이 두 사람이 이탈디자인을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갈지 자동차업계가 주목되고 있다.
신화적인 존재 - 베르토네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의 역사를 연 ‘베르토네 Bertone’는 1912년에 설립하여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디자인회사이다. 전 세계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신화적인 존재로 남아 있는 ‘누치오 베르토네 Nuccio Bertone’는 1914년 태어나 97년 2월 알려지지 않는 합병증으로 82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명성은 아직도 여전하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auto.joins.com%2Fpicture%2Fcolumn_design%2F200505061305800_1.jpg) ‘베르토네’사는 ‘누치오 베르토네’의 아버지인 ‘지오바니 베르토네 Giovanni Bertone’가 이탈리아 토리노에 카로체리아 베르토네를 설립하여 지금에 이른 회사이다. 현재는 유명 디자인회사가 되었지만 초기에는 자동차 차체 제조 및 부품 수리업체로 출발하였다. 그 후 2년 후 태어난 ‘누치오 베르토네’가 성장하여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세계에서 손꼽히는 디자인회사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auto.joins.com%2Fpicture%2Fcolumn_design%2F200505061311500_1.jpg) 누치오는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무지무지 좋아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자동차는 달나라 우주선만큼이나 신비로운 대상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아버지 사업의 영향으로 누치오는 자연스럽게 자동차와 함께 자라날 수 있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auto.joins.com%2Fpicture%2Fcolumn_design%2F200505061312300_1.jpg) 그러나 그의 대학전공은 자동차와 관련된 학과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토론토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고, 회계사 자격증까지 땄다. 하지만 그가 19세 때는 세계 경제대공황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경제위기가 되풀이되던 시기였다. 경기불황이 계속되자 그는 피아트508 바릴라를 기본으로 개량한 베르토네의 차를 팔기 위해 나폴리, 로마, 발리 등 이탈리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는데, 물론 누가 시킨 건 아니었다. 그가 자청한 일이었다. 여기서 그의 경영 능력을 엿 볼 수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auto.joins.com%2Fpicture%2Fcolumn_design%2F200505061330900_1.jpg) 그가 본격적으로 자동차 디자인의 세계에 뛰어든 것은 아버지에게 회사를 물려받은 1952년부터였다. 초기에는 재정난에 허덕이기도 했으나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피아트 아르디타의 특별차를 전시하면서 조금씩 이름을 얻어갔다. 그리고 2년 후 그가 디자인한 알파로메오의 줄리에타 스프린트가 4만대 판매를 기록하면서 회사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누치오가 ‘베르토네’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것은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인 ‘프랑코 스칼리오네’, ‘조르제토 쥬지아로’, ‘마르첼로 간디니’를 영입해 시너지효과를 거두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1967년 람보르기니 미우라와 총 14만대가 생산된 피아트 850의 디자인이 대성공을 거두었고, 다시 1년 뒤에는 중앙에 엔진을 얹은 알파로메오 V8, 71년 람보르기니 카운타크, 76년에는 그의 이름을 북미대륙에 떨치게 만든 피아트를 디자인하게 된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auto.joins.com%2Fpicture%2Fcolumn_design%2F200505061331500_1.jpg) 람보르기니의 카운타크의 경우 디자인이 시작되기 전 무렵의 람보르기니는 경쟁사인 페라리의 4.4ℓ 엔진을 뛰어넘는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길 원하였다. 