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 연휴에 가족과 함께 오끼나와 여행
2016년 1월 2일부터 3박 4일간 우리가족 9명<우리부부, 큰 딸네 3, 작은 딸네 4>이
신정 연휴를 기해서 오키나와<이후는 '오'로 표시>를 다녀왔다.
아침 9시 비행기라 꽉 찬 4일이었다. 일본을 많이 다녀 봤지만 '오'는 처음이었다.
나는 '오'하면 미군기지 연상했으나, 워낙 넓고 커, 미군기지는 구경도 할 수도 없었다.
'오'는 사실 일본이라기보다는 대만, 중국이 훨씬 가까웠다. 어떻게 일본 땅이 되었는지..
아열대성 기후여서 겨울인데도 평균기온이 15도에서 20도를 오르내렸고 비가 자주왔다.
사실 '오'는 휴양. 해양 스포츠인 스노우쿨링이나 낚시가 제격인 곳이었다.
인천공항에서 2시간 정도 날아 '오' 공항에 도착을 하니,
잿빛 색깔의 일본자위대 비행기들 20여대가 죽~늘어서 있었다. 섬 듯했다.
공항의 크기는 우리나라 양양 비행장 과 비슷해 보였다.
짐 찾는 곳도 한 곳 뿐인 시골버스터미널 같은 공항이었다.
-나는 비행기를 타는 일이 늘다보니 요령이 생겼다. 만석 일 때,
12~13시간 가는 비행기는 '나이도 있고 해서' 한 등급 높여 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좌석을 배정<짐 붙일 때>받을 때, 만석 여부를 확인하고,
될수록 뒤 통로 쪽으로 달라고 하며, '내가 척추 병 환자이니 될수록 그 줄에는
좌석을 배정해 주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고, '다른 직원에게도 이야기를
해 달라'며 그 사람의 명찰을 보고, 이름을 적는 척 한다.
그러면 대개는 4좌석을 맡아 편히 누어 갈 수가 있다.
비즈니스 격 서비스는 받지 못하지만, 편히 누어 갈 수 있으니 비즈니스 석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이때 나는 한 50Cm되는 끈을 하나 가지고 탄다.
까닭은, 비행기에서 주는 베개는 얇고 미끄러워 자주 의자 밑으로 떨어진다.
그때 베개 세 개를 겹쳐 가운데를 질끈 동여매면 훌륭한 베개가 되어 편히
자며 갈 수가 있다.- 잠시 삼천포로 _'오'는 년 평균 기온이 섭씨 23도이니,
가히 '태양낙원'이라고 자랑할 만 했다. 우선 기후와 날씨가 좋고, 나무들이
쉼 없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오'는 크게 본섬의 북부, 중부, 남부,
주변 섬으로 나뉘는데, 우리는 본섬에서만 돌았다.
북부...만자모
단애절벽위에 펼쳐진 천연 잔디밭과 푸른 바다와의 대비가 눈에 뛰는
'오'의 최고의 경승지이다.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맑게 개인날씨에는
본섬 북부와 이에지마를 조망할 수가 있단다.
부세나 해중공원
'오'의 해역에는 풍부한 산호초와 열대어가 서식하고 있어 바다의 색채가 선명했다.
여기서 바닥이 유리로 된 보트를 타고, 바다 속의 아름다운 경치를 가까이에서
볼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서 그런지, 한글로 고기 이름들이 써 놓았다.
<위 동영상 참조>한국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중국 사람들도 간간히 볼 수가 있었다.
오키장 극장<돌고래 쇼>
푸른 바다를 전망하며 극장식의 의자에 앉아 보는 돌고래 쇼가 펼쳐졌다. 수중의
모습도 관찰 할 수 있게 만든 다이버 쇼에서는 돌고래의 특수한 능력도 볼 수가 있었다.
돌고래 관찰會에서는 가까이에서 돌고래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모습이나 형태 또는
해양박람회 공원에서 하고 있는 건강관리 방법 등에 대하여 소개를 하고 있었다.
중부...
마하마 아메리칸 빌리지.
