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의채로부터
4월 13일 인고 76벗들의 강화도 순방소식을 들었다
한반도의 단전 강화도ᆢ
단군이 제를 올린
마리산의 참성단을 비롯
효종임금 애마 벌대총의 전설이
서린 진강산,
고려산, 혈구산,
고인돌이 있고
북을 빤히 살피는 별립산이
국방유적지들과
어깨동무하며
서해를 호령한다
강화의 대선배 연개소문이 중국 북방을 정벌하고 변방을 굳건히 하였고 몽고항쟁 후
1270년 개경으로 환도하기 전까지
38년간 고려왕이 머물던 고려궁지가
환란 중에
터만 흔적을 남긴채 반길 것이다
월곶돈대가 있고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물줄기가 제비꼬리를 닮았다하여 명명된 곳에 지어진 연미정은 고려시대에 지어진 독특한 팔작지붕의 형태로 마당에 수령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를 품고
침묵한다해도 수난의 역사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100년 후 임진왜란을 내다보고 아이들에게 볶은 콩을 나누어주며
소나무를 심어 막상
임진왜란 시 배를
만드는데 공을 세운
조선 중기의 무신
황형장군의 집터가
바로 곁에 있으며
정묘호란 때 인종이
후금과 치욕적인 강화조약을 맺은 장소로 북한을 육안으로 관찰하기 적절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근대사인 1866년
병인박해를 구실로 로즈제독이 이끈
프랑스해병대가 온수리 전등사입구
삼랑성문이 있는 정족산성에
포격을 가하며 침공, 건 한달 간을
강화 유수부동헌을
점령하며
고려궁지에 위치한
왕의 외각 도서관인 외규장각에서
귀중한 의궤와 수만의 은을
약탈해가 흥선대원군의 천주교인 박해와
쇄국정치가 도를 더해간 계기가 되었다
1871년 미해병대와
무기면에서 엄청 열세이면서도 호랑이들처럼 달려들어 싸우던 어재연 장군과 그의 동생 어재순과 강화도 선배 병사들이 장렬히 전사한 광성보는 국력과 화력의 차를 여실히 보여주었고
병사들은 총에 맞서
활을 쏘았고 화살이
떨어지자 흙과 돌을 움켜쥐고 총을 든
미해병대원에게 던지며 최선을 다하다가
모두 전사한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1875년,
해안선 탐사를 빙자하고
식수를 뜨겠노라며
작은 배를 타고 와 영종도와 강화도를 상륙해 약탈과 방화를 일삼은 왜구 수병들에게 포격을
가해 내쫓았으나
1876년,
운요호 사건으로
부산항과 인천항을 내주며 결국 을사늑약과 한일합병의 계기가된 강화도조약의 장소
연무정옛터가 강화도
남산 서문터에 자리하고 있다
실용의 강화학파가
탄생하고 정제두 선생의 후손인 수학자가
몇년 전
금의환향하여
어린 강화도 고향후배들에게
수학정석의 기본원리를
전수하는가 하면 농심의 농학박사는
고려저수지 근처서 서리테등
부농의 영농인으로 고향을
지키니 자랑스럽다
강화도 출신들이 강인하고
강화 뻔돌이 소리를 듣는
이유중에는 조상대대로 수난의
역사를 번번히 겪어가며
삼벌초의 난등
도전적이고 반골적임은 항쟁의 DNA가 절로 피에 녹아있기에 그리하지않나 생각해본다
아무튼 벗들의 강화도 방문을 대환영하며
강화도의 역사를
두루 살피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