그래서 베르토네가 만들어 낸 V12 420마력 엔진을 기본으로 디자인되어 70년 12월 직원들을 대상으로 첫 공개되었는데, 이 때 참석자들 중 한 명이 ‘쿤타치 Countach’ 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감염이나 전염을 뜻하는 말로써 이 차의 전위적인 스타일에 놀라 나온 말이 바로 모델명이 되었다고 한다. 이 자동차는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 공식적인 데뷔를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1990년 8월에 데뷔한 대우자동차의 최초의 고유모델인 에스페로를 디자인하였다. 에스페로는 시트로앵 XM, 잔티아와 같은 디자인 컨셉트로 만들어진 멋진 디자인으로 데뷔 당시 국내에 큰 충격을 주었다. 누치오 베르토네는 이밖에도 레이서, 디자인센터 운영 등 여러 방면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였다. 현재 ‘베르토네’사는 설립자들이 모두 사망하였지만, 디자인센터인 스틸레, 자동차생산 시설인 그룰리아스코 공장, 제품 디자인 담당 테크노 디자인, 부품회사 등 네 회사를 가진 그룹으로 1천500여 명의 종업원이 일하고 있다. 베르토네의 디자인 철학은 매우 강경하고 비협조적이며 클래시즘과는 거리가 먼 듯한 느낌이 다소 있지만, 예지력과 능숙함으로 회사를 경영한 ‘베르토네’는 그의 노력과 디자인을 존경해오던 이들에게는 큰 공허감을 남겨줌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기술과 디자인과의 조화 - 피닌파리나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auto.joins.com%2Fpicture%2Fcolumn_design%2F200505061343500_1.jpg) ‘피닌파리나’는 바티스타 파리나 Battista Farina가 1930년 그의 형 공장인 스타빌리멘티 파리나를 떠나 ‘카르체리아 피닌파리나 Carrozzeria Pinin Farina’를 설립하고 독립하면서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페라리를 디자인한 피닌파리나는 250GTO, 테스타로사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고, 정열적인 스포츠카 대명사 ‘페라리’는 뛰어난 성능과 함께 예술품으로 평가받는 매혹적인 디자인으로 전 세계에 유명한 스포츠카이기도하다. 우리나라와는 최근 대우자동차 레조를 디자인해 알려지게 되었지만, 다른 이탈리아의 카르체리아 만큼 이름이 친숙하지는 못한 것 같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auto.joins.com%2Fpicture%2Fcolumn_design%2F200505061345000_1.jpg) ‘피닌파리나’의 원래 성은 ‘파리나’였다. 그의 성이 피닌파리나로 바뀐 것은 1961년 이탈리아 사회와 산업에 대한 그의 업적들을 높이 평가하여 파리나의 애칭인 ‘피닌을 결합한 ’피닌파리나‘로의 개명을 대통령령으로 인가하면서부터라고 한다. 피닌 Pinin은 '작다'는 뜻으로 설립자인 바티스타의 키가 워낙 작아 꼬맹이로 불리던 애칭이었다. 꼬맹이 ‘피닌파리나’는 1893년 11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11살 때 그는 그의 형 스타빌리멘티 파리나의 지오반니 자동차 공장에서 함께 일하기 시작하였다.
1차 세계대전을 거쳐 1920년 피닌파리나는 미국의 발전상을 보기위해 잠시 건너갔다가, 디트로이트에서 핸리 포드를 만나게 되면서 같이 일하자고 제의하지만 거절하고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온다. 이때 잠깐 동안의 미국방문이지만 피닌파리나는 큰 감명을 받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정보와 민간기업들의 활동상을 눈여겨 본 피닌파리나는 그의 생애에 새로운 도전을 하리라 결심하게 되어 형과 헤어져 지금의 카로체리아를 만든 것이다. 그의 처음 계획은 수작업차를 만드는 것이었지만, 이후 수작업 단계를 넘어서 좀더 포괄적인 작업을 목표로 하였다. 피닌파리나는 차체 제조업을 독립적인 산업으로 바꾸고 싶어 하였다. 그래서 그의 공장에 장비와 인원을 충원하였으며, 짧은 기간동안에 하루당 7~8대의 차량들을 소량 생산할 수 있는 생산 라인을 구축하게 된 것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auto.joins.com%2Fpicture%2Fcolumn_design%2F200505061364900_1.jpg) 이렇게 해서 2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코르소 트라파니에 있는 그의 공장에서는 혁신적인 디자인의 차량 바디를 생산하게 되지만 전쟁으로 위축을 맞게 된다. 