미국 해안의 분위기가 감도는 쇼핑과 오락의 종합시설, 복합 영화관,
대형 관람차를 비롯한 패션 잡화점, 레스토랑, 라이브하우스, 화려한
불을 밝힌 놀이시설들을 볼 수가 있었다.미국풍의 냄새를 풍기려고 거리,
건물, 상품, 음식 등에 애쓴 흔적이 많이 보였다.
남부
나하시 제일 마키시 공설시장
'오'의 토산품과 식품전문점이 즐비한 이치바 혼도거리 중앙에 위치한
'오' 최대시장..2차 대전 후 암시장에서 출발한 공설시장은 '오'의
부엌이라고 불리고 있었다.마치, 우리나라의 남대문 시장을 연상케 했다.
'오'의 요리를 만드는 재료라면 무엇이든 다 있으며, 그 종류 또한 무궁 무진 했다
매일 활기가 넘치는 시장이며,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고 한다.
1층은 생선과 육류, 반찬, 가공품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고
2층에는 '오'의 요리, 중화요리를 즐길 수 있는 식당가가 있었다.
또 1층에서 재료를 구입해서 2층 식당에 가 조리를 부탁 할 수도 있었다.
<조리 수수료는 1인 3가지까지 500엔>
우리는 이 근처의 식당에서 고기와 야채가 무한리필 되는 샤브샤브로 저녁을 했는데
직원에게 '여기서는 어떤 소주가 제일 좋은가'하고 물으니 "자기가 먹는다면 OO소주를
먹겠다."고 하기에 '한 병에 얼마냐'고 물으니 "1.500엔"이라고 한다.
가져온 병을 보니 30도짜리의 정종 댓 병이었는데, 너무 싼 것 같아 이상했지만..
더 물어 보지 않고 두 사위와 함께 거하게 먹었다. 고구마가 원료인 그 술, 맛도 좋았다.
일본인 회사 영업 부장으로 있어 한 달에 한번 정도 일본으로 출장을 오는 큰사위는
여기는 사투리?가 심해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했다.
세계문화유산 유적지 류큐왕국의 구스쿠 및 관련 유적군...
세계유산조약은 1972년의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조약으로 세계 각국에 점재하고
있는 유산을 특정 민족뿐만 아니라 전 인류적 차원에서 가치 있는 공통의 보물로서
영원히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세계유산에 2000년 12월에
류큐 왕국의 구스쿠 및 관련 유적<9군데>이 있는데
일본에서 11번째로 세계유산에 등록된 곳이라고 한다.
슈리성 공원.
일본에서 11번째 세계유산에 등록된 슈리성의 창건은 14세기 무렵이라고 알려져 있다지만,
자세한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슈리성에는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 등과의 교역으로부터
여러 가지 문물을 가져와 칠기, 염직물, 도기, 음악등 류큐 특유의 문화가 꽃을 피웠다고 한다.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서 흔적도 없이 다 타버린 슈리 조정전은 1992년
오키나와의 본토복귀 20주년을 기념해 18세기에 슈리조를 모델로 복원 되었다고 한다.
해양 박람회 공원 츄라우미 수족관
黑조에서 길러진 오키나와의 바다와 접해 있었다. 그곳에선 사람의 상상을 뛰어 넘는
웅대한 생명체들이 활기차게 펼쳐지고 있었다, 츄라우미 수족관은 마치 코발트 불루의
바다 깊이 들어간 것 같이 웅대하고 신선한 체험을 즐길 수 가 있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라니... 제주도에 있는 한화 아쿠아룸은 비 할 바가 못 됐다.
세계제일의 희귀 물고기들의 사육. 전시내용을 지향하는 대 수조
7.500톤의 수량과 이것을 견디어 내는 무려 65Cm두께의 유리벽의 흑조의 바다.
대 수조에는 고래상어가 장기사육 기록의 세계제일을 경신중에 있다고 한다.
세계 처음으로 번식에 성공한 만타<큰 가오리>등 많은 세계기록을 자랑하고 있기도 하다.
세계 최대의 만타의 무리를 볼 수 있는 곳도 오키나와 츄라우미 수족관뿐이라고 한다.
