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찜, 그리고 장미
박해성
팔 걷고 도미찜 한다
그이와 다툰 날은,
암팡지게 끓어대는 무지갯빛 비늘이며
꼿꼿한 지느러미에 손 찔리는 쾌감도 있지
번지르르한 몸통에 엇박자로 칼집 넣고
싱거워 영 괘씸한 속내 대뜸 간 지른다,
두 눈을 부릅뜬 그대 지는 척 돌아눕긴 흥,
비등점의 냄비 속만 부글부글 끓겠냐만
부아까지 뜸 들어라, 불꽃 느긋 줄이는데
장미는 뭣에 쓰려고?
드센 가시 싫다더니!
헌화, 헌화가
박해성
수로부인 치맛지락 물어뜯던 바다용인 듯
이두박근 울근불근 땅 헤집는 저 굴착기
산 사람 집터 닦는다, 아버지 잠든 발치께
죽어서도 그늘이라 떼가 죽는 단칸 초막
그 꿈자리 사나울까 안절부절 서성이면
아가야 걱정 말거라, 철쭉꽃 불쑥 내미는
굴피나무 껍질 같이 갈라 터진 손바닥이
생시처럼 암소 몰고 도솔천을 지나시다
외동 딸 불면의 창에 샛별 닦아 걸어 놓고,
일찍이 당신께서 하현달을 엎지른 날
약지 하나 선뜻 깨물지 못한 이 불초를
노엽다, 아니하시면 눈물꽃을 바치오리다
- 《오늘의 시조》2011. 제5호
장군카센터
박해성
별이 되고 싶었다는 정비사 장 씨 아재 왼손 검지와 중지
마디 잘린 꿈 추슬러
시름을 꼭꼭 조인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때로는 구겨지듯 가장 낮게 엎드린 채 한 시대 질주본능
꼼꼼히 진찰한다
다 닳아 삐걱거리는 무릎관절은 접어두고
어쩌다 짬이 나면 '체 게바라' * 펼치지만 권세나 혁명쯤은
더 이상 흥미 없다나?
과부하 중고차처럼 괜스레 툴툴대다가
지구의 자전 속도 따라잡지 못하고서 브레이크 고장인지
지상에 추락한 별,
한 박자 늦어도 좋은 콧노래가 구성지다
*Che Guevara- 아르헨티나 태생의 쿠바혁명가
- 박해성 시인의 <스토리포엠>에서
나옹화상을 만나다
박해성
하늘빛에 물든 사람 끝내는 허공 되어
별절 뒤편 언덕 돌종 안에 살고 있데
있어도 짐짓 없는 듯, 없어도 그저 있는 듯
비워서 가벼운 그대 일주문서 날 반기데
후두두 빗방울인 척 어깨 슬쩍 두드리고,
애당초 속없이 사는 목어 비늘도 쓰다듬고
활짝 웃는 불두화는 곁눈질로 지나더니
극락보전 깊은 마당 왜 자꾸 맴도시나,
떨어진 살점이 아려 울음 참는 석탑을 돌며
바람이 쉬어 가는 강월한 난간에 서면
남한강 물이랑에 몸을 실은 저 뜬구름
사라진 흰 소를 찾아 하염없이 먼 길 가데
- 박해성 시인의 시집 『비빔밥에 관한 미시적 계보』,2012.리토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