다시 전쟁이 끝난 후 피닌파리나는 디자인과 생산을 재개하였고, 1946년에는 드디어 ‘이 시대 최고의 모델 8대중 한 대이자, 움직이는 예술’이라며 찬사를 받으면서 뉴욕 현대미술관에 영구 전시된 ‘치시탈리아 Cisitalia’를 선보이게 된 것이다. 이 차는 자동차 디자인의 아름다움과 단순함을 가장 조화롭게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세계대전 전후 시대의 자동차표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피닌파리나를 얘기할 때는 페라리를 빼놓을 수 없다. 1950년대 경주차를 도로용으로 개조해 품질에 문제가 많았던 페라리는 1952년 창업자 ‘엔초 페라리’가 피닌파리나와 손잡으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치시탈리아와 비슷한 스타일의 212가 첫 모델이었다. 피닌파리나는 이후 페라리 테스타로사, 미토스 등의 명차를 만들어냈으며, 피아트 130 쿠페, 란치아 베타 몬테카를로, GM 크로노스 등 독창적이고 뛰어난 스타일을 디자인하였다. 1961년 아들 ‘세르지오 피닌파리나’에게 경영을 물려 준 후에도 그는 피닌파리나의 일에 부분적으로 관여하였으며 대부분의 시간들을 문화, 자선활동 등으로 보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auto.joins.com%2Fpicture%2Fcolumn_design%2F200505061365600_1.jpg) 기술과 디자인의 조화를 중시하며, 이태리의 정열적인 스포츠카 페라리를 뛰어난 성능과 함께 예술품으로 평가받게 만들었던 매혹적인 디자이너 피닌파리나는 1966년 4월3일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아들인 ‘세르지오 피닌파리나’는 경영을 맡으면서 기술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1972년 이탈리아 최초로 실제 크기의 자동차를 테스트할 수 있는 풍동시설을 갖추었으며, 현재 2천700여 명의 사원을 두고 약 5만 대의 차를 생산하고 있다. 최초로 독립적인 디자인연구소를 설립한 피닌파리나의 디자인 포인트는 안전, 에어로 다이내믹, 작은 차체와 넓은 실내 공간 등 4가지인데, 이 4요소를 바탕으로 자동차의 수명과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페라리를 제외하고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양산차로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쿠페 피아트, 푸조 406 쿠페, 푸조 306 카브리올레, 파제로 피닌, 란치아 카파 왜건 등이 있다. 1999년에는 피아트의 뉴 푼토를 베이스로 한 위시와 메트로쿠보를 만드는 등 ‘기술과 디자인과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피닌파리나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앞으로도 ‘도로 위의 예술품’을 만들고 있는 ‘피닌파리나’의 디자인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그 외 이번에 참가한 회사 중 젊은 카로체리아로서는 1978년에 창립하여 대우의 ‘누비라’를 디자인한 ‘이데아 I.DE.A를 비롯하여 1919년에 창립하여 두 번째로 역사가 깊은 ’스톨라‘는 디자인을 직접 하지 않고 자동차회사로부터 받은 디자인을 토대로 실차 설계부터 프로토타입 양산까지를 대행하는 회사로 유명하다. 그리고 신생 카로체리아인 피오라반티, 모델 제작에 전념하는 마지올라, 코지올라, 카르체라노 등이 있다. 이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의 자동차 디자인 개발 과정을 작게나마 엿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우리하고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하고는 또 다른 디자인을 느낄 수 있는 이탈리아 디자인을 통해 미래의 발전된 우리나라 자동차 디자인을 꿈꾸어보자.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auto.joins.com%2Fpicture%2Fcolumn_design%2F200505061395500_1.jpg)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현대,기아자동차 디자인연구소, 해외자동차와 결혼한 GM대우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젊은 카로체리아를 닮아가는 쌍용자동차 디자인연구소의 미래의 활약을 기대해보면서...... |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