'오'의 아름다운 바다를 유유하게 헤엄치는 만타와 수많은 희귀 물고기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도 '오'의 츄라우미 수족관 뿐, 거대한 수조의 좋은 환경과 신선한 해수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시스템을 실현시킨 세계유일의 수족관이라고 한다.
생명이 넘치는 산호초를 관찰할 수 있는 여행 위, 옆, 여러 각도에서 보고 만져보고...
이노는 산호의 초지를 표현한 '오'의 방언으로 바다생물이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그 이노를 재현한, 손으로 집어서 관찰할 수 있는, 터치 풀도 마련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즐기면서 생명체의 신비를 직접 만져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하는 교육의 장이었다.
비행장으로 오는 도중에 아울렛을 들렀는데, 그 규모는 우리와 비슷했으나
물건은 세계인을 상대로 해서 그런지 더 다양했다. 좀 둘러보다 살 것이
마땅치 않아, 사위들과 식당가로 가서 그 지역 특산인 오리온 맥주로, 아이들은
그 지역 특산인 자색 고구마 아이스크림과 자색고구마 튀김을 먹었는데..
한참 헤매다 온 마눌과 딸들은 모두 빈손이었다. ㅋㅋ
아침 6시면<여름엔 5시> 눈을 뜨는 나는 습관대로 운동화를 신고 운동을 나갔다.
일본 여행 시에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번 '오'도 마찬가지 였다.
주변을 한 바퀴 돌다보니, 비와 쓰레받기를 들고 자기 집 주변을 청소하고 있는 사람들,
비닐장갑을 끼고 비닐 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주어 담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가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 옛날 새마을운동 같이....
그래서인지 일본의 길거리에는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볼 수가 없었으며 항상 깨끗했다.
한번은 비가 부슬부슬 오는 오후, 공원이었는데, 선생님의 인도에 따라 노란 우비를 입고,
한 손에는 작은 집게를, 다른 한 손에는 비닐봉지를 들고,
쓰레기를 줍는 유치원생들을 보았다. 우리나라 같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아~, 저것이 바로 교육이로구나' 하고 느낀 일이 있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그 교육이 행동으로 이어지는가 보다.' 했다.
잘 아다 시피 일본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나라는 부강한데 국민은 그렇지 못 한 것 같다.
집은 거의 13평대. 자전거 위주, 차 도 거의가 도로에서 개구리 주차를 할 수가 있는
노란 판의 소형차, 수입차나 대형차<택시는 제외>는 거의 볼 수가 없었으며,
택시도 대형과 소형으로 나뉘는데, 대형은 앞에 운전사외에 2명이 탈 수 있도록 만들었다.
5명이 타려면 대형을 타라는 것으로 가격도 차이가 난다. 이는 정당한 이유...
우리도 한때 '중형차?'라고 요금을 올려 받더니, 슬그머니 모두 다 중형차로 바뀌어 버렸다.
일본 여행 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사람들은 남에게 절대로 피해<큰소리, 담배꽁초, 휴지 등>를 주는 일을 삼가 한다.
이번 여행 시에도 가이드가 부탁을 한다.
'온천 안에서는 절대 서서 샤워를 하지 마시고, 쪼그려 앉아서 하세요. 물 튀는것을 싫어해요.
나올 때는 쓰시던 물건<수건, 욕조물건 등>은 다 제자리에 갖다 놓고 나오세요...
그리고 주변을 샤워기로 깨끗이 하고 나오세요...' 좀 창피? 했다.
한 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버스에서 비닐우산을 하나씩 갖고 큰 식당에 간 일이 있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비닐 우산을, 우리는 둘둘 말아 접어, 가지고 들어갔는데...
일본사람들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2단접이 빨강, 파랑 박쥐우산인데도 돌돌 말아
문 밖에 세워놓고 들어오는 것이다.
'아~, 저것이 바로 어려서부터 받은 교육의 힘이 로구나' 생각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을 했다
-우리가 일본을 따라 잡으려면 100년이 가도 힘들겠다.-고 ...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